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라는 매체를 통해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들이 만들어 지고 있다. 트렌드리더에 가까운 예능은 당대를 가장 발 빠르게 선도해 간다. 먹방이 유행이다 싶으면 진이 빠질 때까지 먹방을 울궈먹는가 하면, 먹방이 다해간다 싶으면 발 빠르게 '집방'이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내려 애쓰는 식이다. 그에 반해 드라마는 점점 세대 별 구획이 분명해 져간다. 젊은이들은 아예 공중파에는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지만, 그럴 수록 주말 드라마나 아침, 저녁 시간대 드라마는 중장년 세대를 위한 철저한 '서비스'정신에 투철해진다. 


하지만, tv를 통해 방영되는 프로그램이 이들 예능과 드라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예능이나 드라마 만큼이나, '다큐'도 많이 방영된다. 월요일이면 <다큐 스페셜(mbc)>, 화요일에는 <pd수첩(mbc)>, 수요일엔 < 추적 60분(kbs)>,  목요일 <kbs스페셜(kbs1)> , 토요일 <다큐 공감(kbs1)>, <그것이 알고 싶다> 등 거의 매일 여러가지 성격의 다큐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는가 하면, ebs에서는 <다큐 프라임> 등 거의 매일 한 두 편의 다큐가 편성 방영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지 못하는 '딱딱한' 형식의 다큐는 마치 동네 오래된 빵가게처럼 쉬이 잊혀지곤 한다. 하지만, 묵묵히 고집스런 뚝심으로 자신만의 레시피를 고집하는 쉐프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쉬이 받지 못하는 다큐는, 속물화되고 세상사에 쉬이 타협하는 다른 프로그램과 달리, 우직하게 우리 사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을 쉬지 않는다. 2월 28일 방영된 <sbs스페셜>과 <다큐 3일>도 마찬가지다. 



단원고, 그 멍에가 된 이름을 다시 불러보다. 
2월 28일 방영된 <sbs스페셜>은 '졸업-학교를 떠날 수 없는 아이들'을 방영했다. 졸업 즈음에 해가 바뀌어 졸업생이 된 단원고 박준혁 군의 이야기를 다룬다. 다큐의 시작은 아이들이 없는 단원고 교실에서 시작된다. 없는 아이들의 빈 자리를 채운 부모님, 그리고 아이들의 출석부를 부르기 시작하는 선생님, 불러도 대답없는 아이들 대신 부모님들이 대답한다. 하지만 그 대답의 끝은 흐느낌으로, 통곡으로 마무리되면서, 600일이 지나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가는, 아닌 적극적으로 잊혀져 가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결코 끝날 수 없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sbs스페셜>은 그저 상기 시키는 것만 하지 않는다. 해가 바뀌고, 다시 해가 바뀌어 어느덧 2학년 준혁이가 친구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이제 홀로 졸업식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을 묵묵히 지켜본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동네 친구가 곧 학교 친구가 되었던 준혁이, 하지만 이제 준혁이에겐 친구가 없다. 그래서 준혁이는 학교를 다녀 온 후에 밖에 나서지 않는다. 함께 어울릴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종종 교실을 찾아 친구들에게 하고픈 말을 남길 뿐이다. 그런 준혁이가 이제 그렇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 학교를 떠날 즈음이 돌아왔다. 



하지만, 단원고의 졸업식은 그저 여느 학교의 졸업식처럼 쉽지 않다. 아이들이 없는 빈교실을 존치하느냐 마냐의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가지로 갈라진 학교와 학부모들간의 이견, 그리고 이제 600일이 된 상황에서 여전히 아이들을 잊을 수 없는 부모와 그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사회의 시선, 거기에 특별전형이라는 '배려(?)'에 대한 따가운 시선 등이, 축하 받아야 할 졸업식을, 따가운 보도 카메라의 세례와, 거기에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듯 학교문을 나서야 하는 학생들의 행렬로 마무리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큐는 그런 소란 가운데 부모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자신을 드러낸 준혁이와, 그의 의연함 뒤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덤덤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사태에 집중하는 대신, 졸업을 했지만 아직은 새로운 세상에 나서기가 두려운 준혁이와 그리고 함께 하지 못한 준혁이의 친구들과 함께, 미처 가보지 못한 제주도 수학 여행을 다녀온다. 물살에 휩쓸려 그만 손을 놓치고 만 아이, 준혁이가 만들어 준 것이면 무엇이든 맛있다 먹어주던 친구, 준혁아 부르던 목소리가 독특해서 지금도 귓가에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친구, 준혁이와 친구들은 그렇게 함께 가지 못한 친구 다섯의 사진을 대신 가지고 추운 제주도의 바람을 맞는다. 



