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쌤' 덕분에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대중적으로 익숙한 학문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족'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내면 아이'라는 용어가 종종 등장하곤 한다. 부모 자식간의 갈등, 이전까지는 그 '문제'의 촛점이 '아이'에 맞춰져 있다면, 최근에 들어서는 그 갈등의 근원으로 부모, 그 중에서도 특히 부모가 어린 시절 가진 '트라우마'를 조명한다. 드러난 문제 속에 숨겨진 또 다른 '가족'의 문제이다. 

여기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한 여성이 있다. 어른이 된 그녀는 여전히 그런 어린 시절의 아픔을 자신의 '내면'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그런 자신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좋은 부모가 되기로 했다. 심지어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기관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딜레마가 있다. 그 '아이'가 그녀가 낳은 아이가 아니다. <가족의 색깔> 속 아키라(아리무라 카스미 분)의 선택이다. 

 

 

25살, 엄마를 선택했다
아키라는 25살이다. 한참 '창창'할 나이, 그런데 '결혼'을 선택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던 그녀에게 마지막 남았던 당근을 나누어 주고, 카레에는 '고구마'를 넣으면 맛있다며 고구마도 나누어 주던 '따뜻한 남자' 슈헤이, 가슴 통증이 와서 병원에 급히 입원했지만 놀라서 찾아간 아내 아키라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웃겨주려 애쓰던 남자, 영화는 그렇게 아키라의 남편을 그린다. 스물 다섯 살의 젊은 여성이 이미 다 큰 아이가 있는 남자 슈헤이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은 그녀가 원하던 안락한 가정 대신 '시련'을 주었다. 어느날 가슴이 아프다며 입원한 남편, 놀라 달려온 아내를 웃으며 달래주었지만 다음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남편이 남긴 건 동업 사기로 인한 빚, 그래서 그들이 살던 도쿄의 아파트가 날라갔다. 그리고 초등학생인 아들이 남았다. 

과연 아키라는 어떤 선택을 할까? 도쿄의 아파트를 처분한 아키라는 슌야를 데리고 남편의 고향 가고시마를 향한다. 아들의 죽음도 몰랐던 시아버지 세츠오(쿠니무라 준 분)에게 남편의 유해를 전한 아키라는 당분간 자신들이 시아버지 댁에 머물수 있게 해달라 청한다. 그리고 철도 기관사인 시아버지 덕에 기차 덕후였던 남편을 꼭 빼닮아 아버지 못지 않게 기차를 좋아하던 아들을 위해 '기관사'에 도전하고자 한다. 

겨우 25살이지만 아키라는 의연하게 이제는 엄마도, 아빠도 없는 슌야의 부모 노릇을 감당하려 한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자동차 면허조차 없는 아키라가 '기관사'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의지'만 가지고 되는 일일까?

자신을 놀리는 친구 얼굴에 상처를 입히는 바람에 보호자로 호출된 아키라, 아키라는 의연하게 제가 슌야의 '부모'입니다를 외치지만 영화 속 슌야는 아키라를 늘 '아키라짱'이라 부른다. 부모의 날, 아키라에게 학교에 오지말라고 당부한 슌야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이미 세상에 없는 아버지가 여전히 그의 곁에 있는 것처럼 쓴 글을 발표한다. 그런 슌야에게 '아버지의 부재'를 이제 그만 받아들이라고 하는 아키라, 하지만 슌야의 입에서, 아버지 대신 아키라가 없어졌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만 듣고 만다. 

 

 

슌야의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선택한 기관사의 길도 여의치 않다. 이제는 사양 길에 접어들었지만 지역민들의 열의에 힘입어 미니 열차로 운행하는 가고시마 열차, 순조롭게 기관사가 되나 싶었지만 기찻길로 뛰어든 사슴을 치고, 그 죽은 사슴을 바라보는 어린 사슴을 보고 나서는 아키라는 좀처럼 예전처럼 그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진다. 

죽은 남편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이 낳지 않은 남편의 아들, 그리고 젊은 엄마라는 이질적인 '가족 구성원'이 하나의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가족의 색깔>, 그 서사의 줄기를 이루는 건 '가족'됨을 지향하는 한 여성의 '의지'이다. 영화는 슌야가 낳자마자 슌야의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슌야의 아빠가 아이를 기르기가 힘들 것을 염려한 시아버지는 슌야의 외할머니가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결정에 동의한다. 형편으로 보면 그게 나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슌야의 아버지 슈헤이는 그런 '어른'들의 결정을 거슬러 홀로 아이를 키워냈다. 

형편과 편의, 그걸로 보자면 아키라의 결정도 무모해 보인다. 영화는 시아버지의 시점에서 과거 아들과 이제 아들조차 없는 며느리의 결정을 '오버랩'하며 '가족'을 묻는다. 하지만, '가족'을 이루는 건 생각보다 여의치 않다. 자신을 끝내 '아키라짱이라 부르는 슌야, 정작 '아들'을 위한다는 그 일을 자신이 해낼 수 있을까?

불안정한 상태로 인해 '휴직까지 당할 처지에 놓인 아키라, 그런데 자신을 응원해 줄줄 알았던 시아버지가 말한다. '자신이 결정할 문제'라고. 스스로 기관사가 될 수 없다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자신의 답을 찾아가는 두 여성
영화는 선택에 기로에 놓인 두 젊은 여성을 등장시킨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호의적이었던 아키라와 슌야의 담임 선생님, 노천 변에서 토하고 있던 선생님에게 119를 부르려 하던 아키라는 그녀가 가정이 있는 남자의 아이를 가졌음을 알게 된다. '축복'받지 못한 아이니 지우겠다고 결심했던 선생님은 미혼모라는 '존재'를 차치하고 생명의 잉태 그 자체를 '축하한다'고 전한다. 

선생님은 학부모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이를 스스로 낳아 기를 것을 결심한다. 반면 아키라의 결심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을 응원해 줄 것 같은 시아버지의 냉정한 한 마디, 그리고 보호자가 되기로 했지만 자신을 '부모'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슌야, '위해서'라는 명목의 그녀의 결심이 그 근간에서 부터 흔들린다.

아빠로 부터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했던 선생님이 그 답을 자신에게서 찾은 것처럼, 아키라에게 필요했던 시간 역시 '누구'가 아닌, 자기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 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돌아온 아키라에게 슌야는 말한다. '아키라는 아키라 짱'이라고. 슈헤이나, 죽은 엄마를 대신한 자리가 아니라, 25살 아키라의 자리인 곳,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직업으로 기관사, 비로소 아키라는 부모로써도, 직업인으로서도  '견습' 딱지를 떼었다. 

전형적인 일본 가족 영화의 정서가 물씬 품어나는 <가족의 색깔>, 하지만 잔잔한 듯한 분위기 안에서 던져진 질문들은 심상치 않다. 가족이라는 영향력 안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던져진 '과제', 전형적인 '가족주의'인 듯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도발적인 답을 준 영화이다. 


by meditator 2022. 6. 27. 23:58

우리나라만큼 인생의 통과 의례에 '집착'하다시피 하는 나라가 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야하고, 대학을 나오면 취직을 해야 한다. 취직을 하면 그 다음엔? 사람들은 쉬이 '남의 집 자식'들의 일생에 질문을 퍼붓는다. 그런 세상에 그저 자식보다 하루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진 엄마들이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취직'을 하고 '월급'까지 타온다. 자기 스스로 돈을 번다는 사실도 좋지만, 무엇보다 '내 아이'가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려 그 속에서 자기 몫을 찾는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다. 그걸 위해서라면 살던 곳을 떠나는 것 쯤이야 무엇이 문제랴 싶다. 가지고 있던 '땅'도 기꺼이 '기부'할 수도 있다. 바로 여주에 있는 '푸르메 여주팜'이 일군 '기적'이다.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푸르메 여주팜'은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농장이다. 아침이 되면 농장의 하늘이 저절로 열린다. 하지만 스마트 농장이라고 해서 모두가 '자동'은 아니다. 익은 방울 토마토도 따주어야 하고, 가지 치기도 해주어야 한다. 딴 버섯을 분류도 해주어하는 건 물론이다. 이렇게 방울 토마토와 버섯 농사에서 '필수적'인 일을 38명의 발달장애 직원이 해내고 있다. 

