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어김없이 올해도, 작년보다는 낫다지만 올 여름에도 '폭염' 문자를 피할 수 없다. 초등학교 아이들마저 '여름'을 엄마와 함께 시원한 까페에 가서 책도 보고 숙제를 하는 계절로 기억하게 되는 시절, 땡볕을 피해 얼른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곳을 '피신'을 하기 위해 종종걸음을 치게 된다. 마당의 평상, 나무 밑 그늘, 살랑살랑 부채바람, 그리고 천천히 돌아가는 선풍기는 그저 옛날의 추억일 뿐, 에어컨이 '필수'가 되어가는 시절, 하지만 우리가 이젠 당연하다 여기는 이 '에어컨' 등이 뿜어내는 '온실 가스'가 그 누군가 삶의 기반을 무너뜨린다면? 지난 7월 25일 방영한 <다큐 시선>은 바로 우리를 습격하고 있는 '폭염', 그 공평한 햇빛 속에 숨겨진  '불평등'을 주목한다. 

 

 

지난 2018년 인도에서는 심한 가뭄으로 한 농부의 아내가 목숨을 끊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여인만이 아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찾아온 혹서기로 인해 5만 9천 여 명이 죽어갔다. 하층민들은 동료들의 유골을 앞세우고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다큐 시선>이 주목한 건 바로 오늘날 지구가 봉착하고 있는 기후 변화가 지구에, 그 중에서도 취약 계층의 삶에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도의 하층민은 동료의 유골을 들고 시위라도 나서지만, 대다수의 피해자들이 그 피해를 피해로 보고있지 않아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폭염을 피해 이사가는 멍게 양식장 
경남 통영, 배 후미에 시뻘건 무언가를 매단 배가 바다를 가로 지르고 있다. 사람들이 놀러가기 좋은 곳을 넘어,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 우리나라 수산업 1번지가 바로 통영이다. 배가 매달고 가는 건 양식하던 멍게, 이곳 가조도에서부터 25km 떨어진 비교적 해수온이 낮은 한산도로 멍게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름철 폭염이 거듭되며 바다의 수온이 올라가고, 그를 견디지 못하고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 70%의 멍게가 폐사하자 특단의 조치로 '양식장'이 이사를 하게 된 것.

갈수록 양식하기가 어렵다는 25년 경력의 이종만씨, 강원도까지 가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는 중이다.  우리나라 해역 표층 수온이 지난 50년간 1.1℃ 상승했다. 전세계 평균 상승 온도보다 약 2.5배 빠른 속도이다.  그리고 이렇게 급격하게 변하는 고수온으로 인한 수산업 종사자들의 피해가 지난 4년 사이 10배나 늘어났다.

양식만 힘든 게 아니다. 바닷속 생태계도 변했다. 해양 생물들의 생태 주기가 달라져 기존에 살아왔던 해저 부착 생물들이 줄어들고 고기의 이동도 많아졌다. 예전에 많던 우뭇가사리 대신 따뜻한 곳에서 서식하던 다른 해양 부착 생물들이 나타났다. 조기를 잡던 어부들은 이제 난류성 어종인 멸치를 잡는다. 물반 멸치반인 바다 하지만 언제 또 무슨 변화가 생길 지 몰라 어민들은 긴장과 불안을 늦출 수 없다. 

바다만이 아니다. 가업으로 대를 이어 양계장을 운용하는 박현배 씨 여름이 시작되고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땀구멍이 없어 더위에 취약한 닭, 2016년부터 폭염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하여, 작년에만 3000마리가 죽었다. 쿨링을 하고 대형 선풍기를 돌려도 35도만 넘어가면 페사가 속풀한다. 이렇게 전국 양계장에서 2018년에만 620만 마리가 죽어갔다. 그나마 냉각 장치를 가동할 수 있는 기업형 양계장은 나은 편이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영세 양계농은 폭염 앞에 무방비하게 피해를 입고 있다. 