종로구 익선동, 그 오래된, 지켜야 될 골목길
종로구 익선동 166번지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이다. 일제 강점기 도시형 한옥 마을로 집단적으로 조성된 이 마을은 2004년 재개발이 무산되는 바람에 유일한 한옥 마을로 잔존하게 되었다. 

<다큐 3일>은 언제난 그렇듯 72시간 동안 이 오래된 한옥 마을을 촘촘히 지켜본다. 하지만, 그저 지켜보는 것만이 아니다. 166번지에 수십년을 살아온 토박이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 시대 요정과 요릿집등으로 융성했던 이 마을의 역사와, 그리고 이제 세월이 흘러 재개발이 무산되는 바람에 유지될 수 있는 낡은 한옥의 전사를 샅샅이 훑는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저 아직도 버텨내고 있는 한옥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대신,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우려를 담고 지켜본다. 그래서, 그 낡은 골목의 담벼락 하나, 낡은 가구 하나가, 이제 사라지만 다시는 복원하기 힘든 소중한 것임을 문화재 전문 위원의 전문가적 소견을 얹어 명시한다. 애써 동네 주민이 버린 낡은 자개 장롱조차 끌어들이는 그 오래된 한옥 마을을 지키겨 애쓰는 젊은이들의 노력을 그려내며, 전통의 유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집값이 오르면 버터낼 도리가 없는 오래된 세탁소 주인의 말을 통해, 이곳이 부디 안녕하기를 원하는 소망을 대신한다. 




<sbs스페셜>은 단원고 아이들의 교실을 존치하자고 소리높이지도 않는다. 그저 루시드 폴의 '내 몫까지 살아내 주렴'하는 나즈막한 목소리를 배경으로, 친구들을 잊지 못한 채 힘들어 하던 졸업생이 애써 용기를 내는 모습을 담는다. 특례 입학의 논란 뒤로, 대학을 가는 대신, 친구들을 돌려준다면 그걸 택하겠다는 졸업생의 눈물섞인 토로를 전한다.  특례입학이나, 보상금, 그리고 교실의 유용이란 편협한 잣대 뒤에서 여전히 아이들을 잃은 상처에서 한 발도 나올 수 없는 학부모와, 사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졸업생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저 600일이란 시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노란 리본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다큐3일>도 마찬가지다. 섣부른 젠트리피케이션의 우려 대신, 익선동 166번지의 가치를 부각시킨다. 그곳의 낡은 흙담벼락이, 그리고 동네 주민이 이제는 쓸모 없다 버린 자개 장이 사라지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유산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거기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곳을 훼손시키지 않고 지키려는 젊은이들의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의 거센 물살에 대항해야 할 의미와 가치를 상기시킨다. 

<sbs스페셜>과 <다큐 3일>은 편견과, 무지, 그리고 물질적 이기심에 외로 꼬아진 세상 사람들의 고개를 주물주물, 돌려 놓으려 애쓴다. 

by meditator 2016. 2. 29. 14:53

2월, 꽃샘 추위가 시작되는 달이다. 새싹이 피어오르는 봄을 시샘하듯, 청춘들의 새로운 도약에 발을 걸어 넘어 뜨리는 계절이다. 매해 2월이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디뎌야 하는 젊은이들이지만 불황 사회 속 그들을 맞이하는 건 새 직장 대신, '백수'라는 처연한 이름표이기가 십상이니, 청춘의 꽃샘추위는 스쳐지나가지않고 오래도록 그들을 괴롭힌다. 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아니 더 잔혹하다. 




전국 대학 중 연극 영화과는 65곳 정도, 해 마다 여기서 배출되는 졸업생이 2400명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연기'를 전공한 이들은 그 이후 어떤 행보를 걷게 될까? 2014 예체능 출신 대학생들의 취업률은 41.4%로 계열 별 최하위를 기록한다. 하지만, 여기서 더 심각한 것은 전공 관련 취업률이 겨우 5.1%에 불과하다는 참혹한 현실이다. 그래서 언제인가 부터 사시, 행시, 언론 고시와 함께 '연예 고시'라는 말이 생겨났다. 2월 14일 <다큐 3일>은 바로 그 '연예 고시'의 한 현장을 72시간 목도한다. 

