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 <sbs스페셜>은 남해 작은 섬 마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무작정 상경, 불과 약관 28살에 '다원 건설'의 사장이 된 청년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고향 마을 사람들은 지금까지 마을에서 이렇게 출세한 사람이 없다며 입을 모아 칭찬을 한다.가난한 집안 환경때문에 겨우 공고만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서도 지하 단칸 방에 살던 청년, 회사에 들어가서도 하루에 세 시간을 잘까말까 성실하게 업무에 임해 사장의 눈에 들었던 청년, 28살에 사장이 되어, 불과 15년만에 건설 재벌이 된 그야말로 현대판 '개천에서 용된'케이스였다. 

하지만, 그의 성공 스토리에는 숨겨진 이면이 있다. 그가 헌신적으로 했던 일이 무었이었나? 사람들은 그를 '철거왕'이라고 부른단다. 
일찌기 1970년대 '광주 대단지' 사건을 시작으로, '아파트 숲이 드리우고, 고층 빌딩이 즐비한 아름다운 서울'이 되기까지, 숱한 서울의 달동네들은 가차없는 철거에 스러져 갔다. 특히 중동 건설붐이 막을 내리고 건설사들의 밥줄을 대기 위해 치뤄진 1980년대의 무차별 개발은, 공권력이 뒤로 물러나고 조합이 주체가 된 사적 영역이 되면서, '적준'등의 기업이 철거 현장에서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 경찰이 멀뚱히 지켜보는 가운데, '용역'이란 이름을 내걸고 '철거 깡패'들이 거주민들을 폭력적으로 내쫓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돋보인 활약을 보인 사람이 바로 <sbs스페셜>의 철거왕이요, 그는 그 가차없는 폭력적 철거에 앞장서는 걸 발판으로 '적준'에 이어 철거의 대명사가 된 '다원 건설'의 사장이 되었다. 

(사진; 스포츠 월드)

1998년 천주교 인권 위원회는 그가, 그가 만든 기업이 서울 곳곳에서 폭력적 철거를 일삼았던 내용을 담아 <다원 건설 철거 범죄 보고서>를 펴냈다. <sbs다큐 스페셜>은 그에 기반해, 당시의 상황을 재연한다. 부모들이 철거를 맊기 위해 밖에 나가 있는 동안 홀로 남은 아이들이 있는 집에 거침없이 불은 놓는가 하면, 그 아이를 구하러 부모가 갈 수조차 없게 만든다. 부모는 철거 깡패들이 막아선 바리케이트 밖에서 그저 울부짖기만 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망루에 올라 농성하는 사람들에게 불을 놓는다. 불이 붙어 떨어진 사람에게 돌아온 건,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철거 깡패의 집단 폭력이요, 차가운 감방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막으려 했지만, 성폭력도,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의 폭거에 집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갈 곳을 잃었다. 

임대 아파트라도 얻었지 않느냐고? 철거는 그저 집이 사라진 게 아니다. 그 동네에 깃들여 살던 그의 삶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동네 목공소며 그저 부족한 거 없이 살던남자는 날짜를 딱히 꼽을 수 없는 일용직 노동자가 되었다. 집단 린치를 당했던 노인은 폐지를 줍는 이상의 일을 할 수가 없다. 감옥에 간 아버지를 두었던 아이는 자랐어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잇지 못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를 쇠파이프로 마구 때린다고 울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적준'의 직원으로 시작하여, '다원 건설'을 이루어 가는 한 청년의 입지전적 성공 스토리는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황금의 제국'스토리이다. 우리가 안스러워 했던 장태주요, 아직도 세상에 자신을 이길 게 없다고 큰 소리를 치는 <스캔들>의 장태하다. 
<sbs스페셜>은 드라마를 통해 불굴의 기업인으로 그려지던 그들의 성공 스토리의 이면을 상세히 다룬다. 그들의 철거로 인해 집을 빼앗긴 사람들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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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황금의 제국>의 마지막 회 장태주는 스스로 바다를 향해 걸어들어갔지만, <철거왕>의 입지전적 인물을 결국 도망다니다 경찰의 손에 잡힌다. 이게 끝일까? 그가 법의 심판을 받으면 되는 걸까?  <sbs스페셜>은 그게 다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성공을 하고 싶어 물불을 안가리던 청년을 '철거 깡패'를 만들고 '철거왕'이 되게 만든, 이 사회의 성장 욕망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는 슬쩍 뒤로 물러 선채, '철거'를 사적 영역으로 던져버린, 철거 깡패를 불러올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공권력이 실제 주범이요, 깡그리 낡은 집들을 밀어 버리고 그럴 듯한 아파트 숲을 만든 건설 시책이 공범이라는 것이다. 아파트를 사서 집값을 뻥튀기 해보겠다는 욕망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 역시 그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다큐는 밝힌다. 