 

 

온실 가스, 취약 계층에 집중된 피해 
산업혁명 이후 화석 연료를 활용한 비약적인 산업의 발전은 온실 가스라는 괴물을 낳았다. 온실 가스는 속성상 수백년 동안 공기에 남아있다. 그 피해는 지구 전체에 광범위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난한 사람, 가난한 나라, 그 중에서도 어업과 농업 등 자연과 직접 맞닿아 있는 1찬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또한 야외에서 직접 햇볕을 맞으며 일해야 하는 야외 노동자, 에어컨 없이 생활해야 하는 극빈 계층, 온도 감지 능력에 취약한 어르신들 역시 피해갈 수 없다. 하나의 태양은 온 세상을 고루 덥히지만 그 피해는 취약 계층에 집중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특히 절기가 조금만 늦어져도 열매가 제대로 달리지 않는 등 여름철이 가장 일이 많은 농사의 현장은 논, 밭, 비닐 하우스로 그 자체가 곧 '사고 현장'이 되고 만다. 경북 상주의 오르신들, 작년 여름 그만 농작물이 타들어 가는 바람에 들깨 농사를 망쳤다며 수십년 해오던 농삿일이 점점 더 어렵다며 하소연을 하신다. 4월 가뭄, 7,8월의 폭염, 8월말 9월초의 폭우, 몇 십년 해오던 농삿일이라지만 피해갈 수 없는 환경의 변화 앞에 속수무책이다. 

변화된 기후만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약해진 냉감 센서는 이제 어르신들만 남은 농촌 사회의 큰 복병이다. 지난 여름 말라가는 고추 밭을 보다 못해 물을 대다 쓰러지신 82세 오정필씨, 칠십년 농사를 지으며 병원 신세를 져본 적이 거의 없다는 어르신은 아내가 없었다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거라며 고개를 저으신다. 

2018년 온열 질환자수 4526명, 사망 48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령화된 농어촌 사회는 특히나 취약 지역이다. 오죽하면 보건소 직원들이 마을을 돌며 혈압과 당뇨를 체크하며 '낮에 혼자 다니시면 안된다'고 당부하고, 독거 노인들이 많은 마을에서 혹시나 모를 비상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혼자 다니시지 않기를' 독려할까.  일하다 힘들면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 한 숨 자며 더위를 피하는 건 이젠 '과거'가 된 상황, 7,8월 혹서기에는 일하는 거 자체가 힘들어진 농촌, 누군가가 내뿜어댄 탄소에 농촌이 고스란히 직격탄을 맞았다. 

 

 

바다가 비어간다. 
직격탄은 바다라고 해서 피할 수 없다. 온실 가스의 주범인 탄소는 바다에 녹아들어 해양을 산성화 시킨다. 산성화된 바다에서 산호초는 백화되고, 갑각류와 폐류는 산호 부족으로 껍질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한 채 폐사해 간다. 해녀들의 곳간이 헐거워져 가는 것이다. 한참 성게가 제철인 시절, 바닷속을 아무리 뒤져도 성게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 

곳간이 비는 건 물론, 점점 올라가는 수온 때문에 해녀들을 보호해 주는 잠수복을 입고 물질하기가 쉽지 않아 아예 벗고 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단다. 그만큼 '위험'에 무방비해지는 상황. 물질 30년이 되었다는 해녀는 이 생활 최대의 위기라며 한탄한다. 

해녀들만이 아니다. 근해에서 고기를 잡던 10톤 미만의 어부들 역시 이제는 빈손으로 돌아오기가 십상이다. 통발 어업을 하는 지창정씨,  매일 건저 십만원씩 벌던 통발을 이젠 15일씩 놔둘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바다가 비어간다. 겨우 건져낸 딱게 등등 차비도 안남아 팔 것이 없다. 이런 식이니 일 년에 천 만원 벌이도 쉽지 않다. 이삼천 씩 벌어 야무지게 살림을 꾸려가던 시절은 옛말이 됐다. 나이가 드니 이제 와서 일용직으로 나갈 수도 없고 노령 연금을 받아 근근히 두 부부가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지창정씨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체 어민의 43.7%가 1천만원 미만의 벌이를 하고 있는 현재의 어업 상황, 집집마다 배를 두고 고기잡이를 나가던 시절은 추억이 되었다. 고령화에 파괴된 연안으로 인해 어선 어업을 포기하는 어부들이 속출하고 있다. 결국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지역 사회는 공동화되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기후 변화는 사람들에게 몇 십년씩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도록 만든다. 30년 동안 사과 농장에서 일하던 경북 문경 김법종씨, 환경 변화와 함께 '홍로' 등의 품종이 더는 옛날과 같은 맛과 질을 담보할 수 없게 되자, 사과 농사를 짓기 좋은 조거느이 강원도 양구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일조량이 적당하고 태풍 등 기후 재앙을 피해갈 만한 지리적 터전, 사과는 이제 무럭무럭 자라지만 두 부부는 34년 동안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온 우울증 등 후유증을 톡톡히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1℃의 변화로 지금처럼 우리 농촌과 어촌의 생태계가 극심한 변화를 겪고, 그곳에 삶의 터전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는 현재, 하지만, 과연 온난화로 인한 변화가 1℃에서 그칠까. 기후 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는 21세기 말이 되면 지표면의 온도가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4℃까지 상승하리라 경고한다. 과연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생태와 자연, 나아가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전체 지구보다 더 심각한 건 우리나라이다. 반생태적인 삶의 조건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1위, 지금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던 방식으로 전 지구 사람들이 살아간다면 지구가 3.5개가 더 필요하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한반도 자체로만 봐도 8.5개의 한반도가 더 필요하다. 다큐는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온난화의 문제가 환경 이전의 삶의 문제임을 밝히고자 한다. 빨간 불이 켜진지는 오래, 내가 마구 튼 에어컨에 우리의 가장 취약한 이웃들이 신음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그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우리의 삶의 태도와 습관이다. 무너져가고 있는 농촌과 어촌, 그 일터의 불평등에 가해자는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우리다. 

