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이건 또 무슨 신종 여성 비하적 용언가 싶다. 아니다.  '된장녀'같은 어감의 경단녀는 '경력 단절 여성'의 줄임말이다. 하지만 이 '경단녀'들이 사회에서 받는 대접은 어쩌면 '된장녀'보다도 못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어쩌다 보니 직업을 얻은 게 감지덕지, 직장 내 눈총도, 아이들도, 집안 일도 혼자 '버텨내야'하는 게 버거워 눈물 흘려도 그 흘린 눈물도 혼자 쓱쓱 훔치고 다시 씩씩하게 삶의 전쟁터로 나아서야 하는 여성들, 그 여성들의 이야기를 10월 11일 <다큐 시선-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가 담았다. 

이른바 경력 단절 여성, 경단녀는 181만 2천 여명에 이른다. 그 중 30대가 92만 8천명, 30대 중 3명에 1명 꼴이다. 경단녀, 경력 단절 여성이란 말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주부'로 전업하지 않겠다는 다시 '직장'을 구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한 공기업의 나이와 경력을 묻지 않고 뽑는다는 '블라인드 면접',  50명을 모집하는데 590명이 지원했다. 12;1, 이들 중 상당수가 이른바 '경단녀'다. 이렇게 나이와 경력을 묻지 않는 조건이 흔치 않기에 몰릴 수 밖에 없단다. 이 엄청난 경쟁률에서 보여지듯이 '경단녀'들의 '재취업'은 쉽지 않다. 직업을 구하는 이들 중 46%만이 취업에 성공한다. 

 

 

재취업을 위한 조건 
마흔 아홉 주수연 씨는 취업 상담도 해주고 구직도 지원해주는 직업 상담사가 되고 싶어 1년간 공부하여 지난 5월 자격증을 땄다. 시청 콜센터에서 7년간 일을 했고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2년간 경력이 단절되었다. 좀 더 보람있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 선택한 직업 상담사, 하지만 초졸 경력도 없는 그녀에게 새로운 직업의 길은 쉽지 않다. 20곳을 지원했지만 아직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직접 발로 뛴다. 소규모 업체들이 입주해 있는 건물, 일자리 정보, 채용 의뢰를 '스펙'으로 얻기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는 '알바'부터 '직업 상담사'의 먼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단절된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전문적인 자격증'에 도전하는 여성들이 많다. 주수연 씨가 선택한 '직업 상담사'나 요즘 뜨는 '코딩 지도사'등이 여성들이 찾는 새로운 전문직이다.

38세의 김미란 씨는 코딩을 배우는 중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 자격증도 있고, 국내외에서 프로그래머로 활약했고, 학교에서 강의도 했던 그녀지만 9년간의 경력 단절 후 다시 경력을 살리긴 쉽지 않았다. 직장은 그녀에게 무능력이란 '트라우마'를 안겼다. 지각, 조퇴, 잔업 불가는 기혼 여성들에게 따라붙는 이름표같은 것이었다. 아이 컨트롤도 못하는 조직에 피해를 주는 사람이란 낙인이 찍힌 채 위축되었던 기억만을 남겼다. 그녀는 말한다.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결국 이런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과거 자신이 갔던 그 대학, 그 과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녀 주변엔 '소싯적에 한 가락했던' 엄마들이 많다. 하지만, 그녀들이 20대때 경주했던 그 노력과 노력의 결과물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재활용도 안된다고 그녀는 단언한다. 그래서 그녀도 '가정'을 가진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코딩'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여성들의 '경력 단절'로 인한 손실은 195조원에 달한다. 그 중 임금 손실이 184억원으로 94.3%에 달한다. 단절된 경력을 회복하기 위해 하지만 이전의 경력을 다시 되살리지 못한 여성들의 상당수가 '사회 서비스 업종'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직업의 특징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임금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직업들은 불안정성을 띠고 있으며 지속적이기가 쉽지 않다. 

23년 경력이 단절된 정인화 씨는 매일 6시면 출근을 한다. 그녀가 하는 일은 노인 요양원의 '청소'업무. 취미가 회화이고, 사회 봉사도 했고, 강의도 했었지만, 막상 남들 다 따놓은 요양 보호사나, 사회 복지사 자격증 하나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래도 무기 계약직이 되어 64세 정년도 보장된다. 그러나 '일이 밑바닥이지 사람도 밑바닥이 아니라'는 말을 되새김 할 정도로, 취업 과정에서 그녀가 겪은 좌절감은 컸다. 결국 정인화 씨와 같은 설움을 겪지 않기 위해 다수의 여성들이 각종 자격증 시험으로 몰려든다. 

 

 

경단녀라서 
그런데 '경단녀'를 선호하는 곳도 있다. 성실하고, 결근도 하지 않아서 좋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긍정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닌 경우도 있다. 

김우희씨는 아픈 작은 아이를 위한 갖가지 약봉투를 챙기고 오늘도 출근 길에 나선다. 10년간 학원 강사로 일하던 그녀, 매일 10시에 끝나는 강사 일로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는 없었다. 6년간 두 아이를 낳고 돌보고, 그래서 이제 다시 그녀가 직장을 얻은 곳은 인터넷 기반의 회사. 10시 출근 7시 퇴근, 하지만 아이의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그녀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출근을 하고, 조금 일찍 퇴근을 한다. 12시간 교대를 하는 남편은 집안 일을 도와줄 수 없는 형편, 이른바 '독박 육아'의 처지. 그래서 160만원의 박봉이라도 지금의 직장이 감지덕지다. 

그녀가 제일 힘든 건, 그런 그녀의 처지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싶지만 현실은 친정 엄마표 밑반찬으로 때우는 한 끼.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회사에 죄송해하며 버티는 생활, 그래도 너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위로'가 필요하다며 눈물을 흘린다. 

3자녀를 둔 미영 씨도 그리 다른 처지가 아니다. 2년간의 경력 단절을 극복하고 '웹 디자이너'가 된 그녀, 오전 10시에서 4시 30분, 한 달에 겨우 130만원 남짓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족하단다. 

이처럼 경력 단절 여성을 고용한 직장은 그녀들의 '약점'을 활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이'라는 약점, 그녀들의 '시간'이라는 약점이라는 틈새를 파고들어 출퇴근을 보장하며 낮은 임금, 열악한 처우를 감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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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자체들이 출산지원금을 주니 출산율이 높아졌다'고 국감에서 보고가 됐다고 한다(연합뉴스). 그러나 '자화자찬'과 달리, 출산율의 감소세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02년에서 2016년까지 40만명이던 출생아 수가, 2017년에는 35만명, 올해는 32만 명이 될 것이라 예측된다(중앙일보 시평, 식상한 인구 이야기 중). 젊은이들 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해 회의적이지 않은 이들을 드물다. 

전문가는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보장된 육아 휴직과 공보육이라고. 정규직이나, 안정적 일자리에만 국한된, 그조차도 일부 직업군에만 보장된 육아 휴직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것이 곧 경력 단절로 이어지는 '헬게이트'의 시작이 된다. 그에 이은 전혀 양질이지 않은 공보육. 

상대적으로 보장된 육아 휴직 제도를 가진 여성 군인들의 경우, 우리 나라 평균 출산율인 1.17%보다 높은 1.15%가 단적으로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군 보육 시설 대기 인원만 3606명, 60 개소의 어린이집이 필요하지만 군은 2022년까지 겨우 27소를 확충할 예정이다.(베이비 뉴스, 10, 11) 그나마 낳은 조건이라는 여군이 이런 상황인대 대다수 여성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을 거인가는 불을 보듯 훤하다. 어설픈 환심성 정책이 아니라, 진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눈물을 흘리며 낮밤으로 홀로 감내하는 여성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 출산율은 나아질 수가 없다. 



by meditator 2018. 10. 12. 15:45

한글은 언제부더 나랏말이 되었을까? 조선의 국문은 '한문'이라는데 과연 그럴까? 양반들은 백성들과 소통할 때 어떤 글을 썼을까? 사대부 남편은 아내와 자식에게 어떤 글로 편지를 썼을까? 한글, 언문은 정말 아녀자들만의 언어였을까? 그 의문으로부터 ebs 다큐 프라임 한글날 특집은 시작된다. 

