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500채 이상의 성도 보유하고 있죠.' 2008년 시작한 세계 최대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의 ceo 브라이언 체스키의 자부심넘치는 말이다. 2015년 3월 기준으로 전세계 190개국 3만 4000여개 도시에서 하루 평균 100만 실의 빈방을 여행객에게 연결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6000 여 곳이 등록되어 있다. 이제 어디든 여행을 가면 '에어비엔비'만 있으면 잠 잘 곳 걱정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용하는 그 숙박업소가 되는 집의 주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에어비앤비가 숙박 공유 서비스를 넘어 세계 부동산 시장의 큰 손이라면? 재개발, 철거, 그리고 이제 젠트리피케이션까지, 이런 도시화의 그늘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우리 사회에서 더는 낯선 것이 아니다. 몇 년전 10억 정도면 구입할 수 있는 강남 집값이 이제 20억을 호가한다. 그런데 그 문제가 그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전 세계의 도시들이 급등하는 집값에 신음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급등하는 전 세계의 집값에 '검은 손길'이 드리워져 있다면? 바로 이 문제에 대해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가 추적을 한다. 

 

 

누구를 위해 도시는 존재하는가 
전세게를 다니며 다양한 주택 문제를 조사하는 것이 임무인 UN주거보장 특별 보고관 레이라니 파르하는 5월 1일 집세 거부 운동을 조사하기 캐나다 토론토로 향한다. 바퀴벌레와 쥐가 수시로 출몰하고, 수리를 하지 않아 물이 줄줄새는 낡은 집, 하지만 그래도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새로 이 건물을 산 집주인은 집세를 대폭 올리며 이들을 내쫓으려 한다. 이곳을 떠나면 더는 이 도시에서 갈 곳이 없다는 사람들은 집세 거부운동을 벌이지만 이에 당국은 '업무 방해'라며 법적 조치를 취한다.

지난 30년간 토론토의 주택 가격이 425% 인상됐다. 그동안 평균 가구 소득은 133%가 올랐을 뿐인데. 정체된 임금, 반면 나날이 치솟는 집값, 부동산 업자들은 낡은 건물을 사들여 리뉴얼된 새 건물을 올리고 집세를 획기적으로 올린다. 가난한 이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허덕이고 중산층들조차 도시에 살 여유가 점점 없어진다. 

이게 비단 토론토만의 문제일까? 영화 한편으로 유명해진 도시 영국의 노팅힐,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영화로 인한 유명세보다는 다양한 신념과 색깔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친근한 이웃으로 어울려 지낼 수 있었던 가족같은 분위기의 노팅힐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런데 그 사람냄새 나는 노팅힐이 변했다. 부유한 사람들이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중 한 곳인 '밸그레이브', 부유한 사람들은 몇 천만 파운드씩을 퍼부어 건물을 사고 그곳을 리뉴얼해서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해서 내놓았다. 당연히 높아진 가격에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조금씩 노팅힐에서 내쫓기고 이제 거리엔 오가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80%가 빈 거리가 된 곳 , 지방의회 의원은 당당하게 말한다. '노팅힐에서 살 여력이 없으면 노팅힐에 있으면 안된다'고,. 하지만 이곳에서 나고 자라 가정을 꾸리고 살아왔던 이들이 이제 와서 내쫓겨야 하는 것일까?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라고 다를까? 토론토처럼 수리를 해주지 않은 채 기반이 내려앉아가는 집, 집주인은 어떻게든 세입자들을 내쫓으려 한다. 이곳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던 병원은 철거되어 이제 고급 콘도로 거듭났다. 하지만 콘도는 비어있다. 이곳 주민들은 그곳에 살 여력이 없다. 올리브 등 각종 과실 나무가 주렁주렁 열리던 에덴 동산같던 발파라이소는 사라져간다. 

뉴욕 할렘가 1700가구가 살던 건물, 건물주가 바뀌자 집세가 900달러나 폭등했다. 안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집값때문에 소득 대비 90%를 집값으로 내야 했던 입주민들에게 이 놀라운 폭의 집세는 어불성설이다. 아니 연봉 100000달러나 되야 감당할 수 있는 집세다. 

스웨덴이라고 다를까. 스웨덴 국민들의 자부심이었던 주거 시스템. 하지만 스웨덴이 변했다. 부동산 자본이 스웬덴에 진출하여 스웨덴 저소등층용 주택을 마구 사들였다. 그리고 이를 보수하여 50% 이상의 집세를 인상하여 내놓았다.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온 자칭 스웨덴 노동자 계급의 영웅이라는 주부는 더 이상 집세가 올라가는 걸 감당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젖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평번한 가족들이 살던 공영 주택단지 역시 예외가 아니다.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라고 다를까. 

 

 

전세계적인 도시 부동산 급등의 배후에는 누가 있을까? 
빈티지 옷가게가 생기고 허름한 옷을 입은 예술가들이 까페에 앉아 예술을 논할 때가 바로 그 동네를 떠날 때라는 우스개 소리는 오늘날 도시가 봉착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빗댄 말이다.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목포의 창성장으로 부터 시작된 목포 도심 재개발로 인해 벌써 목포의 집값이 두 배니 세 배니 하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현실'이 되었으니까. 방송인 홍석천이 나서서 애써보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휩쓴 경리단 길은 이젠 사람들이 떠난 삭막한 공간으로 전해질 뿐이다. 

하지만 컬럼비아 대 세계 도시 이론 연구의 선도자 사스키아 사센은 차라리 그 정도의 초기 젠트리피케이션만 되도 라고 한숨을 내쉰다. 지금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도시 몰락은 보다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 할렘가의 건물을 사들인 회사는 대표적인 부동산 사모 펀드 회사 블랙 스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에어비앤비의 회사명도 등장한다. 2003년부터 쭉 비어 있었다는 런던 벨그레이비어의 고급 주택들. 자산이 된 건물들이 빈채로 묵혀진채 누군가의 자산이 되어 불려지고 있다. 반면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하지만, 살 집이 없다. 무분별한 투자와 그들이 이용하는 금융 시스템은 그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법'을 활용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오던 도시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렇게 주택에 투자한 부동산 사모 펀드들은 돈이 주택에 묶여 있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투자자를 끌어들여 자신들이 가진 10000 채의 집을 증권으로 만들어 팔고, 집이 증권이 되는 순간 쉽게 매도할 수 있는 '자본 이익'으로 변신, 1초도 안되는 시간에 35번을 사고 팔 수 있는 '극초단타 매매'의 대상이 되어 오로지 돈벌이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사스키아 사센은 오늘날 금융의 방식은 고전적 은행과 다르다고 안타까워 한다. 자신들의 고정 고객을 위해 봉사한 고전적 은행과 달리, 마치 금광을 채굴하듯 이윤이 되는 것이라면 갖은 수단을 마다하지 않고 팔고자 한다는 것이다. 채굴이 끝나면 폐허가 된 곳을 놔두고 떠나는 금광업자처럼 자신의 이익을 뽑아낸 뒤에 그곳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책임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과 달리 오늘날 부동산을 움직이는 금융에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쫓겨나고 있다. 

문제는 전세계의 자산으로서의 부동산이 현재 217조달러, 이는 전세계의 GDP보다 많은 금액이다. 즉, 이런 자본주의적 문제에 대해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데 1980년대 부터 벌어진 각국 정부와 자본의 이익 간 격차로 인해 정부들의 역할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도대체 그 검은 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전세계에서 가장 큰 부동산 사모펀드 회사 블랙 스톤의 존 그레이 대표, 금융 위기를 기회로 아주 싼 가격에 단독 주택을 대량으로 사서 수리하여 이윤을 얻었다고 자신의 출발을 자랑스럽게 회고한다. 

스웨덴에서처럼 한 지역을 몽땅 사들여 입주민을 내쫓고 고급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개발 방식,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정부는 손을 놓고 있거나, 외려 '법'적인 절차를 핑계로 압류를 부추기는, 혹은 규제 철폐나 완화 등 법과 제도의 이점을 이용하는 이들의 편에 서시가 십상이다. 더 많은 정보는 부도덕한 엘리트들에게 전해지고, 이들은 부를 창출하는 대신 기존의 부를 빼앗는 방식으로 자신의 부를 축적한다. 

심지어, 마약, 인신 매매 등의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역외 조세 피난처에 만들어진 회사를 통해 전세계 식당, 호텔, 콘도 등 부동산을 통해 되팔며 자연스레 합법적인 자본과 불법적인 자금을 교차시키며 돈 세탁하고 자산을 불려나간다. 

어디 불법적인 자본 뿐일까. 아마존, 페북, 넷플릭스 등의 자본이 가장 먼저 하고자 하는 일이 바로 세금을 덜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실제 이탈리아에서 정직한 근로자가 60%의 세금을 내는 반면, 조 단위 수익을 내는 회사는 단 4%의 세금을 낸다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 세금을 덜 내는 방식 중의 하나가 바로 '비싼 부동산'이다. 아파트를 사재기 하며 돈을 불리는 부도덕한 방식이야 우리에겐 매우 익숙한 '레토릭'아닌가. 

거기에 이런 사모펀드에 출자하는 공공의 자금들도 있다. 부동산 사모펀드의 출처를 찾아 전세계를 유랑한 끝에 도달한 곳은 뜻밖에도 우리나라. 바로 우리나라 연기금이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기꺼이 부동산 사모 펀드 등에 투자를 해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토론토에서 38년 세를 내며 살아왔던 하지만 이제는 쫓겨나게 생긴 연금 수급자. 그는 자신이 낸 연금을 관리하는 연기금이 자신을 내쫓는 부동산 사모 펀드에 투자된 돈이라는 걸 알까? 

도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할까? 
전세계를 돌며 부조리한 부동산 자본에 의해 쫓겨난 사람들, 그리고 그로 인해 죽은 도시가 되어가는 삶의 터전을 기록했던 레이라니 파르하가 도달한 건 바로 '인권'이다. 도시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곳이 바로 도시가 아니냐고. 그런 의미에서 주거권은 곧 '인권의 문제가 아니냐고. 작은 동네 까페보다 스타벅스만이 북적이는 거리, 우리가 지역에서 쓰는 돈이 우리 지역이 아니라 지역을 넘어선 '자본'으로 흘러가는 것에 무심해 지는 세상. 우리가 살던 그 집의 집세를 올린 주인이 누구일까?  그 무너진 시스템이 만든 검은 돈이 다시 우리의 주거권을 위협하게 된 세상에서, 인권의 차원에서 주거권을 위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함께 힘을 모으자 호소한다. 

by meditator 2019. 8. 31. 18:05

euthanasia 안락사,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좋은 죽음(ευθανασία )이라는 뜻이다. eidf2019(2019 16회 ebs 국제 다큐 영화제)에 출품된 토마스 크루파 감독의 <우아한 죽음>의 원제 역시 The good death, 안락사를 다룬 작품이다. 

안락사,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환자를 본인 혹은 가족의 요구에 따라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인공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방식이다. 안락사는 그 방식에 따라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 대해 더 이상의 의미가 없는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 공급, 약물 투여를 중단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소극적 존엄사, 그리고 안락사를 시행하는 사람이 불치병의 환자 등을 대상으로 환자의 삶을 단축시킬 것을 의도하여 구체적인 행위를 능동적으로 하는 적극적 안락사로 크게 나뉘어진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 혹은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만 적극적 안락사의 경우 스위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전세계적으로 '불법'으로 다뤄진다. <우아한 죽음>은 바로 이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삶의 종착역에서 또 하나의 선택지로서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 다큐는 설득한다. 

 

 

주여, 당신의 종을 떠나게 해주옵소서
자넷 버틀린, 1944년 6월 23일생, 2016년 당시 72세였다. 두 번의 결혼, 전세계를 여행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삶은 공평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앓았던 근위축증이 그녀를 찾아왔다. 불행히도 이 병은 '유전'이라 그녀는 아들에게도 그 병을 물려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들에게 자식이 없어 더 이상 그 불행한 유전을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근위축증으로 자넷의 어머니는 30년 동안 온종일 의자에 앉아 투병을 하셔야만 했다.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삶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 그 어머니의 고통은 자넷에게 고스란히 현실이 되어간다. 2년전만 해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었던 자넷, 이젠 잠자리에서 혼자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상황을 맞았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것이라는 걸 자넷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목발에 의지해서야 움직일 수 있는 삶, 삶을 계속 이어간다는게 '공허'하다고 판단한 자넷은 자발적인 안락사을 선택한다. 자신에게 의식이 있을 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리하겠다는 것. 

