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말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최근 '다큐'들의 화법이 달라졌다. 이전 정부에서  집중했던 '사회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비판적' 다큐들이 한결 줄어든 대신에,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는 '세대 갈등'의 요인 중 하나인 젊은 세대의 고민과 고충에 대한 '해법'과 '대안'에 대한 꾸준한 모색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mbc스페셜의 '요즘 것들' 시리즈, 그리고 sbs스페셜의 <체인져스-나도 돈벌고 싶다>, <297대1의 꿈, 그후 10년>, <간헐적 가족> 등이 그런 일련의 흐름 속에 있는 다큐이다. 그리고 9월 29일 방영된 <취미가 직업이 된 사람들  하비 프러너> 역시 동시대 젊은 층의 새로운 직업적 모색을 다룬다. 

 

 

진지한 여가 
한강 시민공원에서 열린 아마츄어 서핑대회, 이곳에 백예림씨도 참가했다. 하지만 이미 서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춤을 추며 웨이크 서핑을 하는 영상을 통해 예림씨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요즘 빠져있는 건 '서핑복'이다. 

셰프, 승무원, 공무원....지금까지 그녀가 도전했던 직업들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를 사로잡은 건 서핑, 그런데 서핑을 하다보니 갈아입기조차 불편한 서핑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저걸 좀 편하게 만들 수 없을까? 기왕이면 멋지고 이쁘게,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녀는 서핑복 쇼핑몰의 사장님이 되었다. 직접 맘에 드는 서핑복을 만들고, 스스로 모델이 되어 홍보하고, 판매까지 하는 예림씨, 이제 막 시작한 사업의 자금 마련을 위해 그녀 집안에 있는 물건들이 슬금슬금 중고 사이트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비록 집은 점점 비어가지만 서핑복을 향한 그녀의 열정은 그와 반비례하여 불붙고 있는 중이다. 

이제 이십대 초반인 김슬기씨는 자신의 공방에서 독특하고도 이쁜 케익의 마무리가 한참이다. 마무리된 케잌은 주인을 찾아 배달이 되는데, 오늘 김슬기 씨가 만든 케잌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개'님이시다. 

바로 개들을 위한 독특하고도 예쁜 디저트를 만드는 일이 김슬기씨의 사업이다.  아버지와 둘이 사는 슬기씨, 그 허전한 가족의 공간을 위해 슬곰, 달곰 두 마리의 강아지들이 채웠다. 그러다 자신이 즐겨먹는 간식들을 애완 동물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공부, 사람들이 먹는 초콜릿을 못먹는 강아지들을 위해 케롭 파우더를 사용하는 등 동물들만을 위한 마카롱, 초코파이, 초코 송이, 케잌이 탄생했다. 

나날이 번창하는 그녀의 사업을 돕기 위해 이삿짐 나르던 일을 하던 아버지가 배달에 나섰다. 이제는 자신의 애완 동물을 위해 간식을 만들고픈 사람들을 위한 수업도 하게 되었고, 제자들도 생겼다. 언젠가는 지금 자신이 하는 일로 강단에 서는 야무진 꿈을 키워가는 슬기씨, 그녀의 꿈을 이룰 날이 멀지 않을 듯하다. 

현재 캘거리 대학의 석좌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로버트 스테빈슨 교수는 '진지한 여가' 이론을 주장한다. '특수한 기술, 지식, 경험 등을 획득하고 표출하는 충분히 본질적이고 재미있고, 참여자가 경력을 쌓아가는 성취감있는 아마츄어, 취미 활동가, 자원봉사자의 체계적인 핵심활동'이라고 자신의 책 <진지한 여가>를 통해 정의한 이론이다. 크로스 컨트리, 산악 트레킹, 재즈 연주를 즐기는 스테빈슨 교수는 바나나 칵테일의 주재료는 '바나나'이지만, 거기에 '버터, 계피. 아이스크림' 등의 다양한 부재료가 들어감으로써 '풍미'를 더하듯, 진지한 여가 활동은 삶의 질을 더욱 고양시킬 것이라 주장한다. 

다큐는 이 '진지한 여가' 이론을 제시한다. 여기서 여가는 tv시청이나 낮잠 등과 같은 일상적 여가와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재현하는 과정으로서의 '여가'인 것이다. 

 

 

하비 프러너, 아직은 도전 중 
2009년 한 방송을 통해 '화장품 좋아하는 남자'로 소개되었던 김한균씨는 이제 어엿한 화장품 제조업체 사장님이 되었다. 비비 크림 등 당시만 해도 남자들에게는 낯설었던 화장품에 매료되었던 한균씨, 자신이 좋아하는 화장품을 사업으로 '런칭'했던 그는 아직 무르익지 않은 남성 화장품 사업에서 고배를 마셨다. 

남자라면 다 비비 크림을 좋아할 줄 알았던 그 초기의 사업 아이템은 아이를 낳고 아토피에 시달리는 아이를 위한 보습 화장품으로 아이템을 변화시키며 중국 시장에서 잘 나가는 '왕홍'이 되었다. 여기서 왕홍은 현재 중국 경제를 달구는 '현실이나 인터넷 생활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네티즌의 관심을 끌어 인기를 얻은  사람들'을 뜻하는 최신 경제 크리에이터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잘 하는 일이 된 일군의 사람들을 뜻한다. 

비행기 승무원이던 주이형씨는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다 허리를 다쳐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다친 허리를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피트니스, 이제 그녀는 동양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2015년 머슬마니아 유니버스 대회에서 최고의 영예인 '프로카드'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좋아하는 일이 돈버는 수단이 되니 그만큼의 압박감이 커져가고, 그 돌파구를 그녀는 다시 머슬 마니아를 접목시킨 디제잉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운동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두려움을 '음악'을 통해 해소했던 경험을 새로운 일의 영역으로 개척해 운동 디제잉의 새로운 도전을 열어가고 있는 중이다. 

안정은 씨 역시 마찬가지다. 취업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시작했던 달리기가 이제 그녀를 달리기 전도사로 만들었다. 몽골 고비 사막 등 달리기를 하며 딴 80~90개의 메달은 달렸던 장소, 함께 뛴 사람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일기장과 같은 기록이 되었고, <나는 오늘 모르셔스의 바닷가를 달린다>라는 책의 결과물을 낳았다. 서울에서 달리기 좋은 코스 100개를 만드는 등 저자, 기획가, 강연자 등 이제 정은씨는 '직업 부자'가 되었다. 

 

 

이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잘 하게 되었고, 그게 그들의 직업이 된 사람들을 '하비 프러너'라 칭한다. 하비 프러너의 등장에는 무엇보다 더 이상 '인간의 노동'에 의존하지 않게 된 '산업 구조'의 변화가 기반이 된다. '인간 노동의 고용'을 넘어 '기계', '인공 지능' 등이 그 영역을 대변하게 되며 '노동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든 사회, 거기에 우리 사회에서도 보여지듯이 수명의 증가로 인해 노후의 삶이 '노동'에 종사하는 만큼 늘어난 사회는 '여가'의 의미가 질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거기에 산업 고용 형태의 변화가 수반된다. 김한균씨가 중국의 왕홍이 되었듯이, 인터넷 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직업군이 등장하는 산업의 새로운 조류 역시 '하비 프러너'의 등장을 촉진한다. 거기에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보여지듯이 젊은 층의 '취업 불황' 역시 새로운 직업군의 모색을 재촉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오프로드 달리기 기획자로 일하고 있느 이윤주 씨의 하소연처럼, 취미가 일이 되는 하비 프러너가 원하는 만큼의 수입을 벌어들이느냐라는 딜레마가 있다. 좋아서 시작한 서핑복 사업이지만 집의 값나가는 물건들을 팔아야만 그 일을 계속 지속시킬 수 있는 예림씨처럼, 아직 우리 사회에서 '취미'가 곧 돈 벌이가 되며 수입도 보장할 수 있는 영역은 '실험' 단계에 있다. 더구나 최근 우리 사회를 덮치고 있는 '장기적 불황'의 기운은 '취미'를 직업에 도전할 수 있는 삶의 여유마저 잠식시킬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by meditator 2019. 9. 30. 16:36

이번에도 '역시'다. 김용수 감독의 <달리는 조사관>은 회를 거듭할 수록 이야기의 밀도는 진해지고, 미장션은 더욱 예술적이어지지만, 역설적으로 시청률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작과 달리, 동시간대 종편의 <우아한 가>가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치고나가며 시청자청의 이반이 심해지고, 거기에 감각적이면서도 '이성적'인 김용수 감독의 연출 방식이 여전히 이 시대엔 낯선듯하다. 그럼에도 3,4회 <달리는 조사관>이 보여준 이야기는 이 시대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인권'의 실마리를 풀어준다. 

 

 

인권, 그 당연하고도 위협적인 화두의 딜레마 
인권,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 '사전'은 말한다.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건, 장애인이건 아니건, 여자건 남자건, 외국인이건 아니건 사람은 누구나 누려야 할 '인간적'인 권리가 있다. '하늘'로 부터 부여받은 인간적 권리이다. 하지만 '인권'이 이 인간적 권리가 중요하게 강조된다는 점은 늘 어느 사회에서나 각 사회가 지니고 있는 여러 '편견'으로 인해 인간적 권리들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조사관>의 배경이 되는 국가 인권 증진위원회는 바로 이런 '위협받고 있는 인권'을 지켜내기 위해 일을 하는 곳이다. 

2019년 소오소관 주점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주인이 칼에 찔려 사망한 것. 이를 조사한 경찰은 이 주점에서 일하던 지순구(장정연 분)가 외국인 노동자 나뎃 쿠미(스잘 분)과 함께 밀린 임금 50만원 받으러 갔다가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수감중이던 나뎃은 자신의 옷에 '나는 사장을 죽이지 않았다'라 쓰고 스스로 목을 매 죽음으로 자신의 무죄를 호소했다. 그리고 나뎃의 형  사와디 쿠미야가 인권 증진 위원회(이하 인권위)를 찾아와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 호소한다. 
그리고 지순구의 변호사인 대형 로펌 '썬앤문'의 오태문((심지호 분)가 등장해 경찰이 외국인 노동자 나뎃, 그리고 경계성 지능장애인 지순구를 '임의 동행'해 장시간 심문하여 경찰의 시나리오에 맞춰 '자백'을 받아냈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하지만 인권위는 의견이 갈린다. 인권위가 할 수 있는 거, 해야 하는 거는 '조사'다. 그러나 사건의 성격상 경찰의 무리한 강압적 수사를 밝히기 위해서는 애초의 소오소관 주점 살인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재조사'해야 하지만 그건 결국 인권위의 영역을 넘어선 '수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의 성격에 맞게 '조사'만 해야 한다는 한윤서(이요원 분)와 예의 열혈 검사 출신답게 '수사'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배홍태(최귀화 분)는 서로 다른 의견으로 티격캐격하지만 결국 '사건'의 진실을 향해 한 발 한 발 들어서고 만다. 