잔혹 동화 취업 오디션
서울 예대는 N포 세대 꿈을 찾는 청춘들이라는 부제를 단 '앞으로 페스티벌'을 열었다. 형식은 '축제'이지만, 사실 그 내용은 졸업을 앞둔, 하지만 아직 그 어느 곳에서도 '캐스팅'의 기회를 얻지 못한 '백수' 예비생인 졸업생들을 위한 '취업 오디션'이다. 연예 관계자 100 명을 초대하여 졸업생, 그리고 졸업을 했지만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취업 재수생들들의 끼와 재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학교 측에서 마련한 것이다. 

이 '취업'을 위한 무대에 17몀의 학생들이 지난 3년간의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 '취업'이라는 냉엄한 현실 앞에, 도우미를 자청한 선배들도, 그리고 이 무대를 총괄하는 교수도, 허투루 말을 내뱉을 수 없다. 오히려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을 쏙 빼놓는, 그리고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을 뒤집어 엎을 만큼 찬 서리일 뿐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런 질타에 주저앉을 수 없다. 그러기엔 그들이 맞이할 현실이 어떻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기회를 그나마 잡지 못한다면, 그들은 지난 3년 자신이 선택했던 '꿈'의 시간이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카메라가 지켜보는 학생들의 72시간은 절박하다. 그들의 초초함은 깊지만 꿈으로 달려온 3년, 혹은 졸업을 하고도 무기력하게 보냈던, 또는 먹고 살기에 쫓겨 연습조차 할 수 없었던 시간이 그들을 이해시키지는 않는다. 결국 된서리를 맞고 애써 준비했던 무대가 없어지거나, 스스로 포기하거나, 다시 새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벼랑 위에 선 절박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범대를 다니다, 연기과를 다니는 동생의 삶이 부러워 선생의 길을 마다한 채 늦깍이로 합류한 나이든 졸업 예비생은 비록 앞으로의 시간이 막막한 줄 알지만, 지난 3년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자신의 인생을 달리보고, 다시 살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가 미워 자책하고, 좌절한 학생들도, 결국 무대에 선 그 시간 속에서, 결국 자신이 이 길을 벗어날 수 없음을 절감하기도 한다. 오히려 그 벼랑 위에 서보니 지금 이 기회가 아니더라도, 이 길을 가야겠다는 다짐이 굳건해 지기도 한다. 



그렇게 꿈을 향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는 페스티벌의 준비 기간이 끝나고,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졸업생, 졸업 예비생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그러나, 기회는 그들의 열정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날 공연을 펼친 학생들 가운데, 기회가 주어진 것은 단 10 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캐스팅도 아니고, 그저 연예 기획사 2차 오디션을 볼 기회.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 꿈을 위해 달려온 시간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잔혹 동화'다. 그리고 이는, 서울 예대만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모든 대학생들에게 돌아갈 동일한 '답안지'이라는 데서 더 잔인한 현실이다. 
by meditator 2016. 2. 15. 15:37

1월 10일 방영된 <다큐3일>에서는 신선한 기획이 시도되었다. 세계를 주무르는 두 강대국, 미국과 중국, 지지않은 해와, 떠오르는 해와 같은 두 나라의 각각 한 장소를 배경으로 72시간의 다큐 3일이 마련된 것이다. 또한 이 기획이 특별한 점은, 미국은 일본의 제작진이, 그리고 중국은 한국의 제작진이 참여함으로써, 두 나라를 바라보는 일본과 한국의 관점의 묘한 이질감이, 똑같은 72시간이지만 전혀 다른 질감의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꿈이 빚어지는 곳 창사의 중식당과 뉴욕의 24시간 빨래방

