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은 '영화'를 좋아하셨다. 지방 소도심에 딱 하나 있었던 극장, 그곳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가야 했다.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가던 '극장',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꽃피는 팔도강산>도 아마 그렇게 보게 된 영화였을 것이다. 왜 아니 안그랬겠는가. 1967년 국도극장에서 개봉한 <팔도강산>은 당시로서는 32만 6000명이 관람한 히트작이었으니 돌고 돌아 우리가 살던 그 지방 소도시 유일한 영화관에서도 '개봉'의 혜택을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내가 본 영화가, <팔도강산>의 몇 번 째 편이었는지는 어린 나는 몰랐다. 김희갑, 황정순 배우가 나오고, 당대에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나왔다는 아스라한 기억뿐, 1967년부터 팔도강산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6편의 영화, 번외로 <팔도 며느리> 중 어느 한 편이었을 것이다. 

 

 


흔히 <꽃피는 팔도강산>으로 알려진 이 영화는 '근대화의 성취'를 빛나게 드러낸 시리즈 영화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제일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두 노부부가 각지에 사는 자식들을 만나러 떠난다는 설정은 같았지만, 그 이유가 서울에 살던 기업체 사장이면서도 부모님을 나몰라라하는 큰 아들네와 여관을 운영할 정도로 잘 살지만 아내에게 꼭 잡혀사느라 부모님을 제대로 대접도 못하는 둘째 아들로 인해, 지방에 사는 다른 자식들을 찾아나서는 슬픈 이유에서이다. 이미 그 당시 축적된 '부'의 부조리를 '비판'적으로 다룬 '현실적 고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찾아간 지방에 사는 아들네 학교 선생님이라지만 형편이 어려워 당시에 금지된 '미제' 물건을 팔다 경찰서에 잡혀가고 만다. 결국 거기서도 얼마 있지 못한 두 부부, 그런 부부를 가장 따뜻하게 맞아주는 건 가장 가난한 광부로 일하는 아들이다. 이렇게 영화는 60년대 산업화 이후 한국 사회에 나타나기 시작한 '빈부격차'와 '배금주의'의 속물성을 예리하게 꼬집는다. 

최초의 국책 영화 
하지만 이렇게 당대 이미 사회적 갈등이 되고 있는 계층의 문제를 다루었던 <팔도강산>은 공보부 산하 국립 영화 제작소로 주체가 바뀌며 당시로서는 거금이었던 1800만원이 투입되어 원작의 김희갑, 황정순 배우는 물론, 김승호, 최승희, 김진규, 이민자, 박노식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출연, 두 노부부가 자식들이 사는 경제 개발의 성과가 드러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몰라보게 발전한 조국에 감탄하는 한편, 자식들이 조국의 근대화에 솔선수범하고 있다는 거에 자부심을 느끼는 '정부 홍보 영화'인 <꽃피는 팔도강산>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팔도강산 좋을씨구 딸 찾아 백 리 길/ 팔도강산 얼싸안고 아들 찾아 천 리 길/ 에헤야 데헤에야 우리 강산 얼씨구/ 에헤야 데헤에야 우리 살림 절씨구/ 잘 살고 못 사는 게 팔자만은 아니더라/ 잘 살고 못 사는 게 마음먹기 달렸더라.”


전국 각지의 유명 명승지에서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최희준이 직접 <꽃피는 팔도강산>의 주제가를 부르는 것을 비롯하여, 현인, 최숙자, 은방울 자매 등이 <신라의 달밤>, <삼다도 소식>, <목포의 눈물> 등의 히트곡을 불러 영화적 재미에 '흥'을 더해준 이 영화는 1967년 국도극장에서 개봉, <미워도 다시 한번>< 성춘향>에 이어 60년대 세 번째로 관객을 많이 동원한 영화가 되었다. 

그런데 1967년에 <꽃피는 팔도강산>이 만들어진 계기에는 '선거'가 있었다. 5월의 대통령 선거, 6월의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박정희 정권은 경제적 발전 성과의 홍보 수단으로 <꽃피는 팔도강산>을 무료로 보여주는 등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렇게 국책 영화의 효시가 된 <꽃피는 팔도강산>,  이에 당시 야당인 신민당은 '정부 업적을 소개하는 영화를 무료로 상영'하는 건 선거법 위반이라며 상영 중지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결국 선거 관리 위원회 위원들 9명이 직접 보고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무사히 상영하게 된 영화, 많은 관객 동원으로, 그리고 그를 통한 '경제 발전'이라는 국책 홍보의 성공적 사례로, 해외에 있는 사위들을 찾아가는 <속 팔도강산>을 비롯하여, <내일의 팔도강산(1971)>, <우리의 팔도강산(1972)>, <아름다운 팔도강산(1972) 등이 계속 만들어 졌고, <팔도 사나이>, <팔도 식모>, <팔도 며느리> 등 '팔도' 시리즈의 효시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74년에는 kbs 연속극으로 만들어져 75년까지 398회 방영, 시청률 40%의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며 스테디 셀러의 왕관을 유지했다. 