하지만 에어컨을 끌 수도 없고, 온난화로 인한 폭염을 다시 온실 가스에 의존하여 해결 할 수 없는 화석연료 산업 사회의 우리, 더위가, 폭염이 그저 계절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우리가 딛고 있는 산업 사회라는 존재론으로 부터 비롯된 것임을, 그리고 그 사회적 기원의 문제는 결국 기후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는 것을 다큐는 명확하게 설득해낸다.  

by meditator 2019. 8. 9. 19:57

mbc스페셜은 지난 주에 이어 '이 남자'를 다루었다. 7월 29일 <이 남자 분노하다>에서는 '페미니즘'의 시대, 자신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여성들과 여전히 자신들에게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기성 세대 사이에 햄버거 패티처럼 낀 처지가 된 이십대 남자들의 '억울함'을 담아내고자 한다. 그에 이어 8월 5일 방영된 < 이 남자의 피, 땀, 눈물>은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이십대들의 고달픈 삶을 담아내고자 한다. 

 

 

오늘을 산다.
한 소주 회사, 3개월 수습 끝에 정직원 딱지를 달았던 이제 입사 2년차 최재원 씨, 정직원이지만 판촉 행사를 하기 위해 알바 생들과 같이 우주인 복장을 하고 여러 술집을 돌며 자기 회사의 상품을 홍보한다. 판촉 행사가 끝난 후에야 땀에 절어 잘 벗겨지지도 않는 우주인 복장을 벗는 재원씨, 먹고 사는 게 쉽지 않다. 

그의 나이는 벌써 이십대 끝 무렵인 29살이다. 세 번 째 도전 끝에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최재원씨, 굳이 이 회사를 고집한 이유는 '연봉'이다. 구직 기간 동안 늘 친구들에게 신세만 졌다던 재원씨 조금이라도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높은 월급은 필수이다. 

조금 더 나은 연봉을 받기 위한 도전,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15세에서 29세 첫 일자리 임금 수준 표에 따르면 청년 층의 34.1%가  150에서 200만원 미만의 돈을 첫 월급으로 받는다. 100에서 150만원 미만을 받는 층도 27.7%에 달한다.  우리 사회 직장의 로망이라는 대기업 직원들이 받는 300만원 이상을 받는 층은 2.4%에 불과하다. 50만원 미만을 받는 층도 5.1%나 된다. 

그러다 보니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도 생긴다.  국가 대표 결승 경기가 열리던 날 배달 대행업체 라이더를 하는 김민근 씨에게 경기 관람은 언감생심이다. 밤 10시부터 시작된 콜이 20건에서 25건에 이르는 베테랑이다. 

자동차 학과를 졸업한 민근씨 역시 남들처럼 직장에 취업을 한 적이 있었다. 6개월 정도 다녔지만 알바로 했던 배달 대행업보다 터무니 없이 작은 월급에 시간도 길다보니 다시 돌아와 본격적인 '라이더 인생'을 시작했다. 이제 그 때보다 서너배는 더 번다는 민근씨, 남들의 치맥 한 잔이 그에겐 나날이 쌓이는 통장의 꿈이다. 매일 오만원씩 저금한다는 그, 돈을 모아 언젠가 프랜차이즈점을 차리는게 꿈이라는 민근씨를 하지만 같은 업종의 형님들은 뭐 벌써부터 저렇게 애를 쓰고 사냐며 안쓰럽게 본다. 