'임금이 이르되 너희가 처음에 왜에게 후리어(잡히어서) 인하여 다니는 것은 너희의 본마음이 아니라, 나오다 왜에게 들키어 죽을까도 여기며 도리어 의심하되 왜에게 편들었던 것이니, 나라에서 죽일까 두려워 나오지 아니하니, 이제 그런 의심을 먹지 말고 서로 권하여 다 나오면 너희를 각별히 죄주지 아니할 뿐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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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언문으로 백성에게 내린 글 
1492년 부산포로 상륙한 왜군은 파죽지세로 조선을 점령해 갔다. 5월에는 한양이 함락되었고, 6월에는 평양이 넘어갔다. 7월에는 함경도에서 두 왕자가 잡혔다. 일본군은 관아를 장악하고 마치 고을 수령인 양 백성들에게 쌀을 풀어 회유하며 백성들을 다스리려 했다. 일본군의 서슬퍼런 조총 등의 무력에, 그리고 그들이 나누어주는 쌀에 점점 다수의 백성들이 투항했다. 더구나 나랏님도 도성을 버리고 달아나버린 나라에서 백성들이 택한 자구책이었다. 의주의 선조는 다급해졌다. 전장에서 도망친 군주의 면을 세우기 위해 조정은 고심했다. 그 고심의 결과물로 나온 것이 바로 위의 '선조 국문 유서'이다. 

한글날 특집으로 방영된 ebs다큐 프라임은 이 '선조 국문 유서'에 주목한다. 72주년 한글날 다큐는 그 특집으로 '암글', 언서', '언문', '속문'이라 낮잡아 취급되었다 여겨졌던 '한글'의 존재를 다시 살핀다. 선조가 국문으로 유서를 내린 1593년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150여년이 흐른 뒤였다. 아녀자들이나 배우는 언문으로 취급받은 줄 알았는데,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다다르는 위급한 상황에 나랏님이 한글로 백성들에게 '유서'를 남겼다. 이는 이미 다수의 백성들에게 '한글'이 '소통'의 도구가 되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고 다큐는 전문가의 증언을 통해 말한다.

15세기 한글이 창제된 이후 중앙 정부는 <월인석보>등의 불경 출판물을 통해 한글을 보급하였다. 그런 노력과 함께 후에 발견된 단 한 장으로 이루어진 한문 독본 '언문 반절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은 금세 실용적인 언어로 조선에 퍼져나간다. 그래서 16세기가 되면 사찰은 물론,  각 지방 관아 등에서 실용 언어로 한글이 대중화되기에 이르렀다. 

그 실례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선조의 국문 유서이다. 또 다른 예로, 1592년 진주 대첩 과정에서 초유사로 김시민을 목사로 세우고, 병력 모집 등에 힘쓴 학봉 김성일이 아내에게 보낸 서신이 있다. 경남 산청에서 본가가 있는 안동에 보낸 이 편지에는 다가오는 설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 있다.  자신이 없어도 잘 지낼 것을 당부하며 훗날을 기약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토로한다. 김성일은 이 편지를 끝으로 결국 타지에서 생을 다한다. 결국 이 한 장의 언문 편지가 그의 유서가 된 것이다. 

백성들간의 소통의 문자, 언문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은 계층을 뛰어넘는 소통의 문자였다. 학봉 김성일의 경우처럼 남편이 아내에게, 자식에게, 주인이 노비에게, 혹은 관가의 아전들의 기록과 소통에 두루두루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언문의 대중화'는 언제부터 이루어졌을까? 다큐는 그 예를 '언문 편지'를 통해 살펴본다. 대부분 죽은 이와 함께 매장되었다가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언문 편지는 편짓글이라는  특수성으로 당시의 일상어에 대한 가장 살아있는 자료로, 당시 언문의 대중화 정도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사료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는 1490년대로 추정되는 신창 맹씨의 남편 군관 나신걸이 그의 아내에게 보낸 언문 편지이다. 대전 회덕이 집이었던 군관 나신걸, 하지만 그는 본가에 들리지도 못한 채 함경도로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의 조선 상황에서 한번 부임을 하면 해을 넘겨야 돌아올 수 있는 처지, 아내와 갓난 아이 한번 보지 못한 안타까움을 절절하게 편지로 남겼다. 

1490년이라면 한글이 창제된 지 불과 5~60년 후다. 그런데 벌써 그 당시에 군관이 자신의 아내에게 언문 편지를 썼다는 건, 당시 지방의 여성들조차 한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한글이 빠르게 보편화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조선시대 대중적 언어, 한글 

역시나 이장 작업을 하다 발견된 17세기의 곽주의 편지에는 '자식들이 여럿 갔으니 ...... 수고스러우시겠으나 언문을 가르쳐 보내시옵소서'라며 장모에게 당부한다. 자식들에게는 '언문'을 배워 아비에게 편지를 쓰라 재촉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사대부들 사이에 '언문'은 필수요, 그에 대한 교육열조차 엿볼 수 있다는 것을 다큐는 밝히고 있다. 

 

 
초성, 종성에 씌인 자음과 중성에 씌인 모음을 결합한 글자들을 배열해 놓은 '언문 반절표'는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서당이나 사가에서 언문을 배울 때 널리 씌였던 한글 교재로 장터에서 인쇄하여 팔 정도로 당시 '언문'은 대중적인 언어였다. 

언문의 위력은 어떠했을까? 앞서 선조 국문 유서가 오늘날 사료로 남게지게 된 건 권탁의 공이 크다. 선조의 유서를 받아 본 권탁은 당시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상태입에도 칼을 들고 김해로 갔다. 당시 김해는 왜군들이 득실거리는 지역으로 기피 지역이 되어 지방관이 공석이다시피 한 곳이었다. 그곳에 가서 권탁은 스스로 김해 수성장이 되었다. 그리고 왜군 진영에서 부역을 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임금의 유서를 보여주고 회유, 탈출 작전을 펼친다. 권탁의 의기로 100명의 백성이 탈출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권탁은 죽고 만다. 이처럼 나랏님이 쓴 언문 교서는 초야의 선비를 움직였고, 백성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일부 사대부들만의 전유물이었던 한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미 당시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소통 수단이 된 언문, 한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문'이 나라의 글이 되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894년 고종은 갑오개혁의 공문식 1호로 국문을 사용할 것을 명했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450년만에 나랏말이 된 것이다. 

by meditator 2018. 10. 10. 04:52

sbs스페셜은 지난 1월 4명의 청년을 방에 가두었었다. 이른바 '고독'연습, 공부와 취업, 취직에 내몰린 청년들, 거기에 일상을 사로잡은 sns로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청춘들이 강제된 '고독'의 공간 속에서 3박4일을 보내면서 자기를 돌아보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다큐를 통한 젊은이들의 '자기 성찰 프로젝트'가 이번에는 두 젊은이를 '산사'로 유폐했다. 다름아닌 '인생 단어'를 찾기 위해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부르제, 프랑스 작가 


'인생 단어'라니? - 현실과 꿈의 딜레마를 겪는 청춘들
서강대 기계 공학과 이준우군 ,경희대 역사학과의 유현기 학생,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고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준비를 하는 이 청년들은 각자 나름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준우 군은 마술사다. 한강 고수부지에 나가 그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마술 버스킹'을 하는 한편 각종 생일 잔치나 파티에서 활약 중이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부터 매료된 마술, 하지만 이제 사회 진출을 앞둔 그는 자신의 전공인 기계 공학과 마술 사이에서 고뇌한다. 마술을 좋아하지만 그걸로 먹고살기엔 미흡하고, 공학도로 취업을 하자니 어쩐지 삶이 무미건조할 듯하고, 그런 그가 '인생 단어'를 매개로 산사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실패를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실패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긍정'적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꿈은 직업보다 윗단계이다. 나에겐 '요리사', '마술사', '디자이너' 등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아있다. 
                                      -데니스 홍, 기계공학 박사 


그런가 하면 유현기 학생은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같은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한참 <해리 포터>가 인기를 끌 무렵 탄 지하철에서 그곳 승객들 모두가 <해리 포터>를 읽고 있는 모습에서 '글'의 위력을 느낀 이래, 자신의 길을 '글쓰기'로 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비싼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니 비싼 술을 사먹을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과 '글쟁이'의 현실에서 그는 갈등하는 중이다. 

