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나타났다. 바로 전체 관람가 8번째 감독인 오멸이 그 주인공이다. 단편 영화 활성화의 취지를 내세운 영화와 예능의 콜라보레이션 <전체 관람가>,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 왔던 이명세, 정윤철, 박광현 등 그 이름 석자만으로도 흥행한 작품이 떠오르는 상업 영화계의 내노라하는 9명의 감독들, 단지 지금 현재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인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이름'이 있는 이들 상업 영화 감독이 단돈 3000만원으로 단편 영화를 만든다는 그 '예능'적 도전이 매주 화제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제 9회, 애초에 이들 9명의 감독들 외에 의문의 인물로 비워두었던 한 자리에, 그간 진짜 저예산으로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왔던 '오멸' 감독이 등장했다. 




진짜 독립 영화 감독 오멸의 등장 
오멸 감독하면, 불현듯 등장한 그의 작품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을 통해 선댄스 영화제 그랑프리 대상 및 각종 영화제의 수상을 하며 그의 이름 석 자를 세상에 드러낸 분이다. 아니, 그런 숱한 영화제의 수상이라는 수식어보다, 사실 더 센세이셔널한 건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 제주도에서 활동한 로컬 영화인인 그가, 자신의 땅 제주의 아픈 역사 4.3을 전면에 드러낸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알쓸신잡>의 유시민 조차 한 마을에서 벌어진 '사상'을 배경으로 한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4.3을 정의내렸다. 그러나 오멸 감독의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속 사람들은 '제주도 해안 5km밖 사람들을 폭도로 여긴다'는 소문을 듣고 피난길에 오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른 채 산속으로 몸을 숨긴다. 집으로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마음으로 일상의 실랑이를 벌이던 그들은 우리가 아는 그 4.3의 희생자가 되었다. 박광현 감독이 표현한 바, '폭력'을 다루는 그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통해 역사의 비극성을 극적으로 드러낸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는 우리 역사의 뒷 페이지에 숨죽여 웅크리고 있던 '빨갱이들의 일'을 비극적 민중사의 한 장면으로 복원했다. 

하지만 오멸 감독의 '행군'은 과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슬 - 끝나지 않는 세월2>에 앞서 그의 영화 데뷔작이었던 <어이그, 저 귓것>(Nstalgia)통해 '귀신이 데려가야 할 바보같은 녀석들(귓것) 네 사람을 통해 과거 제도도의 민속 노동요와 포크 음악의 협연을 시도하며 새로운 도전을 선보였었다. 또한 개봉되지 못한 2015년작 <눈꺼풀>은 '세월호'에 대해 발 빠르게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하며 그 누구보다 앞서 시대를 영화에 담고자 하였다. 또한 다루고자 하는 주제만이 아니라, 비전문 영화인과 배우와 스텝이 구분되지 않는 '공동체'로서의 작업 과정을 통해 '독립'의 의미를 과정으로서 담보해낸 영화인으로 <전체관람가>의 취지에 가장 부합한 인물로써 이제 8번째 감독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거창하게 독립 영화의 상징적 인물이란 수식어만으로 그가 <전체 관람가>의 한 자리를 맡은 건 아니었다. '신라리' 프로덕션의 문소리가 삼고초려를 했다지만, 그보다는 지난 촛불 정국에서 모두가 지겹다 했던 그 순간에서도 꿋꿋하게 세월호의 진실을 파헤치며 촛불을 켜냈던 JTBC에 대한 동지 의식이 오멸 감독을 그 자리에 불러 왔다. 

또한 그런 사명감만도 아니다. 정작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4.3을 새롭게 조명하도록 만든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는 그에게도 '블랙리스트'의 족쇄를 채웠다. 제 아무리 독립 영화라 해도 투자를 받지 못하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그의 지난 시간은 버거웠고, 그 고난의 끝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전체 관람가>의 출연 요청을 받고 대번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또한 말이 좋아 공동체지, 오멸 감독 자신이야 하고 싶은 일을 하지만, 그 과정이 함께 하는 주변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만드는게 아닌가 하는 '독립 영화'의 척박한 현실, 과연 현재와 같은 한국적 상황에서 계속 독립 영화를 만드는 것이 맞는가라는 회의, 거기에 그 누구보다 먼저 말문을 열었던 <눈꺼풀>이 상영조차 되지 못하는 처지로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미뤄두어야 했던 상황이 기꺼이 <전체 관람가>의 기회를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몇 년전부터 찍고팠던 <눈꺼풀>에 이어 하고자 했던 세월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독립 영화 <파미르>가 말하는 세월호 
3000만원의 예산, 그 퍽퍽한 한계 속에서 3회차의 촬영조차 허덕이던 다른 감독들과 달리, 오멸 감독은 <전체 관람가> 최초로 해외 로케에, 36일간의 대장정의 작품을 빚어낸다. 아니, 그 짧은 시간보다 더한 지난 3년 묵은 그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했던 이야기가 더 '진짜'다. 

세월호를 물 속에서 꺼내기 전부터 '지겹다'했던 사람들은 이제 어느새 '세월호'를 잊어간다. 가족들도 더는 '죄송스러워서' 잊으시라며 물러섰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 모두의 가슴 속에는 잊는다해도 남겨진 부채, 바로 그 '시간'이 흐른 뒤의 '세월호 '이야기를 오멸 감독은 다룬다. 

아웅다웅하며 함께 수학 여행을 떠난 두 친구, 하지만 두 사람은 함께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온 한 친구의 삶도 온전히 서지 못한다. 친구가 타던 자전거의 안장이 시간 속에 너덜거려진 즈음, 비로소 남겨진 친구는 친구의 자전거를 찾아온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친구가 가려고 했던 '파미르 고원'을 그의 자전거를 타고 찾아간다. 

해발 2000 M가 넘는 고원, 9명의 스탭들, 누가 배우고, 스탭인 지 구분이 안가는 상황을 거쳐 만들어낸 영화는 친구의 자전거를 타고 고원을 헤매는 한 청년를 따른다. 굴러 떨어져 주저앉은 그에게 느닷없이 던져진 고원의 어린 아이가 던진 돌팔매, 자신보다 먼저 왔던 청년과의 이별에 상처로 몽니로 던져진 돌멩이들, 비로소 청년이 된 친구는 그 아이의 돌팔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포기하려는 순간에 비로소 찾은 친구가 가고자 했던 고원이 다가오고. 비로소 청년은 그곳에 친구를 두고, 다시 오마하고 웃으며 길을 떠난다. 

무엇을 해도 우리 시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부채 의식, 어떻게 해도 시대가 만들어낸 이별 앞에서 현명해 질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오멸 감독은 친구의 자전거를 타고 파미르 고원을 찾아 떠난 청년을 통해 보다듬어 준다. 우리들의 자화상이자, '씻김굿'이 된 영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안에 남겨진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목청높은 선언이 닳아버린 시간 속에, 세월호에 대한 담론에서 한 발 더 나선다. 

그렇게 오멸 감독의 영화는,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독립 영화'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감독 말대로, 저예산으로, 상업 영화를 못해서 하는 것이 아닌, 영화를 만드는 과정부터 다른, 자본의 투자를 못받은이 아닌,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독립 영화의 가치를 설득해 냈다. '진짜'다. 

by meditator 2017. 12. 11. 14:18

드라마 왕국 MBC를 만든 저력이 <MBC베스트 셀러 극장>이었으며, KBS 드라마의 안정적이고도 예술적인 연출력이 <드라마 스페셜>이 원천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으면서도, 상업적인 이득이 보장되지 않는 단막극의 입지는 사라져갔다. 그나마 생존해있던 KBS조차 시즌제로 돌려 다음을 기약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도 tvn이 앞섰다. CJE&M 오펜 드라마 스토리텔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단막극 공모전을 개최했고 그 중 뽑힌 20 작품 중 10 작품을 <드라마 스테이지>의 이름으로 2일부터 토요일 밤 12시에 방영하기 시작했다. 


tvn이 해냈다. 신인 작가의 등용문
올해 초 공모전에는 3000 여편의 작품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 중 20편, 그리고 다시 10편은 말 그대로 '바늘 구멍을 통과한 낙타'이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신선하고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 작품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신인'들이었듯이, 신인 작가들은 이제 노쇄해가는 드라마 시장의 동앗줄과도 같은 해법이다. 하지만, tvn스테이지의 첫 작품 박대리의 은밀한 사생활의 최지훈 작가 말처럼, '미니'에 바로 입봉할 수 있는 기회가 '신인'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신인 작가들에게 '디딤돌'이 바로 단막극, 그러기에 단막극은 그저 한 프로그램의 편성을 넘어 '유일하고도 경이로운'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는 것이다. 



2017 KBS의 드라마 스페셜이 생존의 고심 끝에 '멜로'라는 가장 접근성이 쉬운 주제를 가지고 찾아왔다면, 새로인 선보이는 tvn이 내세운 주제는 '당대성'이다. '우리들'이라는 주제를 내세워 2017년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그 첫 작품은 앞서 언급된 <박대리의 은밀한 사생활>이다. 신예 최지훈 작가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웹드라마를 연출해온 윤성호 감독의 만남이다. 

