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서울에 경증치매인들이 함께 했던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었다. '깜빡 깜빡'하는 경증 치매인들, 비록 주문을 종종 잊고, 자신이 지금 무얼 해야 하는 지,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려도 스텝과 식당에 온 손님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거뜬히 해냈다. '치매'가 사회적 사망 선고가 되는 세상, 그런 굳어진 세상의 인식에 프로그래은 윤활유 역할을 했다.
제주도의 주문을 잊은 식당 그로부터 다시 4년이 흘렀다. 주문을 잊었던 음식점은 다시 한번 그 날개를 펼쳤다. 이번에는 바다 건너 제주로 갔다. 하루 3시간, 단 3일, 그 짧은 시간 동안 다시 한번 치매인들과 정상인들의 '이인삼각' 경주가 시작되었다.
시즌 2를 맞이한 <주문을 잊은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게 된 경증 치매인들은 네 사람이다. 83세의 맏형 장한수 씨는 2015년에 치매 판정을 받은 치매 경력이 제일 오래된 분이다. 기분이 좋으면 노래를 흥얼거리고 춤을 추지만 불안하면 자꾸 아내와 딸을 찾는다. 늘 베레모와 선글라스를 빼놓지 않는 최덕철 씨는 2020년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았다. 매일 보는 홍석천 씨를 처음 본 사람처럼 반가이 포옹을 하는 그는 한때는 카이스트 연구원이었다.
매번 자신을 '백옥같이 곱다'는 의미에서 옥자라고 소개하는 백옥자 씨는 깜빡깜빡 멤버 중 유일한 홍일점이기도 하지만 '반가운 사람들만 있네'라며 언제나 웃는 낯을 놓치지 않는 멤버 중 가장 화사하고 따뜻한 존재이다. 무엇보다 손님 한 명 기억하기 라는 미션을 손에 써왔어도 다음 날이면 그 조차도 잊어버리지만 계산기가 필요없을 정도로 송은이도 버벅이는 손님들 밥값에는 '귀재'이다.
처음 멤버로 등장했을 때 다른 멤버들이 모두 '촬영하는 분'이야 하고 의아해 했던 김승만 씨는 이제 겨우 60의 '조발성 알츠하이머' 치매인이다. 예전에는 목회 활동을 했지만 이제는 1번 테이블 찾기가 제일 어려운 처지다. 그래도 백옥자 씨 못지 않게 언제나 미소 띤 얼굴로, 주변 인물들에게 '엄지 척'을 놓치지 않는 선량한 아저씨다.
날마다 새로운 일상 출근 첫 날 숙소에서 자고 일어난 백옥자 씨가 '여기가 어디지?'하고 낯설어 한다. 그래도 주변 환경을 찬찬히 살피던 옥자 씨는 조금 뒤 '제주도'임을 알아챈다. 그래도 첫 날 두리번거리던 옥자 씨는 나은 편이었을까? 셋째날 함께 출근하던 깜빡깜빡 남자 3인방은 당당하게 주문을 잊은 음식점 옆의 까페로 들어선다. 들어선 다음에도 여기가 맞다는 세 사람, 과연 단 3일이라도 그들의 '서빙'이 순탄할까?
첫 날 화사한 분홍빛 앞치마를 장착한 네 사람, 옷 색깔에 대한 민망함도 저리 밀쳐두고 자신이 해야 할 새로운 일에 두려움이 앞서는 모습이다. 테이블 번호도 외우고, 해야 할 일도 숙지하고, 불안해서일까, 자꾸 아내와 딸을 찾던 한수 씨는 옆에서 옥자 씨가 괜찮다며 달래는 말에도 목소리가 높아지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개업한 식당, 다행히 손님들이 한 팀, 두 팀 찾아들기 시작했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렸다는 신혼 부부가 식당으로 입장한다.
경증이지만 치매인들을 주문서에 손님들이 체크만 하면 되는 시스템, 그런데 주문서가 때론 주방에 도착하지를 않기도 한다. 음식이 나오면 차례로 손님께 가져다 주는 과정, 식당 안팍으로 겨우 일곱 테이블인데도 한바퀴를 빙 돌거나, 식당 안의 1번을 놔두고 밖에 나가서 두리번 거리기가 십상이다. 3일째 되었어도 여전히 주문서를 가져다 주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로 등장한 '동파육'을 비싸니 싼 거 먹으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손님 테이블에서 자신의 지나온 이력을 줄줄이 늘어놓기도 하는 등 '서빙'의 본분을 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잘 하려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4인방의 노력은 겨우 3일만에 능숙하게 자신의 동선을 자신에 맞게 '조직'해 낼 정도로 무람없이 자신들의 미션을 마무리했다.