이렇게 두 젊은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현실' 사이의 딜레마를 겪고 있다. 유현기 학생의 친구들이 말하는 바, 요즘 젊은이들의 이상, '덕업일치'를 꿈꾸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걸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중이다. 바로 그런 '딜레마'의 청춘들이 고독한 산사에서 자신의 '인생 단어'를 통해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여정에 나선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노력은 큰 짐이다. 하지만 그 짐을 기꺼이, 흔쾌히 지고 나며 성취감과 행복이 따른다. 
                                                  -이승엽, 국민타자 


 

 

인생 단어를 통해 길어올린 나

산사의 방, 두 청춘에게 주어진 건 이른바 '인생 사전'이라 꾸며진 국어 사전 한 권 뿐이다. 하루 종일 할 일이라고 산사의 일정 외에는 혼자 사전을 뒤적이며 그 속에서 건져올린 단어를 '화두'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 

청춘을 인도할 인생 단어를 찾기에 앞서, 우선 그들이 지나온 날들을 규정할 수 있는 인생 단어를 찾게 한다. 그런게 길지 않지만 지나온 인생의 단어를 찾으며 뜻밖에도 두 젊은이는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공부하고, 또 대학에 와서도 공부하고, 취업 준비하느라 생각하는 것, 더구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익숙치 않다 못해 낯설다는 준우 군이 선택한 지나온 날을 규정하는 단어는 '관심'이다. 

내 인생의 단어는 '탐구'이다. 2006년 사고가 나기 전 나는 자연 과학자로 바다를 탐구해왔다. 이제 장애인이 된 나는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탐구한다. 
                           -이상묵, 서울대 해양과학과 교수 


고등학교 시절 관심받고 싶어 일부러 질문하기도 했었다고 자신을 돌아보는 준우군, 그가 좋아하는 마술 역시 관심받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짚는다. '관심'으로 부터 시작한 단어는 '인정', '칭찬', '관계, '자존감', '타인'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단어'로 부터 이준우란 존재가 길어진다. 

그렇게 '관계'에 천착한 준우군과 달리, 현기 군이 길어올린 '과거'의 단어는 '외동'이다. 외동으로 자라 '관계'맺기가 서툴렀던 그는 왕따가 된 적이 있다. '외돌다', 외딸다 등 외로 시작하던 단어의 세계를 헤매던 그가 찾아낸 지나온 시간의 단어는 '부빙'. 물위에 떠다니는 얼음 조각을 이르는 부빙으로 자신을 정의한 현기 군은, 얼음이 떠다니며 깍아지듯, 자신도 살아오며 깎여나가며 고유의 장점이 녹아내리기도 했다며 토로한다. 

믿고 싶지 않다. 스스로 알아내고 싶다. 
                             -칼 세이건, 천문학자 


 

 

인생의 나침반- 인생 단어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달리, 마치 무에서 유를 만들듯 앞으로의 삶을 이끌 '나침반'같은 단어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이에 두 청춘이 머무는 월정사의 도연 스님은 '인생 단어'라는 거창한 명제에 가로막힌 두 젊은이들에게 기본의 전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왜 당신의 인생 단어를 찾아야 하는가부터 질문을 던져보라는 것이다. 

그 자신 물리학도로 카이스트에 입학 후 1년 만에 도반의 생활에 든 경험이 있던 바, 그의 인생 단어는 '자유', 그가 말한 자유는 스스로 자신이 찾아낸 이유라는 뜻의 자유이다. 남들은 왜 전도유망한 물리학도를 팽개치고 도반의 길에 올랐는가 지금도 의아해 하지만, 그는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들 사이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낸 자유의 길이었다며 두 젊은이에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라 충고한다. 

그러자 현기 군이 떠올린 건 학교 선배 진남현씨, 전남 오나주 고남면에서 농사를 짓는 서른 살 진남현 씨, 그는 남들처럼 출퇴근을 하며 살아갈 생각은 없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굶어 죽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다 '농사'를 찾았다. 그리고 그 농터에 이제 2회 째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상영하는 '너멍굴 영화제'를 개최한다. 진남현이 말한 행복은 '포기'의 과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덜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과정. 

준우군과 현기군과 함께는 아니지만 인생 단어를 찾는 여정에 동참한 또 한 명의 젊은이 안은섭군은 그 방식을 친구들의 인생 단어 수집으로 부터 시작한다. 서울대에 들어왔다는 성취감도 잠시 한 학기만에 그를 엄습한 건 공허감과 허탈감이었다. imf로 어려워졌던 집안 형편, ceo가 되고 싶어 선택했던 경영학과, 하지만 자신이 되고 싶었던 건지, 되야 했던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과연 내 꿈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그 역시 인생 단어를 통해 자신을 찾아간다.

결정의 기준은 나, 인생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 
                                     -이현세,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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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도, 꿈도 부등켜 안고 
세 명의 젊은이는 결국 각자 자신의 인생 단어를 찾는데 성공한다. 제일 먼저 결정한 건 현기군이다. 비싼 술도 좋지만, 생각해 보니 '무위도식'을 바라진 않았다. 고달파도 자신의 글로 먹고 사는 삶의 보람을 그렸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단어는 '꺼리낌없이 주장되고 발휘된다'는 '창달'이다. 마술과 공학도의 길에서 헤매이던 준우군이 선택한 단어는 뜻밖에도 '책임'과, '중도'이다. 되돌아보니 자신이 소소하게 책임을 다하는 삶을 중요하게 여겼더라는 준우 군, 왜 그런 자신을 몰랐을까 신기하더던 준우 군은 그 '책임'을 다하는 삶을 위해 마술과 공학도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시도를 해보겠다며 산사를 떠난다. 은섭군 역시 '공감각'이란 단어를 통해 자신이 하고픈 '디자인'과 현재 자신이 공부하는 '경영'의 '조화'를 찾는다. 

가장 피상적인 단어'를 통해 접근해 들어간 젊은이들의 인생 나침반 찾기. 자신의 과거로 부터 길어진 단어를 통해, 뜻밖에도 처음과는 다른 자신을 '직시'해가는 과정이 의미있다. 그리고 그로 부터 세상과 함께 살아갈 '나침반'을 찾아가는 여정은 어렵지만 '꿈'도, '현실'도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이 시대 청춘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by meditator 2018. 10. 8. 16:19

,<미스 마 복수의 여신>은 오랫동안 미드에서 활약을 펼치던 김윤진 씨의 모처럽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미국에서의 출연 제의를 받은 작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제치고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이니만큼 과연 김윤진의 선택을 받을만한 작품인가에 대한 촛점이 맞춰진다. 

김윤진 배우는 그 선택의 주된 박진우 작가를 들었다. 조선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여러 작품 중 여전히 명작으로 회자되는 <한성별곡>의 박진우 작가, 이후 <닥터 이방인(2014)>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천재 탈북의사라는 신선한 시도는 인정받았다. 그런데 모처럼 돌아온 박진우 작가가 선택한 건 뜻밖에도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추리 소설가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명탐정 중 한 명인 '미스 마플'이다. 

 

 

주말 드라마로 찾아온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의 여왕이라 불리는 영국의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1890~1976)는 80여편의 작품으로 전세계 103개의 언어로 번역, 40억부 이상이 팔려 기네스북에 등재된 베스트 셀러 추리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은 소설은 물론, 영화, 연극, tv 시리즈로 재가공되어 여전히 세계 각국에서 '활약' 중이다.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을 이끄는 탐정은 늘 프랑스인이라 오해받는 벨기에인 에르큘 포와롱와, 수더분한 동네 할머닌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예리한 미스 마플 두 사람이다. 에르큘 포와로가 1914년 첫 작품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에서부터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까지 아가사 크리스티가 추리 소설가로서 입지를 다질 때까지를 이끈 인물이었다면, 1930년대 이후 추리 소설가로서 정점을 이루던 시기에 <목사관 살인 사건>으로 미스 마플을 등장하여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 소설의 후반부를 빛낸다. 

그렇다면 에르큘 포와로와 미스 마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에르큘 포와로가 등장한 대표작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나, <나일 살인 사건>이듯이 포와로 탐정은 유럽을 횡단하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라던가, 나일강을 유람하는 배처럼 공간의 역동성이 작품의 배경이 된다. 이방의 공간, 지역에 모여든 다양한 출신과 배경의 인물들, 그들이 숨겨온 이력들이 날카로운 포와로 탐정을 통해 해부되고, 그들의 과거의 인연을 통해 사건이 풀어헤쳐진다.

그에 반해, 미스 마플은 영국의 시골 마을 세인트 메리 미드에서 평생을 살아온 독신 노인 제인 마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조용한 시골마을, 그곳에서 뜨개질이나 하며 동네 사람들과 수다나 떠는 할머니, 하지만 그 '동네 사람들'과의 친교 과정에서 얻어진 그녀 특유의 '직관'과 '관찰력'으로 사건을 해결할 열쇠를 얻어낸다. 