 

 

하지만 자발적인 안락사가 쉬운 길은 아니다. 그녀가 사는 영국은 자발적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지역 보건의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 영국 현실에서 보건의는 자넷의 결정을 노인성 우울증이라 여기며 정신과 의사에게 진료 위탁을 하려고 한다. 만약 사실대로 말한다면 정신 병원에 강제로 입원을 해야될지도 모르는 상황, 결국 자넷은 자신을 돌보는 간호사에게 정신병원에 가지 않기 위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자식들은 엄마의 결정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그녀가 결정을 미룰 것을 종용한다. 딸은 엄마의 결정을 지지하지만 자신의 결혼식까지 미뤄주면 안되겠냐면서 정해지지도 않은 결혼식 핑계를 댄다. 아들과 딸은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향하려는 그녀와 함께 동행을 핑계로 차를 대절하여 어머니의 맘이 바뀔 계제를 노린다. 우선은 가서 그저 한번 알아만 보자는 식으로.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요양병원에 있는 남편은 기꺼이 그녀의 선택을 존중, 하지만 눈물로 그들의 이별을 감수한다. 신이 준 생명 자신의 마음대로 끝내는 건 안된다는 사람부터, 늘 그녀에게 의지해왔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별을 위해 아들이 사는 미국으로 살러간다는 여러 번의 거짓말까지 그녀가 죽음을 실행에 옮기기 까지 11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결정을 용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려 고통 속에서 계속 삶을 견뎌가는게 용기라며, 자신은 쉬운 길을, 편하게 죽음을 선택한거라고, 하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낼, 인간의 기본적 권리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신은 인간이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렵사리 자넷이 영국을 떠나고 스위스에 도착하여 그녀를 죽음으로 인도해줄 '라이프 서클'의 의사를 만났다. 오랫동안 메일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해 왔던 두 사람은 마치 자매처럼, 동지처럼 포옹을 나눈다. 

자넷을 죽음으로 인도할 의사는 일주일에 단 2명만 안락사를 시행한다고 한다. 제 아무리 신념에 따라 행하는 일이지만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의 짐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평소에는 사람을 고치는 의사직에 임하는 그녀가 '안락사'라는 '숙명'을 어떻게 수용하게 되었을까.

기독교적 신앙이 투철했던 집안, 하지만 두 번의 뇌졸증으로 더는 말을 할 수 없게 된 아버지는 계속 자살 시도를 했다. 약을 먹고, 기차에 뛰어들었던 아버지, 종교적 신념이 지극했던 그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안락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선포했다. 

물론 말기암 환자에게 진통제를 통하여 고통을 감소시키듯 '안락사'라는 극단적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종교적으로 병으로 인한 고통조차 신 앞에 인간이 감내해야 할 '시련'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반문한다. 오늘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이 과연 '신'에 의한 것이냐고. 심장 마비로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를 사람을 '소생'시키고 있지 않냐고. 외려 오늘날 인간은 자연스럽게 죽어갈 수도 있는 순간을 '인간'이 만든 기술에 의해 저지당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 그녀와 그녀가 소속된 '라이프 서클'은 스위스를 넘어 더 많은 나라에서 '안락사'라는 선택지가 있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안락사가 누구에게나 행해지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안락사를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왜 자신이 그런 과정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누군가의 의견이 개입되지 않았는지. 악화를 막을 방법이 있는 건 아닌지. 재차 확인한다. 

딸은 마지막까지 엄마를 설득해 본다. 엄마를 존중하지만 안락사가 아니라도 엄마가 삶의 질을 누리며 투병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한다. 지금이 아니라도 6개월 후에 다시 올 수 있다고 멋진 차를 불러 타고 돌아가자고 제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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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or not to be- 오늘 당신의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 게 확실합니까 
하지만 자넷은 이런 과정이 고치에서 나비가 나오듯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담담하게 결론을 내린다. 지난 시간 동안 사느냐 죽느냐를 놓고 엄청 애를 써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게 그녀가 도달한 삶의 현실이라고.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두렵지 않다고. 하지만 죽음 앞에서 그녀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삶에 대한 열정을 포기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여전히 궁금한 게 많다고. 정말 나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까? 아직도 알고 싶은 게 많다고. 

오늘 당신의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 게 확실합니까? 라는 다시금 되물어진 질문, 수면 마취 후 4분 내에 신부전이 올 수 있는 약물을 투입한다. 그리고 '2016년 9월 22일 자넷 버틀리는 운명하셨습니다'.

자넷은 자신의 유골조차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깔끔하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지으려 했지만, 그녀를 기리고 싶었던 자식들은 그녀의 유골함을 가지고 가 그녀가 오래도록 애지중지 가꿨던 오래된 정원에 그녀를 뿌린다. 

어머니의 죽음에 동의하냐는 질문에 이게 최선일까 의구심은 들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던 아들, 가족 중 한 사람이라고 해서 신념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던 그에게 자신과 같은 병으로 '안락사'를 선택한 어머니의 결정은 삶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재혼으로 인해 오랫동안 어머니와 적조했던, 그러나 바로 그 어머니에게서 근위축증을 물려받은 아들은 스스로 근위축증 실험실을 만들었다. 1A형 지대형 근위축증, 근막을 지탱해줄 단백질이 손상되며 근육이 점점 무력해지는 이 불치병,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다. 그의 실험을 시작으로 뱀독과 같은 카디오 톡신을 주입하여 근육 재생 능력을 재생시키는 연구가 진행되고,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아들은 자신이 아니더라도 미래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9. 8. 29. 16:04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기회로 지난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재건'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성화 봉송은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한 곳에서 직선 거리로 20k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출발하며, 60km 떨어진 여전히 방사능 오염된 흙이 쌓여있는 이즈마 야구장에서 야구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원전 사고로 인해 고향을 떠난 주민들에게 '부흥'을 내세우며 돌아갈 것을 종용하고 있다. 지난 2014년 3월 10일 cbs는 창사 60주년 특집 다큐를 통해 아직 끝나지 않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한 '선견지명'을 밝힌 바있다. 과연 '후쿠시마'는 '재건'되었을까? 

 

  


후쿠시마는 끝나지 않았다. 
2011년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을 강타한 강진과 대형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제 1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되었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원자력 사고 등급은 레벨 7,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 중 가장 위험한 단계로 1986년 발생한 소련 체르노빌 사고와 동일한 등급이다. 사고 후 요오드, 세슘 등 다양한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었다, 4월 후쿠시마 토양에서는 골수암을 일으키는 스트론튬이 검출되는 등 토양 오염이 진행되었고, 많은 양의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들었으며, 편서풍을 타고 전세계로 확산, 특히 주변국인 우리나라, 중국 등에는 직접적인 피해 사례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3년 일본 정부가 자신하고 있는 '복구'는 얼마나 진행되었나? 그걸 알아보기 위해, 다큐 제작진은 미야기현 현청 소재지인 센다이 미야쿠지 마을을 찾았다. 아직도 곳곳에서 발견된 처참한 흔적, 지난 1월부터 복귀가 시작되었지만 한쪽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파손된 집을 수리하는 등 어수선한 상태이다. 

평생 이곳에서 살아온 후네히키씨, 사고가 나자 허겁지겁 남편과 아들을 남겨둔 채 며느리, 손자들과 피난을 떠났다고 한다. 잠시 떠나있으면 될 줄 알았던 피난 생활은 무려 3년이나 이어지고 피난 떠난 사람들과 함께 모여 '인형' 등을 만들며 지내지 않았더라면 견디지 못했을 시간, 그래서 아직은 어수선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이든 그녀야 평생 살아온 곳이라 다시 돌아왔지만 앞날이 창창한 젊은 손자들은 차마 같이 올 수 없었다. 정부와 지자체의 독려, 심지어 지원을 끊는 등의 강제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30%의 주민들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렇게 아직은 어수선한 미야쿠지 마을, 돌아온 학생들도 야외 활동을 할 수 없어 놀이터의 그네는 아직 주인을 만나지 못했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 학교는 생기를 잃었다. 

이곳에서 측정해본 대기 중  방사능은 0.17μ㏜도쿄와 비슷했다. 그렇다면 안심해도 될까? 땅속 방사능은 대기와 달리 수치가 높았다. 0.5~0.6까지도 이르렀다. 평균 0.359μ㏜, 이 정도량이라면 일년 기준으로는 3.1m㏜에 이른다.(1m㏜ =1,000μ㏜) 연간 자연에 존재하는 방사능 기준량이 2.4m㏜라고 했을 때 높은 수치이다. 

적은 방사능이라도 누적되면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암 발생은 정확하게 피폭량에 정비례한다는 거이다. 안전기준치를 내세우지만, 전문가들은 피폭량을 절대적으로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전 사고후 일본 정부의 복구에 대한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심상치않다. 후쿠시마 공동진료소에서 진료를 맡아오 요시히코 스기이 씨에 따르면 미성년자 중 갑상선암 환자가 수백 배나 늘어났다는 것이다. 평균 100명 당 한 명이어야 할 갑상선암 환자가 36만 명 당 200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에 카리야 테츠라는 일본의 인기 만화가가 그의 작품 <맛의 달인>을 통해 후쿠시마를 취재했던 주인공이 '코피'를 흘리는 모습을 묘사하며  '나는 결단코 현재의 후쿠시마에는 사람이 살면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등 의식있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후쿠시마의 위험성에 대한 대중적 경각심을 높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입장을 달리한다. 5m㏜ 이상의 방사능이 측정되는 곳에는 일반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반면, 그외의 지역에 대해서는안전하며 사람이 충분히 살 수 있다며 이주를 서두르고 있다. 세금의 감소와 산업 쇠퇴라는 지자체의 위기에 대한 두 가지 트랙의 정책적 접근 방식이다. 

재건의 와중에 있는 미나미소마시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지역에 공영 주택 건설이 한창이다. 하지만 시내를 벗어나면 시 전역에서 여전히 방사능 제거 작업이 한창이다. 흘가, 나무, 돌, 풀 등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곳이 없다. 안전한 상태가 될 때까지 30년 동안 안전하게 격리 보관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런데 공기, 땅. 지하수 등 그 대상이 한정이 없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은 주민들 주거지와 주거지 근처 20km 이내로 한정되어 있다. 산림 등 그외 지역은 방치되어 있다. 비라도 내린다면, 바람이 분다면 그곳의 방사능은 언제나 도시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킬 수 있다. 

 

  

후쿠시마 인근의 또 다른 지역 이바라키 현 등 후쿠시마로부터 반경 200~300 km에 이르는 광번위한 15개 지역에서 15세 미만 아동 85명 중 58명에게서 세슘-137이 검출되었다. 자연에 존재하는 세슘-133과는 다른 방사능을 내뿜는 물질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아이들이 결국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음식 등을 통해 '내부 피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을 일본 전역의 70%가 방사능에 오염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미나미소마시 등에서는 무료 방사능 측정소를 마련하고 주민들이 방사능 오염 정도를 상시적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후쿠시마 주변 농산물  6172건 중 588건, 약 9.7%가 방사능 오염 수치를 넘고 있다. 특히나, 사람들의 적극적인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 곳에서 자라난 버섯, 산나물, 야생 죽순 등의 오염 사례는 심각하다. 

 

  

후쿠시마에서 끝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방사능 오염이 일본 내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쿄 올림픽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문제가 전세계적 관심 거리가 되고 있는 가운데,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명의 여파는 저 멀리 캐나다까지 영향을 미친다. 