물론 이런 해프닝에 대비해 작업 치료사를 비롯한 스텝들이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지만, 손님들이 들이닥친 시간에 빚어지는 상황에 모두 대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주문을 잊은 식당이 가능했던 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그러려니'하는 '배려' 덕분이었다. 수저를 안갖다줘도, '그림의 떡이네'하고 마주보고 웃는 부부처럼 손님들은 '깜빡 4인방'이 빚어내는 '실수 아닌 실수'들에 관대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리고 그런 '배려로 어우러진 장면이야말로 <주문을 잊은 음식점>을 통해 시청자들이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였다는 외국인 아내는 백옥자 씨의 손을 꼭 잡고 건강하시라 한다. 어디 외국인뿐인가. 자신이 직접 만든 마카롱과 팔찌를 드리며 '응원'하는 모습들이 여전히 우리가 함께 어루러져서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해 내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 중 10%가 치매를 앓고 있다. 김승만 씨 처럼 조발성 알츠하이머까지 약 88만 명이 치매를 겪고 있다. 프로그램이 끝나가자 깜빡 4인방은 모두 내일도 출근하고 싶다고 한다.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지만, 경증 치매인들이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회적 인간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시간은 의미가 깊다. 조금만 세상이 배려한다면 아직은 세상 속에 그들의 자리가 있음을, 우리가 여전히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프로그램은 말한다.
특히 지난 주문을 잊은 음식점에 출연했던 분의 등장은 감격스럽다. 시즌 1에 출연한 이래 뜨개질을 하는 등 꾸준한 활동으로 치매의 진전이 가속화되지 않은 모습은 뽀족한 치료제가 없는 현실에 등불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김승만씨를 찾아온 아내는 편안하게 다른 사람과 대화도 하고 장난도 치는 남편이 다른 사람같다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홀로 지내던 덕철은 '내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라고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겨우 3일이었지만 늘 사회와 분리된 채 자신의 병마와 싸우던 이들에게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소중하고 뜻깊은 시간이다. 비록 그들이 이 시간조차 잊어버린다 할 지라도.
기차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고학년인 지인의 아들, 새로운 노선이 생기면 가볼 정도라고 한다. 장래 희망은 기관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단다. 차라리 국토교통부에 들어가면 어떻겠니? 말인즉슨 '공무원'이 되라는 거다. 엄마는 사촌 형이 한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는데 아직 자기 아들은 철이 없단다. 의대, 한의대를 목표인 세상, 초등학교 때부터 하다못해 공무원이라도 장래 희망을 삼아야 하는 시절이 되었다. '지금 놀자'는 어린이 해방군이 '사상범'이 되는 시절이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이렇게 방정환 선생님의 '어린이날 선언'은 시작된다. '농사'가 사람들의 주된 '업'이던 시절, 몇을 낳고, 그 중 몇을 잃었고, 그래서 지금은 몇이 남았던 시절이었다. 먹고 살기 바쁜 어른들은 이른바 아이들을 '케어'는 언감생심이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자꾸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시절의 아이들은 한 반에 7,80 명 교실에서 '콩나물'처럼 자랐다. 하지만 이젠 지하철에 '임산부' 자리가 배려될 만큼 아이가 귀한 시절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도 낳을까 말까 한 아이가 귀한 시절에 자식은 그만큼 '투자 손실'을 피해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어릴 때부터 아이의 미래를 '상정'하고 '조련'한다. 이른바 '헬리콥터맘'이 보편이 된 시대다.
서울대 나온 방구뽕은 왜 어린이 해방군이 되었나? 여기 잘 나가는 학원이 있다. 이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체벌'도 감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써야한다. 그리고 학원에서 있는 동안에는 화장실도 맘대로 가지 못한다. 이 '강압적'인 학원이 엄마들한테는 인기가 좋다. 원장 선생님이 아들 셋을 다 서울대에 보냈기 때문이다. 극중 부풀려진 면은 있지만 서울대만 간다면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밤늦도록 학원에서 공부만 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는게 당연한 세상이다.