바로 이 '마을'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활약하는 여성 탐정을 박진우 작가는 <미스 마>의 주인공으로 초빙한다. '마을'은 그간 sbs장르 드라마가 그간 잘 활용해 왔던 공간이다.  2015년 방영한 <아치아라의 비밀> 에서도, 얼마전 종영한 <시크릿 마더>에서도 '사건'의 중심은 '마을'이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마을, 하지만 그곳에 인간의 본능과 관계들이 엮어낸 사건이 벌어지고, 그곳에서 인간 관계의 복잡한 애증이 그것들을 증폭시켜나가는데 sbs의 장르 드라마는 이런 것을 남다르게 주목해 왔고, <미스마 복수의 여신> 역시 한국으로 온 미스 마를 통해 이 '장점'을 신도시 중산층 단지의 '무지개 마을'로 살려낸다.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질 복수극
하지만 박진우 작가는 마을 탐정 미스 마플을 '무지개 마을'로 되살려 낸 것에 더해, 거기에 '복수'라는 요소를 가미한다. 영국 시골 마을의 노처녀 할머니 탐정 미스 마플은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는 혐의로 복역 중 탈주에 성공하여 진범을 찾으려 한 엄마로 재해석되었다. 

덕분에 드라마는 한 편에서는 미스 마플 시리즈 특유의 마을에서 벌어진 갖가지 인간 관계로 부터 빚어진 사건을 한 축으로 하며, 거기에 탈주범 미스 마의 진범찾기와, 그런 미스마를 추격하는 한태규(정웅인 분)와 양미희 검사(김영아 분)의 쫓고 쫓기는 스릴러의 묘미를 더한다. 

10월 6일 방영된 1~4회 중 1,2회는 보호 감호소에 수감되어 있던 미스마의 탈옥 과정을 박진감있게 그려내었고, 3,4회는 탈옥에 성공한 미스마가 무지개 마을에 노처녀 추리 소설가로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에 개입하기 시작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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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드라마로 찾아온 미스 마플의 전반부는 김윤진의 헌신적인 호연과 정웅인, 김영아의 안정적인, 혹은 강렬한 연기, 그런 연기와 스릴러적 상황을 잘 버무려 낸 제작진의 협연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에 반해, 3,4회 무지개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진 미스 마플 특유의, 혹은 sbs특유의 공간 장르물은, 앞서 1,2회의 박진감 넘치던 스릴러의 톤과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차별화된다.

결국 <미스 마 복수의 여신>의 성공은 아기자기한(?) 무지개 마을의 사건과 미스 마의 탈주 사건은 적절히 조화해 낼 수 있는가에 달릴 것이다. 거기에  우리나라 장르물들이 가지는 특유의 B급 정서를 과연 주말 드라마로서 <미스 마 복수의 여신>이 얼마나 극복해 낼 수 있는가 여부도 더해진다. 또한 아직까지도  미스 마의 대사를 통해 등장하는 '인간의 본능' 운운하는 날선 대사와, '추리'를 명목으로 안갯속처럼 시청자들을 모호하게 이끌어가는 서사의 딜레마를 과연 <미스마 복수의 여신>은 조절해 나갈 수 있는가도 관건이 된다.  전작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을 통해 기존의 주말 드라마와는 차별적인 '장르'적 특성을 가진 드라마로 일정 정도 승부수를 띄운 SBS주말극이 안착할 수 있을지 <미스 마 복수의 여신>의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8. 10. 7. 16:58


사랑의 모든 언어는 과도한 사용으로 훼손되었다. 내가 차에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일 때면 내 사랑은 우연히 흘러나오는 사랑의 노래들로부터 아주 수월하게 힘을 얻었다. 내가 끌로이에 대해 느끼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그런 노래에 영향을 받았을까? 사랑한다는 나의 느낌은 그저 특정한 문화적 시기를 살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알랭 드 보통,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일주일 동안 드라마가 범람한다. 그리고 그 드라마들 대부분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이 아닌 이야기를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과연 드라마들이 말하는 우리 시대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사랑은 사람을 변모시킨다. 집에선 엄마가 끓여주는 라면을 먹던 사람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새벽같이 도시락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에서 부터 '호르몬의 화학적 변이'의 폭은 무궁무진하다. 사랑의 완성는 결혼일까? '결혼 '이 선택인 시대, 사랑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예전에 노래를 시키면 첫 번째 사랑, 두 번째 사랑하며 애절한 유행가로 자신의 사랑을 기억했던 선배가 있었다. 철 모르던 그 시절엔 웃으며 넘겼지만 마치 남자에게 사랑은 유행가 한번 불러제껴버리면 될 것이었나 싶어 뒤늦게 씁쓸하다.  여기 '사랑'으로 인해 '삶'자체가 변화된 남자들이 있다. 사랑은 그들이 가졌던 것들, 국가, 재산, 지위, 그리고 목숨까지 버리게 했다. 사랑으로 인해 '성숙'된 남자들을 통해 우리 시대 '사랑'의 의미를 짚어본다. 


 

 

나라를 버렸다-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 
유진 초이(이병헌 분), 그는 이방인이었다. 검은 머리 미국인. 명령에 따라 조선에 주둔한 것일 뿐이었다. 그에게 조선은 망해도 상관없는, 아니 자신의 부모님을 죽이고 자신을 먼 타국으로 쫓아낸 사람들이 여전히 떵떵거리고 사는 이 나라는 망하는 게 당연한 나라였다. 

해병대 장교로서 임무에 따라 미 공사를 처리하고자 담위에 올랐던 유진은 자신과 같은 목적으로 총을 겨누던 한 여인을 만난다. 두건을 쓴 '스나이퍼'가 여인이었다는, 그리고 그 여인이 조선 명문가의 여성이라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거기에 취조를 당해도 부족할 판에 공사관 자신의 자신에 떠억하지 앉아 이방의 군인에게 전혀 꿀리지 않는 당당한 태도에 그 호기심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걸어들어간 사랑, 거기엔 그가 사랑했던 고애신(김태리 분)가 당연히 목숨조차 던지겠다고 하는 바람 앞에 촛불같은 조선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고애신의 곁에는 생면부지의 어린 그를 구해주어 미국까지 갈 수 있게 해준 도공 황은산(김갑수 분)이 있었다. 사랑하는 이와 은인이 목숨받쳐 지키고 싶다는 나라 조선, 그런 그들로 인해 '조선'이, 부질없는 짓이던 '의병'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유진은 '사랑'에 마음이 흔들리면서도 자신을 버린 조선에 냉소적이었다. 대한제국의 왕이 명한 신식 군대 고문조차 걷어찰 만큼. 그런 그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한 신병의 입대를 기꺼이 눈을 감아준다. 그들이 저지른 무모한 작전을 돕기 위해 기꺼이 나선다. 사랑하는 이로 부터 시작된 그의 '행보'가 '사랑하는 이들'로 넓혀져 간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이들'이 늘어날 수록 그의 분노도 깊어진다. 모리 타카시를 스스로 총으로 정죄할 만큼. 

유진은 마치 서부 영화 속 남자 주인공과도 같은 캐릭터이다. 장교라는 공적인 직위를 가졌지만 그 공적인 지위는 어떤 사명감에 의한 것이기 보다는 자신을 지키다 보니 얻어진 '생존'의 대가, 총을 들어 자신을 지켜왔고, 그 대가로 '미국인'이라는 특권(?)까지 챙긴 그가 자신의 생존이 아닌 다른 이유로 총을 들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조금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들이 지키는 나라가 조금 더 오래 버텨주기를 바라며. 그리고 어머니가 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던졌듯, 그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들이 몸을 던져 구하려는 조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초개'처럼 던진다. 그는 죽어갔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검은 머리 고독한 이방인이 아니다. 조선 의병 4소대 소대장 유진 초이이다. 충만한 사랑의 완성이다. 

 

 

'재벌'을 버렸다 - <황금빛 내 인생> 최도경
드라마 속 '재벌'과 평범한 여성의 사랑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은 그 '환타지같은 재벌남과의 연애사'에 이의를 제기한다. 드라마 방영 당시 과연 누구의 황금빛 내 인생이었을까로 시청자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88만원 세대에서 하루 아침에 재벌가의 딸이 된 서지안(신혜선 분)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해성가를 물려받을 최도경(박시후 분)의 '본투비 재벌 인생'이었을까? 하지만, 드라마는 그 '황금빛 인생'하면 'Gold'와 함께라는 우리들의 고정 관념에 발을 건다. 