 

 

편견의 공동 정범들 
여기서 <달리는 조사관>이 주목하고자 하는 건 바로, 편견이다. 경찰들은 외국인 노동자와 경계성 지능 장애인이 범죄 피의자가 되어 왔을 때 보여준 편견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런 '관습적 편견'에서 한 발 나아간다. 인권위에 '조사'를 받으러 온 경찰은 외려 반박한다. 과연 경찰이 그렇게 '편견'만으로 수사했겠냐고. 조사 과정에서 지순구는 경찰이 간과했던 '소화기'를 언급하며 범인만이 아는 현장의 상황을 '자백'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편견'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범인만이 아는 현장의 상황이란 '자백'에 대한 편견이다. 하지만 인권위 조사관들은 현장과 조사한 내용을 보며 이 '자백'한 내용의 헛점을 찾아들어간다. 그리고 결국 동네 주민의 증언을 통해 사건 당일 나뎃은 지순구와 함께 술집에 간 것이 아니라 집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낸다. 그렇지만 현장에 있었던 족적은 2명의 것. 결국 지순구와 함께 술집을 찾은 건 지순구 고시원에 지내던 고시생 형이었다. 

그러나, 고시 1차 합격을 했다는 형은 '고시'라는 사회적 관문을 통과했다는 이유만으로 피의자의 그물에서 벗어났다. 더구나 지순구의 변호사는 나뎃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대신, 나뎃을 재물삼아 지순구의 '무죄'를 주장하며 자신의 사건 수임 성과만을 노린다. 결국 조사관들은 그 '고시 1차 합격'이라는 허울의 실체를 밝혀낸다. 사실은 백수였지만 남들한테 그럴 듯해 보이기 위해 '고시생'이라는 겉치레로 자신을 치장했던 것. 그리고 그 '고시생'보다는 당연히 '외국인 노동자'가 더 범죄 피의자로 그럴 듯해 보였기에 수사는 '진실' 보다는 그럴 듯한 '편견'의 색안경을 쓰고 진행되었던 것이다. 또한 경계성 지능 장애라는 장애 역시 변호사의 편의적인 사건 포장의 함정이 된다.  

'조사관'이라는 신분적 딜레마를 넘어 한윤서는 지순구에게 충고한다. 나뎃의 억울한 죽음을, 변호사의 그럴듯한 입에 발린 말에 넘어가 '무죄'라는 얄팍한 법의 그물을 피하는 비겁함에 대해. 그리고 수사를 할수 없는 한계를 넘어, 그럼에도 '나뎃'에게 행해졌던 부당한 겁박 수사에 대한 인권위의 입장을 밝히고. 비록 고시원 형과 함께 현장에 있었던 공동정범이지만 지순구에게 어떤 살인적 의도가 없었음에 대한 의견도 빼놓지 않는다. 

 

 

언뜻 평범한 살인 사건, 그러나 그 '평범한 사건' 속에 숨겨진 건 우리 사회를 잠식한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고, 또 역설적으로 '학벌'과 이제는 고착화 되어가는 '고시 합격자'라는 신분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인간의 권리'를 존중한다고 늘 선언적으로 다짐한다. 하지만 사실은 '인간'에 대한 다종다양한 수식어의 함정에 빠져 있는지 드라마는 차근차근 폭로한다. 그러면서 한윤서의 입을 통해 묻는다. 우리 역시 '편견의 공동 정범'이 아니냐고. 

<달리는 조사관>를 채우는 건 '감각적'인 영상과 구도이다. 하지만 그 구도를 통해서 제작진이 진득하게 설득하는 건 우리의 굳어져 가는 사고의 양식이다. 이는 이미 김용수 감독의 전작 <아이언맨>에서 보여졌던 방식이다. 드라마를 채운 건 유려하고 감각적이고 심지어 서정적인 영상이었지만, 그것을 통해 드라마는 예리하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관습적'인 사고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졌었다. 그리고 이제 <달리는 조사관> 역시 마찬가지다. 불편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해진 '사고 방식'에 대해 '질문'하는 '공간'을 연다. 그래서 그건 낯설고 어색하다. 바로 그 낯설고 어색함이 <달리는 조사관>의 딜레마이자, 매력이다. 

by meditator 2019. 9. 27. 16:33

보트 피틀', 이 말은 원래 살 곳을 찾아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도는 난민들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이 '보트 피플'이 영국에 등장했다. 바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영국의 청년들이 템즈강 일대에서 '보트'로 집을 삼아 살기 시작하며 영국형 보트 피플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보트 피플'이 남의 나라 일이 아니게 되었다. 서울의 평균 집값이 7억에 달한다. 물론 이건 평균이다. 강남으로 가면 날마다 치솟아 몇 십억을 호가한다. 7억이라 해도  2백만원씩 30년을 모아야 하는 한 달에 2백만원을 벌지 못하는 청년층이 70%를 상회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 집을 마련한다는 건 이제 '언감생심'인 세상이 되었다. 과연 청년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신혼 여행만 4년째
2016년 12월에 결혼을 했다. 대학도 채 졸업하지 않은 채 결혼에 돌입한 전재민- 김송희 부부, 신혼집을 얻는 대신, 그 돈으로 항공권을 사서 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어언 4년 여, 이들은 어느새 '프로 여행 영상 제작자'가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오랫동안 신혼여행(?)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행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게 적게는 백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까지 돈이 되기 시작하면서 부부는 이제 천만 원 정도의 10kg이 넘는 방송장비를 짊어지고 경관이 좋은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는 프로 여행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여행의 경험은 두 사람을 어느새 독자 초청 강연회의 저자로 만들어 주었다.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오늘은 행복하니까>의 저자 쨈쏭 부부가 바로 전재민-김송희 부부 자신이다. 강연회에서 두 사람은 에베레스트 트레키의 경험을 나눈다. 

새벽 누구보다 먼저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기 위해 나섰던 두 사람, 하지만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겨우 주변의 도움으로 정상을 정복했지만, 그 경험을 통해 두 사람은 천천히 가더라도 방향만 맞다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나만의, 우리만의 방향'에 집중하고 싶다는 두 사람, 이제 수익은 생겼지만 '평생 살아갈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집'을 마련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여행지에서 잠시 머무는 그곳이 '순간'이지만 어느덧 두 사람의 집이 된 지금, 인생이 곧 여행이 아니겠나며, 결국 인생이란 선택과 포기의 연속이라며, 평생 머무를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자신들의 삶을 얻었다고 말한다. 

 

 
고시원 대신 캠핑카
김동해씨는 자신에게 온 택배를 받으러 차를 타고 가야한다. 왜냐하면 그의 집은 택배 아저씨가 찾아갈 수 없는 '캠핑카'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구리시 왕숙천 천변 무료 주차장에 지금은 머무르고 있는 동해씨,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의 집은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어릴 적 꿈은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올라온 서울, 현실은 월세를 내기도 빠듯한 삶이었다. 반지하, 고시원, 지금까지 동해씨가 살아온 공간이다. 햇빛이 들지 않는 고시원 살이가 지겨웠던 그는 보증금 4천만 원으로 중고 캠핑카를 마련했다.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대리 운전' 일을 위해 보다 더 기동성이 있는 '전동휠'를 마련했다. 

물론 자유로운 '집'을 마련했지만 캠핑카에서의 생활도 녹록치는 않다. 35도를 넘나드는 한여름, 밖의 실온보다 5~6도가 높은 캠핑카에서 여름을 나는 건 고역이었다. 기능이 떨어지는 냉장고 덕에 식재료가 잘 상해서 애를 먹는 것도, 물탱크는 있지만 샤워 등을 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도 나름 고충이 만만치 않다. 그래도 더위, 추위 등 자연적 환경을 피하는 곳이라는 집의 사전적 의미를 놓고 보면 엄연히 캠핑카는 덜 스위트해도 그의 '홈'이다. 

햇빛이 들지 않은 고시원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는 동해씨, 어제처럼 살면 어제처럼 밖에 살 수 없다고 써놓은 캠핑카 속 그의 좌우명처럼 그는 이 캠핑카를 '고치'로 삼아 탈피할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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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한 달 살이 70만원이면 수영장 딸린 집이 
웹디자이너인 조희정 씨는 사전적 정의 그대로 '디지털 노마드'족이다. 디지털 시스템 아래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일한다는 디지털 노마드족에 걸맞게 조지아에서 서울에 있는 동료와 화상 회의를 통해 일을 진행한다. 

조지아에서 생활한 지 어언 28일 째, 세계의 여러 곳을 떠돌며 한 달 살기를 실행하고 있다. 이곳 조지아는 유럽과 같은 환경이지만 서울에서 장 한번 보면 8~10만원이나 들 비용이 이곳에서는 한껏 장을 봐도 2만2천원 정도, 한 달 40만원이면 충분해 한 달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한 때는 워커홀릭이었다. 그러나 경쟁적인 일 관계 속에서 자신이 소모되는 게 싫어 독립을 했다. 그리고 이제 모바일 웹 서비스를 개발하며 세계를 떠돌고 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그녀의 직업이 그녀의 방랑을 가능케 한다. 한 달이 끝난 그녀가 다음에 선택한 곳은 '독일', 그곳에서는 또 다른 한 달짜리 ' 새집'이 그녀를 기다리고 그녀는 홀가분한게 가방 한 개를 들고 또 다른 '노마드'로서의 삶을 떠난다. 

 

 

쫓겨나는 대신 이동식 집을 
농사를 짓고 싶던 청년이 있었다. 하지만 '땅'이 없던 그에게 '농사'란 꿈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임대했던 땅에서 쫓겨난 청년, 홧김에 세계로 떠났다. 유지황 씨를 비롯한 청년 3인방의 2년 여에 걸친 무일푼 세계 농업 체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파밍 보이즈>라는 다큐 영화로 제작까지 되었다. 