 

캐나다 밴쿠버 스티브스톤 해안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바다 표범이 괴사했다. 미역과 물고기에서 5배가 넘는 세슘이 검출되었다. 일본에서 수천 km난 떨어진 캐나다 해안, 하지만 후쿠시마의 수증기가 제트스트림을 타고 밴쿠버 해안에 이르러 비를 통해 이곳 해조류와 바다 생물들을 방사능 물질로 오염시켜버린 것이다. 

캐나다조차 안전지대가 아니라면, 당연히 질문은 우리에게로 향한다. 더구나 일본은 스트론튬이 포함된 원전 오염수를 사고 초기 대량 배출 이후 저지대에 위치한 특성으로 인해 오염수들이 계속 축적되어 온 상황, 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일본 정부가 오염수 100만톤을 태평양에 방류하려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런 경우 한국이 가장 위험할 것이다라는 예고까지 내놓고 있는 상황, 

또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점검을 위해 가동을 중단시켰던 48기의 원전을 재가동시켰다. 당장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기 부족을 겪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원전이라고 다를까. 

 

  

필요악 원전? 
원전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원전 사고에 대해 '확률은 적더라고 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명제를 들며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관계 기관에서는 수소발생 억제기, 피동형 방수문 설치 등 시스템 안전에 대해 보다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장담하지만 지금도 한 달에 한번 꼴로 멈추거나, 폭우로 가동 중단 사태가 빚어지는 원전은 등에 진 화약고처럼 시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불안한 건 설계 수명을 넘긴 노후 원전이다. 후쿠시마 제 1원전이 그랬듯이 고리, 월성의 원전도 설계 수명을 넘어 가동되고 있어 반발을 사고 있다. 이에 '움직이는 탈핵학교'는 여성과 어린이에 더 많은 피해를 주는 원전, 그 중에서도 수명을 다한 원전의 폐쇄를 주장한다. 

 

  

딸을 둔 엄마인 전선경 씨는 늘 방사능 측정기를 가지고 다닌다. 가는 곳곳마다 측정기를 대보는 엄마, 또한 방사능의 위험을 알리는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3아이의 엄마인 손수련씨는 엄마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다, 걱정되는 음식을 안먹다는 소극적 자세를 넘어 방사능에 대한 적극적 대책을 위한 지혜를 모으기 위해서이다. 

노동 환경 건강 연구소가 운영하는 녹색 병원에서는 식품의 방사능 잔류치를 검사하고 있다. 식약처에서는 1베크렐(bq) 미만을 방사능 오염의 기준치로 잡고 있지만 식약처의 검사 과정은 시간이 너무 짧아 정확한 피폭량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0건을 검사했을 때 식약처가 0건인데 비해, 녹색 병원이 7건의 방사능 오염이 나왔듯이 민간 연구소의 검사 결과는 정부의 발표와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정부에서는 권고치, 기준치 아래라면 문제가 될 것 없다지만, 시민들과 민간 연구소에서는 잔류 검사 기준을 강화하고 정확한 수치를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후쿠시마 방사능과 관련하여 대표적 위험 물질로 대두된 세슘의 경우 전체 방사능 중 1%도 안되는 비중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저 권고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발표는 결코 시민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부천시, 세종시 등은 이런 시민들의 고양된 원전에 대한 의식을 반영하여 방사능 안전 급식 조례를 제정했다. 서울 등의 도시도 준비 중이다. 반면, 삼척처럼 원전 예정 지역의 시민들은 한숨이 깊어만 간다. 뜨거운 논란과 갈등에 휩싸이고 있다. 원전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재앙은 후쿠시마에서 보여지듯이 도시 전체의 생존은 물론, 한 개인의 생명과 삶을 송두리채 날려버릴 만큼 심각하다는 것에 대해 누구라도 핑계를 댈 수 없는 상황, 더구나 선정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이의 제기가 있으면서 지난 2014년 주민 투표에서 83%의 주민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새로 짓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6대 원전 국가이다. 그런데 전체 원전 개수로 보면 6위이지만 원전 밀집도로 보면 1위의 '명실상부' 세계 최대의 원전 국가이다. 심지어 원전을 수출까지 한다.더구나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일본, 중국 등 역시 원전 의존도가 높은 국가, 이 아시아 3국만으로 보면 '화약고'가 따로 없다.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에너지 정책에서 원전은 '필요악'이라 여겨진다. 독일 등 유럽을 중심으로 원자력에서 탈히하기 위한 노력이 개진되고 있는 상황, 우리나라 역시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은 높아가지만 어느덧 여름철 에어컨이 '상비'가 된 것처럼 전력 에너지에 의존한 우리의 삶은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듯 뽀족한 대책 마련이 아쉽다. 

by meditator 2019. 8. 28. 11:13

1930년대 구인회에서 활동하던 작가 이상과 구보 박태원, 이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가 김재희는 이들을 신문화과 옛것이 공존하는 100년전 경성을 활보하는 셜록과 왓슨으로 설정, <경성 탐정>이라는 추리 소설 시리즈로 소환했다. 이상과 박태원이 활보하던 경성, 재즈 음악이 흐르는 다방이 있고, 영화관이 성활을 이루었으며 양복점, 양장점이 자리하고, 인력거와 전차가 오가는 경성 거리에 빠질 수 없는 당대 인기 메뉴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누비는 배달꾼들의 냉면과 설렁탕, 이 차고 뜨거운 음식은 당시 경성의 음식 문화를 상징하는 두 가지 대표 음식으로 당시를 재현한 소설 속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일제시대라는 역사적 규정 속에 우리는 그 시절 살아갔던 사람들의 생활 상에 대해 정작 제대로 알 지도, 알 수 있는 기회도 없다. mbc스페셜은 개그맨 이승윤과 김지민을 등장시켜 2부작 경성 음식 야사를 준비했다. 100년전 경성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저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들 속에 결결이 스며든 '식민지의 역사', 음식을 통해 살펴본 그 시절 살아가는 이야기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국수 중에서 


경성 거리의 냉면 배달 
시작은 냉면이다. 요즘 젊은이들도 새삼 그 맛에 반해 냉면 순례를 한다는 음식, 동양 삼국 중에 유일하게 찬 국수를 즐겨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냉면이 없던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 중국 냉면까지 만들어 냈다는 유래에서 보이듯 냉면은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먹던 음식이다. 추운 겨울 얼음이 서걱서걱 씹히는 동치미 국물을 끼얹어 먹던 냉면이 경성의 인기 음식이 된 건 새삼스럽지 않다. 1920년대 근대적 제빙 공장이 들어서면서 얼음의 공급이 자유로와지면서 냉면의 인기를 더해갔다.

그런데 당시에는 인기를 넘어 주요 인기 배달 음식이었다는데, 자전거에 육수 주전자를 달고 한 손으로 냉면 그릇을 얹은 판을 짊어진 냉면 배달꾼이 경성 곳곳을 누볐다니. 심지어 한번에 얼마나 배달을 할 수 있나 내기를 하다보니 한번에 80그릇까지 배달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당시만 해도 위생 상태가 엉망이었던 식당의 환경으로 인해 식중독으로 인한 사망 사건까지 빈번하게 발생했음에도 냉면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이런 냉면의 인기를 더한 건 화학조미료 아지노모도였다. 맛없는 냉면도 맛있게 만들어 버리는 이 아지노모도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엄청난 광고의 물량만큼 비쌌던 조미료를 쓰지말자는 식당들의 결의는 무색해지기가 십상이었다. 새로운 맛, 결국 일본에 의해 우리의 입맛을 현혹시킨 이 근대적인 맛은 일본화된 입맛의 첨병이 되었다. 

 

 

설렁탕이 원래 소머리국밥? 
그렇게 차가운 냉면의 인기에 물러서지 않는 메뉴가 있었으니, 바로 설렁탕, 요즘이야 설렁탕하면 소고기 사태 등을 끓여서 만든 음식이라 생각하지만 당시 설렁탕은 설렁탕집 앞에 끓이고 남은 소뼈가 즐비하듯 소머리뼈에 각종 부산물로 끓인 탕국이었다. 즉 오늘날 우리가 소머리국밥이라고 먹는 메뉴가 당시엔 설렁탕이었다고 한다. 

왜 설렁탕이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거기엔 식민서사의 속내가 숨겨져 있다. 1930년대 전쟁에 나선 일본은 일본군의 식량 조달을 위해 소를 도축하여 통조림을 만들었고, 이런 일본군 식량에 씌이고 남은 부산물들인 뼈, 피, 다리, 머리 등이 시장으로 나와 설렁탕 등의 주메뉴로 사용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1920년대 100곳이 넘는 설렁탕집 매일 아침 땔감 팔기 위해 경성을 찾은 나무 장수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이 즐겨찾던 핫플레이스, 소의 부산물로 만들어 혐오 음식이란 편견 덕분에 처음에는 양반 등 높은 신분의 사람들은 꺼려했지만 달달한 깍두기를 더한 설렁탕의 짙은 풍미는 결국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경성 사람 모두가 사랑하는 대표적 음식으로 설렁탕을 자리매김하도록 만들었다.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에서 인력거꾼 김첨지가 '운수좋은' 덕분에 사들고 들어간 음식도 설렁탕이었둣 그 시절 대표적인 음식이 되었다. 마치 미군 부대 앞에 미군이 소용하고 남은 각종 햄 등을 넣은 부대찌개 집이 융성한 듯, 설렁탕에도 식민의 흔적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서서 먹어 선술집?
설렁탕 못지 않은 핫플레이스가 바로 선술집이었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즐겨 찾던 곳, 비록 서서 먹어야 했지만 단돈 5전에 술 한 잔과 안주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던 곳 바로, 선술집이다. 비지전골, 갈빗국, 심지어 너비아니 구이까지 저마다 개성을 지녔던 경성의 선술집이야말로 가벼운 호주머니로 귀가하는 식민지민의 저녁을 달래주는 최고의 위로였다. 

그런데 이 선술집에서 파는 술은 막걸리였다. 왜 막걸리만 팔았을까. 선술집의 이야기는 일제 시대 일본에 의해 우리 술이 사라져간 역사로 넘어간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집마다 술을 담가먹던 '가양주'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술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는 박목월의 시야말로 우리네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런 가양주 전통의 우리나라에 술 면허제도를 실시한다. 술에 앞서 술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누룩 제조 허가제를 실시하여 술 제조를 통제하기 시작하고. 1920년 후반부터는 밀주 단속을 강력하게 실시하기 시작한다. 국세의 30~40%를 주세로부터 얻어내던 당시 밀주는 곧 세금이 새는 것이 되었고, 당시 월급 30~40원이던 시절 벌금 20원을 매기며 밀주 단속을 실시했다고 한다. 

덕분에 집집마다 담그던 우리 고유의 다양한 술이 사라져갔다. 거기에 더해 원래 청주와 청주에 약재를 더한 약주로 나뉘던 우리의 청주를 '약주'로 통칭하고 일본 청주를 청주라 부르도록 하며 일본 청주를 대중화시키도록 유도하며 우리 고유의 맑은 술 시장을 왜곡 축소시켰다. 또한 1930년대 전쟁이 격화되며 부족해진 쌀은 더더욱 고유의 술 시장을 위축시키며 막걸리 등 획일화된 술 문화 정착을 부추기게 되었다. 

 

 

쌀이 만병의 원인?
전쟁은 술만이 아니라 식문화 자체를 변형시켰다. 1930년대 총독부는 쌀을 아끼기 위해 하루 두끼 먹을 것을 종용하고 그것도 모자라 점심을 감자 정어리로 먹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심지어 호텔에서도 보리밥, 고구마 밥을 제공했다. 

하지만 워낙 쌀밥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던 우리나라 사람들, 그런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일본은 만병의 원인이 쌀밥이라는 쌀밥 유해설을 유포했다. 하지만 쌀이 배급되고 배급되는 쌀에 보리가 반이나 썪여 나누어 주는 상황에서도 쌀을 밀거래하는 등 사람들의 쌀 사랑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쌀이 부족한 상황에 뜻밖에 호황을 누리게 된 건 '호떡'집이었다. 밀가루를 둥글넙적하게 반죽하여 그 안에 설탕이나 팥을 넣어 구워낸 호떡이 경성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중국에서 온 떡이라는 의미의 호떡,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중국인들이 많아지면서 '쿨리'라 불리던 중국 노동자들이 간편하게 한 끼를 때우기 위해 만들어 졌던 호떡이 인기 메뉴가 되며 서울에만 150여곳의 호떡집이 성황을 이루었다. 