 

 
가족의 원형, 가족의 이상형 
1971년작 <내일의 팔도강산>에서 tv 좌담회에 참석한 김희갑 배우는 조국의 근대화를 예찬하는 일장 연설을 하는 등, 국책 영화로서 <팔도강산> 시리즈 곳곳에는 경제 발전에 대한 노골적 찬사가 빈번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계속 만들어 지고 , 드라마로 만들어 질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은데에는 그저 잘 살아진 나라에 대한 성공적 홍보에만 그 이유가 있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낯뜨거운 홍보에도 불구하고, 당대 내로라 하는 배우들의 호연과 함께, 1남6녀의 대가족이 '아롱이 다롱이' 살아가는 모습과 전국에 서로 떨어져 있어도 결국 '한 가족'이라는 우리 사회를 지탱했던 '가족주의'에 대한 충실한 해석이 오랫동안 이 작품을 사랑받도록 한 결정적 이유가 아닐까.

코믹 배우 출신답게 아버지라지만 늘 말이 좀 앞서는, 하지만 결정적일 때 집안의 기둥으로써 아버지상을 강직하게 보여주시는 김희갑 배우,  그런 아버지의 그늘에서 조용히 계신 듯 하지만, 시련의 상황에서 그 누구보다 의연하게 그리고 따스하게 자식들을 다독이며 어루만지는 어머니 황정순 배우, 두 분의 모습은 영화가 처음 만들어진 1960년대 이래 우리네의 '부모'님의 전형으로 오래도록 아로새겨졌다. 

 

 

그리고 영화 설정상 근대화의 역군으로 등장하는 전국의 자식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들의 겉치레를 떨구고 보면, 서로 사랑하고 헤어지고, 심지어 사별하고, 그리고 장인 장모님의 주선으로 사위가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등,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사의 면면이 정겹게 잘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6,70년대 우리 사회를 지탱했던 '노력하면 성취'해 낼 수 있다는 '근대적 인간형'의 전형을 드라마 속 인물들이 각자 직업은 다르지만 충실히 수행해내며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적 메시지를 주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인기' 요인이다.  그리고 아직은 넉넉하지도 않고, 사업적 실패를 겪어도  결국은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다시 힘을 얻고 살아가는, 서로가 전국에 아니 전세계에 떨어져 있어도 유감없이 발휘되는 '가족'의 힘이야말로 이 영화를 오래도록 스테디셀러로 만든 요인이 아니었을까. 

 

영화의 엔딩, 이제는 쑥쓰러워서 하지도 않는 회갑연, (영화 속 노부부로 등장하는 김희갑, 황정순 부부가 겨우 '환갑'이다) 전국의 자식들이 부모님을 뵈러 고향인 '서울'로 이른바 '역귀성'을 한다. 물론 영화 속 엔딩은 '환갑'이지만, 이렇게 전국의 자식들이 부모님을 뵈러 찾아오는 그 '귀향'의 의식이 여전히 '추석'하면 부모님을 찾아 고향으로 떠나는 우리네 명절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추석이라는 의미가 예전같지 않다지만 여전히 '가족'들의 대표적 명절이 된 추석에 그 예전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서 봤던, '가족' 영화의 대표작인 <꽃피는 팔도강산>을 끄집어 내 보는 건 그 이유에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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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약 2019년에 이 영화가 다시 리메이크된다면 어떨까? 환갑이라도 '할머니, 할아버지' 소리에 난색을 표하는 시대, 게다가 이 시대 환갑을 맞이한 부모님 세대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세대였으니 1남6녀나 자식들이 있다는 거 자체가 우리 시대엔 난센스다 싶다. 그래도 전국 방방곡곡에 1남6녀가 있다치고, 만들어 진다면 2019년발 <꽃피는 팔도강산>은 국책영화가 되기 이전 원작이 보여줬던 '빈부격차'의 페이소스가 듬뿍 담긴 '가족애사'에 가깝지 않을까. 저렇게 부모님이 다짜고짜 찾아든 다는 거 자체가 이제는 부모자식 사이에도 '실례'가 되는 세상, 불과 몇 십년이 되지 않은 시절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큰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변화를 겪어 왔는가를 역설적으로 <꽃피는 팔도강산>은 보여준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 다시는 만들어 질 수 없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사족으로, 왜 '팔도강산'이었을까? 원래 남과 북을 다 합쳐 팔도강산이라 관례적으로 말하던 우리의 '언어 습관'에 굳이 딴지를 거는 대신, 북도와 남도로 나뉘어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각각으로 치는 '꿈보다 해몽'식의 해석으로 <팔도강산>이 되었다 한다. 

by meditator 2019. 9. 11. 00:00

9월 8일 <sbs스페셜>은 체인져스에 대해 다뤘다. 여기서 말하는 체인져스란, 혁신을 바탕으로 돈버는 판을 뒤집어 바꾼 사람들이란 말로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각종 '스타트업' 기업을 만든 사람들을 통칭한다. 특히 나날히 극심해져가는 취업난, 거기에 어렵사리 직장을 구해도 다시 돈 걱정을 해야 하고 '미래'를 꿈꾸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 대신 창업을 택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2014년에 비해 거의 두 배가 늘어난 30세 미만의 창업자들, 과연 이들 '체인져스'의 '인피니티 스톤'은 무엇일까? 