그로부터 7년, 지황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를 찾아나선 제작진이 그를 만난 곳은 6평짜리 이동식 주택에서이다. 농사를 짓는 청년을 위한 이동식 주택, 입구에 일을 하고 온 작업복을 벗어 세탁할 세탁기에서부터 샤워실까지 이어지는 비록 작지만 한 사람이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을 단 돈 천만원으로 지황 씨는 지었다. 

왜 집을 지었을까? 세계를 떠돌면서 텐트에서 지내다 보니 아늑한 집이 가지고 싶었다고 한다. 처음엔 농촌에 많은 빈집을 이용해 보고자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말이 빈집이지 외지에 사는 자녀가 주인인 집을 임대하기도 쉽지 않았고, 막상 살만하게 고치려면 2~3000 정도 비용이 드니 그것도 만만치 않았단다. 무엇보다 농촌에 정착하는 것도 잠시 쫓겨나는 경험을 했던 그는 집이라도 가지고 가야 하겠다는 생각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청년들을 위한 이동식 주거 공간을 마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비록 작은 집이지만 자신의 손으로 지은 자신의 집, 일년에 전기세 등으로 20~30만원 정도, 거기에 겨울에 난로를 떼는 비용으로 5~6만원, 더 이상 '월세'에 시달릴 염려가 없는 집, 그런 ''타이니 하우스'들이, 그런 집을 짓고 살고픈 청년들이 남해군 두모마을에 모였다. 지자체와 이장님의 적극 지원 아래  폐교를 빌려 6개월 정도 기한을 정해 뜻을 맞는 사람들과 벌써 6채 째 집을 짓고 있는 중이다.  첫 농사를 짓고 쫓겨난 지 어언 7년 청년 지황씨의 꿈은 이제 ' 청년 공동체'로 부풀어간다.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시대>에 따르면 이른바 '386'이라 통칭되는 세대는 어느덧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되어 권력과 경제력을 독점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맞은 편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벌어서 집 한 칸 마련하기 힘든 '청년 세대'들이 있다. 다큐는 말이 좋아 집을 버리고 세상을 찾았다고 하지만, 스스로 집을 얻을 수 없는 세대의 궁여지책, 저마다의 각자도생을 보여준다. 서울에서는 더 이상 한 달 생활하기가 버거워 세계를 떠도는 사람들, 집을 얻을 수 없어 차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그리고 쫓겨날 수 없어 달팽이처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집을 짓는 청년들, 과연 이게 요즘 것들이 자신의 '세상'을 찾는 보편적 방식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 땅에 정착하고 싶은 청년들을 '하우스 노마드'로 모는 세상, 이 땅에서, 세계에서 떠도는 청년 노마드들을 그저 세상에의 도전이라 퉁칠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19. 9. 25. 15:15

sbs는 1991년부터 2009년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공채 탈렌트를 선발했다. 공채 탈렌트, kbs나 mbc 등이 드라마를 자체 제작하던 시절 '공채 탈렌트'는 마치 지금의 '공사 취업' 그 이상, 배우로서의 안정적인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가장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규모와 환경이 변화하며 '공채'가 아닌 '연예기획사' 등 다른 방식으로 데뷔한 스타들이 주연을 꿰어차면서 공채 탈렌트의 면모는 퇴색했다. 그럼에도 1990년 개국한 sbs는 새로 만들어질 자사 드라마의 자원을 위해 '공채' 탈렌트를 모집했고,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성동일, 김지수, 김남주, 김명민 등이 바로 이 sbs 공채라는 관문을 통해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sbs에서 공채 1기인 성동일이 1996년 방영된 <은실이> 속 단역에 가까운 역할인 '빨간 양말'을 통해 세상에 그 이름을 알렸듯 sbs 공채의 길은 험란했다. 결국 2003년 10기를 끝으로 더 이상 공채라는 이름의 탈렌트 공모는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러다 2008년 일부 스타급 연기자들의 고액 출연료 등으로 인한 제작비 증가가 문제가 되고, 연예 기획사를 통한 배우 수급이 방송국과 마찰을 빚게 되자 kbs에 이어 sbs도 다시 자사 방송국에 1,2년 동안 전속되어 활동하는 공채 탈렌트를 모집하게 된다. 

이미 '연예 기획사'의 몸집이 거대해져가는 드라마 시장, 하지만 그만큼 드라마를 통한 스타의 탄생 역시 주목받고 각광받던 시절, 2009년 이루어진 sbs공채 탈렌트 모집에는 무려 4157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남자 397대1, 여자 222대1, 평균 29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4명이 영광스런 sbs공채 11기 탈렌트가 되었다. 
그리고 10년, 김성오, 허준석, 김가은 등 그 14명 중 그래도 지금도 우리에게 기억되는 이름들이다. 그렇다면 그 엄청난 경쟁을 뚫고 공채 탈렌트가 된 나머지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sbs스페셜>이 그들을 찾아나선다. 

 

 

297대1, 그리고 10년 
처음 만난 건 김호창씨, 그의 이름은 낯설지만 그의 이름을 치면 4~50개의 작품이 나열될만큼 여러 작품 속 감초같은 조연으로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얼굴이다. 바로 그가 10년 전 297대1의 경쟁을 뚫고 sbs공채 탈렌트가 된 주인공 중 한 명이다. 

드라마를 보느라 직장 나갈 시간인 것도 잊어버리신 어머니를 보면 젊은 김호창은 그게 바로 자신의 길이라 생각했다. 저 드라마에 나오면 더 이상 어머니가 고생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최종합격, sbs공채 탈렌트라는 명찰을 걸고 방송국에 들어설 때면 성공은 눈 앞에 있는 거 같았고, 곧 유명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어렵게 공채가 된 동기들은 청소 아줌마보다 더 일찌 나와 탈렌트 실을 지켰다. 지나가는 행인 등 작은 기회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그는 다작 배우가 되었고, 스스로 처절하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아직 대중들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다. 그래도 여전히 연극과 영화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김호장 씨의 'dreams come true'는 여전히 ing중이다. 

당시 동기들 중 가장 먼저 주목받았던 이수진 씨, 당시를 그녀는 눈 앞에 계단이 보여 걸어가기만 하면 될 것같았던 시기라고 회고한다. 하지만 오디션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그녀를 찾는 미팅은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그녀 앞에 올라가기만 하면 될 것 같던 계단은 점점 투명해져 갔다. 이제  10년이 지난 이수진은 이제 이가현이 되어 다시 프로필 사진을 찍고 있다. 생계를 위해 친구 까페 일을 돕고 있다. 물론 그만 둘까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또 돌아오고야 말았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땐 무엇이 되고 싶었지만, 이젠 그저 이 일을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당대 이미 스타였던 김태희와 동명이인으로 주목받았던 김태희씨는 이제 중국으로 향한다. 유명 백화점 모델로 발탁되어 중국에서 연예 활동을 하기 위해서이다. 이곳에서 더 이상 자신을 알리는 것이 쉽지 않아 언어의 장벽을 감수하고서라도 선택한 길이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10년전 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린 태희씨는 주마등같이 눈 앞에 스치는 지난 10년을 회고하며 참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한다. 열심히 했지만 항상 외줄타기와도 같은 배우의 삶, 떨어질 듯하다가도 다시 붙잡고 가는 그런 삶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목표에 골인할 수 있을 것이란 신념으로 그녀는 중국에서의 도전을 시작한다. 

그리고 동기들 중 가장 미모가 뛰어나서 주목받았던 김효주씨는 활동 도중 사라져 동기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사람이다.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택할 용기가 없었다던 그녀는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어 조용히 그 길에서 물러섰다고 한다. 그리고 미술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제서야 비로소 마음이 유연해져 자신의 길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10년전 자신의 모습이 마치 전생같다던 효주씨는 이제 다시 용기를 내서 오디션을 보고, 드라마와 영화, 연극으로 인생 2막을 준비 중이다. 

 

 

김호창 씨, 이수진씨, 김태희씨, 김효주 씨, 비록 1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이들은 여전히 10년전 공채 탈렌트가 되어 선택한 길 위에 있다. 비록 아직 그들의 꿈은 진행 중이지만, 대번에 날아오를 것같던 10년전 그때와 달리, 이제 그들은 '날아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래도  '연기'하는 자신의 삶이 좋아 이 길 위에 있다. 

반면, 당시 21살 최연소로 발탁된 석진이 씨 당시만 해도 연기에 더더욱 미치고 싶다며 포부를 당차게 밝혔던 석진이씨는 이제 그 길 위에 있지 않다. 처음에는 하루하루 꿈꾸는 것 같았고 즐거웠지만 계속계속 살아남아야 하는 배우라는 직업의 생리가 그녀의 성향과 맞지 않았던 것. 복학을 하고 취업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며 불투명한 미래에 저당잡힌 자신을 견딜 수 없었던 석진이 씨는 몇 달 동안 한 두시간씩 잠을 자며 공부해서 승무원이 되었다. 비록 일은 힘들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배우와 다른 안정적인 생활이 그녀를 행복하게 한다고 웃는다. 

29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날개를 달았던 14명의 10년 전 공채 탈렌트들, 다큐는 그렇게 10년 전 꿈을 꾸었던 젊은이들을 통해 다시 꿈을 묻는다. 십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혹은 왜 여전히 이곳에 있는지, 혹은 다른 길을 선택했는지를 짚어본다. 그것을 통해, 그저 배우가 되려고 했던 젊은이들이 아니라 여전히 갈림길에 선 동시대인들의 공감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10년 전을 회고한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그들은 공채라는 자부심을 채 느끼기도 전에 그 날개는 초라해 졌다. 당시 몇몇 드라마에 출연 기회는 얻었지만, 이미 대세가 되었던 외주 제작과 연예 기획사의 융성기에 방송국은 자사가 뽑아놓은 젊은 유망주들을 제대로 보살펴주었을까? 그랬다면 그들이 기억하는 10년 전이 그토록 애잔하지는 않았을 것같다. 물론 각자의 재능과 스타성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도 있겠지만,  시스템 속에 그들을 묶어놓고 흘러보낸 시간, 10년 전과 지금의 꿈을 논하기 전에, 그 꿈을 저당잡았던 시스템에 대한 반성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꿈은 그저 막연한 개인의 의지만이 아니다. 시대와 사회가 움틔워주어야 할  새싹이다. 

by meditator 2019. 9. 23. 20:59

1993년에서 2012년까지 무려 10여년 방영된 kbs2의 <체험 삶의 현장>은 연예인들과 사회 저명인사들이 다양한 노동의 현장에서 땀을 흘려 벌어돈 돈으로 불우한 이웃을 돕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노동'을 고전적으로 다룬다. '노동'을 경험해보지 않았던 이들이 그 '현장'에서 서툴러 당황해하고 고생하는 '체험담', 그 자체가 볼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애쓴' 댓가로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미담'을 더해 <체험 삶의 현장>은 오래도록 '휴머니티'한 예능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장수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노동의 '현장'은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되었고 대안을 찾아내는 노력이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불상사' 들로 인해 결국 프로그램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그 '노동'이 예능으로 돌아왔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tvn에서 새로 시작한 예능 <일로 만난 사이>와 유투브에서 조회수 신기록 행진을 벌이고 있는 전직 아나운서 장성규의 일일 체험 현장을 다룬 <워크맨>이다. 

