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명구가 무색해진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 잊혀진 독서의 계절을 뜻밖에도 부추키는 건,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며 정현종의 시 '방문객'으로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이다. 그러나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문학적'으로 만드는 건 작품 속 곳곳에서 인용되는 독서의 욕구를 부추기는 문학 작품들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문학이 무색하게도, 문학이 해야할 작품을 통해 자신을 투영하고 직시하며 반성할 수 있는 '문학적 역할'을 드라마가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문학'보다 더 '문학적'이다. 




사람이 온다, 그의 19호실과 함께 
계약 결혼을 통해 낯선 두 이방인이었던 남세희(이민기 분)와 윤지호(정소민 분)가 '사랑'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을 드라마는 정현종의 '방문객'으로 알렸다. 그저 월세 세입자가 필요했고, 몸 뉘일 방이 필요했던 두 사람은 본의 아니게 한 공간에서 살며, '사랑'하지 않는다는 편의적 이유로 성큼성큼 서로의 삶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 되도, 정현종의 '방문객'은 그저 사랑의 문학적 수사로 그칠 수 있었다. 가랑비에 옷적듯이, 그러나 때론 옷과 가방을 집어 던진 채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돈 대신 비싼 오토바이를 부수는 걸 감수하고, '갈음'이란 표현에 섭섭하고 상처주고 싶어하며 가까워지던 두 사람은 결국 진짜 '키쓰'를 통해 사랑의 통과 의례를 겪어간다. 그리고 사랑하며 그 사람의 세계에 성큼성큼 발을 들이니 거기엔 남세희의 집에 마주한 두 사람의 방처럼, 이십 여년, 혹은 삼십 팔년을 웅크리고 살아왔던 각자의 19호 실에 맞닦뜨리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들 해왔다. 이 이상한 수학 공식에는 홀로 맞서기 힘든 세상을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하나가 되어 함께 헤쳐나간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 부부의 하나됨이 하나의 가족을 만들고, 그 가족이 이 사회의 '가족주의', 때로는 '전체주의'의 바탕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2017년의 젊은이들은 사회 경제적 이유로 그런 '가족'을 이룰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그런데,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그런 사회 경제적 이유를 넘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지금까지 '우리'라 정의 내려진 그 명제에 대해 새로운 이견을 제시한다. 



그 이견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건 바로 연애 7년차, 아니 전 연인인 양호랑(김가은 분)과 심원석(김민석 분)커플에게서이다. 한 통장에 미래의 꿈을 부으며 원석의 자수성가와, 그를 통한 성공적 결혼과 안락한 가정을 꿈꾸던 호랑-원석 커플은 7년차에 이르러서도 앱 개발에 성공하지 못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원석의 사회 경제적 처지로 인해 흔들린다. 호랑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고 선배 회사에까지 들어갔지만, 호랑이 원하는 결혼까지 하려면 5년을 더 기다려 달라는 원석의 요구에 호랑은 절망한다. 그리고 결국, 원석은 자신이 호랑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하고 호랑은 원석의 집에서 짐을 뺀다. 

너와 내가 구분되지 않고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뭉뜨그려져온 두 사람, 하지만 7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두 사람의 이해는 쉽게 만나지지 않는다. 연애는 좋지만 결혼은 물음표라는 원석과 결혼이라는 골문을 향해 모든 과정을 감수했던 호랑의 이해 관계는 결국 매번 어긋나고 만다. 원석이 자신의 꿈을 포기해도 쉽사리 합의에 도달할 수 없는 이 커플은 결국 7년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각자 자신을 직시하기에 이르른다. 

19호실에서 나와 사랑의 광장에서 
호랑, 원석 커플의 파경은 결국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연애와 결혼이 그 옛날 단칸방에 함께라는 이유로 행복하던 그 시절의 결혼이 이 시대에 유효하지 않다는 걸 증명한다. 그건 시대가 달라져서도, 사회가 달라져서도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달라져서인 것이다. 즉, 이 시대의 결혼은 분명 남과 여의 결합이지만, 그 남과 여는 각자의 삶과 주관이 분명한 개인들의 결합이라 드라마는 말한다. 

그래서 우수지(이솜 분)가 너무 좋아 그녀가 쏘아대는 화살마저도 내가 맞고 그녀가 조금 편해졌으면 하는 마상구(박병은 분)는 사랑하는 그녀에게 '우리가 함께하면 다 해결될 거야'라는 고백 대신, 세상에 상처받고 자신의 19호실에 갇혀있는 수지가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와 싸우기를 독려하고, 자신이 그 응원군이 기꺼이 될 꺼라 말한다. 분명 '함께'이지만, 두루뭉수리한 집단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삶의 주체로써 서있는 개인으로서의 '결합'을 전제한 고백이다.

 

드라마 속 전직(?) 드라마 작가인 지호는 바로 이런 자신들의 처지를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를 통해 빗대어 설명한다. 가사 노동에 지친 한 여성이 자신만의 '공간'을 얻기 위해 기꺼이 '불륜'의 오해조차 감내한다는 이 파격적인 이야기는 이 시대 자신의 삶을 올곧이 살아내는 개인들의 현실을 절묘하게 상징해 낸다. 

자신의 집에 집착하는 세희, 자신이 머물 방이 필요했던 지호가 그 자신들의 '공간'이 필요해 전 시대의 유산이라 할 '결혼 제도'를 이용하는 장치는 그래서 더 상징적이다. 그런데 이제 그 공간을 공유한 그들은 서로로 인해 마음 속의 공간이 생겨,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로코'의 형식을 띠지만 21세기의 실존을 적나라하게 담보해 내고 있기에 그 '로코'의 과정조차 녹록치 않다. 

'사랑하다보면, 그 사람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엇인가 모르는 구석이 생긴다. 나의 세계 속에서 자라는 상대가 점점 울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 이것은 내가 상대의 세계로 더 깊이 걸어들어왔다는 뜻이다. 사랑의 세계에서 공간은 늘 광장처럼 드넓다.'

그 흔한 삼각 관계의 등장, 12년전 세희와 동거를 하고, 아이까지 가졌던 고정민(이청하 분)의 대두는 남세희와 윤지호의 사랑 전선에 위기를 불러온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긴장을 통해 오히려 그간 두 사람 각자의 19호실의 방문을 열어젖힌다. 방문객이란 시집 속에 갈피처럼 끼워넣은 고정민의 영원히 사랑같은 건 하지 말라던 그 명제에서 세희는 비로소 깨어나기 시작했으며, 지호는 그간 묻어두었던 작가의 꿈을, 아니 작가를 하기 위해 겪었던 고통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이제 2회차를 남은 드라마는 그래서 뜻밖에도 '함께'하기 위해 각자 해결해야할 과제에 주인공들이 무거워진다. 그 각자 자신의 방 속에 묵혀둔 그 짐 보따리를 풀어내고 나서야, 이들은 자신의 19호실을 나와, 함께 할 '공간'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각자의 '자존'과 '실존'이 우선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권하는 '사랑'과 '결혼'이다. 
by meditator 2017. 11. 22. 14:25

19일 개봉된 <전체관람가>의 다섯 번째 작품 <보금자리>는 임필성이라 쓰고 전도연이라 읽어도 무방할 만큼 화제성에서 감독의 명망을 압도한다. 그러나 전도연마저 압도하는 건, '설마 저게 사실이야?'라는 반문이 이어지는 <보금자리>가 다루고 있는 가정의 모습이다. 


하지만 반문이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2010년 4월 세 자녀 아파트 특별 분양 제도를 악용하여 아이를 입양하고 되팔아 시세 차익을 챙긴 일당이 구속됐다. 이미 2008년에 이와 같은 사례가 무더기 적발된 바 있다. 국내 입양의 경우 보호 시설에 있는 아동일 경우 부모의 동의 없어도 입양이 가능하며 그 대가로 금전이 오가더라도 처벌할 법이 없는 실정이라,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는 사안이 되었다. 



전도연이 설득해낸 가족의 이기심 
임필성 감독은 바로 이 공공연한 위법 사례에 착안하여 자신이 선택한 '하우스 푸어'의 문제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왜 전도연이었을까? 임필성 감독의 영화 <보금자리> 상연이 끝나고 mc와 감독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전도연이 등장한 순간, 영화는 올곧이 그녀의 관점에서 흘러가기 시작했다고. 즉 아파트 분양을 위해 편법으로 아이를 입양한다는 부정적 설정조차, 임신한 주부 전도연이 엄마로, 아내로 등장한 순간, 이야기는 관점을 달리한다. 영화 데뷔 20주년을 기념하여 독립 영화 진흥을 돕고자 기꺼이 참여한 전도연의 취지는 그 어느 때보다 배우 전도연의 존재감을 빛낸다. 