하지만 호떡집의 성황은 '지나', '때놈', '짱꼴라'라고 낮잡아 불렸던 중국인들과의 갈증의 도화선이 되기도 하였다. 중국 길림성 만보산 지역에서 개간지에서 발생한 중국 농민과 우리 이주민 사이에서 벌어진 만보산 사건은 조선인 살상이라는 거짓 뉴스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적 정서에 불을 붙였고 전국에서 무차별적인 중국인 린치로 인해 120명의 중국인이 죽는 사건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인기있었던 '호떡'집은 그런 당시의 민족적 감정과 함께 우리 돈을 손쉽게 긁어가는 중국인이라는 우리의 편견과 그런 우리나라 사람들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며 외상을 줄 수 없다는 중국인들 사이의 갈증으로 곳곳에서 마찰을 빚으며 난투극도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냉면, 설렁탕, 호떡 등 오늘날 우리가 즐겨먹는 음식들을 100년 전 경성 사람들도 즐겨 먹었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집에 빙수기를 놓고 하루에 7~8그릇의 빙수를 드셨다고 하니 요즘으로서도 '빙수 마니아'의 경지를 넘어선다. 그런가 하면, 위생 관리가 제대로 안되서 식중독의 원인이 된 빙수를 먹지 말라는 총독부의 포스터에 그려진 빙수만 보고 입맛을 다셨던 문맹률 70%의 현실은 우리가 몰랐던 또 그 시절의 또 다른 이면이다. 같은 음식이지만,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그 음식 그 이상의 식민서사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는 그 시절 음식을 통해 식민지 역사의 한 장을 옅보게 된다. 

by meditator 2019. 8. 27. 15:31

왓쳐가 마무리됐다. 이수연 작가의 <비밀의 숲>과 다른 한상운 작가가 집필했지만, 검찰 내부 비리를 다뤘던 <비밀의 숲>에 이어 경찰 내부 비리를 다룬 <왓쳐>로 안길호 피디는 '권력형 비리' 2부작을 완성했다. 아니, 그냥 완성이 아니라, 2017년 최고의 드라마가 <비밀의 숲>이었듯, <왓쳐>는 아마도 별 다른 이변이 없는 한 2019년 최고의 드라마로 기억될 듯하니 이 쯤이면 '명작 제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비밀의 숲>만한 드라마가 나올까싶었는데 <왓쳐>는 <비밀의 숲>만하게 시작해서 <비밀의 숲>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로 마무리되며 재밌고 좋은 드라마를 찾던 시청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퇴장을 했다. 무엇보다 2019년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초상을 그려내며 당대성을 담보해냈다는 점에서 <왓쳐>는 장르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정의란 무엇인가
2011년 우리나라는 '정의' 열풍에 휩싸였었다. 하버드 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 출간과 함께 ebs에서 강의를 하며 그 어려운 철학 강의가 열렬한 국민적 이슈가 되었다. 왜 그랬을까? 이명박 대통령 시절 사람들은 경제적인 각종 악재, 그리고 그보다 더한 정치적 절망을 겪으며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포기할 수 없었던 '희망'의 끈을 잡으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9년 우리는 다시 <왓쳐>를 통해 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은 16부로 마무리된 <왓쳐>에서 최종 빌런이었던 박진우(주진모 분) 세양지방 경찰청 차장이었다. 도치광의 감찰 비리반을 유일하게 비호해 주었던 사람, 그럼에도 그는 동료 경찰들의 '비리'를 캐고 다니는 도치광에게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며 질문을 던진다. 같은 정의인데도 2011년의 정의와 2019년의 정의는 어쩐지 뉘앙스가 다르다. 그리고 그 '다른' 뉘앙스, 2011년에 열광했던 정의가 퇴색한 모습이야 말로 <왓쳐>가 주목한 이 시대의,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이다. 


시작은 1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2살이었던 김영군(서강준 분), 그의 눈 앞에서 어머니가 칼에 찔려 죽었다. 세양지방 경찰청 형사였던 그의 아버지 김재명(안길강 분)은 아들인 영군의 증언이 유력하게 채택되며 어머니를 죽인 살인범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유력한 증거, 바로 후배였던 도치광(한석규 분)가 김재명이 살인범일 거라며 조작했던 피묻은 잠바가 그런 그의 범죄를 확증시켰다. 

15년 후,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진 그 사건에서 아버지가 범인이라 증언했던 영군은 교통계 순경이 되었다. '아무도 못믿으니까 경찰이 적성이죠'라는 영군은 15년 그 사건에서 정말 자신이 봤다고 했던 것이 진실인지를,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게 맞는지를 그 진실을 찾아 경찰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영군의 앞에 아버지의 후배이자 그를 감옥으로 보낸 도치광이 비리 감찰팀의 팀장으로 영군을 스카웃한다. 그리고 '인간다움'을 물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한 경찰 내 사조직 킬러를 잡기 위해 한때는 영군을 독려해 김재명을 살인죄로 기소한 검사였던 변호사 한태주(김현주 분)가 합류한다. 영군도 그렇지만, 한태주도, 그리고 도치광도 15년 전 그 사건의 진범이 과연 김재명이었을까란 의심으로 부터 출발한다. 

교통계 순경 영군의 눈에 우연히 띈 유괴범 손병길로 부터 시작된 사건은 장기 매매 사건으로 이 사건은 다시 선일 암매장 사건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결국 경찰 내 사조직 장사회와 그들의 앞잡이 거북이를 향한다. 그리고 거기에 비리 감찰반 세 사람 도치광, 한태주, 김영군이 얽힌 15년전 영군 어머니를 아버지 김재명이 죽였다는 사건이 있다. 각자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세 사람, 그런 그들에게, 경찰 내 사조직 장사회와 거북이를 밝히려 드는 감찰반장 도치광에게 묻는다. '정의'가 무엇이냐고.

 

 

박진우가 묻는 의미는 그렇다. 지금 네가 '정의'를 운운하며 경찰을 털려고 다니는데 결국 그 니가 말하는 정의가 동료를 배신하는 행위이고, 어쩌면 진짜 '정의'를 위해 했을 지도 모를 경찰들의 일을 방해하는 일 일 수도 있다고. 그런 박진우의 질문에 도치광은 이른바 '썩소'를 날린다. 그리고 반문한다. '정의? 그리고 난 정의 그런 거 몰라요. 그저 나쁜 경찰을 잡을 뿐이예요'라고 답한다. 2011년에 마이클 샌델에 열광했던 그 '정의'는 분명 '옳바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2019년에 오니, 그 '정의'와 '나쁜 경찰을 잡는 옳은 일'사이의 간극이 생겼다. 

경찰대를 졸업한 엘리트들의 모임, 소년 장사를 의미하는 '장사회'였을 거라던 경찰내 사조직은 알고보니 안되면 '장사나 해야겠다'던 자조적 의미의 사조직이었다. 경찰대 출신은 맞다. 김영군의 아버지 김재명이 자신들이 애써 붙잡아 넣어도 각종 '선'을 타고 손쉽게 혹은 가볍게 감옥문을 빠져나오는 흉악범들을 '사적'으로 손봐주기 위해 혹은, 수사를 '편의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 만든 사조직이 바로 '장사회'였다. 

분명 시작은 명분 상으로는 법으로 해결될 수없는, 아니 '만족'할 수 없는 '정의'였다. 하지만 그 '편의적 정의'는 칼자루를 쥐며 날개를 달자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거북이'라는 킬러까지 움직이며 검경을 아우르는 '무소불위'의 커넥션으로 덩치를 불려간다. 단지 이권만이었을까, 경찰대 출신의 똘똘한 광수대 엘리트 형사가 거북이가 된 게. 장해룡이야 자기 딸을 그렇게 만든 흉악범에 대한 사적 복수로 그렇게 됐다지만 그 뿐이었을까. 많은 경찰들이, 그리고 검찰들이 '정의'라는 편의적 명제 앞에 자신들을 합리화하며 야망과 이권을 누리기 위해 모여든 것이 아니었을까. 결국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정의'는 그들이 쓰는 '조자룡의 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칼에 장사회를 만든 장본인 김재명은 아내를 잃고 결국 자기 자신도 목숨을 잃고 만다. 그리고 이제 15년이 지나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는 감찰 비리반의 '수사대상'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제 어느덧 장사회의 보스입네 하게 된 박진우의 입에서 '정의'라 흘러나오는 시절이 되었다.  그렇게 '정의'는 퇴락되어 간 것이다. 마치 2019년 우리 시대 부도덕한 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정의'처럼.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한태주 변호사는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던 거북이가 던진 '인간다움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거북이를 찾는 유일한 단서로 여겼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의 손가락을 자르며 살인을 즐기는 킬러의 정의, 그런 킬러를 운용하는, 그럼에도 '정의'를 운운하는 집단의 '인간다움'을 역설적으로 드라마는 집요하게 묻는다. 그런데 그 질문을 만든 당사자 박진우가 내린 답은 어이없다. '인간다움'이란 추상적 명제 앞에서 당황하는 피해자들, 결국 '대의명분' 앞에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그 인간적 허점을 노렸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박진우의 역설적 인간다움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를 떠도는  '정의'라거나, '인간다움'이라는 추상적 명제가 가지는 허상의 배를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왓쳐> 의 매력은 바로 이런 정의내릴 수 없는 인간다움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물론 궁극적을 지은이가 추구하는 '정의의 한 계파'에로의 결론을 유도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수한 정의론이 등장한다. 달려오는 열차, 철로 위에 사람, 과연 그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맞는가, 기차에 탄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맞는가. 무수한 딜레마의 서사가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그렇듯 <왓쳐>의 묘미는 바로 그런 '딜레마'를 가진 인간다움이다. 

시작은 자기 딸의 손가락을 절단한 범인에 대한 사적 복수심이었으나 어느덧 괴물 거북이가 되어버린 장해룡, 사건 수사의 편의를 위해 시작한 사조직이었으나 괴물이 되어버린 조직 앞에 자신과 가족을 빼앗겨 버린 김재명, 순경 출신이라는 컴플렉스가 사조직 장사회를 통해 거침없는 야욕으로 돌변해 버린 박진우, 자신이 진실이라 믿는 걸 얻기 위해 수단과 타협하곤 하는 도치광,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자른, 아니 자신의 인간다움을 짓밟아버린 범인을 찾기 위해 결정적 순간 자기 편을 배신할 수 있는 한태주까지 <왓쳐>는 명분을 그럴듯하게 내밀지만 저마다 딜레마를 가진 인간들의 전시장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세대론이기도 하다. 시작은 '정의'로우려 했지만 어느덧 자신들의 편의적 '정의'와 야욕, 야망으로 인해 '수사' 대상이 되어버린 아버지 세대, 바로 <왓쳐>는 젊은 영군 앞에 거침없이 까발려져 버린 어느 덧 아버지가 되어버린 세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들처럼 영군이 젊은 거북이를 향해 총구를 겨눌 때 도치광과 한태주가 그 손을 잡듯이 너는 그러지 말라고, 우리처럼 편의적 정의에 물들지 말라고 경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밀의 숲>은 검찰 내부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정의롭지 못한 정의'를 실천했던 이창준(유재명 분)이 자신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지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것으로, 스스로 단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며 한 세대를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왓쳐>는 시즌2를 염두에 둔 탓일 수도 있지만, 젊은 거북이였던 형사의 병실을 찾는 거북이를 등장시키며 경찰 내 비리 조직의 여운을 남긴다. 아니 무엇보다, 나쁜 형사만을 잡는다던 도치광이 감찰 비리반의 존속을 위해, 자신의 과거를 염동숙 청장의 박진우 차장 살해 교사와 협상했음을 밝히면서 아직 그 '부정의'의 정의를 부르짖는 세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고 쉽게 끝나지지 않을 것임을 드러내며 경계심을 촉구한다. 