 

   
 

 
 

 

 

 

 

두 프로그램의 형식은 사실 단순하다. 단 하루 동안 <일로 만난 사이>가 유재석과 초대된 게스트, 혹은 게스트들이, 그리고 <워크맨>에서는 장성규가 '노동의 현장'에 투입되어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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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공감; <워크맨>
그냥 하루종일 일만 할 뿐인데 왜 새로운 예능의 화두와 대세가 되었을까? <아는 형님>과 <방구석 1열>을 통해 차근차근 예능감을 키우며 순발력있는 입담을 선보이던 장성규 아나운서는 프리 선언 후 유투브로 향했다. 10여분 짧은 시간에 그가 투입된 각종 '노동'의 현장에서의 예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갈고 닦은, 그리고 거기에 더해 보다 날것의 생생한 반응을 보여주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무엇보다 이전의 <체험 삶의 현장>이 다룬 '고전적'인 현장과는 다른 요즘 젊은 것들이 땀 흘리며 살아가는 그럼에도 꼴랑 법적인 '시급'이라는 테두리에 갇힌 채 보상받지 못한 노동의 현장을 장성규가 대변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탄으로 방영된 에버랜드 알바에서, 장성규는 에버랜드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의 현장을 섭렵한다. 그의 말대로 매일 웃고만 있어서 편하게 일하는구나 했던 그곳에서 관객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춤추고 노래하고, 아이들의 물세례를 맞으며, 심지어 고난이도의 놀이기구를 타야 하는 과정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 자체로 웬만한 서바이벌 예능 저리가라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웃으며 그걸 해낸다. 어디 에버랜드 뿐일까. 미용실, 편의점, 피자집 등등 이 시대 '알바'의 행렬은 무궁무진하고 장성규는 그걸 온몸으로 체험해 내며 ''페이소스' 넘치는 웃음을 자아낸다. 

바로 그 지점, 오늘날 '알바'라는 통칭으로, 그리고 '시급'이라는 대가로 퉁친 현장의 고생담을 장성규는 '리얼'하게 전해주며 공감을 얻는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마지막, 그가 받은 '시급'을 정산하며 그날의 흘린 땀과 '비례'하지 않는 혹은 때로는 '게임 회사' 등 직장의 레벨에 따라 '후하게 '치뤄진 대가에 대한 역시나 '날것의' 반응을 보며 동시대인들은 '동시대의 애환'을 나눈다. 젊은 세대가 여유를 낼 수 있는 시간, 10여분 그 시간 동안 장성규가 울고 웃으며 때로는 삭제되지만 충분히 알 수 있는 질펀한 '욕'들을 통해 이 시대 젊은이들은 그렇게 서로가 버텨가는 삶을 나누는 것이다.  

 

 

유재석 버전 체험 삶의 현장 
반면에 유재석을 앞세워 런칭한 <일로 만난 사이>는 보다 고전적인 <체험 삶의 현장> 버전에 가깝다. 단지 예전< 체험 삶의 현장>이 양지운이라는 걸출한 성우의 구성진 입담을 배경으로 아나운서들과 다른 삶의 현장을 다녀온 출연자들의 '훈수'를 더해 맛갈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일로 만난 사이>는 mc 유재석이 현장에 투입되어 함께 '노동'을 하며 그 의미를 '에스컬레이션'시킨다. 

이효리, 이상순과 함께 한 첫 회, 그리고 차승원과 함께 한 2회를 통해, <일로 만난 사이>는 그간 타 프로그램의 낮은 시청률과 함께 위축되어 있는 mc 유재석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한다. 여전히 우리 나라 대표적 mc임에는 분명하지만 어느덧 마흔 줄, 자신을 동력으로 밀어붙이기 보다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나이가 된 그가 녹차밭과 고구마 밭에서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실전 '노동'의 현장에서 한껏 작아지는 모습이다. 리얼리티 예능에서 질주했던 경력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사람이지만, 도시에서만 나고 자랐던 그가 마주한 '농촌'의 현장에서는 그저 '일머리'없는 일꾼에 불과했으니. 

하지만 3회에 이르러 그렇게 '일머리' 없는 유재석조차 잔소리를 하게 만드는 '대책없는' '하찮은 형들'의 등장으로 국면은 전환된다. 뮤지션으로는 일가를 이루었지만 화문석을 만드는 현장에서는 그저 오십 줄에 엄살 심한 형들이기만 했던 유희열, 정재형은 함께 나이들어 가는 이들이 땀 흘리며 나누는 삶의 고갯마루를 보여준다.

그렇게 농촌으로 전전하던 <일로 만난 사이>는 4회에 이르러 힙벤져스 그레이, 쌈디, 코드 쿤스트 와 함께 ktx 기지로 향한다. 휴식 시간 유재석의 말처럼 '힙합' 하면 '자유분방'한 영혼들이라는 등식으로 연상되는 인물들, 그들의 갖가지 휘황찬란한 머리 색처럼 자유롭게 편하게 생활할 것이라는 '선인관'을 가지게 되는 당대의 '힙한 전사'들과 함께 한 현장. 

청소용구를 실은 자전거를 타고 달려 열차가 도착하고 다시 떠나는 짧게는 10분에서 15분, 30분 사이에 이뤄지는 '신속 정확'한 열차 내 청소팀에 합류한 유재석과 '힙벤져스' 들, 하지만 분방할 것이라는 유재석의 예상과 달리, 그들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여사님'들의 칭찬을 들으며 꼼꼼하고 착실하게 일에 매달리며 '힙합'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깬다. 

 

 

 그들이 만든 곡이 발표될 때마다 음원 순위이 수위에 오르며 '화제'의 중심이 되는 그레이, 쌈디, 코드 쿤스트. 그들이 유재석조차 그 템포를 따르기가 힘들어 헉헉거리는 ktx현장에서 보여준 건, '자유분방'한 영혼이라기 보다는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는 성실한 노력가들이었다.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집중력을 보이고 깔끔하기 까지 했던 그가 유재석과 함께 나눈 이야기 보여 허심탄회하게 토로해준 '번아웃'의 시간들은 최고의 뮤지션이 되기 위해 그들이 감수해왔던 '물밑 숨가쁜 자맥질'과 같은  숨겨진 노력의 과정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여느 토크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들이 자신들이 성실하며,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예술적인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번아웃'을 경험했다면, 이만큼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숨가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한번의 허튼 몸짓을 보이지 않고 묵묵하게 노동의 템포를 따르던 그들이었기에 그들의 진솔한 모습이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이렇게 2019년 유재석 버전의 <체험 삶의 현장>은 여전히 2019년에도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서 쉼없이 땀으로 범벅된 '노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중계한다. 그리고 그  '노동'을 통해 게스트의 인간적인 모습, 그들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전하는 통로가 된다. 

by meditator 2019. 9. 22. 20:50

ocn <미스터 기간제> 후속 <달리는 조사관>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용수가 돌아왔다'라고 하면 어떨까? <적도의 남자>,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이언맨>, <베이비 시터> 등 tv 드라마로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미장센'을 실험해냈던 주인공 김용수 연출, 하지만 그의 미적인 실험 정신은 '시청률'과 쉬이 화해하지 못한 채 장편 드라마에서 중편 드라마로, 그리고 단막극으로 입지가 좁아지더니, 소속된 kbs의 퇴사와 함께 포털에서 그의 약력도 사라졌다. 그런 그가 불현듯 ocn 장르물 <달리는 조사관>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시대와 화합하지 못한 '장인'이 사라지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든다. 

 

 

용수의 맛은 여전하다
김용수 연출을 정의하자면 여러가지 수식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우선할 수 있는 건 '영상 미학'이다. tv라는 화면의 본성, '보여주는 것'에 그 무엇보다 충실하다. '보여주는 것'을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연출', 역시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국가인권증진 위원회를 배경으로 한 위원회 조사관들의 활약을 그린 드라마 <달리는 조사관>, 이 위원회를 이끄는 위원장은 안경숙(오미희 분), 일반적으로 드라마 속 '위원회장'이 보여주는 권위적인 모습과 달리, 그녀는 알듯모를듯한 미소로 위원회 조사관들을 품어준다. 2화, 인권증진 위원회 과장인 김현석(장현성 분)이 현재 조사중인 사건에 자신의 형이 고위직으로 있는 회사가 관여되어 있자 위원장을 찾아와 '조사'에서 빠져야겠다는 결심을 알린다. 혹시나 있을 지도 모를 '오해'를 우려하여, 그런 김과장의 '고민'에 위원장은 그저 단 한 마디, '하던대로 하시라'며 그의 노파심을 접어두게 한다. 씬은 짧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 이후, 위원장은 위원장실의 창문을 연다. 여느 사무실과 다른 창호지 문으로 된 문이 줄지어 비껴 열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위원장의 모습은 '운신의 폭은 좁지만 그래도 정도의 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엿보게 해준다. 

이런 식이다. 언제나 그랬듯, 김용수 연출의 드라마는 이번에도 짧은 대사, 긴 여운의 화면을 통해 드라마를 풀어낸다. 등장 인물은 화면 옆으로 비껴서고, 그 나머지 화면의 채운 공간을 통해 그의 고뇌가 드리워진다. 막막한 하늘 아래 비껴 서있는 한윤서(이요원 분)의 모습에서 수사권은 없는 일개 인권증진 위원회(이하 인권위) 조사관의 고뇌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인공 한윤서, 그리고 본의 아니게 인권위로 좌천된 배홍태(최귀화 분)가 드리운 공간, 그들의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그대로 그들을 표현해 낸다. 