그 시작은 롤러코스터같던 재벌가 딸 데뷔를 마친 날 저녁 '맥주'를 외치는 동생 서지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함께 찾은 편의점에서 였다.  아직 오빠인 최도경에게 서지안은 어릴 적 꿈을 묻는다. '사장, 사장, 회장'이라며 당연한 그걸 왜 묻냐는 오빠 최도경에게 지안은 '불쌍하다'했다. 세상에 재벌가 회장이 될 사람에게 불쌍하다니. 그런데 지안은 말했다. 꿈꿔보지 못한 삶, 나면서 부터 정해진 삶을 살아야 하는 오빠의 삶이 안됐다고. 처음으로 도경의 눈빛이 흔들렸다. 

88만원 세대의 고군분투기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중반부를 들어서며 최도경의 '스토커처럼 집요한' 사랑, 아니 재벌가 최도경의 '사랑'을 빙자한 자아찾기로 변해간다. 그와 약혼할 뻔했던 장소라처럼 야무지게 주식과 예금을 챙기며 해성가를 나서려했던 최도경은 창업주 할아버지에게 들켜 명품시계까지 끌르고 홀홀단신 해성가를 떠나게 된다. 며칠이면 두 손 들고 백기 투항할 꺼라던 주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최도경은 예의 '긍정적 마인드'로 갖은 알바 자리를 전전하며 쉐어하우스에 머물며 호시탐탐 서지안과의 사랑을 노린다. 

하지만 그 '사랑'의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재벌가의 실상을 처절하게 알아챈 연인 지안이 그를 거부했고, 해성가 사람들이 그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해성을 떠나 알바를 전전해도 '해성'이라는 세계로 지안과 함께 손잡고 돌아갈 날을 기약하는 도경의 본투비 재벌 의식이 그의 사랑에 결정적 장애물이 된다. 지안을 사랑한다 하지만 언젠가 돌아갈 곳, 여전히 한 귀퉁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내려놓지 않은 그의 안이한 사랑법은 끝내 상처만 남긴다. 이미 가진 자와 못가진 사이의 '계급'이 형성된 사회에서 안이한 환타지는 존재치 않는다고 드라마는 대못을 박는다. 

'사랑'이란 매개를 통해 드라마는 재벌 최도경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드라마는 낭만적인 재벌가와 평범한 여성의 사랑에 대한 환타지 그 허상을 집요하게 반박한다. 최도경이란 인물을 통해 '재벌가의 승계'라는 정해진 삶이 최선이냐 묻는다. 당신의 안이한 사랑이, 적선하듯 던져진 호혜가 얼마나 많은 상처로 돌아올 줄 아느냐 반문한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최도경은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고단하고 혹독하지만 진짜 신나는 진짜 황금빛 내 인생을 열어보인다. 서지안과 최도경의 사랑은 '양수겸장'이다. 사랑도 하고, 자신의 꿈도 찾는다. '사랑을 하게 되고, 사랑하는 이 덕분에 사랑하는 이가 좋아하는 나무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나무로 사업까지 하게 되었다'는 마지막 회 최도경의 '사랑 고백', 이것이야말로 소현경 작가가 말하고픈 이 시대의 진정한 사랑이다. 




집을 버렸다. - <이번 생은 처음이라> 남세희

세희에게 집은 무덤이었다. 이십대 시절 사랑했던 연인을 지켜주지 못해 떠나보내야 했던 그는 그 사랑이 끝남과 함께 세상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았다. 


시간을 담당하는 뇌의 신피질이 없는 고양이가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사료를 먹고 매일매일을 보내도 우울하거나 지루하지 않아하듯이, 그는 고양이와 함께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했다. 아직 갚아야 할 융자가 많이 남아있는 집에서 우울해하거나 지루해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최면을 걸며 시간을, 자신의 감정을 죽여갔다.  그렇게 집은 그에게 죽어갈 공간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다던 여자 윤지호를 우연찮게 하우스 메이트로 만난다. 서른 살의 실패로 슬퍼하던  그녀에게 이번 생은 그 누구도 처음이라며 건투를 빌어주던 그가 조금씩 마음의 틈을 열어주기 시작한다. 편의적으로 시작한 '동거'가, 편의적인 '결혼'이 되어가며, 그녀의 깔끔한 정리정돈과 청소가 좋았던 것이 어느덧 그녀와 함께 한 공간의 온기에 익숙해지게 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를 보며 함께 마시던 한 캔의 맥주가 홀로 즐기던 유일한 취미에서 둘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감으로 바뀐다. 감정이 없을 것같던 그가 그녀로 인해 흥분하고 분노하며 분출한다. 십여 년을 자신의 속에 봉인했던 숙제를 직시할 용기를 가지게 된다.  


달팽이처럼 자신의 집에 웅크렸던 남세희는 윤지호를 통해 이십대 시절 단절했던 관계와 세상에 본의 아니게 자꾸 한 발씩 내딛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던 유일무이한 담보였던 집, 세상 밖으로 나온 남세희에게 이제 사랑하는 이가 없는 집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가 없는 집이 그에겐 의미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제 그에겐 그에게 집은 '죽을 날을 기다리는 무덤'이 아니라, 옥상의 단칸 방이라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픈 '스위트 홈'이 되었으니까. 



공교롭게도 위의 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은 모두 물의를 일으켜 한동안 '자숙'을 했던 배우들이다. 그들이 돌아와 택한 캐릭터들은 뜻밖에도 목숨도, 재산도, 가진 것을 모두 던져 여성을 사랑하는 '순애보'의 주인공, 여전히 그들의 순애보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따르는 '잡음'이 깨끗이 일소됐다고 할 수는 없다. 과연 연기를 통해 승부수를 던진 이들, 그들에 대한 용서와 인정은 결국 대중들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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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8. 10. 4. 17:07

올해 들어 벌써 3번째 한진 조양호 회장이 소환됐다. 압수 수색은 18회, 조양호 회장을 비롯한 '땅콩 회항' 조현아 전 부사장, '물벼락 갑질' 전 조현민 진에어 이사장, '운전기사 폭행' 이명희 일우 재단 이사장까지 구속영장만 다섯 번 발부되었다. 그런데, 구속 영장은 기각되었고, 조양호 회장은 건재하다. 심지어 땅콩 회황으로 잠시 배제된 조현아 부사장은 3년 4개월만에 경영에 복귀했다. 

<sbs스페셜>은 총수 중심의 경영, 각종 갑질과 인성 논란이 반복되는 '오너 중심'의 우리 기업 문화에 대한 화두를 내건다. 바로 <ceo, 사표를 쓰다> 이런 오너 일가 중심의 황제경영에 대해 사회적으로 비판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법적 시도는 이루어지지만 결과적으로는 여전히 확고한 경영 체제, 책임지지 않는 경영, 그에 대해 다큐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어 목소리를 높인다. 

 

 

쫓겨나는 미국의 ceo들
이제는 신화가 된 스티브 잡스, 하지만 우리는 그 '신화'의 여정에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의 과거 이력이 있음을 기억한다. 과연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아이폰'의 신화는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황제' 경영은 그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그로 인한 '경제 전반'의 적폐, 나아가 경제의 적체, 바로 그 지점을 다큐는 꼬집는다. 

우리 나라에서도 잠시 화제가 되었던 '우버 택시', 이 화제의 우버 택시 사주는 이제 '실업자'다. 108개국에 우버 택시 앱을 개설하여 80조원의 이익을 남겼던 스타트업 기업의 신화, 그는 지난 2017년 사퇴했다. 

포춘지의 기자 아담 라신스키가 취재한 우버 택시를 만든 트래비스 갈라익은 강렬한 개성과 전투적인 리더쉽을 가진 인물이다. 우버 택시로 전세계적 슈퍼 ceo로 우뚝 섰지만 그 스스로 '실패의 선구자'라 칭할 만큼 4번의 사업 실패 끝에 우버 택시를 전세계적 기업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실패의 아이콘이던 그는 우버 택시의 성공으로 인기와 유명세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전투적인 리더쉽과 강렬한 리더쉽의 그림자는 그를 ceo 자리에 머무를 수 없도록 하는 원인이 되었다. ceo로서는 부적절한 사내 메일의 여성 차별적 발언들, 여성을 배려치 않는 사내 문화 등은 우버 엔지니어였던 수전 파울러가 미투 운동의 촉발자가 되도록 했으며, 무인 차량 개발을 위해 타사의 사내 비밀을 훔쳤다는 등 불법적이며 비도적적인 경영 방식에 대한 비난은 '우버 앱 삭제 운동'으로 이어지며 '악몽같은 ceo'라는 평판의 주인공이 되었다. 