하지만 민근씨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26살의 김영준씨는 한 달 째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유아 체육 교사로 직업상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기침은 쉽게 낫지 않는다. 군복무를 마치고 시작한 일이 어언 4년차에 접어든 이즈음, 처음 시작은 60만원에서 부터였다. 그래서 그때는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노가다도 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영준씨는 지금의 유아 체육 교사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젊어서야 할 만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여기저기 유치원을 다니는 게 좋아 보일 것같지 않다는 그는 생활 체육 지도사를 따기 위해 시간을 쪼갠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요? 라는 제작진의 질문에 그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담담한 대답. 아마도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이십대 남자들의 답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이십대 남자들은 내일이 없는 듯이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일까? 그걸 답해주는 건 바로 실업률이다. 2019년 4월 기준, 청년 실업률 11.5%, 졸업 후 첫 취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8개월, 그리고 앞의 통계에서도 보여지듯이 취업을 해도 10명 중 8명은 평균 200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에겐 오늘이 발등의 불이다. 취업을 했던 청년 들 중에 조금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민근씨처럼 버는대로 돈이 되는 라이더 일도 불사하게 되고, 다시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찾아 '취준'의 길로 돌아가기도 한다.

바로 그 취준생의 1/3이 선택한다는 '공시', 26살 배민구 씨 역시 바로 그 공시생이다. 하지만 모두가 공시생이 될 수는 없는 것. 배민구 씨 역시 30대를 공시의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다. 그 길고도 아득한 레이스, 하지만 레이스의 종착역에 도착하여 직업을 얻는해 해도 어른들이 원하는 그 가정을 가지는 미래는 불투명하다. 

 

 

꿈이 없다고? 비판적 의식이 없다고? 
기성 세대는 이런 청년 세대에게 불만이 많다. 왜 꿈이 없느냐고. 취직에만 매몰되어 있냐고. 하지만 그런 기성 세대의 불만에 청년들은 어서 빨리 저 분들이 퇴직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야 우리 몫이 생길 텐데라고 생각할 뿐이다. 

88올림픽으로 상승세를 탔던 경기, 80년대 말, 90년대 학번들은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취직을 해서 직장을 다니면 언젠가는 번듯한 내 집 마련에 안락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갈 수 있었던 세대였다. 당연히 '낭만'을 즐길 여유가 있었고, '사회 비판적 의식'을 가질만한 여지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무한 경쟁 취업의 시대에 내몰린 청년들은 자신들에게 '꿈'이나 '비판 의식'을 운운하는 기성 세대에게 분노한다. 그들이 오늘날 청년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은 세대인데, 이제 와서 해주는 것은 없으면서 청년들에게 무리한 요구만을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페미니즘'의 시대, 청년들은 여성들은 그저 혜택받는 경쟁자이며, 자신들은 역차별을 당하는 약자라 생각한다. '남성적 특권'을 누린 건 기성 세대의 남자들인데 애먼 20대 남자가 눈덩이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군복무로 사회집입조차 늦은 그들에게 사회적 이점이 없다고 항변한다. 

 

 

국민연금이라도 넣으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고달픈 경쟁에 시달리며 오늘을 살아가기도 벅찬 이십대 청년들을 위한 해법은 없을까? 이 남자의 피, 땀, 눈물의 고증에 충실하던 다큐는 중반부에 들어서서 갑자기 국민연금 관리 공단 홍보 다큐가 된다. 

국민 연금을 꾸준히 넣어서 노후가 되어서 걱정이 없다는 어르신들, 그 중에서도 부산 물류 회사의 대표 김기식씨는 1979년 제대 이후 꾸준히 직장 생활을 하며 연금을 넣은 덕택에 매달 130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며 연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든든한 노년의 보장이라는 어르신들의 생각과 달리 청년들은 노년층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우리 나라의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하지만 대학생 홍보대사까지 동원한 다큐는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국민 연금이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다며 세게 3위 660조원의 기금으로  향후 30년간은 끄덕없다며 젊은이들의 가입을 독려한다. 