우선 먼저 방영된 것은 한국의 <다큐 3일> 제작진이 마련한 중국 창사에 자리잡은 중국 최대, 세계 최대의 중식당을 배경으로 한 72시간의 기록이다. 그간 우리나라 예능을 통해 종종 얼굴을 비춘 이 후난성 창사시에 자리잡은 세계 최대의 중식당은 자금성을 본딴 엄청난 규모로, 연간 80여만 명의 손님이 찾아드는 성황리에 영업을 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비싼 가격으로 일부 부유층만을 상대로 하는 식당처럼 인식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런 인식이 경제 호황과 더불어 생활수준이 높아진 중국인들의 '인기'를 얻어, 이제는 결혼힉을 비롯한 창사시 중국인들의 행사 전담 식당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결혼식 이벤트가 주말마다 ㅂ러어지며 해마다 이곳을 찾는 손님이 늘어나고 있는 이 식당엔 요리, 서빙에서부터 설겆이까지 450여명의 직원들이 곳곳에서 쉴사이없이 움직이고 있다.

 

한국의 제작진들이 중국의 가장 큰 식당에 촛점을 맞추었다면, 일본 NHK 제작진은 미국 뉴욕의 빨래방에 시선을 맞춘다. 뉴욕 퀸스 지역의 24시간 빨래방, 일찌기 신대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넜던 유럽인들의 열망은 이제 아시아, 남아메리카, 중동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로 확산되어 여전히 뉴욕을 '꿈'의 도시로 만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빨랫감을 가지고 모여드는 다양한 국정의 사람들은 그 여전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자, 현주소이다.

 

똑같이 '꿈'을 찾아 모여드는 사람들임에도 중국과 뉴욕이 전하는 정서는 다르다. 말이 '차이나'라는 한 나라지, 중국사는 중국이란 대륙의 구심점과, 그 구심점에서 벗어나 각자 자신의 영역, 혹은 새로운 구심점을 생성하려는 무수한 민족의 쟁투이다. 중국의 역사 이래 가장 오랜 '한족'의 통치를 성공했다는 현 '차이나'에도 불구하고, 변방에서는 '한족'의 전횡에 맞서 자국의 독립을 고소원하는 티벳을 비롯한 다수의 소수민족들이 존립한다. 그런 현대사의 구심점으로 이제 세계 경제 대국으로 세계 경제의 구심점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국, 그리고 그 차이나머니의 가장 큰 혜택을 받으며 성장한 창사시의 중식당에는, 차이나드림을 가지고 모여든 450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72시간 지켜보는 중국의 가장 가까운 이웃 한국의 제작진들이 있다.

 

제작진에 눈에 비친 경제 호황 속의 중국, 그리고 그 증거인 창사시의 중식당은 몇 천 명의 손님들을 끌어모아, 위안화를 뿌리며 거나하게 벌어지는 결혼식으로 보여진다. 그런가 하면, 그런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일하는 450명의 직원들은 마치 우리나라 경제 발전기 고향을 떠나 어려운 가족을 돕기 위해 일찌기 일터로 떠난 6,70년대의 젊은이들을 보는 시점과도 같다. 한편에서 휘황한 이벤트와, 그 이벤트의 한 편에서 십대의 어린 나이에도 공부를 접고 가족을 떠나 한 푼이라도 벌며 자신의 꿈을 기원하는 직원, 그리고 아이들은 물론, 부부마저 떨어져 살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실을 당차게 견뎌내는 또 다른 직원들을 통해, 경제 부흥과, 그 경제 부흥기의 물결을 타고 저마다 자신의 분홍빛 미래를 꿈꾸는 중국인들의 허니문을 절묘하게 그려낸다.

 

 


 


신흥 강대국 중국과 지지않는 태양 미국,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그렇게 중국 창사의 대식당이 분명치는 않지만 그래도 '분홍빛 장미빛 미래'의 꿈을 향한 72시간이었다면, 일터가 아닌, 빨래방이라는 정처없는 공간에 카메라의 촛점을 맞춘 뉴욕의 NHK제작진이 보여준 '아메리칸 드림'은 어쩐지 삶의 '비상구'같은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다친 엄마를 대신하여 폭력이 난무하는 자신들의 할렘가 주거 지역을 피해 그래도 안전한 빨래방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와 빨래를 하는 동안 마음껏 놀게 해주는 흑인 할머니, 국가 부도 사태를 겪은 그리스를 피해 미국으로 돈을 벌러온 그리스인, 위험을 무릎쓰고 미국으로 건너온 멕시코인, 하지만, 그런 위험을 무릎쓴 이주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이 되도록 여전히 미국 시민이 되지 못한 남미의 청년, 20여년 뉴욕에 살면서 퀸즈 지역의 변화를 몸으로 겪어낸 백인 원주민, 미국의 경제 위기 때 노숙자의 위기를 거쳐 다시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가장, 불과 72시간이지만, 24시간 빨래방을 통해 좁게는 뉴욕 퀸즈 타운, 그리고 그곳을 통해 보여지는 현재의 미국, 나아가 세계의 현실이 빨래를 하러 들르는 정처없는 이 공간을 통해 적나라하게 전달된다.