노랑과 연두로 화사하게 칠해진 ㄷ자형의 피해자가 살던 연립, 그 화사함의 공간 안에서 노조 간부였던 피해자 강윤오는 고립되고, 감금되었으며, 죽음에 이르렀다. 화사한 세상과 그 세상의 배신으로 인해 어두운 공간 속에 갇힌 피해자의 절박함의 대비는 그렇게 색감을 통해 더욱더 대비되어 보여지는 식이다. 그렇게 드라마 속 공간 어느 한 곳 허투루 보여지지 않고, 그 자체로 드라마 속 이야기의 일부분이 된다. 

거기에 <달리는 조사관>만의 감각적인 '데코레이션'이 더해진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대화'를 여기에 의존하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카톡'과 '문자'의 대화들이 자막으로 화면을 채우며 극의 일부분이 된다. 

그리고, 그런 화면의 긴장감을 더해주는 건, 이미 <적도의 남자>에서 김용수 연출과 함께 했던 박성진  음악 감독의 ost이다. 자칫 '미장센' 위주의 극이 처질 수 있는 드라마를 때론 '아라비안 나이트'의 ost같은 이국적인 음색으로, 혹은 앞서 <손  the guest>에서 등장한 바 있던 '국악 버전'의 ost로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달리는 조사관>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내며 극의 어엿한 주인공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달리라는데 아직 '슬로우 스타터'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여전히 '장인 정신'이 듬뿍 담긴 '김용수 연출'의 미장센의 묘미가 서사의 전개와 적절하게 맞물리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다. 시공북스를 통해 출간된 송시우 작가의 장르 문학인 동명의 소설 <달리는 조사관>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 만큼, 서사적 재미는 이미 보장된 상황, 하지만 아직 드라마는 "달리는 조사관'이라지만 '미장센'의 마력만큼 '기동성있는 서사'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냈다 보여지지 않는다. 

첫 회 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문을 연 드라마,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건 소지혜가 직접 인권위를 찾아와 고발한 성추행 사건이다. 노조 동료 이은율이 그녀의 연인이자 동료였던 강윤오의 장례식  과정에서 그녀를 성추행했다는 고발로 시작된 사건, 성추행을 당했다는 소지혜와 결백을 주장하는 이은율의 진실 게임으로 시작된 사건은 배홍태와 한윤서의 조사 과정을 통해 뜻밖의 '진실'을 드러내 보인다. 

차기 노조 지부장으로 유력시되었던 강윤오가 재미로 올렸던 웹툰 게임, 하지만 그 자신을 조롱하는 웹툰에 그룹  회장이 '대노'하고 이에 사측은 그를 한직에 발령함은 물론, 그와 가족을 협박하며 '퇴사'를 종용하고, 그래도 그가 버티자 '손해 배상'청구 등 갖은 방법으로 그를 괴롭힌다. 결국 강윤오는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고, 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강윤오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에서 한통속이었던 경찰을 믿을 수 없었던 동료와 연인 이은율과 소지혜는 자신들의 성추행 사건을 '조작'하여 '인권위'를 찾게 된 것. 

성추행의 진실을 찾아가던 사건은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말살된 인권을 발견하게 되고, 거짓 증언과 진실 사이에서, 그리고 공개와 비공개라는 회의 형식 사이에서 고민하던 인권위 사람들은 '보호받아야 할 '인권의 차원에서 소지혜와 이은율이 알리고자 한 '진실'의 장을 열어준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극적인 사건,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달리는 조사관>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이야기를 풀어낸다. 미장센은 화려하고, 서사는 흥미진진하지만 어쩐지 그 모든 것들이 옥상옥인양 서로 긴장감있게 풀어내지지 않는 듯하다. 김용수 연출의 장르와 달려야 할 장르의 충돌인지, 아직은 연출의 진가가 출발이 늦은 건지, 조금은 더 지켜보아야 할 지점이다. 화면은 충분히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그 화면 속의 인물들이 아직을 무르익지 않는다. <베이비 시터>,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이언맨>  등에서 지적된 바 있는 '영상 미학'은 충분 조건이지만, 배우들이 연기 합이나 구성에서는  매우 '너그러운' 연출이 이번에도 드라마의 발목을 잡을까 노파심이 든다.  부디 서사와 미장센의 호흡을 제대로 맞춰 장르물의 새 장을 열수 있기를, 그래서 김용수 연출을 오래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기대로 희망을 더해본다. 

by meditator 2019. 9. 21. 15:45

2017년 <쇼미더머니> 시즌 6에서 화제가 된 노래가 있다. 바로 <요즘 것들>, '요즘 것들은 이래서 안되요.'라며 시작하는 노래는 '엄마 카드 쓰는 버르장머리없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능력도 없는  뒤처진 세대' 라고 '꼰대'에 의해 규정된 처지를 통렬하게 읊는다.

하지만, 50평생을 열심히 모아도 집조차 살 수 없는 '저금리' 시대를 살아가는 장본인의 처지라면? 부모 세대처럼 덜 먹고, 덜 입어 돈을 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닌데? 평생 직장은 커녕 당장 정규직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세상을 살아간다면? 어름들이 한심해 하는 '요즘 것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 '악조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것들'도 '돈'을 번다. 단지, 부모들이 살아왔던 시대의 방식과 다를 뿐, 아니 다를 수 밖에 없다. 9월 16일 방영된 <mbc스페셜>은 바로 이 달라진 요즘 것들의 돈벌이 트렌드를 살펴본다. 

 

 

N잡러- 한 우물만 파다 굶어죽는다
개그맨 안가연씨, 공개 개그 프로그램의 출연자인 그녀, 하지만 3개월 단위로 등수가 정해지고 선택을 받지 못하면 코너가 없어지는 방식의 프로그램에서 최근 2달 동안 그녀는 무대에 서지 못했다. 

이렇게 불규칙적인 일거리,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전두 탈모'라는 스트레스성 질환까지 시달리던 안가연 씨는 그런 자신의 처지를 통해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연히 그리기 시작한 웹툰 '자치로운 생활', 이제는 그녀의 또 다른 '직업'이 되었다. 웹툰 속 츄카피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바로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는 처지의 안가연씨 자신이고, 웹툰 속 등장하는 친근한 캐릭터들은 바로 안가연 씨 주변인들을 모델로 한 것. 바로 부정기적인 무대에 오르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개그맨의 '자취' 생활이 안가연 씨 웹툰의 소재가 되었다. 

이렇게 '평생 직장'이 사라진 시대, '정규직'조차 얻는 게 쉽지 않은 시대, 이 시대 젊은이들이 선택한 방식은 바로 '여러 개의 직업을 갖는' N잡러가 되는 것이다. 

주말의 실내 아이스링크장, 그곳엔 아르바이트를 하는 31살의 유두희씨가 있다. 그런데 다음 날 유두희씨는 아이스링크 장의 작업복을 벗어 던진 채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집을 보러간다. 본업은 공인중개사, 벌써 6년차이다. 임대료를 낮추기 위해 사무실 없이 온라인 공간에서 사이트를 만들어 신축 빌라 분양을 매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1200만원의 수수료를 벌기도 했다는 그, 하지만 최근 들어 성사 건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낙담할 일은 아니다. 정작 고정 수입을 내는 건, 주휴 수당까지 챙겨주는 아르바이트와 함께 하고 있는 전자 상거래 사업이다. '쇼핑몰간의 차액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 그의 일은 6월에만 425건, 4500달러 정도,원화로 계산하면 백만원 정도의 수익을 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시 자리를 옮긴 그는 어느 틈에 농사일을 하는 어머님들이 쓰시는 천이 길게 늘어진 모자와 긴 장화까지 챙겼다.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어느 덧 9마리로 늘어난 한우 농장, 소들이 좋아하는 풀을 베느라 오뉴월 삼복에 비지땀을 한껏 흘린다. 이렇게 4가지의 일을 하고 있는 유두희 씨, 4가지 일 중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행복할 때는 어릴 적 어머니가 '공부 안하면 소똥이나 치운다'며 닥달하시던 그 소들과 함께 있을 때, 그러나 '흙수저'로 태어난 설움을 자식 대에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는 그는 오늘도 쉼없이 움직인다.  이번 생이 망했다고 주저않기엔 아직 너무 젊기 때문이다. 

청년 들 중 한 달에 200만원 미만을 버는 사람들이 79.6%에 달한다. 아르바이트 노동자 김승현씨, 주거비로 나가는 돈이 50만원, 통신비 6만원 등, 밥을 굶어도 한 달에 기본으로 나가는 돈이 60만원에 달한다. 아껴쓰는 걸 안하고 싶어도, 하루를 맘껏 쓰면 다음 날은 굶어야 하는게 현실, 이게 세상에 떠밀려 홀로서기를 한 많은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이들에게 N잡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돈만이라도 계획대로? 
한 편에서 소용되는 돈을 벌기 위해 가리지 않고 여러 가지 직업을 택하는 N잡러가 있다면, 또 다른 편에서는 고전적 방식으로 '돈을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 것들은 '아끼는 방식'도 다르다. 

'티끌 모아 한솔'이라는 개인 방송을 하는 한솔은 자신의 경험이 곧 돈이 된 케이스이다. 금리가 높은 상품, 쿠폰 모아 돈 벌기, 교통비 아끼는 팁 등 대학을 다니면서도 1300만원을 모으고, 현재 통장만 16개가 된 생생한 경험이 곧 그녀의 방송 자산이다. 

한참 멋 부릴 나이, 하지만 화장품 갯수도 겨우 몇 개, 옷가지도 행거 한 줄, 커튼 봉값을 절약하기 위해 집게로 설치한 커튼, 하지만 한솔은 돈을 모으는게 행복하다. 그러나 무조건 아끼기만 하는 건 아니다. '사고 싶은 걸 사고 싶을 때 사는 것도 능력'이라 생각하기에, '미래의 보상'을 위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돈만큼은 계획대로 모으고 쓰고 싶다는 그녀가 가장 잘하는 건 '참는 것'이다. 심지어 취미로 시작한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차 한 장에 500원씩 팔아 돈을 모은다. 집 사는데 걸리는 30년을 20년으로 단축할 그 날을 위해. 