물류 회사 김기식 대표님의 따님 지영씨마저 가정을 꾸리고 보니 한달 9만원의 연금이 부담스럽다는 현실, 실업률에 직장 구하기가 힘들고, 월급을 받아도 쥐꼬리만해서 다시 라이더를 하는 게 낫다면서 국민연금을 내라니, 국가에서 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큐는 연기 지망생 김민수 씨와 박인영씨를 들어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청춘의 연가로 마무리된다. 현실로 시작해서 그래도 여전히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청춘도 있다는 이상으로 마무리된다. 현실의 진단은 명확하지만 결국 이 시대에 다큐가 짚을 수 있는 답은 불투명한 것이다. 그건 다큐가 도달한 불투명이 아니다. 자신들이 가진 걸 나눠줄 의향이 없는 기성 세대, 자신들의 잣대로 청년들을 바라보는 기성 세대의 프레임에서, 이남자들에게 말해줄 답은 그래도 국민연금은 넣어라 말고는 없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당연히 젊은 세대들은 당신들의 노후를 책임지기 위해 우리가 국민연금까지 넣어야 하느냐고 반문하지 않을까? 과연 그런 어설프고 안이한  '답정너'식의 동어반복으로 '이남자'들의 상흔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19. 8. 6. 16:35

'한류'를 선도했다던 드라마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시청률이 7%대만 되도 '선방'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 즈음, 각 방송사들은 '적자'를 이유로 드라마 제작 편수를 줄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방영하는 드라마보다 차라리 과거에 만들어 진 드라마를 방영하는게 시청률이 더 나올 거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큼 최근 방영하거나 방영했던 드라마들의 완성도가 이제는 높아질 대로 높아진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비록 시청률에서 미흡하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드라마들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 드라마들은 한결같이 '특정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해 가는 장르물로 시청자들은 매회 엎치락뒤치락하는 범인 찾기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주인공이 범인?- <왓쳐> 
드라마의 시작은 어린 영군이었다. 그의 눈 앞에서 어머니가 칼에 찔려 죽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머니를 찌른 칼을 든 아버지가 있었다. 아니 영군은 그렇게 믿었다. 영군을 담당했던 의욕이 앞섰던 검사 한태주(김현주 분)가 영군의 증언을 독려했고, 아버지의 후배 형사인 도치광(한석규 분)은 아버지에게 가장 불리했던 증거인 피묻은 잠바를 찾아냈다. 그리고 영군의 증언과 도치광이 찾아낸 증거로 아버지 김재명(안길강 분)은 감옥에서 15년을 살았다. 

그리고 15년 후, 아버지를 감옥에 보낸 도치광과 이제 경찰이 된 영군(서강준 분)이 비리 수사팀으로 만났다. 시작은 경찰의 경찰, 경찰 내부 비리 수사였지만, 그 과정에서 15년전 영군 모의 살인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자신이 본 것이 과연 진실일까가 내내 미덥지 않았던 영군, 자신이 맡았던 그 사건이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의혹으로 인해 손가락과 남편을 잃은 한태주, 그들은 각자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수사팀의 일원이 되거 과거를 헤집는다. 

그렇게 <왓쳐>는 수면 위로 올라온 과거 사건의 범인들을 하나씩 찾아나선다. '비리'와 가장 어울릴 듯한 장해룡(허성태 분)에 대한 의혹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뜻밖에도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그 '의심'의 시선을 팀장 도치광에게로 향한다. 영군이 잊었던 그날 세탁기에 아버지의 잠바를 넣은 사람, 그리고 가장 '정의'로운 듯하지만, 비리의 핵심인 재벌 회장의 '개'라던 사람, 심지어 장해룡은 대놓고 말한다. 자신에게 향했던 그 의혹의 화살, 그 방향을 바꾸어 놓고 보면 도치광이 범인인게 자명하다고. 

경찰 내부의 비리를 밝히겠다는 수사가, 사실은 자신의 과거를 덮으려는 또 다른 범행일 수 있다는 의심은 <왓쳐>에서 매혹적으로 풀어내어 진다. 그도 그럴 것이 회를 거듭할 수록, 드라마 속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기에.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그 누구하나 '단선적인 캐릭터'가 없다. 모두가 의뭉하게 보여지는 것과 다른 속내를 숨기고 있다.

10회, 비로소 백송이 사망 위장 사건을 통해 도치광의 속내가 드러나고 혐의에서 한 발 바껴선다. 하지만 도치광이 비껴서자마다 나머지 인물들이 또 다른 의뭉스런 속내를 드러내며 용의자의 선상에 줄을 선다. 이젠 영군과 함께 사건을 파헤치자 했던 한태주조차 믿을 수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닌 <왓쳐>, 결국 시청자들은 애달복달하며 다음 회를 기다린다. 


