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살던 동네는 빌라촌이라 '분리수거'가 그리 잘 되지 않았다. '쓰레기 배출 봉투' 외에도 박스며, 병 등이 즐비했다. 그걸 노인분들이 줏어갔다. 배낭에, 그게 아니면 리어카에. 그저 한 두 분인가 싶었는데 날이 갈수록 동네를 돌며 쓰레기를 줍는 분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기력이 없어 늦게 돌아다니시는 분은 허탕치기가 십상이었다. 21세기의 대한민국, 폐지를 두고 경쟁하는 도시의 노인들이라니.  5월 31일 방영된  kbs1의 <시사 기획 창>은 처음으로 노인들의 '폐지 노동'을 주목한다. 

 

 

돈이 되는 건 다 줍지 
지난 1월 대구 서문 시장 새벽 5시, 77세의 김은숙 노인이 인적없는 시장을 돈다. '생활비 주는 사람이 없잖아,' 2017년부터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는 노인은 이 일로 에미, 에비없는 손자를 키웠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보고 씩씩하다고 하지만, 혼자서는 많이 울지, 왜 우냐고, 생활 자체가 슬프잖아. 일은 황소같이 해도 먹을 걸 배불리 먹어봤나, 내 속은 다 썪는거지. 화장실이 유일한 쉼터야.' 새벽에 나온 노인은 시장이 끝난 시간에도 여전히 시장 골목을 서성인다. '힘들지, 나오기 싫지. 먹고 살아야 하잖아,' 그러면서 노인은 버린 담요를 챙긴다. '이게 다 돈인데,'

우리나라에서 생계형으로 폐지를 줍는 노인은 얼마나 될까? 정치 일선에 나섰던 김종인 대표는 OECD 노인빈곤율 1위, 노인 자살율 1위의 국가, 우리나라에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200만은 될거라고 했다. 반면, 2019년 한 지자체의 조사에 다르면 6만6천 명이라고도 한다. 200만과 6만의 현격한 격차, 그 간극을 설명할 수 있는 이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단 한번도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조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덧 거리의 한 풍경이 된 듯한 폐지줍는 노인들, 하지만 '국가'는 한번도 그들을 주목한 적이 없다. 

<시사 기획 창>은 한 달동안 폐지줍는 노인들께 GPS를 부착하여 그 분들의 이동경로와 노동시간을 확인, 생계형 폐지 노동의 실태와 환경을 조사했다. 한 달 간의 조사를 통해 생계형 폐지노동의 몇 가지 특성이 드러났다. 

 

 

우선 노인들은 폐지를 줍기 위해 평균 13km, 때로는 26km의 장거리를 이동한다. 축구장 45바퀴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또한 주말도 없이 하루 평균 10시간 넘게 일한다. 평균 노동 시간이나, 평균 노임이 무색한 노년의 강고한 노동, 그건 돈때문이다. 

80세의 박복자 할머니는 가까운 고물상을 놔두고 빙 돌아 먼 곳의 고물상을 찾는다. 먼 곳이 50원씩 더 쳐주기 때문이다. 그 50원 더 주는 고물상에서 할머니가 받은 돈은 8000원 남짓이다. 쉬지않고 하루 종일 일한 값이다. 70살의 조규석 씨 역시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폐지를 줍는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생계 유지도 힘들어.'

그래서 폐지줍는 노인들에게 '진통제'는 일상이다. '아플 때 제일 힘든건 폐지를 줍지 못하니 돈을 벌어서'라는 노인들은 진통제를 매일 한 알씩 먹으며 일을 한다. 2020년부터 폐지를 줍기 시작햇다는 74세의 김윤식 노인은 그래서 불과 2년 만에 55kg이던 몸무게가 44kg이 됐다. 

진통제로 버는 하루 9000원
일인당 평균 13kg의 폐지를 나르며 하루 평균 11시간 30분을 일해서 노인들이 한 달 동안 버는 돈은 평균 64만 2000원이다. 하루로 치면 9480원, 2022년 최저시급이 9160원이다. 

최저시급에 해당하는 돈을 하루 온종일 일해서 버는 노인들은 당연히 먹고 살기가 쉽지 않다. 4시간째 쉬지 않고 일을 하던 75세의 문창기 노인은 오후 2시 넘어서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돼지 족발이 먹고싶다는 노인, 하지만 힘들게 번 돈, 막상 쓰려니 아깝다고 한다. 그나마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란다. 적게 주으면 끼니를 거르기 십상이다. 그래도 버텨주면 다행이다. 82세의 정시화 노인은 대장암 수술을 해서 받은 음식들이 그림의 떡이다. 겨우 물말이 밥알을 삼키는 노인은 돼지뼈라도 고아서 먹었으면 하고 입맛을 다신다. 그래도 가만 누워있으면 '이래 뭐하러 사나'하는 마음이 자꾸 드니 문 밖을 나선다고 한다. 

 

 

대부분 노인들은 대로 이면의 작은 골목들을 돌며 폐지를 줍는다. 길은 좁고, 사람과 차량이 뒤섞여 다니는 곳이다. 이 골목을 폐지를 찾으러 수십번을 반복하여 오간다. 박복자 할머니는 작년, 재작년 연이어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를 피해 도로를 건너다 넘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병원은 언감생심, 며칠을 집에서 누워있던 할머니는 결국 며칠 만에 다시 길로 나섰다. 차량으로 등록된 리어카, 차량들 사이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한 달여의 촬영기간, 결국 한 노인은 차를 피하다 골반이 으스러졌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 그분들의 노동은 그저 당신들의 생계일 뿐일까? 아파트촌이 아닌 곳은 대부분 '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리에 나뒹구는 박스들, 공공의 수거가 지나간 자리, 그 부족한 부분을 노인들이 채운다. '모으면 자원, 버리면  쓰레기', 김은숙 노인은 누가 뭐래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다. 하지만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빈곤의 막다른 골목에서 내몰린 노동에서 대부분의 노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수 없어 하는 힘든 일일 뿐이다.

분리수거의 사각지대를 담당하는 것만이 아니다. 전국에서 한 해 86만 7천 톤의 폐지들이 수거된다. 그 중 40만 8천톤이 재활용용으로 수거되는 것이다. 그 나머지, 전체 폐지의 60% 이상을 노인들이 수거한다. 폐지 노동은 엄연히 우리 사회에서 '공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공적인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적 보상이 이루어지면 더 많은 노인들이 거리로 나와 폐지를 줍게 되지 않을까라는 일각의 우려, 하지만 노인들은 말한다.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진통제 투혼으로 이어지는 나날, 대부분의 노인들이 얼마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길에 나선다. 전문연구 기관과 머신 러닝을 이용해 도출한 폐지 노동 노인 인구는 만 오천 명이었다. 과연, 겨우 만 오천 명뿐일까? 존재하지만 존중되지 않는 노인들의 생계형 노동, 그런 사회적 노동에 대한 사회의 외면이 우리 사회 노인들의 빈곤을 더욱 깊게 만든다. 





by meditator 2022. 6. 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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