그녀가 입양한 탁이를 바라보는 불안한 눈빛, 위태로운 태도는 고스란히 <보금자리>를 보는 관객들의 감정으로 전이되어, 이 '가정'을 지키려는 자와, 혹시나 모를 가정의 안정을 위태롭게 할 외부자의 경계선이 분명하게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저 나약한 이방인인 한 소년은 순식간에 호러와 스릴러의 주인공으로 돌변하여 전도연이 아내와 엄마로 분한 가정을 위협하는 강력한 요소가 된다. 영화를 마친 후 우스개로 그저 칼을 좋아하고 잡채를 좋아했으며 욕을 좀 할 줄 알고, 문도 좀 딸 줄 아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을 지도 모를 소년 탁이는, 하지만 15분이라는 시간이 마치 150분이라도 되는 듯 그 어떤 영화보다 위태로이 가정을 위협했다. 

'가정'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의 작품은 대부분, 가정을 지키려는 자와 그런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위협하는 자로 대치된다. 하지만 그 익숙한 소재는 시대와 설정에 따라 다양한 궤적을 가지고 가정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만든다. 지난 2010년 전도연의 다른 작품인 <하녀>에서나, 그 작품의 원작인 김기영 감독의 여러 작품들에서 돌출되는 가정의 비극들은 결국 가정의 안녕이라는 그 지상 명제의 위협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파탄의 주범이 '이방인'이라면, 하지만 영화를 끝나고 되돌아 보게 되는 건 결국 그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이기심'과 그로 인한 '폭력' 이다. <보금자리>에서도 남편과 아내는 기꺼이 '아파트'를 위해 '위법'인 입양 사기에 주동자와 동조자가 된다. 그저 평범한 아이 하나를 키우고 또 다른 아이를 가진 부부가 '집'을 위해 다른 아이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파렴치범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 부부는 그들에게 할당된 아이를 탐탁치않게 여기기까지 한다. 결국 잠시 이용하고 '파양'할 것이면서. 더욱 놀라운 건,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도 잠시의 껄끄러움을 차치하고 곧 그런 부부, 특히 전도연이 분한 아내의 방어적인 태도에 공감하고 동참하게 된다는 지점이 바로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공중파 드라마로 온 가족의 이기심
이렇게 노골적으로 가정을, 그리고 가정의 경제적 안위를 위해 위법과 탈법을 오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기심을 폭로한 설정은 공중파 드라마로 가면 보다 교묘하고 유연해진다. 매주 신기록을 세우며 드라마의 설정 하나하나가 검색어가 되는 <황금빛 내인생>은 바로 이런 '가족의 이기심'을 구체적으로 해부해 나간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양미정(김혜옥 분)의 이기심으로 자신의 딸과 재벌가 노명희(나영희 분)의 딸이 바뀌고 이 사실이 폭로되며 양미정이 집안이 파탄이 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저 양미정이 저지른 범죄 뿐일까? 이제 드라마는 양미정이 은석이를 지수로 만들 당시 노명희의 사연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과연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눈 앞에서 딸을 보고도 줄행랑치게 만들었을까? 또한 이제 와 자식을 바꾼 것이 문제가 된 양미정은 그때도 자식을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은석의 친부모를 찾지 않은 것 역시 또 다른 이기심의 발현이다. 

하지만 이것만일까? 노명희는 자신의 딸이 양미정의 집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점령군처럼 양미정의 집을 찾아가 온갖 수모를 주며 딸을 되찾아 온다. 물론 양미정의 놓친 자식에 대한 이기심으로 비롯되었지만, 20여년 동안 자신의 딸을 키워준 '은인'이 졸지에, 딸을 빼앗아간 파렴치범이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수모를 당하던 양미정의 순간 어깃장으로 바뀌어 노명희의 집으로 들어간 지안(신혜선 분)은 어떻게든 노명희의 집 가풍에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이제, 사실을 알게된 지수(서은수 분)가 스스로 찾아간 노명희의 집에서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밥상머리 예절에서 부터 시작하여 매사에 지수는 어깃장이다. 정식으로 지수를 환영한다는 가족 정찬에서 주르륵 늘어서있는 일하는 사람들과 차려입은 가족들의 정장과 깍뜻한 예정을 비웃으며 라면을 청해 먹는 지수의 독불장군식 행동은 시청들들을 갑론을박의 토론장으로 빠뜨린다. 

<황금빛 내인생>은 매번 이런 식으로 '가족', 혹은 '가정'이라는 틀을 기준으로 안녕과 안위를 토론대 위에 놓고, 편가르기를 유도한다. 매회 급박하게 전개되는 사건은 그 사건만큼이나 시청자의 호불호를 갈리며 입장을 나뉘게 한다. 누군가는 밥상 머리 예절도 못배운 지수가 못마땅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예전에 지안이 쩔쩔매던 상황을 떠올리며 지수의 그런 도발이 속시원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노명희가 수호하는 배타적인 가족이 전제되어 있다. 

<보금자리>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파트를 얻기 위해 불법 입양까지 감행하는 가족에 감정을 이입하는가, 아니면 그 집안에 이방인으로 들어온 탁이에게 시선을 주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되듯이, <황금빛 내인생> 역시 양미정의 가족과 노명희의 가족을 어떤 시선에서 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입장에 서게 된다. 




이기심에 빠지게 만드는 배경은?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평범한 가족'이 집을 얻기 위해 위법을 감행하게 만드는 배경이다. 마찬가지로, <황금빛 내인생>에서 자고로 '검은 머리 짐승 거둔 복은 없다'는 옛 속담을 증명하듯 20년을 가족처럼 살아온 양미정의 집안에 점령군처럼 나타난 노명희의 부로 증명되는 '황금'의 위력이다. 

오늘날 우리가 '가족'이라 칭하는 그 존재의 역사를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인가를 놓고 여전히 학자들은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보금자리>나, <황금빛 내인생>이 논하고 있는 가족은 하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래 자녀들이라는 '핵가족'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 핵가족은 산업사회 사회가 탄생시킨 가족의 형태다.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 그 노동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어머니와, 그녀의 보호 아래 자라나는 가족들이라는 핵가족의 형태다. 하지만, 이제 이 가족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위태롭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집값에 가족이 머물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평범한 가족이 불법을 넘나든다. 비록 불의의 사고로 인한 입양이지만 20년을 한결같이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황금'을 지닌 부 앞에서 초라하게 갈갈이 찢게 진다. 가족만일까,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황금빛 내인생>의 소현경 작가의 노회함은 <보금자리>에서 임필성 감독이 직설적으로 논한, 시청률보다도 시청자들의 그 손바닥뒤집듯한 '가족 이기주의'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가족'이라 손가락질 할 것도 아니다. 행동대장은 가족의 이기심이지만, 그 이기심의 배후엔, 그것을 조장하는 '사회'와 어느 틈에 부가 족벌이 된 세상이 있는 것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그 황금빛 사회 속에서 가족은 지키려 하면 할 수록 갈가리 찢겨 나간다는 점이다. 
by meditator 2017. 11. 20. 16:01

극중 지호의 나레이션은 말한다.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의 해피엔딩은 키쓰로 마무리된다고. 하지만 진짜 사랑 이야기는 키쓰 이후부터 시작된다고. 그리고 그 나레이션답게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키쓰로 해피엔딩이 아니라 키쓰로 시작된 '진짜 사랑'의 결을 섬세하게 그려가고자 한다. 


모쏠 지호, 육체적 욕망에 눈뜨다. 
일반적인 로맨틱 멜로의 드라마에서 '환타지'로 이어가는 사랑이라면 훈훈한 남녀의 라고 쓰고, 15금에 어울리는 연애로 연결되리라. 하지만 늘 예상 밖의 서사를 이어가는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두 사람의 첫 키쓰를 모쏠에 달팽이가 부러운 작가 지망생 지호(정소민 분)가 앞으로도 키쓰 따위는 해볼 수 없을 것같아 다짜고짜 버스 정류장에서 자신에게 솔직한 덕담을 해주었던 세희(이민기 분)의 입술에 박치기를 한 것으로 도발하는 것으로 관계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키쓰, 그리고 사실상 진짜 키쓰를 그런 지호의 키쓰가 사실은 키쓰가 아니라 일방적 입맞춤이었으며 진짜 키쓰는 이런 것이라며 세희의 도발로, 그리고 이어진 두 사람의 네버엔딩일 거 같은 키쓰신으로, 그리고 일방에서 쌍방으로의 관계 전환으로 극적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이번 생은 처음이라(이하 이번 생)>는 거기서 한 발 더 '어른'의 연애로 이야기를 진전시킨다. 키쓰를 통해 모쏠 처음으로 연애에 입문하게 된 지호는, 키쓰 이후 진전된 스킨쉽의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며 혼돈스러워 한다. 자신도 모르게 한 침대에서 자고 싶다며 혼잣말을 하고는 '쓰레기'라 머리를 흔들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키쓰의 후유증에 정신을 못차린다. 심지어 귀걸이 착용 과정에서 낯선 여자의 손길에 얼굴이 붉어질 정도다. 