 

 

원작과 다르네? - <지정 생존자> 
이미 <넷플릭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본 <지정생존자>가 리메이크된다 할 때 그 자체로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 대통령 유고 시의 사건을 다룬 이 드라마가 과연 다른 조건의 제도를 가진 한국적 상황에 어울릴 것인가에서 부터, 시즌 1 중반부에 이르러 이미 드라마적 동인이 한결 떨어졌던 드라마를 리메이크했을 때 과연 재미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이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기우임을 <지정 생존자>는 스스로 증명해 내고 있다. 미국과 다른 정치적 상황을 남과 북의 대립이라는 긴장감있는 지정학적 조건으로 치환시키고, 거기에 미국 내 소수 인종의 이야기를 우리 나라에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재외 동포의 문제로 풀어내며 '한국적'인 상황에 걸맞는 서사로 안착시키고 있다. 

특히 키퍼 서덜랜드라는 배우에 의지했던 대통령 캐릭터는 지진희를 통해 때로는 답답한 듯하지만 북한 잠수함 위기에서 데이터를 차분하게 분석해 상황을 돌파하듯 학자 출신의 원칙적이면서도 강직한 모습을 부각하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거기에 이제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미드에서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얻었던 '범인'과 배후와 달리 한국판 <지정 생존자>는 원작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과연 누가 범인일까를 두고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는 중이다.  국회 의사당 폭파 사건에서 살아남은 오영석(이준혁 분)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백령해전'에서 살아남았지만 국가와 국민들에게 응분의 '존중'을 받지 못해 뒤틀려버진 '테러 집단'으로 설정하여 개연성을 살림은 물론, 생각보다 시시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미드와 달리, 그들 뒤에 합참의장의 권한 조차 좌지우지할 청와대의 그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대통령의 최측근 중 과연 누가 범인일까를 두고 드라마적 긴장도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위기의 순간, 박무진 대통령 권한 대행 곁에서 헌신적으로 그를 지탱해줬던 한주승(허준호 분)과 차영진(손석구 분), 과연 그들이 테러의 배후일까? 그 의혹을 풀어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지정생존자이다. 

 

 

누구도 범인일 수 있는? -미스터 기간제 
상위 1%만 가는 명문 사학 천명 고등학교, 그곳에서 여고생 정수아가 살해당하고 같은 반 남학생 김한수가 용의자로 몰렸다.  수임받은 사건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송하 로펌의 에이스 기무혁은 로펌 대표로 부터 적당히 형량을 조절하라는 청탁을 받고 사건에 임한다. 하지만 로펌 대표의 말과 달리 욕심이 앞섰던 기무혁은 법정에서 김한수의 무죄를 주장, 이를 위해 정수아가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스폰'을 접대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려다 김한수의 반발, 이어진 자실 시도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에 스스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기간제 교사 기강제로 천명 고등학교에 잠입한 기무혁, 명문 사학이라는 번드르르한 외양과 달리, 학교 안에서는 상위 1% 학생들의 커넥션과 갑질이 횡행하고,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 사회 배려자(사배자)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 들에 대한 학대에 가까운 차별이 게임처럼 벌어지는 걸 목격하게 된다. 

학교 옥상에서 벌어진 시끌벅적한 사배자 안병호를 상대로 한 일방적인 폭력 게임을 시작으로 <미스터 기간제>는 여전히 학교 안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학폭을 둘러싼 학생들의 갑을 관계와 학교 교육은 서비스라는 마인드로 편법과 부당 학사 관리를 자행하며 돈있고 권력있는 학부모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재단의 비리가 쌍두마차처럼 벌어지는 '정글'같은 천명고를 기간제 교사로온 기강제를 통해 조명한다. 

그리고 진실을 하나씩 파헤쳐가는 그를 통해 상위 1%라는 학교 안 권위에 기대어 정수아를 괴롭혔던 학생들의 민낯을 한 명씩 파헤쳐가는 동시에, 천명고 행정실장 이태석(전석호 분)을 중심으로 정수아의 스폰, 그 실체에 다가간다. 실체에 다가갈 수록 모두가 '공범자'이자, '가해자'임이 드러나는 명문 사학, 그 전모가 드러나는 '파멸'의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스카이 캐슬> 등을 통해 비리로 범벅된 명문 사학의 사례는 이제 '클리셰'와도 같지만, <미스터 기간제>는 기간제 교사가 된 변호사가 풀어내는 사건의 시점과 거기에 더해 매력적인 빌런으로 등장하는 학생과 학교 측 관계자의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장르물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by meditator 2019. 8. 5. 16:35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다니엘,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그에게 찾아온 심장병은 그가 더 이상 자신의 일을 계속할 수 없도록 한다. 그래서 실업 급여을 받기 위해 찾은 관공서, 하지만 직원들은 매번 녹음기처럼 '메뉴얼' 대로 '키오스크 kiosk 무인 정보 단말기'를 이용하여 신청하라는 말만을 되풀이 한다. 결국 그 기기 앞에서 심장병 발작을 일으켜 쓰려져 버리고 마는 다니엘.  

