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더 머니>는 2월 13일 현재 6만이 겨우 넘은 상태다. 다양성 영화의 흥행 성적으로만 보아도 그리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2월 12일 영진위 기준, 62,294명) 다양성 영화라도 몇 십만을 넘는 상황에서 심지어 감독이 '리들리 스콧'이라면 더더욱 아쉬운 실적이다. 하지만, <올 더 머니>는 오히려 그래서 더 주목해야만 할 영화이다. 리들리 스콧은 최근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의 제작자로, 그리고 그 이전에 일찌기 <블레이드 러너(1982)>, <에어리언(1979)>을 비롯하여, <글래디에이터(2000)>, <아메리칸 갱스터(2001)>, <마션(2015)>에 이르기까지 sf, 갱스터, 역사물까지 장르 불문 명장이다. 그 덕분에 2017년 미국 감독 조합에서 수여한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올 더 머니>는 바로 그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평생' 영화 감독으로 '공로'를 쌓은 명장 리들리 스콧이 '정의'를 내린 '미국', 잊지말아야 할 '자본주의 미국의 역사'이다. 공로상에 갈음하는 가장 멋진 노감독의 수상 소감과도 같은 작품이다. 




공로상 수상 소감과도 같은 <올더 머니> 
<올 더 머니>의 개봉 당시 화제가 된 건 애초에 주인공으로 분했던 '캐빈 스페이시'가 '성추행 스캔들이었다. 불과 개봉을 한 달 앞둔 상황, 그 '험로'를 리들리 스콧 감독은 '한 사람의 행동이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한 결과물에 영향을 주게 해선 안된다'는 단호한 입장에 따라 크리스토퍼 플러머로 교체 결정을 내린다. 이후 한 달 여의 강행군, <올 더 머니>는 그런 잡음이 떠올리지 않을 만큼 명장의 명작으로 미국의 역사를 기억해 낸다. 

<올 더 머니>의 리들리 스콧을 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잘 아는 그의 전작들 <마션>이라던가, <에러리언>, <글래디에이터> 등의 흥행작들을 떠올리는 건 어쩌면 방해가 될 지도 모르겠다. 1968년 미국이 암흑가를 실감나게 그려냈던 <아메리칸 갱스터(2007)>의 배경에, 최근 그가 제작하거나 기획하고 있는 <마크 펠트; 더 맨 후 브로트 다운 더 화이트 하우스(2017)(이하 마크 펠트)>나, <클라이브 데이비스; 더 사운드 트랙 오브 아워 라이브스(2017)>와 같은 '다큐'적 성격이 짙은 작품의 서사를 얹는다. <마크 펠트>는 2005년에서야 밝혀진 역사의 행간, 워터게이트 사건의 딥스로트(비밀 정보원) 마크 펠트를 통해 1972년에서 4년간의 미국 현대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에 반해, <올 더 머니>는 같은 시기였던 1973년에 벌어진 미국 최대 갑부 j폴 게티의 손자 유괴 사건을 그려낸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작품은 같은 시기이지만, 전혀 다른 '미국'을 다룬다. 한편에서 미 연방 수사 요원이었던 마크 펠트를 통해 '정의'가 실현되는 미국이 있다면, 또 따른 한쪽에서는 '오로지 돈' 이외에는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물신의 세계를 j 폴 게티를 통해 그려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자신이 제작하고, 직접 감독한 두 작품을 통해 이 양면성을 가진 미국을 실사화시켜낸다. 

이미 석유 재벌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석유 임차권 매매'를 시작한 j 폴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 분), 그는 당시로서는 불가능해보였던 중동의 석유 임차권 매매를 성공시키며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 영화는 그렇게 j 폴 게티가 부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 그래서 그 재산을 헤아릴 길 없는 최고의 갑부에 등극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한편, 아버지의 그늘에서 튕겨져 나와 뉴욕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네 자녀와 함께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그의 아들네 가정을 대비시킨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이 화기애애한 가정, 그곳에 단 한 가지가 없다면, 세계 최고의 부호를 아버지로 두었음에도 '돈'. 경제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아들의 아내 게일 해리스(미셀 윌리암스 분)는 남편에게 아버지에게 의탁할 것을 청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도착한 답신, 그 답신과 함께 이탈리아로 건너간 그들의 삶은 달라졌다. 


내가 도달한 일반적 결론, 그리고 일단 도달한 이상 나 자신의 연구에 계속해서 지도적 실마리로 쓰인 일반적 결론은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이 영위하고 있는 사회적 생산에서 그들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의지와는 독립된 특정의 관계들 속에 들어간다. 즉, 그들의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조응하는 생산관계에 들어간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구조를 형성한다. 이것이 실제적인 기초인 바, 이 기초위에 하나의 법률적 및 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또한 이 기초에 대응하여 일정한 사회의식들의 형태가 존재하게 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및 정신적 생활과정 일반을 제약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 칼 맑스, 자본론 



물신화된 돈에 헌신한 j 폴 게티 
할아버지의 서류를 대신 읽어주고 답신을 써주기를 즐겨했던 소년 존 폴 게티 3세가 이탈리아의 사창가를 헤매일 정도로 커가는 시간, 그 시간은 j  폴 게티의 돈에 의탁한 덕분(?)에 게일의 가정이 파괴되어 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미 그 전부터 알콜에 의존적이었던 아들은 자신에게 버거웠던 게티 집안의 사업에서 소외된 채 약에 젖어 살고, 그런 아버지에게 젖어들어가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아내 게일은 '이혼'의 조건으로 오로지 아이들의 양육권만을 겨우 얻어냈다. 하지만 그녀가 폴 게티의 돈으로부터 구제하고 싶었던 아이들마저, 그녀의 아들 존의 유괴 사건으로 흔들려 버린다. 

아이들을 품 안에 키우기 위해 '위자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았던 게일은 게티 집안의 손자로 유괴된 아들의 몸값 1700만 달러를 구하기 위해 할아버지 j 폴 게티를 찾는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아들을 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 모성, 그 맞은 편에 손주의 몸값보다, 보장된 한 작품의 명화에 기꺼이 투자하는 할아버지가 있다. 자신의 손자임에도, '이미 자신에게는 14명의 손주들이 있으며, 존의 몸값을 지불하면, 나머지 손녀들도 유괴될' 것이라는 논리로 몸값 지불을 거절하는 할아버지. 대신 전직 cia 요원을 고용하여 '협상'을 시도한다. 



영화는 '피보다 진한 돈'에 헌신하는 자본가 j 폴 게티를 통해 석유 호황기의 미국의 자본주의를 그린다. 사막에서 석유를 시추하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던 그 '협상'력은 자신의 혈육의 경우에도 예외가 없다. 손주의 귀가 배달되어 올 때까지 이어진 협상, 아니, 영화는 '협상'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진 노골적인 j 폴 게티의 방기를 묵묵하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손주마저 포기한 그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모든 시간을 차지한 석유 유가, 그리고 생명이 넘치는 손주 대신 돈으로 산 차가운 명화를 품에 안은 그의 마지막은 자본주의의 '비애'이다. 차라리 유괴범의 연민이 더 갸륵할 정도로. 자식들을 얻기 위해 기꺼이 폴 게티 가문의 돈을 포기했던 엄마지만, 폴 게티 가문의 손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지막지한 돈을 요구하는 유괴범들 앞에 모성은 무기력했다. 

손주의 목숨조차 시간을 끌며, 협상을 통해 '에누리'했던 부호, 손주가 유괴됐다는 소식보다 오늘의 석유 시세가 더 중요했던 부호의 돈, 하지만 손주에게 사기를 친 건지, 그 자신이 사기를 당한 건지 모를 손주에게 전해준 이탈리아 조각상의 허상을 통해 영화는 '돈'의 헐값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평생에 매달렸던 돈, 그 돈으로 손주보다 먼저 달려가 영접했던 미술품들, 그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선 그에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j 폴 게티는 가고 돈은 남았다. 석유를 판 중동의 부족장은 석유를 팔았지만 그 석유를 판 돈이 자손들을 타락시켰다고 했듯이, 폴의 아들도, 그리고 영화 속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후일담으로 전해진 손자 존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뉴욕의 가난했던 가족은 화목했지만, 돈만 있었으면 더 행복할 것이라던 그들의 꿈은 할아버지의 부 앞에 산산조각났다. 흔히 우리나라 속담에서 죽을 때 짚어지고 가지도 못할 그 '부'의 주체는 과연 j 폴 게티였을까? 물신화된 돈에 눈이 먼 j 폴 게티는 현대의 또 다른 '미다스'이다. 과연 j 폴 게티가 벌어들인 돈은 누구를 이롭게 했는가? 영화 속 그 누구도 j  폴 게티의 돈으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돈만이 확장하고 증식할 뿐. 인간의 문명은 진보했지만, 그 문명의 혜택이 개인을 영화롭게 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피언스> 유발 하라리의 진단과도 일맥상통한다. 거장 리들리 스콧이 1970년대의 j 폴 게티를 통해 조감한 '미국의 자본주의', 그곳에 '인간'은 없다. 

by meditator 2018. 2. 13. 19:59

올림픽이라는 개막식 등으로 인해 일요일 단 한 차례 방영한 스테디 셀러 <황금빛 내인생>은 41.9%로 선방했다.(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그런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출소하며 그가 <황금빛 내 인생>을 구치소 내에서 즐겨 시청했다는 것이 밝혀지며 충격을 주었다. '돈은 해외에 두었지만 외화 유출은 아니다'라는 희한한 어법을 활용하며 대중적 정서와 괴리된 입장을 보이던 전국민적 인기 드라마인 <황금빛 내 인생>을 함께 공감했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는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황금빛 내 인생>이 묘사하는 재벌가의 '갑질'과 오너 일가의 삶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이재용 부회장의 '자각'에 가장 근접하는 <황금빛 내 인생>속 인물은 아마도 해성 그룹의 아들로써 그의 신념이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혹독한 수난을 겪고 있는 최도경일 것이다. 