마지막 자신의 협잡을 눈치챈 영군에게 도치광은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 자부한다. 그리고 영군에게 너는? 하고 묻는다. 그러자 영군은 그런 도치광을 지켜보겠다고 한다. 명실상부한 '왓쳐'다. 퇴락해가지만 그러지 않으려 애쓰겠다는 정의의 세대, 그 세대를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는 영군의 세대, 그렇게 왓쳐는 2019 정의의 경계, 세대의 경계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풀어냈다. 한상훈 작가와 안길호 피디가 만든 이 세대론의 얼개 위에 살을 붙이고 날개를 단 건 다름 아닌 명불허전 한석규를 비롯하여, 김현주, 서강준 등의 배우들이었다. 드라마의 시대는 갔다지만 여전히 좋은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울리는 걸 드라마만큼 잘해낼 수 있는 장르가 있을까라는 걸 왓쳐는 스스로 증명해 냈다. 

by meditator 2019. 8. 26. 14:13

'결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성인 남녀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결합? 하지만, 이 이상적인 문구는 각 사회가 처한 '근대적'인 조건에 따라 다르다. 우리나라만 해도 결혼은 젊은 남녀의 자유로운 선택이라 하지만, 결혼 과정에서 부모의 경제력이나 서로의 집안 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결혼 제도는 세계적 기준에 따르면 '불완전한' 자유 결혼'이라 평해진다. 아직까지도 자유 의지보다는 '조건'이나 '환경'이 우선하는 결혼 제도이기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결혼으로부터 자유롭고싶다는 '비혼 선언'이 등장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국가, 거기에 각 지역별로 사회, 문화적 발전의 불균등한 격차가 사회 발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는 중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은 어떤 고민을 겪고 있을까? 16, 7살만 되면 가족이 남편감을 찾는 유대교 전통의 압박이 있는 이스라엘 출신의 쇼쉬 슐람, 힐라 메달리아 감독이 살펴본 동시대 중국의 여성들의 모습은 근대를 삶으로 겪어내야하는 여성들의 '동병상련'을 담고 있다. 

 

 

성뉘; 잉여 여성 
국가적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1980년대 이래 한 자녀 정책을 실시해왔던 중국 정부(인구 감소에 따라 2013년 폐지), 여전히 전통적 '남아 중심 사상'이 지배한 중국 사회였기에 중국 전체 인구 비율 상 남성 인구가 3천 만명이 더 많다. 당연히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남녀의 비율이 맞지 않는 상황, 그래서 중국 정부는 여성들에게 20대, 특히 27세 이전에 결혼할 것을 강권한다. 

하지만 2012년 기준, 유엔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27~29세의 여성 중 4명 중 한 명이 미혼이며 이 추세는 더 늘어나고 있는 상황, 중국 정부는 이렇게 결혼하지 않는 고학력의 이른바 '골드 미스'들을 '성뉘; 잉여 여성'이라 낮잡아 부르며 국가적으로 결혼 제도 속에 편입하기 위해 '압박'하고 있다. 
<위기의 30대 여자들>은 이렇게 본의 아니게 '성뉘'가 되어버린 세 여성 추화메이. 쉬민, 가이치의 이야기를 다룬다. 

 

 

34살 변호사가 '불리한 조건'?
결혼 중매 회사를 찾은 34살의 변호사 추화메이, 자신의 일을 존중해 주며 집안 일도 같이 해주는 남자를 찾는다는 자신의 조건을 내세우자, 중매 회사 관계자가 난색을 표한다. 34살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거기에 변호사라는 직업이 '성격이 강해보이게 만들어', 좋은 조건이 아니라며 그녀의 눈높이를 낮출 것을 요구한다. 답답한 마음에 공원에서 열린 부모들의 중매 시장을 찾은 그녀, 변호사라는 그녀의 직업에 남자 측의 어머니는 그녀가 법으로 자신의 가족을 해꼬지 할 수도 있다며 말도 못붙이게 한다. 

베이징에서 차로 4~5시간 거리에 있는 산둥성의 추화메이의 집, 집에 오자마자 가족들은 '괜찮은 남자 찾았니?' 라며 그녀의 결혼 걱정에 한숨이 늘어진다. 법에 따라 20대에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결혼하기 싫다며 먼저 결혼해서 좋냐고 언니들에게 물어보지만, 결혼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때가 되서 하는 거라며 가방끈이 길어 눈만 높아졌다며 외려 퉁바리를 준다. 심지어 넉넉지 않은 형편에 학비까지 대줬더니 동네 사람들에게 딸 시집 못보낸 집안이라 손가락질 받게 생겼다며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바보라며 온가족이 닥달을 해댄다. 결국 눈문을 흘리고야 마는 추이메이. 

결국 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다시 중매 회사를 찾은 추이메이, 같은 고향 출신의 괜찮은 조건의 남자를 만났지만, 이 남자 대놓고 남성 우월주의가 강한 산둥성의 전통을 따르겠다며 법적인 부분에서는 그녀의 조언을 따르겠지만 주도권은 자기가 쥐어야겠다며 당당하게 말해 추이메이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혹시나 너무 늦은 결혼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할까 하는 우려에 산부인과를 찾은 추이메이, 35살 이상이면 노산이며 자궁 내막이 건강하지 않아 기형아 출생율이 5배나 높다며 겁을 주던 의사는 정작 정자를 보관해 주는 정자 은행은 있지만 난자를 냉동시켜 보관해 주는 난자 은행은 태국이나 미국에 가서 알아보란다. 

 

 



28인데 노처녀?
베이징의 매일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 쉬민은 이제 28살이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밸런타인 데이트 이벤트에 참석하는 그녀에게 결혼, 그리고 결혼할 남자에 대한 생각은 아직 이상적이다. 활발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그녀, 하지만 고학력에 베이징에 살아야 하며, 공무원이나 엔지니어, IT계열에, 집도 가져야 하고, 키는 175 이상이었으면 좋겠다는 등 점점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하지만 이런 까다로운 조건이 그저 쉬민만의 생각이 아니다. 밸런타인 데이트에서 공무원이라는 남자를 만나서 설레이며 돌아온 집,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부모님, 특히 엄마는 속을 수도 있다면 까다롭게 따진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8살인데 늦었다며 초조해 하시면서도 무남독녀인 그녀가 남자를 만날 때마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끄집어 내며 연애의 장애물이 되어왔다. 좋아해서 만나다 엄마가 반대해서 결국 계속 만나지 못했던 경우마저 있었다. 

그렇게 사사건건 반대를 하며 트집을 잡는 엄마때문에 심리 상담까지 받으며 힘들어 하던 쉬민은 결국 어머니 앞에서 폭발하고 만다. 어머니 역시 맨날 성화인 할머니 때문에 비슷한 집안의 아빠를 만나 결혼하게 된 케이스, 엄마 때문에 남자 만나기도 힘들다며 눈물을 흘리는 쉬민에게 엄마는 집도 사줬는데 이제 와서 엄마를 무시한다며 외려 서운해 하신다. 독립적인 성숙한 여성으로 자기 삶의 파트너를 선택하고 싶지만 쉽지 않은 나이 28살이다. 

 

 

결혼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
가이치는 36살의 영어 강사이다. 지식인 가정에 태어난 그녀, 하지만 47살에 파킨슨 병을 앓기 시작한 아버지로 인해 배우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집안이 번듯하지 않아서 그녀의 결혼에 장애물은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다행히도 결혼에 성공했다. 그 모든 악조건에도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연하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의지할 수 있는 연상의 안정적인 남자가 좋다지만 그녀는 웃고만다. 결혼 후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광저우 대학으로 옮긴 그녀 학생들과 함께 페미니즘 영화를 보고 페미니즘과 결혼이 공존할 수 있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자신의 바뀐 결혼관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밝힌다. 


20대에는 집있는 남자를 바랬다는 가이치, 아버지가 아프실 때는 그런 그녀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의지할 수 있는 남자를 바랬었다고.  서른 살이 넘어가고 그녀가 바라던 조건의 남자가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미혼으로 살아갈 것인가 타협점을 찾을 것인가 고민하고.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괜찮은 연하남. 

결혼 후 광저우 대학으로 이직을 고민하는 그녀에게 아이를 낳고 싶어하던 남편은 광저우가 생활비가 적게 들어 아이 키우기에 적당할 것같다며 이직을 권했다고 한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던 그녀, 이제 남편의 바램에 따라 아이를 낳고 광저우에서 직장도 구했는데, 그녀는 말한다. 재미로 따지면 결혼 전 인생이 재밌었다. 하지만 결혼 후 인생은 재밌지는 않지만 더 많은 행복감을 준다고. 결혼도 하고 자신의 삶도 누리기 위해서는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결혼을 성공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하남과의 안정적인 결혼에 성공한 가이치,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추이메이는 프랑스로의 유학을 선택한다. 결혼에 대한 편견을 전족에 빗대는 추이메이, 포부가 작은 여자는 작은 발를 가진 여자처럼 전족같은 결혼에 맞춰 살아갈 수 있지만, 큰 발처럼 자기 인생에 대한 포부가 큰 그녀는 이 나라의 결혼 제도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 

하지만, 망망대해 거세게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홀로 맞서는 처지. 노처녀란 단어에 발목잡히고 싶지 않지만 끊임없이 그녀를 향해 밀려오는 사회적 편견의 파도는 그녀를 질식할 것같이 만든다고 토로한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건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해 도망치는 것.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그녀는 이 나라를 떠나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결혼을 안한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아버지는 그제서야 그녀가 아들이 없으면 무시당하던 시대를 살아왔던 자신의 꿈을 이루어 주었다며 자랑스럽다며 손을 잡는다. 고향을 떠나며 아버지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추이메이, 그녀는 비록 떠돌겠지만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위기의 30대 여자들> 속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인 중국 여성들의 모습은 불과 한 몇 십년전 우리 여성들의 복사판같다. 아니 몇 십년 전이라 예단할 수 있을까? 노처녀라는 낙인을 피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삶을 위해 조국을 떠나는 추이메이나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져오는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비혼'을 선언하는 우리 사회 젊은이들의 처지는 나라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그 속에 담긴 '압박'에 대한 저항은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최근 등장한 '취집'과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쉬민이 무에 그리 다를까. 행복한 결혼을 위해 '포기'해야할 것이 있다는 가이치의 토로에 가장 공감할 사람은 우리의 '직장맘'이 아닐까. 나라는 다르지만 저마다의 문화적 상황에 맞춰 여성들의 삶은 재단되고, 그 재단된 삶을 향해 여성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고뇌하고 싸운다. 



by meditator 2019. 8. 22. 21:39

<60일, 지정생존자>가 종영했다. 1회 3.383%에서 시작하여 15회 5.434%, 동시간대 공중파, 케이블 시청률 1위를 수성하며 성공적인 마무리를 한 셈이다. 특히 최근 부진했던 tvn 드라마의 주중 성적으로 치면 발군이다. 더구나 모아니면 도라 할 수 있는 외국 드라마의 번안 실정에서  <60일, 지정 생존자>는 성공적인 '각색'의 한 사례로 기억될만하다. 과연 <60일, 지정생존자>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60일, 대통령 권한 대행 
무엇보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이야기의 변주를 들 수 있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 유고시 지정 생존자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여 남은 대통령의 임기를 수행하도록 한다. 또한 이를 위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있을 경우, 유사 시에 대비하여 각료 중 한 사람을 '지정 생존자'가 될 수 있도록 안전 시설에서 대비하도록 한다. 바로 이런 미국 특유의 정치적 위기 관리 해법을 모티브로 하여 넷플릭스의 <지정생존자>가 만들어 졌다. 그리고 이 미드 <지정생존자>는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로 와서, 대통령 유고시 승계자는 '권한 대행'이 되어 다음 대통령 선거가 치뤄지는 60일 이내까지 대통령 직을 수행하도록 하는 설정이 되어 <60일, 지정 생존자>가 탄생되었다. 엄밀하게 정의하자면, 60일, 대통령 권한 대행이다. 