여중, 여고를 나와 작가가 되기 위해 정진하느라 연애에 한 눈 팔 사이가 없던 모쏠의 이 흥미로운 설정은 그래서 오히려 현실적이다. 성적 자유가 판치는 세상이라 하지만 상당수의 여성들이 tv의 동화적인 설정으로 연애를 배우고, 엄마의 지휘 아래 관계를 설정해 가는 세상에서, 키쓰 이후 자신에게서 용솟음치는 본능을 쓰레기나 변태로 취급하는 장면은 그래서 현실적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제 막 사랑을 하게 된 상대방을 향해 끊임없이 바래지는 욕망을 솔직하게 그려내는 <이번 생>은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지호는 고양이를 찾아 세희의 방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시집에서 지난 사랑의 아픈 흔적을 발견한다. 흔한 사랑 이야기라면 그걸 오해와 질투의 복선으로 사용하겠지만, 비록 모쏠이지만 '어른'인 지호는 생각해 보니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자신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세희의 아픔을 기꺼이 이해하는 것으로 그 '발견'을 풀어낸다. 그러기에 그녀에게 찾아온 욕망도, 다짜고짜 19금의 도발 대신, 주저함과 갈망의 밸런스로 드라마는 풀어간다. 키쓰를 더 해도 될까요? 라고 묻는 세희의 배려와 함께. '변태'가 아닌 자연스런 어른 연애의 한 과정으로. 


2017 여성들, 그 욕망의 향배는?
드라마는 그렇게 이제 모쏠 탈출을 눈 앞에 둔 지호와 함께 수지, 호랑, 세 여성의 욕망을 충실하게 그려낸다. 그간 세 친구 중 가장 자유분방했던 수지는, 그 자유분방함의 이면의 숨겨진 그녀의 사회적 욕구를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다. 맞춤 브래지어 사업에 그 어느 때보다도 흥미를 보이면서도 어렵게 들어간 연봉 높은 직장에 대한 연연함과 비혼주의는  우리 시대 젊은 여성의 또 다른 현실태이다. 

호랑은 다를까? 인간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유지되어 온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바로 호랑의 모성적 갈망이다. 안락한 환경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다는 그 욕망이야말로 시대와 사회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유지시켜온 본원적 기능이다. 단지 사회적 자아가 보다 부각되는 사회에서 안타깝게도 하랑의 욕망은 '전근대적 대접'을 받게 되지만 엄연히 '취집' 역시 여전히 우리 사회 여성들의 선택지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의 욕구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단지 안타까운 건, 그 욕망의 방점과 발화점이 자신이 아닌 '상대방의 조건'에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런 각자의 욕망을 가진 그녀들이 2017년이란 구체적인 현실에 몸담고 있다는 것이 드라마 속 각자의 상황을 다르게 빚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시작되며, 일도 잃고, 갈 곳도 없이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은 터널 속을 헤매게 되었던 지호는, 뜻밖에도 집세도 깍아주는 집주인을 만나, 방도 얻고, 이제 마음의 공간도 함께 공유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정말 다행히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녀보다 나이도 많고, 직장도 확실한 안정된 경제적 지위의 남성과 사랑을 시작하게 된 행운을 얻어서이다. 여전히 그녀의 직업은 알바이지만, 2년 계약 결혼의 위상은 어쩌면 달라질 지도 모른다. 

반면 어려움에 봉착한 지호를 위로하던 친구들의 현실은 오히려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계약 연애에,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수지는 모처럼 두 눈이 반짝이는 일을 찾았지만, 현실은 그녀에게 꿈을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한다. 모텔을 전전하는 연애는 그녀를 비혼주의자로 만들고. 

더 어려운 건 호랑이다. 서른 줄 7년의 연애, 자수성가한 사업가를 꿈꾸며 만난 연하 남친은 아직도 이십줄에, 자수성가의 꿈은 여전히 옥탑방에 머문다. 사랑을 한다지만, 결혼이라는 현실 속에서 호랑이 원하는 모성 욕구는 벽에 부딪치고 만다. 앱 개발이라는 일확천금의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고, 그녀를 위해 포기한 꿈과 새로운 직장은 여전히 원하는 가정을 꾸리기엔 미흡하다. 새마을 운동 하던 시대를 지나 산업 역군의 시대에 가진 것 없이도 결혼하고 아이낳고 가정을 꾸릴 수 있었던 이전 세대는 상상할 수 없는, 2017년 가진 것없는 젊은이들의 욕망과 꿈은 이렇게 옥탑방에서 좌절된다. 

by meditator 2017. 11. 15. 17:38

5회를 맞이하여 네 번째 단편영화 제작기에 돌입한 <전체 관람가>는 '단편 영화' 활성화를 위한 영화 감독들의 외도라는 취지를 넘어 매회 새로운 기록,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 장윤철 감독이 실사 영화와 게임의 콜라보를 하는가 하면, 에로 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봉만대 감독이 가족영화를 찍고, 이원석 감독이 노래방 뮤지컬이라는 신장르를 열었다. 그리고 이제 네 번째 영화의 주인공 박광현 감독은 헐리우드에서 2000억이 든다는 히어로 액션 블록버스터를 15분짜리 단편 영화에 담는다. 


3000만원이라 불가능해서, 가능해진 블록버스터 품앗이
3000만원 초저예산의 단편 영화와 블록버스터라는 이 모순의 조합, 영화는 산업이다라는 것이 우리 사회 대체적인 담론이 된 현실에서, 애초에 액션물을 하고자 했지만 제작비로 인해 '노래방 뮤지컬'이라는 신장르로 급선회한 이원석 감독처럼 주어진 제작비는 영화 자체를 규정한다. 그런데 박광현감독은 애초에 '3000만원이 판타지다'라며, 과감하게 그 '돈'으로 제한된 제작 환경을 뛰어넘어 버린다. 3000만원의 한도 내에서라는 현실적 조건을 '구걸'과 '협조'로 대응하며 17년간 하고자 했지만 '투자'라는 벽에 막혀 이루지 못했던 박광현 감독의 로망을 단편 영화라는 틀에 과감히 담아내 버린 것이다. 



감독은 말한다. 아마도 장편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단편 영화 활성화의 취지와, 단 3일의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들이, <웰컴 투 동막골(2005)>, <조작된 도시(2017)>를 함께 했던 스탭들과 유명 디자이너, 심지어 밥차까지 십시일반 '노력과 자본'의 동원을 해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가능한 제작비가 꿈을 실현시킬 품앗이의 기반이 된 것이다. 덕분에, 박광현 감독은 제작 지원을 받은 엑스트라 100명과, 제작비 3000만원으로 세팅한 현장 외에, 단편 영화에서 무려 카메라 3대의 지원과, 의상, 미술, 제작 과정의 모든 사람들의 도움과, 밥차 등등의 '구걸'을 통해 15분짜리 단편 블록버스터를 완성했다. 







영웅이 못생겼다면?
그러나 12일 방영된 박광현 감독의 <거미맨>을 그저 제작비를 넘어선 품앗이라는 지점의 신기록으로만 기억해서는 아쉽다. 오히려, 거기서 진짜 로망은 일찌기 90년대 장준환 감독의 <방구맨>, 김곡, 김선 감독의 <드릴 소녀>와 같은 기발한 상상력의 계보에 놓여있지만, 결코 투자받을 수 없는 비운의 b급 히어로물의 구현과, 그보다 더 투자받기 힘든 '불편할 정도의 직관적 현실 묘사가 투영된' 뚝심있는 현실 반영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묘미다. 

외모 지상주의를 자신의 주제로 선택한 박광현 감독은 대작 <스파이더맨>의 패러디에 기반한 오늘의 '적나라한 투영'이다. 실제 항문에서 거미줄이 분사되는 거미가 히어로물 주인공이 되어 손에서 거미줄이 발사되는 <스파이더맨>과 달리, 그래서 박광현 감독의 히어로 <거미맨>은 항문에서 거미줄이 나온다. 또한 늘씬한 몸매의 히어로대신, 늘씬하고 잘 생긴 건 악당에게 양보하고, 배나오고 팔다리 가는, 심지어 가면을 벗었는데 대머리가 땀에 가닥가닥 절어있는 얼굴은 '시나노'급의 현실 아저씨 영웅이 등장한다. 심지어 그가 초능력자가 되는 과정도 어린 시절 동네 또래들에게 집단 이지매를 당하는 과정에서이다. 