 

단군이래 가장 돈벌기 좋은 시대
'단군이래 가장 돈벌기 좋은 시대', 자영업을 하는 34살 주인규 씨가 이 시대를 정의내린 말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런 그의 정의에 부합하게 경제 방송 피디를 하던 그가 월 7천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말이 경제 전문 방송 피디지, 자신이 분석하는 경제 상황, 눈 앞에서 몇 천억이 오고가는데도 정작 그가 받는 월급은 170만원 남짓이었다.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돌파하고자 창업을 생각했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까 하고 고민하던 그가 찾아낸 건 바로 이 시대 고객들의 니즈(needs), 사람들이 검색하는 제품과 그에 걸맞는 상품 정보량을 비교하여, 상품에 비해 검색량이 많은 제품을 중심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성공 메뉴얼을 자신의 중학교 친구였던 정재민씨를 비롯하여 온라인에 공유하였다. 예전만 해도 쇼핑몰을 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개설하는데만도 돈이 들었지만 이제 그런 초기 비용조차 들지 않는 세상, 누구라도 자신만의 사업에 도전할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만의 쇼핑몰 사업을 하는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세포 증식하듯이 증가한다 하여 이른바 '세포마켓'이다. 

 

 

이 시대 체인져스들의 인피니티 스톤? 
다큐는 그렇게 스타트업을 창업하여 성공한 이들의 인피니티 스톤, 즉 성공 요인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4년전만 해도 스위스 로잔 공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던 서찬수 씨, 그때까지 그의 삶은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가고, 교수를 꿈꾸는 공학도의 루트를 따라가는 삶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일로 인해 지도 교수와의 사이가 틀어지고 학교에서 짤리게 되면서 서찬수씨의 인생 궤도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스위스 유학을 오면서 공부하는 틈틈이 가이드 일을 하던 그는 그 가외로 하던 가이드 일에서 자신의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여행 까페를 운영중인 그는  평균 월 3000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가 돈버는 방식이 지금까지 '자본주의적' 방식과 좀 다르다. 파리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서찬수 씨 까페의 회원들에게는 전문 사진사가 무료로 '작품'같은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그런 사진사에게 지불되는 비용은 500만원. 500만원을 주고, 무료로 사진을 찍어준다니? 그렇다면 서찬수씨의 이익은 어디서 발생하는 것일까? 무료로 사진 서비스를 받은 이들은 까페에 솔직한 후기 4개를 남겨야 한다. 그렇게 솔직한 후기를 보기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고, 바로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광고가 서씨에게 돌아가는 이윤 창출의 통로이다. 

이처럼 이 시대 체인져스들의 이윤 추구 방식은 지금까지 자본주의적 방식과 다르다. <SBS스페셜>의 취재 작가로 직접 체인져스의 대열에 뛰어들어 '문구' 쇼핑몰을 연 박해인 씨 30일 기준으로 월세 35만원을 감당할 만한 이익을 목표로 뛰어들었지만 고전하는 중, 그런 박씨의 쇼핑몰에 멘토로 나선 주인규 씨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해 좀 더 고민을 하라는 조언을 한다. 

생후 20개월된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 정지예 씨는 회사 화장실에서 육아 고퉁을 해결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직장맘들의 고민을 접하다 베이비시터 중계 플랫폼을 창업했다. 기존의 베이비시터에 더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대학생들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베이비 시터 공급 시스템을 원활하게 한 덕에 창업 3년, 매해 두배가 넘는 수익을 남기고 있는 중이다.

<마켓 컬리>의 김슬아 대표의 경우도 직장인이었던 자신에게 필요한 새벽 배송을 찾다가 자신만의 사업 아이템을 찾은 경우이다. '다이어트 코칭', '개인 라디오' 등 그저 돈을 벌어야지가 아니라, 목적과 가치 판단이 분명한 아이템들이 이 시대 '체인져스'들의 인피니티 스톤이다. 이처럼 이 시대 새로운 스타트업에 도던하는 고객들의 변화하는 '니즈'에 집중한다.

물론, 다큐는 무조건 극찬만 하지는 않는다. 월세 35만원을 목표로 쇼핑몰을 창업했던 박혜인 작가, 기한이던 30일의 중반이 지나도록 주문량 0의 고전을 면치 못한다. 성공 사례자인 주인규씨의 도움을 받아 심기일전 홈페이지부터 바꿔 주문은 늘었지만 30일의 기한이 되었을 때 벌어들인 돈은 15만4천원, 순수액은 매출의 10%인 15000원을 겨우 넘겼다. 결국 쇼핑몰 대신 자신이 원래 하던 작가의 일로 돌아선다. 주인규 씨 역시 창업 첫 해 1000만원의 수익도 못올렸다며 생각보다 스타트업 창업에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단 점을 강조한다. 

 

 

벤처 붐에 이은 스타트업 붐? 
여기서 최근 활성화된 스타트업 창업 시장과 관련하여 김대중 정부 시정의 벤처 기업 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IMF외환 위기 이후 무너진 시장 경제를 다시 일으켜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김대중 정부는 벤처 기업 육성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거기에는 외환 위기 이후 오늘날처럼 심각해진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이라는 필요성도 함께 했다. 정부 주도의 벤처 기업 육성 제도 정책에 힘입어 1998년 7만 6000명이던 벤처 고용인구가 2001년 31만 6000명까지 급격하게 증가했다. 