즉, 미드 <지정 생존자> 속 대통령이 된 톰 커크먼은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으로서, 그에게 맡겨진 선출직 국가 원수로서의 '정치적 권위'를 어떻게 '달성'해가는가라는, 미국적 정치 제도 속 딜레마를 안게 된 최하위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의 정치적 성장 서사이다.  반면,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된 박무진(지진희 분)은 환경 학자로서 자신의 학문적 소신에 따라 대통령에게 사표를 내던질 만큼 '정치인' , 혹은 '각료'라기 보다는 '학자', 혹은 한주승 비서실장의 말처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한 사람이었다. 기꺼이 자신의 학문적 주장이 정치적으로 관철되지 않자 정치를 '이반'했던 '자연인'이었던 '개인' 박무진이 본의 아니게 국회 의사당 테러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의 '유고'로 인해 대통령 권한 대행의 자리에 떠밀려 앉게 되면서 <60일, 지정생존자>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드라마 속 자주 비춰지는 그의 신발처럼, 대통령에 의해 억지로 신겨졌던 구두를 자유롭게 벗어던졌던 그가 다시 그 맞지 않는 구두를 꾸역꾸역 신어야 하는 '거북함', 불편함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하지만 어색함과 낯섬도 잠시 대통령이 '부재'한 분단 사회에 휘몰아치는 위기의 상황들에 권한 대행 박무진을 던져넣고 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유고'된 양진만 대통령과 그의 정부이다. '민주'적 정부를 표방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그의 민주적인 원칙과 의지는 '정치적' 과정 속에서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점점 떨어지는 지지율 속에서 '소신'은 커녕 위태로운 처지에 빠지게 된 양진만 정부,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테러는 안그래도 취약했던 정부, 정권 자체를 흔드는 야당, 군부 세력들의 '난립'으로 이어진다.  

서울 시장을 이 틈을 타서 자신의 선거 운동을 노골적으로 하기 위해 귀화한 북한 동포들을 이용하여 사회적 분열을 획책하고, 군은 '평화' 정책을 추진했던 양진만 정부의 정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국회 의사당 테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오영석(이준혁 분)은 대중의 영웅이 되어 청와대를 향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언론은 사건에 따라 안그래도 취약한 권한 대행의 청와대를 흔들고, 테러와의 공모 여부로 박무진은 점점 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박무진이 청와대 참모들을 믿을 수 없는 만큼, 청와대 참모들 역시 한낮 학자 나부랭이였던 박무진의 '권한 대행' 능력을 신뢰할 수 없어 한다. 

또 한 사람의 영웅 대통령? 
드라마는 좋은 사람, 그리고 좋은 정치를 지향했던 양진만 정부의 무기력함으로 시작하여, 테러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본의 아니게 권한 대행이 된 박무진을 통해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이야기인 듯 드라마를 연다.  실패한 '영웅'의 세계에 나타난 또 한 사람의 '영웅' 서사인가? 말이 삼권분립이지 사실상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선 대통령제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언제나 우리 사회에서 '메시아'와 같은 '희망'의 기대주였었다. 그리고 <60일, 지정생존자>도 다시 그 익숙한 화법으로 시청자들에게 또 한 사람의 '좋은 메시아'의 도래를 선도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저 다른 정치적 조건, 제도에서 잉태된 한국적인 <60일, 지정생존자>라는 변주된 드라마를 넘어 원작과는 다른 결론에 도달하며 드라마는 구태의연한 정치적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2019년에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볼 '정치'의 의미를 묻는다. 

 

 

그 시작은 뜻밖에도 그가 '사표'를 던지게 된 그 사건으로부터 비롯된다. 미국과의 조약 과정에서 미국 측의 압박으로 인해 불리한 처지에 놓인 상황을 박무진은 환경학자로서 데이터를 제시하며 미국측을 수세로 몰아넣으며 회담 자체를 유리하게 끌고간다. 바로 그런 그의 '학자적 접근'은 북한 잠수함의 출몰로 군부의 무력 시위를 앞세운 군사적 충돌 상황을 다시 한번 '데이터'를 통한 접근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유도한다. 즉, 청와대 비서진들조차 '우리 진영'의 논리에 빠져 박무진에 대한 믿음을 두지 않는 상황에서 '사실'에 근거한 설득으로 도발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박무진은 양진만 정부의 일원이었지만, 기꺼이 그 정부에게 사표를 내던질 만큼 학자적 양심이 우선한 사람이었고, 대통령 권한 대행의 자리를 내던질 위기에서 한주승 비서실장의 '시민'의 권리라는 설득으로 물러서게 되는 '개인'이었다. 그에게는 소속된 '진영'이 의미가 없었고, 그가 권한 대행의 자리에서 내리는 결정은 양심적인 민주 시민으로서의 고뇌에서 비롯된 결정인 것이다. 

고뇌하는 시민, 그가 잉태한 좋은 정치 
그래서 드라마 속 박무진은 늘 고뇌한다. 매회 그, 그가 대행하고 있는 60일 한정의 정부를 흔드는 사건들 속에서 그는 '시민'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이웃으로서 최선을 길을 찾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그래서 차영진(손석구 분)의 말처럼 기존의 정치가 해왔던 이분법적인 결정이 아닌 뜻밖의 결정을 통해 '정치'의 길을 새롭게 개척해 나간다. 그리고 그 길은 차별 금지법이라는 정치적 승부수조차 뒤로 미루며, 아니 이벤트가 아닌 진짜 차별 금지법을 실행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적 성장의 길로 나선다. 

그런 그의 결심은 마지막 회 가장 큰 위기를 겪는다. 바로 때로는 그를 멀리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가장 의지했던 양진만 정부의 핵심이었던 한주승 비서실장이 테러의 배후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원작과 달리, <60일, 지정생존자>의 대통령 권한 대행 박무진은 자신이 괴물이 될 테니 당신은 앞서 좋은 정치를 해달라는 한주승 비서실장의 협박인지 선언인지 모를 유혹을 딛고 대통령 출마를 포기하는 것으로 그의 정치를 완성한다. 

 

 

16부의 장정 속에서 박무진의 정치는 늘 그와 다른 길을 걷는 세력들에 의해 '시험'받는다. 한반도의 위기 속에 군사적 실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군부 등 군사적 세력에 의해, 도덕적인 해결보다는 정치적 수를 우선하는 청와대 참모를 비롯한 야당 , 언론들에게, 그리고 자신을 버린 국가에 대항하여 테러라는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으며 대중을 선동하여 정권을 잡으려 했던 오영석 등의 테러 집단에 의해, 무엇보다 아이러니한 것은 '민주적 정치'를 실현하려 했던 양진만 정부의 실세였던 한주승 실장이 자신들의 정치가 외면받자 테러로 양진만 정부를 전복하고 테러 적극 가담자인 오영석을 통해 가장 극단적인 방식의 정치적 '혁명'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 모두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수단'을 불사하고 대중을 자의적으로 도모하고 이용하고자 했다는 것. 그런 편의적이고 자의적인 정치적 방식에 대해 박무진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 어느 편이 아닌 '민주' 사회의 '시민'의 입장에서 정치의 새 길을 터나간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2019년 여전히 새롭지 않은 정치의 세상에서 매우 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접하고 논하게 만든다. 그의 옮음은 이미 어느 편이라 완성되지 않은 것이었으며, 그래서 늘 그를 위태롭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흔들었지만, 그래서 그는 쉽게 어느 편에 서는 대신, 원칙적으로 할 수 있었다. 또한 어느 편이 아니었기에 야당의 대표라도, 그가 사퇴시킨 전직 참모 총장이라도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유연한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지지율조차 야당 대표보다 10%가 넘게 이긴 상황, 이제 대통령에 출마하겠다고만 하면 대통령 자리가 굴러들어올 수 있는 상황, 이제 다시 그가 새로운 희망을 열어줄 수 있다는 한주승 실장의 설득 아닌 설득에, 박무진은 민주주의가 괴물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쳐서 만들어 가는 시스템임을 선언한다. 옳다고 믿는 자기 도취의 어떤 집단에 의한 전횡이 아니라, 지금이 아니더라도 그 언젠가 도달해 나갈 실패와 실수의 과정이라는 '희망'을 열어준다. 

미 메릴랜드 대학교의 국제 개발과 분쟁관리 연구소에 따르면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는 88개국이다. 그리고 그 중에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를 이룬 국가는 불과 27개국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31번째  '흠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다. 하지만 해방 후 불과 반세기,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과정 속의 민주주의 체제에 있는 건 당연한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벌써 우리가 이룬 민주주의에 대해 자부심보다는 <60일, 지정생존자> 속 많은 회의주의자들처럼 우려와 좌절에 익숙하다.  더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촛불까지 든 사람들의 마음을 얼룩지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런 상황에서 박무진이라는 한 사람이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어 보낸 60일의 시련기, 그리고 그가 다시 꿈꾸는 정치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희망을 가지게 한다. 막연한 또 한 사람의 영웅 탄생이 아니라, 드라마 마지막 그와 함께 활짝 웃었던 젊은 보좌관들처럼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같이 함께 고민해 볼 '민주주의적 정치'를 말이다. 

by meditator 2019. 8. 21. 05:49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아들 둘만 키웠다. 아들 둘만 키우는 기자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흔히 '딸이 없어서 어쩐대요' 하고 안타깝게 혀를 찼다. 마치 세상에 행복한 순간을 놓쳐버린 사람을 보듯이, 정말 그랬을까? <sbs스페셜- 속터지는 엄마, 억울한 아들>을 보면 아들을 키우는 일은 요즘 말로 '헬'이다 싶다.  슬하에 아들을 둔 엄마들 1000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아들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한 엄마가 무려 응답자의 85%에 달했다. 심지어 83%의 엄마가 아들을 키우면서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한다. 아들이 뭐길래,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일까? 

 

 

아들은 비글이다
충남 천안의 박효선 씨네는 9살, 8살, 6살 아들 셋을 키운다. 엄마의 생일날 아빠가 마련한 편의점표 미역국에 아들들이 우렁차게 엄마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생일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도 잠깐 엄마가 케잌에 불을 끈지 10분도 되지 않아 난리가 났다. 자기가 생일 케잌을 자르겠다는 아들, 잘랐는데 모양이 흐트러져서 먹지 않겠다는 아들 한 명을 겨우 달래놓으면, 다른 한 명이 방에 가서 울고 있고 으르고 달래다 남편 말로 '포악'해져야만 겨우 좀 수그러드는 아들들, 정작 생일 당사자인 엄마 입에 케잌 한 입 들어갈 틈이 없다.

목동의 주한이 엄마는 딸 둘에 아들 주한이를 키운다. 그런데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은 엄마 말에 따박따박 해야할 거 , 준비물을 잘 챙기는 반면, 열 살이나 된 아들 주한이 뒤치닥거리는 끝이 없다. 당장 학원에 가야 하는데 학원 숙제를 잊어먹은데서 부터 시작하여 내일 학교 갈 가방 준비는 당연히 엄마 몫이다. 겨우 공부 좀 하라고 방으로 들여보내면 귀는 온통 거실의 가족에게 쫑끗, 공부가 끝날 때까지 하세월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연년생 윤이 형제를 키우는 김수정씨라고 다를까. 아침에 일어나서 부터 먹고 싶다는 초코 과자, 엄마가 준비한 아침을 먼저 먹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 앞에 눈물 투쟁을 벌인 아들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낸다. 이런 식이다. 마음이 약한 엄마와, 엄마가 자신의 눈물에 약하다는 걸 아는 겨우 여섯 살 아들의 싸움은 언제나 아들의 승리이기가 십상이다. 한 마디해서는 엄마 말을 듣지도 않는다. 층간 소음이 민감한 엄마는 장난감을 두드리고 노는 윤이에게 그만 하라 하지만, 한 번, 두 번, 결국 엄마의 목소리가 하이데시벨에 이르러서야 놀던 것을 멈춘다.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 아들을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다. 가방, 일기장, 핸드폰까지 뭐든 챙겨주지 않으면 않되는 부족한 존재이며, 그래서 손이 많이 가는 대상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도대체 엄마 말을 들어먹지를 않는다. 엄마들은 입을 모아 한 마디로 아들을 정의 내린다. 개 중에 이른바 '미친 개'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비글'이라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애초에 아들이 엄마의 말을 알아먹지 못하게 태어난 '하등'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아니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 '가정 버정'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저 '내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의 틀에 아이를 무조건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화성에서 온 아들 
전문가들은 엄마 역시 '여성'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이 '존재'로써 반응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많은 차이가 있음을 엄마들이 조금 더 이해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고 한다. 