 

한국과 일본의 제작진이 사전에 상의 하에 장소를 결정한 것인지, 아니면 각자 방송국의 결정이었는지, 절묘하게도 중국의 대식당은 이제 막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한 신흥 부국 중국의 흥분과 흥청거림, 설레임이 담겨있다면, 2001년 쌍둥이 빌딩 폭파 테러와, 2008년의 경제 위기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세계 경제의 중심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자유'와 '부'에 대한 열망을 가질 수 있는 꺼지지 않는 아메리칸 드림으로, 정처없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꿈을 찾아 날아드는 세계 각국의 이미자들의 집합소 미국을 '빨래방'이라는 '부유(浮流)한 공간을 통해 절묘하게 그려낸다. 중국이란 부의 구심력이던지, 저마다 다른 인종의 원심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열정은, 거대한 중식당과 삭막한 24시간 빨래방을 통해 절묘하게 묘사된다.

 

또한 어린 나이에 꿈을 찾아 식당의 궂은 일을 마다치 않는 직원이나, 생이별을 마다하지 않는 부부의 애틋한 사연에 촛점을 맞춘 한국의 72시간이 한국식의 '정(情)과 '신파'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를 했다면,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까칠한 미국 중년의 질문마저 가감없이 담아낸 NHK의 관찰자적인 시선은, 결코 녹록치 않을 아메리카 드림의 현주소인 양 '거리감을 쉬이 접지 않는다. 어쩌면 '한국'이 바라보는 신흥 강대국 중국과, 일본이 바라보는 그럼에도 지지않는 태양 미국에 대한 은밀한 속내가 은연 중에 드러난 것일 지도 모른다.

by meditator 2016. 1. 11. 15:46

지난 20년간 우리나라는 쌀 시장을 개방하는 대신, 쌀의 의무 수입 물량을 늘려왔다. 하지만, 점점 감소 추세에 있는 쌀 소비량으로, 쌀 수급에 수입 물량이 부담으로 작용하자, 이에 정부는 내년 1월1일부터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큐 3일>은 쌀 시장 개장 결정이 내려진 이후,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 지대 호남 평야 김제 전포 마을의 72시간을 담았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 동서로 30km, 남북으로 60km, 전라북도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호남 평야는 서울시 면적의 3배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이다. 하늘을 맞닿은 땅, 이제는 노인이 되어가는 마을 주민의 어린 시절 겨울이면 학교에서 집으로 바람을 안고 가는 길이 너무 추워 울면서 돌아왔다는 이곳은 사방이 뻥 뚫려 삼복 더위도, 북풍 한설도 고스란히 견뎌내며 벼를 키우는 곳이다. 그리고 그런 호남 평야 중 동진강 유역 김제 평야에 속하는 전포리 마을은 35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농지 면적으로만 40만평, 쌀 생산량 1500톤이 넘는 대표적인 쌀농사 지대로, 일평생 한눈 팔지 않고 쌀 농사만 지어왔다는 자부심이 충만한 곳이다. 

새벽 4시 한낮의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해 농부들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휘~ 논을 둘러보는 농부, 그저 눈길 한번 주는 것만으로도, 간밤에 논이 안녕한지 한 눈에 알아챌 정도의 고수다. 
하지만, 아침 일별은 그저 아침 인사에 불과하고, 더위 한 점 피할 그늘도 없는 전포리 마을의 논에서 농부들은 이삭을 팬 벼들을 보살피기 위해 한 낮의 더위도 마다치 않는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는 벼'라는 옛 어른들 말 그대로, 불철주야 농부들의 손길은 쉬지 않는다. 