하지만 20002년 32만 여명으로 줄었고, 오늘날 당시에 출발했던 네이버, 다음, NC등 몇몇 기업들만 이제는 네임드한 거대 기업으로 승승장구한 반면, 팬택, 드림위즈 증 수많은 '벤처'에 명운을 건 기업들이 사라져 갔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벤처 버블 가운데 수많은 기업들과 사람들이 도태되었다. 

다큐에서 스타트업 창업을 한 서찬수씨는 이런 스타트업 창업을 낯설지만 새로운 인생의 오솔길이라 칭한다. 새로운 길이지만, 그 길은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없는 낯선 외로 난 길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큐에서 등장한 여러 성공한 스타트업의 사례는 '대박' 아이디어 이지만, 또 한편에서는 누구나 쉽게 접근하기 힘든 '특별한' 사례이기도 하다. 물론 벤처가 그렇듯, 2019년의 스타트업이 불황과 실업에 몰린 이 시대 젊은이들의 생각 가능한 선택지라는 점에서는 유효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그건 공부만 하던 이들이 갑자기 예체능 도전을 하듯 생각만큼 쉬운 길이 아닌 듯 보인다. 

게다가 그들이 창업한 '아이템'들 대부분이 '소비' 중심이라는 점에서, 장기 불황이 예고되고 있는 우리 경제 상황에서는 더더욱 위험 부담이 커진다.  과연, 그 '특별하고도, 특수한' 오솔길에 자신을 던질 용기, 안그래도 하루하루 살기도 힘든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그건 또 다른 '무모한 도전'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그 체인져스의 인피니티 스톤은 어쩌면 이 시대의 또 다른 '벤처 버블'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내포한다. 

by meditator 2019. 9. 9. 16:16

'스카이 캐슬'은 어느덧 고유명사가 된 듯하다. 2018년에서 2019년에 걸쳐 jtbc를 통해 방영되었던 미니 시리즈 <스타이 캐슬>은 대한민국 상위 1%에 들기 위해, 혹은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부모와 자식들이 벌였던 무한질주 '리얼' 코믹 풍자극이었다. 요즘처럼 드라마 시청률이 저조한 시대에 23%를 넘는 획기적인 반응처럼 '교육'에 대한 드라마가 보인 욕망에 우리 시대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호응했다.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드라마 속 야망의 화신으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공부를 닥달했던 차민혁 교수(김병철 분)는 사실 순진한 아빠였다는 우스개가 회자되듯, 어느덧 우리 사회 '교육 에스컬레이션'의 바로 미터가 되었다. ​​​​​​​하지만 비극적 죽음으로 시작했던 시작과 달리 이도저도 아닌 좋은 게 좋은 식으로 마무리된 드라마는 애초에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가졌던 '문제 의식'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바로 이 '아쉬움'을 달래줄 '장르'물로서 <미스터 기간제>가 완결지었다. '극사실주의적'인 <스카이캐슬>이다. 

 

 

<스카이 캐슬>의 시작은 3대째 의사를 만들고도 결국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둔 이명주의 죽음으로 부터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미스터 기간제> 역시 한 사람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명문 사학이라는 천명 고등학교 학생 정수아(정다은 분)가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다 죽음에 이르고 같은 학교 학생 김한수(김동주 분)가 가장 유력한 살인용의자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민국 최고 로펌인 '송하'가 개입된다. 송하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 송하에서 벌어지는 온갖 골치아픈 사건을 해결하는 기무혁(윤균상 분) 변호사가 참전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송하 로펌 대표 이도진(유성주 분)는 에이스 기무혁에게 적당히 검찰과 형량 협의하여 빨리 마무리할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법정에 선 기무혁은 대표의 청과 달리 김한수의 무죄를 주장하며 사건의 승기를 잡으려고 하고 그런 변호사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정작 김한수는 자신의 변호사 기무혁을 공격하고, 자실 시도를 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기무혁은 변호사 자격을 정지당하게 되는데. 

 

 

기간제 선생님이 된 변호사 
<미스터 기간제>의 설정은 독특하다. 최근 드라마 계에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명문 사학' 비리나, 교육 문제가 하나의 '클리셰'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이 '클리셰'의 접근을 기간제 선생님이 된 변호사라는 신선한 설정을 통해 돌파해 나간다. 

기강제 기간제 선생님으로 변신한 기무혁은 직접 명문 사학 천명의 현장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가 마주한 건 학교 내 상위 1%의 그룹으로 자리잡은 송하 로펌, 국회의원 유양기 (김민상 분) 등의 자제들 유범진(이준영 분), 이기훈(최규진 분) 등에 의해 통솔되는 학교와 그런 그들의 스펙을 관리해주는 재단, 그리고 그 아래 신분제 처럼 층위가 나뉘어져 굴러가는 아이들의 말이 교육이지 현실의 또 다른 비열한 축소판이다. 

그리고 기간제 선생님이 된 기강제, 아니 기무혁 변호사는 김한수, 그리고 정수아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천명 재단의 비리에 한 발, 한 발 다가서게 되고, 그 과정에서 스카이 캐슬 정도는 알고보니 애교이자, 그 정도면 '노력'이라 할만한 '교육 에스컬레이션' 협장의 실체를 알게 된다. 