신상만 나오면 사는 게 취미였던 공부방 선생님 이초롱 씨는 '남의 돈 버는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삶의 방식을 바꿨다. 그런데 '요즘 것들' 답게 그녀가 돈버는 방식은 '애플리케이션'과 '재테크'의 합성어인, 스마트폰으로 돈을 버는 '앱테크'이다. 영수증을 모으고, 은행 출석 체크를 해서, 조금씩 모은 포인트가 어느새 그녀의 화장품 값이 되고, 손님 접대 비용이 된다. 이런 식으로 한 달에 모은 돈이 지난 달만 해도 159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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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달러만 번다면, 당장 사표를 - 파이어족 
이렇게 요즘 것들을 위한 다양한 금융 비서 앱들도 속속 등장한다. '하늘 아래 같은 색은 없다지만 이렇게 사들이시면 같은 색을 또 사는 게 아닌가요'라는 애교섞인 멘트로 '과소비'를 경고해주는가 하면, 무지출을 게임 식으로 유도한다. 이런 '앱테크'를 활용하여 이초롱 씨는 작년 한 해만 3000만원을 절약했다.

이런 요즘 것들의 '돈라벨'은 예전처럼 무조건 허리 띠를 졸라매 막연한 먼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 아니다. 목표로 하는 여행을 위해, 자아 가치 실현을 위한 자산 관리라는 뚜렷한 각자의 목표가 있다. 우리나라 만이 아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경제적인 자유를 위해 조기 퇴직을 준비하는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 엘리트 직장인들 사이에서 최근 급속하게 등장한 이 신종족은 100만 달러(11억2620만원) 만들기를 목표로 이 금액이 달성되면 미련없이 직장을 나오는 풍속도이다. 이들은 모은 100만 달러로 주식을 하거나 은행에 예치하여 거기서 나오는 수익이 5~6%만 되면, 연간 5만 달러 정도, 이 정도면 충분히 먹고 살만하다는 계산을 한다. 대부분 고소득 연봉을 받고 있는 IT 종사자나 금융권 종사자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파이어족' 열풍은 현재 비록 많은 돈을 벌고 있지만 일로 부터 오는 스트레스와 일로 인해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 지는 현실에서의 고충을 조금 덜 쓰고 덜 먹더라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고 싶다는 '소망'을 통해서 풀어내고 있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다. 

딸을 하나 둔 김상진씨 부부 역시 '파이어족'을 지향한다. 회사원인 김상진 씨는 주말을 이용하여 마카롱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통신 판매업을 겸업하는 중이다. 본사와 점포 사이를 연결해 주고 수수료를 챙는 식으로 하여 2천, 2천5백, 3천, 최근 그가 벌어들인 돈이다. 그런가 하면 공무원인 아내는 경매에 나섰다. 이미 상가 경매의 달인 수준, 당연히 벌어들이는 돈은 아내의 본봉을 넘어섰다. 거기에 더해 재개발 지역 부동산을 통해 거의 1년 연봉에 버금가는 돈을 만진다. 

부부가 이렇게 본업 이외의 직업에 열심히 매달리기 시작한 건 딸을 낳고 나서이다. 아이가 생기고 아이가 더 자라기 전에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부부는 본격적으로 부업 전선에 뛰어 들었고 부업만으로 살 수 있을 때 기꺼이 회사를 떠나겠다고 약속을 했다. 

물론, 방식을 달리 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 16시간을 일하던 요리사의 삶을 살던 병훈 씨는 이제 편의점 알바를 하며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을 실천하고자 한다. 더 이상 자신을 사회 속에서 혹사시키고 싶지 않다는 그의 결심이 삶의 방식을 변화시켰다. 경제적으로는 불안하지만, 지금의 행복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렇게 목표는 저마다 100억이 될 수도, 3억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지금을 투자해 미래를 얻으려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히지 않으려 한다. 그런 선택의 중심에 그 예전 세대들이 한 마디로 편의적으로 규정짓던 '요즘 것들'이 있다. 

이렇게 예전과 다른 요즘 것들의 '돈라벨'의 방식, 그 기저에는 바로 울타리가 사라진 불안을 안고 사는 이 시대가 있다. 재능 공유 플랫폼을 하는 김영경, 김윤환 씨, 몇 백만원씩 하는 전문 자격증 강의를 품앗이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동시대 젊은이들과 공유한다. 대부분 직장인들이기에 퇴근 무렵부터 시작되는 강의, 이렇게 모여든 사람들 중 심하게는 8,9개의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 

수능만 잘보면, 그래서 대학만 잘 가면 되던 시대,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났다. 평생 직장이 사라졌다. 과연 50살까지 모아도 집을 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이 시대 젊은이들 사이에 흐른다. 그래서 다시 시험을 준비한다. 영수증을 모으고, 쿠폰을 모으고, 하루 24시간, 주말이 따로 없이 여러 직업을 뛰고, 그러면서 그 속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어른들이 펼쳐놓은 세상에, 어른들처럼 했다가는 떡은 커녕 굶어죽기 십상이니, '요즘 것들' 방식대로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9. 9. 17. 17:29

전현무와 장성규, 이제는 자타공인 mc계의 최강자가 된 전현무와 떠오르는 샛별 장성규, 이 두 사람이 한 프로그램에서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성은 충분했다. 거기에 '뉴스'라 하면 공신력 1위의 jtbc에서 선보이는 '쇼'가 된 뉴스, <막 나가는 뉴스쇼>라니,  더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첫 회 앵커 브리핑 마지막에 전현무는 이 프로그램의 고정을 소원한다. 다음 주에도 봤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첫 회처럼 이런 식이라면 거의 '전파 낭비'가 아닐까 싶다. 상은 그럴 듯하게 차렸는데 막상 젓가락을 들고 보니 먹을 게 없어 쓴 입맛만 다시게 만든 <막 나가는 뉴스 쇼>, 예능이 된 뉴스의 앞날이 답답하다. 

 

 

귀신을 팩트체크? 
특종이 있으면 어디든 '막 나가겠다'는 각오로 포문을 연 <막 나가는 뉴스쇼>, 그 첫 번째 코너는 '팩트 체크'이다.  양푼을 뒤집어 자른 단발 머리가 트레이드마크가 된 최양락과 최양락과 같은 가발을 쓴 장성규가 화제가 된 현장에 직접 나가 '팩트 체크'를 한다는 이 코너, 그 첫 번째 현장은 바로 귀신이 출몰한다는 신촌의 영화관이다. 

영화관에 등장한 제작진, 우선 몇 사람이 타지도 않았는데 인원 초과가 울린다는 엘리베이터에 귀신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제작진 한 사람, 한 사람 몸무게를 공개하며 '팩트 체크'를 한다. 그리고 퇴마사와 고스트 헌터까지 동원하여 엘리베이터에 이어, 귀신이 관객석을 향해 바라보았다는 영화관을 훑는다. 결론은 퇴마사의 할머니 귀신 출현 주장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는 실제 인원 초과를 염려하여 초과 중량을 낮춘 것이고, 영화관 귀신은 취객이 스크린의 불빛을 피해 돌아앉았다는 것. 

무엇보다 과연, 제작진이 말하는 최근 sns를 통해 화제가 되었다는 그 영화관의 귀신이 고정을 노리며 첫 회를 내보낸 프로그램의 첫 번째 코너로 적합했는지가 의문이다. 도대체 그 '화제성'은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지, 그 화제성을 그렇다 치더라도 결국은 최양락조차 어이없어 하며 돌아가는 그 '어설픈' 귀신 체험도 아니고 과학적 접근도 아닌 과정은 또 어쩔 것이며, 웃으라는 것인지, 진지하게 지켜보라는 것인지 애매모호하다 못해 썰렁한 분위기는 이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의 몫이 될 뿐이다. 차라리, 그 신촌 화려한 도심 한 가운데 각종 소송으로 인해 방치된 건물이 '괴담'의 진원지에서 헤어나올 가능성을 '팩트 체크'했다면 그래도 조금은 'jtbc'다웠을까?

 

 

김구라가 발로 뛴 '현장 PLAY'
그 다음은 방송 이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김구라가 직접 일본으로 가서 최근 '혐한 발언'으로 화제가 된 DHC 방송 패널들을 직접 만나보고자 했던 코너이다. 방송은 DHC 방송 중에 각종 '혐한' 발언을 한 패널들의 발언을 다시 한번 보여주며, 최근 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일본 내 '혐한' 코드를 짚는다. 그리고 방송 중에 기꺼이 인터뷰를 하겠다고 장담까지 한 패널들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이미 방송 전에 '인터뷰' 요청에 대해 답이 없는 상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김구라는 하쿠타 나오키 등을 찾아나선다. 

사실 이 '코너'는 이미 다른 방송에서 '강유미' 등이 했던 코너와 비슷한 모양새다. 하지만, 국내의 인물들을 거침없이 찾아나선 강유미와 달리, 해외, 그것도 최근 외교적 갈등이 고조되어 있는 일본 내 반한 인사를 찾아나섰다는 점에서 부담 요소가 큰 코너였다. 그러기에, 방송 전에 언론을 통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것과 달리, 방송은 앞서 '팩트 체크'처럼 무언가를 하려고 했으나, 결국은 애초에 목적한 바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물론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치 우리의 '태극기 부대'처럼 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혐한 시위자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온 외신이 거기의 태극기 부대 한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것이 '보수'의 전형인 양 보도하면 '왜곡 보도'가 되듯이, 그 1인 시위자를 통해 일본 내 반한 정서를 대변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성과는 거리에서 만난 일본의 젊은이들과 시민운동가 다시와라 요시후미와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본 아베로 대변되는 일본의 변화된 정서이다. '한국'에 호감을 느끼는 일본의 젊은이들, 하지만 '역사'나 '정치'에 무관심한 그들에게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통해 한국인들이 느낀 참담함은 그저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전후 세대의 '무지'함에 편승하여 전쟁 주범이라는 일본의 과거사를 떨쳐 버리려는 아베 정권의 야심을 방송은 정확하게 짚어준다. 차라리 '혐한' 패널들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이런 '평범함' 속에 숨겨진, 일본의 변화를 냉정하게 짚어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 어설프게 '강유미가 간다'와 비교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걸크러쉬 치타와 제아의 까칠한 취재
이어진 꼭지는 걸크러쉬한 치타와 제아를 앞세운 '까칠한 취재', 영화 <도어락>은 물론, 최근 화제가 된 사건으로 주목되고 있는 '도어락'을 취재한다. 건물을 시공하는 과정에서 시공업체가 임의적으로 설정하는 비밀번호, 1234 등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번호 순서라던가, 그게 아니더라도 쉬운 접근을 통해 홀로 사는 여성의 집에 들어가는 갖가지 방법을 두 패널은 친절하게(?) 알려준다. 

