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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들기는 커녕 나날이 그 도를 더해가고 있는 학교 폭력, 과연 그 '폭력'의 악순환을 멈출 수는 없을까?
학교 폭력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들어주기 힘든 부탁을 받은 학생이 미안하다고 거절한 이후, 그 학생은 비난을 받았고, 고립되었다. 그 누구도 그 학생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그런 '따돌림;은 폭력으로 이어진다. '너 미쳤냐?', '요즘 안 맞았지?', 하는 상시화된 폭력은 피해자를 지옥으로 몰아간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뻔뻔하게 말한다. '장난'이었어요 . 그리고 어른들은 말한다. '싸우면서 크는 거지',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장난'치는 친구 관계, 아이들은 다 그런 거라는 식으로 학교 폭력을 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장난'이 피해자를 피폐한 삶이나, 죽음으로 이끄는 결과를 낳는다.
ebs는 지난 8월 29일부터 3부에 걸쳐 <학교 폭력 공감프로젝트>를 통해 그 방향을 모색했다.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학교 일선 및 정부가 앞장 서서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한 각종 조치를 취했음에도 왜 효과가 없었는가라는 의문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프로젝트는 그 의문의 답을 당사자인 '학생'들로 부터 구하고자 한다. 초등학생을 비롯하여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그를 통해 학교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주범'을 '기소'하고자 한다. 선생님들이 '배심원'으로 자리하고, 그곳에 학생들이 기소한 '주범'들이 드러난다. 과연 우리 시대 학생들은 '학교 폭력의 주범'들이 누구라고 생각했을까?
'어른'을 기소합니다.
'제설제 먹이고 폭행', '오물 뒤집어 씌우고 폭행', 학교 폭력과 관련된 언론의 보도 내용들이다. 학생들은 바로 이런 '언론'을 고소한다. 진정으로 학교 폭력에 대한 우려와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대신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인가에 초점을 맞춘 언론은 자신들이 바로 '학교 폭력'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말한다. 언론을 비롯하여 어른들이 만든 콘텐츠는 지루하거나, 폭력적이라고. 언론의 자극적 헤드라인은 피해자를 부각시키며 학교 폭력을 선정적으로 소비할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유투브를 비롯한 sns 역시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내용들을 관심을 끌기 위해 앞다투어 게시함으로써 학생들에게 폭력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언론이나, 유투브만이 아니다. 학생들은 입을 모아 교육 동영상의 유죄를 '기소'한다고 말한다. 어른들 입장에서 일방적인 폭력 예방 캠페인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식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교육부의 캠페인이 '느린 예방 교육'이라 냉소한다.
여전히 학생들을 본드나 하고 삥이나 뜯는 구시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캠페인, 하지만 이제 학생들에게는 '사이버 폭력'이 새로운 '폭력'으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 그러기에 일방적으로 틀어주는 학교 폭력 동영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졸린 영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졸지 말라고 하기 이전에 '졸음이 오지 않는', 현실적인 대응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기소한다. 학생들에게 '입'으로 하는 말과는 다르게 막상 '상황'이 벌어지면 '책임'을 면하기 위해 '절차'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생님은 믿을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당연히 '학교'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늘 '안일'하게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한 것이 아이들 눈에 비친 '학교'의 모습이다. 당연히 그런 학교와 선생님들의 태도에 학생들은 무력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방관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선생님과 학교만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러기에 학생들은 '대한민국'을 기소한다. 자본주의, 외모 지상주의, 그리고 성취 중심의 경쟁 사회는 학생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그래서 서로를 무시하고, 왕따와 '은따'를 양산하고 학교 폭력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이,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개선되지 않는 한, 그저 일회적인 캠페인 식의 학교 폭력 예방만이 존재하는 한 학교 폭력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 입을 모아 말한다. 즉 학교 생활을 만들어 가는 총제적인 권력 구조, 그 시스템이 바로 지금 학교 폭력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기소'합니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 언론, 나아가 우리 사회만의 문제뿐일까? 학생들은 알고 있었다. 학교 폭력에서 결코 자신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한 여고 뮤지컬 동아리에서 '빈방 있어요'라는 게임을 한다. 술래가 된 한 사람이 둥글게 원으로 자신을 둘러싼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빈방 있어요?;라고 물어본다. 둘러선 학생들의 역할은 '거절'하는 것이다. 그리고 술래가 뒤돌아서서 '빈방 있어요?;'라고 물어보는 동안, 뒤에 선 학생들은 마치 '방'을 바꾸듯 자리를 바꾼다.
처음에는 '게임'이니 자신있게 웃으며 '빈방 있어요?'하고 물어보던 술래, 하지만 친구들의 거절이 이어지자, 점차 목소리가 작아지고 떨리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고야 만다.
이 게임은 바로 이른바 '은따', 은근한 따돌림을 시뮬레이션 해본 것이다. 술래가 된 친구는 말한다. 게임이라고 했는데도 세상에서 동떨어진 듯 했다고, 그 무엇도 해도 안 될 것같은 막막함이 들었다고. 반면, 둘레에 서서 '거절'을 한 친구 역시 설사 게임이라 해도 그 '룰'을 벗어나면 되는데 그걸 따르는 자신에게 '죄책감'이 느껴졌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학생들은 마치 '러시안 룰렛'처럼 형성된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나서지 못하는 자신들의 '방관'을, 그리고 '나랑은 상관없어'라는 무관심을 '방관의 카르텔'이라며 '기소'한다고 말한다. 산격 중학교에서는 형사 재판의 형식으로 괴롭힘당하는 친구를 '방관'한 학생에 대한 모의 재판을 열었다. 과연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5 ; 4, 유죄와 무죄의 비율이다. 학생들은 비록 한 표 차이지만, '방관'이 유죄가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4표의 학생들은 말한다. 자기도 폭력을 당할 까봐 차마 나서는 게 쉽지 않다고. 그러기에 방관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서는 것이 '대단한 용기'라고 배심원이었던 선생님들은 말한다. 그리고 그 '방관'의 카르텔에서 몸을 숨긴 학생들을 바꾸면 학교 폭력이 만연한 현실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이와 같은 학교 폭력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행복지수 2위, 경쟁없는 교육을 지향하는 덴마크에서도, 국가 학력 조사 최상위국인 핀란드에서도 학교 폭력의 관행은 피해갈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 학생들의 학교 폭력에 대한 고민을 공유한 이 나라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의견에 적극 공감을 표한다. 그리고 역시나 일회적인 캠페인 성 교육이 아니라 지속적인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연대감, 그리고 사회적 감정 교류의 능력을 고양 시켜야 학교 폭력의 악순환, 그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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