그런데 그 서울대 간 막내 아들이 엄마의 학원 버스를 훔쳤다. 버스만이 아니라 그 버스에 탄 아이들을 '납치'했다. '방구뽕'이라고 이름조차 개명했다는 아들은 '어린이 해방군' 대장을 주장하며 재판에 섰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회의 사건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데는 자폐형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변호사 우영우라는 인물을 박은빈 배우가 기가 막히게 구현해 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짓, 몸짓, 눈빛이 표현해 내는 우영우라는 인물에 시청자들은 스스륵 빠져든다. 그런 박은빈 배우의 캐릭터 우영우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9화에 등장했다. 방구 '뽕'을 절묘하게 표현해내는 구교환 배우, 아마도 그가 아니었으면 '어린이 해방군'이라는 이 터무니없는 설정에 공감을 얻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간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 그가 아이들과 한 일이라고는 술래잡기, 비석치기 등 자전거 탄 풍경'의 노래에 나오는 그 별거 아닌 놀이들을 하고 놀았다. 그리고 이 편의 제목 '피리부는 사나이'의 결말과 달리, 아이들의 가방을 혼자 짊어진 채 아이들과 함께 스스로 자신들을 찾으로 온 경찰들에게 제 발로 찾아내려온다.
하지만 이 잠시의 일탈에 부모들은 한결같이 들고 일어나 그를 법정에 세운다. 심지어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며 탄원서에 사인조차 해주지 않는다. 그 잠깐의 일탈조차 세상의 속도에 뒤처질까 닥달하는 부모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시간인 것이다.
술래잡기 고무줄 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아침에 눈뜨며 / 마을 앞 공터에 모여/ 매일 만나는 그 친구들 비싸고 멋진 장난감 하나 없어도 / 하루 종일 재미있었어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이 아이들과 함께 한 놀이들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제목은 '보물'이다. 놀기만 해도 하루가 너무나 짧았던 내 어린 시절의 시간이 '보물'인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아이들은 그 '보물'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산다. 아직도 그저 '방구'니 '똥'이니 그런 소리만 들어도 깔깔거리고 웃는 아이들, 그래서 방구뽕과 함께 '보물'같은 시간에 얻은 도토리 알을 소중한 보물처럼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에게 방구뽕은 '보물'같은 '찰라'의 시간을 선사했을 뿐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그런 그가 '납치범'이란다. 이 시대의 '만화경'이다.
어린이의 '인권'을 묻다 드라마는 학원 원장의 자부심인 서울대 나온 셋째 아들이 개명까지 하고 방구뽕이 되어 등장한 내막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로망인 '서울대'와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의 간극을 통해 그가 살아오며 무엇을 놓쳤는가그래서 뒤늦게라도 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를 짚어보게 만든다.
어떻게든 감옥만은 안보내려는 어머니인 학원 원장과 한바다의 뜻과 달리, 어린이 해방군 대장 방구뽕은 구치소에서 '구타'를 당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에 우영우 변호사는 방구뽕을 '사상범'으로 주장한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방구뽕은 최후 진술에서 말한다. '나중에는 늦습니다. 대학에 간 후, 취업을 한 후, 결혼을 한 후에는 늦습니다. 불안이 가득한 삶 속에서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찾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니체는 말한다. 주사위 놀이, 그 단순한 놀이가 바로 '불투명한 미래 속에 던져진 불안한 삶'에 대한 '대비'라고,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놀이들이 '주사위 게임'과 같다. 그렇게 삶에 대한 'exercise'를 해보지 않은 채 부모가 마련해준 '학습'만을 하며 큰 아이들,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의 삶을 '재단'하려는 부모들, 그런 속에서 크는 아이들의 삶은 어떤 것일까?
이런 9화의 이야기는 묘하게도 10화의 지적 장애인의 서사와 연결된다. 지적 장애를 가져 13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신혜영(오혜수 분), 그녀와 사귀며 돈을 얻어 쓴 양정일(이원정 분)이 준강간 혐의로 재판정에 선다. 양정일은 신혜영의 말대로 '제비같은 새끼'이다. 하지만 그를 신혜영은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같은' 신혜영의 보호자인 어머니는 그를 '준강간' 혐의로 법정에 세운다.
아이같은 수준의 지적 장애인, 과연 그녀는 '나쁜 사랑'도 할 수 없는가,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그 무엇도 하겠다는 그녀의 엄마,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들을 밤늦도록 학원에 보내는 이 시대 다른 부모들과 다른가? 드라마는 결론을 내렸지만 쉬이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우영우네 김밥 집에 나타난 엄마 태수미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영우에게 제대로 된 '케어'를 해주었냐고. 1989년 채택된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은 아동은 단순히 보호 대상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의 '아동', 혹은 아동에 준하는 존재들은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대접받고 있는가? 드라마는 묻는다.