우선 드는 건 뇌량의 차이이다. 아들들은 흔히 엄마들이 하는 밥먹고 들어가서 문제 풀고 책가방싸고 독서해라는 식의 '지시'를 수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딸들이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신경 다발인 뇌량이 넓어 한꺼번에 다양한 정보를 수용하기 쉬운데 반해, 아들들은 가늘고 길어 한꺼번에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는 이른바 '멀티'가 어렵다고 한다. 

또한  대뇌 피질의 성격 자체가 아예 다르다. 남성이 공간 지각 능력이 뛰어나 논리적인 접근이 취운 반면, 여성들이 언어적 학습적 능력이 뛰어난 공감적 반응에 있어 우수한 차이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다큐는 이런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실제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초등학생 남학생과 여학생 각각 3명씩 총 6명의 그룹, 문래동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함께 떠난다. 선생님과 함께 떠난 길, 선생님은 계속 아이들의 주의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주변에 관심을 돌리며 종착지에 도착하고, 거기서 부터 남자 아이들 그룹과 여자 아이들 그룹으로 나뉘어 출발지를 찾아가도록 한다. 

물론 남자 아이들도, 여자 아이들도 원래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판이하다. 여자 아이들이 출발과 동시에 자신이 어떤 길로 왔는지 헷갈려하며 이 길 저 길을 찾아보며 도착지에 도착하는 것과 달리, 남자 아이들은 자신이 왔던 길을 정확하게 기억해내며 쉽사리 출발지에 도착한다. 

공간 감각 능력, 공간 지각 능력이 높은 남자 아이들에게 유리한 미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길을 잘 찾는 게 아니라, 왜 잘 찾는가 다큐는 짚는다. 남자 아이들은 주변 환경에 대해 '시각'으로 지각을 하기에 '길찾기'에 여자 아이들보다 나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오는 과정에 있었던 풍경에 대한 기억도 훨씬 상세하다. 반면 여자 아이들은 '청각'적 자극에 더 예민하다. 오는 과정에 친구와 통화를 했던 내용에 대해 남자 아이들이 무심하게 반응한 것과 달리 여자 아이들은 그 세세한 내용과 함께 선생님의 감정적 상태까지 기억한다. 언어적 공감 능력이 좋은 결과물이다. 

그러기에 전문가는 말한다. 남자 아이들은 청각적 예민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대화의 상호 작용도 떨어지고 흔히 엄마들이 말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엄마는 연속적으로 이야기하지만 그게 한 번에 '접수'되지 않고, 결국 마지막에 엄마가 '감정적'으로 폭발할 상황에서야 '메시지'가 전달되며 '엄마가 나를 미워하나?'라는 오해를 사기가 십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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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육? 소통이 먼저다
다큐는 '엄마 수업'을 통해 나와 다른 특성을 지닌 아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흔히 아들이니 무조건 신체적 놀이만 하면 되겠지 하는 엄마에게 '신체 놀이'와 '대화 놀이'의 균형을 제시하고, 무엇보다 놀이 과정에서의 '대화'와 '소통'에 집중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규칙을 따르는 것에 익숙한 남자 아이들에게 규칙을 세분화하여 미리 정하고 협상을 통해 갈등을 줄여나갈 것을 제시힌다. 

그리고 '산만'하다 한탄하기에 앞서 '시각적 자극'에 취약한 남자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시각적 유혹의 여지를 줄여나갈 것을 요구한다. 

다큐가 제시한 지침을 따른 앞서 '문제의 가정'들, 한결 평화롭고 행복한 모자 관계의 단초를 마련한다. 하지만 어디 '가정' 뿐일까?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 특히 초등학교 역시 여자 선생님들이 대부분인 상황, 그곳에서 '남자 아이들'은 처지는 다르지만 '산만'하고 '말안듣는', 문제아가 되기가 십상이다. 속터지는 건 엄마만이 아니라, 사실은 많은 여자 선생님들이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멀쩡한 남자 아이들을 사람을 속터지게 만드는 문제아로 만드는 사회, 어쩌면 이런 여성과 남성에 대한 오해는, 결국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젠더'에 대한 이해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젠더 갈등의 단초가 될 수도 있을 수 있다.

또한 다큐에서도 보여지지만 한참 뛰어놀 아이들을 시간에 맞춰 학원에 보내느라 다그쳐야 하는 환경은 어떨까? 친구랑 놀고 싶다는 아이의 눈물은 그저 '떼'로만 보여지지 않았다. 한참 놀이터에서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아파트 방 속에서 복닦거려야 하는 상황은? 거기에 더해 출연한 엄마의 말처럼, 남의 아이는 몰라도 '내 아이는 달라야 한다'는, 혹은 내 아이는 당연히 내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오늘날 우리 사회 엄마들의 강박은 또 다른 문제가 아닐까? 아이가 혹여 학교에 준비물이라도 안챙겨갈까 엄마가 자는 아이의 머리 밭에서 시간표를 챙기고, 연필을 깍고, 핸드폰을 무음으로 만드는 그 상황은 그저 내 아이의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라고만 넘겨야 하는 것일까?

다큐를 보면서 문득 궁금해 졌다. 엄마가 원하는 건 '소통'일까, 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일까? '엄마 수업'의 목표는 나와 다른 아이에 대한 이해일까? 엄마 말에 따라 문제도 성실하게 푸는 공부 잘하는 아이일까? '규격'에 맞추어 지지 않는 여전한 '본성'을 가진 남성적 젠더의 아이들을 아파트 숲의 환경에서 잘 길들이는 방식을 가르치는 '엄마 수업'일까? 

by meditator 2019. 8. 19. 17:07

밥상 속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한국인들의 다양한 음식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한국인의 밥상>은 방송가의 오랜 스테디셀러 프로그램이다. '어르신' 최불암 배우의 인자한 아버지같은 해설에 곁들여진 <한국인의 밥상>은 2011년이래 400회를 넘기며 전국방방곡곡의 밥상과 이야기를 찾아간다. 그리고 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한 <한국인의 밥상>은 특별 기획으로 의병들의, 감옥에서 생을 다한 독립운동가의, 광복군의 밥상을 따라 독립운동의 족적을 밟아본다.

척박한 땅에 피어나는 메밀보다도 더 척박한 삶을 이겨낸 의병들의 삶이 깃든 밥상,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이국의 교도소에서 고향을, 어머님을 그리워했던 젊은 독립운동가가 받아고팠던 밥상, 그리고 이국의 땅에서 나라잃은 나그네였지만 독립을 향한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광복군의 밥상까지 그저 한 끼의 밥상이 아니라, 그 밥상이 곧 독립운동사의 숨겨졌던 한 장이 된다. 

 

   

 

의병들의 호구지책, 막국수
그 시작은 춘천시 남면이다. 고흥 유씨 집성촌인 이곳에 한여름 볕을 맞으며 옥수수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옥수수 농사를 지으시는 박순재 씨는 알알이 잘 여문 옥수수를 내보이며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옥수수일 꺼라며 자랑을 한다. 하지만 이 옥수수는 그저 여름철 심심풀이 간식 옥수수가 아니다. 

이곳 남면은 19세기말 나라의 국운이 경각에 달했을 때 춘천 의병을 일으킨 곳이다.  박순재씨 댁 어르신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의병 어르신들이 싸우면서 드시던 <칡잎 옥수수 반대기>를 재현해 본다. 쌀이 귀하던 시절 알알이 떼어낸 옥수수를 절구에 찧어 소금간만을 해서 여름산 지천에 널린 칡잎에 싸서 쪄낸 음식, 지금의 입맛에야 배가 고파야 먹을만한 옛날 맛, 하지만 그 시절 의병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한 끼였다. 

막국수는 어떨까? 국수를 뽑는 틀도 없던 시절, 반죽을 해서 칼로 뚝뚝 잘라 칼싹두기라 이름을 붙였던 메밀 국수,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의병들은 산골로 몸을 피했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을 심었다. 봄부터 서리올 때가지 타작만 해서 바로 갈아서 먹을 수 있는 메밀을 요즘처럼 따로 양념이 없이 심심한 동치미 국물에 말아 투박한 밥상을 차렸다. 그리고 그 메밀 칼싹두기를 팔기도 했다는데, <춘천 백년사>는 바로 의병들이 만들어 팔던 메밀칼싹두기가 오늘날 춘천의 대표 음식인 '막국수'의 유래라 기록하고 있다. 

의병의 고장, 의병장만 열 댓분이나 되는 이곳에 여성 의병장 윤희순 의사는 독보적이다. 

나라가 없으면 나도 없어, 의병하러 가세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 소냐, 
우리 안사람 만만세, 만세로다


1907년 여성 의병대를 조직, 군자금을 모아 의병을 지원하는 하고 의병가, 안사람 의병가를 만들어 독려하고, '왜놈대장 보거라'는 경고문을 4차례나 쓰셨던 분, 국권이 침탈되자 온가족이 만주로 가 돌아가실 때까지 독립 운동에 헌신하셨던 윤의사는 잘 사는 집에서 쌀을 받아다 나눠 먹이곤 하셨단다. 하지만 쌀이 귀하던 시절에는 옥수수, 감자, 고구마 등이 주식, 그 중에서도 보리쌀은 밥을 하면 6배나 늘어나는 의병들의 생명줄과도 같은 음식이었다고 한다.  먼길 떠나는 의병들을 위해 보리쌀로 주먹밥을 만들어 호박잎에 싸서 보내셨다고 한다. 

 

   

 

숟가락이 여럿 꽂힌 돌솥 
백정기 의사는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함께 삼의사로 꼽히는 독립운동가이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3.1운동에 참가한 후 중국으로 망명, 주중일 공사 유길명을 암살하려다 밀고로 잡혀 무기 징역을 받고 복역하던 백의사는 39의 나이에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옥사하셨다. 하지만 아나키스트로 무정부주의 운동을 하셨던 백의사는 뜻한 바 의거도 이루지도 못하셔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못한다. 

그의 며느리 양순애 씨, 서른 아홉의 뜻을 이루지 못한 청년의 얼굴로 남아있는 시아버지가 애처롭다. 하지만 이 집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사연은 곡진하다.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결혼은 했지만, 일찌기 독립운동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던 백정기 의사, 형님의 뒤를 이어 역시나 독립 운동의 길에 나섰던 백용기 의사에게 어서 빨리 아들을 낳아 홀로 남은 어머님을 기쁘게 해달리 부탁했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가는 길이었지만 어머님께는 죽어서도 씻지 못할 큰 불효를 저질렀다며 안타까워하셨다는 백의사, 동생은 아들을 낳아 형님의 소원을 풀어드렸고, 양순애 씨는 덕분에 두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단다. 

감옥에 계신 백의사를 면회하러 갈 때면 빠지지 않았던 콩나무 잡채는 전북 지방의 대표적인 잔치 음식이다. 일반적인 콩나물 무침과 달리, 갖은 채소를 채 썰어 넣고 겨자 소스로 맛을 낸 음식, 고향집 담벼락에 많이 나던 머위에 들깨를 넣어 끓인머위탕에, 고기를 좋아하셨던 하지만 마음놓고 먹어보시지도 못한 백의사를 떠올리며 끓인 우족탕까지 푸심한 한 상이 백의사의 영전에 바쳐진다. 다른 제삿상과 달리 한 솥 그득하게 지어진 솥밥, 늘 동지들을 챙기셨던 백의사가 동지들과 넉넉히 드시라고 수저가 여러 개 꽂힌다. 

 

   

 

광복군들의 전투식량 오리알, 닭내장은 총손질로 
전직 음악 교사인 김일진씨는 오늘도 어머님을 떠올리며 아내와 함께 직접 손맛이 좋으시던 어머님이 하셨던 그 시절의 음식을 재현해 본다. 