탁월한 ceo와 비행을 저지르는 청년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평가를 받던 트래비스에 대해 이사회는 트래비스에 대한 사임을 결정했다. 그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고, 그 문제로 인해 그가 더 이상 집무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사회가 그를 해고하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 건 그의 비행이 원인이 아니었어요. 그를 둘러싼 많은 논란, 그의 비행과 태도가 그로 하여금 직무에 집중하고 잘 해내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하루를 다른 다양한 분쟁을 해결하는데 보낸다면, 어떻게 CEO로서 해야 할 업무를 볼 수 있겠어요. 그것 때문에 그가 해고된 거라고 생각해요”      -아담 라신스키, 우버 인사이드, 


 

 
ceo도 자르는 미국의 이사회 
여기서 다큐가 주목하는 건 바로 ceo도 자를 수 있는 미국의 '이사회' 제도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사외 이사 제도가 있다. 하지만, 종종 사외 이사들이 과도한 '수당'을 챙겼다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듯이 우리의 사외 이사 제도는 유명무실하다.  뿐만 아니라, 사외 이사의 비중이 크지도 않고, 기업 임원들로 채워진 이사진에 비해 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오너 일가와 긴밀하게 연결된 사람들로 채워져 독립성 보장은 커녕 오너 일가 권익 보장에 힘을 보태기가 십상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이사회는 권력의 중심이다. 이 이사회에는 외부 인사들로 이루어진 독립 이사들이 있다. 우버 택시에서 트래비스에게 사퇴 결정을 내린 이사진들 중  에릭 홀더 전 법무부 장관 등의 독립 이사진의 역할이 텄다. 

이들의 입장은 단 하나다. '남의 자본을 끌어 들여 사업'을 하는데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힌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기업 문화에서 경영은 스포츠 팀과 같다. ceo는 황제가 아니다. 스포츠 팀의 감독과 같은 역할일 뿐이다. 잘 나갈 때 감독은 칭송받지만 팀이 패배하면 그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듯이, 경영상의 문제가 생길 경우 언제든 ceo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파파존스 피자의 존 슈내터, 직접 광고에 출연하는 등 역시나 입지전적으로 이 피자 브랜드를 성공시켜낸 인물, 하지만 전화 회의 중 인종 차별적 발언으로 브랜드 가치를 훼손시켜 주가를 폭락시켰다는 이유로 사임당했다.

 

 

한 개인의 독단이어서는 안되는 경영 

이렇게 미국은 ceo의 독단적 경영을 제어하기 위해 이사회란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다. 같은 이사회지만 독일의 경우는 성격이 다르다. 독일 최대의 드럭스토어 로스만, 아버지에 이어 아들로 이어진 이 가족 기업, 아버지와 아들은 공동 경영을 한다. 하지만 경영 체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 유럽의 3500여개 100억 달러의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비가족 ceo  두 명과 함께 공동 경영 체제를 갖춘다. 거기에 다시 외부 고문단에 더해지고, 이사회에는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다. 또 다른 독일 기업 지멘스 역시 감독 위원회를 두고 거기에 전문 경영인을 참여 시킨다. 

알리바바는 나의 것이 아니지만 나는 영원히 알리바바에 속할 것입니다.” 
                                                     - 마윈



그런가 하면 중국의 대표적 기업이자 세계적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지난 2018년 9월 10일 알리바바 창설 19주년이 되던 날 은퇴를 선언했다. 중국 시장 점유율 1위, 시가 총액 4000억 달러의 회사를 물려받은 이는 그의 아들도, 손자도 아닌 11년전 알리바바에 합류해 능력을 인정받은 조력자 장융이었다. 

1999년 항저우의 작은 아파트에서 동료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마윈 회장.  그는 회사가 본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한 2005년부터 승계를 준비해 왔따. 승계에 앞서 그는 한 개인의 역량이 지배하는 조직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집단 지도 체제인 '파트너쉽' 제도를 만들었다. 6명의 대표가 1인 1표를 행사하는 이 집단 경영 체제는 다음 세대의 리더를 키워내며, 동시에 조직의 신선함을 유지시킨다. 이를 위해 일정 나이가 되면 파트너에서 물러나도록 제도화하여 현재는 70년 이후 출생자들로 이 조직이 채워져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파트너쉽 참여를 적극 독려한다. 

미국, 독일, 중국 등 이들 나라의 세계적 기업이 보여주는 경영의 유연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마윈이 말하듯 한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경영의 위험성이 가장 크다. 알리바바의 파트너쉽 체제가 변화하는 트렌드에 발 맞추어 가고자 계속 젊은 세대로 물갈이를 하는 경우에서 보여지듯이 세계적 기업들은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조직적 변화를 꾀한다. 뿐만 아니라, 우버 택시에서 보여지듯, 기업이 한 개인이 만들었다 해도 주식회사의 형태로 자본이 유입된 경우 더 이상 개인에 의존한 기업이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다. 

세계 유수의 국가들, 그곳의 세계적 기업들은 이렇게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경영 방식을 변화시켜가고 있다. 과연 이런 세계적 기업의 흐름에서 황제 경영 방식을 고집하며 오너 일가와 관련된 부도덕한 잡음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우리의 기업들은 경쟁력이 있을까? 자본은 변화요, 흐름이다. 과연 그 흐름에서 우리의 기업들은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 거일까. 다큐는 묻는다. 

by meditator 2018. 10. 2. 21:36

어쩌면 그 시작은 한 장의 사진이었을 지도 모른다. 9월 30일 종영 전후로 검색어 1위를 기록했던 구한말 의병 사진, 저 옷을 입고 어찌 총을 들고 싸웠을꼬라고 생각되는 허술한 한복과 후줄근한 군인이었던 기억이 남겨진 듯한 복색들, 우리가 국사 교과서에서 암기할 가치조차 없다 하여 스쳐지나갔던 그 오래된 낡은 사진 한 장으로 부터 <미스터 션사인>은 시작되었다.

 



 
 

 
그 한 장의 사진은 핏덩이 어린 자식을, 그리고 그저 군함 한 척으로만 보여졌던 미국을 향해 쓰러져간 백성들, 동지를 지키기 위해 홀로 남아 총을 겨누었던 동경의 의병 어미 이야기로 시작되어  이제 그 핏덩이의 아이가 의병장이 되어 또 다른 타국 만주에서 훗날 조국의 독립을 기약하는 'see you again'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 행간을 메우는 수많은 아무개들의 '헌신'. 그들의 헌신은 참아낼 수 없어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그리고 단 하루라도 살듯이 살기 위해, 그리고 지금은 아니라도, 'see you agin'이 될 독립의 그날을 위해 마중물이 된다.

오랫동안 애기씨의 진짜 보호자였던 행랑 아범(신정근 분)과 함안댁(이정은 분), 그리고 그 또래의 '어른'들은 일본군에 의해 조여드는 포위망을 피해 의병들을 무사히 피신시키기 위해 기꺼이 총받이가 되었다. 의병을 이끌었던 도공 황은산(김갑수 분)은 무리의 지도자였던 자신 대신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만주로 보내다. 자신이 젯밥이 되어. 지는 나라, 그곳에서 기꺼이 무기를 들었던 사람들. 드라마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결국 그것이었다. 우리의 지금이 있기 위해 그들이 있었다고. 

짚을 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그 뻔히 보이는 패배의 광경에 기꺼이 자신을 던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드라마는 역설적 질문으로 시작된다. 조선인의 DNA를 가졌지만, 조선인이기를 거부했던 세 남자를 통해 '반어법'으로 결론을 향한다. 

 

 

이방인을 통해 다가선 '의병' 
유진(이병헌 분)은 어린 종이었다. 유진의 어미를 바쳐 세도가 이세훈 대감의 눈에 들겠다는 욕망으로 아비를 죽인 주인 김판서, 김판서의 며느리에게 비녀로 위협해 겨우 구해진 목숨 유진, 가장 먼 곳으로 도망치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받아, 바다 멀리 미국까지 간 유진, 그에게 조국은 갖은 차별에도 해병대 장교로 임관해준 미국이었다. 

동매(유연석 분)라고 다를까.  거리에서 수모를 당하고 몰매를 맞아 목숨을 잃어도 항변할 수 조차 없는 '백정'의 아들, 그는 죽어갈 목숨인 자신을 구해준 애기씨에게 조차 눈을 부릅뜨고 '호강에 겨운 양반 계집'이라 할 만큼 '조선'의 모든 것들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당연히 그가 자신을 의탁한 곳은 바다 건너 일본의 무신회, 무신회 수장의 양아들이 되어 '이시다 쇼'가 되어 돌아왔다. 