'우리들'이라는 주제답게, <박대리의 은밀한 사생활>은 imf 직후인 2004년 어렵사리 들어간 대기업에서 이제 막 대리를 단 박종혁(이주승 분)의 꿈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집안 경제를 책임지는 청년으로 대기업을 다녀야 하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은밀한 사생활'을 가진 그가 밤에 하는 일은 인터넷 로맨스 소설의 작가이다. 젊은 남자 로맨스 소설 작가라 자신을 내세울 수 없는, 그리고 기약할 수 없는 일의 성격 상 안정적인 낮의 직장을 놓을 수 없는 그는, 알고보니 자신의 팬인 여성 이유린(조수향 분)을 만나며 꿈과 현실 사이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2017년의 사랑과 결혼
대기업 대리와 로맨스 작가라는 가장 극단적 설정을 통해 이 시대 젊은이들의 꿈과 현실에 대해 짚어본 드라마가 다음에 선택한 건 고전 <b사감과 러브레터>의 2017년판, <b 주임과 러브레터>이다. 신수림 작가와 <기억>과 <비밀남녀>의 윤현기 피디가 뭉쳤다. 

딸만 셋인 집안의 둘째 딸로, 이제는 어엿한 구두 회사 주임에 비록 융자을 꼈지만 자신의 집을 가진 b주임 방가영(송지효 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모태 솔로 노처녀이다. 그러나 여전히 신데렐라의 왕자님처럼 자신에게 구두를 로맨틱하게 신겨주며 사랑 고백을 받는 로망을 접지 못하는 그녀에게 어느날 뜻밖의 '노란 러브레터'가 도착했다. 

드라마는 무뚝뚝한 노처녀에게 도착한 러브레터를 통해, 아니 담뿍 그녀를 사랑하는 말을 담은 그 '러브레터'의 내용으로 인해 자신을 잘 아는 누군가가 보냈을 것이란 그래서, 그 누군가를 찾는 해프닝을 주 내용으로 삼는다. 러브레터의 이니셜, s에 기반하여 주변의 s를 가진 사람들을 추적하기 시작한 그녀의 레이더에 처음 걸린 사람은 훤칠하고 잘생긴 연하의 직원 손재현(강윤제 분), 힘든 일을 솔선수범하고 살갑게 방주임에게 다가오는 그가 당연히 그 '러브레터의 s'라 방주임은 넘겨 짚는다. 당연히 이어지는 건, 그만 술 자리에서 마음이 앞서는 바람에 실수하고만 방주임의 해프닝. 

낯부끄러지밤 연하 직원이 아니라면? 그녀의 앞에 또 한 사람의 s가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상사 심규선 과정은 무려 이름에 이니셜 s가 두개 씩! 심지어 술자리에서도, 평소에도, 그리고 연하 직원과의 해프닝으로 힘들어 하는 그녀를 다정하게 위로한다. 더구나, 그 '러브레터'의 로맨틱한 글처럼 그의 책상 위에는 시집이 즐비하다. 

대부분 노처녀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라면, 연하남 대신, 더벅머리에 눈치없는 노총각 상사가 그녀에게 일편단심 러브레터를 보낼만도 하건만, <b사감과 러브레터>의 번짓수는 달랐다. 이번에도 연하남이 아니라면 심과장이라며 설레발을 치며 두 사람만의 술자리에서 섣부르게 거절 멘트까지 날린 방가영. 하지만, 막상 거절을 하고 보니 보면 볼수록 심과장의 면면이 그녀의 마음 속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심과장과 함께 본 멋진 원피스가 그녀에게 배달되고, 심과장의 프로포즈가 사내에 소문이 쫘악 난 그날, 방가영은 이번에도 마음이 앞서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 나서고 만다. 



결국 또 한번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 방가영의 러브레터 사건은 알고보니 그 러브레터가 다이어트 회사의 스팸이었다는데서 정점을 찍는다. 심지어 배달된 원피스는 동창 선배의 보험 촉탁용. 학생들이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목놓아 애절하게 러브레터를 읊어대던 b 사감 못지않은 두 번의 해프닝을 통해 드라마는 <b사감과 러브레터>처럼 시집 못간 노처녀의 비애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심규선 과장의 말처럼 알고보면 참 괜찮은 사람인 방가영이 왜 여전히 신데렐라의 구두에 연연하며 로맨틱한 사랑에 자신의 목을 매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래서, 자신의 찾아올 신데렐라의 구두에 연연하던 방가영은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이번엔, 당당하게 심규선을 찾아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른으로서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자신의 감정을 당당하게 밝히기 위해서.  그 과정을 통해 방가영은 결혼못한 노처녀가 아니라, 결혼을 아직 안했을 뿐인, 당당하고 주체적인 감정을 가진 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물론 로맨틱 드라마로 자존을 찾으니 사랑도 찾아온다는 결말의 서비스까지 포함하여.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로맨스 드라마'의 외연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 '로맨스의 해프닝'을 통해 사랑 이전에 자존을 말하고 있는 드라마이다. 때가 되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하는 걸 강요하는 사회, 그래서 나이가 차서도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면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하고, 그걸 당하는 본인 역시 한없이 어깨가 오그라지는 사회에서, 자신의 외사랑에 당당한 심규선,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하는 방가영을 통해, 사랑 이전에 자신의 자존 찾기가 우선 순서여야 하는 2017년의 인간상을 드라마는 조명한다. 사랑과 결혼이 인간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과 결혼이 아니라도, 한 인간 스스로 온전히 서고 당당하게 대접받을 수 있는 시대에 대한 바람을 드라마는 담뿍 담아낸다. 
by meditator 2017. 12. 10. 17:38

공중파라고 하기가 무색하게 공중파 수목 드라마들이 10%도 못되는 시청률로 고만고만하게 선두 다툼을 하고 있는 가운데, 비록 수치상으로는 이들 드라마보다 못하다지만 케이블이라는 한정된 플랫폼을 통해 6%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달성하고 있는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기세는 놀랍다. (<이판사판> 8.2%, <흑기사> 9.3%, <로봇이 아니야> 3.1%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슬기로운 감빵 생활> 5.847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 무엇보다 4%대로 시작한 시청률이 회마다 상승세에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이로써 '추억'을 팔아 가능했다는 <응답하라>의 신드롬을 그와 가장 반대의 상황, 감빵을 통해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다시 한번 '신원호'란 이름 석자의 가치를 증명하게 되었다. 또한 <슬기로운 감빵 생활>은 '이우정'이라는 보증 수표 대신 신인 작가 정보훈과 함께였기에 그 가치는 더욱 증폭된다.



닫혀진 공감 감빵이 열린 서사의 공간으로

한 골목, 혹은 한 하숙집, 혹은 한 동네의 친구들이란 지역적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응답하라> 시리즈는 물론 주인공이 설정되어 있지만, 그 '지리적 특성' 답게 주인공을 둘러싼 관계 전체가 시리즈의 주인공이 되어 각자의 삶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서사를 완성하여 갔다. 과연 그런 신원호의 특기가 감빵이라는 공간에서도 가능할 것인가? 어쩐지 어수선했던 첫 회,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하지만, 오히려 닫혀진 공간이라는 감빵은 신원호를 통해 오히려 <응답하라>보다 훨씬 열려진 서사의 가능성으로 풀려나간다.


형을 확정받지 않은 김제혁(박해수 분)가 구치소에서 형을 확정 받아 교도소로 이감되는 과정 자체가, 그 공간의 이동과 함께, 등장인물의 변화로 연결되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낸다. 또한 교도소라는 공간이 한 동네처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면서도, 법률적 제재로 인해 잠시(?) 머무르는 공간이기에 등장인물들의 변화를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만든다. 덕분에 이제 6회에 이른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는 구치소의 법자, 건달, 똘마니에서부터, 서부 교도소의 장발짱, 목공 반장 등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존재감을 뽐내며 명멸해 갔다.


하지만, 이런 여러 인물들의 등장만으로 이 드라마가 빛을 발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반전'들이 바로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매력이다. 구치소, 교도소라는 공간이 무엇인가. '나쁜 놈'이라는 말로 단정지어도 무리가 없는, '죄'를 지어, 그 죄의 대가로 공간적 제재를 당하는 곳이다. 바로 그런 사회적 단정이 이미 이루어진 곳에서, 드라마는 그 '단정'의 반전을 빚어내며 시청자들을 흡인한다.



반전의 인간 군상들

1,2회 구치소에서 가장 '반전'이었던 건, 바로 <응답하라> 시리즈의 산 증인과도 같은 딸들의 아버지 성동일의 반전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아버지'연하던 교도관 조주임(성동일 분)은 알고보니 죄수들에게 협박과 돈을 갈취하는 나쁜 사람이었다. 그런가 하면, 교도소로 와서 다수의 드라마에서 '악인'으로 등장했던 정웅인이 분한 팽부장은 그의 눈빛만으로 이미 나쁜 사람같았지만 알고보니 누구보다 재소자들의 입장을 배려하는 음악을 사랑하는 로맨티스트였다. 이런 식이다. 제 아무리 구치소고, 교도소고 인생의 막장인 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기에, 그곳에는 교도관과 재소자라는 이분법을 넘어선 저마다의 '인간의 향기'를 한껏 뿜어내도록 드라마는 그려진다. 매 회 자신의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던 범인을 트로피로 가격하여 교도소에 온 국민 투수 김제혁을 중심으로 그와 엇물리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뜻밖의 이야기들이 '만인보'처럼 감빵 생활을 채워간다.