by meditator 2013. 10. 21. 10:01

1998년 제주 삼다수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왜 물을 돈 주고 사 먹어? 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불과 몇 십 년이 흐르지 않아, 이제 제주도 물, 암반수도 부족해, 백두산 물에, 외국 유명 생수를 돈 10만 원을 주고 사 먹는 시절이 되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 희대의 사기꾼이 되던 것이 옛 이야기가 되버려, 이젠 물은 당연히 돈 주고 사 먹는 것이, 그것도 돈에 따라 급이 달라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물세를 내고, 생수를 사 먹으면서도, 수도만 틀면 콸콸콸 쏫아지는 물에 우리가 '물부족 국가'의 국민이라는 것도 실감하기 힘들고, 그저 물은 당연히 주어지는 지구의 자원 이상의 인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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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0월 6일 방영된 <sbs스페셜-물은 누구의 것인가?>는 그 당연하게 여겨지는 물의 사정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sbs는 un이 정한 '물의 해'을 맞이하여 2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지난 주 방영된 첫 편은 <4대강의 반격>, 4대강을 살리겠다는 명목하에 22조 2천억이 들어간, 전광석화와 같은 기간에 이루어진 대형 국책 사업인 4대강 사업. 그 결과를 들여다 본다.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듯이, 홍수를 대비한다는 명목 하에, 수자원을 이용하겠다는 의도는 사라지고, 암묵적으로 운하를 준비했던 4대강의 현실은, 곳곳에서 흐르는 강의 신음 소리 뿐이다. 
하지만, sbs스페셜은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는 역사를 남기기 위해 그 사업 추진 과정이 과연 적법했는가, 결국은 4대강 역시 서울의 청계천처럼, 맑은 물이 흐르던 강을 고인 물의 호수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 라는 검증에 들어간다. 

이어서 10월 7일에 방영된 2부 슬픈 장미는 그 시선을 전 세계로 옮겨 간다. 유럽의 거리 화사하게 만발한 장미, 하지만 사람들이 그 곁에서 장미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 이유는, 케냐 산인 이 장미가 아르다운 장미로 피어나기 위해, 그 주변 케냐인 들의 생명의 젖줄인 물을 강탈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140L의 물이 필요한 장미 농장에는 하루 종일 스프링 쿨러에서 물이 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 장미 농장이 호수에 펌프를 대고 물을 뽑아 가는 통에, 정작 그곳의 주민들은 물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겨우 감시인의 엄한 눈초리를 받으며, 한 통씩 길어갈 뿐이다. 그조차도 여의치 않으면 사야 한다. 겨우 한 통의 물로, 일가족이 먹고, 세탁하고, 씻어야 하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장미 농장에서 마구 버려지는 장미를 키우기 위해 씌여진 각종 화학 제품의 찌꺼기는 고스란히 케냐인들의 생활의 터전인 호수로 흘러들어간다. 물반 고기반이었던 호수는 이제 하루 종일 그물을 던져도 고기 한 마리를 집으로 가져오기 힘들게 되었다. 
이것은 비단 케냐만의 사례가 아니다. 볼리비아의 맥주 공장도, 잔지바르의 호텔들도, 그들의 이익을 위해, 주민들의 물 접근권을 막는다. 정부는 국가의 이익을 내세우며, 자본의 편을 들고, 주민의 호소를 외면하거나, 차일피일 미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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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잘 사는 편에 속하는 국가들은 아직 물이 부족한 상황이 아님에도 영리하게 자국에서 물이 많이 필요한 산업들을 국외로 돌린다. 장미를 키울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청바지를 만들 수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들이 만들어 지는 과정엔 상상 이상의 많은 물이 필요하다. 장미 등 무심코 쓰는 많은 것들의 물 발자국이 향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물부족 국가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들 나라들은, 자국 국민들의 물 부족을 신경쓰지 않는다. 소금기있는 우물물을 소녀들이 긴 거리를 걸어 길어 오는 동안, 참다 못한 주민들이 직접 물 호스를 산에 올라 수원지에 꼽는 동안, 대자본들은 그들 나라 계곡 물에, 지하수의 독점권을 얻어간다. 