 

 

'발달 장애'는 유전적인 원인, 후천적인 뇌 구조 손상, 각종 신체 질환, 환경적 요인 등으로 인해 유발되는 장애를 말한다. 어느 특정 질환 또는 장애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 의사소통, 인지 발달의 지연과 이상을 특징으로 하고, 제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못한 상태를 모두 지칭한다.(다음 백과) 적절한 '자극'을 통해 사회적으로 잘 적응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사회적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상당수인 상황 그러기에 푸르메 여주팜의 직원 모집에 전국의 발달 장애인들이 모였다. 

명함도 있다. '나도 직원'
매일 오전 8시 30분 직원들을 태운 차가 도착한다. 자동으로 천장이 열린 방울 토마토 온실, 29살 이수연 씨는 곁순을 자른다. 9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재활원에서만 생활하던 수연씨는 공장 직원 중 꽤 높은 수준의 업무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다. 개인 별로 편차가 심한 발달장애인들, 그녀가 생활하는 재활원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은 92명 중 20명 뿐이다. 

가공실에서 세척 중 결함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26살 임의혁 씨의 원래 집은 구미이다. 산업공단인 구미에도 제조업체는 많지만 소근육을 움직이기 힘든 의혁 씨가 일할만한 곳은 없었다. '내 아이가 일을 할수 있다는데',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사를 했다. 

버섯팀에서 일하는 36살의 김동휘 씨, 어머니와 함께 퇴근을 한다. '늘 재밌대요'라며 웃음을 띠는 어머니, 동휘씨가 일을 하는 건 그저 동휘 씨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저 늦된 아이인 줄 알았던 동휘 씨, 다 큰 동휘 씨가 갈 곳이 있다는 변화가, 가족들의 삶마저 달라지게 했다고 한다. 

'동생에게 짐이 되면 어쩌나, 쟤가 나중에 혼자 어떻게 살아갈까', 발달장애인들의 타인 의존도는 80%이다. 푸르메 여주팜에서도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 더구나 개인별 편차가 심하다. 표준 메뉴얼이 어렵다. 이런 발달장애인들이 모여 '농장'을 일구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했다. 

 

 

32살 덕희 씨는 오후반 직원이다. 농장 가는 걸 너무 좋아한다. 이제는 홀로 출근한다. 월급날 집으로 돌아온 덕희  씨가 개선장군처럼 말한다. '돈 벌어왔어!' 그런 아들을 보는 장춘수 씨는 너무나 기쁘다. 치료하면 수술하면 낫는 줄 알고 온갖 치료란 치료는 다해봤다는 춘수 씨, 결국 '치료'를 포기하고 아들을 위해 함께 '농사'를 짓기로 했단다. 10년을 이 농사 저 농사 지어봤지만, 이게 혼자 해서는 안되는 일이구나를 절감하게 된 춘수 씨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고민하던 푸르메 재단을 만났다. 

발달장애인이 혼자서 독립해서 살아가려면 우선으로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안정된 일터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뭘까?, 열심히 찾았는데, 우리가 찾은 답이 ‘스마트팜’이었어요.” -임지영/ 푸르메재단 경영지원 실장


기꺼이 땅을 기부한 춘수씨,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을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스마트팜을 만들기 위해서는 100억 정도의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한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는 문구처럼, 한 사람의 발달장애인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좋은 뜻을 지닌 재단과, 독지가, 그리고 재원을 감당해준 기업과 은행, 그 모든 것을 현실적 과정으로 풀어낼 지자체 등 많은 이들의 뜻이 기적처럼 모아져야 했다. 그 '기적'의 결과물이 국내 최초 민, 관, 공 컨소시엄형 장애인 사업장 푸르메 여주팜이다. 

 

 

직원들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 일주일에 5일 하루 4시간을 근무하고 최저임금보다 높은 월급을 받는다. 4대 보험도 적용된다. 우리나라 발달장애인은 25만 여명, 그 중 23.3%만 일을 하고 있다. 장애인 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이 없이, 가정이나 시설의 돌봄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매일 출근하는 게 너무 좋아요.” -김동휘
“전에는 우울했는데 여긴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이수연


평소에는 거의 말수가 없다는 덕희 씨, 그런 덕희씨가 동료들을 만나며 인사도 하고 말수가 많아진다. 심지어 장난도 치고, 애교도 부린다. '부끄럽게 왜그래~', 그 전에는 쓰지 않았던 감정 표현의 어휘가 등장한다. 그들에게 '일'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시간이다. 

매달 25일은 월급날이다. 월급 명세서를 받기 위해 줄을 선다. 월급날 의혁씨가 은행에 들른다. '아파트를 살려고', 주택 청약을 들기 위해서이다. 직원들에게 꿈을 물었다.

'버섯을 잘 따는 거예요',
'엄마, 이제 내가 일을 할게요',
'아빠 차 바꿔줘야지'. 

by meditator 2022. 6. 20. 21:41

생물종의 '멸종'은 자연현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여섯 번째 멸종이 '인위적'이라는데 있다. 매일 150종, 매년 55,000 종의 생물이 멸종 중이다. 정상보다 1000 배 이상 빠른 속도다. 인간도 그 멸종의 대열에서 예외는 아니다. 

'모든 게 사라질 겁니다!'
2020년 4월 미국 항공우주국 NASA 등의 과학자들이 시위에 나섰다.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과학자들이 '눈물'로 호소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는 종을 '상징'하는 붉은 물감을 뿌려대다 결국 경찰에 연행됐다. <시사 직격>의 다큐 제작진이 NASA 소속의 기후학자 피터 칼 머스를 찾았다. 그는 초조하게 말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확실한 경고가 필요한 때입니다.'

 

 

과학자들은 말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정상적인 속도보다 수백 배나 빠르다고. 이걸 회복하는데에는 수백반 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여섯 번째 대멸종을 수백 배나 빠르게 만드는 건 두말 할 나위없이 '화석 연료'에 의존한 인간의 문명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 사회의 결정은 느긋하다. 26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197개국의 정상들이 모였다. 석탄화력 산업의 단계적 퇴출을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다만 단계적 감축을 하겠다는 의견 조정만을 이루었을 뿐이다. 

이렇게 급속도로 진행되는 '여섯 번째 멸종'의 시대, 그에 반해 여전히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고 각국의 이해 관계만을 앞세우고 있는 현실에 기후 위기 활동가들이 거리로 나섰다. 

방관자가 될 수 없다!
지난 5월 30일 영국의 리치몬드 역에는 6구의 시신들이 놓여졌다. 브라질에서 벌목꾼 총에 맞아 숨진 사람, 미국 산불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사람 등  '기후 위기'로 죽어간 사람들이다. 잠시 뒤에 하얀 천을 씌운 시신이 움직인다. 기후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이렇게 '시신 퍼포먼스'를 통해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한다. 

 

 

프랑스 브장송 거리의 기후 활동가들은 보다 적극적이다. 기습적으로 등장한 이들이 상점의 불을 끈다. 전자 광고판을 뜯어 게재된 광고를 버리고 대신 온난화 지구를 상징하는 붉은 원의 포스터를 붙인다. 이들은 지난 2018년 결성된 '멸종 반란' 그룹이다. 소멸을 상징하는 모래 시계를 내건 이들은 더는 어설픈 방법으로는 빠른 멸종의 시대에 대처할 수 없다며 요란하게 불편을 끼치는 행동을 통해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겠다고 선언했다. 멸종 동물의 죽음을 상징하는 가짜 피를 뿌리거나, 의사당을 점거하는 등 직접적인 행동에 나선 '멸종 반란', 남아공에서 부터 호주, 그리고 아시아 등 84개국 1200 개 지부가 결성되었다. 

지난 3월 우리나라에서도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한' 장례식 퍼포먼스가 거행되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되자 민주당을 점거하여 경찰과 충돌했다. 위법 행위도 불사하겠다는 기후 활동가들. 자신들에게 '절차'를 밟으라지만, 그 '절차'를 밟을 기회조차 쉽게 얻을 수 없다는 활동가들은 시끄럽게 해서라도, 위법 행위를 불사하더라도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한다. 