5회에서 중심에 선 인물은 장발장(강승윤 분)이었다. 평소 장기수(최무성 분)를 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던 갓 스물을 넘긴 청년, 하지만 그는 경상도 사투리의 서글서글한 태도와 달리, 외부 작업을 나간 곳에서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던 기사의 지갑을 슬쩍하는가 하면, 불시에 벌어진 방 점호 과정에서 들킨 개조한 시계를 아버지라 따르던 장기수의 것이라 밀어붙이며 무사히 만기 출소를 해 원성을 샀다. 겨우 스물 넘은 청년이 보인 철면피한 모습은 출소 임박의 절박감을 둘러대도 '인간적 회의'를 빚는다.


그런 인간적 회의 공간을 메꾸어 가는 건 김제혁이다. 구치소에서 부터 오랜 절친 준호(정경호 분)가 뜰어 말려도 늘 '인간적 호의'로 법자 등을 울려버리곤 하는 김제혁, 하지만 그런 영웅적 면모는 족구 시합에서 공을 손으로 잡는다던가, 미국의 수도를 뉴욕 양키스라고 답하는 어이없는 모습의 반전으로 인해, '인간적 훈기'로 내려앉는다. 김제혁만이 아니다. 사람을 죽인 죄로 무기 징역을 받은 장기수가 장발장에게 보인 선의 등 역시 사람사는 곳 교도소의 온기를 덥힌다.



그런가 하면 구치소에서 부터 줄곧 김제혁과 함께 하면서 '해롱'이란 별명을 얻었던 마약사범 한양의 반전은 이미 <비밀의 숲>에서 한 차례 반전을 선보인 그의 연기에 이어 또 한번 시청자들을 놀래키며 그의 이름 석자를 검색어에 올린다. 거의 두 시간에 가까운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시청 시간을 시간 가는 줄 모르로 채널을 돌리지 않도록 만든 건, 선과 악으로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인간사의 군상들이지만, 그 진지한 틈을 채워가는 건 해롱이나, 문래동 카이스트의 맛깔스러운 해프닝들이다. 카이스트와 늘상 아웅다웅하며  극중 '웃음'을 담당했던 한 축이었던 '해롱'이 알고보니 '뽕'을 하면 멀쩡해진다는 내용은 극적이다.


하지만, 이런 재소자의 인간적인 면은 사회적으로 이미 고정된 교도소에 대한 인식과 상충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알고보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장기수 등의 캐릭터에 비해, 보신과 안위에 눈을 밝히는 교도소장을 비롯한 일부 교도관의 캐릭터는 교도소 혹은 범죄자 '미화'의 우려를 낳는다. 하지만, 비록 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갔지만, 교도소 내에서는 권력의 향배가 달라지며 갑을 관계가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의 냉정한 잣대나, 때론 편협한 잣대는 '미화'라기보다는 '현실적'이라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오히려 그런 '현실적'인 관료로서의 교도관보다는, 6회에서 아쉬운 점은 김제혁의 재기 해프닝이다. 5회와 6회에 걸쳐 다루어 지고 있는 건 왼쪽 팔과 손에 마비가 온 김제혁의 에피소드이다. 팔에 무리가 온 김제혁, 이미 한 차례 왼쪽 어깨 수술을 받은 바 있어, 담당 의사조차도 회의적인 상황, 하지만 이미 한 차례 불굴의 의지로 왼쪽 어깨 부상을 극복한 바있는 김제혁이었기에 모두들 그를 응원한다. 하지만 이런 응원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 김제혁은 은퇴를 선언한다.



간과된 도덕적 딜레마

이젠 야구가 지겹다고 하는 그에게 그럴 수록 전국민적 서명 운동을 벌이고 서로 동참하며 그의 재기를 응원하고, 심지어 교도소장은 그의 전용 연습장까지 만들어 주는데, 그 전용 연습장 개장 날 그에게 자신이 트로피로 가격한 범인의 죽음이 전해진다. 그리고 김제혁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지지리도 없는 놈인가를 사람들 앞에서 한껏 토로하고, 다시는 야구를 안한다며 그 자리를 떠난다. 이후 6회는 야구를 그만둔 김제혁에게 담배를 드여오기 위해 문래동 카이스트가 이것 저것 다른 운동 등을 시키는 해프닝을 그려낸다. 도대체 야구 말고는 쓸데가 없어보이는 김제혁, 결국 수면제까지 먹이며 꿈을 빙자해 다시 야구를 할 것을 종용하고, 김제혁은 어리숙하게 그걸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프닝은 끝이나는데.


정작 '인간적'인 반전을 그려내기에 골몰한 드라마는 김제혁의 상황을 두고, 야구를 하느냐 마느냐에 더 집중한다. 동생을 범하려던 나쁜 놈이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고야 만, 그 '도덕적 딜레마'는 가볍게 그의 재기 해프닝 속에 잠겨 버린다. 즉, <슬기로운 감빵 생활>은 '인간의 이면'을 다루고자 하지만, 그 '이면'의 지점이 '반전'과 '숨겨진 사연'을 넘어서지 못한다. 알고보니 좋은 놈은 있지만, 나쁜 놈이면 그냥 나쁜 놈이다. 묘하게 인간의 스펙트럼이 넓은 듯하면서도 상투적이며 이분법적이다. 만약 우리 사회에서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던 스포츠 선수가 사람을 '과실'로 죽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어떻게 '언플'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슬기로운 감빵 생활>도 그와 같다. 김제혁이 겪어야 할 도덕적 딜레마 대신, 그의 재기 여부가 수면 위로 올라와 시청자들은 그에 골몰하며 짚어봐야 할 지점을 건너뛴다.


by meditator 2017. 12. 8. 14:32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세계적 추리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 80여 편의 작품 중 자신이 뽑은 10개의 작품에 들어가는 수작이다. 장편으로는 14번 째, 프와로 탐정 시리즈로 8번 째인 이 작품은 1932년에 실제로 있었던 찰스 린드버그 아들의 유괴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으로, 크리스티 스스로 '새로운 플롯의 아이디어'를 선택의 이유로 삼았을 만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함께 충격적인 반전의 결말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이런 신선한 플롯 덕분에, 크리스티 자신은 물론 작품이 출간된 이후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아왔고, 일찌기 1974년 시드니 루멧 감독이 영화화한 이래, 1989년부터 2013년까지 방영한 영국 드라마 <애거서 크리스티의 포와로> 시리즈 중 한 편으로 2010년 방영되었으며, 2015년 후지 tv  개국 기념으로 2부작 만들어진 바 있다. 안타깝게도 <오리엔트 특급 살인> 작품을 함께 하진 못했지만 1978년 <나일 살인 사건> 등 5편의 장편 영화, 그리고 다수의 tv 시리즈에서 포와로로 활약하여 '포와로' 전문 배우로 기억되는 피터 유스티노프도 있다. 그리고 이제 2017년 케네스 브래너 감독, 주연의 신작이 찾아왔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201년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소설을 읽은 독자를 비롯하여, 전작의 영화와 tv 시리즈를 본 사람, 그리고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아니지만 포와로를 연기했던 배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2017년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보며 '비교' 대상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포와로
개인적으로  tv 시리즈를 통해 피터 유스티노프의 익살스런 포와로에 익숙해 있었기에, <덩케르크>에서 신념의 해군 제독으로 각인되어있던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하는 에르큘 포와로는 좀 낯설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스타일스 저택의 살인 사건>을 통해 처음 등장하는 포와로는 벨기에의 전직 경찰로 은퇴 뒤 영국으로 건너와 탐정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주로 그를 본 사람들이 '프랑스인'인가 헷갈릴 때마다 벨기에 인이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 노신사는, 그의 친구 헤이스팅스 대위에 따르면 5피트 4인치가 되지 않는 왜소한 체구에 콧수염을 뻣뻣하게 잘 관리하며 달걀 모양의 머리를 한 외양을 지녔다고 묘사된다. 

그래서 영화마다 포와로 역의 배우들은 하나같이 그 뻣뻣한 수염을 내세우며 등장하는데, 아마 풍성함과 예술성에 있어서는 2017년판 포와로가 압도적인 듯하다. (물론 풍성하고 예술적인 것이 가장 포와로답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포와로를 뻣뻣한 수염만으로 '특정'하는 건 일면적이다. 오히려 '약간의(?) 결벽증과 노골적인 자기애로 포장된 그의 예리한 '회색 뇌세포'야 말로 셜록 홈즈못지 않은 매니아 층을 형성한 매력의 정점이다. 2017년판 포와로 역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달걀을 등장하여 예의 포와로의 결벽증을 알렸고, 예루살렘 통곡의 벽을 배경으로 통쾌한 사건 해결로 이 '회색 뇌세포'의 등장을 열었다. 