물론 취지는 시공업체의 안이한 도어락 접근방식이라던가, 취약한 도어락 비밀 번호 접근을 경고하자는 것임에도 막상 보고있자니, 흔히 '방송'을 통해 '모방범죄'를 양산하는 범죄의 함정을 보고 있는 느낌은 무엇인지. 

 

 

전현무, 장성규의 무러보라이브 
마지막 코너는 전현무, 장성규 두 MC가 최근 화제가 된 이슈를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시청자들의 질문과 함께 전문 패널들과 함께 알아보는 <무러보라이브>이다. 이 코너에서는 최근 재벌가 자제들과 연예인들로 인한 '마약'에 대해 마약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과 전문가인 교수, 약사 등과 함께 궁금증을 풀어가는 시간이다.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마약 사건, 굳이 누구누구를 들 것도 없이 올 한 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마약 사건이 한 둘이 아니다. 이에 <막 나가는 뉴스 쇼>는 마약의 종류와 함께 그 독성, 그리고 중독의 위험성을 짚어본다. 

'마약을 하면 창의성이 좋아지나요?'처럼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질문을 통해, 흔히 일반인들이 가질 수 있는 마약의 함정에 대해 밝혀주는 건 의미가 있다. 거기에 마약성 다이어트 약, 진통제 등 우리가 무심코 남용할 수 있는 마약성 약품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실시간 질문때문이었을까, 최근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마약 중독의 위험성은 광범위한데 비해, 질문은 두서가 없었고, 접근은 지극히 흥미 위주였다. 심지어, 마약을 소지하고 왔을 때 처벌과 관련하여, 장성규의 '그러면 차라리 많이 가지고 들어오는게 낫네요'라는 발언에 이르면, 도대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반문이 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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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술에 배부르랴? 
물론 첫 방송이다. 정규 편성이 기약되지 않은 방송이다. 하지만, 분명 고정을 기약하고픈, 심지어 최근 화제가 된 두 MC 전현무와 장성규, 거기에 김구라, 최양락, 제아, 치타 까지 내노라하는 인물들을 모아놓은 프로그램치고는 속된 말로 '허접'하다. 

무엇보다, 과연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게, 쇼가 된 뉴스인지, 뉴스의 쇼인지, 그 취지가 애매모호하다. 가쉽조차도 되지 않는 소재를 '화제'가 된다며 코너를 편성한 것도 그렇고, 화제가 된 소재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조차도 지나치게 '시선끌기'식이다. 깊이도 없고, 재미도 없고, 교훈도 없다. 심지어 범죄 수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쇼가 된 뉴스의 최고봉이라면 이미 트렌디 셀러가 된 <썰전>이 있지 않은가. <썰전>이 당대 최고라는 평판을 받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제작진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시끄러운 시국에 과연 '쇼'로 보여줄 뉴스가 무엇이야할 것인가에 대해 제작진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 웃기기 위해, 우스운 것을 보여주는 것으론 더는 시청자들은 웃지 않는다. 

특히 화제가 되었던 전현무와 장성규의 조합, 그저 화제가 된 인물들을 모아놓고 망한 숱한 프로그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제작진은 이 '쓸만한' 인물들의 쓰임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차라리 모처럼 '아나운서'처럼 돌아온 전현무는 여전히 뜬금없는 그의 자뻑 멘트만 차치한다면 신선했다. 반면, 유투브도 아닌데 눈만 똥그랗게 뜬 어벙벙한 컨셉으로 흐름과 맞지않는 질문을 던지는  장성규를 여기서 또 보아야 하는 건 벌써 지겹다. 이제는 날카로움도, 기동성도 떨어진 김구라를 지켜보는 것에도 '아량'이 필요하다면? 전현무와 같은 예능형 MC의 길을 걷는 장성규라면, 선배와 후배 사이의 긴장감을 충분히 자아내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by meditator 2019. 9. 16. 16:47

이젠 그러려니 한다. 추석이 되면 특선이라는 명목으로 영화들이 주요 시간대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 말이다. 그래도 한 해에 제법 흥행을 했던 영화들이니 괜히 그런 영화들 가운데 정규 프로그램을 편성하면 '피보기 십상'이다. 심지어 특집 드라마라니. 그런데 그 무모한 도전을 kbs2가 했다. 9월 11일, 12일 양 일간에 걸쳐 밤 10부터 방영된 특별 기획 드라마 <생일 편지>가 그 주인공이다. 1,2회 2.8%, 3회 0.9%, 4회 1,4%에 불과했다. 드라마가 재미없어서? 아니 그보다는 동시간대 방영한 '특선 영화'에 대한 호불호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마치 아스팔트 사이에 피어난 민들레처럼 꿋꿋하게 <생일 편지>는 시청률에 목맨 드라마들이 해오지 않았던 이야기를 곡진하게 풀어냈다. 

 

 

한 장의 편지로 부터 시작된 옛 사랑 
시작은 한 장의 편지이다. 노년의 김무길(이무송 분) 씨가 꿈에도 잊지못한 연인 여일해에게서 생일을 축하한다는 편지가 도착한 것. 드라마는 그렇게 뒤늦게 도착한 일해의 편지를 계기로 묻어두었던 무길의 기억을, 잊혀진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소환한다.

김무길(송건희 분), 여일해, 두 사람은 한 동네네서 같은 날 태어난 친구이자, 연인이었다. '혼인'을 약속했지만, 일해(조수민 분)는 일본에 의해 정신대로 끌려가 버리며 두 사람이 꿈꿨던 '미래'의 약속은 깨져버렸다. 하지만 무길은 일해가 다시 돌아올 것이란 약속을 굳게 믿으며 꿋꿋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동네 친구가 전해준 소식, 일해가 히로시마 일본 술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걸 얼핏 봤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알게 된 무길은 어떻게 해서라도 히로시마에 가서 일해를 데려오고 싶다. 그런데 마침 무길의 집에 통보된 무길 형의 히로시마 징용 통지서, 집안의 장남이 적국 일본으로 끌려가야 한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혼비백산, 도망이라도 가라고 다그치시는데, 무길이 장남인 형 대신에 자신이 그곳에 가겠다며 나선다. 무길의 생각은 형 대신 히로시마에 가서 일해를 구해 돌아오겠다는 야무진 결심이다. 

 

 

결국 히로시마에 가게 된 무길, 하지만 그의 결심과는 다르게 전쟁 통의 일본에서 '징용'으로 하는 일은 또 다른 생사의 전쟁터에 그를 던져넣게 된 것이다. 맨 몸으로 험란한 현장에서 일을 해야하는 한국인들은 배를 곯아서, 혹은 빈번한 사고로 인해 생과 사의 기로에 놓인다.

그런 가운데에도 무길은 어떻게 해서든 일해를 찾으려 애쓰고 결국 그는 눈물겨운 노력 끝에 일해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임에도 일해는 오랜만에 만난 무길 앞에 냉정하게 돌아선다. 정신대로 잡혀갔던 자신의 전력으로 인해 연인인 무길을 마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그러나 무길은 '네가 어떤 일을 겪었어도 괜찮다'며 일해의 마음을 어루만져 돌려세운다. 

마음을 돌린 일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희망에 부푼 것도 잠시, 히로시마에 미군이 투하한 원자폭탄이 터지며 도시 전체가 처참하게 무너져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다. 무길도, 일해도 다치고, 원자폭탄의 분진에 노출된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아직은 히로시마을 덮친 원자폭탄의 비극을 깨닫지 못한다. 뒤늦게서야 무길과 화해한 함덕이 그들 옆에서 죽어갔어도. 

겨우 알게 된 귀향선의 배편마저 '사기'로 탈 수 없게 된 상황, 무길은 불덩이같은 일해라도 태워달라며 사정을 해 겨우 일해만을 배에 태운다. 하지만 참사의 현장에서 도움의 손길을 준 덕분에 운좋게 배에 탄 무길과 무길이 배에 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해가 배에서 내리며 다시 한번 비극적으로 엇갈린다. 

그리고 무길이 돌아온 고향, 그런데 고향에는 무길의 아내가 그를 기다린다. 만삭의 배를 안고서. 무길이 없는 동안 그의 아이를 가졌다며 그를 내내 흠모했던 함덕의 여동생 영금(김이경 분)이 집안의 며느리 역할을 해왔던 것. 한시라도 일해를 잊지못하던 무길은 당연히 영금을 외면하다. 그러나 '겁탈'을 당했던 수모를 무길을 핑계로 넘겼던 영금은 스스로 목을 매겠다고 나서고, 무길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영금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그리고 뒤늦게 돌아온 일해는 무길의 아이라며 자신의 아이를 내보이는 영금 앞에 뒤돌아 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무길은 6.25 전쟁의 피난길에서 폭격을 맞고 죽어가는 영금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된다. 

 

 

뒤늦은 두 연인의 해후가 말한 비극적 역사 
무길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영금의 아들이 차라리 자신처럼 원폭을 당한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서, 그리고 아들을, 그 아들이 남긴 손녀를 자신의 가족처럼 여기며 평생을 고향에서 살아왔다. 결국 그 역시도 피해갈 수 없는 원폭의 휴유증으로 이제 노년을 투병의 나날로 보내고 있는 즈음, 뒤늦게 도착한 일해로 부터 온 생일 편지 한 장이 그로 하여금 포기했던 연인과의 해후에 맘을 졸이도록 만든다. 

4부작으로 구성된 짧은 드라마는 원폭의 후유증으로 생의 기로에 선 늙은 김무길이 받은 일해의 생일 편지로 부터 그녀를 다시 찾기 위한 무길과 그의 손녀  재연(전소민 분)과 그의 연인 구기웅(김경남 분)의 노력을 씨줄로, 그리고 그 씨줄의 행간 행간에 순애보적인 무길과 일해의 사랑을 직조하며, 일제 식민지 하 정신대, 징용, 히로시마 원폭, 그리고 6.25라는 역사적 비극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같은 날 태어나 숙명처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던 무길과 일해, 하지만 우리 현대사를 할퀴고 간 역사적 비극들은 이 청춘 남녀의 사랑을 지켜내지 못했다. 뒤늦게서야 일해가 요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무길의 의붓 손녀 재연이 일해에게 달려가지만, 일해는 이젠 무길도, 그 시절의 비극도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겨우 일해를 달래 데리고 왔지만, 이젠 쓰러진 무길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겨우, 흐릿한 의식 속에서 주름살 투성이의 손을 마주잡은 무길과 일해, 그들의 해후는 너무 오래 걸리고 늦었다.  