하지만, 7월 한낮의 하늘을 맞닿아 이어지는 그림같은 논의 풍경과 달리, 농부들 마음의 근심의 그늘은 점점 깊어진다. 
우리나라가 산업화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부터, 우리의 농촌은 그 산업화의 액받이로, 싼 쌀값의 희생양이 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즐겨마시는 커피, 그거 한 잔 값이 바로 쌀 한 되 값이라고, 한번에 후르륵 마셔버리면 없어지는 커피지만, 쌀 한 되를 사면 몇 번을 해먹을 수 있는데' 라며 한 집에 모인 어머님들은 말끝을 흐린다. 덕분에 농부들은 몇 십만 마지기의 논을 가지고도, 아비 세대의 수익만큼도 내지 못한다. 이젠 농사를 지어도, 소를 키워도 대규로, 대량으로 하지 않으면 그나마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부족한 일손을, 비록 융자를 받아 모두 다 빛일 망정 기계 덕분에, 한 시름 놓았는가 싶었는데, 정부는 쌀 시장 개방을 한단다. 72시간 동안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쌀 시장이 한 걱정이다. 그래서일까, 벼들의 금빛 물결이 출렁이던 전포리에 지난 해 처음으로 2만 평의 밭이 생겨났다. 어머니를 돕다 귀농한 박주환씨도 더 이상 수익을 맞추기 힘든 벼 농사 대신, 비닐 하우스를 만들어 원예 작물을 키워야 하나 고민이 깊어진다. 시름이 깊은 농민들은, 평생을 살아왔던 전포리 마을이 이 상태로 가면, 앞으로 십 년 후 과연 존속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국내의 쌀 생산 면적과 쌀 재배 농가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해 국내 쌀 소비량은 510만 8천 750톤, 그리고, 국내 쌀 생산량은 423만 11톤, 이제 더 이상 쌀이 남아돌지 않는다. 분명 경제학의 원리에 따르면, 쌀값은 하늘을 찔러야 하고, 농부들은 부른 배를 튕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계속된 정부의 비현실적인 쌀값 정책으로, 산업 우선, 농촌 희생의 일관된 정책으로, 농민들은 이제 더 이상 쌀 농사를 지어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벼들은 그런 농부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뜨거운 한 낮의 볕, 폭우, 비바람을 견디며, 부지런히 '쌀'을 잉태한다. 리고 그런 벼들을 키우기 위해, 농부들은 씻을 수도 없이 흘러내리는 땀을 마다치 않는다. 하지만,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은 이제 바닥에 쑤셔 박히다 못해 어디 쳐박혔는지 찾아볼 길이 없고, 그나마 이젠 농사를 지어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다. 농부들이 살아낼 수 없는 농촌, 그것이 쌀 개방이후 만난, 전포리 마을 사람들의 현실이다. 


by meditator 2014. 8. 11. 07:05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다큐3일>이 벌써 300회 하고도 50회를 넘겼다. 

우리 이웃의 삶에 온전히 3일, 72시간을 투여해, 그 삶의 속속들이 알곡을 전하고자 했던 시간들이 벌써 이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꼭 <다큐 3일>에게 개근상의 기쁨만을 전하지는 않는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생로병사'의 인생 그래프를 그리듯이, 처음 이웃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의의를 가질 수 있었던 3일의 이야기가, 시간이 흘러 뻔하거나, 늘 그런 이야기들로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역시나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6월 8일 방영된 경기도 광명 시장을 다룬 <다큐 3일>은 그렇게 권태기로 흐를 가능성이 있는 프로그램의 신선한 모색이라 보여진다. 
그간 <다큐 3일>은 무수한 시장을 찾아다녔다. 서울의 재래 시장은 물론, 지방의 이름난 5일장, 혹은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시장까지, 전국의 모든 시장을 다녔다고는 할 수 없지만, 300여회가 넘은 동안 <다큐 3일>의 카메라가 담은 주제중 시장이 결코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6월 8일의 광명 시장은 그렇게 그저 그런 시장 중의 하나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 또 하나의 시장일 수도 있는 광명 시장을 <다큐 3일>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여 들어간다. 이름하여, 천원의 행복!

카메라가 훑고 들어가는 광명 시장의 주변, 시장 옆에 커다란 백화점 같은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한 블록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광명 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재래 시장의 상권을 파고든 거대한 자본의 마트와 백화점아닌가, 지형적으로 본 광명 시장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백화점 건물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광명 시장은 활기가 넘쳐 흐른다. 대략 하루에 3만명의 시민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그리고 <다큐 3일>의 카메라는 그 비법을 '천원의 행복'이라 이름 붙인다. 즉, 광명 시장의 모든 것들은 싸도 너무 쌌다. 