'이 시기를 지나면 되돌릴 수 없다'
벌처럼 인간에게 필수적인 곤충이 사라진다면 과연 인간은 '생존'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기후 위기는 북극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8년 폭염으로 초과 사망자가 8천 명에 이르렀는데, 이게 '인간 멸종'의 신호가 아니냐는 것이다. 더욱이 그 '멸종'은 늘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더 빨리 다가간다니. 

경남 통영 20여년 동안 어업에 종사한 어부의 통발이 비었다. '잡을 게 없어요.'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연안 양식장도 다르지 않다. 6월 말까지 수확하던 멍게 어장이 5월 말에 막을 내렸다. 2년 이상 키워야 하는 멍게 양식, 지난 여름 고온으로 수확량이 70%나 줄었다. 전세계의 해수면 온도가 0.52도 상승하는 동한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는 1.35도 상승했다. 매우 빠른 속도다. 

그런가 하면 육지에서는 가뭄으로 21세기에 기우제를 지낼 정도다. 평년 절반에 못미치는 강수량, 강원도 고냉지 배추가 노랗게 타들어 간다. 건조한 기후는 '산불'을 초래한다. 3월 경남 밀양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건조주의보 상태에 강한 바람으로 축구장 1000 개 면적을 72시간 동안 태우고 나서야 겨우 불길이 잡혔다. 동해안에서도 10일 이상 산불이 이어져 1700여 억의 손해가 났다. 평생을 살아온 집들이 '소실'되었다. 6월초 이미 30도를 육박하는 기온, 그러면 건설 현장은 50도 가까이 올라간다. 지난 해 갑자기 올라간 더위로 건장했던 40대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5월에 발생한 사고였다. 

 

 

현재 세대의 탄소 배출,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문제는 이런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가 불평등하다는 점이다. 지난 6월 13일 5살 이하 아기 40명을 포함한 62명의 어린이들이 헌법 소원을 냈다. 세계 최연소 당사자들이다. 현재 세대의 탄소 배출이 앞으로 성장하고 살아나갈 미래 세대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이다. 

청년들이 주축이 된 기후 행동 페스티벌에서는 '기후 정의'를 외친다. 앞선 세대들이 전기를 쓰고, 고기를 먹으며 탄소를 배출해서 지구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가뭄, 산불, 멸종 등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물려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정책에 정작 자신들은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 중 64.5%가 현재의 기후 위기를 '나의 문제'라 인식하고 있다. 2020년 출생한 세대는 평생 30여 차례의 기후로 인한 위기를 겪을 거라고 예상한다. 이는 1960년 생보다 7배나 많은 예측 결과이다. 40세 이하의 세대는 전례없는 기후 위기로 인한 고통을 받을 거라는 것이다. 

내년에 꽃이 안피면 어떡하지? 
이런 현실에 깨었는 이들 중에는 '우울감'을 호소하기도다. 18세의 도영이는 기후 재난 뉴스 등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고 말한다. 막막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잠이 안오기도 한단다. 이렇게 도영이와 같은 증상이 바로 '기후 우울증'이다. 

2011년 토마스 J 도허티 교수가 처음으로 '기후 우울증'을 정의했다. 젊은이들이 기후 변화로 인해 느끼는 만성적 스트레스가 우울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태어나보니 기후 위기인 시대, 앞선 세대가 만들어 놓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세상에 던져진 자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문명' 속에 사는 자신이 또한 기후 오염의 원인이며, 그래서 스스로 행복해져서는 안된다고까지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18살의 도영이는 자신의 우울감을 또래 청년들과 함께 기후 행동에 참여하며 해소해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베트남 석탄 발전소 건설에 참여한 두산 중공업에서 시위를 벌인 기후 활동가들은 천 만원이 넘는 민사 소송까지 당하는 처지이지만 '늘 하던대로 하면 결코 바뀌지 않는다'며 더 과감한 행동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이것이 무기력과 허탈감을 벗어날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고 말한다. 젊은 청년을 주축으로 한 기후 활동가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 하지만 아직도 환경 에너지에 기반한 전기료 2배 인상에 주춤거리는 현실은 실천과 우선 순위의 간극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by meditator 2022. 6. 18. 02:15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배우는데는 몇 주가 걸리더니, 페르시아, 인도 신화는 6분 만에 끝냈어,'

수업이 끝난 후 카말라(이만 벨라니 분)의 친구 나키아(야스민 플래체 분)가 불평스럽게 말한다. 그녀들은 '무슬림'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여전히 '서구' 중심의 '역사'를 배워야 한다. 

 

 

김정운 교수는 그의 책 <에디톨로지>에서 서구 근대의 글로벌스텐다드한 관점의 권력을 논한다. 세상을 보는 관점은 오직 하나이며, 그 하나의 중심에는 '서구 중심'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근대적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그리스, 그 중에서도 조그만 섬나라 크레타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을 장황하게 '그리스 신화'라는 이름으로 복습하고 또 복습하는 것이 우리가 배우는 서구 문명사의 첫 걸음 아닌가. 그 '크레타' 문명은 어디서 왔는가? 바로 그 옆의 페르시아, 인도 문명의 '전파'이지만 우리의 시선은 '그리스의 작은 섬'에 머문다. 실제 '근대'이전까지 서구에 비해 동양이 훨씬 더 문명적으로 앞섰다는 것이 이제는 정론임에도 여전히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는 서양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이러한 서양 중심의 '관점'에 문화적 전환이 이루어졌고, 문화적 전환 중에는 이른바 '탈중심주의', 즉 우리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서구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세계화의 시대 다양한 이유로 인한 이주로 국가와 민족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더욱 기존의 서구 중심적 세계관의 존재 이유는 그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는 중이다.

또 한 가지, 서구 중심의 세계관은, 다른 말로 '남성 중심적 세계관'이기도 하다. 새로운 문화적 변화는 지금까지 '남성 중심'으로 씌여온 '서사'를 재해석하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모색과 고민을 한다. 그런 면에서 6월 8일 공개된 디즈니 플러스의 <미즈 마블>은 변화하고 있는 '탈중심주의'적 세계관을 충실히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제목에서도 보여지듯이, '미즈'는 'mistress'의 약자로 여성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남성이 '미스터'라는 말로 통칭되는 것과 달리, 여성이 결혼 여부에 따라 미스와 미세스로 나뉘어지는 것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지적에 따라, 성평등적 관점에서 1970년대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된 명칭이다. 이렇듯 제목에서부터 <미즈 마블>은 이 드라마 주인공 캐릭터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무슬림 소녀, 히어로가 되다
공개 전 예고편 등에서 강조하다시피 <미즈 마블>의 주인공 카말라 칸은 무슬림 소녀이다. 카밀라의 부모들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자식들에게는 이런 역사적 상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 옆 저지시티에 사는 카밀라의 집안은 무슬림 전통에 따라 모스크에서 기도를 하고, 가족적 공동체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자식들에게는 너희들이 하고픈 걸 마음껏 하며 살아가게 해주고 싶었다는 부모들, 하지만 정작 10대의 카밀라는 '무슬림의 전통'을 고집하는 가족, 그 중에서도 어머니와의 '갈등'이 고민이다. 

캡틴 마블 덕후인 카말라는 마블 캐릭터 코스튬 축제에 가기를 원하지만 밤 9시가 '통금'인 카말라네 집에서는 그런 '외출'은 허락이 안된다. 더구나, 종교적 전통을 고집하는 어머니는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고 사람들이 있는 곳을 활보하는 자체가 용납이 안된다. 결국 카말라는 가족들 몰래 그녀의 '덕후 친구 브루노(매튜 린츠 분)의 도움으로 축제에 참가한다.

축제에는 캡틴 마블 코스튬 대회에 있었는데 이 대회에 참가하려 한 카말라, 그를 위한 의상을 자체 제작하던 중 할머니가 보내준 팔찌를 차게 되고, 그 '팔찌'를 매개로 '슈퍼 파워'를 발견하게 된다. 