최도경, 해성 그룹의 장녀 노명희(나영희 분)의 외아들이자, 노명호(김병기 분) 회장의 장손이며, 미국에서 MBA까지 마치고 돌아온 해성 그룹 전략 기획팀 팀장이다. 접촉 사고로 악연을 시작한 그가 그 자리에서 차량 수리비 2000 만원에 당혹스러워 하는 서지안에게 자기 딴에는 통 크게 수리비를 500만원으로 감해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의 자부심이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때문이었다. 



목숨조차 던질 수 있어야 진짜 노블리스 오블리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말 그대로 하면 귀족이 은혜를 베풀다는 뜻이다. 즉 출생이나 운에 의해서 더 좋은 교육이나, 더 많은 부의 혜택을 누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유래'가 된 역사적 사건은 '백년전쟁'으로 부터 비롯된다. 1347년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의 칼레를 포위했다. 결국 기근에 시달리던 칼레는 항복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11개월이나 저항했던 칼레 시민의 안위는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항복 협상을 하는 가운데, 에드워드 왕은 지도자 6명이 목숨을 내놓는다면 칼레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그러자 칼레 시민 가운데 가장 부유한 '외슈타슈 드 생 피에르'가 앞장을 섰고, 그 뒤로 시장, 고위관료, 상류층이 뒤를 이어 7 명의 사람들이 나서게 되었다. 단 한 명은 목숨을 건지게 된 상황, 하지만 다음 날 광장에 초라한 옷을 입고, 목에 밧줄을 걸고 나선 사람은 총 6명, 가장 먼저 제안했던 '피에르'는 이미 그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런 피에르의 살신성인은 결국 나머지 6명의 지도자의 목숨을 보존케했으며, 칼레 시민의 안전을 지켰다. 이후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이란 작품으로 길이 기억되는 이 사건이 바로 스스로 목숨을 던져 책임감을 실천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유래다.

그리고 바로 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극중 최도경은 극 초반부터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이제 서지안과 연인 사이가 된 그가 당시의 일을 회한에 젖어 말하듯이, 그의 '얄팍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초래한 결과는 컸다. 딴에 인심을 쓴다고 깍아줬던 2000만원, 그러나 500만원은 계약직 서지안에게는 여전히 큰 돈이었다. 심지어 서지안이 가지고 있던 돈마저, 그가 서지안과 윤하정과의 난투극을 신고하는 바람에 합의금으로 날라가고, 서지안을 양평 별장 해프닝에, 결국 해성가로 급하게 들어오게 만드는 구실이 되고 만다. 

소현경 작가는 최도경을 통해, 매번 그가 자부심으로 삼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서지안에게 가닿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를 더욱 난처하게 만드는 상황을 풀어내며 우리 시대 이른바 '갑'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얼마나 자기 위안에 불과한 것인지 폭로한다. 그렇게 없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고 '자부심쩔었던' 최도경은 '가지지 못한' 서지안에 대한 사랑에 눈뜨게 동시에 자신의 허세를 깨달아 간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유래에서도 보여지듯이 '목숨을 던질 정도의 책임감'이 아닌 가진 것을 진심으로 포기하지 않는 양보라는 게 얼마나 '기만'이라는 것을 드라마는 최도경의 행보를 통해 적나라하게 설득해 낸다. 



사랑보다 우선한 자존  
그저 자신이 해성가를 버리고 나오면 당연히 서지안이 자신을 두 팔 벌려 사랑해 줄거라 생각했던 그의 생각은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서지안에 대해 의아해하다, 억울해하다, 분노하다, 그 끝에서 서지안의 죽음을 만난다. 사랑이라 말했지만 재벌가도 버리고 나온 나를 왜 싫어하냐며, 그리고 재벌가가 왜 싫냐며 반문할 수 밖에 없었던 최도경은, 자신을 견딜 수 없어 세상에서 지우려 했던 서지안을 직시하고 나서야, 비로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색안경을 벗게 된다. 재벌가의 자신과 함께 풍족하다 못해 넘치는 물질적 삶이 아닌, 이젠 비록 정규직도 아닌 목공소 알바라도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며 비로소 삶의 여유를 찾았다는 서지안의 삶의 선택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벗어던진 건 그저 사랑하는 서지안을 비로소 제대로 바라보게 된 것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인정받아 다시 재벌가로 돌아가려 했던 자신의 야무진 꿈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애초에 정해진 길을 당연하다 생각했던 자신을 불쌍하다며 바라봐주었던 서지안을 마음에 품은 그 시점부터 어쩌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운운하던 재벌가 자제 최도경이 삶은 균열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소현경 작가는 '가졌다'는 그 허황된 궁전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얄팍한 자기 위안에 빠져있던 최도경을 이제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그 '극복'을 설파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는 그저 재벌가 자제의 각성이 아니라,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작가의 권유가 있다. 대기업을 다니기 위해 쓰레기통도 뒤지기를 마다하지 않던 서지안이 그 눈높이을 낮춘게 아니라 버리고 비로소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게 되는 과정과, 재벌가의 자제라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코에 걸고 얄팍한 자기 위안에 빠져 살던 최도경이 계급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사랑'을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가는 여정은, 결국 물질 만능주의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 온전히 자신으로 서는 과정이다.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의 젊은이들의 삶엔 그들의 꿈이 우선한다. 최도경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이제 비로소 찾은 목공소를 매개로한 아티스트의 길을 놓치지 않으려는 서지안이나, 서지안을 사랑하지만, 그녀와 함께가 아니라도 해성에 들어가는 대신 가슴에 품었던 '친환경 사업'을 시도하는 최도경, 프랑스 유학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빵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않 지수, 그리고 지안, 지수 자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던 청년 사업가 혁 등은 모두 사랑에 앞서 그들의 꿈이라는 존재로 땅에 든든하게 선다. 과연 구치소 안의 이재용 회장에게 이런 작가의 생각이 가닿았을까? 
by meditator 2018. 2. 12. 15:36

결정론을 피하고 싶지만,  한  나라에 있어 지정학적 위치는 운명적이다. 특히나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세계의 제국이라자처하는 미국과,  또 다른 바다 황해, 심지어 날이 좋으면 육안으로도 마주할 수 있는 신흥강국 중국 사이에 위치한 그리고 북으로 한 민족이라 하지만 동상이몽 북한과 남보다 못한 이웃 일본 사이에 끼인 대한민국의 운명은 언제나 그 자신보다도 외적 동인에 의해 바람잘 날이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교육을 통해 배워온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은 '용비어천가'는 아니었지만 '현실'보다는 '민족적 대의'에 맞춰 편제된 역사 였다. 몽고에 대항한 고려의 대응은 '삼별초의 결사 항전'이었고, 조선 말기 고종 대에 겪은 외세의 침탈은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등등,. 이에 1월 29일 부터 5부작으로 바영된 <한국사 오천년, 생존의 길>은 그런 기존의 역사에서 한 발 비껴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지나간 역사를 '반면교사' 하고자 한다.





투키디데스에 빠진 한국 

무엇보다 이런 '현실주의적 역사학'의 필요를 바로 지금 시점 '외교적 위기에 봉착한 한반도 정세'에서 길어 올린다.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 아테네와 스파르타 전쟁에서 유래된  이 용어는 기존 패권 국가와 신흥 강대국이 부딛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을 의미한다. 그리고 최근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고 있는 미국과 그런 미국을 상대하며 자국의 패권을 확장 시켜 나가는 중국,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러시아, 일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용어다.

하지만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우리 역사에서 그리 생소한 상황이 아니다. 일찌기 삼국 시대 이래 한반도는 늘 위기와 선택의 함정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당과 패권 타툼을 벌이고 있던 고구려,  그리고 일본 까지 그 영향력을 뻗친 백제 사이에 끼인 신라의 풍전등화 운명이 그러했고, 남하 정책을 벌이며 성장해 가는 거란과 국경선을 맞닿은 고려가 그랬고, 폭풍 성장하는 강국 몽골을 상대한 후기의 고려가 또한 그러했다. 명청 교체기에 갈피를 잡지 못한 병자호란 시기의 조선이 다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한반도를 판으로 이권 쟁투를 벌였던 개항기의 조선이 그러했다.

그리고 다큐는 바로 이런 위기의 한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오늘의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 그 첫 장을 연 건 김춘추의 신라이다. 624년 백제의 대야성 공격으로, 그리고 내부 정치의 혼란으로 위기에 빠진 신라, 그 위기를 당시의 리더 김춘추는 고려와의 외교적 연대를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당시의 적국이었던 고려로 솔선수범하여 찾아갔지만, 결과는 실패, 그 자신이 억류되었다 가까스로 목숨만 건진 채 도망친다.