명문 사학이라는 명목 하에 모여든 쟁쟁한 사회 지도층의 부모들, 이들에게 각종 명목으로 '후원'을 받은 재단, 그리고 그 실질적 관리자 이태석 행정실장(전석호 분)은 그런 후원만큼 학생들의 스펙을 '관리'한다. 여기서 관리라 함은 상위 1% 학생들 사이에서 협의된 각종 경시 대회에 따라 학생들 성적을 조작하고 스펙을 만들어 주는 것. '후원'을 하지 않은 대다수의 학생들은 바로 이런 상위 1% 학생들의 스펙 만들기 들러리가 되는 상황.

하지만 천명 재단의 후원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법정에서 기무혁이 다가가려 했던 진실, 개인적으로 연예 매니지먼트를 운영했던 이태석 실장은 불우한 환경의 학생들을 고용하고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스폰서'가 될 수 있는 국회의원, 검찰 등의 주요 인물들에게 각종 성접대를 비롯한 향응을 제공토록 한 것. 바로 정수아가 그 성접대에 동원된 학생이었던 것이다. 

 

 

괴물이 만든 괴물 
정수아의 살인 사건으로 시작된 사건은 이기훈의 허락을 얻고 학교 내에서 실전 격투기를 벌이고 이를 중계하는 손준재에 의한 사회 배려자 전형 안병호에 대한 '이지매', 그리고 안병호를 통해 김한수에게 전해진 '자살 유도 메시지' 등 사건의 실체를 향해 다가가던 중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태석이 자살로 위기에 봉착한다. 하지만 실체를 알고 반목하던 기무혁과 천명고 하소연(금새록 분) 선생, 차현정(최유화 분)검사가 힘을 합치고, 반면에 천명고 4인방이던 유범진, 이기훈, 한태라, 나예리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며 결국 정수아 사건의 진짜 범인인 유범진이 드러나기에 이른다. 

마지막 회, 그러나 유범진은 법정에 서지 않는다. 천명고 옥상에서 만난 유범진은 자신을 법으로 옭아매지 못하는 기무혁 변호사를 조롱한다. 하지만 그런 유범진에게 기무혁은 말한다. 진짜 승리는 법정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고. 지금까지 학교의 진정한 상위 1%의 실세로서 학교와 아이들을 '조종'해왔던 유범진, 하지만 그의 아버지 유양기 국회의원이 정수아와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폭로되며 나아가 그걸로 협박하는 이태석의 살인을 교사했다는 범죄로 법정에 서게 되며  이제 더는 학교에서 예전의 '권력'을 누릴 수 없게 된다. 그가 살인도 감수하며 설계했던 '미래'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특권' 의식으로 누군가를 맘대로 조종하고, 심지어 아버지의 미래, 그리고 곧 자신의 미래에 흠집이 될 누군가의 목숨마저도 거침없이 거두어 왔던 유범진의 설계가 이제 더는 무의미해졌다는, 그래서 그가 자신의 오랜 연인이라 칭해왔던 한태라를 죽일 때 했던 것처럼 오래도록 사람들이 유범진과 그의 아버지를 '오명'으로 잊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기무혁의 '복수'이다.

<미스터 기간제>는 최근 한 달 여 우리 사회를 들끓게 만드는 문제로 인해 더욱 '시의성'이 느껴지도록 만든 드라마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살인 교사'도 거침없는 정치인 아버지, 그 아버지는 법정에서 조차 자신의 양심을 운운하며 '아들'을 핑계댄다. 그러면서 권력의 뒤에서는 정수아라는 미성년자를 탐하는 부도덕한 행위에 거침이 없었다. 이렇게 한 손에 권력, 그리고 다른 한 손에 '탐욕'을 쥔 '괴물'인 아버지 '유양기'의 아들로서 자라, 그의 아들답게 살라는 닥달을 받은 유범진은 그의 아버지못지 않은 '괴물'이 된다. 흔히 그 예전 속담에서 처럼 '바담풍'을 하며 '바람 풍'이라 하라 해도, 그 아비를 보고 배운 자식은 '바담 풍' 하기 마련,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는. 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우리 사회 입신양면의 현실을 이보다 더 섬뜩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세 치 혀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현혹하고, 자신의 세력권 아래 오도록 '조종'하며,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은 '사이코패스', <미스터 기간제> 속 유양기, 유범진 으로 귀결된 '사이코패스 부자는 여느 '장르물'의 범죄자와 달리, 우리 사회 내 교육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는 이제는 어언 '신분제'로 고착되어가고 있는 대한민국 권력과 탐욕의 현실이 배태해낸 '괴물'이라는 점에서 '극사실주의'이다.

'부도덕'한 권력을 쥔 '아버지'의 세대가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탐욕스럽게 키워낸 아이는 무엇이 될까? <미스터 기간제>는 질문한다. 바로 <스카이 캐슬>이 낭만적으로 마무리지은 진짜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하지만 장르물로서 <미스터 기간제>속 부도덕한 부자는 법적이든 사회적이든 통렬한 '처벌'을 받게 되었다. 과연 우리가 만난 현실이 '괴물'들은 어떨까. 그렇게 따지면 여전히 장르물임에도 <미스터 기간제>는 현실에 비하면 또 하나의 '환타지'일 지도 모르겠다. 극사실주의 장르물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 이 고착된 신분제 사회에 대한 현실적 답은 아득하다. 

by meditator 2019. 9. 6. 16:41

<타인은 지옥이다>는 2018년 3월부터 연재를 시작하여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이제 겨우 인턴을 시작한 젊은이 윤종우(임시완 분)가 쪼달리는 형편으로 인해 허름하다못해 음산한 재개발지구 고시원에 살게 되며 맞부닥치게 된 고시원보다 더 음산한 고시원 사람들, 거기에 덧붙여 그의 서울살이를 팍팍하게 만드는 직장 내 인간 관계의 이야기가 단절된 관계 속에서 도시의 삶을 홀로 이어가는 이 시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바로 그 화제의 <타인은 지옥이다>가 김희애, 김상중이 출연한 <사라진 밤>을 감독했던 이창희 감독의 연출, ocn 시네마틱으로 돌아왔다. 