캡틴 마블 덕후인 10대 소녀가 주인공인 만큼 시리즈는 '덕후' 활동으로 유툽과 같은 영상 활동을 한다던가, 시시때때로 공상에 빠지는 소녀의 환타지적 정신 세계를 '에니메이션'과 같은 터치로 그려내면서 10대에 어울리는 감성을 펼쳐보인다. 

'덕후'에 너무 열심이어서 학교 선생님에게 불려가는 소녀, 하지만 선생님의 훈계가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펴는 소녀는 굉장히 익숙한 감성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팔로워 수'를 통해 '인기'를 드러내는 새로운 세대의 감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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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 
그런데 왜 카말라는 '캡틴 마블'에 빠져들었을까? 시리즈는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지만 수업 시간 피구를 하다 코피를 흘리도록 공에 맞거나, 학교에 등교하는데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그녀를 집적대는 친구들, 그리고 대놓고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조 짐머 등을 통해 저지시티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은 무슬림 소녀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뉴욕에 사는 무슬림 소녀의 처지는 카말라의 친구 나키아를 통해서도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무슬림 이지만 백인과 같은 외모를 지닌 나키아는 그로 인해 사람들의 오해를 사는 것이 불편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히잡'을 착용한다. 

하지만 나키아의 히잡은 그녀의 '대사'로 '종교적인 착장'이라고 설명되기 전까지는 트렌디한 패션탬처럼 보여진다. <미즈 마블>은 카말라와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혹시나 편견을 가지고 봐왔던 '무슬림'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다. 서구적인 복장의 아버지, 반면 식사 전에 장황한 기도에 몰입하는 오빠라던가,  카말라가 그의 가족들과 함께 참여한 무슬림 축제 등을 통해 다양한 색깔의 무슬림 집단들이 출현한다. 세상이 보는 하나의 색채가 아니라, '무슬림' 안에도 보수적인, 혹은 진보적인, 다양한 색채를 지닌 집단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카말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려 한 나키아에게 모스크 대표 위원 선거에 나설 것을 독려한다. 그리고 카말라의 지원에 힘입어 나키아는 도전한다. 그런가 하면 '은따'같던 카말라는 자신의 '덕후 활동'의 정체성에 고민을 하다, 코스튬 대회를 통해 자신에게 흐르는 '슈퍼 파워' 에너지를 발견한다. 할머니가 보내준 '팔찌' 덕분인가 했는데, 공학도 친구 브루노는 그것이 '카말라 본연'에서 우러난 에너지임을 일깨워준다. 

그 누구, 혹은 어떤 도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몸속에서 슈퍼 파워 에너지가 흘러나온다는 걸 알게 된 10대 무슬림 소녀는 이제 더는 위축되지 않는다. 당당하게 등교한 그녀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거침없이 잡아낸다. 조금씩 익혀가는 슈퍼 파워로 건물 옥상에 떨어지려 하던 소년을 구하게 된 카말라, 10대 무슬림 소녀 히어로의 성장기는 '질풍노도'이겠지만, 언제나 '마블' 시리즈가 그렇듯 그 시련을 통해 강해지고 성숙해 질 것이다. 



by meditator 2022. 6. 16. 19:44

<우리들의 블루스>가 종영했다. 처음엔 낯설어 '자막'이 필요하기 까지 했던 제주도 사투리가 나도 모르게 우물거릴 정도로 친숙해 졌다. '어멍, 아방, 했시니? 했져?', 친숙해진 제주도 말만큼 20부작을 함께 했던 인물들도 정이 들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여전히 그곳 푸릉리에서 얼크렁설크렁 어우러져 살아갈 듯하다. 단 한 사람만을 빼고. 

위암 말기였던 옥동은 결국 눈을 감았다. 첫 회부터 징글징글하게 애증의 역사를 써내려갔던 옥동과 그의 아들 동석, 다행히도 두 사람은 '화해'했다. 끝내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남기지 않은 옥동인데, 어떻게 두 사람은 '작은 어멍'과 '동석'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면 '어멍과  그 아들로 만나 살자는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을까?

 

 

옥동은 자신을 '미친년'이라 했다. 
옥동은 끝내 한글을 깨우치지 못했다. 글자도 모르는 여인, 겨우 물질만 하던 그녀가 딸이 바다에서 죽자, 물질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아들 동석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동석이 어멍 옥동이 말기암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안하무인으로 굴자, 은희 등 푸릉리 친구들이 모였다. 동석의 누나 친구였던 은희가 말한다. 그 누구보다 동석의 맘을 안다고. 자기도 그때 어멍이 용납이 안되었다고. 그 누구보다 이해심이 많은 은희조차 그랬다. 하지만 그런 말도 동석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외려 그의 부아를 돋울 뿐이다. '나를 이해한다고!', 버럭거리던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회차가 끝난 후 애기 엄마인 지인에게서 톡이 왔다. 자기는 그냥 이해가 되는데 왜 드라마 속 사람들은 옥동을 이해못하는 지 이해가 안된다고. 아이를 낳아 키워본 '엄마'의 입장이라면 옥동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다고. 

제주의 여성들은 왜 '물질'을 하게 되었을까? 화산섬인 제주는 밭농사만이 가능한 지리적 환경이다. 그 조차도 '척박'하다. 그런 곳에서 식구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바다 밭'으로 뛰어든 건 '생존'의 모색이다. 그런 '생존'을 더는 할 수 없을 때, 글조차 모르는 옥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옥동의 선택은 두고두고 그녀의 멍에가 되었다. 스스로 '미친년'이라 하듯, 옥동 자신도 자신의 결정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새끼는 먹여살려야 했다. 

짐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다 아들에게 이제부터 자신을 '작은 어멍'이라 부르라며, 그걸 따르지 않는 아들의 따귀를 때렸을 때 옥동은 기꺼이 그 멍에를 짊어지겠다 결심했을 것이다. 아들을 먹여살리고 학교를 보낼 수만 있다면. 하지만 먹고 입히고 학교도 보냈지만, 옥동의 처지에서 미처 염두에 둘 수 없었던 것이 평생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아들 동석은 '작은 어멍'이라 부르라던 그때부터 내내 '옥동'에 반항했다. 부러 의붓 형제들에게 맞고 돌아와 그 상처를 옥동에게 보이며 옥동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렇게 스스로 '생채기'를 내는 동석의 행동은 마흔이 넘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작은 어멍이라 부르는게 싫다며 울던 그때 그대로였다. 

 

 

동석이 컸다. 
그렇게 평생 옥동을 용서할 수 없을 거 같던 동석이 달라졌다. 옥동이 말기암이라서? 그것만은 아니다. 푸릉리 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겨 옥동을 모시고 의붓아버지 제사에 갔을 때만해도 동석은 그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하면서도, 그 '소원'을 다 들어주면 자기 한풀이를 하겠다고 별렀다. 

의붓 아버지 제사에 가서도 동석은 하던대로 했다. 결국 자신의 상처, 의붓 형제들에게 맞았던 그 상흔을 끄집어 내고, 의붓 형의 아픈 데를 들쑤셔 밥상을 뒤집어 엎었다. 그런데도 어멍 옥동은 참았다. 그저 자기 할 도리만 하면 된다던 어멍 옥동, 그런 옥동이, 의붓 형의 한 마디, '거지같은 것들'이란 그 한 마디에 '포효'를 내뿜는다. 국물도 삼키지 못해 토해낼 정도로 위중한 옥동이, 도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저 밑바닥에서 긁어내는 듯한 한서린 목소리로, 자신이 이 집안에 들어와서 했던 병자 뒤치닥거리를 보상하라 손을 내민다. 그러면서 말한다. 동석이 칼을 들지 않은 것만해도 어디냐고. 외레 동석이 말려야 하는 기세다. 

하지만 그래도 옥동은 여전히 동석에게 '미안하지 않다'고 말한다. 뉘집 개인 줄 모르는 개한테도 미소짓는 옥동인데, 여전히 자기에게는 한겨울 얼음장같은 그 냉랭함이 동석은 서럽다. 