젊음의 성소 '클럽', 그곳에서 사건은 시작된다. 자신의 잘생김만을 믿고 못생긴 여성 파트너를 발차기로 날려버리며 '클럽의 수질 관리'를 탓하는 악당의 등장. 그 소란에 불만을 표출하던 과객과 클럽의 주인은 가면을 벗은 그의 멀끔한 외모에 '비난'을 '감탄'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그에게 신체적 학대를 당하던 여성의 못생김에 오히려 '악당'을 응원하기에 이르는데. 그때 암전과 함께 하늘에서 등장한 황금빛 거미, 

하지만 현실은 항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미줄에 의존해 궁색하게 내려오는 것도 모자라, '주관적 액션'에서는 헐리우드 히어로물의 멋짐을 한껏 발산하지만, 현실은 그를 악당으로 오인한 경찰들과의 아저씨들 동네 떼싸움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궁색한 영웅, 거기에 그만 가면까지 벗겨지는데. 

영화의 정점은 가면이 벗겨졌어도 여전히 '정의'를 수호하려는 거미맨과 악당과의 1;1 대결장면, 클럽에 모인 사람들은 분명 악당이 보인 나쁜 행동들의 목격자였음에도, 그의 잘생김에 매료되어 악당을 응원한다. 그가 거미맨을 쳐박을 때마다 클럽에 울려퍼지는 환호성.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 초라하고, 거기에 영웅연했지만 악당에게 무참하게 짓밟혀 더 불쌍해진 거미맨 앞에, 그의 이름 '수호'를 부르며 나타난 첫사랑. 영화가 끝난 후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 '엄청난 뚝심'답게 박광현 감독은 3000만원의 환타지로서의 단편이 가진 기회에 타협하지 않고 굳건한 주제로 마지막을 장식하여, '내 얘기같아 슬프다'는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묵직한 환타지 영웅물을 탄생시킨다. 





<거미맨>은, 박광현 감독은 묻는다. 늘 이겨야만 혹은 '우생학적 적자'만 주목받는 세상에서, 영웅은 무엇일까?를 묻는다. 의도는 가졌지만 성공해내지 못하는 영웅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제작비의 신화를 넘어선 '외모 지상주의' 세상에 화두를 남긴다. <거미맨>은 겨우 15분인데, 마치 한 시간을 넘는 장편 영화을 본듯한 감상의 무게를 남긴다. 굳이 이명세 감독이 지적한 '단편 영화의 폼에 장편 영화를 끼워넣은 듯한 한계'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15분을 통해 보여질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도전과 주제 의식이 <전체 관람가>의 도전을 무한하게 확장했기 때문이리라. 적은 제작비, 제한된 제작 환경이 아니라, 한국의 자본주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편이 단편이기에 풀어내어질 수 있었던 박광현 감독의 <거미맨>은 단편의 위상을 새롭게 부상시킨다. 



by meditator 2017. 11. 13. 16:05

50부작의 대장정을 시작했던 <황금빛 내인생>이 이제 절반의 반환점을 눈앞에 두고 회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kbs2 주말 드라마의 아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21회 32.3%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드라마 시작 초반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박시후와 관련된 잡음이 무색하게 한 회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빠르고 예측 불허의 전개는 역시 소현경! 이라는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한다. 오히려 시청자들은 작가의 또 다른 화제작 <내딸 서영이>의 기록을 과연 <황금빛 시청률>이 언제 깰 것인지를 관전 포인트로 삼고 있을 정도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은석, 아니 지안
그간 가슴졸이며 벌여놨던 서태수(천호진 분)-양미정(김혜옥 분)의 가짜 딸 사기 사건은 20회를 기점으로 들통나고, 은석이었던 지안(신혜선 분)은 거리로 내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당연히 집으로 돌아갈 것이란 기대와 달리, 찜질방과 거리를 전전하던 은석이 아닌 지안은 가족들과 함께 놀러왔던 바닷가에서 홀로 추억에 잠기다 결국 숲속에서 약병을 입 속에 털어넣는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은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이 걷잡을 수 없어져 버린 '친딸 사기 사건'의 시작은 단순했다. 오래도록 딸을 찾았지만 그때마다 사기꾼들에게 농락만 당했던 재벌가 최재성(전노민 분)-노명희(나영희 분) 부부, 그래서 이제는 은석이라는 이름조차 집안에서 생소해질 즈음. 그들에게 친딸의 생존 소식이 바로 그 딸을 유괴했던 당사자들로부터 도착했다. 그리고 그 유괴범들을 닥달해 찾아간 서태수-양미정의 집, 다짜고짜 들이닥쳐 기세등등하게 자신의 딸을 내놓으라는 노명희에게 양미정은 순간 진실을 바꿔버리고 만다. 

남편의 사업 실패 이후 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왔던 가족들, 그런 가운데에서도 재벌가의 잃어버린 딸이었던 지수가 가족들의 사랑 아래 부족함없이 자라온 반면, 쌍둥이지만 언니였던 지안은 그녀가 도전한 세상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갖은 허드렛일은 다하면서 정규직이 되고자 했던 해성 어패럴은 그녀 대신 낙하산인 그녀의 친구를 선택했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도경과의 악연은 그녀에게 차 수리비 명목의 수모를 안긴다. 더는 버틸 수 없다며 좌절하는 딸 지안을 지켜봤던 엄마 양미정은 도도한 노명희의 요구에 순간 다른 선택을 한다. 

<황금빛 내인생>은 그렇게 엄마 양미정, 그리고 딸 지안의 궁핍으로 부터 비롯된 뒤틀린 선택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물신주의'를 짚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극 초반 양미정의 선택에 이은, 그녀의 앞에서 아버지가 차마 진실을 꺼낼 수조차 없게 만든 지안의 선택은 결국 진실이 밝혀졌지만 당신의 딸을 괴롭히겠다는 노명희의 선전 포고, 돌아오지 않는,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딸, 그리고 자살이라는 결론을 통해 일단락된다. 

엄마와 딸의 '물신주의적 욕망'의 행보,
숟가락의 빛깔로 구분되는 세상, 우리는 쉽게 자신이 타고난 숟가락이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는 '운명론적 사고'에 매몰된다. 바로 이 오늘날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 '운명론적 사고'에 소현격 작가는 마치 복권처럼, 하지만 사실은 '도발적인' 음모를 통해 그 욕망을 점검한다. 

엄마 양미정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자식을 위해서라고 다짐한다. 자신의 딸이 죽고 으슥한 인가에서 어린 지수를 만났을 때, 그냥 두면 죽었을 것이라며 자신의 딸처럼 끌어안았던 그 '이기적 모성'은 변함없이 이제 다시 그냥 두면 스스로 고사될 것같은 딸 지안을 위해 거짓말을 해버린다. 그리고 나머지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딸을 키운 대가로 음식점을 받는다. 남편의 사업 실패 이후 경제적으로 쪼달리던 양미정의 모성은 그 해결책으로 기꺼이 '돈'을 선택한다. 

딸 지안도 그리 다르지 않다. 자신이 사실은 재벌집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는 대번에 태세를 전환한다. 말리는 아빠도, 동생도 아랑곳없이, 그간 세상과의 싸움에서 너무 지쳤던 그녀는 선뜻 재벌가의 딸이라는 자리를 받아든다. 

그러나 그 덜컥 받아든 '황금'은 그녀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금수저가 된 지안의 하루하루는 금수저로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인정 투쟁'의 시간이 되었다. 밖에서 고달팠지만 돌아오면 따수웠던 가정 대신, 형제도, 부모도 피보다 진한 '재벌가'라는 위계 속에서 자신을 버텨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마치 작가가 88만원 세대에게 당신들이 원하는 그 '수저'의 삶도 만만치 않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재벌가로 들어간 지안의 하루하루는 고달프다. 소현경 작가는 흔히 주말 드라마들이 빠지기 쉬운 흙수저 집안의 가족주의 vs. 금수저 집안의 이기주의라는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절묘하게 지안이 무엇을 탐했고, 외면했는가를 그녀의 선택 이후의 과정을 통해 통렬하게 짚어낸다. 