드라마로 돌아온 웹툰
화제의 웹툰이었던 만큼 시작하기 전부터 과연 드라마 속 '기괴했던 인물'들이 얼마나 드라마로 잘 구현될 것인가 대한 관심이 컸다. 너스레를 떠는 말솜씨와 다르게 음산한 고시원을 방치하며 좋은 청년들만 남았다는 이상한 주인 엄복순, 더듬는 말과 기괴한 웃음 소리의 306호 일명 '키위'라는 변득종, 문이 열려진 방안에서 늘 어디선가 지켜보는 안경 속 두 눈으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게 만들던 313호 홍남복, 그리고 멀끔하게 생겼지만 한 손으로 조폭 아저씨를 제압한다거나 306호, 313호를 벌벌 떨게 만드는 공포의 대상인 유기혁 등의 캐스팅이 관건이었다. 그리고 이정은, 박종환, 이종옥, 이현욱의 캐스팅은 그런 기대에 딱 맞아 떨어졌다. 

거기에 이제 vr 버전 서비스를 실시했다지만 드라마로 구현된 에덴 고시원은 그 자체로 이미 스릴러가 되어버릴 만큼 폐소 공포증을 불러 일으킬만한 공간으로 그저 주인공인 윤종우가 고시원에 들어와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다리 조차 뻗지 못하는 자신의 303호, 뭐 하나 멀쩡한 것이 없는 오래된 더께가 덕지덕지 눌어붙은 화장실과 얼마나 상했으면 피가 줄줄 흐르는 계란이 구비된 부엌, 

 

 

 

 

 그리고 그 공간에서 종우가 머물게 된 방이 싼 이유가 사실은 그 방에서 한 사람이 자살을 해서라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하는 주인 아줌마와 그런 아줌마가 말하는 좋은 청년들이라지만 도대체 좋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한 웃음 소리와 불편한 시선의 동거인들, 무엇보다 자신의 공간 안에 들어와 있음에도 그 모든 음산한 공기 안에 둥둥 떠있는 거 같은 '타인'의 풀 안에 던져진 불편함의 극대화가 첫 회 부터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드라마의 완주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고민은 또 다른 장르 매니아들의 열렬한 환호와 함께. 


'반전'이 된 원작의 변주 
하지만 원작의 충실한 고증은 동시에 이미 유명한 웹툰이 된 원작의 리메이크 작의 발목을 잡는다. 첫 회가 방영되고 나서 과연 원작 캐릭터와 싱크로율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드라마는 이런 원작의 함정을 '변주'의 반전으로 타개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한다. 

우선 서울에 올라온 첫 날, 그의 대학 선배이자 그에게 직장을 제공한 신재호는 술자리를 갖는다. 농담인지 조롱인지 모를 신재호의 말 상대로 지친 채 술자리를 끝낸 종우가 술집 앞에 기대어 있을 때 그의 눈 앞에서 취객 두 명의 싸움이 벌어진다. 격렬해지는 싸움에 종우가 끼어들려하자 신재호는 말리고, 원작에서는 신재호의 만류에 외면하는 바람에 그 중 한 명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드라마 속 종우는 결국 그 싸움에 뛰어든다. 이 장면은 원작이 '타인'의 무관심, 방관에 대한 경고를 보다 주제 의식으로 부각시켰다면, 같은 설정을 끌고 온 드라마는 신재호의 대사를 통해 원작의 주제 의식과 함께 군 시절의 트라우마 상기로 부지불식간에 '감정적'으로 싸움에 뛰어드는 종우를 그리며 보기엔 조용해 보이는 주인공 캐릭터의 '반전' 요소를 제공한다. 

 

 