거의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앙'을 부르짖던 사람들, 그 추상의 대상이 '우영우'로 변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서울대 로스쿨을 나왔지만 그 어느 로펌에서도 오라하지 않았던 우영우 변호사, 그녀의 어떤 면이 사람들로 하여금 '추앙'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 답을 7,8화 소덕동 사건을 통해 살펴보자.
소덕동을 왜 지켜야 하지? 소덕동은 작은 마을이다. 신도시를 위한 도로가 관통하게 될 처지에 놓인 노덕리, 이장을 중심으로 한 대책위원회는 '소덕동 도로구역 결정 취소 청구 소송'을 하기로 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이 사건은 이렇게 표현된다. 자로 잰듯 소덕동을 가로지르는 도로, 게다가 소덕동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아름드리 팽나무마저 뽑혀나가야 하는 '행정 편의적'인 결정이다. 심지어 그린벨트라 제대로 받기 힘들다던 보상금이 오를 지도 모른다는 태산의 '입김'에 소덕동 손흥민도, 소덕동 유진박도 등 소덕동 주민들을 콩가루처럼 뿔뿔이 흩어버리고 마는 그런 사건이다.
그런데 돈 앞에 마을이 결딴나는 이 '도로'의 이름이 '행복로'인 건 아이러니하다. 신도시 주민들의 '행복'을 위해 소덕동 주민들, 그리고 아주 오래된 팽나무는 '희생'되어야 하는 게 이 시대의 '상식'인 듯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정치적인 결정'에 한바다의 호적수 '태산', 그리고 8회 말에 드러나듯 우여우의 엄마이자, 태산의 대표 변호사였던 태수미(진경 분)가 앞장선다.
물론 한바다도 이 소송을 수임하는 것조차 회의적이었다. 굳이 돈을 더 들여 행복로가 소덕동을 우회해야 할 '가치'와 '의미'에 대해 회의적인 상황에, 소덕동 사람들은 자신의 동네를 보여준다. 아직도 손흥민이니 장동건이니, 평범한 이들이 소덕동 안에서는 세상 의미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소덕동을 내려다보이는 동산 위의 팽나무는 천연기념물이 못됐지만 소덕동에서는 천연기념물이다. 그런 소덕동을 지키기 위해서는 돈이 아깝지 않다는 이장님, 그런 소덕동에 한바다의 '마음'이 움직였다.
바위의 세상에서 계란의 선택? 소덕동을 관통하는 행복로 건설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아니 세상을 핑계댈 것 없이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를 묻는다.
소덕동 소송 사건이 펼쳐지는 가운데, 권민우는 우영우를 한바다 블라인드 게시판에 고발한다. 부정 취업이라는 것이다. 우영우의 아버지가 한바다 대표와 선후배 사이라는 걸 알게 된 권민우, 안그래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를 '봐주는 게', 불공정하다고 매번 이의를 제기했던 그는 '낙하산'이라며 반발한다.
'부정취업'을 시인하는 우영우, 하지만 '봄날의 햇살'답게 최수연(하윤경 분) 블라인드 게시판을 보고 수근거리는 한바다 사람들 모두가 들리게 큰소리로 말한다. 그게 왜 부정취업이냐고.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나오고, 변호사 시험에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낸 우영우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세상이 애초에 '부정'한 거 아니냐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8회는 이런 서로 다른 '가치에 대한 생각'을 '정치적'이란 화두로 대비시킨다.
'공정'이란 이름으로 한바다의 정당한 절차와, 그 허들을 아버지를 아는 대표의 도움으로 넘어온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 그리고 소덕동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신도시 주민들의 편의와 경제적인 비용과 대비되는 소덕동이란 마을이 지니는 고유의 가치와 정서, 그리고 오래된 팽나무 사이의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것말이다.
이런 건 어떨까? 7,8회를 통해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간 '짐작'했던 우영우의 친모가 드러난 것이다. 태산의 대표 태수미,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오르내리는 그녀는 정부 관계자와의 사전 검증에서 '혼외자식'이란 말에 코웃음을 치며 넘긴다.
대학 시절 우영우 아버지 우광호와 사귀던 태수미는 막상 아이를 가지자 그녀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오늘날 그녀의 '배경'이 된 태산으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그런 태수미에게 우영우의 아버지 우광호는 '아이'만이라도 낳아주고 가라고 눈물로 읍소한다.
