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다큐3일>이 벌써 300회 하고도 50회를 넘겼다.
우리 이웃의 삶에 온전히 3일, 72시간을 투여해, 그 삶의 속속들이 알곡을 전하고자 했던 시간들이 벌써 이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꼭 <다큐 3일>에게 개근상의 기쁨만을 전하지는 않는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생로병사'의 인생 그래프를 그리듯이, 처음 이웃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의의를 가질 수 있었던 3일의 이야기가, 시간이 흘러 뻔하거나, 늘 그런 이야기들로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역시나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6월 8일 방영된 경기도 광명 시장을 다룬 <다큐 3일>은 그렇게 권태기로 흐를 가능성이 있는 프로그램의 신선한 모색이라 보여진다.
그간 <다큐 3일>은 무수한 시장을 찾아다녔다. 서울의 재래 시장은 물론, 지방의 이름난 5일장, 혹은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시장까지, 전국의 모든 시장을 다녔다고는 할 수 없지만, 300여회가 넘은 동안 <다큐 3일>의 카메라가 담은 주제중 시장이 결코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6월 8일의 광명 시장은 그렇게 그저 그런 시장 중의 하나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 또 하나의 시장일 수도 있는 광명 시장을 <다큐 3일>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여 들어간다. 이름하여, 천원의 행복!
카메라가 훑고 들어가는 광명 시장의 주변, 시장 옆에 커다란 백화점 같은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한 블록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광명 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재래 시장의 상권을 파고든 거대한 자본의 마트와 백화점아닌가, 지형적으로 본 광명 시장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백화점 건물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광명 시장은 활기가 넘쳐 흐른다. 대략 하루에 3만명의 시민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그리고 <다큐 3일>의 카메라는 그 비법을 '천원의 행복'이라 이름 붙인다. 즉, 광명 시장의 모든 것들은 싸도 너무 쌌다.
하나에 오백원, 두 개에 천 원하는 떡에, 세 개 골라 오천원인 반찬, 세 마리에 오천원인 생선, 거기에 거의 천원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비닐에 그득 담긴 채소며 과일들.
시장에 온 사람들은 말한다. 광명 시장을 떠나 거리에 나가면 아메리카노 한 잔 사먹을 수 없는 천원으로 광명 시장에서는 배를 불릴 수 있다고.
물론 '천원의 행복'이 넉넉해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몇 년 째 값을 올리지 않은 오뎅 장수 아저씨는 자꾸 재료비가 올라 고민이시란다. 하지만, 요즘처럼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사람대로, 자영업을 하는 사람은 사람대로, 저마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 그 사람들이 그나마 쉽게 찾아들 수 있는 이곳에서마저 값을 올릴 수가 없다고 없다고 말씀하신다.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의 사정을 봐준다고, 그저 조금 남기고 많이 팔려고 노력하신다는 오뎅 장수 아저씨의 말씀이, 곧 광명 시장 상인들의 '기업가 정신'이다.
그렇다고 싼게 비지떡은 절대 아니다.
싸게 판다고 해서, 나쁜 재료를 쓰는게 아니냐고 색안경을 쓰는 사람들이 서운하다고 말씀하시는 오뎅 장수 아주머니는, 바로 옆의 백화점보다 이곳의 오뎅이 더 맛있다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며 자부심을 밝힌다.
한 개 천원하는 햄버거 스테이크를 사기 위해 차로 두 시간을 달려오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일부러 찾아와 한번에 들기 힘들 정도로 몇 만원어치를 사가는 맛이 보증된 가게가 그곳에 있다.
광명 시장이 생긴지 25년, 그곳 보다 더 오래 33년의 역사를 지닌 녹두전 집은, 한때 떡복이도 없는 시절에 이 집의 빈대떡을 먹기 위해 길거리에 사람들이 늘어서 있던 역사를 자랑한다.
달랑 냉장고 하나, 3인분의 즉석 부대찌게를 단 돈 9000원에 파는 아저씨는, 이 장사로 IMF 때 진 빛을 다 갚았다로 자랑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물론 3일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지켜보는 카메라는 여전히 여느 시장을 다루었던 것처럼, 새벽부터 저녁까지 시장 사람들의 삶을 골고루 담아낸다. 광명 시장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새벽 4시에 아직 가게 문이 열리지 않은 시장 한 켠에서 떡집의 김이 솔솔 오르고, 그 다른 한 편에선, 하루 장사를 대비한 오뎅 반죽 기계가 돌아간다. 권투 도장을 하기 위해 짜장면 장사를 하는 아저씨는 권투로 다진 내공으로 쫄깃한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 오체투지하듯 반죽을 하고 계신다. 엄마가 장사를 하는 시장에서 자라난 딸은 이제 다시 남편과 함께 야채 가게를 하고, 젊은 청년들은 이른 퇴근을 위해 내기를 하며 생선 머리를 잘라낸다. 아침부터 저녁 9시까지 잠시 잠깐 앉을 틈도 없이, 그런데도 붙어있는 살이 독하다며 너스레를 떠는 세 자매의 삶은 부모님께 마음껏 해드리고 싶은 것을 해드릴 수 있는 지금이 그래도 제일 행복하다. 세상 그 어느 곳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필부의 삶이 여전히 이곳에서도 치열하게 이어진다.
그렇게 늘 어딘가의 시장에서 만날 수 있을 것같은 풍경들이지만, 그것들이 '천원의 행복'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타나면서, 광명 시장은, 그저 여느 시장이 아니라, 바로 옆에 백화점이 있어도, 자신만의 생존력을 가진, 없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없는 사람들만의 공간으로 부각된다. 굳이 백화점 등 거대 상권에 대비해 우리는 이렇게 경쟁력을 갖추었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이, 광명 시장은, 광명 시장으로 그 가치를 <다큐 3일>을 통해 증명한다. 돈 만원 한 장만 가지고도, 배터지게 먹고, 팔이 끊어지게 장을 볼 수 있는 그곳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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