익살스러웠던 피터 유스티노프와, 날카로운 눈매의 예리하면서도 통찰력깊은 데이빗 서쳇에 비하면 케네스 브래너의 포와로는 영화 중 등장하는 '에르큘'과 '헤라클레스'의 언어적 착각처럼, 꽃중년의 풍모는 한결 우월했지만, 아가사 크리스티스러운 '포와로'였는가에 대해서는 '넥타이'에 대한 집착 이상의 개성을 아쉽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어쩌면 포와로 탐정 자체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무엇보다 과연 2017년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아가사 크리스티다웠는가라는 그 기본으로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야 한다. 

2017년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무엇보다 이스라엘 통곡의 벽에서 부터 시작하여 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유럽을 횡단하는 오리엔트 특급, 그 열차와 행로의 볼거리로 시선을 빼앗는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 영화에 대해 관심을 끄는 건, 주인공 케네스 브래너를 비롯하여 조니 뎁, 주디 덴치, 페넬로페 크루즈, 윌렘 데포, 미셜 파이퍼 등 쟁쟁한 출연진이다. 이런 쟁쟁한 출연진은 1974년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비교된다. 1974년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역시 잉그리드 버그만을 비롯하여 숀 코너리, 바네사 레드그리에브 등 그 출연진의 면면만으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그렇게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포진시킨 영화는, 원작처럼 기차가 출발하자 마자 얼마 되지도 않아, 주요 인물이라 여겨지던 한 배우, 아니 등장인물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거의 그와 동시에 눈사태로 인해 기차 역시 아슬아슬한 철교 위에 멈춰 서게 되고.

셜록 홈즈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추리물 매니아라고 하면 셜록 홈즈보다 더 한 수 위로 치는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탐정과 함께 등장 인물의 대화나 행적 등을 살펴보며 '뇌세포'를 풀가동하여 '추리'를 해나가는 묘미에 있다. 대부분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에는 특정한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을 배경으로 유력한 용의자들이 여러 명 등장한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드러내 보이는 바, 그리고 드러내 보이는 면 이면의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비밀들이 하나씩 벗겨지며, 심리전의 양상을 띠며 '추리'의 과정은 깊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전혀 뜻밖의 인물이 범인이듯,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면, 도덕에 대한 생각할 꺼리를 던지는 것이 아가사 크리티 작품의 매력이다.

그렇듯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에서도 포와로를 제외한 열차에 탑승한 11명의 승객이 용의자로 등장한다. 평범한 승객인 줄 알았지만, 모두들 한 겹을 벗겨내고 나면 수상한 면이 하나 둘씩 드러나는 상황, 거기에 피해자의 상흔 조차 의심스러운데. 특히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은 피해자의 서로 다른 찔린 상처와 용의자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가 막판 극적 반전을 통해, 그리고 결과에 따른 도덕적, 혹은 법적 판단의 잣대를 놓고 끝까지 독자, 혹은 관객들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작품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자평하듯 이런 신선한 플롯의 전개에 대해, 데이빗 서쳇 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열차를 타기 전 포와로가 해결한 사건 과정에서, 사건은 해결하지만 그 사건의 범인이 자살을 함으로써, '어떤 경우에도 진실은 왜곡될 수 없다'는 포와로의 신념에 물음표를 던지고, 그 물음표를 12명의 배심원에 의한 직접 심판이라는 본 사건의 결론과 맞물려 수미상관으로 작품의 깊이를 더한다. 그렇게 영드 특유의 깊이를 더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까지는 아니지만, 케네스 브래너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은 분명 조니뎁의 등장도 흥미 진진하고, 미셸 파이퍼의 카리스마는 여전했으며, 페넬로페 크루즈의 반전이나 월렘 데포의 건재는 반가웠지만, 11명의 승객과 1인의 승무원이 서로 엇물리며 벌이는 심리전의 긴장감이 반전 추리의 결말로 순조롭게 이어졌는가 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남는다. 하지만, 셜록 홈즈가 액션 스릴러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버전의 셜록 홈즈 시리즈 정도의 무리수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컴버배치 베네딕프 버전만큼 신선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는 아는 만큼 달라진다. 아마도,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말 그대로 신선한 결말 자체만으로도 쟁쟁한 배우진들,화려한 풍광과 함께 볼만한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에 반해 원작을 본 사람이라면, 혹은 원작과 함께 다른 배우가 연기한 포와로를 맛본 사람이라면, 그 맛본 정도에 따라 아쉬움의 농도는 짙어질 지도 모르는 것이, 2017년판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층위가 다른 감상평이다. 하지만, 아쉬워도, 아마 나일 살인 사건이 또 다시 영화화된다면 보러 갈 것 같으니, 아쉽다 하면서도 <해리 포터> 시리즈의 관객이 되듯, 아마도 이는 아가사 작품이 가진 근원적 매력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리라. 

by meditator 2017. 12. 6. 20:10

jtbc의 <전체관람가> 일곱 번째 감독인 창감독의 필모는 소재나 주제 면에서 다양하다. 2008년 <고사; 피의 중간고사>를 시작으로 <표적(2014)>, <계춘할망(2015)>까지. 하지만 정작 <전체관람가>를 통해 창 감독은 말한다. '불감청이었으나 고소원'(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바라던 바)이었던 장르로 '판타지'를 내세운다. 특히 설화나 상상 혹 이야기를 현실로 옮기는 것에 관심이 많다 밝혔다. 하지만 '판타지'만으로도 발붙이기 힘든데, 설화라니, 당연히 창 감독의 '소원'은 유보될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다. 타임 슬립을 기반으로 한 한 엄마의 자식 구하기인 중국 합작 영화 <역시 영구(2017)>를 통해 풀어내려 한 바 있지만, 본격적인 그의 '로망' 그 시작은 jtbc <전체 관람가>의 단편 영화를 통해서가 된다. 그렇게, <전체 관람가>의 창 감독 편은 '자본'과 시대를 배경으로 선택되어지는 산업이 된 영화계에서 감독의 도전과 로망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번 풀어낸다. 




창감독의 로망, 판타지 구미호, 그러나 쉽지 않은 화두 
판타지에 대한 자신의 로망을 풀어내기 위해 창 감독이 선택한 이야기는 '구미호'이다. 그가 선택한 주제는 '혼밥'이었는데, 그것을 창감독은 직설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평범할 수 없는 그러나 평범하고 싶은 '인간'에 대한 로망'을 지닌 구미호 소년을 통해 풀어가고자 한다. 

구미호만큼이나 우리 대중 문화에서 익숙하면서도 대접받기 힘든 존재도 드물다. 한때 우리 문화계에서 인기를 끌었던 중국의 '강시' 등과 같은 설화적 존재이면서도, 영미 문화권의 '좀비'가 샤머니즘적 성격을 승화해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재해석되거나, 일본의 <나루토>처럼 트렌디한 소재가 되지 못한 채, 구미호는 늘 <전설의 고향> 납량 특집 편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했다. 

구미호를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94년 당시 조명받던 여배우 고소영을 청춘 스타 정우성과 함께 내세운 <구미호>가 등장했지만 역대 가장 '허접하다'는 평가를 받고 기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2006년작 <구미호 가족>은 이제는 스타가 된 하정우까지 등장시키고, 당시로는 도전인 뮤지컬의 형태로 구미호를 재해석해냈지만, 감독의 차기작을 기약할 수 없는 불운한 실험작으로 남게 되었다. tv라고 다를까, 김태희가 광고의 여신으로 거듭나던 2004년 구미호를 판타지 멜로로 탄생시킨 <구미호 외전>은 김태희를 비롯한 한예슬 등의 당대 청춘 스타들을 포진시켰지만, 역시나 구미호하면 흰머리에 소복, 여우눈에 피칠갑이라는 공식을 벗어난 이 도전적 시도는 안타깝게도 역시 당대의 조롱을 받으며 쓸쓸하게 퇴장했다. 

트렌드가 된 좀비와 구미호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어서였을까? 서인도 제도 부두교에서 등장한 특이한 설화적 소재였던 좀비는 현대 대중 문화에서 거대 자본 속에서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는' 파편화되고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자본주의 위기 속 개인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수용하며 현대적 문화 코드로 재탄생되었다. 반면, 그간 우리나라에서 등장했던 대부분의 '구미호'들은 현대적 재해석을 내세웠지만, 아름다운 여배우를 내세운 <전설의 고향> 구미호 편의 해석을 뛰어넘지 못했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입장에서도 전설의 고향같은 구미호를 연상하고 요구하고 그에 이질적이면 불만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 당연지사다. 



'혼밥'이 승화된 사회적 고독으로서의 구미호 
창 감독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앞서 구미호를 다룬 작품들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신이 자신이 선택한 주제 '혼밥'을 사회적 고립으로 확장하며, 거기에 평범한 사람들과 섞일 수 없는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설정하며, 자신만의 판타지 월드를 구축해 낸다. 또한 구미호라면 당연히 여성이라는 고정 관념을 넘어서, 어머니 구미호를 등장시키지만, 거기서 탄생한 존재, 아니 어머니 구미호가 천년의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탈취 변형한 자식 구미호로 송재림이란 남성 배우를 내세우면 전설을 뒤튼다. 