이 작품으로 2016년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은 영국 사회의 부조리한 복지 제도의 문제점을 다니엘이라는 늙은 목수를 통해 폭로하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복지 제도에 앞서 영화를 보면 평생을 훌륭한 목수로, 친절한 이웃으로 살아왔던 한 노인이 '디지털 시스템'화 되어가는 '문명' 앞에서 절망하고, 폭도로 몰리며, 결국 그 앞에서 생을 마감하고야 마는 모습에서 변화하는 시대에 무너지는 한 세대의 좌절을 절감하게 된다. 

 

 

영화는 극적이었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너무도 많은 다니엘들을 조우하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신상'으로 사드린 '스마트폰' 앞에서 우물쭈물과  '깜놀'을 오가시는 우리의 부모님들은 어쩌면 '완화된' 다니엘의 분신들이 아닐까. 8월 1일 방영된 <다큐 시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는 종이 통장, 매표소, 영수증 등이 멸종되어 가는 시대, 디지털 소외 계층이 되어가는 노인 세대의 문제를 다룬다. 

노인이 된 나와 마주하게 만드는 디지털 
77세의 이분남 할머니, 얼마전 황혼 육아를 졸업하고 동작국 어르신 노래 교실 회장님으로 자유를 만끽하시는 노익장, 그런데 이분남 할머니를 좌절케 하는 것이 있다. 그 세대 어르신들이 그러시듯 종이 통장을 몇 개씩 애지중지 '키워'가시는 중, 단 돈 만원이라도 직접 가서 입금을 하셔야 하는 습관대로 금융기관을 찾은 이분남 어르신, 아차, 오늘따라 그만 '도장'을 잊고 오셨단다. 77년의 내공어린 말빨로 은행원을 달래보았지만 정해진 입금 메뉴얼 앞에 요지부동, 결국 터덜터덜 은행 문을 나서던 이분남 할머니는 처음으로 자동 입출금기를 사용하시게 된다.

친절한 기계음에 따라 몇 번을 클릭, 무사히 입금을 마치신 할머니는 의기양양, 그 기세를 몰아 이번에는 자동 주문기로 셀프 오더를 하도록 되어 있는 햄버거에 도전하신다. 그러나, 순조로웠던 은행과 달리 비슷비슷한 메뉴, 조금만 잘못 눌러도 다시 처음으로 가는 주문 시스템 앞에 갈 곳 잃은 손, 방황하던 눈동자는 결국 '안먹고 말지', 사람이 주문을 받는 칡냉면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신다. 그럴 때마다 '노인'이 된 나와 마주하게 된다는 이분남 할머니, 

홀로 사시는 할머니의 낙은 홈쇼핑이다. 그런데 늘 상담원과의 통화를 통해 물건을 사신다는 할머니, 아무리 2만원이나 싸다지만 앱은 할머니에겐 먼 그대이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손주들의 동영상을 보여주는 고마운 기기지만, 눈밝고 물어볼 수 있다시는 할머니에게 '길찾기' 앱은 딴 세상 이야기다. 

 

 

할머니가 서른 두 살이 되던 해 전화기가 등장했다. 전화 교환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1980년에 차량룡 휴대 전화기가 등장하기 시작해서 가속도로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 초고속 5G 시대에 이르렀다. 4차 산업 혁명으로 디지털은 초고속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그 과정에서 기술을 습득한 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이제는 2,30대도 따라가기 힘들다는 디지털 혁명, 영화관, 마트의 무인 시스템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중이며 그 규모가 2500억에 달하고 이는 무려 10년 전에 4배에 이른다.  편리함은 극대화되어가지만 그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벽'이 되고 있다. 연령별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전체 국민을 100으로 놓고 봤을 때 20대가 126.5, 50대가 92.8이다가 60대가 되면 69.6%, 70대로 되면 더 떨어져서 42.4%가 된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하지만 노인들에겐? 
박일준 디지털리터러시교육 협의회 대표가 말하는  디지털 시대,  지식은 공짜고 물어보면 다 얻을 수 있는 있게 되었지만, 그래서 그런 지식을 얻을 수 없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사회적 권력의 격차가 되어,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게 되며, 이는 디지털 문명이 발전할 수록 더 심해질 것이라고 한다. 