그래도 동석은 '죽을 사람 소원'이라 옥동이 가자는 대로 향한다. 이제는 '수몰'된 옥동의 고향, 그곳에서 비로소 동석은 안다. 어멍 옥동이 '타지' 사람이었음을. 그리고 자기 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도, 어머니도, 오빠도 잃었음을. 그런 옥동이었으니 그 어린 '동석'을 지키기에 얼마나 '오매불망'했을까. 

하지만 옥동은 힘이 없었다. 아버지를 처음 만났다던 구산리, 그곳에서 동석은 또 알게 된다. 열 서너 살 무렵부터 옥동이 '식당 일'을 했었다는 것을. '무슨 팔자가', 동석의 입에서 자리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옥동에게 따지듯 이런 저런 말을 하지만 어쩐지 동석의 기세가 점점 누구러진다. 마흔 줄의 동석, 의붓 아버지네 집에서 돈과 패물을 들고 튀어 서울로, 다시 제주로, 나름이 인생 고비를 넘겨본 동석에게 비로소 '옥동'이라는 한 사람의 '팔자'가, 아니 '인생'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몰된 골짜기에서 태어나, 가족을 잃고, 어린 나이에 식당에서 잡일을 하다, 자장면을 사줘서 좋았다는, 그래서 말기 위암에도 먹고픈 게 자장면인 어머니 옥동의 삶, 사랑하는 이 따라 제주에 왔지만 그 이는 아이들 둘만을 남기고 먼저 떠나고, 딸마저 자신을 따라 물질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아들을 먹여 살리려고 한 선택에 아들은 평생 '어멍'을 원망만 한다. 

'어멍'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동석의 눈에 옥동이란 한 사람이 보인다. '내 어멍'이 아니라, 죽을 힘을 다한 여정에도 '어멍'이란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아들과의 여정이 제일 행복한 시간이라는 옥동의 '가여운 삶'이. 제주에 살면서 한라산도 가보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같은 옥동의 인생이. 비로소 동석은 옥동의 철부지 아들에서 이동석이란 한 사람의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다. 그래도 동석은 더 늦기 전에 옥동과 '화해'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 아닐까.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피를 나눈 귀한 것이지만, 그만큼 세대만큼의 '해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자신이 살아온 '경험'의 울타리를 넘지 못해 끝내 '이해'와 '화해'의 손을 내밀지 못한다. 자식이, 부모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는 무엇일까? 노희경 작가는 자식의 어른됨을 말한다. '부모'를 부모의 자리에서 내려, 한 사람으로 풍파의 시간을 겪어낸 불완전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부모'를 온전히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는 거라 말한다. 그리고 그럴 때 비로소, '아이'였던 자식도, '어른'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드라마의 일관된 주제는 '살아있는 자 모두 행복하라'였다. 옥동의 삶을 돌아보니 그녀의 선택을 묻고 따지기가 무색했다. 그저 그 삶을 헤아리고 나면 다시 한번 '어멍'과 아들의 인연으로 만나고 싶어지는 것을. 사랑은 이유를 댈 수 없는 거라던가. 가장 행복한 일이 '아들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던 옥동은 기쁘게 아들을 위해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세상을 떠난다. 장사도 지내지 말라던 옥동의 유언이 무색하게 그녀의 부고에 모두 울며 달려온다. 사랑하는 이만을 믿고 제주에 온 산골짜기 마을의 옥동, 그 인생은 그저 외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by meditator 2022. 6. 13. 15:22

공교롭게도 mbc와 sbs에서 새로 시작하는 금토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이 '동일'하다. '변호사'다. mbc의 <닥터 로이어>에서는 모처럼 돌아온 소지섭이 변호사 한이한이 되어 등장한다. 반면, sbs의 <왜 오수재인가>에서는 서현진이 제목의 그 '오수재 변호사'가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변호사'인데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이 난감하다. 의사였으나 변호사가 된 한이한, 변호사였으나 이제 서중대 로스쿨 리갈 클리닉 장을 자임하고 나선 오수재, 그들은 저마다 신변상의 불이익을 겪으며 자신이 하던 '일터'에서 본의 아니게 쫓겨난 처지가 되었다. 

 

 

법정은 수술실과도 같다. 
소지섭이 분한 한이한은 그 하나도 어렵다는 일반 외과와 흉부외과 두 개의 전문의 자격증을 지닌 더블 보드(doubLe-board )였다. '괴물 칼잡이'라는 별명답게 반석 병원의 수술실에서 날렸다. 강행군의 수술 일정에서도 끄덕없이, 그리고 위기의 상황에서도 결단력있는 시술로 환자의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그는 '고스트 닥터'이기도 했다. 반석 병원 원장 대신, 그리고 그의 아들이 저질러놓은 상황을 수습하는 그림자였다. 빚을 갚겠다던 원장, 원장 아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이한에게 흉부외과 과장 자리가 온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연인 금석영(임수향 분) 동생의 심장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날, 한밤중에 불려가 했던 의문의 수술 후 한이한은 모든 걸 잃었다. 그에게 '최고'라고 칭송하던 이들이 법정에서 무리한 수술을 한 협잡꾼으로 한이한을 몰았다. 

의사직을 잃고 그로 인해 감옥까지 다녀온 한이한이 드라마의 첫 회, 변호사가 되어 등장한다. 더구나, 수술실에서 그의 퍼스트이자, 둘도 없는 친구라 여겼던 박기태의 법정에 나타난다. 선고를 받던 박기태가 쓰러지자 느닷없이 등장한 한이한이 가방을 열고 메스를 꺼내 응급집도를 하는가 싶더니, 자신을 소개하기를 그의 변호사란다. 자신을 '배신'한 이를 변호하는 전직 의사, <닥터 로이어>는 자신이 한 수술이 올가미가 되어 모든 것을 잃은 전직 의사였던 변호사를 내세워 의료 사고 속 진실을 캐내고자 한다. 

제가 알아서 돌아갈게요
반면 오수재는 이미 TK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스타변호사이다. 말이 최태국(허준호 분)이 대표이지, TK로펌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오수재의 손을 통해 승소한다. 하지만 그녀가 고졸이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 그런 가운데 그녀가 몰아부쳤던 피의자가 자살을 하고, 그걸 방조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인다. 

오수재는 스스로 서중대 리갈 클리닉장을 자원한다. '읍참마속', 서중대 리갈 클리닉장을 통해 실추된 자신의 이미지를 다시 재고하고 TK로펌에 돌아가 그녀가 원하던 대표 자리와 700억이 걸린 한수 바이오 매각 총괄을 완수하겠노라고 장담한다. 

'독한 년, 재수없는 년, 싸가지 없는 년,'이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끄덕없는 오수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집안의 가장과도 같은 존재다.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입지전적인 인물로 능력있는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는 <닥터 로이어>의 한이한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 사고로 인해 가족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시신을 한이한이 거두었다. 그리고 '고스트 닥터'를 자임하며 그 자신의 능력으로 '흉부외과 과장'의 고지를 거머쥐려 했다. 

 

 
또 이경영? 
한이한과 오수재, 두 사람은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의 능력만으로 한 계단씩 올라와 정상의 자리에 서려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수술실의 괴물같은 한이한의 실력도, TK로펌의 대표 변호사 자리를 넘보는 오수재의 능력도 그들을 '수단'으로만 쓰려는 법, 의학계 카르텔 앞에서는 역부족이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에서 악의 축 조태섭이던 이경영은 드라마가 끝나기가 무섭게 후속작 <왜 오수재인가>에 한수 그룹 회장으로 등장한다. 그와 TK로펌의 최태국, 대선후보 이인수는 고향 선후배 사이로 만난 정,재계 카르텔을 형성한다. 그런데 이경영의 '열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시간대 방영하는 <닥터 로이어>에서는 한이한의 모든 것을 빼앗은 과거 반석재단의 병원장이자, 현재 복지부 장관 내정자이다. 