장황했던 메이킹에 비해, 정작 본편의 단편은 간결하다. 작품이 끝난 뒤, 대번에 2편이 궁금하다, 2편을 내놓으란 말이 나오듯, 창 감독의 <숲속의 아이>는 그 자신이 말하듯 자신이 구상한 장편의 프리퀼같은 모양새를 띤다.
곧 다가올 아이의 출생을 행복하게 기다리는 평범한 부부, 그러나 그 행복은 급작스럽게 찾아온 산통으로 병원에 가던 중 실종된 아내, 아니 실종된 아내의 뱃속의 아이로 인해 비극이 된다. 그 충격적인 씬이후에 비로소 등장하는 제목 <숲 속의 아이>. 이어지는 다음 이 작품의 주제가 되는 '혼밥'을 하는 청년, 분식집에서 주변 사람들을 열심히 살피며 그들처럼 '간'을 집어먹지만, 익힌 간의 맛이 낯선지 곧 뱉어내고 만다. 그리고 들이닥친 경찰들, 청년을 밤거리에서 살인을 한 혐의로 체포하고, 그런 청년을 도와주려는 인권 변호사가 나타나지만, 그 '도움'은 그 인권 변호사는 물론, 경찰서의 피비린내 나는 살상으로 마무리된다. 

출생과 이어지는 청년의 난동이라는 이 불친절한 연결은, 하지만 다음 장면 엄마 구미호와 아들 구미호의 대화, 그리고 두 모자가 떠나는 도시, 새로이 자리잡은 숲속을 통해 모든 걸 설명한다. 나는 왜 이러냐며 평범하고 싶다는 아들, 평범한 게 무어냐고 반문하는 엄마,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다며, 살다보면 너도 평범해질 거라고 말하며 자신만큼 다 큰 아들을 보다듬는 엄마. 아름다운 여배우를 내세워 전설을 복기하지 않아도, 선우 선이라는 배우의 선굵은 분위기로 엄마 구미호와 배우의 재발견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아들 구미호를 열연한 송재림을 통해 고립된 존재 구미호를 설득해 낸다. 영화 관람 후 정윤철 감독이 빗댄 <렛미인>이나, 혹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늑대 아이>처럼 이종의 존재를 통해 오히려 인간을 돌아보게 되는 쓸쓸하고도 짙은 고독의 여운을 남기는데 프리퀼 <숲속의 아이>는 충분하다. 
by meditator 2017. 12. 4. 16:52

홍콩 영화하면 느와르라는 말이 딱 떠오를 만큼 어둠의 세계를 그린 작품들이 대세를 이룬다. 그 '대세'로 인해 이제는 노년줄에 들어가는 한때 청춘들에게 '로망'의 대상이었던 홍콩 영화는 뜨고, 져버렸다. 그리고, 최근 '범죄물' 중심의 우리 영화를 두고, 홍콩 영화를 빗대 우려를 표명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지난 주 <전체 관람가>를 통해 선보인 이명세 감독의 <그대없이는 못살아>를 보면 상업 영화, 그 중에서도 스토리 중심의 이야기에 한국 영화계가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가가반증된다. 하지만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이 그 스스로 한번도 현역을 떠난 적이 없다 하지만10년만에야 tv 예능 프로그램이 마련한 단편 영화를 통해 신작을 선보일 수 있듯이, 최근 박스 오피스에서도 보여지듯, 작품성있는 영화라 평해져도, 화끈한 오락적 요소를 가미한 범죄 영화의 아성을 무너뜨리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 용감하게 플레이어로 등장한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기억의 밤>의 장항준 감독이다. 




이게 도대체 몇년 만인가? 감독 장항준!
이명세 감독이 10년만이라지만, 영화감독 장항준은 도대체 얼마만인가? 그의 필모를 검색하면 2008년작 <전투의 매너>와 <음란한 사회>가 등장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감독 장항준은 2002년 <라이터를 켜라>와 2003년 <불어라 봄바람>의, 그리고 <북경반점(1999)>, <박봉곤 가출 사건(1996)>의 각본 그 기발한 상상력의장항준이다. 그 이후로 아내 김은희 작가와 2011년작 <싸인>으로 화려하게 부활했으나, 불운의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2012년작 <드라마의 제왕>으로 그의 작품을 tv에서도 보기 힘들어졌다. 예능 프로그램과 특별 출연은 빈번했지만, 감독으로서 그를 만날 수 있었던 건 <무한도전>을 통해서였다. 그런 그가 '정말' 오랜만에 작품을 들고 감독으로서 돌아왔다.

하지만 <기억의 밤>이 반가운 것은 장항준의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범죄 영화가 주류를 이룬, 혹은 역사물이라 하면 역사적 사실을 복기해내는 정도에 머무르는 제작 환경에서 모처럼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창작물' 본연의 가치를 살린 작품의 등장이라는 의의가 <기억의 밤>을 돋보이게 만든다. 

영화는 흔히 우리 영화계에서 빈번하게 차용되는 원인과 결과가 '기승전결'의 형태로 연결된 서사의 방식을 뒤집는다. 서사의 시작은 21살의 삼수생 진석(강하늘 분)의 악몽으로부터 시작된다. 고문의 장면으로 연상되는 악몽을 꾸다 깨어나는 진석, 그런 그를 맞이한 건 이제 막 새집으로 이사를 하려고 하는 그의 가족, 아버지(문성근 분)와, 어머니(나영희 분), 그리고 형 유석(김무열 분))이다. 

그런데 새로 이사온 집이 낯설지 않다. 더군다나 먼저 집주인이 짐을 남기고 간 방이 자꾸 진석의 신경을 거스른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어느날 형이 납치되고, 19일 만에 돌아온 형은 어쩐지 진석이 알던 그 형이 아닌 거 같은데.
그의 전작을 통해, 그리고 외모의 분위기를 통해 선한 인상이 각인된 강하늘이라는 배우가 진석으로 등장하고, 그 주변의 인물과 상황이 '의심'을 더해가며 당연히 관객은 진석과 함께, 이 '호러'인지, '스릴러'인지 헷갈리는 영화 속으로 흡인되어진다. 






스릴러를 통해 현대사의 비극을 설득하다
하지만, 이 영리하고 교묘한 전략은, 이 이후 진행되는 반전을 통해, 애초에 장항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1997년 imf가 한국 사회에 끼친 상흔을 설명하는 가장 절묘한 장치로 작동한다. 결국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뜻밖의 위기, 그리고 그 위기 속에서 전혀 사회 안전망 없이 '가족'의 단위로 그 파고를 맞닦뜨리며 극단적으로 해체되어 가는 가족, 그 속에서 파멸을 맞게 되는 개인을 영화는 가슴아프게 설득해 낸다. 

초반부의 한 치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스릴러의 모양새가 후반부에 가서 장황한 부연설명으로 이 뒤엉킨 사태를 설명해 내는 아쉬움은 남지만, 애초에 이 영화의 방점이 그 시대의 아픔을 표현해 내고자 하는 것에서 부터 출발한 것이기에 불가피하지만 충분히 여운이 남는 사족으로 인정될만 하다. 

무엇보다 <기억의 밤>이 돋보이는 건, 마치 나비 한 마리의 몸짓이 불러오는 토네이도처럼, 한 국가, 한 사회의 위기가, '금모으기' 따위의 운동으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미담'으로 치부될 수 없는, 그 사회 소속 개인들의 몇 십년이 지난 삶에까지 비극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묵시록적 주제 의식이다. 그러나 이 묵직한 주제 의식을 그간 한국 영화가 해오듯 직설적이고 선언적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 마치 이미 맞춰진 퍼즐의 판을 새로이 뒤집어 하나하나 맞추어 가듯, 장항준이라는 각인이 분명하게 아로새겨진 '기발한 창의력'에 기반을 둔 트릭과 설정으로 풀어가려 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렇게 선후가 바뀌어진 이야기에, 퍼즐 맞추기식 스릴러가 빠질 수 있는 삼천포를 한국 사회 자체의 질을 변화시킨 분명한 시대적 사건에 발을 딛은 굳건한 중심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처럼 제대로 영화다운 영화 한 편을 봤다는 쾌감과 함께, 현대사에 대한 회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양 손에 쥐고 뿌듯하게 돌아오게 만든다. 역시 장항준이다. 
by meditator 2017. 12. 3. 02:54

100세 시대다. 예전의 오래 살았다고 했던 환갑 잔치가 이젠 무색해지는 시절이다. 그러나 오래삶이 꼭 영광만은 아닌 시절이 되었다. 철지난 시절을 '부흥'하려 했던 독재자의 딸과 그 세력들이 '적폐'가 되어 법의 심판을 받듯, 우리 시대 나이듦은 '철 지난 유행가'처럼 현실과 조우하지 못한 채 '트렌드의 낙오자'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오래 살지만, 그래서 늙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세상이다. 한편에서 꼰대가 되어버린 노인에 대한 '혐오'와, 또 다른 편에선 안정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not old'한 왕성한 활동력으로 존재감을 증명하는 '나오미족', '레옹족'의 대두라는 엇물린 이중주를 배태한다. 그런 이질적인 두 현상을 배경으로, 꼰대 노인들의 활약상을 그린 <반드시 잡는다>가 설 자리가 마련된다. 