김일진씨의 아버지인 김학균씨는 1929년 조선 혁명군을 시작으로하여 1940년 한국 광복군 제 3지대장, 그리고 어머님  오광심 여사 역시 1935 민족 혁명당에서 부터 한국 광복군 선전 활동까지 부부가 해방 전까지 독립에 헌신해오셨던 분들이셨다. 해방후 고국으로 돌아오셨지만 고국의 삶 역시 녹록한 것이 아니라 삯바느질로 근근히 생계를 꾸려가셔야만 하셨다고 한다. 

부모님을 따라 중국의 각지를 떠돌며 생활했던 김일진씨에게 어머니 오광심 여사는 음식 솜씨가 좋아 동지들에게 '나의 어머니' 같다며 칭송을 받던 분이셨다. 생활했던 지역이 중국이었던 만큼, 김일진씨가 기억하는 음식 역시 그곳의 영향이 크다. 

전투식량이었던 오리알, 볶음 소금물에 10~15일을 숙성시킨 오리알, 숙성시킬 수록 투명해진 껍질째 삶아 반으로 잘라 파먹는 짭조름한 오리알 하나면 흰 죽 한 그릇은 뚝딱 해치울만한 밥도둑이었단다. 배급된 밀가루에 설탕, 소금 등을 넣어 발효시켜 쪄낸 '소빵', 당시만 해도 겉껍질만 벗겨 거칠고 누런 밀가루 빵이 싫어 고명으로 얹은 대추만  집어먹다 혼이 났었다지만 이제는 한 사람이라도 배부르게 먹이기 위해 유독 커다랗게 빚었던 어머님의 소빵은 잊을 수 없는 김일진씨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웠다던 닭, 그 마저도 승전 등 좋은 일이 있어야 먹을 수 있었던 닭은 고기를 삶고 내장은 총 손질을 하는 등 어느 부위 하나 버릴 게 없는 소중한 음식이었다. 한 끼, 한 끼를 떼우는게 큰 일이었던 팍팍한 독립군의 살림, 그래도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장개석이 독립 운동 세력을 인정하고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돼지 고기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데, 돼지 고기를 충분히 볶아 죽순 등 야채를 넣어 만든 돼지고기 죽순 볶음은 그 시절의 '호사'였다고 기억된다. 김치는 언감생심, 중국인들이 버리 샐러리 겉껍질을 소금에 절여 만든 친차이 무침 정도면 김치가 없어도 견딜만 했던 시절이라 김일진씨는 회고한다. 



by meditator 2019. 8. 16. 21:46

광복 74주년, 그 어느 때보다도 '광복'의 의미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시절이다. 하지만 그 뜨거움만큼, 7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우리가 2019년에도 '반일', 과 '극일'을 목놓아 외쳐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는 지난 74년의 현대사를 어떻게 살아왔길래 오늘의 이 시점에도 '반일'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목소리'만 높여 '비분강개'만 하며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그 어느때보다도 풍성한 '특집'들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꾸준하게 100주년을 되돌아 보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 방송 중 하나가 바로 <ebs 다큐 프라임>이 아닐까. 이순재 배우를 프리젠터로 앞세워 2018년 8월 15일 첫 방송 <하와이 애국단을 찾아서>를 시작으로, 미국 하와이 동포들의 독립 운동, 작은 마을 '영산'에서 시작된 23인의 독립운동 결사대, 박재혁, 김익상, 김지섭 등 1920년대 일제에 자신을 던져 항거했던 20대 청년들, 그리고 대만에서 일본 장성을 처단하고자 한 조명하 의사 등 우리 기억 속에 남겨져 있지 않은 독립 운동사를 소환하는 한편, 윤봉길 의사 후손과 그의 폭탄에 희생된 일인의 후손의 만남을 통해 '사과와 화해'의 방향을 모색해 왔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독립 운동가 유일한 
그리고 2019년 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다큐 프라임>은 우리가 몰랐던 또 한 명의 독립운동가를 등장시킨다. 아니 몰랐던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유일한 박사. 

우리에게 기억된 유일한 박사는 1전의 추징금도 물지않은 세무정리가 완벽하게 되어있던 회사를 운영하신 분, 기업을 세습하지 않고 지식과 경영 노하우를 갖춘 전문 경영인이 기업을 운영하도록 하신 분, 존경받는 유일하다시피한 기업인으로 기억되는 분이다. 

바로 그 기업인 유일한의 또 다른 정체성 '독립 운동'을 다큐 프라임은 밝힌다.  1971년 3월 11일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나신 유일한 박사, 그분의 유언장은 지금까지도 세상에 회자된다. 그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주식 14만 941주에 대해 한국 사회 및 교육 원조 신탁 기금에 기증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 되고 있는 재벌가의 세습 관행과 달리, 유일한 아들 유일선 씨에 대해 대학 까지 졸업시켰으니 자립하라하였다. 그나마  아직 대학을 나오지 못한 손녀 유일링에게는 대학 졸업까지 학자금 1만 달라를 지원하는 것으로 '유산'의 몫을 다했다. 

당시 신문 사회면에 대서 특필될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참' 기업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유일한 박사, 그런 올곧은 기업가 정신은 어디서 부터 비롯되었을까? 그 '유래'를 다큐는 바로 유박사의 '독립 정신'과 '실천'에서 찾는다. 

'암호명 A는 한국인이다. 나이는 50세, 한국에서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열정적인 애국자이고 수십년간 한국에 엄청난 부와 시간을 쏟아부었다.'라는  OSS 서류 속 인물, 바로 유일한 박사이다. 

자수성가한 상인 유기연 씨의 장남으로 태어난 유일한 박사, 아버지 유기연씨는 불과 9살의 나이에 유일한을 미국으로 보낸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 입양되어 청교도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란 유일한은 낮에는 농장일, 방학이면 신문 배달을 하며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여 네르래스카 고등학교에 개교 이래 최초의 동양인 유학생이 된다. 

 

 

원래 이름이었던 '유일형'을 '세계 제 1의 대한민국'이란 뜻의 '유일한(柳一韓)으로 개명한 소년, 1909년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만든 헤이스팅스 소년병 학교에 입교한데 독립 전쟁 지휘관의 꿈을 키운다. 1919년 서재필이 소집한 1차 한인 회의에 참여하여 ,한국 독립의 열망을 알리는데 동참했다. 1942년에는 재미 한인으로 구성된 한인 국방 경비대를 창설을 주도하고, 1945년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내 진격을 위한 OSS 작전에 참여하여 강도 높은 군사 및 첩보 훈련을 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였다. 


독립운동가로, 해방, 그리고 6.25 전쟁을 거친 조국에서 재건과 발전에 앞장섰던 유일한 박사, 하지만 '위인'이셨던 분이지만 겨우 학자금 1만 달러를 남긴 할아버지가 원망스럽진 않았을까? 그러나 자제분들은 물론, 방송 전까지 할아버지의 독립 운동에 대해 몰랐다던 손녀 유일링 씨는 자신에게 많은 유산을 남겨주지 않은 할아버지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디 손녀 뿐인가. 아들인 유일선 씨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아버지가 만든 회사에서 평생 일했지만 퇴직 후 외려 자신에게 책정된 퇴직금이 너무 많다며 퇴직금 반환 소송을 낼만큼 아버지에 이어 강직하고 청렴한 가풍을 이어나갔다. 도대체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교육이 어땠길래? 

성공 도구, 돈, 직위를 물려주면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인물이 될 수 없다. 한 사람이 최고로 강인한 사람이 되려면 자신만의 방법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유일링 씨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가장 중요한 인생 수업이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유일한 박사의 인생 수업 
최초 군사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50의 나이에도 군내 침투 작전에 참가했던 박사는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단다. 할아버지의 유지 덕분일까, 예일대 심리학과에 들어갔지만 대학 사격팀의 첫 여성 주장이 되었던 유일링 씨는 이제 캘리포니아 레드블러프에서 총기 안전 교육 전문가로 활동중이다. 

다큐는 이처럼 물고기를 낚아서 주는 대신, 물고리를 스스로 낚을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유일한 박사의 교육 방식을 오늘에 묻는다. 

초등학생들에게 물어본 장래 희망, 운전하는 아빠의 모습이 좋아 택시 기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 홈런을 쳐서 놀라게 만들고 싶어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 싸움을 잘하니 군인이 되고 싶다는 아이, 자신의 가사를 직접 써보고 싶어 래퍼가 되고 싶다는 아이 등 다양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만 되면 달라진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안정적 직업을 위해 공우원이 되고 싶다고 하고, 산업 디자이너가 되고 싶지만 역시나 공무원이 되어야 할 거 같다는 아이, 농부가 되고 싶지만 일정한 수익을 위해서는 교사를 하기로 맘먹었다는 아이, 중, 고생 10명 중 7,8명이 대학 진학을 하려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 교사, 공무원을 장래 희망으로 꼽았다. 그리고 그런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다름아닌 부모들이었다. 

'몸쓰는 일, 뭘 만드는 일은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고, 사회적으로 무시를 당하게 된다며 몸쓰는 일보다는 의자에 앉아서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일'을 하라고 '강권'하는 부모들, 해본 게 공부밖에 없으니 다른 꿈을 가질 엄두를 못내는 아이들, 정작 대학에 들어와 아이들은 고민한다. 공부를 해왔는데 이게 내 미래에 맞는 건가. 아니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고민 역시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공부해서 내 꿈을 이룰 수 있을까라며 방황하기는 마찬가지다. 

 

 

네브래스카 고등학교에서 기술 교육을 받고, 미시간 대학에서 미국의 산업 발전을 눈으로 목격했던 유일한 박사는 일찌기 기술 교육의 중요성을 알았다. 식민지 조국의 독립이 꿈이었던 청년, 자신을 대학에 가게 하고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만들었던 원동력이 독립에의 의지였던 청년은 해방 후 그 의지를 한국인들의 '더 나은 삶'으로 발전시켰고. 발전되어가는 미국의 산업 상을 경험한 후 1954년 1500평의 대지와 500만원의 기금으로 한국 고등 기술학교의 첫 삽을 퍼올렸다. 실질적인 학문, 기술 교육이 국가 발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 그 실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퇴행적이다. 유일한 박사가 설립한 유한 공고를 다니는 청소년들, 그들의 선택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공부를 웬만큼 하는데 왜 공고를 가냐는 주변의 걱정, 공부 머리가 있는데 조금 더 해서 인문계를 가라는 부모들의 우려, 

현재 미국에서 로켓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피츠버그 카네기 멜른 대학교는 철강 기술자를 위해 부호 카네기가 만든 카네기 공업 학교에서 출발한다. 20세기 산업 기술 인재를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는 이제 21세기의 로켓 기술의 메카가 되었다. 하지만 유일한 박사가 마찬가지로 기술 입국의 꿈을 안고 만든 유한 공고의 학생들은 '왜 특성화고에 가느냐'는 편견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다. 

 

 

기술 중심 교육만이 아니다. 자신이 공립 학교를 나왔던 유일한 박사는 억만 장자가 되었음에도 자녀들을 모두 공립학교에 보냈다. 손녀 유일링씨 역시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공립, 라콜리나 독립 중학교를 나왔다. 특별하지 않게 여느 미국인처럼 이제는 사라진 악기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독립심을 키웠다는 유일링씨. 바로 그런 자산이 오늘날 자신의 주체적인 삶의 근원이 되었다 회고한다. 

정권이 바뀌고 교육 개혁의 실천이 화두가 되고 있는 즈음에도 정작 그 정책의 당사자들의 자녀들이 받은 특권적 교육 방식으로 인해 '개혁'조차 무색해지고 퇴색되어가고 있는 이즈음, 유일한 박사의 삶, 그리고 자녀들에 대한 투철한 교육 방식은 74주면 광복절에 '옛 것을 오늘에 되살리는' 시의적절한 '화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날의, 그 시절의 '분노'가 아니라, '본받고 이어받아야 할'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 '무엇'에 가장 교감이 될 독립운동가로 유일한 박사만한 분이 어디 있을까. 

by meditator 2019. 8. 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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