희성(변요한 분)은 도망자이다. 조선 최고의 갑부집안 손자, 하지만 자신이 놀고 먹어도 남아도는 그 재산이 어떤 이들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는가를 알게 된 희성은 바다 건너로 도망쳤다. 정혼을 한 지 어언 10년이 되도록 그는 자신을, 자신의 나라를 피해 도망다녔다. 

그렇게 드라마 속 세 남자들은 조국을 떠나 바다를 건너갔다. 그리고 다시 그 바다를 건너 돌아왔다. 그들에게 조국은 상흔이었고, 여전한 고통이고, 그리고 '적'이었다. 그래서 조국 따위가 망하던 말던 그들과는 별 무 상관이 없었다. 아니 자신을 바다 건너로 내몬 조국 따위 망하라고 어깃장을 부려도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의병'과는 가장 무관한 세 사람을 드라마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본투비 의병'인 고애신(김태리 분)과 연결짓는다. 저격의 현장에서 총으로 마주 선 사람, 넘볼 수 없는 애기씨와 그 애기씨에 의해 목숨을 '연명'한다 생각한 애증의 일본인이 된 소년, 그리고 10년만에 돌아온 정혼자, 이들은 각자의 인연으로 고애신을 마주하며 동시에 그녀가 헌신하는 '의병'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왜 의병이어야 했는가. 
그들은 의문을 가진다. 조선 최고의 잇걸이라던 명문가 고사홍 대감의 손녀가 총을 들었는가. 그리고 그 '애정어린 의문'을 고애신을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저 도공인 줄 알았던 은인 황은산도, 그저 사냥꾼인 줄 알았던 장승구도, 망해가는 나라의 지는 권력인 줄 알았던 정문도, 하다못해 지게꾼도, 빵장수도, 나는 새도 떨어뜨리게 만들던 양반네에서부터 거리의 아무개인 줄 알았던 모든 이들이, 가지고 덜 가지고를 상관없이 저물어 가는 조선에서 나서 싸우는 것에 그들은 '목격자'가 되고, 질문자가 된다. 시청자를 대신하여, 후손들을 대신하여. 

그리고 유진의 어미가 오로지 자신의 아들 유진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초개처럼 던졌듯이, 자신이 사랑했던 애신과, 자신을 구해준 은인인 황은산이 오래 살기를 희망하는 유진이, 애기씨 덕에 살아있다 했던 동매가, 시간을 죽이고 자신을 그 쓸모없는 시간 속으로 내몰던 방관자 희성이, 이  '목격자'들이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정으로 '의병'이라는 대의에 공감하고, 동조하고, 기꺼이 자신을 더한다.

유진이, 동매가, 희성이, 황은산이, 장포수가, 그리고 쓰러져간 많은 이들은 '패배'가 아니었다. '부질없는 희생'이 아니었다. 망해가는 나라를 위해 왜, 무엇때문에 총을 들어야 하는가. 들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드라마는 곡진하게 공을 들여 설명하고 설득하고 설파한다. 드라마의 마지막 만주 벌판에서 고애신과 함께 달려가던 독립군들처럼, 그리고 여전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현존하는 이 시절에 대한 가장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헌사'로 채운다. 그렇게 한 장의 사진 속 빛바랜 기억이었던 구한말 의병은 이제 <미스터 션사인> 속 스러져간 많은 이들의 얼굴과 삶으로 돌아왔다. 

방영 초기부터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논란이 있었듯이, '검증된 사실'로 따져들어가면 <미스터 션사인>은 많은 '구멍'과 '함정'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극의 전개나 캐릭터에서도 과연 이 드라마가 박경리 선생의 대하 소설 <토지>나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라는 부채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스쳐 지나갔던 교과서 속 한 장의 사진, 군대 해산 어쩌고 하면 암기의 내용에 불과했던 구한말 의병의 대서사가 '러브스토리'라는 낭만적 이야기의 틀을 빌어 2018년에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대하 사극이 '경제성'의 원리로 기피되는 시절, 심지어 일제 시대 독립운동도 아닌 저물어 가는 시절의 대한제국의 이야기를 복원해 내려 했다는 점에서 김은숙 작가는 또 한번  자신의 필모를 뛰어넘었다. '낭만적 애국주의'나마 우리는 행간에 생략되었던 역사의 한 장을 2018년에 마주하게 되었다. 
 

by meditator 2018. 10. 1. 15:24

표민수 피디가 돌아왔다. 9월 28일 첫 선을 보인 jtbc의 <제 3의 매력>은 서강준, 이솜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사실 주목해야 할 사람은 표민수 피디이다. 2015년 윤성호 감독에 이어 연출한 <프로듀사> 이래 3년만에 다시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우리 드라마 사에서 '표민수'라는 이름은 하나의 '장르'로 기억된다. 과연, 그 '전설'은 다시 역사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첫 방의 성과는 아쉽다. 6%에 육박하며 화제성을 낳던 전작 <강남미인>이 무색하게 1.804%이다. 무엇보다 트렌디한 주제인 '성형'과 젊은 연인들의 사랑을 잘 버무려 내었던  다루었던 <강남 미인>처럼 시청자들에게 이슈를 선점하지는 못했다. 평가도 엇갈린다. 진부하다와 감성적이다 라며 서로 다른 반응들이다. 

드라마가 삶이고 삶이 곧 드라마라고 나는 믿습이다.
                                                     -드라마 어떻게 만들 것인가, 표민수 

 

 
당대의 사랑을 대변했던 대표작들 
표민수 피디가 만든 드라마 중 어떤 작품을 기억하고 있는가에 따라 아마도 세대가 갈릴 것이다. 표민수라는 이름이 세상에 처음 각인된 작품은 <거짓말>이다. 이제는 다들 누군가의 엄마나 아버지로 등장하는 배종옥, 이성재, 유호정 등이 드라마 최초 폐인을 양산할 정도로 다시 할 수 없을 것같은 아픈 사람을 엮어냈던 이 드라마는 '노희경-표민수 콤비의 탄생을 알렸던 드라마이기도 하다. 노희경 작가의 주옥같은 대사, 그리고 도발적인 연애사를 표민수 연출의 감각적인 연출로 세련미를 입혔던 작품, 그래서 '불륜'을 사랑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던, 나아가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갇힐 수 없는 사랑의 불온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1998년이라는 시절을 담았던 작품이다. 

<거짓말>에 뒤를 이어 다시 '당대 사랑'의 대표작이 된 작품은 <풀 하우스 시즌1>이다. <거짓말>이 '어른들'의 사랑을 대변했다면, <풀 하우스 시즌1>은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같던 남자 이영재(비 분)와 여자 한지은(송혜교 분) '어른이'들의 장난기넘치던 풋사랑이 2004년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2008년 표민수-노희경 콤비는 또 한번 레전드 작품 <그들이 사는 세상>을  남긴다. 양 갈래 머리 짧은 치마로 곰 세마리를 부르던 송혜교는 단발 머리 선머슴애같은 초짜 피디 주준영이 정지오로 분한 현빈과 함께, 직업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청춘 연가를 '실감나게' 그려내며 '전문직 현장 드라마'의 효시를 이룬다. 

 

 

당대의 공감은 아니더라도, 당대성을 대변했던 
물론 표민수 피디가 당대를 대표하는 사랑만을 늘 이야기한 건 아니다. <거짓말>과 <풀 하우스 시즌1>과 <그들이 사는 세상>이 당대의 청춘을 이야기했다면, 1999년 2부작 < 슬픈 유혹>은 방송 최초로 '동성애'를 다루었으며, 2000년 <바보같은 사랑>은 봉제 공장 재단사 진상우(이재룡 분)과 미싱 보조 정옥희(배종옥 분)의 치명적인 사랑을 통해 '노동자들의 삶'을 그려낸다. 그런가 하면 2001년 <푸른 안개>에서는 요즘 같은 시기라면 작품 자체가 불가능했을 중년의 남성이 23살 젊은 여성에게 '미혹'되는 불륜을 다루기도 했다. 2002년에는 그 반대의 경우 마흔 살의 전문직 여성 상사와  26살의 부하 직원이 사랑에 몸을 던진다. 또한 2007년 <인순이는 예쁘다>에서는 출소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2015년작 <호구의 사랑>에서는 젊은 미혼모에게 순정을 다하는 강호구(최우식 분)의 사랑을 그린다. 

노희경, 이금림, 윤난중 등 당대의 명작가들과 함께 하며 표민수 피디는 이른바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는 세간의 정의를 넘어서 '표민수 표'라는 연출의 장르를 써내려간다. 