하지만 다큐는 국가적 위기에 빠진 리더가 자신을 돌보지 않고 국가를 구하기 위해 타 국가와의 적극적 해결을 나선 점에 높은 평가를 한다. 고려에서 실패한 김춘추는 당시 고려와의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당을 차선의 해결책으로 택한다. 늘 육전으로 고전했던 당은 이에 적극적으로 신라와 제휴하여 바다를 건너 백제를 치고, 그 여세를 몰아 고려 정벌까지 하며 신라의 삼국 통일에 대한 견인차가 된다.

물론 신라의 삼국 통일 그 자체는 최근 재야 역사 학계의 문제 제기와 함께 이론의 여지가 있다. 과연, 백제 왕국과 거대한 고려의 제국, 그 영토의 상당수를 잃은, 그리고 통일 신라 내내 백제 영토 내에서 있었던 부흥 운동 등으로 인해 신라의 삼국 통일에 대해 재론의 여지는 남는다.

그러나 다큐는  가만히 있었다면 백제와 고려의 협공으로 국가적 존망이 위태로웠을 신라가 그 위기를 역으로 활용하여 현실주의적 외교 정책으로 오히려 삼국 통일의 주역으로 거듭난 실리주의적 방식을 높이 산다. 뿐만 아니라, 백제를 패하고, 이어 고려까지 정벌하러 나선 당과의 관계에서 김유신이 이른바 오늘날로 치면 '군사 작전권'이라 할 수 있는  장수 김문영에 대한 보호는 제휴는 하되, 자국의 패권을 놓치지 않는 성공적 사례로 기록한다.

첫 회 신라의 사례를 통해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지정학적 위치에서 열강의 사이에서 고립되기 쉬운 한반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리적 외교 정책이며, 그 실리적 외교정책을 뒷받침 하는 건 바로 '자강'의 국력이라는 것이다.




실리적 외교와 자강의 국력, 그 두 마리의 토끼 

그 첫 외교적 실리의 사례는 이미 우리도 역사적으로 잘 알고 있는 서희의 외교적  승리이다. 하지만 고려가 처음부터 현실주의적이었던 아니다. 당시 남하 정책을 펼치고 있던 거란이 고려와의 유대를 위해 사신을 보냈을 때, 발해를 패망시키고 들어선 거란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고려는 사신을 죽였다. 그 결과는 거란의 침공.

하지만 남하 정책에 발목이 잡힌 거란의 속내를 읽은 서희가 나서  오히려 강동 6주을 얻는 혁혁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기에 이르른다. 명분보다 실리을 앞세운 전형적인 외교전의 승리이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 이후이다. 서희는 그런 외교전에서 얻은 강동 6주 등 압록강 국경선을 구축하기 위해 과로사를 할 정도로 고려는 이후의 대비에 충실했다. 그럼에도 20년 뒤 고란은 다시 침입을 강행했는데, 이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강감찬의 살수 대첩으로 거란을 고려는 성공적으로 물리친다. 하지만 여기서 다큐가 주목하는 건 바로,  당시 현종이 수도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앞서 나아가 방어선을 쌓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 '방어선'은 그 다음 회차인 몽골 침략 시 강화도 천도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고립과 대비된다. 병자호란 당시에도 강화도로 옮기려 했으나 그 조차 시간이 여의치 않아 피난처로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남한산성으로 옮긴 것이다. 그렇다면 수도를 포기하지 않고 앞서 나아가 방어선을 쌓는 것과 강화도로의 천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몽골이 침략해 왔지만 혹시나 군대가 다시 자신들처럼 쿠데타를 일으킬까 두려운 무신 정권은 군대를 내보내는 대신 수도만 강화도로 옮겼다. 수운을 이용하여 세금을 걷을 수 있고, 그 덕택에 왕과 귀족들은 유지할 수 있엇지만, 국토는 몽골에게 유린당했다. 바로 이 리더의 자세 차이이다. 그래서 병자호란 당시에도 앞서 방어선을 치면 설사 패배하더라도 온 나라가 짓밟히지는 않는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하지만, 몽골의 무신 정권도, 병자호란 당시 인조도 그런 건 염두에 없었다.

다큐는 바로 그 지저에서 리더의 자세를 논한다. 오늘날 우리가 기리고 있는 '헤이그 밀사',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 국가의 대표로서 나라를 지키기 보다는 언제나 외세의 힘을 빌어 자신의 '왕권'을 보존하려 했던 고종의 지극 히 타산적인 외교 정책이 있다고 다큐는 논박한다. 외교적 '균형자'도 자국의 기반이 우선되어야 가능하다는 당연한 결론 앞에 일본의 힘을 빌어 , 그게 안되면 러시아의 힘을 빌어, 또 그게 안되면 미국에 읍소하고, 유럽 열강에 기대려 했던 고종에게 ''망국'은 예정된 결과라 다큐는 짚는다.

각국의 석학과 국내의 유수한 역사 학자들의 입을 빌어 다큐는 말한다. ' 세계 10위의 경제 강국 한국, 만약 한국이 아프리카나 유럽, 심지어 다른 아시아 지역에 있었더라면 한국은 지역적 패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지저악적 위치는 한국의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다큐는 오천년 한국사의 사례를 냉철하게 들며, 그 어느때보다도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외교적 관점을 유지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그 외교적 선택에 '자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이른바 '국뽕'을 배제한 한국사이다. 아니 어쩌면 이제 진짜 한국사인데, 우리는 여태 색안경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새롭지 않은 현실인데, 그래서 새로웠던 역사 이야기이다. 특히, 현실주의적 외교와 그를 뒷받침한 자강 정책 강조도 그렇지만, 병자호란 당시 조선이 바라보는 청과 관련하여, 우리 안의 '중심과 타자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 제기는 오늘날 제국 미국과 여전히 우리에겐 '떼놈'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한 원론적인 '반면교사'라는 점에서 더더욱 가치있는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8. 2. 8. 16:46

다시 또 한 집에 모여 사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바로 2월 5일 jtbc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으라차차 와이키키(이하 와이키키)>이다. 이제 시즌 2까지 완주한 <청춘시대>처럼 이들도 한 집에 모여산다. 그런데, <청춘시대>의 청춘들이 셰어 하우스를 찾아 각자 그 곳으로 모여들었다면, <와이키키>의 청춘들은 그들이 함께 모여 게스트 하우스를 차렸다. 한쪽은 세입자고, 또 다른 한쪽은 사장님인데, 어째 상황은 후자가 더 나쁘다. 물이 끊기고, 조만간 전기도 끊길 예정이란다. 


꿈을 잠시 유보한 청춘들의 고전기 -모던 파머, 그리고 으라차차 와이키키
<모던 파머>라는 작품이 있다. <으라차차 와이키키>에 참여한 김기호 작가의 2014년작이다.  sbs를 통해 방영되었지만, 평균 4%를 오르내리던 이 주말 드라마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드라마에 유한철 역으로 출연했던 이시언이 극중 강아지에게 젖을 먹이다 물렸던 웃픈 에피소드가 예능을 통해 방영되며 괴작(?)으로 드라마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정도다. 



하지만 <모던 파머>는 '귀농'이 우리 사회에 하나의 사회적 화두인 시점에서 발 빠르게 젊은이들의 '귀농'을 담으려 했던 드라마다. 물론 '코믹'하게. 인디 밴드 '엑설런트 소울즈'을 꾸렸던 네 청년, 하지만 그들의 음악적 꿈을 도시는 품어주지 않았다. 그들이 택한 방식은 '귀농', 농사도 짓고, 다시 음악도 해보겠다던 청년들 하지만, 그들의 '귀농'은 그 시작부터 해프닝이다. 

이렇게 2014년 '꿈'을 위해, '꿈'을 우회하는 방식을 택한 청춘들의 이야기는 2018년으로 오면 그 대상이 '농촌'에서 도시의 '게스트 하우스'로 바뀐다. 그리고 이번에 그들의 꿈은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을 뛰어넘는 영화 감독을 꿈꾸는, 그러나 현실은 회갑 잔치 영상이나 찍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청춘 강동구(김정현 분), 믿고 보는 배우를 꿈꾸지만 역시나 현실은 주연 배우의 손가락질 하나에 그의 배우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단역 배우인 이준기(이이경 분), 말이 좋아 작가지 돈이 되는 글이라면 자소서 대필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다하지만 현실은 편의점 알바인 봉두식(손승원 분), 이들 세 친구가 자신들의 꿈을 위해 벌인 사업이 바로 '게스트 하우스'다. 

이렇게 드라마는 '꿈'을 위해 '현실'을 택한 청춘들의 딜레마를 밑천으로 삼는다. 그리고 '귀농'을 했던 청춘들이 배추를 키우기도 전에, 시골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해프닝의 연속이었듯, <와이키키> 역시 하와이의 로망 와이키키 해변을 게스트 하우스의 이름으로 작명했지만, 현실은 '중국 특수'가 끊겨 손님 구경한 지가 한참 되어 물도 끊기고, 전기도 끊길, 거기에 남자 셋이 그 전기세 40만원조차 만들지 못해 절절매는 '자가당착'의 상황이다. 