흔히 회자되는 말로, '또경영'이라는 말처럼 전작, 동시간대 방영작에서 이경영은 활보한다. 그런데 드라마는 '이경영'이 익히 분해오던 그 캐릭터로 '악'의 세력이 다 설명된다. 반석 재단 이사장의 딸과 결혼 후 흉부외과 과장 자리를 거쳐 오늘의 반석 재단을 만든 사람, 하지만 위기의 재단 상황에서 의문의 인물에게 이미 한이한이 수술했던 금이영 동생의 심장을 불법적으로 제공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왕국 반석재단을 지킨다. 또한 그 사실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수술에 참여했던 한이한의 모든 것을 빼앗는다. <왜 오수재인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경영이 분한 한수그룹의 한수 바이오를 매각하여 정치자금으로 쓸 거라는 '비밀'은 오수재에게 '뇌관'으로 작용한다. 그녀가 거머쥔 한수그룹의 비자금 문서가, 곧 더는 그녀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레드 카드'가 된 것이다. 

입지전적인 인물, 한이한과 오수재, 그들은 스스로 능력자이지만, 그들이 잡은 줄은 썩은 줄이다. 그 줄을 잡고 오르려다 나뒹군 두 사람, 그래서 한이한은 변호사가 되었고, 오수재는 로스쿨 리갈클리닉 장이 되었다. 여전히 그들은 '먼치킨' 캐릭터이지만, 오수재 말대로 그들은 '바닥'에서부터 다시 자신의 힘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그들이 올라가야 할 곳이 어딜까? 한이한은 왜 자신을 '배신'한 이들을 '변호'하려는 것일까? 오수재의 뜻대로 다시 TK로펌의 대표 변호사가 되는 것일까? 

한이한의 모든 것을 빼앗가 간 수술, 그 수술은 이미 이식된 심장을 꺼내 다른 이에게 이식하는 부당하고 불법적인 것이었지만 그것을 한이한은 증명할 길이 없었다. 이제 그는 '메스' 대신 법정에 서서, 자신이 다하지 못한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운다. 그런 그의 맞은 편에는 동생을 잃고 의료 사고를 일으키고도 말 한 마디로 빠져나가는 이들을 '징죄'하려는 검사 금옥영이 있다. 마치 외나무 다리 위에서 만난 '원수'가 된 두 사람, 이들 두 사람이 서로 맞은 편에 서서 도달하는 '법정의 진실'은 고스트 닥터로 살아온 한이한의 '참회' 과정이 되기도 할 것이다. 

오수재의 '참회'는 사랑으로? 국선 변호인 시절 오수재가 믿어주었던 소년은 자라 이제 로스쿨 학생이 되었고, 능력있지만 '심장'을 잃은 오수재에게 자꾸 당신을 믿는다며 그녀의 '양심'을 찌른다. 성범죄의 피의자에게 '자신을 변호사로 쓰지 않았'기에 이길 수 없다고 냉소하던 그녀는 이제 같은 상황에서 피해자 학생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편에 선다. 자신의 능력만을 믿던 그녀에게 그녀를 둘러싼 상황이 다른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나만 잘 나가'하던 이들, '나만 잘 되면 돼'하던 이들의 '능력자 버전 개과천선'을 다룰 드라마, 경쟁작을 넘어 두 드라마의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22. 6. 9. 16:29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엇일까? 바로 철로 만든 길,  '철도'를 놓은 것이다. '근대' 문물의 빼어난 상징 철도, 하지만 그 '근대'의 길을 통해 '제국주의'는 달렸다. 조선을 관통한 철도는 '만철'(만주 철도)로 뻗어나가 대륙을 향한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을 실어날랐다. 

지난 5월 11부터 방영한 <5원소, 문명의 기원> 5부작은 물, 불, 흙, 철, 나무 다섯가지 물질을 통해 인류 문명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동양과 서양, 오늘날과 과거를 종횡무진하며 물질사적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구성한다. 그 중 4부는 '철'의 역사이다. 다큐는 정의한다. 인류는 여전히 '철기시대'라고. 

 

 

정복과 투쟁의 도구, 철 
서기 43년 로마는 영국을 점령했다. 그로부터 350년간 영국을 점령하고 정복해 나갔던 로마, 하지만 로마의 정복에도 끝은 있었다. 우리가 미술 시간에 만난 그 '아그리파 장군'은 지금으로 부터 2000년 전 스코틀랜드 하드리아누스 빙벽 앞에서 멈춰서고 만다. 20세기의 발굴단은 당시의 인치투털 요새 구덩이에서 수레와 함께 약 100만 개의 철못을 발굴했다. 무거워서 차마 가지고 후퇴할 수 없었던, 하지만 적에게 '철'을 넘길 수 없었던 로마군은 '철'을 숨겼다. 

벨기에 브뤼셀에 아토미움은 철의 분자구조를 1650억배로 확대시킨 건축물이다. 인류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철의 분자구조를 알았다. 하지만 전세계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매우 민주적인 금속 '철광석'을 인류는 그냥 두지 않았다. 가장 강인한 금속, 인류의 역사를 철을 활용하기 위한 실험와 도전의 역사였다. 또한 철을 차지하기 위해, 철을 가지고 싸웠던 역사이기도 했다. 

철을 향한 그 비밀의 문은 우주에서 비처럼 내렸다. 대기권을 뚫고 철, 니켈의 합금 '운철'이 쏟아져 내렸다. 지구 상의 철이 '산소'로 인해 산화된 철광석의 존재로 '제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과 달리, 대기권을 뚫고 '환원' 과정을 거친 운철은 '철기 시대' 이전 양질의 철을 얻는 유일한 통로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철은 투탕카멘의 단검처럼 '신성한 존재'의 것이 되었다. 

기원전 12,3세기 터키 아나톨리아 지역의 히타이트 인들은  철을 두드려 '강철'을 만들 줄 알게되었다. 철기를 녹일 줄 알게 된 인류는 무엇을 했을까? 이것으로 바퀴살을 만들고 전차를 만들었고, 이집트 정복에 나섰다. 이 강력한 '철'에 근거해 탄생한 국가는 무려 500년 동안 전쟁과 무역을 통해 그 영향력을 뻗쳐 나갔다. 

 

 

하지만 '철'은 단점이 있었다. 바로 '산화', 부식되고 녹이 스는 것이다. 그 '단점'을 해결한 건 인도 문명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중국의 제철 기술을 전수받은 인도였다. 철을 흙으로 만든 도가니에 녹여 두드려 만드는 당시로서는 정교한 작업을 통해 '우츠 강철'이 만들어 졌고, 인도 최대의 수출품이 되어 7세기의 인도양을 지배했다. 우리가 아는 신밧드의 모험은 그 교역이 만들어 낸 문화적 상상력이다. 

수출된 인도의 강철은 무엇이 되었을까? 시리아로 넘어간 우츠 강철은 아름다운 물결 무늬를 띤 다마스커스 검이 되었다. 내려쳤을 때도 깨지지 않고 공중에 흩날리는 새의 깃털을 잘라낼 수 있는 예리한 검은 1187년 십자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탈환한 무슬림의 전승 무기가 되었다. 

철의 역사는 이처럼 전쟁의 역사이다. 더 강력한 철을 만들기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중국에서는 단단한 무쇠인 생철과 쉽게 구부려지는 연철을 합친 앞선 기술의 칼을 만들어냈다. 일본은 볏짚을 철 속에 섞어 접고 때리는 방식으로 이른바 '일본도'의 경지를 이루어 냈다. 이런 칼은 어떨까? 대만의 전통 칼 제작에서는  무연고 시신의 뼈를 칼을 만드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인간의 뼈에 있는 '인' 성분이 철의 강도는 높인다는 중국 전통의 제작 방식을 따른 것이다. 이런 갖가지 전통적 제작 방식은 모두 화학도, 현미경도 없던 시절 더 강한, 더 유연한 철을 만들기 위한 인류의 노력, 그 결과물들이다. 

발견과 개척의 선봉, 철 
기원전 3000년 경 터키에서 시작된 제철 기술은 세계로 세계로 퍼져 나갔다. 중세의 갑옷과 전투씬은 철이 바꿔놓은 풍경이었다. 철은 무기만 되었을까? 오늘과 내일, 그리고 하루와 또 다른 하루 사이 '불가지'의 세계 속에서 인류는 24시간의 경계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알려줄 도구가 필요했다. 또한 17세기 바다로 향한 선원들은 나침반 만으로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보다 정밀한 '도구'가 필요했다. 