그리고 이제 진실이 밝혀지며 양미정, 지안 모녀는 외적으로는 자신들이 저지른 사태에 대한 감당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며, 동시에 자신들이 따른 '물신주의적 선택'이 낳은 생각지도 못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자식을 위해서라며 자신을 합리화했던 모정의 선택은, 큰 아들의 외면은 물론, 편의적으로 행복을 위한 선택이라던 두 쌍둥이 딸 중 그 누구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결국 '가족'을 잃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또한 자신만을 생각하며 재벌가로 들어갔던 지안은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그간의 과정에서 보인 자신의 걷잡을 수 없는 선택에 대해 깊은 회한에 빠지고, 그 결과 법적 처벌 이전에 자기 스스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극단적 선택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게, <황금빛 인생>을 위해 선택했던 엄마와 딸의 이기적 선택은 가장 처절한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드라마의 한 장을 마무리한다. 흙수저의 어긋난 로또는 이렇게 자기 반성과 회한으로 종결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흙수저의 도발과 그 '처리'의 과정에 집중했던 드라마는 또 다른 수저, 금수저 집안의 반성과 회한이라는 2막을 열고자 한다. 그 2막의 시작은 그래도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도 사랑으로 보다듬어졌던 지수의 도발적 재벌가 행으로 열어진다. 


 

by meditator 2017. 11. 12. 18:40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미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혜수의 열연으로 <미옥>이어야 할 이유를 설득함과 동시에, 김혜수의 캐릭터가 가진 태생적 한계로 인해 <미옥>이라서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을 안게 된 영화인 듯 싶다. 


모성적 수동성으로 소모되는 여성
<미옥>은 지난 6월에 개봉한 <악녀>에 뒤이어 다시 한번 여성 캐릭터를 원톱으로 내세운 느와르 액션 스릴러 영화의 계보에 놓여있다. 두 영화 모두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19금이라는 장르 영화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악녀>가 현란한 살상씬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의 존재를 증며하려 였다면, <미옥>은 언더보스 나현정의 주도 아래 호텔의 cctv 아래에서 벌어지는 범죄 조직이 배후가 된 '성접대'의 적나라한 행위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을 드러낸다. <악녀>에 홀로 건물 몇 층에 포진해 있는 양아치 무리들을 피칠겁을 하며 홀로 싸워내며 주인공임을 드러내는 숙희(김옥빈 분)가 있다면, <미옥>에는 그와는 정반대로 화면으로 벌어지는 그 '성의 항연'을 지휘하는 마스터로서의 미옥, 아니 나현정이 있다. 캐릭터의 활약상 그 양상은 다르지만, 영화는 그렇게 여주인공의 대단한 능력을 전면에 드러내며 존재감을 설명한다. 



하지만 그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들은 결국 영화의 중반 이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상황을 주도해가던 능력이 무색하게 자신에게 닥친 '모성성'의 한계로 인해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만다. 킬러로 거듭난 숙희가 자신의 목숨 대신 선택한 아이와의 안온한 삶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거두어 살며 '사랑하는 이와의 가정'을 꿈꾸듯이, 나현정 역시 자신이 잉태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적진에 뛰어들어 조직을 살리고, 그 조직의 언더보스로 성장해, 이제 범죄 조직에서 재계 유력 기업으로의 마지막 관문만을 남긴 상태이다. 하지만, 범죄 조직의 성공적인 전향은 언제나 그렇듯 성공적일 수가 없다. 정작 누수는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부터 시작되어, '어머니'로서의 그녀를 도발하고 '어머니'로서 그녀를 파멸과 최후로 이끈다. 

아마도 <악녀>도 그렇고, <미옥>도 영화의 만듬새나, 배우의 열연보다 더 '폄하'되는 이유에는 그 도발적인 등장의 여주인공들이 자신에게 닥친 운명에 허무하게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끌려들어가고 파멸에 이르른다는 점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본질은 어쩌면 '모성'보다는 '수동성'에 더 방점이 찍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모성이거나, 사랑을 한다는 것이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어서는 아니다. '낙태가 허용되는 세상'이라고 해서 모든 여성이 모성이기를 거부할 것이라는 편견처럼. 오히려 문제는 '사랑'을 하고, '어머니'가 된 여성이, 그 상황에 '주체'가 되지 못한 채, 끌려들어가 '휘발'되어 버린다는 점이 본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애초에,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으면서도, 여성이 느와르, 혹은 액션 스릴러의 주인공이 되는 것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만든 이의 편견이, 멋들어지게 여성으로 부터 시작된 영화를, 여성의 운명적 비극으로 막을 내리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원초적 의심을 갖게 만든다. 

충돌하는 세 욕망의 치킨 게임
그런 면에서 더욱 <미옥>은 아쉽다. 김회장이라는 보스가 있지만 실직적 '언더 보스'로서 범죄 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성접대'를 매개로 '전향'을 조직적으로 이끌어내는 보스 나현정을 그렇게 밖에 소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애초에 자신의 아이로 인해 보스에 절대 충성을 바치는 조직의 2인자라는 캐릭터도 그렇지만, 보스의 유고 이후 오로지 자신의 아이만을 위해 치달리는 모성으로서의 그 향배가, 캐릭터의 입지를 축소시킨다. 



그럼에도 <미옥>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각자 자신의 욕망이 구체적인 세 인물들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치킨 게임이다. 도대체 왜 이선균이 조폭을? 했지만, 왜 이선균이어야 했는지가 설명되는 이선균이 분한 상훈의 비극적 순애보라 쓰고 '소유욕'이라 해석되는 사랑. 그런 이선균의 사랑을 도발한 이희준이 분한 최대식의 폭력적인 자기 보신욕, 그리고 이런 이들의 욕망이 도화선이 된 나현정이 된 미옥의 '안락한 전향욕구'라 쓰고 위장된 모성이라 읽일 수 있는 이 세 욕망의 접점은 흥미롭다. 이들은 '조직'의 일원이지만, 막상 그들의 '행동'의 동인에 '조직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개인적 욕망으로 추돌한다. 당연히 그들의 욕망 앞에 조직은 소모적으로 소용될 뿐이다. 

그래서 차라리 어설픈 모성에의 헌사 대신, 이 최대식과 상훈을 그리듯이 나현정 역시 어설픈 모성에의 헌사 대신, 그녀의 액션만큼이나 그간 언더보스로 닦여온 범죄 조직의 2인자 다운 생존과 보존과 안위, 그 욕망의 발현이었다면 오히려 <미옥>은 좀 더 치열한 느와르로서의 성취를 이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남겨진 고민들. 
그간 김혜수의 전작이었던 <차이나타운>, 그리고 <악녀>, 그리고 <미옥>은 여성을 전면에 내세울 수 없었던 느와르 장르에서 여성을 앞세운 차별성으로 관객들을 공략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전면'에 내세웠다는 홍보성을 뛰어넘어, 여성의 자기 주도성을 내적으로 이해하는데 한계를 보인다. 저 정도를 '주체적'인 여성이라 생각하고 있었는 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그 누구 한 사람의 오류나 오인이라기 보다는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사는 여성'에 대한 시대적 이해가 부족한 지점의 소산이라 보는 게 맞을 듯싶다. 그런 면에서 이들 영화가 흥행에 부진을 겪는 지점 역시 과연 그런 전면에 내세운 여성의 캐릭터에 대한 일천한 이해때문인지, 아니면 어쩌면 아직도 사람들에게 여성이 전면에 나선 느와르에 대한 이질적임 때문인지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고민해볼 여지를 남긴다. 


by meditator 2017. 11. 12. 02:06

mbc의 월화 드라마 <20세기 소년 소녀>와 tvn의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2017년을 살아가는 2,30대 여성들을 드라마의 '주체'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동일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두 드라마의 성과는 전혀 다르다. 돌아온 한예슬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20세기 소년소녀>는 그 화제성이 무색하게 2%대의 시청률에서 고전하고 있다. 반면, 남자 주인공, 표절과 관련된 잡음으로 시작에서 부터 삐걱거렸던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그 초반의 문제들을 불식시키며 매주 케이블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화제의 드라마가 되고 있는 중이다. (10회 4.197%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가입 가구, 전국 기준)


물론 공중파와 케이블의 시청률을 수치상으로 비교하는 것이 애초에 무리라지만, 그럼에도 <20세기 소년 소녀>의 부진은 명확해 보인다. 똑같이 동시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다른 온도차를 보이는 건 무엇때문일까? 아마도 이 두 드라마의 희비를 엇갈리게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현실감'때문일 듯싶다. 



내 얘기같아 마음아프고 마음이 가는 <이번 생은 처음이라>
83년 함께 학원 봉고차를 타고 다니면서 우정을 쌓았던 이제는 서른 중반의 동갑내기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드라마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감성을 고스란히 이어 청소년 시절의 풋내기 첫사랑의 정서를 이어가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지만 서른 중반의 그녀들이 보이는 현실의 사랑 이야기에서 여전히 '기존' 이라 쓰고 '진부하다'라고 읽혀지는 '로맨스 드라마'의 클리셰를 뛰어넘지 못한 채 답습하며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다. 알고보니 모쏠인 스타 사진진(한예슬 분)하며, 매번 승무원 복장의 핏을 고심해야 하는 한아름(류현경 분), 초짜 변호사 장영심(이상희 분)의 처지가 그럴 듯하지만 그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어쩐지 어디선가 본 로코의 한 장면인 듯 익숙하다. 