찰리 채플린의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문구 그대로, 전기세 40만원조차 만들지 못해 오랜 연인과의 커플링을 궁색하게 찾아 헤매고 팔까 고민하는 처지에 놓인 강동구를 비롯한 세 청년의 상황은 매 장면 웃긴데, 어쩐지 그 뒷맛은 99% 다크 초콜릿처럼 씁쓸하다. 



으라차차 와이키키가 그려내는 청춘의 방식 
<청춘 시대> 시즌1,2는 셰어 하우스를 배경으로 그곳에 모인 청춘들의 이야기를 곡진하게, 감성적으로 그려내어 동시대 청년들의 공감을 얻었다. 과연, 그 '감성'과 '사연' 대신, 해프닝과 웃픔을 택한 <와이키키>에 대한 공감은 어떨까? 

<모던 파머>를 회자시켰던 장면이 이시언의 가슴에 흐르는 우유를 핥아먹는 강아지였듯이, 첫 회 <와이키키>는 또 다른 수유 해프닝을 다룬다. 세 청년의 집에 몰래 아이를 놓고 도망쳤던 한윤아(경인선 분)가 우여곡절 끝에 같이 지내며 모유 수유의 고통을 토로하고, 유축기, 마사지 등 젊은이들에겐 문화적 충격을 주는 장면은 마치 <모던 파머>의 오마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즉, <으라차차 와이키키>가 선택한 젊은이들의 고난의 행군은 '웃픈 웃음'이다. 시트콤과 같은 웃픈 상황에 던져진 주인공들의 소동극이다. 

거기에 일찌기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를 비롯한 외국 영화에서 부터, 2008년 kbs2를 통해 방영된 <아빠 셋 엄마 하나>도 비슷한 설정인 '아기'와 아기 엄마를 둘러싼 육아 상황극은 익숙하지만, 언제나 대중적인 호감의 소재이다. 과연 이 '대중적'인 소재와 함께, <와이키키>가 2000년대 화제의 시트콤 <세 친구>만큼의 화제성을 얻을 수 있을 지. 김기호 작가 버전 청춘 시대가 2018년 청춘의 대명사로 거듭나기를. 

by meditator 2018. 2. 6. 16:02

<나쁜 녀석들> 시즌 1의 최종회 11회의 시청률은 4.3%, 최고 시청률은 5.9%였다. 물론 <나쁜 녀석들>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마동석이 주연한 <38사기동대>에 의해 그 기록은 깨졌지만, 그 당시까지 ocn최고의 시청률이었다. 2월 4일 종영한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의 16회 최종 시청률은 평균 4.8%, 최고 5.7%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는가 하면, 시즌1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성과를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유종의 미'에 도달하기 위해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는 수많은 희생을 치뤘다. 애초에 우제문(박중훈 분) 검사와 함께 의기투합했던 '나쁜 녀석들' 팀, 허일후(주진모 분), 장성철(양익준 분), 노진평(김무열 분), 한강주(지수 분), 그리고 신주명(박수영 분), 양필순(옥자연 분) 중 마지막 회 엔딩에서 살아남은 자는 단 3명, 우제문, 허일후, 한강주, 길고도 지리했던 16부의 서원 시 악의 세력 구축 작전에서 이들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싸움을 해왔다. 

시즌 1이 '강력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모아 더 나쁜 녀석들을 소탕하는 강력계 형사와 그의 휘하에 모인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내걸고 결국 남구현 경찰청장과 오구탁 형사, 오재원 특검의 사적 복수와 이정문, 박웅철, 정태수 사이에 얽히고 얽힌 구원을 엔진으로 시리즈를 밀어 붙였다. 그에 반해, 시즌 1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저 '서사'의 부실함으로 지적받았던 것에 심기일전했던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이하 악의 도시)>는 서원시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재개발 사업을 중심으로 나쁜 녀석들과 더 나쁜 녀석들의 충돌을 그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16부의 <악의 도시>는 서원시에 깊게 뿌리박은 악의 세력 척결을 위한 길고 처절한 싸움의 시간이었다. 검찰 내 아웃사이더 검사 우제문(박중훈 분), 그는 검찰 총장의 명을 받아, 다시 한번 오구탁 형사의 방식으로 악의 세력을 척결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서원시를 장악한 채 재개발 사업을 독점하며 서원시민들에 기생하는 악의 세력 조영국(김홍파 분)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를 위해 그가 끌어모은 건 동료 수사관의 죽음에 상처를 입은 신입 검사 노진평과 몇 년전 조영국이 쳐놓은 덫에 걸려 동료를 배신했던 전력이 있는 비리 형사 장성철, 피습을 당한 채 생사의 기로를 헤매는 동생의 복수를 위해 홀로 나선 '형받이' 한강주, 전직 동방파 주먹이었던 이제는 그저 식당 주인이 된 허일후 등이었다. 

조영국을 잡기 위해 전면전을 펼친 이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영국과 동방파를 척결하기 위헤 이들의 그물에 걸린 이는 시즌 1에서 처럼 이들을 모이게 했던 검찰총장 이명득(주진모 분)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돌아오고 '적폐' 세력으로 물러나게 된 이명득은 우제문을 앞세워 자신의 이권을 보존하는 한편, 새 시대의 세력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쁜 녀석들'을 이용했던 것, 하지만 '나쁜 녀석들'은 신주명 과장과 양필순 형사를 희생시키며 적폐 세력 이명득을 몰아낸다. 

그게 겨우 7회였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이명득을 몰아내는데 앞장섰던 반준혁(김유석 분)검찰 수뇌부가 새롭게 꾸려지고, 서원시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꾸려진 특수 3부. 그러나 새 시대는 쉽게 오지 않았다. 새 시대에 길을 비켜준 우제문과 달리, 기꺼이 특수 3부에 합류한 노진평 검사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 과정에서 정작 새 시대의 도구였던 특수 3부가 의혹의 대상이 된다. 동료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다시 모인 남은 자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새 시대를 등에 업고 여전한 이권의 수호자가 된 경찰 세력과, 그를 비호하는 새로운 검찰 권력과 대립하게 된다. 

일진일퇴, 그때마다 피칠갑을 하며 온몸을 던진 우제문을 필두로 한 '나쁜 녀석들'은 황민갑(김민재 분)형사를 중심으로 경찰 내 자리잡은 이권 세력들을 제거하고, 여전히 구악을 끊어내지 못했던 반준혁 검사장 조차 스스로 물러나게 한다. 

이제 정말 조영국만 제거하면 된다며 마지막 일전을 결심했던 '나쁜 녀석들', 그러나 그들이 마주친 건 조영국조차 하루 아침에 재개발 사업에서 물러나게 만드는 '배후'이다. 죽어가면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usb칩을 삼켰던 장성철 형사의 살신성인 덕에 결국 시민이 뽑은 시장이라 자화자찬하며 재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배상도(송영창 분) 시장과 그의 스폰이었던 누나 배여사(김지숙 분)까지 구속시키며 서원시 악의 척결 작전, 그 대단원의 막이 내려졌다. 

이 장황했던 서원시 나쁜 녀석들의 작전은 동방파와 악덕 기업인 조영국을 주적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그 악의 세력의 구축 과정에서 그들이 만난 건 전현직 검찰 총장과, 각종 경찰 내 이권 세력, 그리고 시민의 손으로 뽑힌 민선 시장까지, '정치와 경제의 협잡 카르텔이었다. 시즌 1에서 단순했던 '악'의 실체는 시즌2에 오며 16작으로 늘어난 회차만큼, 길고 지난했던 그리고 뿌리깊은 악의 연대기를 밝혀낸다. 




투혼과 떼싸움, 시리즈의 본질 
그 연대기의 실체를 밝히는 방식은 '나쁜 녀석들'과 그들의 온몸을 던지는 투혼이다. 15회, 장성철 형사가 그의 수하들에게 모처럼 '과학 수사'라며 cctv를 따라 추적하는 장면이 '실소'처럼 <악의 도시>의 전 회는 사람과 사람이, 떼거리와 떼거리가 부딪치며 온몸으로 피터지게 맞고 싸우는 전쟁터였다. 길거리에서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동료에 대한 트라우마로 사무실에서 펜대나 잡고 싶다던 노진평 검사의 소원이 무색하게.