1714년 영국 의회는 상금 2만 파운드를 내걸고 정확한 경도 측정 도구를 공모했다. 뉴턴조차 '시계를 이용한 경도 측정은 불가능하다'라고 장담하던 시대,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목수이자 시계공이었던 존 해리슨이 철제 스프링을 철판에 감은 시계를 들고 나타났다. 그의 시계, 그 철판에 감은 그 철제 스프링이 없었다면 근대의 발견은 존재할 수 없었다. 

 

 

또한 산업 혁명의 견인차가 된 철로 만든 보일러는 어떤가? 철로 만들어진 선로를 달리는 증기 기관차는? '석탄'을 이용해 열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꾼 1차 산업 혁명의 '견인차'는 '철'이었다. 마차가 다니던 길에 철로를 깔 수 없었다면 증기기관은 '혁신'이 될 수 없었다. 

인류의 발전은 '철'로 만든 세계에서 이루어졌다. 철은 문명의 도구였고, 다른 이름으로 '전쟁의 도구'였다. ebs 다큐 프라임 <5원소, 문명의 기원>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조명하여, 그 성격을 규명한다. 특히, 4부 철은 인류 발전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전세계 그 어느 곳에나 존재했던 철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에 이용되었다. 철로 인해 세계는 연결되고 문명은 뻗어나갔다. 안타깝게도 그 확장과 발전의 결과물은 평화롭지도 호혜적이지도 않았다.  '철'의 문명 위에 서있는 오늘, 과연 이제 인류는 어디를 향해서 나갈 것인가. 


by meditator 2022. 6. 7. 19:32

지난 5월 8일부터 5부작으로 방영된 <뜻밖의 여정>은 2022년 아카데미상 시상자로 미국을 방문하게 된 윤여정 배우의 '여정'을 담은 나영석 피디의 예능이다. '미국 구경'인가 싶었는데 뜻밖의 여정에 당도하게 된다. 바로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는 시간'이다. 

 

 

여우조연상은 어떻게 왔는가 
2021년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때 그녀의 수상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역시 윤여정이다, 고진감래다, 혹은 참 운이 좋았다? <뜻밖의 여정>을 보면 윤여정 배우에게 <미나리>라는 영화가 온 것이 그저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윤여정에게 <미나리> 대본을 가져다 준 이는 '이인아씨'이다. 그녀는 20년 전 산드라 오가 유명세를 얻기 전 윤여정과 산드라 오가 동반 출연하는 작품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진행되던 작품은 '무산'되었고 당시 윤여정 배우를 만나러 한국에 와있던 인아씨는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되었다.

배우 자신도 작품이 엎어져 황망했을텐데, 외려 윤여정 배우는 낙담한 인아 씨에게 밥을 사주며 독려했다고 한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인아씨는 '윤여정이란 배우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지만, 그런 배우의 넉넉하고 너그러운 모습이 더해져 시간이 흘러 <미나리>의 대본을 여정 배우에게 가져다주도록 했다. 

<미나리>를 번역한 홍장여울은 어떤가. 5회차 <뜻밖의 여정> 내내 홍장여울은 윤여정 배우가 머무는 집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번역가라는데, 그런데 알고보니 두 사람의 인연 역시 길다. 10여 년전 홍상수 감독 영화에 출연했던 윤여정은 연출부 막내로 동분서주하던 홍장여울을 눈여겨 보고 불러 밥을 사주었단다. 이런 식이다. 윤여정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으로 만든 인연은 이렇게 오랫동안 배우가 아낌없이 베푼 밥값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뜻밖의 여정>이 아니더라도 윤여정 배우의 넉넉한 인심은 오래전부터 회자됐었다. 젊은 감독들에게 아낌없이 밥을 사주고 술을 사주던 윤배우, 그 중 한 사람이던 이재용 감독과 함께 찍은 <죽여주는 여자>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판타지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그녀에게 선사했다. 

나영석 피디는 말한다. '말 그대로 뜻밖의 여정'이라고. 윤여정 배우와 함께 한 아카데미 시상식 구경인 줄 알았던 프로그램이 오랜 지기 꽃분홍 여사에서 부터 동생 친구 정자씨, 밥 사주던 인아씨, 홍장여울 등 여정 쌤의 스태프, 그리고 아들 친구 에락남에 이르기까지 '사람'들로 북적북적이는 프로그램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밥은 잘 사잖아', <미나리>라는 영화를 함께 한 이들, 그리고 미국까지 와서 의상을 조율해주는 의상 담당가 등 모두가 그녀의 밥 친구들이었다. 나이가 들면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우리 사회에서 '밥을 잘 산다'는 윤여정 배우의 자화자찬이 새롭다. 내 주변에는 '또라이'밖에 없다는 윤여정 배우의 친지론, 그런데 그런 배우의 말을 홍장여울은 '또라이를 수집'하시는 거 같다고 번역한다. 나를 봐주는 사람이 없다고,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는 대신, 기꺼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인맥'과 '의리'에 공들여 온 여정의 결과물이 '아카데미'인 것이다. 

마흔의 피디가 전하는 나이듦의 고민에 '내가 나이들어 봐서 아는데'라는 '라떼는 말이야' 대신, '나 역시도 나이듦은 처음이라'며 '정답은 없다'라는 낯선 삶의 행로, 그 동반자로서의 여정 배우의 진솔한, 그리고 겸허한 토로가 외려 나이를 막론하고 윤여정 배우와의 '교류'의 벽을 허문다. 그녀가 왔다는 이유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LA의 윤'스 스테이, 어떻게 나이들어 가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이 보여진다. 

 

 

74세의 현역, 윤여정 
폐지 수집 생계 노동을 하는 노인들의 다큐를 보다 놀란 장면이 있다. 작년, 재작년 교통사고를 당했다던 80세의 할머니가 폐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막 뛰셨다. 폐지를 줍는 사회적 존재를 차치하고, 그 순간 그 분은 나이가 무색하게 '현역'이셨다. 외람되지만 <뜻밖의 여정> 5부작을 보며 그 80노인의 생생한 삶의 열정을 윤여정 배우를 통해 새삼 확인하였다. 

물론 윤여정 배우를 아끼는 한참 후배 홍장여울은 이제 그만 너무 애쓰지 마시고 건강을 챙기시라는 말끝을 눈물 때문에 마치지 못한다. 하지만 젊은 후배의 우려가 무색하게 윤여정 배우는 10시간에 가까운 아카데미 시상 여정의 강행군을 무리없이 소화한다. 그녀의 나이 74세이다. 우리 사회 74세의 노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라고 생각해 보면 그녀의 '현재'는 경이롭다. 

하지만 그 '경이'는 그저 오는 것이 아니다. 하루의 시작을 여는 건 LA까지 챙겨온 '아령' 등으로 시작하는 운동이다. '근육'은 나이가 없다더니 거의 뼈밖에 없는 듯한 체격임에도 카메라 셔터 앞에서 꼿꼿하게 당당한 에티듀드를 보여주는 그 '저력'의 시작이다. 

어디 체력만인가.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우리 민족의 서사를 다룬 <파친코>와 관련된 인터뷰를 위해 이면지 몇 장에 빼곡하게 영어 인터뷰를 준비했다. 나이들어 힘들다고 말하는 대신, 캐서린 햅번의 자서전을 인용하여 배우라는 직업의 고달픔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일찌기 '꽃보다 누나'부터 간간히 엿보이던 '성실한 독서가' 배우의 면모가 드러났다. 웃자고 시작했으나 그 어느 때보다 열기가 치열했던 인물 상식 퀴즈에서 그 누구보다 눈을 반짝이며 우수한 상식을 자랑하던 그 '내공'은 윤여정이란 배우의 현재가 그저 만들어 지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Too Often, as we get older, we stop having goals in our life. And Yuh-jung unnie shows us that we are never too old to accomplish big things
여정 언니가 보여줬죠. 무언가를 이루기에 우리가 결코 늙지 않았다는 걸요. 