아버지는 영우에게 '부정취업'의 사실을 담담하게 전하며 자신이 보다 '정치적'으로 살아오지 못함을 후회한다고 말한다. 우영우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는 대신 사법고시도 치르고 성공한 변호사가 되었다면 자폐 스펙트럼을 가져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우영우에게 자신이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후회를 들으며 외려 시청자들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포기하고 아이를 선택한 한 청년 우광호 덕에 오늘의 우영우가 있음을 안다. 그녀의 어머니가 '정치적'인 선택을 하며 태산의 대표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아버지는 자신의 성공을 뒤로 미룬 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영우를 키웠다. 자신의 어머니조차 돌봐주지 않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용직을 마다하지 않았고, 왕따 당하는 영우를 위해 동그라미네 동네까지 이사를 했다. 왕따의 경험으로 인해 영우가 유일하게 먹게 된 김밤을 말다 이젠 김밥집을 하고 있다.
모두가 조금 더 단단하고 거대한 바위가 되려하는 세상에 영우의 아버지는 그 반대의 선택을 했다. 제 아무리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자폐 스펙트럼 아이라 하더라도 그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키워주는 부모가 없다면 세상에 그 기량을 펼칠 수 없다. 우리가 열광하는 우영우가 있기 위해서는 그 우영우를 깨질세라 보다듬은 아버지의 '계란'같은 선택이 있었다. 그런 아버지 덕택에 우영우는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승승장구'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 아버지의 선택은 돈 대신, 소덕동 사람들과 동산 위의 팽나무를 선택한 이장님을 비롯한 소덕동의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돈, 편의 등으로 대변되는 정치적인 세상의 허들을 힘겹게 넘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권민우처럼 나의 것을 '침범'하는 듯한 대상에 대해 예민해지곤 한다. 하지만 그런 우리들이 우영우를 '추앙'한다. 아버지의 후회처럼 좀 더 정치적으로 살고, 좀 더 편의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하면서도 기실은 '계란의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수임'조차 마다하던 시니어 변호사가 소덕동 사람들을 보고, 소덕동 동산 위에 올라가 '계란으로 바위치기'같은 사건을 기꺼이 맡은 것처럼, 그리고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우영우를 길러낸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제 우영우는 자신을 버린, 그리고 뒤늦게 자신을 스카웃하겠다는 엄마에게 말한다. 아버지를, 한바다를 선택하겠다고. 한번은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가장 통쾌한 계란의 복수'이다. 또한 소덕동 재판 역시 우영우 편 계란이 이겼다.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해방일지>에 이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바위같은 세상을 살아내는 '계란'들의 이야기이다. 보다 정치적이고, 계산적이며, 편의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여전히 우리는 곧이곧대로인 우영우의 신화같은 이야기에 감동한다. 내 안에 꼭꼭 숨겨놓은 '계란'의 마음, 그 계란이 바위를 깨뜨리는 '순수의 신화'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우당탕탕 vs. 권모술수? 한바다의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와 권민우(주종혁 분)가 서로를 헐뜯으며 지칭한 말일까?
우영우는 최수연(하윤경 분)을 통해 전해들은 권민우의 별명 '권모술수'를 입에 올리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ATM 기를 둘러싼 법정 싸움을 함께 맡게 된 권민우와 우영우, 그런데 1년짜리 계약 기간 동안 어떻게 해서라도 더 나은 실적을 쌓고 싶은 권민우는 함께 사건을 맡게 되었다는 사실조차 우영우에게 전하지 않는다. 사건을 맡긴 이화 ATM의 대표를 만나기 겨우 5분 전에야 자료를 전해주는 권민우에게 우영우는 그의 연수원 시절 별명을 내뱉는다. 보다 나은 성과를 위해 거뜬히 동료를 속이려는 권민우, '권모술수'라는 말이 딱이다.
권모술수 우영우? 하지만 5회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당탕탕 VS. 권모술수는 우영우와 권민우의 대립이 아니다. 변호사로서 우영우 자신의 포지션에 대한 질문이다.
오늘도 우영우는 아버지의 김밥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그런데 한 여성이 들어오며 다짜고짜 김밥이 비싸다고 난리다. 그러자 우영우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저런 손님을 두고 '진상'이라고 하느냐고 묻는다. 손님은 지금 나보고 그러는 거냐고 화를 벌컥내며 영우가 이 집 딸이냐고 묻는다. '손님, 다 드셨으면 그만 가세요,'라고 말하며 눈을 끔쩍이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보면 한참을 눈을 껌뻑이던 영우는 나직하게 말한다. '네, 아저씨,'라고.