그리고 그 싸움의 색채다게 16부의 싸움을 밀어붙인 건, 동료들의 희생이었다. 서로에 대한 믿을 수 없는 과거의 사연으로 인해 모래알같던 '나쁜 녀석들' 팀은 신주명 과장과 양필순 형사의 죽음, 그리고 노진평 검사의 희생으로 동력을 얻는다. 드라마는 21세기 한 도시를 배경으로 했지만, 싸움의 방식과 논리는 일찌기 서부극이래 '동료'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그 원초적인 싸움, 그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원초적인 방식에 따라 드라마는 매회 화끈하다 못해 피칠갑의 액션씬이 서비스처럼 등장한다. 시즌 1에 이어, 시즌 2를 완주한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나쁜 녀석들>의 본질은 기존 수사 드라마에서 할 수 없었던 법의 경계를 넘어선 '나쁜 녀석들'을 앞세운 이 무법의 폭력적 혈투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즌 2가 시즌 1에 비해 그런 감상을 더한 건, 시즌 1에 비해 공들인 서사에도 불구하고, 시즌 1에서 밀도높았던 등장인물들간의 관계성에 비해, 여러 등장 인물들의 희생과 다양한 검찰, 형사, 범죄자 등 복잡한 군상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헐거운 등장인물간의 관계성 때문일 지도 모른다. 시즌 1에 김상중이 분한 오구탁 형사가 보여준 그 자신이 범죄자들을 극도로 혐오하면서도, 기꺼이 그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이 이율배반이 시즌의 중심을 꽉 잡았다. 그에 비해 시즌 2의 우제문 형사는 끊임없이 그의 입으로 이렇게 살지 맙시다 했지만, 어쩐지 그의 구심력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제 시즌 1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출연료가 올라서 더 이상 시즌 2가 힘들다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시즌 1의 마동석, 박해진 등의 각 캐릭터의 존재감도 빛났다. 사이코패스 살인마까지 내세우며 자신의 형기를 딜하기 위해 때론 의심하고 미워하고 질시하며 결국은 싸움의 과정에서 한 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그 미묘한 인간애의 과정이 어설픈 서사에도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매력이었다면, 이미 모두가 '악'의 척결이라는 공통의 목표에서 확실했던 시즌2의 주인공들은 시즌 1에 비해 인간적 매력이 덜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결국 시즌 2의 동인이 된건, 그들 각자의 동생을 구하기 위해, 동네 식당집 딸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죽은 동료의 복수를 구하기 위해 라는 '미담'이 시즌을 이끌어 가는 동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쁜 녀석들에 의한 보다 더 '나쁜 녀석들'의 소탕 작전이라는 고유의 설정과, 이제는 클리셰가 된 듯한 몸과 몸이 전면으로 부딪치는 떼 싸움의 액션은 여전히 <나쁜 녀석들> 시즌 3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정의가 완성되지 않은 한에서. 
by meditator 2018. 2. 5. 16:30

햇수로 무려 6년만이다. '능력있는 고아'를 이상형으로 여겼던 커리어 우먼 차윤희로 분했던 김남주가 다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선 게.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도 김남주가 분한 차윤희는 사회에서의 성공을 삶의 모토로 삼고, 그를 위해 '외조'가 가능한 남편을 원했다. 그러나, '행운'이라 생각했던 그 이상형 방귀남(유준상 분)에게 잃어버린 가족이 나타나면서 잘 나가던 커리어우먼 차윤희에게는 층층시하 시집살이의 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 6년만에 돌아온 김남주는 그때처럼 다시 한번 '일'로 승부하는 커리어 우먼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녹록치않다. 모두가 호시탐탐 그녀를 끌어내리기 위해 도발한다. 서른 중반 삶이 무르익을 나이에 그녀는 위태로운 공공의 적이 되었다. 


대학에 다니는 아이가 문득 깨달은 듯이 전한다. 학교 수업 시간, 사회 각 내노라하는 분야에서 '성공'을 거머쥔 선배로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강단에 선 사람들 중 여성 거의 대부분이 '싱글'이었다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그저 한 두 사람이었다면 아이는 '취존'이라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 문을 나서서 사회에 진입한 여성들이 겪는 일과 사랑, 결혼의 양립할 수 없는 딜레마를 목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강단에 선 '선배 여성'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여진 듯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른바 '유리 천장'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번듯하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허용하는 듯하지만, 실상으로 들어가면 보이지 않는 '유리로 만든 천장'이 번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이 용어는 드러낸다. 그리고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으며 이른바 성공을 일궈나가기 위해 여성들은 몸을 던져 그 '유리 천장'을 깨부숴야 한다. 



다시 한번 커리어우먼으로 돌아온 김남주 
그렇다면 그 '유리 천장'을 깨부수기 위해 요구되는 건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 극단의 예를 다시 한번 커리어 우먼으로 돌아온 김남주가 분한 <미스티>의 고혜란이 보여준다.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남편을 향해 '배부른 자들의 한담'이라 퍼붓는 고혜란의 모습에서, 그녀의 지난 삶이 여유롭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난리를 치며 그녀를 요양원으로 불러들인 그녀의 어머니는 이제 서른 중반의 그녀를 여전히 이십대 중반으로 착각한 채 다그친다. 잠시라도 자신에게 틈을 내어주지 말라고. 관리하라고. 그래서 성공하라고.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 냉담했지만, 그녀는 그 어머니의 말처럼 살아온 듯하다. jbc 사회부이 말단 기자로 입사했던 그녀는 이제 명살상부 자신의 이름을 내건 9시 뉴스 앵커 자리를 꿰어찬 지 어언 7년 최장수의 여성 앵커로서 매년 올해의 언론인 상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그녀의 삶은 위태롭다. 

말단 기자로 출발했던 그녀는 선배 앵커 이연정(이아현 분)을 밀어내고 9시 뉴스 앵커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그 자리를 얻기 위해 그녀는 뱃속의 아이와 남편을 희생시켰다. 아이를 그녀 스스로 지운 그 날부터 남편은 한 집에서 살뿐 남이 되었다. 그녀가 필요로 할때까지는 남편의 자리에 머무르겠지만 그 이상은 없다고 단언하는 남편. 남들이 보기엔 검사, 그리고 변호사와 앵커의 황금 조합이지만, 그녀의 집엔 냉기가 흐르고, 배란일마다 시어머니는 한약을 지어들고 그녀의 집을 찾는다. 그렇게 아이까지 희생하고 얻은 자리, 이제 그 자리를 발판으로 좀 더 큰 물에서 노닐고 싶었던 그녀에게 뜻밖에도 방송가의 젊은 물 운운하며 후배 기자 한지원(진기주 분)가 등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드라마는 이제 방출 위기에 놓인 여성 앵커 고혜란을 중심에 세운다. 그녀를 중심으로 그녀에게 밀려나 그녀의 뒷담화를 즐기며 그녀를 괴롭히는 선배 아나운서 이연정과 사회부의 신망을 얻으며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한지원을 내세워 여성vs. 여성의 대립각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드러난 건 고혜란에 밀려나서 그녀가 쓰러질 것을 '고소원'하는 패자 이연정과 호시탐탐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유망주 한지원의 '여여 갈등'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녀들을 장기판의 말로 사용하는 시청률 지상주의자 국장 장규석(이경영 분)과 역시나 그녀에게 앵커 자리를 빼앗긴 채 한지원을 무기로 그녀에게 복수를 절치부심하는 오대웅의 연합 세력이 있다. 
그러나 그녀의 발목을 잡는 건 사회만이 아니다. 묵묵히 한약을 지어오는 시어머니, 남들이 보기엔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성공한 여성이 되기 위해 그녀가 감내해야 할 것들은 너무 많다. 

첫 방송을 보인 <미스티> 속 고혜란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커리어 우먼으로 등장한다. 5년째 수상할 언론인상의 수상이 여의치 않자 그녀의 표정은 굳어진다. 7년째 그녀가 선배를 밀어내고 차지한 그 앵커의 자리가 위태롭자 그녀는 밀려나는 대신 당당하게 승부한다. 그리고 나가도 스스로 나가고 싶을 때 나간다고. 분명, 앵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이를 지운 여자, 그리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후배를 짓밟는 고혜란의 태도와 방식은 틀렸지만, 유리 천장 아래 허덕이는 이 시대에서 묘하게 고혜란에게 마음이 열어진다. 그런데 심지어 그녀가 살인 혐의까지, 이 이율배반적인 동질의 감정 속에 드러나는 진실에서 드라마는 이 시대 여성들의 어떤 이야기를 전할까? 

by meditator 2018. 2. 3. 15:26

역시나 신원호란 감탄사를 불러온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신드롬 덕분에 주춤했던  sbs의 <리턴>, 그러나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종영과 함께 시청률은 매회 상승세, 조만간 20%를 찍을 기세다. (12회 16.0%,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리턴>의 인기 비결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매해 벽두를 열었던 ,이른바 sbs식 장르물의 성과를 우선 살펴보면 흥기롭다. 2015년에서 2016년을 이은 히트작 <리벰버>, 그리고 2017년을 연 <피고인>은 모두 장르 드라마를 표방함과 동시에 20%를 넘는 '대중적 인기 몰이'에 성공한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세 작품 모두 그 '성공'에 불을 지핀 건 바로 드라마 속에 저마다 개성넘치는 연기로 강력한 악의 축이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오랫동안 단골 서브남 전문이었던 남궁민 배우에게 그 자신의 새로운 면을 각인시켜 이후 <김과장>의 주연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던 건 바로 <리멤버>의 남규만이었다. 그리고 <피고인>하면 감옥에 간 주연 지성 못지 않게, 일인이역으로 때론 순정파로, 때론 끝없이 야비했던 차민호, 차선호 역을 소화해낸 엄기준의 열연이 떠오른다. 

<리턴>의 질주 
그리고 이제 2018년을 연 <리턴>에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주인공들은 오랜만의 복귀작으로 기대를 모은 고현정이나, 물의를 빚은 후 잠시의 공백기를 가졌던 이진욱이 아니라, 그들의 맞은 편에서 범죄를 모의하고 촉발시키는 펜트 하우스 황태자 친구들 강인호(박기웅 분), 김학범(봉태규 분), 오태석(신성록 분)들이다. 그 중에서도 오랜만에 tv로 돌아온 봉태규의 밑도 끝도 없는 또라이식 폭력성이나, 사이코패스란 이런 것이다의 정의를 새롭게 갱신하고 있는 신성록의 연기는 마치 이들이 주인공인 양 발군이다. 의중이 모호한 변호사 최자혜로 분한 고현정의 미묘한 연기와 다혈질 형사 이진욱의 고군분투가 무색하게 <리턴>을 보는 시청자들이 기다리는 건 이들의 '난장'이다. 그리고 그 '난장'에 도를 더하며 이제 대놓고 공중파에서 사람 사냥까지 하는 것으로 드라마 <리턴>는 '크레센도 몰토'(극히 큰 크레센도)로 시청자를 유인한다. 