인기 웹툰이었던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를 원작으로 한 <반드시 잡는다>는  tv 드라마 <시그널>, <터널>이나,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이제는 범죄 수사물에서 익숙한 소재인 장기 미제 사건을 다룬다.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형사의 30년 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 200 건이 넘는 현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시대의 한계 앞에 주저 앉은 형사 박두만의 회한, 그 시대적 한계와 '꼭 잡고 싶다'던 열망을 드라마 <시그널>과 <터널>은 시공간을 뛰어넘은 환타지 스릴러로 화답했다. 그 시절 열정적인 형사는 그대로 시간을 거슬러 자신이 현재로 뛰어들거나, 혹은 현재의 동료와 소통하며 장기 미제 사건의 그 '포한'을 풀어낸다. 

그런데 <반드시 잡는다>의 시작은 보다 현실적이다. 30년 전 아리동 일대에서 연달아 벌어진 노인들의 죽음과 여성의 실종 사건, 당시 형사였던 박평달(성동일 분)과 최씨는 그 사건들이 연쇄 살인임을 자각했지만, 88올림픽 등의 국가적 행사와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채 각자의 회한으로 남겨둔 채 세월을 보내고 이제는 월세방을 전전하며 세 독촉을 받거나, 병원 신세를 지는 처지의 노인네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제 30년이 흘러, 하지만 시간은 여전히 그들에게서 그 사건의 기억을 봉인해제 해주지 않는다. 월세방 처지에서도, 기억을 놓쳐가면서도 그 '과거'에 사로잡힌 과거 미제 사건의 형사는, 이제 '노인'이 되어 다시 과거의 그날에 마주한다. 



꼰대의 이면
이렇게 영화는 마치 후일담처럼 그 시절 장기 미제 사건의 주역들을 불러 온다. 하지만, 그저 그 주역들을 다시금 사건의 현장에 서게 만들지 않는다. 외려 그 시절 주역들을 둘러리로 만드는 대신, 우리 시대의 상징적인 꼰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이 이야기를 '꼰대 액션 스릴러'로써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변두리 동네 아리동, 그곳에 터줏대감인 심덕수씨(백윤식 분). 홀홀단신 월남하여 열쇠 수리공으로 아리동 근처에 집을 열 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는 이 노인네의 하루 일과는 열쇠 수리와 집세 독촉으로 채워진다. 이른바 '수전노'라 손가락질을 받던 노인, 근데 그 노인이 월세 독촉을 하고 간 다음 날, 그 '최씨'가 스스로 목을 맨 채 죽자, 동네 사람들은 심씨 노인이 죽였다며 원망을 한다. 

졸지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자가 된 노인은, 그 와중에도 자신을 이해해 주는 윗방 세입자 아가씨의 동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안위가 걱정되어 그 집을 찾아가다 만난 의문의 청년의 뒤를 쫓다 그를 도와준 최씨의 과거 동료 박평달씨를 만나게 되고, 최근 아리도에서 일어난 사건이 30년전 미제 사건과 동일하다 주장하는 그와 함께 2017 아리동 연쇄 살인 사건 해결의 주역으로 거듭난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가 '노인네'라 하는 그 세대의 이면이다. 정신나간 노인네 박평달은 그 정신을 놓는 와중에서도 트라우마가 된 30년 전의 미제 사건에 대한 책임감을 놓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심덕수 씨 역시 돈만 아는 꼰대인 줄 알았더니, 알고보면 월세 독촉은 하지만 내쫓지는 않는 너그러운 집주인이라거나, 세입자의 처지를 '측은지심'으로 돌보는 훈훈한 이면을 가졌다는 것이다. 영화의 말미, 왜 그토록 자신의 행방을 애타게 찾았냐는 지은의 질문에 대한 심덕수 씨의 답은, 우리 시대의 기성 세대가 '후안무치'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영화는 말하고자 한다. 하지만 책임감과 연민, 그리고 뜻밖의 이타심, 이제는 '꼰대'라 치부되며 온갖 시대착오적 결점으로 도배된 세대의 이면, 심지어 여전한 로맨틱함까지 설파하고자 하는 영화는, 그 반면에 그들이 합동작전으로 추격해 낸 30년묵은 연쇄 살임범의 끊이지 않는 욕망과, 그 계보에도 주목한다. 인간의 양면과도 같은 세대의 양면이다. 

노인 액션 스릴러답게 영화 속 추격전은 노인의 템포에 걸맞게 다리 다친 도망자를 배치한다. 한번은 애교지만, 두번에 이르면 실소가 나오지만, 사실 어쩌면 이게 현실적이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미 <끝까지 간다>에서도 그랬지만, 영화가 끝날 듯 하면서, 정말 끝을 보아야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구성의 방식은, <반드시 잡는다>에서도 이어지지만, 안타깝게도 <끝까지 간다>의 조진웅과 같은 존재감의 부재가 영화의 호흡을 늘어지게 만든다. 또한 차라리 노인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음악도 좀 어울리게 '트롯'은 아니더라도 아리동과 그 세대에 걸맞는 분위기를 내세웠다면 어땠을까 싶게, 앞서나가는 장중한 배경 음악이 오히려 실버 액션 스릴러의 분위기를 흐트러 뜨린다. 대신 그 행간을 채우는 건 어색한 사투리에도 불구하고 묵직하게 극을 끌고가는 심덕수 역의 백윤식과, 반전 매력 박평달의 성동일이다. 
by meditator 2017. 12. 1. 16:50

고흐와 박수근, 19세기와 20세기, 두 사람이 머물던 시대와, 그들의 화풍은 달라도 두 사람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인물들이다. 두 사람의 작품은 여전히 가장 높은 가격으로 팔렸다 전해지며, 두 사람과 관련된 전시회는 문전 성시를 이룬다. 두 사람은 생존하던 시절, 동시대인들에게 조명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궁핍의 극한을 경험했다는 점에선 또한 공통점을 이룬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생전의 불우한 삶은 그들의 사후 작품의 예술적 경지를 고고하게 만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여전히 두 사람을 사랑하고 추앙하지만, 그들은 몰랐고, 모른다. 


제 아무리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궁핍으로 죽음에 이른 두 예술가의 생애와 화려한 부활은 매번 그래서 두 예술가에 대한 상념을 더하게 한다. 그리고 그 상념은 이제는 먼 과거의 고인이 된 인물에 대한 경의의 현재성을 부추기는데, 박수근에게는, 이제는 박수근만큼이나 우리의 기억에 남을 사람이 된 고 박완서 작가가 길어올린 <나목>이 있다. 그저 푸근한 그림을 그렸던 잘 팔리는 화가였던 박수근은 박완서를 통해 6.25라는 상흔을 온몸으로 겪어낸 예술가이자, 가장의 모습으로 재탄생되었다. 



고흐라고 다를까,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른 그의 기행에서 부터, 권총 자살로 마무리된 굴곡지고 극적인 인생사는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그의 삶이 소재가 됨은 물론, 그와 그의 동생이 나눈 편지글은 회자되었고, 그의 작품과 인생에 대한 동서양의 숱한 해설서들이 등장했다. 거기에 또 무엇을 보탤 게 있을까 싶었는데, 그 장고한 고흐에 대한 경의의 행렬에 화룡점정이 등장했다. 무려 10년의 기간, 전 세계에서 선발된 107명의 화가들이 스크린에 재현한 제목 그대로 <러빙 빈센트>가 그 주인공이다. 

107명의 예술가가 재현해낸 예술가 고흐
고흐가 잠시 머물렀던 아를, 그곳의 젊은 청년 아르망, 그는 우체국장이었던 아버지의 번거로운 부탁을 받고 고흐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 가족을 찾아 떠난다. 청년 아르망에게 고흐나 아버지는 그저 인생에서 저만치 밀려난 주정뱅이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부탁아니 부탁으로 길을 떠난 아르망, 그 원치않는 행보에서 그는 의도치 않게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밝히는 추적자가 되고 만다. 

영화는 고흐에게 아니 고희의 가족에게 전할 편지를 가지고 한참을 주저하는 아를의 아르망을 그린다. 주인공은 고흐인데, 하지만 아직 떠나지도 않은 아르망이지만 전혀 갈증이 나지 않는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아를의 별의 빛나는 밤>을 비롯하여, 고흐가 그린 명화들이 화면에서 살아움직이기 시작하니까. 