지자체 중 인구 대비 노인 인구가 가장 많다는 부산, 증산 경로당, 19명의 노인 중 스마트폰을 쓰고 계신 분은 4명에 불과했다. 왜 편리한 스마트폰을 안쓰시냐는 질문에 노인들은 너무 복잡하다고 하신다. 글씨가 너무 작단다. 크게 하는 기능이 있다니 그런 건 모르겠다고 하신다. 모바일 티켓이 일상화되어 가는 시절, 자식들이 모바일 티켓을 보내드릴 수가 없는 형편, 자식들이 예매한 기차표 좌석을 일일이 손으로 적어서 기차를 타신단다. 은행도 점점 가기 힘들고 이제 다시 돈도 장판에 깔아야 하시던 경로당 노인들은 앞으로는 점점 기계로만 하는 세상이 될 거라는 제작진의 말에 '그때되면 우린 다 죽겠지' 하시는데 웃음의 끝이 씁쓸하다. 

그러다 보니 노인들은 당신들이 편한 곳을 찾게 된다. 극장에 가도 인기작은 예매로 미리 매진이 되거나 시간대를 맞추기 힘든 상황에 노인들은 60대만 해도 젊은 축에 속한다는 실버 영화관을 찾게 된다. 2000원의 저렴한 티켓값, 어르신 우대에 인기 간식 메뉴가 빈대떡에 건빵인 이곳에 하루 평균 1000 여 명의 노인들이 몰린다. 

하지만 노인들만 우대하는 곳이 어디나 있는 건 아니다. 기차역, 역에 가서 직접 표를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좌석 우대권은 온라인 예매자에게 우선적으로 제공되니 주말의 경우 4,5시간을 기다려도 가고자 하는 차편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러다 보니 정작 젊은이들은 예매를 해서 앉아서 가고 어르신들은 입석으로 서서가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진다. 

 

 

이런 상황에 대해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이 되는 시기가 되면 디지털 시스템에 접근이 한결 나아질 것이라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 이전의 노인 세대는 '이등국민'처럼 죽을 때가지 '소외'된 상황에 내처지게 된다. 

국가적으로 비용 절감 차원에서 디지털 시스템화는 시대적 조류가 되어아고 있는데, 그런 국가적 조류에서 소외되는 장애인, 노인을 위한 '노인 할당 서비스', 혹은 오프 라인 상에서 아날로그적인 인간적인 도우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소외'는 현실에서 세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700만 노인 시대, 좁아지는 시야, 줄어든 근력, 떨어지는 인지 능력 등은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지만, 디지털 사회는 그런 '노화'를 '승인'하지 않으며, 젊은 세대는 가르쳐줘도 따라하지 못하는 노인들에 대해 '무지'라 폄하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노인들은 스스로를 '짐'이라 여기게 되는데. 

다큐는 그런 상황에 대해 '노력'의 여지를 살핀다. 일주일에 3일 6시간씩 낙동강 녹조 상태 조사원으로 일하고 계시는 65세의 서두남씨. 더 나이 들기 전에 배우자는 언니의 권유에 10년전 배우기 시작했다는 컴퓨터, 그 이래로 서두남씨는 각종 자격증을 땄고 드론 자격증까지 따서 드론과 함께 나이를 저멀리 띄워 훨훨 날고 계시단다. 처음엔 '입력', '검색'이란 단어조차 생소했다는 서두남씨, 이젠 노인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치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서두남 씨와 같은 경지에 이르는 건 쉽지 않다. 실제 디지털은 약자들에게 보다 쉽게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평등의 세상을 연다. 그 시스템에 익숙해 지기만 하면 서두남씨처럼 나이와 무관하게 주변부에서 지식과 정보의 중심에 얼만든지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모든 기기들이 스마트하게 연결되어 있는 스마트홈 실험에 참가한 평균 74세의 노인들에게 터치 하나로 조작되는 스마트홈은 불러도 대답없는 장벽이다. 나이가 들고 살아온 방식이 고착된 노인 세대에게 새로운 것은 그 자체로 두려움이다. 처음 마주했을 때 성공한 체험이 그 두려움의 벽을 낮출 수 있는 디딤돌이 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노인들에게 디딤돌이 될만한 여유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다큐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고 했지만, 정작 현실은 막막하다. 

by meditator 2019. 8. 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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