이렇게 방송 심의를 넘나드며 일단 시청자의 관심 끌기에 성공한 드라마 <리턴>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에서 걱정스러운 건 공중파 드라마로서 치달리는 자극적 전개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자극적 전개'라는 과한 조미료의 근원으로 유추될 수 있는 '표절'이 진짜 <리턴>의 문제다. 



'가족, 명예, 돈 모든 것을 충족한 친구들에게는 단 한 가지 고민이 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들의 판타지를 채워줄 공간이 필요했던 것. 그래서 그들은 비밀스런 펜트하우스를 만들고 서로 열쇠를 나누어 가지고 즐기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중 한 명과 그곳에서 밀회를 즐겼던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저 위의 줄거리는 <리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작품이라고 할 만한 드라마의 주요 설정이다. 매회 드라마시작과 함께 다시 보여주는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이 바로 저 친구들의 펜트 하우스와 그곳을 공유했던 염미정의 죽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시청자들은 안다. 그리고 드라마는 바로 그녀를 누가 죽였는가? 그리고 그 죽음과 관련된 인물들 사이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풀어내는 것으로 이끌어 진다. 

같고도 다른 <리턴>과 <더 로프트; 비밀의 방> 
그런데 저 '줄거리'는 <리턴>의 것이 아니다. 지난 2015년 개봉한 청소년 관람 불가의 스릴러물인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줄거리이다. 심지어 영화 속 빈센트(칼 어번 분)의 내연녀는 그의 부인에게 질투를 하며 접근하려고 하고, 심지어 빈센트와 그의 아내, 그리고 친구들이 모인 파티에 불청객으로 나타난다. 이에 빈센트는 그녀와 이별하기 위해 펜트 하우스에 그녀를 데려가 혼자 나온 이후 그녀는 변사체로 발견된다. 범인으로 지목된 빈센트 그리고 친구들이 조사받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숨겨진 진실과 반전, 이 진실과 반전을 추격하는 여형사. 

런닝 타임 100 여분의 영화와 32부작(16부작)의 드라마의 호흡은 다르다. 영화 속 여형사는 드라마로 오면 여자 변호사로 변화되었고, 영화와 동일했던 설정은 이제 의사 김정수(오대환 분), 형사 김동배(김동영 분), 안학수(손종학 분)의 등장으로 사건의 각이 넓혀진다. 그렇다면 <리턴>은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표절이 아닐까? 

이는 마치, 음악 작업 가운데에서 두 마디 이사이면 표절이고, 두 마디 이하면 표절이 아니라는 '법률적 경계'와도 엇비슷하다. 분명 두 작품을 본 사람들은 <리턴>과 <더 로프트; 비밀의 방>의 유사점을 당연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긴 호흡의 드라마는 영화가 가진 애초의 설정을 변주시키며 아니 우리 드라마는 영화와 달라요라고 주장 할 수 있다. 이는 얼마전 좋은 드라마란 평가를 받으며 종영한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표절인 듯 표절 아닌 관행? 
88만원 세대의 여주인공은 머물 곳을 얻기 위해 한 남자의 집에 세를 살게 된다. 집에서 결혼 독촉을 받는 남자는 자신이 하던 일에서 마저 실패한 채 실의에 빠진 채 낙향할 처지에 놓인 여주인공에게 계약 결혼을 제의하고 두 사람은 한 집에서 계약 부부로 살게 된다. 한 집에서 살며 계약 부부라는 이 설정은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일명 니게하지)>와 유사함으로 논란이 됐다. 

건물에 글자를 새겨넣은 포스터에서 부터, IT 직원이며 사회성이 떨어지며 타산적인 남자 주인공에,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 집에 살면서 '계약 결혼'을 하는 이야기는 두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표절'을 인정하는 대신, 결혼도 포기하고, 집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세대 공감과 수평적 남녀 관계에 대한 시도로 그 논란을 돌파했다. 

그러나 15.6회에 들어서 내내 그 누구보다도 성숙한 자존감 넘치는 캐릭터였던 여주인공이 돌변한 듯 자기 중심적 해프닝을 보인 것이 일본 원작과는 다른 주제 의식에대한 과도한 천착이 부른 '과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표절'이라는 부담을 가진 드라마는 그 부담을 탈피하기 위해 표절작과는 다른 무리한 시도를 보인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보여진 여주인공 캐릭터의 일관성 변화는, <리턴>으로 오면 매회 점층되는 '자극적 설정'과 '폭력성'으로 대응된다. 애초에 청소년 관란 불가였던 영화의 설정을 드라마에 옮겨 온 것부터 무리수였지만, 그 설정의 표절을 피해가는 드라마의 전략이 화제성의 주인공인 봉태규와 신성록의 악행 에스컬레이션인 듯해 아쉽다. 

물론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결국 표절을 인정하지 않고 넘어갔듯, <리턴> 역시 아마도 '표절' 논란을 변주된 서사를 통해 돌파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찜찜한 표절 푯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록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와 관련된 소감이 돋보인다. 원작을 본 사람들이라면 설원 위 열차라는 설정말고는 많이 달라진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 하지만 봉감독은 설원 위 열차라는 그 모티브가 위대한 거라 단언한다. 이렇게 표절인 듯 표절이 아닌 듯한 작품이 매번 되풀이 되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가 중국 콘텐츠들의 우리 작품 베끼기를 가지고 갑론을박할 처지가 될 수 있을지. 콘텐츠의 가치는 창작자에 대한 존중과, 존중에 대한 절차적 예의로 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8. 2. 2. 17:56

사실 수치만으로 보면 <그냥 사랑하는 사이(이하 그 사이)>는 보잘 것없다. 1회 2.409%(닐슨 코리아 케이블 유료 플랫폼 기준)가 최고 시청률로 내내 1%대의 시청률을 답보했다. 하지만, <그사이>를 그저 수치상으로만 평가하는 건 아쉽다. '재난 후일담'이라는 어쩌면 이 시대에 가장 요구되는 장르에 과감하게 도전한 유보라 작가와 <그사이> 제작진의 도전은 오히려 '시청률'과 상업적 성과를 넘어선 드라마적 가치의 확인이다. 천만이 넘었다고 그 영화가 좋은 영화가 되지 않듯, 1%대의 작은 목소리라도 <그사이>의 존재감은 빛난다. 




슬픔은 노상 우리 곁에 있어  -마마(나문희 분) 
오프닝에서 보여지는 바닷 속에 잠긴 채 기운 배, 그렇다, <그사이>는 대놓고 '세월호'를 비롯한 우리 사회가 겪은 '재난'과 그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좀 더 사실적으로는 1995년 6월 29일에 일어난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과 가깝다. 당시만 해도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라고 온 국민이 경악해 마지 않던 사건, 하지만 바로 그 전 해에 성수대교가 붕괴됐었다. 이른바 '건설 입국'으로 성장해온 발전 경제의 부실한 기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부실한 기둥에 대해 드라마 속에서 참사 현장에 다시 쇼핑몰이 들어서고, 또 다시 철근이 빼돌려지고, 부실한 지반에 얼렁뚱땅 건물을 올리려 하듯, 그렇게 두루뭉실하게 넘어간 대한민국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고, 결국 2014년 세월호에 이르렀다. 늘 수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때마다 잊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삼풍 백화점 자리엔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고 추모비는 멀찍이 양재 시민의 숲 한 켠으로 밀려난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지난 해 12월 11일 첫 회를 연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바로 그 '아스라한 기억'이 된 붕괴 사고를 불러온다. 하지만, 드라마가 불러온 건 그저, 에스몰 참사가 아니다. 에스몰로 상징되는 '재난민국', 그리고 그곳의 피해자들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재난 사고의 피해자들이 주인공이다. 재난 사고에 대해 다룬 다큐는 많았다. 그리고 얼마 전 종영한 <블랙> 드라마 속 사건으로 '재난 사고'가 등장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그 '재난'을 마주하고, '재난' 속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밀도깊게 다룬 이야기는 <그사이>가 처음일 것이다. 