총칼을 들이밀은 식민주의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 교묘하게 자본을 내세운 새로운 식민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물 발자국의 지도에서 보여지듯이, 세계는, 2차 대전 이전의 식민지와 식민 국가와 유사한 구도를 여전히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터전을 잡고 사라오던 삶의 기본적 요건 조차 빼앗기고 있다. 물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물을 통해 살아가던 삶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다큐의 마지막, 스스로 물을 얻기 위해 계곡에 호스를 대던 주민들은 경찰의 잔인한 진압에 피를 흘린다. 손주들을 위해서 물러날 수 없다던 이장님도 그 중 하나다. 

2부작 다큐멘터리 <물은 누구의 것인가?>는 우리가 가장 기본적이라고 당연하닥 여기는 그것이 국가 권력의 전횡이나, 외국 자본의 독점으로 인해, 파괴되고, 빼앗기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와 4대강의 이야기를 논하는 것은 어쩌면 '사후 약방문'에 불과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사후 약방문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그전 도로를 반복할 것이라는 점에서, 시의 적절을 따질 계제가 아닐 것이다. 그와 함께, 방영된, <슬픈 장미>는 그 어떤 스릴러 영화보다도 섬뜩하다. 마치 텍사스 소떼처럼 무참하게 지나가버리는 자본의 파고가 두렵다. 


by meditator 2013. 10. 7. 10:14

일반적인 중년 남성들이 텔레비젼을 보는 특징 중 하나는 어떤 프로그램도 집중해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매번 마누라의 리모컨을 강탈하여 모 프로그램을 보는가 싶으면, 어느새 리모컨 사냥에 나선다. 공중파에서 종편을 거쳐, 뉴스전문 채널에서, 여행, 낚시 채널까지를 종횡무진 한 채널에 정착하기 힘들어 한다. 마누라와 아들이 깔깔깔 거리며 보고 있는 프로그램을 지그시 바라보는가 싶으면 어느새 쓴 입맛을 다시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가 십상이다.  우리집만 그런가 싶어서 하소연을 하니, 다른 아줌마들도 공감 백배인 걸 보면 일반적이란 전제를 달아도 그리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런 남편이 드라마를 다 보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고 있는 마누라의 리모컨을 고정시킨다. 조용필이 나온다! 그리고 한 시간여, 추억을 공유한 사람만이 가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sbs스페셜- 대한민국 가수, 조용필>을 지켜본다. 

(사진; sbs)

프로그램 중간에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조용필은 야광봉을 흔들며 그를 '오빠'라 연호하는 팬들에게 엎드려 손을 뻗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터뷰, 조용필은 말한다.
"오빠는, 조용필의 다른 이름과도 같다"고.
그렇다, 그의 노래, <비련>의 첫 마디 가사, '기도하는~'의 다음 가사는 '꺄악!'인 것처럼, 조용필은 '오빠부대'라는 말을 처음 말들어낸 가수이다. 그의 19집 <hello>가 발매되었을 때 수그리고 있던 그의 오빠 부대들은 다시 떨치고 일어나, 조용필의 사진을 들고 앨범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그의 말대로, 한번 오빠는 영원한 오빠인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조용필이라는 것을 프로그램은 여러 가수들과 평론가의 입을 빌려 증언한다. 