하나에 오백원, 두 개에 천 원하는 떡에, 세 개 골라 오천원인 반찬, 세 마리에 오천원인 생선, 거기에 거의 천원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비닐에 그득 담긴 채소며 과일들. 
시장에 온 사람들은 말한다. 광명 시장을 떠나 거리에 나가면 아메리카노 한 잔 사먹을 수 없는 천원으로 광명 시장에서는 배를 불릴 수 있다고. 

물론 '천원의 행복'이 넉넉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몇 년 째 값을 올리지 않은 오뎅 장수 아저씨는 자꾸 재료비가 올라 고민이시란다. 하지만, 요즘처럼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사람대로, 자영업을 하는 사람은 사람대로, 저마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 그 사람들이 그나마 쉽게 찾아들 수 있는 이곳에서마저 값을 올릴 수가 없다고 없다고 말씀하신다.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의 사정을 봐준다고, 그저 조금 남기고 많이 팔려고 노력하신다는 오뎅 장수 아저씨의 말씀이, 곧 광명 시장 상인들의 '기업가 정신'이다. 


그렇다고 싼게 비지떡은 절대 아니다. 
싸게 판다고 해서, 나쁜 재료를 쓰는게 아니냐고 색안경을 쓰는 사람들이 서운하다고 말씀하시는 오뎅 장수 아주머니는, 바로 옆의 백화점보다 이곳의 오뎅이 더 맛있다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며 자부심을 밝힌다. 
한 개 천원하는 햄버거 스테이크를 사기 위해 차로 두 시간을 달려오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일부러 찾아와 한번에 들기 힘들 정도로 몇 만원어치를 사가는 맛이 보증된 가게가 그곳에 있다. 
광명 시장이 생긴지 25년, 그곳 보다 더 오래 33년의 역사를 지닌 녹두전 집은, 한때 떡복이도 없는 시절에 이 집의 빈대떡을 먹기 위해 길거리에 사람들이 늘어서 있던 역사를 자랑한다. 
달랑 냉장고 하나, 3인분의 즉석 부대찌게를 단 돈 9000원에 파는 아저씨는, 이 장사로 IMF 때 진 빛을 다 갚았다로 자랑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물론 3일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지켜보는 카메라는 여전히 여느 시장을 다루었던 것처럼, 새벽부터 저녁까지 시장 사람들의 삶을 골고루 담아낸다. 광명 시장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새벽 4시에 아직 가게 문이 열리지 않은 시장 한 켠에서 떡집의 김이 솔솔 오르고, 그 다른 한 편에선, 하루 장사를 대비한 오뎅 반죽 기계가 돌아간다. 권투 도장을 하기 위해 짜장면 장사를 하는 아저씨는 권투로 다진 내공으로 쫄깃한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 오체투지하듯 반죽을 하고 계신다. 엄마가 장사를 하는 시장에서 자라난 딸은 이제 다시 남편과 함께 야채 가게를 하고, 젊은 청년들은 이른 퇴근을 위해 내기를 하며 생선 머리를 잘라낸다. 아침부터 저녁 9시까지 잠시 잠깐 앉을 틈도 없이, 그런데도 붙어있는 살이 독하다며 너스레를 떠는 세 자매의 삶은 부모님께 마음껏 해드리고 싶은 것을 해드릴 수 있는 지금이 그래도 제일 행복하다. 세상 그 어느 곳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필부의 삶이 여전히 이곳에서도 치열하게 이어진다. 


그렇게 늘 어딘가의 시장에서 만날 수 있을 것같은 풍경들이지만, 그것들이 '천원의 행복'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타나면서, 광명 시장은, 그저 여느 시장이 아니라, 바로 옆에 백화점이 있어도, 자신만의 생존력을 가진, 없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없는 사람들만의 공간으로 부각된다. 굳이 백화점 등 거대 상권에 대비해 우리는 이렇게 경쟁력을 갖추었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이, 광명 시장은, 광명 시장으로 그 가치를 <다큐 3일>을 통해 증명한다. 돈 만원 한 장만 가지고도, 배터지게 먹고, 팔이 끊어지게 장을 볼 수 있는 그곳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by meditator 2014. 6. 9.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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