이강두(이준호 분)와 문수(원진아 분)는 그곳, 에스몰에 있었다. 아동 모델로 그 쇼핑몰에서 촬영이 있었던 동생과 함께, 아니 동생의 보호자로 에스몰에 갔던 문수는 동생때문에 만나지 못한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다른 층으로 자리를 옮긴 사이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가 그곳에서 일하셔서 아버지를 만나서 그 곳에 간 강두 역시 붕괴된 건물 사이에 있었다. 최후의 생존자가 된 강두와, 강두의 도움으로 그곳을 한 발 먼저 빠져나간 문수, 하지만 그곳을 빠져나온 건 두 사람의 몸뿐이었을 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소년과 소년였던 그들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곳에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그곳에 머무는 방식은 다르다. 그곳에서 다리를 다친 상처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진통제를 수시로 삼키는 강두는 붕괴 현장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심지어 철근을 빼돌렸다며 '가해자'가 된 아버지와, 자신을 돌보다 스러진 엄마 대신 일찍 철든 동생의 보호자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거리로 내몬다. 그러나 강두가 진통제를 수시로 삼키는 이유는 그저 그곳에서 다친 상처의 고통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과 함께 나오지 못한, 홀로 갇힌 그의 곁에서 먼저 숨을 거둔 소년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그에게 악몽으로 수시로 찾아와 간에 독성이 있는 '파란 약'을 움켜쥐게 만든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은 또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 동생의 보호자로 그곳에 갔던 문수는, 사고 당시의 구체적 상황을 그녀의 머리에서 지워버린다. 하지만 기억은 없지만 죄책감은 남았다. 동생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그 짐은 딸 잡아먹은 년이라 욕을 들어 먹으며 꿋꿋하게 목욕탕을 지키며 날마다 술과 함께 사는 엄마의 보호자로 자신을 가둔다. 나지도 않는 기억을 들추는 대신 온전히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며 하루하루를 짊어지며 살아가는 것이 이제 막 피어나는 청춘 문수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 붕괴된 에스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두 사람만이 아니다. 이른바 '책임자'로 지목되어 그 대가로 스스로의 목숨을 거둔 설계자였던 건축가의 아들 서주원(이기우 분)도, 서주원과 연인이었지만 시공사 사주의 딸로 하루아침에 서로의 이해 관계가 달라진 정유진(강한나 분)도 여전히 그 날 그 곳에 머물러 있다. 



내가 이 손 안놓는다. - 강두 
드라마는 이렇게 에스몰 붕괴 사고와 관련된 이해 관계로 얽힌 네 젊은이들을 내세웠다. 기억해서, 혹은 기억하지 못해서, 그리고 남겨져서 아픈 그들은 우리 시대가 겪었던 그 '참사' 후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초반 그들 각자의 트라우마를 곡진하게 살피던 드라마는 그러나 '트라우마'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사이>의 가치는 재난 후일담을 넘어,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그 벽을 깨고 온전히 자신으로 다시 서는 젊은이들의 '승리담'에서 빛난다. 스스로 각자 자신의 무게로 짊어졌던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용기있게 세상의 몫으로 던지며, 그들 각자가 웅크렸던 동굴 속에서  한 발씩 내딛는다. 

에스몰 현장에 다시 세워지는 쇼핑몰 현장에서 구색을 맞추기 위해 세워진 추모비를 부순 강두, 그리고 주원의 호의로 그의 설계 사무소에서 에스몰 자리에 다시 세워지는 건물 설계에 간여하게 된 문수, 그리고 아버지의 업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다시 그 자리에 선 주원, 그리고 여전히 그를 놓지 않는 유진, 네 사람은 반성없이 되풀이 되는 부실 공사의 재연 현장에서 각자 자기 어깨 위에 얹힌 짐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 짐을 풀어놓는데, 바로 '사랑'이 매개가 된다. 

우연히 깡패들에게 맞은 채 골목 구석에 쭈그려 피를 흐리던 강두를 발견한 문수, 그리고 그들의 우연같은 에스몰 현장에서의 만남, 우연같은 필연을 통해 그들은 서로를 통해 그 '기억'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자신의 나침반으로 강두를 주원이 현장에 보내듯, 강두와 문수는 외면하는 대신 추모비 재건립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나간다. 그를 위해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남겨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두 사람,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걸음씩 들어서는 자기 자신, 그 버거운 길을두 사람은 손을 잡고 걸어간다. 사랑을 통해 용기를 얻고, 그 용기를 통해 자신을 풍성하게 하는 대승적 사랑의 길을 느리지만 꿋꿋하게 <그사이>는 지난 16부의 시간을 걸어왔다. 

마지막 회, 간 혼수에 빠지며 위독했던 강두에게 기적과 같은 새 삶이 찾아왔다. 아니, 그에게 찾아온 건 그저 '기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 삶은 죽을 뻔한 강두에게만 찾아온 것도 아니다. '과거'에서 각자 힘 닿는대로 도망치려 했던 '피해자'들이 스스로 다시 과거를 직시하고, 거기에 얽혀진 매듭을 풀어나가며 그들에게 덮여있던 두터운 딱지는 아물었고 비로소 세상의 공기와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이 모두에게 찾아왔다. 강두에게 남겨진 유산의 땅, 에스몰 붕괴 사고 그 중심에 붕괴 사고 현장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추모비, 그 상처입은 기억의 불편함에, 강두와 문수는 입을 모아, 시간이 흐른다고, 잊는다고 상처가 덮어지는 것은 아니라 강변한다. 오히려, 기꺼이 그 불편함을 내 안에 껴안을 때, '기억'은 역사가 된다. 삼풍에서 시작된 '재난 후일담'은 결국 2018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잊지말자'고 다짐한다. 


by meditator 2018. 1. 31. 04:36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그 '사회적'이란 말이 어느덧 '인간'의 족쇄가 되는 시대다. 21세기를 상징하는 문명인 '인터넷'과 'sns'는 어느 덧 '인간'을 잠식하기에 이른다. 퇴근을 해서도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전송되는 메일, 잠시라도 다른 곳에 정신을 둘라치면 몇 개, 몇 십 개, 심지어 몇 백개가 쏟아져 오는 카톡, 범람하는 페북의 언어들, 그리고 일거수 일투족 아니 그 사람 자체가 증명 사진이 되어 나열되는 '인스타', 이 많은 매체들 사이에 그리고 이른바 '사회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맺은 관계들 속에 과연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해 <sbs스페셜>이 택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고독'이다. 





3박4일 절대 고독의 시간
'고독'의 문을 연 건 4명의 젊은이다. 임현욱(19), 박형순(22), 윤어진(21), 박소현(27) 네 사람은 3박4일의 일정으로 자신을 1.7평 방에 가둔다. 하지만 '가두는 게' 쉽지가 않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해 끝까지 사수하다, 그 마저 못하게 되자, 자신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상대로 셀카 연습을 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이들은 영락없는 21세기형 인간이다. 

하지만 결국 핸드폰을 빼앗기고, '생각'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다고, 혹은 '생각'을 하면 우울해 질까봐 싫어하던 이들이 '포기' 버튼의 유혹을 이겨내며 하루의 시간을 지냈다. 그리고 마치 면벽 수도하는 수도승들에게 던져진 화두처럼 그들에게 던져진 질문, '나는 누구인가?'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도달하기 위해, 우선 각자 지금 자신이 빠져있는 그 '무엇'을 털어내야 하는 관문이 있다. 

이제 막 수능 시험을 마친 현욱에게 '자아 성찰'이란 쓸데없는 것이다. 공부 못하면 노답인 세상에서 자신을 되돌아 보는 건 쓸데없는 것이며, 그럴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4 명은 공통적이다. 현욱이 수능을 핑계로 생각을 미뤄두었다면, 소현씨는 주중에 자신이 하는 쇼핑몰 일이 끝나는 주말까지 커피 전문점 알바를 하며 홀로 생각에 빠질 시간을 피한다. 집에 와서도 늘 인터넷 동영상을 틀어놓고, 사람들의 '말소리'에 빠져있는 그녀, 그런가 하면 윤어진씨가 빠져있는 건 '셀카', 하루 종일 수백에서 천 장이 넘는 셀카를 찍고, 그것을 보정하여 인스타에 올리고 그 반응을 지켜보느라 바쁜 그녀에게 생각할 여유는 당연히 없다. 박형순씨는 잠이 부족할 정도로 '관계'와 '관계'의 사슬에 자신을 얽어매어 놓는다. 

이렇게 그 '무언가'에 빠져 자신을 돌아보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는 네 사람은 본의 아니게 1.7 평의 '독방'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빠져있는 것, 그것들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니, 그곳에 자신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누구였는가, 누군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는 네 사람, 그들이 마주한 자신의 역사에는 고등학교 시절 80kg이 넘는 몸무게로 상처받았던 소녀가 있고, 홀로 사는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또한 부모님이 정해주신 세상의 길을 따라, 반항을 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것을 꿀꺽 삼켜버린 소년이, 게임만 하며 세상과 담을 쌓았던 청년이 있다. '셀카'에, 대학에, 관계에, 그리고 쉴틈없는 일상에 매몰되어 놓치고 있었던 자신을 그 누구의 권유도 아닌, '고독'을 통해 마주한 네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지금 누구인지 마주한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20박21일
네 사람의 강제 독방 3박4일이 다큐 제작진에 의한 모의 고독 실험이었다면, 20박21일의 강제 고독을 선물로 주는 회사도 있다. 건설 설계 소프트 웨어 세계 1위를 자랑하는 국내의 한 IT업체, 그곳에 면접을 보러 간 응시생은 뜻밖에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당혹스러워 한다. 하지만 이 질문을 받는 건 이 회사에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직원 한 명당 1년치 식비가 무려 1000만원인 직원들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이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20일간의 '자기에로의 여행'을 선물한다. 

온전히 업무를 손에서 놓고 제주로 온 여행, 한라산을 등반하고, 바다 바람을 맞으며 매일 매일 쪽지로 전해지는 이 회사의 사관인 '나, 세상, 삶, 일'에 대한 자기 성찰의 시간을 보낸다. '리본 더 라이프'라 칭해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주가 원하는 건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거, 매일매일의 화두에서 답을 얻은 사람도, 혹은 답을 얻어내지 못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온전히 '내 안에 숨겨져왔던 나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었고, '용기를 내서 내 삶의 질문을 대면'하는 시간이 된다. 