그런데, 이런 융통성이 다른 방향으로 발휘된다면? 안그래도 우영우의 '무단 결근'이 유야무야 넘아가는 상황에 대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권민우였다. 더구나 1년짜리 계약직으로 무한 경쟁 궤도에 자신과 우영우가 놓여있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영우를 배제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런 권민우의 방식에게 우영우가 경고하자, 권민우는 뭐하나 조용하게 넘어가는 게 없다며 '우당탕탕'이라 맞불을 놓는다. 그 '우당탕탕'이 우영우의 '승부욕'을 불지폈다.
우영우가 맡은 사건은 ATM 기의 신기술을 둘러싼 업계 1,2위의 '판매 중지 가처분 신청' 사건이다. ATM 기의 직원 횡령을 막기 위한 카세트 인식 신기술, 과연 그것이 이화 ATM 기의 독자적인 개발인가를 둘러싼 공방이다. 이화 쪽은 자신들의 기술팀이 몇 년에 걸쳐 애를 써 만든 제품이라 하고, 그런 이화의 주장에 금강은 이미 미국에서 개발된 오픈소스의 기술이라 맞대응한다.
드라마는 두 업체 간의 진실 공방을 둘러싼 과정에 놓인 '변호사' 우영우의 진실 찾기로 이어진다.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가장 어렵다고 토로하는 우영우, 늘 '팩트'만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극우뇌형 인간' 우영우 입장에서는 '거짓'을 편의적으로 활용하는 인간 사회의 '권모술수'가 난공불락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그런데, 늘 우당탕탕 거리며 '진실'을 향해 '직진'하던 우영우가, 권민우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그 '진실' 앞에서 '네, 아저씨'같은 모습을 보인다. 진실이 아닌 거짓을 드러내는 '바디 랭귀지'를 고스란히 보이는 이화ATM 개발진의 모습을 본 우영우는, 그에게 '진실'을 다그치는 대신, 진실을 피해가는 '팁'을 전수해준다. 덕분에 '연극 배우'처럼 변신한 개발팀을 증언대에 세운 우영우는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룬다.
판매 중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도산' 위기까지 처한 상대 기업 대표가 우영우에게 한 장의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는 그녀가 두 눈 질끈 감은 현실 이면의 또 다른 진실을 말하고 있다. 연극배우처럼 천연덕스럽게 거짓 증언을 한 이화의 개발팀, 결국 우영우도 재판에 이기기 위해 뻔히 눈에 보이는 진실을 외면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그리고 편지를 본 권민우는 묻는다. 정말 몰랐냐고. 외려 니가 '권모술수'인 건 아니냐고. 아버지의 김밥집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 했던 '예, 아저씨'처럼, 재판만을 이기기 위해 우영우가 눈감은 '진실'이 한 사업체의 '목숨값'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 우영우의 고개가 떨구어진다. '후회합니다.'
후회합니다 우당탕탕 우영우, 권모술수 권민우처럼 자신도 별명을 가지고 싶다던 최수연, 늘 성공과 배려 사이에서 늘 머뭇거리는 수연에게 우영우는 '봄날의 햇살'이라고 말한다. 손에 힘이 부족해서 병을 따지 못하는 영우 대신 병을 따주고, 학교 다닐 때부터 동료들이 영우를 따돌리지 못하게 애쓰고, 영우가 미처 못챙긴 정보들을 알려주었던 수연, 하지만 그래서 늘 세상이라는 운동장에서 밀쳐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수연에게 영우는 말한다. 봄날의 햇살처럼 밝고 따듯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상대방의 눈빛을 보지 못해 '진실'을 파악하기 힘들다던 우영우, 하지만 우영우는 '팩트'를 근거로 하여 그 누구보다 인간이 가진 진정성의 빛깔을 잘 파악한다. 그런데 그런 우영우조차도 '현실의 허들' 앞에서 '권모술수' 우영우가 되고 만다.
앞서 1회에서부터 4회에 이르기까지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서도 '변호사'라는 직업을 완수해내는 모습을 통해 보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녀의 별명, '우당탕탕' 우영우처럼 그 과정은 시끌벅적했고, 때로는 사표를 내던질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은 지난한 도정이었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낸 우영우는 이제 또 다른 '미션'을 받는다. 그건, 그녀의 방에 이화의 대표가 걸어준 해바라기 그림처럼 세상의 햇살을 얻기 위해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기도 해야 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의 또 다른 '허들'이다. 그 직업적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우영우가 겪고 있는 성장통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우영우만이 아니라, 우영우나, 권민우, 그리고 최수연 모두, 즉 이제 막 '세상'이라는 관문에 첫 발을 내딛은 청년들에게 던져진 공통 과제이다.