63세의 조용필이 무려 19집 <hello>를 들고 나왔을 때, 입 가진 사람들은 저마다, 그의 행보에 대해 한 마디씩을 거들었다. 외국 작곡가의 곡을 받은 '바운스'나 '헬로'를 듣고, 조용필답다라던가, 젊은 세대조차 매료시킨 능력이라던가, 혹은 조용필이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하지만 굳이 '가왕'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떼어놓고 보면, 그리고 나이를 또한 지워버리고 보면, 한 사람의 가수가 기존의 자신의 색깔과는 다른 새로운 앨벌을 들고 나와, 세간의 이슈가 된 것만으로도 어쩌면 일정 정도의 성공을 얻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크레용 팝이라는 여자 아이돌 그룹이 처음에 "빠빠빠'라는 곡을 들고 나왔을 때 그 낮은 지명도로 인해 음악 방송 무대에 조차 서기 힘들다가, 호불호가 갈리든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니 방송 출연의 기회가 보다 많이 주어지는 것처럼. 조용필의 19집 앨범이 조용필다웠던 그렇지 않던 젊은 세대조차 그의 노래에 대해 왈가왈부할 만큼 화제가 되다보니 sbs스페셜>의 주인공이 되지 않는가 말이다.

(사진; tv 리포트)

하지만 <sbs스페셜>은 2013년의 조용필에 대한 논란이 1회성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한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통해 이른바  '뽕짝', 트로트 장르에서 확고한 인기를 얻었던 조용필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전자 드럼을 활용한 '단발머리'라는 곡을 들고 나왔던 것처럼, 이미 그는 국악, 재즈 등 특정 장
르에 자신을 가둬두지 않는 실험을 계속 해왔다는 것을 후배들과 평론가의 입을 빌어 확인해 준다. 

장르만이 아니다. 그 예전에 젊은 사람들이라면,'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하이에나'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화려한 거리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에 공감을 얻고,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에 젊음의 다하지 못한 열정을 담아냈었다. 심지어, 시위를 하다 잡혀간 친구를 생각하며 운동가요가 아닌  '친구여~ 모습은 어디갔나~ 그리운 친구여~'를 부르기도 했었다. 머리가 희끗해진 남편이 계면쩍은 미소를 띠며 <sbs스페셜>을 지켜보는 이유 역시 그의 노래를 즐겨 불렀던 지난 날이 떠올라서 였을 것이다. 
조용필 자신이 불순한 젊은이들이 그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 하여 수사기관에 끌려 갔었다고 증언하듯, 아니 그 증언의 협소한 범위에 머무르지 않고 당시 젊은이들이라면 사상과 노선을 가리지 않고, 조용필의 노래에 심취했었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같이한 노래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만큼.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나아가,  조용필은 세간에 회자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자신의 노래와 함께 호흡해준 사람들의 삶에 천착한 노래를 만들고자 했다는 것도 프로그램은 짚고 넘어간다. 광주 항쟁을 배경으로 한 '생명'이나, 6월 민주 항쟁을 직접적으로 그린 '서울 1987'같은 곡들이 바로 그것이다. 

프로그램은 조용필의 전국 순회 마지막 공연에서 '설렘'을 부르는 조용필의 모습을 노래의 자막과 함께 담는 것으로 끝난다.
'너에게 간다. 설레임 그대로야'라고.
<sbs스페셜>은, '가왕' 조용필의 전설을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보다는, 19집이 생뚱맞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여전한 현재 진행형의 실험맨 조용필의 진가를 보여주는 것, 아직도 노래방에 가서도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자신에게 노래를 시켜주지 않으면 서운해 하는, 노래하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 조용필의 매력을 다시 확인 시킨다. 여전히 '오빠'인 그를 통해, 부인과 사별하고 홀로 외롭게 늙어가는 노인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본질적 의미의 '청춘'을 환기시킨다. 보는 늙수그레한 시청자들조차 지레 눌려버린 나이가 무색해질 만큼.


by meditator 2013. 8. 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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