네 사람의 3박4일 실험적 고독, 그리고 생각할 시간을 주는 '리본 더 라이프' 자기 성찰 프로그램을 통해 다큐가 말하고자 하는 건 분명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고독'은 박소현씨의 말처럼 혼자 생각에 빠지다 보면 우울해지는 건, 스스로 자기 안에 자신을 가두게 되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들이 범람하는 시대, 그 넘치는 '관계맺음'이 '나'를 소외시켰다 주장한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고독의 시간'! 그저 3박4일 혼자 있었을 뿐인데, 자신의 문제들을 스스로 짚어보고 진단하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대면하는 사람들,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 '생각할 시간'을 선물하는 회사, '인간은 고독 속에서 성장한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와 자기 수련의 터널을 지나 다큐가 도달한 건, '오롯이 나 자신'이다. 그리고 그 '오롯한 나'에는 그 누구의 가르침이나 지침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자기 회복력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있다. 
by meditator 2018. 1. 29. 05:17

해방 후 우리의 현대사를 규정한 건 '전쟁'이었다. 같은 민족이 서로 적이 되어 죽이고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우리 현대사의 생존 방식에 진한 자국을 남겼다. 그렇다면, 2018년 현재는 어떨까? 전국민이 금을 모아 2001년 예정보다 3년을 앞당겨 조기 졸업했다는 IMF, 그 '경제적 사건'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을 삶의 전쟁터로 몰아넣고 있다. 2018년 새해를 맞이하여 EBS가 특집으로 마련한 <인터뷰 대한민국>, 그 포문을 연 건 바로 1998년 IMF 생이다. (1월 20일 방영)




열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아빠 
오늘의 뉴스 대낮부턴 오락실엔 
이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데 
혀끝을 쯧쯧 내차시는 엄마와 
내 눈치를 살피는 우리아빠 
늦은 밤중에 아빠의 한숨소리 
가슴이 아파 무거운 아빠의 얼굴 
                           - 최준영 작사,곡, 한스밴드, 오락실 중

굳이 사전적 의미를 덧붙이지 않아도 이제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단어,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 그 두 단어가 우리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IMF 이후이다. 97년 1월부터 대기업 부도 사태로 시작된 외환 위기, 97년 11월 IMF에 지원을 요청한 우리 정부는 IMF의 정책에 따라 부실 기업 퇴출 및 은행 구조 조정 전면화를 시작하였다. 덕분에 국제 통화기금 차입금을 전액 상환하고 예정보다 빨리 IMF 체제를 조기 졸업했다지만, 그 과정에서 1997년에서 98년까지 문 닫은 기업만 4만개, 1999년 8월 기준 실업자 136만 4000 명, 6.25의 상흔을 고스란히 겪어낸 선인들 못지않은 생존의 고통을 21세기의 대한민국은 겪었다. 아니 겪고 있다. 

외환 위기 당시 IMF가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일방적인 룰을 적용하고, 초긴축 정책을 취해 국민들이 필요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았다. 
                                  - 2010, 7, 스트로스 칸 당시 IMF 총재 

I'm Fired 나는 해고되었다
대전에 사는 63세의 정진철 씨 그가 페인트 일을 한 지도 어언 11년이 되었다. IMF 당시만 해도 충청도에서 가장 잘 나갔던 은행 충청 은행의 지점장이었던 그는 1998년 6월 1차 은행 퇴출 결과로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었다. IMF 기간 중 유독 퇴출과 합병 등으로 '정리 해고'가 심했던 은행 구조 조정의 희생 당사자였다. 무너진 평생 직장의 꿈, 누군가는 이혼하고, 누군가는 자살하고, 20년이 지난 그 시절을 사람들은 애써 덮으려 한다. 살아남은 정진철 씨에게 닥친 IMF는 그 개인의 일이 아니었다. 장남 하나만 잘 되면 한 집안이 일어난다던 시절, 쫓겨난 장남에 충격받으신 어머님은 결국 쓰러지셨다. 사업도 해보고, 놀기도 하다, 겨우 지인의 소개로 페인트점에서 일한 지 십 여년 여전히 그의 품안엔 예전 신분증이 남아있다. 



98년 IMF 생들의 현재는?
그렇게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를 겪으며 거리로 몰린 아버지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자란 98년 생들, 2002년 올림픽 때는 5살, 2009년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신종 플루로 학교를 못가기도 했고, 2014년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세월호를 겪었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이 청년들의 현실은, 바로 역사 저편의 단어로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는 IMF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늘엔 별이 참 많이 있구요, 난 그 별에서 제일 가깝게 살고요, 
햇살이 좋아 빨래도 잘 말라요, 그곳에서 난 꿈꾸네 
                                               - 장미 여관, 옥탑방 중


포항에서 상경해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채현진은 옥탑방에 산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방음 제로의 자취방, 야경이 이쁘고, 다리가 튼튼해 진다는 500에 35, 그곳에 살기 위해 방학에도 귀향을 하지 않고, 무서운 밤길을 견디며 알바를 한다. 

'어디나 불편함은 있는 거잖아요. 서울에 방 한 칸 있다는 사실로도 만족해요,'

기숙사 신청은 어렵고, 기숙사 신축을 놓고 주민과 갈등하는 현실, 500, 1000, 3000, 보증금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질, 같은 학교를 다니지만 누군가는 학교 주변을 몇 십 바퀴 돌아 500만원짜리를 겨우 얻는가 하면, 누군가는 부모님 돈으로 쉽게 학교 앞의 안락한 공간을 얻는, 극과 극의 삶의 조건, 

'대학 하나 다니려면 돈을 탈탈 털어서 바쳐야죠, 주거, 학비, 진로 다 얽혀서 어렵죠.'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정현진 씨는 이제 대학 1학년이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피디가 되고 싶어 신방과에 진학했고, 디자인에 재능이 있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문구 용품을 판매하고 있는 이 재주많은 청년, 하지만, 꿈꾸고 도전하는 삶대신 안정을 택했다. 그런 그녀의 선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건, 검찰청 실무관으로 있는 그녀의 어머니, 함께 직장을 다녔지만, IMF로 은행을 다니던 친구들이 명퇴를 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는 그녀에게 이른 선택을 권했다. 

실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사람들의 56.6%가 선택한 이유, '안정된 일자리', 실제 어머니 이은희 씨가 다니는 직장에 신입 직원으로 들어온 사람들 중에는 연, 고대 출신도 빈번하다. 꿈꾸고 도전하는 삶 대신 선택한 안정이 행복하지 않으면?이란 질문에 정현진 씨는 '끊임없이 생계를 걱정하는 것보단 행복하지 않을까요?'라며 반문한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여기 또 다른 98년 생이 있다. 아니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한때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 내복값이라며 10만원을 봉투에 넣어 내밀던 청춘이 있다. 2017년 1월 전주 아중 저수지에서 자살로 추정되는 홍수연 양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특성화고 3학년 LG 유플러스 콜센터 실습 중 이었던 홍 양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취업 100%를 달성하기 위해 학생들의 불업 위장 취업을 강요하는 마이스터고, 하지만 같이 들어갔던 홍수연 양의 열 몇 명 중 결국 남은 건 두 세 명, 현장 실습에 나갔던 학생 들 중 적응을 하지 못하면 돌아오는 건 혹독한 징계.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중 컨베어벨트에 끼어 팔이 부러지고 허리와 목을 다쳤던 아버지, IMF로 대량 해고가 게속 되던 시절, 결국 아버지는 이렇다할 직장을 얻지 못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걱정해서 취직해서 돈 벌다가 공부하고 싶으면 하겠다며 버티던 홍양은 결국 견뎌내지 못했다. 

콜센터, 이른바 고객 대응 노동자의 93%가 겪는 언어 폭력, 서비스업에서 요구되는 더 중요한 능력은 미소와 친절보다 말도 안되는 요구나 기분 나쁜 말에 '무뎌지기', 무뎌지지 못한 홍양은 자신을 던졌다. 비록 어려웠지만 소중했던 딸의 죽음은 부모의 삶마저 파괴했다. 눈물로 지새우던 어머니는 2011년 뇌출혈로 사망했고, 세상이 싫어진 아버지는 연고 하나 없는 섬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홍양만이 아니다. 2017년 11월 현장 실습생이지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이민호 군은 제품 적재기에 목이 끼어 목숨을 잃었다. 2018년 하반기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 실습이 전면 폐지될 때까지 꽃다운 청춘들은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과중한 노동에 시달렸다. 



다큐는 보여준다. IMF 체제를 졸업한 우리나라가 지난 20년간 얼마나 빛나는 경제적 신장을 이뤄냈는가를, 하지만, 또 다른 화면에서 보여진 건, 그 성장의 잔혹한 그림자들이다. <인터뷰 대한민국> 1부, <1998년 IMF생>을 통해 다큐는 말한다. 2018년의 대한민국, 이제 막 청춘에 첫 발을 내딛은 98년 청춘을 통해 바라본 현실은 아직 끝나지 않은 IMF의 상흔을 그대로 드러낸, 그래서 그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젊은 세대에게 짐지운 또 다른 전쟁터이다. 


by meditator 2018. 1. 27.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