자신이 한 발 더 앞서나가기 위해, 함께 수임한 동료에게 필요한 정보조차 나누어 주지 않거나 왜곡하며 '승부'를 거머쥐려는 권민우, 자신의 선함과 경쟁 사이에서 늘 갈등하는 최수연, 그리고 고지식한 우당탕탕 우영우조차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그런 '시험대'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의 '미션은 생존과 경쟁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요즘 젊은이들 모두의 '현실'일 것이다.
변호사라는 자신의 존재 대신 자신의 장애를 먼저 인지하는 세상 앞에 우영우는 사표를 던진 바 있다. 이제 스스로 '권모술수'가 되었던 우영우는 다시 도망치는 대신, 해바라기 그림을 내린다. 그리고, 그녀에게 온 '편지'를 그 자리에 건다. 과연 우영우의 다짐처럼 그녀는 세상을 따스하게 밝히는 봄날의 햇살같은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그녀의 또 다른 '우당탕탕'를 기대해 본다.
여전히 환타지 드라마 장르에서 홍미란, 홍정은 작가의 영역은 발군이다. 앞서 '호텔 델루나'라는 '연옥'과 같은 공간을 매개로 생과 사를 오가는 '인연'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홍작가들은 이번에는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대호국'이라는 가상의 국가로 시청자들을 초대한다.
일찌기 <쾌걸 춘향> 이래로, <쾌도 홍길동>,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 <화유기> 등 잘 알려진 고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켜왔던 두 작가들은 이제 스스로 '고전'을 만들어 내는 경지에 이르른 듯하다. 작가들이 만들어 낸 '대호국'은 그래서 그 무엇이라도 가능한 공간이다. 이 곳에 왕이 지배하는 '정치 체제'와 별개로 '송림'이라는 무협 집단을 설정하고 무공을 넘어선 환타지적 능력의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서사를 진행시킨다. 여기에 '몸과 혼을 바꿀 수 있다는' 신비하고도 공포스러운 '환술'을 통해 드라마적 갈등 요소를 극대화한다.
두 명의 홍작가들이 걸출한 건 매번 신선한 '환타지 월드'를 만들어 내는 데만 있지 않다. 그들은 2004년부터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시간동안 여전히 '청춘'의 서사를 공감가게 그려내고 있다. 배우의 이름보다 '나상실'이라는 캐릭터 명으로 더 친숙해진 한예슬, 드라마의 제목이 곧 주인공 이름이었던 '미남이'의 박신혜, 1300살도 넘은 장만월을 천연덕스럽게 해낸 아이유 등, 당대 청춘 스타들은 모두 '통과 의례'처럼 홍작가들의 드라마를 거쳤다.
이번에도 아이돌 출신의 황민현과 아린의 출연이 화제가 된 드라마, 제작 초반 주연 배우 캐스팅의 잡음을 불식하고 드라마를 이끌고 있는 건 안정적 연기력이 뒷받침된 이재욱과 정소민이다.
이재욱이 분한 장욱과 정소민이 분한 무덕이, 두 주인공은 대호국 명문가 장씨 집안의 아들과 그의 시종이라는 신분 상의 차이를 지녔지만, 그런 드러난 '상태'와 달리, 두 사람 모두 '갇힌 자'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갇힌 청춘 장욱과 무덕이 청춘(靑春), 푸를 청에 봄 춘, 이 한자음의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춘'은 봄날의 푸른 싹처럼 거침없이 분출되는 젊음의 기운이다. 그런데 그 '분출'되어야 하는 기세가 갇혀있다면? 역사 이래 수많은 청춘들의 '불행'은 자신들의 뜻대로 그 청춘의 기세를 발산할 수 없음에서 기인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처지에서 어찌해볼 수 없어 고통받는 청춘의 서사, 이보다 더 청춘스러운 이야기가 있을까?
<환혼>의 장욱과 무덕이 역시 그들이 가진 청춘의 기세를 제 맘대로 펼쳐낼 수 없는 처지라는 지점에서 '연'이 닿는다. 장씨 집안의 아들, 하지만 정작 집을 떠난 장욱의 아버지 장강은 장욱이 가진 '기문'을 막아버렸다. 당대 최고의 고수 장강이 막은 아들의 기문, 당연히 그 누구도 감히 장욱이 술법을 익힐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도울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어느날 저질 체력의 하인으로 장강 앞에 나타난 무덕이는 이 드라마의 주된 갈등 요소인 '환혼인'이다. 이름마저 '낙수', 그녀가 지난 자리에 사람들의 목이 떨어진다는 무림의 고수 낙수는 하지만 송림에 쫓겨 죽을 위기에서 눈먼 소녀 무덕이의 몸을 빈다.