반면, 오갈 데가 없어 계약 결혼을 감행한 전직(?)드라마 작가 윤지호(정소민 분)와 대기업 대리로서 생존하기 위해 '비혼'을 선택한 우수지(이솜 분), 로망은 현모양처지만 현실은 옥탑방 동거 신세인 양호랑(김가은 분) 등이 매회 맞닦뜨리는 결혼과 사랑, 우정의 현실은 '너무 내 얘기같아 마음이 아프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남세희(이민기 분)와 결혼에 골인한 지호, 세입자가 필요한 집주인과 가장 점수가 높았던 세입자라는 계약 관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선택한 결혼이지만 대한민국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변화를 겪는다. 무엇보다 결혼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는 물론, 오해의 해프닝이지만 복남이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달려와 준 세희를 보며 지호는 집주인을 넘어 세희를 남편으로 좋아하기 시작하며 관계의 설정에 변화가 생긴다. 그러나 '사랑'이 시작된다고 섣부르게 덜컥 '로코'의 정석으로 넘어가지 않는게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장점이다. 



결혼, 제도를 넘어선 변화에 대한 미시적 고찰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지점은 그 '마음'의 변화와 함께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하며 겪는 지호의 변화이다. 수지가 칭한 '감배' 모임, 즉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의 사생활에 '감놔라 배놔라'하는 아줌마들의 모임으로 변질된 동창 모임에서 그간 친구들과 소원했던 지호는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며 안온함을 느낀다. 반면 '비혼주의자' 수지는 재수없어 하고, 결혼이 로망이 호랑은 상실감에 시달린다. 

그런가 하면, 시어머니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어 달려간 시댁 제사에서 고단수의 딸내미같다는 칭찬을 들으며 시댁 제사일을 다 떠앉은 지호는, 이른바 '착한 며느리 증후군'이라는 진단과, 수비수로서의 존경을 받았던 전력'이 무색하다는 세희의 평가에 혼돈스러워 한다. 

이처럼 그간 드라마들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한 여성, 혹은 부부 관계를 상투적으로 그려냈던 것과 달리,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미시적'으로 그 제도에 속해가는 지호를 들여다 본다. '감놔라 배놔라'해서 싫다는 수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 소속감이 싫지 않았다는 지호의 마음이나, 적당히 거절할 수 있지 않았냐는 세희의 비난에 착한 며느리 증후군인가 들여다 보면서도 '마음'을 놓치지 않는 문과 출신 지호의 고민은 그래서 오히려 생각할 지점을 남긴다. 



착한 며느리 증후군을 통해 짚어보는 '이데올로기적 관점'도 유효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으로서의 결혼이라는 정서적 결합으로서의 결혼의 그 미묘하고도 복잡한 사회학을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섬세하게 살펴낸다. 

또한, 결혼이 로망인 호랑을 위해 2년 동안 자신이 해오던 일을 접어가면서 까지 '취직을 감행한 그녀의 남자 친구 심원석(김민석 분)과, 하지만 옥탑방에서 결혼까지의 과정은 여전히 아득한 이 커플의 현실은, 개념, 무개념이라 선을 그을 수 없는, 집을 가진 세희와 지호의 고민과 또 다른 지점에서 88만원 세대의 현실을 짚어낸다. 연애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손해를 보고싶지는 않은 수지의 계약 연애 역시 또 다른 현실이기는 마찬가지다. 

by meditator 2017. 11. 8. 13:57

<토르> 시리즈가 첫 선을 보였을 때 미국 등지의 인기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반응이 저조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망치를 휘두르는 토르'신에 대한 낯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필독 도서처럼 우리나라 신화보다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화에서부터 섭렵하며 자란 세대에서 북유럽의 망치를 휘두르는 신은 이질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인문학적 탐구열과 함께 북유럽 신화가 소개되기 시작하고, <반지의 제왕> 등의 붐과 함께 북유럽 정서에 대한 전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유럽의 신은 생소했다. 


오히려 '토르'을 익숙하게 만든 건, 이미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아이언맨'을 필두로 한 슈퍼 히어로 군단의 활약을 그린 <어벤져스(2012)>로 부터라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 흔하디 흔한 출생의 비밀을 알고, 태생적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주신으로서의 자질을 증명하기 위해 지구를 침공하려는 로키(톰 히들스턴 분), 그리고 그런 동생, 사실은 의붓 동생이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기 위해 어벤져스 군단에 합류한 토르(크리스 햄스워스 분)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일견 코믹하면서도 좌충우돌 끊임없이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막장'드라마에서 익숙한 그 캐릭터에 관객들은 매력을 느꼈을 터이다. 그리고 이제 토르 시리즈는 2편 <다크 월드>에 이어, 3편 <라그나로크>로 아이언맨 못지 않은 인기 캐릭터가 되어 극장가를 섭렵한다. 



히어로물에 등장한 신들의 종말; 라그나로크 
그런데 이번 3편의 <토르; 라그나로크(이하 토르)>가 주목할 만한 점은 이미 1편에서부터 차용되어온 토르와 로키를 탄생시킨 북유럽 신화를 절묘하게 버무려 냈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아예 부제를 '라그나로크'라고 한 3편은 북유럽 신화의 종결, 세계의 종말 전쟁을 다루고 있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북부 동일 등지에 살던 노르드 인들을 비롯한 북게르만 민족들의 신화를 통칭하는 북유럽 신화는 영생으로  신들의 세상이 이어지는 다른 지역의 신화와 달리, '라그나로크'라 불리는 신들의 멸망을 다룬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이는 겨울이 1년의 반을 넘는 척박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지리적 환경에 힘입은 바 신조차도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비극적 운명의 서사를 신화의 내용으로 수용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 처럼 다양한 신들이 저마다의 '능력'을 활용하는 다신론에 기반하되, 그럼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가 제우스라는 확고한 가부장적 권위 체계의 규율에 의해 그 질서가 유지되는 것과 달리, 북유럽 신화는 마치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가 곰을 토템으로 섬겼던 부족과 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섬겼던 부족간의 쟁투 과정을 신화화 하였듯이 신화의 역사 속에 부상했던 다양한 민족이 섬기는 신을 북유럽 신화의 근간 속에 수용해 내면서 '티르', '토르', '오딘' 등의 여러 우두머리 신의 집단 중심 체제를 골격으로 삼는다. 그래서 오딘이 신들의 제왕이라 칭해지면서도 정작 천둥의 신 토르가 대중적으로나 그 힘에 있어서 압도적인 등 북유럽 신화에서는 그 권력이 일원적이지 않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오딘과 토르, 로키의 부자 관계 역시 다르다. 오딘과 토르가 부자 사이, 때로는 형제 사이로 전해지는 것과 달리, 로키는 오딘이 데려온 아들이라는 영화적 설정과 달리 거인족 출신으로 오딘과 의형제를 맺은 것으로 신화에서는 그려진다. 하지만 아들이건 형제건을 떠나 오딘과 토르가 제휴 관계인 것과 달리, 신들의 종말 그 시작이 된 로키는 애초부터 신들과는 다른 종족 다른 이해 관계를 가진 존재였다는 것이다. 
영화 속 로키가 적자가 아니라는 자신의 열등감을 끊임없이 사건 사고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다 토르를 어둠의 세계에 가두고, 오딘을 무력하게 만들며 지하 세계의 헬라가 그 힘을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듯, 신화에서 역시 아내와 딸을 잃은 로키의 복수로 부터 종말, 라그나로크는 시작된다. 