어떻게든 이제 막 시작한 서울 생활을 가급적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평탄하게 보내고 싶은 종우, 그런 그가 시작한 고시원에서 정작 그를 직접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은 이제 곧 나갈 거라는 안희중(현봉식 분)이다. 사사건건 종우와 부딪치는 그는 고시원에서 드러난 '폭력'적 요소다. 그러나 종우에게 라면을 끓여 함께 먹던 날 종우에게 가급적 이 고시원에서 빨리 벗어나라 진심어린 충고를 하며 어쩌면 그는 그저 보기에만 폭력적일 뿐인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남기고. 그런 그가 자신의 방에 남겨진 모조 총알로 인해 흥분하고 306호 변득종을 마구잡이로 다그치는 순간, 맞은 편에서 등장한 또 한 명의 306호, 원작에서 한 명이었던 사람이 쌍둥이로 밝혀지며 이 드라마가 원작과는 다른 궤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다른 궤도의 대미는 바로 치과 의사로 등장한 304호 서문조(이동욱 분)이다. 원작에서는 없던 이 인물로 인해 과연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가는 가운데, 원작에서 고시원의 306호, 그의 쌍둥이 형 307호, 그리고 313호가 무서워했던 인물, 사실 원작에서 최종 보스로 예정된 유기혁을 2회만에 죽임으로써 원작의 '스포'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리고  306호, 307호, 313호 등을 하수인으로 했던, 단 한 손에 덩치 큰 안희중을 제압했던 미지의 공포 유기혁이 2회만에 죽어버림으로써, 비로소 드라마 <타인의 지옥>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회 엔딩, 고시원 사람들에게 방해하기 않기 위해, 혹은 방해받지 않기 위해 건물 옥상에서 연인에게 전화를 걸던 종우에게 다가온 서문조는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가 불쾌했던 종우는 왜 자길 보며 웃느냐며 불쾌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서문조는 종우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 반가워서 그랬다며 다시 미소를 보낸다. 드라마를 열었던 종우에 대한 린치,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 그리고 서문조의 미소처럼 서문조와 같은 사람인, 가슴 안에 또 다른 불길을 잠재하고 있는 종우는 호락호락 당하기만 할까? 

장 폴 샤르트르는 일찌기 그의 저서 <닫힌 방>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정의내려진 인간, 그러나 끊임없이 그 실존은 '타인'과 관계되어져야 하고, 규정되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타인은 지옥이다'란 명제로 표현한다. 서로에게 '사형집행인'이 되어가는 사람들,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는 오늘날 이 명제에 가장 공감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서 속 '지옥도'를 구현한다. 과연, 웹툰과 다른 드라마 속 지옥도는 어떨지, 그 본격적인 이야기가 궁금하다

by meditator 2019. 9. 2. 15:01

각 방송사 별로 대상을 휩쓸은 유재석이 우리나라 mc계의 대표적 인물이라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언제부터인가 '유재석'이 나온다 하면 안봐도 유재석이 어떻게 할 것인지가 다 미리 그려지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함께 하는 웃기는 동생들을 구박해 가며 웃음을 뽑아내고, 게스트가 나오면 게스트의 웃음 포인트를 뽑아내기 위해 애를 쓰고, 동시에 주변 패널들을 동원하여 게스트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며 찬사를 거듭하는 등등 안봐도 그려지는 유재석의 장점이, 이제는 굳이 찾아보게 되지 않는 유재석의 낡은 이미지로 굳어져 버렸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 곁에 있지만 어느 틈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오래된 가구처럼 되어버린 듯한. 

 

 

하지만 그런 유재석이란 이제는 진부해져 가는 듯한 '스테디셀러'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바로 <일로 만난 사이>이다. 뜻밖에도 이 프로그램은 언제인가 부터 진행에 가장 유능한 mc 유재석을 황량한 들판에 풀어놓아 버린다. 진행을 하고 싶어도 뭔가 토크를 하고 싶어도 일이 먼저이다 보니 일에 치여 토크를 할 틈이 없다. 토크라도 할라치면 함께 한 게스트가 뭔 녹차 밭에서 어색한 토크냐며 퉁바리를 준다. 심지어 하루 고용하신 주인장께서 일이나 제대로 하라며 호시탐탐 잔소리를 하시는데, 그런데 '토크' 한번 제대로 하는 이 예능이 신선하다. 심지어 이제는 틀에 박힌 듯한 유재석의 '재발견'같은 생각까지 드니, 다시 한번 유재석의 전성시대가 도래할 지도 모르겠다. 

강호동, 이경규도 겪은 
어쩌면 다들 한번씩 겪은 일일 지도 모르겠다. <1박2일>로 세상 부러울 것 없던 mc 강호동이 사회적 물의와 함께 돌아왔지만 그의 폼은 예전같지 않았다. 아니, 강호동은 예전과 같았지만 예능의 달라진 포맷이 더 이상 시끄럽게 호령하게 프로그램을 이끄는 강호동을 튕겨냈다. 침체기를 거듭하던 그에게 손을 내민 건 나영석 피디였다. 예전 <1박2일>을 함께 했던 나영석 피디와 함께, 심지어 당시만 해도 방송 편성조차 없이 컨텐츠로만 승부를 걸었던 <신서유기>는 좀 다들 모라잔 형들의 해프닝인 <1박2일> 초창기 컨셉에 열광한 젊은 층의 지지를 얻어 시즌6에 이르렀다. 거기에 역시나 강호동이 이끄는 이 아니라, 여러 패널 중 하나로 자리한 <아는 형님> 역시 강호동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프로그램을 이끄는 카리스마 대신, 시끄럽고 에너지 넘치지만 조금은 부족한 면도 있는 '형님'이라는 면모가 강호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허기는 불세출 이경규만할까. mbc <일밤>으로 전성기를 열었던 그가 mbc가 아닌 kbs2에서 <남자의 자격>으로 새로운 예능의 시대를 열었는가 하면, 집단 예능의 트렌드가 지자 각 예능 프로그램의 패널로 활발하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다 심지어 <마이 리틀 텔레비젼>까지 진출하더니,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예능으로 연결한 <도시 어부>로 끝없는 '도전'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반면에 유재석은 <무한도전>, <런닝맨> 등과 함께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마침내 종영하고, <런닝맨>의 인기도 예전같지 않으며, 제 아무리 포맷을 변화시켜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해피 투게더>와 함께 유재석도 지지부진하게 대상 mc의 역사 속으로 저물어 가는가 싶었다. 