추석의 의미를 반문하게 되는 2019년의 명절,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우리의 비극적 현대사는 그 '가족'되기를 그토록 희망했던 두 연인에게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조차 빼앗고야 말았다. 추석이라서 더 안쓰러웠던 오랜 연인의 순애보, 비록 특선 영화같은 화려한 씨쥐도, 거창한 서사도 없지만, 잔잔하게 오랜 여운을 남긴 추석 특집 드라마이다. 



by meditator 2019. 9. 15. 16:43

겨레의 명절 추석이 다가온다. 농사를 지었던 시절, 한 해 농산물을 수확하는 절기는 일년 중 가장 풍성한 시절이다. 그 해의 수확물을 거둬들여 올해도 무사히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준데 대해 감사의 시간을 시간을 가지는 건 농경 사회의 가장 큰 '의식'이었다. 그렇게 농경 사회를 거친 세계 여러 나라들은 저마다의 '추수감사절' 행사를 치룬다. 그렇게 한 해 농산물의 수확을 기념했던 추석은 '산업 사회'에 들어서며 변모한다. 고향을 떠나 '산업'의 중심인 '도시'로 떠난 이들이 '추석'이라는 명절을 기회로 '고향'을 찾게 된 것이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가지만 '귀경 전쟁'이라 하여, 서울역 앞에 표를 사기 위해 밤을 새워 줄을 서던 시절은 바로 '산업 사회' 한국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4차 산업 혁명을 운운하는 시절이 된 2019년의 추석은 어떨까? 고향을 가더라도 차례만 지내고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역귀성 전쟁이 추석 당일부터 벌어지는 시절, 취업과 결혼의 통과 의례를 건너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은 피하고 싶은 번거로운 요식 해위가 되었다. 그래도 가족이 모일 수 있다면야 괜찮지만 '가족 해체'와 '일인 가구 증가'가 현실이 되어가는 시절에 명절의 분위기는 소외감을 에스컬레이션시키는 시끌벅적한 이벤트일 뿐이다. 바로 이 추석이라 더 외롭고 슬픈 이들, 드라마 속 인물 들 중에 누가 있을까?

 

  

차라리 그에게 고향가는 차 표 한 장을 
얼마전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한 종우에게 다가올 추석은 언감생심이다. 버스에서 내리다 자신을 치고 가는 승객때문에 노트북이 망가지고 그 수리비 등으로 인해 언제 헐릴 지 모를 재개발 지구의 19만원 짜리 고시원에 들어가 있는 처지, 선배의 도움으로 겨우 회사라고 들어갔지만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 앞날이 보장되지 않은 '인턴', 심지어 대표인 선배는 도움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과거를 끄집어 내고, 실장이란 명칭의 직원은 디자이너 유정이 호감을 보이는 종우를 사사건건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건, 바로 조금만 참자며 버티고 있는 고시원이다. 친절한데 묘하게 불편한  분위기의 주인 아줌마를 비롯하여, 306호, 313호의 동거인들, 그리고 하나 둘씩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져가는 사람들, 모처럼 취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 반가워한 것도 잠시, 자신을 지켜보는 그의 시선이 어쩐지 따가운 304호 서문조(이동욱 분)까지. 아니 그저 그들이 보이는 불편한 분위기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방에 있어도 마음대로 핸드폰조차 통화할 수 없는 얇은 벽, 거기에 방안의 상태가 사라진 310의 불만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방에 들어온 거 같은 의심, 거기에 4층 불탄 여성 고시원 층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음, 그리고 동거인들이 나르는 이상한 짐부터 시작하여 그들의 행동에서 풍겨나오는 '범죄'의 냄새, 그 모든 것들이 군대 시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종우의 예민한 신경을 건드린다. 그의 작품에 드러난, 아니 그에게 잠재되어 있는 도덕적 경계를 흔든다. 

비정규직 인턴, 그리고 개인적 공간조차 제대로 허용되지 않는 발도 제대로 뻗지 못하는 고시원에서의 삶, 이 시대 '가난한 청춘'의 자화상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바로 갑갑한 이 시대 젊음의 상황에 '고어'한 장르의 설정을 더하며 벼랑 끝으로 내몬다. 그렇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자기 삶의 벼랑으로 발을 내딛는 종우에게, '구원'의 동아줄은 없을까? 그래도 아직도 '귀경'이란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추석 명절', 종우에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차표 한 장의 기적이 일어났으면 어떨까? 그가 타고 올라왔던 그 고속버스를 타고, 종우를 노리며 조금씩 다가오는 고시원 사람들을 두고, 사사건건 그의 발목을 거는 회사 사람들을 두고 훌쩍 '추석'을 핑계로 고향으로 내려갈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다시 고향에 내려가 모처럼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수운 밥 한 술을 뜨고, 자기 방에 벌러덩 누워, 생각해 보니 왜 내가 그 '지옥'에서 아둥바둥대야 하나, 이러고, 어차피 자신의 꿈이 소설가라면 굳이 그 지옥같은 타인들이 옭죄여오는 도시 생활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라며 돌아볼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제 아무리 종우 속에 내재된 폭력적 금단의 욕망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거기에 불을 지피는 '충분 조건'이 필요한 법, 추석 귀경 표 한 장이 그런 욕망의 제동 장치를 느슨하게 해줄 수 있었으면 종우의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러면 드라마가 안되긴 하겠지만, 대신 사람 하나, 아니 여럿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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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꼭 피를 나누어야 가족인가 
그래도 돌아갈 고향이 있는 종우에게 '선택'할 가능성이라도 있다. <왓쳐>의 영군이(서강준 분)는 돌아갈 곳조차 없는 천애고아이다. <왓쳐> 그 모든 것의 시작인 15년전의 그날, 영군의 눈 앞에서 엄마가 칼에 찔려 죽었다. 그리고 영군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증언했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영군은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랐지만 결국 다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그때는 감옥에 있어도, 미워는 했지만 아버지가 있었다. 

그런 아버지 김재명이 15년만에 출소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 낯선 건지, 훌쩍 커버린 아들이 어색한 건지, 아니면 아내가 죽은 집에 돌아온 게 면구스러웠던건지 아버지는 거실에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웅크려 잠을 잤다. 그런 아버지에게 영군이 먼저 다가선다. 자신의 이름이 담김 핸드폰을 사드리며 전화 꼭 받으라며. 방에 들어가 제대로 이불덮고 자라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도 한다. 아버지 역시 다 큰 아들을 위해 밥을 짓고, 계란찜도 하고 푸짐하게 아침 상을 마련해 줬다. 아들의 운동화 끈도 묶어주며 아버지처럼 묶으면 절대 안풀어진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처럼, 아니 어머니보다 더 처절하게 손가락이 잘린 채 목욕탕에서 피투성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아버지는 영군을 지키기 위해 항소도 하지 않은 채 감옥에서 15년을 썪었다. 그리고 영군을 지키기 위해 출소했지만 결국 죽음을 당했다. 자신의 딸이 범죄자에게 손가락 절단을 당하자 그를 보복하기 위해 스스로 누군가의 손가락을 자르는 킬러가 된 거북이 장해룡에게도 가족은 지켜야 할 첫 번째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 아버지들은 결국 가족을 지키지 못한다. 

그런데 어디 꼭 피를 나누어야만 가족인가. 영군이 김재명이 아들이라는 걸 알고 도치광(한석규 분)은 그를 자신의 팀으로 불렀다. 그가 오상도에게 총을 발사한 이유 역시 영군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자신이 김재명에게 덮어씌운 범죄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16부 내내 도치광은 영군을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한태주(김현주 분)는 어떨까? 검사 시절 단독으로 맡은 첫 사건에 대한 의욕으로 어린 영군을 부추겨 증언하게 만들었던 검사 한태주, 하지만 그 후 그 사건에 대한 의혹을 가졌던 한태주는 손가락과 함께 남편도, 가정도, 자존감도 잃었다. 이제 비리 조사팀의 일원이 된 한태주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진실을 찾기 위해 언제든 누구와 '협잡'할 태세를 갖추었지만 영군이에게만큼은 오랜 빚이 있다. 영군의 손가락을 절단하려는 남편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먼저 자르라 애원할 만큼. 

거북이를 발견하고 그를 향해 돌진하는 영군을 도치광과 한태주는 말린다. <왓쳐>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었다. 마치 아빠처럼, 엄마처럼 너는 그러지 말라며 영군을 부등켜 안은 도치광과 한태주, 하지만 이 '보호자'같은 두 사람과 영군은 드라마 내내 밥 한 끼도 나누지 못한다. 겨우겨우 이제 세상 천지 홀로 남은 영군이 걱정되어 찾아온 영군의 집에서 한태주와 조수연(박주희 분)만이 캔맥주를 나누었을 뿐. 

추석, 오갈 곳없이 어머니도 가고, 아버지마저 간 그 집에 덩그러니 남겨진 영군, 그렇다고 도치광이 집은 있다지만 어디 갈 곳이 있어보이진 않는다. 이제 남편 전화조차 차단해 버린 한태주라고 나을까. 가짜 남자 친구를 떨쳐버린 조수연은. 이럴 때 이들이 16회 내내 회식 한번 못해본 이 비리 수사팀이 영군이네 집에 모여 밥 한 끼라도 하면 어떨까 싶다. 뭐 꼭 추석 차례 상을 함께 차려야 가족인가. 피를 나눠야 가족인가. 마음 맞는 사람들끼지 따뜻한 밥 한끼라도 나누어 먹으면 그게 바로 2019년다운 추석 풍경이 아닐까. 모르는 사람끼리도 모여 밥을 먹는 '소셜 다이닝'도 하는데, 같이 부대끼로 수사한 한 팀인데, 굳이 홀로 긴 명절을 보낼 필요가 뭐 있겠는가. 이럴 때 한태주가 도와줬던 홍재식(정도원 분)의 아들이 소년원에서 출소라도 해서 함께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싶다. 

by meditator 2019. 9. 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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