<뜻밖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건 74세의 노인이 아니라, 여전히 앞날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현역 배우 윤여정이다. '모범생'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한 말처럼 윤여정 배우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부터 화보 촬영에 이르기 까지 그 모든 과정에서 '나이든 노인' 대신, 여전히 74세의 현역으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상 하나도 그저 트로피를 전해주는 게 아니라, 수화까지 준비해간 '계획성'은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그녀의 소회에도 불구하고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한다.

그렇게 여전히 '현역' 배우이기에 아칸소 구석에서 집단 합숙을 하다시피 한 <미나리>의 여정이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사회 처음으로 용감하게 '박카스 아줌마'의 서사를 그린 <죽여주는 여자>의 시도는 또 어떤가. 그런 그녀를 에미상을 탄 에니메이션 디렉터 70세의 또 다른 현역 김정자 씨는 '노년'의 길잡이가 되어 준 선배로 존경을 표한다.

7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았다는 윤여정 배우, <뜻밖의 여정>은 나이든 배우의 후일담이 아니라, 여전히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아가는 현재진행형의 한 사람을 만난다. 나이듦은 숫자가 아니라, 더는 노력하지 않을 때 오는 것이라는 걸 여정의 여정은 말한다. 

by meditator 2022. 6. 6. 16:53

이전 살던 동네는 빌라촌이라 '분리수거'가 그리 잘 되지 않았다. '쓰레기 배출 봉투' 외에도 박스며, 병 등이 즐비했다. 그걸 노인분들이 줏어갔다. 배낭에, 그게 아니면 리어카에. 그저 한 두 분인가 싶었는데 날이 갈수록 동네를 돌며 쓰레기를 줍는 분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기력이 없어 늦게 돌아다니시는 분은 허탕치기가 십상이었다. 21세기의 대한민국, 폐지를 두고 경쟁하는 도시의 노인들이라니.  5월 31일 방영된  kbs1의 <시사 기획 창>은 처음으로 노인들의 '폐지 노동'을 주목한다. 

 

 

돈이 되는 건 다 줍지 
지난 1월 대구 서문 시장 새벽 5시, 77세의 김은숙 노인이 인적없는 시장을 돈다. '생활비 주는 사람이 없잖아,' 2017년부터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는 노인은 이 일로 에미, 에비없는 손자를 키웠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보고 씩씩하다고 하지만, 혼자서는 많이 울지, 왜 우냐고, 생활 자체가 슬프잖아. 일은 황소같이 해도 먹을 걸 배불리 먹어봤나, 내 속은 다 썪는거지. 화장실이 유일한 쉼터야.' 새벽에 나온 노인은 시장이 끝난 시간에도 여전히 시장 골목을 서성인다. '힘들지, 나오기 싫지. 먹고 살아야 하잖아,' 그러면서 노인은 버린 담요를 챙긴다. '이게 다 돈인데,'

우리나라에서 생계형으로 폐지를 줍는 노인은 얼마나 될까? 정치 일선에 나섰던 김종인 대표는 OECD 노인빈곤율 1위, 노인 자살율 1위의 국가, 우리나라에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200만은 될거라고 했다. 반면, 2019년 한 지자체의 조사에 다르면 6만6천 명이라고도 한다. 200만과 6만의 현격한 격차, 그 간극을 설명할 수 있는 이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단 한번도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조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덧 거리의 한 풍경이 된 듯한 폐지줍는 노인들, 하지만 '국가'는 한번도 그들을 주목한 적이 없다. 

<시사 기획 창>은 한 달동안 폐지줍는 노인들께 GPS를 부착하여 그 분들의 이동경로와 노동시간을 확인, 생계형 폐지 노동의 실태와 환경을 조사했다. 한 달 간의 조사를 통해 생계형 폐지노동의 몇 가지 특성이 드러났다. 

 

 

우선 노인들은 폐지를 줍기 위해 평균 13km, 때로는 26km의 장거리를 이동한다. 축구장 45바퀴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또한 주말도 없이 하루 평균 10시간 넘게 일한다. 평균 노동 시간이나, 평균 노임이 무색한 노년의 강고한 노동, 그건 돈때문이다. 

80세의 박복자 할머니는 가까운 고물상을 놔두고 빙 돌아 먼 곳의 고물상을 찾는다. 먼 곳이 50원씩 더 쳐주기 때문이다. 그 50원 더 주는 고물상에서 할머니가 받은 돈은 8000원 남짓이다. 쉬지않고 하루 종일 일한 값이다. 70살의 조규석 씨 역시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폐지를 줍는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생계 유지도 힘들어.'

그래서 폐지줍는 노인들에게 '진통제'는 일상이다. '아플 때 제일 힘든건 폐지를 줍지 못하니 돈을 벌어서'라는 노인들은 진통제를 매일 한 알씩 먹으며 일을 한다. 2020년부터 폐지를 줍기 시작햇다는 74세의 김윤식 노인은 그래서 불과 2년 만에 55kg이던 몸무게가 44kg이 됐다. 

진통제로 버는 하루 9000원
일인당 평균 13kg의 폐지를 나르며 하루 평균 11시간 30분을 일해서 노인들이 한 달 동안 버는 돈은 평균 64만 2000원이다. 하루로 치면 9480원, 2022년 최저시급이 9160원이다. 

최저시급에 해당하는 돈을 하루 온종일 일해서 버는 노인들은 당연히 먹고 살기가 쉽지 않다. 4시간째 쉬지 않고 일을 하던 75세의 문창기 노인은 오후 2시 넘어서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돼지 족발이 먹고싶다는 노인, 하지만 힘들게 번 돈, 막상 쓰려니 아깝다고 한다. 그나마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란다. 적게 주으면 끼니를 거르기 십상이다. 그래도 버텨주면 다행이다. 82세의 정시화 노인은 대장암 수술을 해서 받은 음식들이 그림의 떡이다. 겨우 물말이 밥알을 삼키는 노인은 돼지뼈라도 고아서 먹었으면 하고 입맛을 다신다. 그래도 가만 누워있으면 '이래 뭐하러 사나'하는 마음이 자꾸 드니 문 밖을 나선다고 한다. 

 

 

대부분 노인들은 대로 이면의 작은 골목들을 돌며 폐지를 줍는다. 길은 좁고, 사람과 차량이 뒤섞여 다니는 곳이다. 이 골목을 폐지를 찾으러 수십번을 반복하여 오간다. 박복자 할머니는 작년, 재작년 연이어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를 피해 도로를 건너다 넘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병원은 언감생심, 며칠을 집에서 누워있던 할머니는 결국 며칠 만에 다시 길로 나섰다. 차량으로 등록된 리어카, 차량들 사이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한 달여의 촬영기간, 결국 한 노인은 차를 피하다 골반이 으스러졌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 그분들의 노동은 그저 당신들의 생계일 뿐일까? 아파트촌이 아닌 곳은 대부분 '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리에 나뒹구는 박스들, 공공의 수거가 지나간 자리, 그 부족한 부분을 노인들이 채운다. '모으면 자원, 버리면  쓰레기', 김은숙 노인은 누가 뭐래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다. 하지만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빈곤의 막다른 골목에서 내몰린 노동에서 대부분의 노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수 없어 하는 힘든 일일 뿐이다.

분리수거의 사각지대를 담당하는 것만이 아니다. 전국에서 한 해 86만 7천 톤의 폐지들이 수거된다. 그 중 40만 8천톤이 재활용용으로 수거되는 것이다. 그 나머지, 전체 폐지의 60% 이상을 노인들이 수거한다. 폐지 노동은 엄연히 우리 사회에서 '공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공적인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적 보상이 이루어지면 더 많은 노인들이 거리로 나와 폐지를 줍게 되지 않을까라는 일각의 우려, 하지만 노인들은 말한다.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진통제 투혼으로 이어지는 나날, 대부분의 노인들이 얼마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길에 나선다. 전문연구 기관과 머신 러닝을 이용해 도출한 폐지 노동 노인 인구는 만 오천 명이었다. 과연, 겨우 만 오천 명뿐일까? 존재하지만 존중되지 않는 노인들의 생계형 노동, 그런 사회적 노동에 대한 사회의 외면이 우리 사회 노인들의 빈곤을 더욱 깊게 만든다. 





by meditator 2022. 6. 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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