유재석, 들판에서 헤매다 
그런 유재석을 구한 건 뜻밖에도 jtbc에서 그와 함께 <투유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정효민 피디였다. 오랫동안 예능을 떠나있던 이효리를 <효리네 민박>을 통해 대번에 트렌디한 예능인으로 끌어올렸던 정효민 피디, 묵은지같았던 유재석을 그를 도와주는 후배들이나 선배없이, 스튜디오를 벗어나 유재석이 제일 취약한 진행할 꺼리조차 없는 들판에 풀어놓았다. 

첫 회차는 녹차밭, 푸르른 녹차잎만이 무성한 녹차밭에서 이효리-이상순 부부와 함께 녹차잎을 따야 했던 유재석은 뜻밖에도 그간 예능에서 보여주었던 안정감있는 진행을 팽겨치고 안절부절한다. 물론 종종 '깨발랄'한 '도발'을 감행했지만 그럼에도 유재석하면 안정된 진행의 대가였는데, 그러던 그가 단순 반복된 녹차잎 따기에 어쩔 줄 몰라하는 건 의외의 '포인트'다.

이경규가 그렇고, 강호동이 그랬듯, 이제는 '대가'가 된 듯한 유명인이 그들의 빈틈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 보일 때 사람들은 그들의 또 다른 면모에 새롭게 호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다. 그간 똑 부러지게 진행을 잘 하던 유재석이 녹차잎 따는 그 단순한 일의 반복에 어쩔줄 몰라하며 녹차밭 고랑을 헤맬 때, 그리고 진행할 꺼리가 없어 무기력해 하고, 이효리의 도발적인 질문에 어쩔 줄 몰라하다 솔직한 자신의 가정사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때, 박제된 예능에서 유재석이란 사람이 끄집어 내어지는 듯한 감회를 느끼게 된다. 

2회는 그런 감회를 배가시킨다. 유재석보다 더 말도 잘 하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일도 잘하고, 심지어 잘생기기 까지 한 한때 <무한도전>을 함께 했던 차승원의 등장은 그간 늘 '제리' 역할을 맡아했던 유재석을 졸지에 '톰'의 위치로 격하시켜 버리며 뜻밖의 웃음을 제공한다. 

 

 

이거야 말로 무모한 도전 
알고보니 일도 잘 못하는 유재석, 더위에 쩔쩔매며 어쩔줄 몰라하는 유재석을 보다보니 문득 차승원과 함께 그 말도 안되는 연탄을 나르던 시절의 <무한도전>이 떠오른다. 아니, 그 시절의 <무모한 도전>말이다. 도대체 저게 무슨 예능이야 라고 했던 초창기 <무도> 시절 유재석은 동료들과 함께, 차승원과 그 고구마 밭에서 하루종일 진땀을 흘리며 쩔쩔매듯 그렇게 예능을 했었다. 심지어 주인장의 대놓은 편파적 잔소리는 안그래도 일못하는 유재석의 면모를 한층 살려내며 예능의 대가가 아닌 유재석의 '사람 냄새'를 느끼게 한다. 

거기에 더한 건 진짜 말 그대로 허겁지겁 배를 채우듯 연방 맛있다를 되풀이 하며 먹은 점심 후 정자에서 차승원과 나눈 '나이듦'의 이야기이다. 늘 예능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기 위해 애쓰던 유재석이 이제 오십 줄에 든 차승원과 함께 오십이 되어가는 시절의 자기 속내를 터놓는 장면이야말로 <일로 만난 사이>의 백미였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 그저 세월을 견뎌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을 좀 더 편하게 바라보고 인정하게 되는 것, 그래서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것이라는 그 '평범한' 진리'를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선 두 '베테랑'을 통해 전해듣는 울림은 또 다르다. 천하의 유재석이 이제서야 자신이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우선 내려놓고 편해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진솔한 고백은 '나 아니면 안돼'라는 이 시끄러운 시대에 그래서 더 담백하게 오랜 울림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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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 만난 사이>는 묘하다. 일 하느라 유재석이 잘 하는 '토크'할 사이가 없다. 그런데, 일 하다 중간에 먹는 새참이 꿀맛이듯, 일하다 중간에 서로 잠깐씩 나누는 대화의 깊이와 무르익음이 장난이 아니다. 아마도 스튜디오에서 이효리와 차승원을 초대해 '토크'를 했다면 이런 대화가 등장했을까. 나이듦과 내려놓음에 대한 이야기는 녹차밭과 고구마밭이어야 가능한 것이다. 거기에 유기농 녹차와 바다를 품은 고구마를 생산해내는 진득한 땀의 역사는 어떻고. 삶의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난 뒤에 먹는 밋밋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짜릿한 찬 물 한 바가지처럼. 일 속에서 드러난 자연스러운 유재석과 게스트들의 진솔한 모습과 대화는 범람하는 예능 속의 또 다른 '해갈'이다. 

by meditator 2019. 9. 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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