무덕이의 육체에 갇힌 낙수, 아버지가 막아 놓은 기문으로 자신의 육체에 갇힌 장욱, 두 사람은 도련님과 시종으로 만났지만 14번의 파문을 거듭하며 무림의 세계를 익힌 장욱은 무덕이 안의 낙수를 알아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를 거두지 않은 송림의 사람들 대신 '낙수', 아니 낙수의 환혼인 무덕이를 자신의 스승으로 삼는다.
남장 여자, 귀신을 무서워하는 호텔 지배인, 기억을 잃은 재벌 등 늘 '아이러니한 처지'의 주인공을 캐릭터화 시키는데 능숙한 두 홍 작가들은 이번에도 육체 안에 갇혀진 두 남녀 주인공들을 통해 그들의 서사를 펼쳐나간다. 특히 여주인공의 색다른 캐릭터에 독보적인 작가들 답게, 시종이자, 스승인 무덕이라는 신선한 여성 캐릭터를 풀어나간다.
장씨 집안의 아들이라 송림의 내노라하는 스승들을 다 '섭렵'했지만 그들 모두 정작 장욱의 '기문'을 열어주려 엄두도 내지 않는 상황, 하지만 무덕이는 달랐다. 물론 무덕이의 다름은 그저 도련님 장욱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가 고수의 경지에 이르면 그의 '기력'으로 저질 체력의 육체 속에 갇힌 낙수 자신이 가진 본래의 '무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해 관계'가 서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장욱의 스승이 된 무덕이는 고수가 되고 싶다는 그의 열정을 '허세'라며 주저앉히는 다른 송림의 스승들과 달리, 그의 '기세'를 인정하고 복돋아 준다. 심지어 벼랑 아래로 떨어뜨려 살아남은 아이만 카우는 '스파르타식'으로 독약을 먹여 송림에서 기문을 열어줄 수 밖에 없는 방식으로 장욱을 사지로 몰아넣어 외려 그걸 통해 장욱의 '살길'을 도모하는 '극한의 교육'을 행한다. 그건 늘 극한의 고통과 죽음의 위기 속에서 살아왔던 '낙수'이기에 가능한 교육이다.
죽음의 위기를 통해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기문을 열 수 밖에 없도록 만든 무덕이 안의 낙수, 그렇게 남들은 '허세'라던 자신의 열망을 인정받는 과정을 통해 장욱은 '무덕이'에 대한 믿음을 형성해나간다. 그저 장씨 집안의 아들로 허세나 부리며 살아가라는 장욱을 무술에 대한 열망을 지닌 한 사람으로 온전히 이해해준 사람이 무덕이가 처음인 것이다.
또한 무덕이 역시 오랜 시간 홀로 수련해 오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만을 상대하던 고독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아왔는데, 위기의 상황에서 기꺼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장욱에게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일찌기 가족들을 잃고 복수를 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온 그녀를 '보호'해주려고 한 사람은 장욱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인정하고 허용하지 않는 세상 속에 서로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으로 '신뢰', 그리고 차츰, 그 신뢰를 밑바탕으로 한 '애정'의 걸음을 옮긴다.
물론 드라마는 장욱과 그의 스승을 자처한 무덕이, 그 안의 낙수라는 두 주인공의 인연을 중심으로 풀어가지만, 거기에 서로에게 첫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낙수와 서율(황민현 분), 무덕이를 '똥무더기'라 부르지만 어느덧 그녀를 신경쓰고 있는 세자 등, 무더기를 중심으로 한 남성 캐릭터들이 포진한 '역할렘물'의 요소도 이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흥미 요소이다.
물론 거창한 무림의 세계, 그리고 환술이라는 신비하고도 공포스러운 '신선한 환타지 월드'를 표방했지만 정작 드라마는 중국 무협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 낯이 익다. 또한 환술 역시 새로운데 어딘가 본 듯한 술법이다. 또한 송림을 배경으로 한 무술의 쟁투를 그리지만 스토리의 진행은 홍 작가들 특유의 치기어린 대사 들로 구성된다. 그럼에도 이제 기문이 뚫려 매회 무공이 업그레이드 되어가는 장욱과 그런 장욱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스승 무덕이의 환타스틱한 러브 스토리는 본격적인 괘도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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