신화적 종말에 대한 현대적 해석 
영화에서 신들의 제국 아스가르드와 그 주변에서 오딘이 점령한 9개의 왕국은 신화 속 큰 물푸레 나무, 위드그라실을 중심으로 제일 윗부분에 존재하고, 그 가운데 부분에 인간들의 미드가르드, 그리고 반지의 제왕 등에 등장한 거인과 난쟁이들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나무의 아랫 부분 죽은 자의 세계, 바로 헬라가 돌아온 그곳 저승의 세계가 있는 것으로 북유럽 신화는 그려낸다. 사실 신화 속 헬라는 말썽의 근원인 로키의 딸로 그려지지만 영화는 오딘의 숨겨진 첫 째 딸, 그리고 선한 군주였던 오딘의 지난 날 잔혹했던 정복욕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오딘이 사랑했던 아들 발데르의 죽음으로 초래된 신들간의 갈등, 그것이 극대화하며 라그나로크는 시작되고 결국 저승에 가두어졌던 늑대 펜리르와 뱀 요르문간드가 나타나 신들과 서로 죽고 죽이는 대 멸망이 시작된다. 영화는 그 신들의 전쟁을 저승에서 돌아와 다시금 정복 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헬라 여신과 그 수하 늑대로 표현해 낸다. 오딘의 첫 번째 자식으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여신, 그에 대항해야 하는 역부족의 토르. 그를 돕는 문지기 신 해임달과, 오딘의 전사 발키리와, 결국 합류한 로키까지. 선과 악이라 구분할 수도 없이 각자 신들의 욕망이 뒤엉켜 싸우다 모든 것이 불태워져 세상이 끝나 버리는 라그나로크를 영화는 히어로물의 전형적인 선과 악의 싸움으로 치환해 냄과 동시에 제국의 권력욕과 그에 대항하는 선의 영웅 세력으로 대립시켜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딘으로부터 토르로 이어지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세대 교체도, 그리고 <글래디에이터>의 우주 버전 형식을 통한 아들의 성장사 역시 통과 의례로서 더해진다. 역시나 언제나 자신의 정체성에 모호했던 중간자 로키의 절묘한 선택 역시 빠질 수 없는 관람 포인트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의 전쟁 이후 아스가르드는 불타고, 인간 세상 역시 종말의 전쟁과 이어진 혹한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고 겨우 살아남은 인간들로 신들의 세상에 이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인간의 역사를 막강한 힘의 헬라 앞에 아스가르드를 포기한 토르의 결정, 즉 아스가르드의 존재론에 대한 의미심장한 결론으로 이끈다. 즉 헬라에 의해 지배되더라도 아스가르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신민들, 즉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진정한 아스라르드라는, 북유럽 신화의 '민주주의적 해석'을 통해 신화적 의미를 오늘에 되살려 내며 장대한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신화에서 '신들의 종말'이 '인간의 역사로 대체되는 서사가, 영웅들의 활약상에 힘입어 '정복 군주'의 국가가 아닌, 국가를 구성하는 주체로서의 인간들이 존재하는 그곳, 설사 그곳이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선이라 하더라도,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국가라는 것을 <토르;라그나로크>는 주장하며 시즌 3를 마친다. 그 흔한 쇠망치를 휘드르는 토르을 차용했던 히어로물은 그저 신화적 인물의 차용을 넘어 세계관의 재해석을 통해 시리즈물의 세계를 확고히 구축해 낸다. 이렇게 어벤져스로 규합된 히어로들은 각자 아이언맨의 자본주의적 세계관,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의 국가주의적 세계관에 이어, <토르>의 민주주의적 세계관에까지 다양한 세계관에 대한 질문을 통해 시리즈를 풍성하게 만들며 보는 재미와 함께 생각할 재미를 던져주며 이 시대의 담론을 형성해 간다. 아마도 이 지점에 마블 군단의 독보적인 선점의 또 다른 지점일 것이다. 


by meditator 2017. 11. 7. 15:10

영화 감독들의 단편 영화 제작기를 예능으로 담은 <전체 관람가>는 정윤철, 봉만대 감독의 제작기를 통해 메이킹과 영화의 콜라보의 의미를 십분 발휘해 왔다. 하지만, 정윤철 감독의 <아버지의 검>이나, 봉만대 감독의 <양양>이 게임과 실사 영화의 콜라보라던가, 19금 감독의 전체 관람가 가족 영화라는 신선한 시도라는 측면에서는 주목을 받았지만, 메이킹과 영화라는 균형추에서 영화적 완성도의 아쉬움을 남긴 것도 사실이었다. 그 아쉬움은 3000만원의 부족한 제작비와 짧은 촬영 시간의 핑계로 대신되었었다.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 드디어 단편 영화의 빛을 발하다
하지만 이제 4회를 맞이한 <전체 관람가>는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를 통해, 그런 핑곗거리를 역설적 기회로 활용하며 프로그램 본연의 가치를 제사한다. 부족한 제작비 때문에 액션 영화에서 급 변경된 뮤지컬이라는 장르, 그것도 '노래방' 음향이라는 척박한 환경의 산물이 오히려 이원석 감독이 주제로 삼은 '아재들의 이야기'의 화룡점정이 되어 작품의 빛을 더한다. 

<상의원>이라는 작품이 있지만, 그보다는 그 전작 <남자 사용 설명서>를 통해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했던 이원석 감독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요 이래 <영웅;샐러맨더의 비밀(2010)>을 유일하게 개봉한 극장에서 찾아 볼 만큼 배우 김보성의 팬이었던 자신의 팬심을 영화에 활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김보성만큼이나 <클레멘타인> 등을 통해 액션 배우로 일가견이 있는 이동준 배우와 함께 하고자 한다. 

대중들에게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혹은 광고를 통해 등장해 철 지난(?) '의~리'를 외치는 그 '아재'들의 감성을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여전한 그 무엇에 대한 고찰로 승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원석 감독이 여전한 아재들의 액션 감성을 고수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3000만원이라는 제작비에 엄격한 조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에 의해 대번에 가로막히고 만다. 그리하여 정윤철 감독처럼 '즉흥 환상곡'처럼 아재들의 감성을 역설적으로 '랩권하는 세상' 속에서 구원하고자 발리우드의 한국판 버전 '코리우드 뮤지컬'로 급변경된다. 


열악한 제작 환경이 만들어 낸 코리우드 노래방 뮤지컬 
빠듯한 제작비에 하나 둘씩 톡방을 빠져나가는 스텝들, 그리고 말 꺼내기도 어려운 배우의 섭외 등의 과정은 이제 <전체 관람가>의 통과 의례처럼 지나간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을 여전히 팬이라 알아봐주는 이원석 감독을 위해 혹은 여전히 영화인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감독을 위해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촬영에 성실하게 임해 생전 처음해보는 랩에서 부터 60의 나이에 등에 땀이 나도록 안무를 연습하는 이동준 배우의 '노익장(?)은 그 자체로 한편의 '인간 극장'처럼 다가온다. 

드디어 영화의 개봉, 영화는 신나는 싱어롱 노래방 뮤지컬을 표방하며, 당부의 말을 덧붙인다. 뜬금없는 설정에 이해가 되지 않으신다면 잠시 옆 사람을 보거나 다른 생각을 한 후 본다면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시작된 영화는 여전한 의리의 김보성이 영화 오디션 현장에서 난감한 처지에 빠지는 거승로 시작된다. 어떻게 요구를 해도 변하지 않는 김보성의 일정한 연기는 '갓잇'의 수식어를 요구하는 '랩부심'이 충만한 현장에서 당연히 '거절'을 당하고, 그에게 겨우 마련한 오디션 자리를 소개해준 후배의 타박이 이어진다. 그리고 뜻밖에도 음악이 흘러나오며 김보성의 '시간이 째깍째각~ 흐르는 세월~'하는 노래가 이어진다. 김보성의 노래에 맞춰 방금 타박을 주던 후배의 백댄서 변용까지, 우리가 이른바 '발리우드'라 칭하는 인도 영화에서 흔히 보던 급전직 뮤지컬의 등장 방식을 영화는 그대로 차용한다. 

혼자 술을 마시며 눈시울을 적시던 아버지 김보성 앞에 등장하여 아버지는 '아재'라며 구박을 하는 아들의 대사 역시 '랩'으로 대신한다. 이후 열 번의 오디션에서 계속 물을 먹은 아버지 김보성은 마지막이라며 후배가 권한 영화의 배역 '랩에 빠진 아버지'의 역을 맡기 위해 '랩하는 방법'에서 부터 첫 걸음을 뗀다. 그리고 이원석 감독의 <남자 사용 설명서>에서 등장했던 방식을 차용하며 '보헤미안 랩소디'의 도입 부분처럼 cg를 활용한 김보성의 랩 입문기는 그 자체로 실험적인 영역으로서 단편 영화의 맛을 한껏 만끼하도록 만든다. 

드디어 랩에 빠진 아버지 역할의 오디션을 보는 날, 말이 래퍼지 80년대 촌스러운 운동복에 머리띠까지 두른 어색한 아재미 풀풀 풍기는 김보성 래퍼가 뜻밖에도 오디션 장에서 그처럼 오디션을 보러 온 그와 같은 왕년의 액션 배우 이동준을 만난다. 아내의 롱 털코트까지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과거를 상징하는 트로피까지 들고 온 또 다른 아재 배우 이동준. 

두 사람이 트로트 반주에 어머님을 그리는 노래를 채 마치기도 전에 시작된 오디션, 의상까지 맞추며 등장했지만 빠른 비트 박스에 이동준 배우는 차마 입도 떼지 못한 채 오디션 장을 나서고 만다. 김보성 배우라고 다를까. 하지만 한번의 기회를 더 청한 그는, 그만의 리듬으로 '현실을 피한 돈키호테'로서의 자신의 현실을 토해내고 오디션 장을 빠져나간다. 