동시대의 예술가들과 전혀 다른 붓터치로 오늘날 현대 미술의 단초가 되었지만, 동시대인들에겐 인정받을 수 없었던 고흐의 그 생동감넘치는 화면은 그대로 유화 에니메이션이 되어 살아난다. 정확하게 '살아난다'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듯, 고흐가 그려낸 그 터치 그대로 당시의 아를이 재현된 화면은, 고흐의 화풍이 왜 '모던'한가를 증명해 낸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그 색색이 결을 이루어 채워진 스크린은 그대로 고흐의 전시회가 되고, 그가 그려놓은 풍경은 고스란히 당시의 아를과 오베르를 생동감있게 재현한다. 

유화 에니메니션과 미스터리 스릴러의 조합으로 살려낸 인간 고흐 
하지만 <러빙 빈센트>의 가치를 그저 화면에 채워넣은 고흐의 작품이라고만 하면 일면적이다. 오히려 그렇게 펄펄 살아 움직이는 고흐의 그림을 바탕으로, 영화가 그려내고자 하는 건, 광인이거나, 기인이거나, 천재이거나 등등 '위인'으로 기억된 한 예술가의 진솔한 생애다. 

그 생애의 결을 살려내기 위해 독특하게도 영화는 '미스테리 스릴러'의 형태를 취한다. 유화 에니메이션과 고흐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스릴러의 이 어색한 조합은 오히려 '전시회'가 될 뻔한 영화를 역동적으로 살려낸다. 우체국장인 아버지가 마땅치 않지만 사실은 그 자신이 아직 무엇을 하고 살아가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한 청년 아르망이, 타의에 의해, 그리고 결국은 자의로 죽은 고흐를 살려내는 그 행보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서사를 이루며 영화의 맛을 살려낸다.

 

동생 테오를 찾아가 편지를 전하려던 애초의 의도가 테오의 죽음으로 인해 좌절되고, 그의 마지막 정착지였던 오베르로 행보를 옮긴 아르망. 그곳에서 그는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봉착한다. 심신이 미약한 소년을 괴롭히는 동네 부호 청년들과 거침없이 맞짱을 뜨는 청년 아르망은 석연치 않은 고흐의 죽음에 파고들며 오베르에서 고흐 주변인물인, 폴 가세 박사와 그의 딸, 여관집 딸 아들린, 뱃사공들을 추적해 들어간다. 

그러나 고흐의 죽음, 그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미스터리 형식을 취했던 영화의 종착점에서 만나게 되는 건, 목사였던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데 실패한 선교사도, 자신의 귀를 자른 광인도 아닌, 오히려 뒤늦게 그림을 시작했지만 8년의 시간 동안 약 8000 점이라는 숫자로 남겨진 한 예술가의 열정이다. 또한 세상과 불의한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어떻게든 세상과 화합하고 소통하고자 애썼던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이 팔린 가난해서 어쩌면 스스로 죽음을 자처할 수 밖에 없었던 불우한 예술가의 생애이다. 죽음을 통해 길어낸 고흐의 삶, 그 어떤 연대기나 위인전보다, 그의 작품이 배경이 되어 그려진 이 작품은 인간 고흐, 예술가 고흐를 생생하게 살려낸다. 
by meditator 2017. 11. 30. 04:27

<전체 관람가>에서 이명세 감독의 별칭은 '명스나이퍼'다. 앞서 작품을 선보였던 감독들에게 동료 감독들이나 mc들이 '주례사비평' 급은 아니더라도 서로 계속 얼굴을 맞대고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야 하기에 웬만하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에 비해 이명세 감독은 날카로운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남기거나, 평가를 유보하는 등 냉정한 잣대를 들이댔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을 방영할 시간이 다가오면 주변에선 그래서 말수가 점점 적어진다고 우스개를 했지만, <전체 관람가>에 참여한 대부분의 젊은(?) 감독들에 비해 연배나 활동 시기도 한참 '선배'인 이명세 감독의 고민은 시간이 흐를 수록 깊어보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10년만에 어렵게 만든 영화, 그리고 단편 영화로 치면 학생 때 작품 이후로 어언 40년만에 만든 단편 영화, 하지만 젊은 갇목들은 입을 모은다. 연세가 무색하게 가장 열정적으로, 가장 감각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그저 나이가 많아서 노장이 아니라, 앞서 살아간 사람의 용기를 그렇게 이명세 감독은 설득하고, 그 노장 감독의 활약에 젊은 감독들은 눈시울을 적신다. 

명스나이퍼였던 이명세 감독이 앞서 작품을 한 감독들에게 한 질문들은 일관됐다. 한 달 여의 촉박한 시간, 제작비가 넉넉치 않아 짧은 촬영 회차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젊은 감독들에게 그럼에도, 작품이 완성도가 있는가? 단편이라는 형식 안에 어울리는 작품인가? 그렇게 이명세 감독의 날카로운 질문은 앞선 감독들의 선감상 후리플로 남겨진 과제처럼 이명세 감독의 작품이 그 해답을 줄 차례가 되었다. 



영화에 대한 설명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셨다
                                              - 홍승혁 촬영감독

왜 노장은 돌아왔을까? 
우리 영화계에서 이명세 감독을 스타일리스트라 부른다. '서사'보다, 화면의 색감, 구도 등등에 방점이 찍힌 그의 전작들이 남긴 수식어다. 하지만, 영화 <스파이>에서 중도 하차한 후 더 이상 스타일리스트 이명세의 작품을 더는 볼 수 없었다. 2000년대 이후 상업 영화가 주류가 된 영화계는 대중들을 쉽게 유인할 수 있는 '드라마' 위주의 영화를 선호했고, 그 가운데에서 이미지를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이명세 감독의 자리를 없었다. 

그런 이명세 감독이 10여년의 기다림 끝에, <전체 관람가>라는 콜라보 예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연배에, 그 경력에 위신을 운운할만도 하건만 기꺼이 한참 후배들과 자리를 나란히 하여 '동료'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명세 감독은 그저 기회가 없어서 이 자리에 왔을까? 이명세 감독은 말한다. 비록 10년만의 기회이지만, 자신은 영화에 대한 여전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드라마'로 대체되고 있는 영화에 대해, 이미지, 움직임이 결합된 이미지로서의 영화를 설파하기 위해 기꺼이 후배들과 한 자리에 있게 되었다고. 

그리고 덧붙인다. 자본에 의해 침식된 영화계에서 단편이야말로 마지막 남은 영화의 자리, 혹은 영화의 본령이 될 수 있기에, 기꺼이 참여한다고. 이런 이명세 감독의 출사표는 그의 작품을 감상한 후, '영화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케 만들었다는, 한편의 시와 같다는 평가로 이어지며 바로 그런 이명세 감독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관철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런 이명세 감독이 작품과 메이킹 과정을 통해 설파한 여전한 그의 주장은, 여느 서바이벌 예능처럼 낙오자들을 모아놓은 리얼 버라이어티로서의 구차한 형색을 지녔던 <전체 관람가>의 프레임을 변화시킨다. 이미 앞서 박광현 감독의 <거미맨>이나,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를 통해 '예능'이나, 투자받지 못한 감독들의 생존기를 넘어서, '자본'을 넘어선 모험과 도발을 시도했던바 있는 <전체 관람가>는 이제 이명세 감독에 이르러, 그 본래의 '단편 영화 활성화'의 의도를 제대로 관철해 낸다. 투자 받지 못해 장편으로 할 수 없었던, 혹은 흥행이 안될 거 같아 할 수 없었던 긴 이야기를 줄인 짧은 이야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한 편의 시'로서 단편 영화의 본질을 <그대없인 못살아>가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 것이다. 

이미지로 설득한 '데이트 폭력' 아니 '사랑의 본질'
스완의 심장은 질투로 미친 듯이 쿵쾅거렸고/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사랑스럽던/ 그녀의 눈을 파내고 싶었다.  -마르셸 푸르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셸 프로스트의 저 짧은 문구로 시작된 영화는 바로 이명세 감독이 선택한 주제 '데이트 폭력'을 대번에 설명해 낸다. 그리고 영화는 보는 이들을 마치 6,70년대의 흑백 영화와 같은 화면 속으로 끌어들인다. 커다란 캐리어를 힘겹게 끌고가는 여자, 한 눈에 봐도 누군가에게 맞은 듯한 그녀의 멍든 얼굴. 쫓기듯 구멍난 스타킹, 그리고 여자의 힘으로 끌고가기엔 버거운 캐리어, 그 상황에서 굳이 구구절절 덧붙이지 않아도 시청자들은 어떤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힘겹게 끌고가던 캐리어를 방치하려다 친절한 행인들에 의해 돌려받은 여자는 웃는건지, 우는건지 모를 표정으로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오르다 놓치고, 그 순간 어떤 친절한 남자가 몸을 날려 그 캐리어를 구하며 득의양양하게 그녀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도 잠깐, 열려진 틈으로 캐리어의 내용물을 보게 된 남자는 기겁을 하고 도망을 치고, 그 남자를 여자는 사생결단으로 쫓아간다. 