얼마 후 두 사람은 다른 촬영의 보조 출연자로 조우하고, 그곳에서도 타박을 받다 잠시 벤치에서 쉬던 두 사람은 아직도 두 사람을 알아보는 왕년의 팬들로 인해 한숨을 돌리고 <라라랜드>의 그 절정의 음악 못지 않은 아재들의 <랄라랜드> 협연으로 영화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새롭지 않지만 새로웠던 아재들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 
영화가 끝나고 많은 감독들이 기립 박수를 쳤고, 눈물로 환대하듯, 이원석 감독의 <랄라랜드>는 웃음과 그 특유의 b급 감성과 그럼에도 그 속에 담겨있는 아재들의 순정으로 인해 한 조각의 '맛있는 케이크'처럼 15분을 60분처럼 느끼게 다가온다. 문소리의 평처럼 김보성, 이동준이라는 두 배우의 현실이 그대로 애정을 가지고 영화 속에 녹아든 아재들의 <랄라랜드>는 '랩'으로 대변되는 흐르는 세월 속에 템포를 맞출 수 없는 '돈키호테'같아졌지만 그래도 '사나이'로 대변되는 '순정'의 가치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나이듦에 대한 긍정적 단상으로 결론내려진다.

이원석 감독의 영화는 새로운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뒤처진 단어가 되어가는 '아재', 그들의 존재 가치를 '코리우드'라는 신조어가 어울리는 노래방 뮤지컬의 형식을 통해, 이제는 아니 예전에도 a급은 아니었지만, b급 그 자체로서도 얼마든지 존재 가치가 있는 '아재'의 존재 가치를 빛낸다. 바쁘게 변하는 세상에, 오히려 변하지 않아 가치가 있어져 버린 영역에 대해 말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김보성, 이동준 배우의 재발견은 물론, 나이들어 가며 세월에 뒤쳐져 조바심을 내는 이들을 위로한다. 우스개처럼 장편이라면 투자를 받지 못했을 것이란 이 <랄라랜드>야 말로 단편만이 해낼 수 있는 독보적인 감성의 승리다. 
by meditator 2017. 11. 6. 17:24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요즘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자랑의 물꼬를 튼다. 친구의 연식으로 보아 공중파에서 한참 인기가 있는 그 어머니들의 출연하는 예능? 아니면 케이블의 인문학 수다?인가 했더니 뜻밖에도 유툽의 항해에 빠졌단다. 지난 촛불 광장으로부터 불붙은 그 친구의 관심은 유툽에 있는 다종다양한 정치 팟 캐스트에 대한 열혈 시청 욕구를 불붙였고. 직장 일로 바쁜 틈틈이 접근성이 좋은 팟 캐스트를 한 편씩 시청하는 것이 요즘 일상의 낙이라고 적극 추천한다. 




팟 캐스트, 그 선두 주자로서의 김어준 
이런 식이다. 어쩌면 공중파의 면구스러운 시청률을 케이블이나 종편 핑계를 댈 것도 없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유툽을 비롯한 다양한 채널의 프로그램에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친구처럼 지난 촛불 정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치적 사안을 펼쳐내는 팟 캐스트가 인기를 끌었고, 그 선두에 '김어준'이 있다는 건 자타공인이다. 

김어준이라 하면, 기억을 거슬러 딴지 일보 총수라는 독특한 그의 이력을 시작으로 아직 팟 캐스트라는 채널이 볼모지인 시절, 2011년 4월부터 '가카 헌정 방송'을 표방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그 주변 인물들을 향한 저격수의 역할을 자처한 <나는 꼼수다>를 당시 주진우 시사인 기자, 김용민 시사 평론가, 정봉주 17대 국회의원 과 함께 시작했다. 18대 대선 하루 전인 33회차를 끝으로 종영한 <나는 꼼수다>는 이후 한겨레 tv와 함께 한 김어준의 <파파이스>, 김용민의 국민tv <맘마이스>, 정봉주의 <전국구> 등으로 확산되어가며 촛불 정국을 달군 팟캐스트 열풍에 힘을 실었다. 

왜 팟 캐스트 였을까? <나는 꼼수다>의 등장에서 부터 보여지듯 이 정치 팟캐스트의 존재는 파격적이었다. 때로는 욕설까지 등장하는 거침없는 언변으로, 그보다 더 직설적으로 '가카'의 존재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이 정치 풍자, 비판 방송에 당시 17대 총선이후 좌절되었던 의식있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다시금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후, 이런 <나꼼수>의 활동이 촉매가 되어 18대 대선 이후 정의당의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등의 정치 까페 등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최근 보여지듯이 정권의 공영 방송 장악과 종편의 파상적인 정치 공세에 좌절한 의식적 대중의 마음에 등대지기 역할을 하며 지난 촛불 정국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정치 팟 캐스트의 역할은 그 어떤 공영방송의 뉴스보다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19대 총선을 성공적으로 이끈데 일조한 김어준과 그의 팟 캐스트는 당당하게 공중파 sbs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이기에 이르른다. 바로 지난 4일과 5일에 선보인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란?
하지만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이하 블랙하우스)>를 그저 개선장군으로서의 행진으로만 보아서는 아쉽다. 오히려 <블랙 하우스>의 존재는 오히려 2011년 이래 줄기차게 이어져 온 김어준의 '가카 헌정 방송'의 절정이며, 또한 동 시간대 방송해온 <그것이 알고싶다>가 타 방송사의 다큐 프로그램들이 정권과 야합하는 가운데에서도 끈질기게 시도해온 정치 비판 다큐의 연장선상에 서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살펴보아야 한다. 

4일의 첫 방송에서 다큐는 화제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그 첫 주자는 다름아닌 유병언 세모 회장의 아들 유대균씨, 외국의 모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그간 '음모론'으로 세간에 회자되던 아버지 유병언의 자살에서 부터 국정원 연계설까지 모든 의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펼쳐낸다. 

그렇게 세간의 의식 속에서 사라져 가던 세월호를 다시 부양시킨 인터뷰는 이어서 <그것이 알고 싶다> 피디와 함께 정창래 국회의원 등과 함께 한 두바이의 비밀 인터뷰를 공개한 박근혜 5촌 살인 사건에 대한 대담으로 이어진다. 이 내용은 이미 <그것이 알고 싶다>, 그리고 김어준의 팟 캐스트 등을 통해 그 일부가 소개되었음에도 그 실체의 진실에 대해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세월호와 함께, 박근혜 정권의 도덕성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렇게 박근혜 정권의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비도덕적 행각을 폭로하는데 거침이 없는 한편, 2회 강유미를 등장시켜 '다스는 누구꺼죠?'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고야 만 '흑터뷰'에서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 아니 이제서야 드러나기 시작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다스로 이어지는 거대한 비리의 서막을 명쾌하게 설명해 낸다. 

즉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지만, 새 정권의 최대의 임무가 '적폐 청산'이듯, 아직도 크게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진 적폐 정권의 그림자를 김어준과 제작진은 드러내 보이기에 거침없었고, 이를 통해 <블랙하우스>의 존재론을 설파했다. 



하지만 과거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2회 강경화 장관과의 인터뷰, 그리고 1회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와 정세현 전 외교부 장관을 등장시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둔 현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하며 '코리안 패싱'은 없다는 해명의 여지도 주는가 하면, 새 정부의 행보에 대한 훈수를 두는데도 서슴치 않았다. 

1,2회 파일럿을 마친 <블랙 하우스>에 비견될만한 프로그램은 아마도 jtbc의 <썰전>이라 할 것이다. 지난 정국에서 <썰전>의 파격적 존재감을 보며 앞다투어 종편에서 그와 비슷한 포맷의 정치 대담 혹은 방담 프로그램을 선보인바 있다. 하지만 <블랙 하우스>는 그런 종전의 방식과는 다른 '김어준'이라는 '총수'로 불리는, 하지만 가장 어려운 정치적 사안도 가장 명쾌하고 단순하게 설득해 내는 그의 존재감에 기대어 새로운 정치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그와 초대 손님의 직설 인터뷰에 이어, 그를 중심으로 한 패널들의 정치 분석, 그리고 강유미와 같은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등장시킨 명쾌한 이명박 전대통령과 다스에 대한 설파에 이르기까지 마치 종합 예능 프로그램처럼 다양한 코너로 정치에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포맷의 이 정치 시사 프로그램은 첫 방 6.5%에 이어 2회 7.8%로 정규 편성의 청신호를 밝혔다.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by meditator 2017. 11. 6. 1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