이 영화의 화룡점정은 바로 이 쫓고 쫓기고, 결국은 친절이 파멸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다. 영화배우 대신 현대 무용가 김설진을 '남자'로 캐스팅한 <그대없인 못살아>는 이미 강렬한 이미지의 배우 유인영과 함께 그와 그녀의 추격전을 이명세 감독의 전편 영화에서 트레이드마크처럼 차용된 그림자 액션을 스스로 오마주하는가 하면, 폐 회전 목마를 이명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의 감독들이 수동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조명만으로 현실과 꿈을 오가는 몽환적 상황을 연출해 낸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한낱 꿈 속의 꿈인가/ 꿈 속의 꿈처럼 보이는 것인가 
                                                       - 영화 '개그맨' 중에서 이명세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그림자 액션이나, 일찌기 영화의 시원이 된 에드워즈 마이브리지의 '달리는 말'의 창조적 오마주인 회전 목마에서 빛으로 조명된 사랑과 폭력의 설정이 그저, '미장센'이라는 말을 넘어, 이 영화가 내세운 주제 '데이트 폭력'을 넘어, 영화 마지막 자막 R.M 릴케의 시 '사랑은 너에게 어떻게 왔던가'처럼 남자와 여자의 사랑, 그 본질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즉 이명세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가 곧 영화가 되는 순간이다. 

메이킹의 과정에서부터 눈물을 훔치던 감독들은 결국 영화 감상 후 기립 박수를 기꺼이 보낸다. 혹자에게는 1도 이해가 되지 않는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움직이는 그림'으로서의, 이해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으로서의 영화의 본령에 대한 질문과, 주어진 주제에 대한 철학적 화답을 한 이명세 감독의 영화는 그 자체로서 '영화'의 길에 대한 '멘토'로 자리매김한다. 

평소 장편을 찍을 때 배우가 연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촬영하기로 소무난 이명세 감독, 하지만 적은 예산 짧은 시간에 군말을 덧붙이는 대신, 짧은 시간에 찍기 위해서 연습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는 작업으로서의 영화론을 피력한다. 나이가 들어 노장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시대와 젊은이들을 앞선 열정과 혜안의 연륜으로 설득한 '선배'의 자리를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 내며, 이명세 감독은 레전드가 된다. 

by meditator 2017. 11. 27. 14:24

그간 신원호 피디 앞에 붙었던 수식어였던 '응답하라'라는 수식어는 이제 그 주체가 분명한 새로운 수식어로 개명하는 게 맞을 듯하다. 그건 '응답하라'에 이은, '감빵' 생활이 아니라, '응답하라'라는 시간과 공간이란 영역을 통해서만 빛날 줄 알았던, 신원호표 휴머니즘이다.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공중파의 여러 드라마로 그 영향력을 확장해 나간 '추억'을 밑거름으로 삼은 '응답하라'브렌드, 하지만 이번에는 또 어떤 시대로 갈까하고 궁금해 했던 호청자들의 기대가 무색하게 신원호 피디가 들고 나온 공간은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감빵', 교도소다. 



추억 대신 극한의 감옥? 
여동생에게 성폭행을 시도한 범죄자를 트로피로 가격하여, 정당방위를 넘어선 과잉 방어로 인해 실형을 선고받은 야구 선수 김제혁. 그는한국시리즈 2년 연속 MVP, 골든글러브 3연패, 세이브왕, 방어율왕을 차지한 넥센히어로즈 특급 마무리투수. 대한민국 세이브 기록을 죄다 보유한 괴물 클로저이며 미국행을 앞둔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는 존재, 하지만 법정 구속이 된 그는 하루 아침에 '감빵'행을 하게 되는 처지에 놓인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한 구치소, 하지만 그 짧은 기간을 보낸, 1,2회를 통해 그 공간에서 김제혁은 그의 감빵 동료 법자의 말처럼 볼 거 못볼거를 다 보게 된다. 

입소 과정, 항문 검사라는 뜻밖의 수치스러운 과정에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는 야구 선수의 비밀스러운 부위에 관심을 가지고 모여든 교도관들을 여유롭게 내쳐주며 그의 호감을 얻은 조주임(성동일 분), 하지만 같은 방 갈매기와의 육박전을 눈감아주는 조건으로 제혁에게 돈 3000만원을 요구한다. 

이번에도 역시 성동일과 함께! 라면서 그간 '응답하라'의 아버지로 그 역할을 이어왔던 성동일을 <슬기로운 감빵 생활>은 극 초반 그 캐릭터와 흡사한 너그럽고 넉넉한 조주임의 캐릭터로 등장시키며 시청자들의 긴장을 풀어낸다. 하지만, 그 긴장은 곧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혁에게 징벌방을 가는 대신 돈 3000을 요구하는 그의 돌변한 태도로 인해 배신감으로 급전환된다. 바로 이 지점이, <슬기로운 감빵 생활(이하 감빵 생활)>이 그간 시리즈로 이어왔던 응답하라의 그 '추억'처럼 호락호락한 시리즈가 아니라는 확실한 각인을 주는 장면이다. 더 이상 '추억'을 반찬 삼아 옹기종기 '남편 찾기'의 로망을 이루지는 않겠다는 선언문이다. 



그렇게 '응답하라'의 상징적 인물 성동일의 캐릭터로 반전과 환기를 주며 여기는 더 이상 추억의 그곳이 아니라며 마침표를 찍은 드라마, 하지만 '추억'은 없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그 '인간의 냄새'가 났다. 

극한의 장소에서 펼친 진검승부
이쯤에서 되돌아 보자. 과연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이유가 과연 '추억'과 추억에 기반한 음악 등의 문화적 장치들 때문만이었을까? 오히려, 신원호 피디는 <슬기로운 감빵 생활>을 통해 그간 자신이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대중과 '손쉽게' 교감했던 그 장치들을 제거한 채 그간 정말 자신이 해왔던, 그리고 여전히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감빵'이라는 극한의 무대를 통해 '진검승부'를 펼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 '진검승부'는 1회 도대체 왜 낯선 박해수를 주인공 김제혁으로 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국민 투수라지만 감빵 동료들조차 '어리버리'하고 늦다며 평가를 내린 그 인물로부터 비롯된다. 1회의 초반 눈길를 사로잡은 건 상습 마약 복용으로 정신을 못차리는 재벌 2세로 등장한 <비밀의 숲>에서 반전의 주인공이었던 윤과장 역할의 이규형이었다. 그의 뒤를 이은 건, 허허실실 조주임이었고, 그리고 막판에 김제혁을 안타깝게 찾아다닌 팬인줄 알았는데 오랜 친구 준호(정경호 분)였다. 

이 늦된 캐릭터, 하지만 그 인물 설명에서도 드러나듯 교통 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었는데, 좌절 대신 할 게 이것밖에 없다며 묵묵히 치료받고 재기를 해낸 역전의 인물처럼, 1회를 넘어 2회에 이르러 김제혁은 그 '인간미'을 증명해 나간다. 감빵 안에서 부당하게 힘을 행사하는 갈매기를 제압하고, 조주임의 3천만원 대신 밥자 어머니의 수술을 전화 한 통화로 부탁하는 등 그의 친구 교도관 준호의 말처럼 '오지랖'을 부리기 시작한다. 

신원호 피디의 말대로 '사소한 인간미'일 수도 있고, 교도관 준호의 말대로 '쓸데없는 오지랖'일 수도 있는 김제혁의 그 '인간미', 그런데 익숙하다. 수학 여행비가 없어 쩔쩔매는 아랫집 덕선네 처지를 모른 척 하다 슬쩍 남겨놓은 윗집 아줌마 미란의 여비처럼,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다수의 시청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던 그 '인간적인 정서'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21세기의 혹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었던 지난 20세기의 '인간미'가, 극한의 감빵 속 김제혁을 통해 슬그머니 등장하며 <감빵 생활>은 마치 눈을 맞은 상록수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 콩 한쪽도 나누어 먹던 그 이웃, 혹은 친구들의 훈훈한 덕담이 있었기에 <응답하라> 시리즈가 빛났듯이, 가장 '인간적'일 수 없는 극한의 교도소라는 공간에서, 피디의 말대로, 검사나 형사 등 어떤 '직위'를 가지지 못한 죄수, 그럼에도 여전히 '성선설'의 주체인 김제혁을 통해 의지적 '휴머니즘'을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풀어가고자 하는 <감빵 생활>은 신원호 피디의 세계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빛낸다. 

물론 준호와 제혁의 청소년 시절의 전사로 부터 시작된 준호와 제혁과 그리고 지호(정수정 분)의 '인연'은 '응답하라'의 외전과 같은 기시감을 준다. 하지만, 그 '기시감'이 <감빵 생활>의 정서를 지배하기에 구치소, 그리고 그에 이은 진짜 교도소 생활의 현실은 극한적이다. 이번엔 어느 시대일까? 하는 당연한 기대를 뒤엎고, 가장 자신이 해오던 시리즈와 반대의 상황에 '출사표'를 던진 것만으로 이미 이 작품의, 그리고 신원포 피디의 의의는 대단하다. 그리고 그럼에도 오히려 그래서 그 속에서 빛나는 신원호가 그리고자 하는 '인간적 세계'의 지향점을 고수하는 점은 그래서 또 기대가 된다. 새로워서 빛나고, 여전해서 더욱 가치있는 <감빵 생활>의 선전를 응원한다. 
by meditator 2017. 11. 24.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