저같은 경우는 인물의 동선이나 움직임보다는 인물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중점적으로 봅니다. 그래서 감정에 대한 콘티를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이번 신은 어떤 감정이 주가 되는가. 그 감정에 맞는 대사는 무엇인가 찾아봅니다.
                                                                     -같은 책, 표민수 


표민수의 작품에는 시대의 공기가 담겨져 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사랑을 작가가 쓰면, 표민수 연출은 그 '사랑'에 시대의 정서와 공감을 더한다. 표민수의 연출이 없었다면 불륜이라 치부될 <거짓말> 속 사랑이 분위기있는 성인 남녀의 사랑의 경계에 대한 질문으로 폐인들을 양산해 낼 수 있었을까. 그저 톱스타와 가진 것 없는 여성의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귀염성있는 열애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물론 그 '정서'에 대중이 꼭 공감하지 않을 때도 있다. 여전히 <슬픈 유혹>은 중년의 김갑수와 젊은 주진모의 이해할 수 없는 센세이셔널한 작품으로 기억되며, 사회 밑바닥 인생의 <바보같은 사랑>이나, 이제는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연상녀와의 사랑은 당시에는 '최저 시청률'의 기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늘 표민수 피디는 누구보다 용감하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려 애써왔다. 

또한 표민수 피디의 작품이 기억되는 건 그저 주인공들의 사랑만이 아니다. 주인공들를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 에피소드 조차도 그 누군가에겐 공감할 만한 삶의 한 유형으로 수용되게 하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표민수의 작품을 기억되게 한다. 

 

 

2018년의 사랑에 건투를 빌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표민수 연출이 그려낸 당대의 정서는 2010년대를 넘어서며 버거워 보였다. 도전이었던 <아이리스2>는 가장 표민수답지 않은 궤적으로 기억되며, 2015년 <프로듀사>는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그사세>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렇게 최근 지지부진하건 격조했던 표민수 피디가 들고 온 작품은 스무 살 풋풋하던 시절 첫 사랑에서 부터 시작하여 장장 12년의 연애사를 그려낸 <제 3의 매력>이다. 

 

 

검은 둥근테 안경에 보정기를 낀 멀쩡하게 생겼지만 전혀 멀쩡해 보이지 않는, 거기에 세심하다 못해 쫀쫀해 보이는 계획적이다 못해 강박증 환자처럼 보이는 온준영(서강준 분)과 즉흥적이며 열정적인 '돈'을 벌고싶어 남들 가는 대학 대신 미용사 일을 시작한 이영재(이솜 분)의 연애, 빨간 색만 봐도 땀을 흘리는 남자와, 빨간 색 음식이면 무조건 오케이, 빨갈수록 더 좋다는 여자의 '다름'에 혹한 고단한 연애사, 하지만 그 시작은 성시경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감싸안은 그 정서는 예의 표민수 표 드라마 답게 안온했지만, 그래서 어쩐지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듯, 진부한 그 경계에 서있다. 과연, 예전 드라마에서 본듯한 뻔함을 넘어서 표민수 피디는  2018년의 청춘을 다시 재현해 낼 수 있을까? 전설의 귀환에 건투를 빈다.  

by meditator 2018. 9. 29. 16:35

김영하가 <아랑은 왜?>라는 소설에서 다룬 '아랑의 전설', 이는 우리 고전 소설인 <장화 홍련전>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전래의 대표적 귀신 설화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밀양 고을 부임하는 신임 부사들마다 첫 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비명횡사하고 만다. 결국 '밀양'은 기피 부임지가 되고 마는데, 담이 큰 이상사라는 부사가 자임하고 부임한 첫 날, 이슥한 시각, 잠자리에 든 그를 찾아온 건 '처녀 귀신' 아랑이었다.  양갓집 규수로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여 야반도주를 하였다는 불명예스러운 소문의 주인공이었던 아랑, 하지만 사실은 관가에서 일하던 이와 유모의 작당으로 겁간의 위기에서 저항하다 살해당하고 만 것.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귀신이 되어 부사를 찾아간 것, 하지만 부사들은 그런 아랑의 속도 모르고 '귀신'의 존재만으로 혼비백산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 '원형적' 귀신의 전설에서도 보여지듯이 죽어 저승으로 귀의하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도는 '원귀'의 이유는 바로 '이승'에 있다. 그 '이승'이 문제인 것이다. 

 

   

 

현실로 부터 고통받는 영혼의 빈틈을 찾아든 '손'
ocn 수목 드라마 <손 the guest>는 바다에서 온 '손' 박일도가 그의 숙주가 되는 일반인들에게 들어가며 문제가 발생한다. 박일도에 '빙의'된 이들은 괴력을 발휘하며 살인도 불사하며 사건을 일으킨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이 바로 이들이 '빙의'되는 이유이다. 이른바 영혼의 빈틈이라고 칭해지는 '자존'의 약한 지점을 '박일도'는 귀신처럼 알아차리고 찾아든다. 극중 첫 번 째 빙의자였던 김영수(전배수 분), 그는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하다 터널 공사 도중 사고로 인해 온 몸에 마비가 왔다. 하지만 그의 '산재'에 대해 업주는 나몰라라, 가족들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방문 너머로 아내의 하소연을 듣고도 위로 한 마디 할 수 없었던 그에게 '박일도'가 찾아왔고, 그는 자신의 분노를 사업주와 가족에 대한 살해로 풀어내고자 한다. 

김영수에 이은 폐차장의 최민구, 최민상 형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생 최민구가 빙의된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박일도가 씌인 건 형 최민상, 결국 그를 잡았지만 '구마' 기회를 놓치고, 최민상은 스스로 잔인하게 자신의 목숨을 거둔다. 그런데 아들이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어수선한 주변 정리를 요구하는 어머니, 정신병에 걸린 둘째 아들도, 박일도에 희생된 형도 그 원인은 어머니의 가정 폭력과 폭언, 학대였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로 빙의된 김은희(김륜희 분), 그녀는 자살한 약혼자의 뒤를 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순간에 박일도에 씌인 것이다. 외려 죽으려 한 그녀를 구해 복수를 하게 해주었다고 당당한 '손', 빙의된 김은희가 찾아간 곳은 약혼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동료 직원들. 그들은 김은희의 약혼자를 왕따시키고, 사내 폭력의 희생자로 만들었으며, 그를 못이겨 회사를 떠난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아갈 꿈에 부풀었던 젊은 연인들은 하루 아침에 그들의 모든 미래를 빼았겼다. 약혼자는 스스로 손목을 그었고, 그의 아이를 뱃속에 지닌 김은희는 죽음 대신 무참하게 칼을 휘두른다. 

이렇게 드라마 속 '손'을 부르는 건 현실이다. 노동자를 외면하 사주의 이기심과 가장의 산재 앞에 신음하는 가족의 고통, 가정 폭력, 그리고 직장 내 왕따 등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하는 사회 문제들이 결국 '인간'을 쇠잔하여 하여, '손'의 숙주로 가장 안정된 조건을 만든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손에 빙의된 괴물이지만, 그들의 폭주는 무섭지만 처연하다. 

 

 

여전히 어린 아이인 생령이 벌이는 죽음의 장난 
<오늘의 탐정> 역시 마찬가지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영 선우혜(이지아 분)의 폭주로 인한 범죄. 병상에서 몸은 어른으로 자랐지만 여전히 의식은 벌레를 잡아 죽이던 어린 아이와 다를바 없는 선우혜는 '장난'처럼 사람들의 목숨을 거둔다. 아이들에게 시달리던 유치원 교사의 경우처럼 거두는 방식이 희생자의 가장 취약한 부분. 하지만 그 '선우혜'의 잔인한 장난이 아직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역시 버림받았던 혹은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으로 보여진다. 

아들에게 폐만 된다며 어머니의 죽음을 강권하던 선우혜에게 버티던 이다일(최다니엘 분)의 어머니는 결국 대신 아들의 목숨을 거두겠다던 협박에 손목을 긋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청력을 잃었던 정여울(박은빈 분)에게도, 그리고 이제 다시 그 죽음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나선 여울에게도 동생에 대한 그녀의 미묘한 감정을 건드린다. 그런 식이다. '영'은 살아있는 인간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있는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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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조차 불러들이는 산 자의 운명과 사랑 
<러블리 호러블리>의 귀신은 어쩌면 가장 전래의 전형성을 지닌다. 이른바 '귀신의 전매 특허인 '한'의 현대적 버전이다. 8년전 코리나 레지던스에서 죽었던 두 사람, 라연과 필립의 어머니, 그 두 사람은 8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귀신'이 되어 돌아온다. 

그들이 돌아오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사랑'이다. 8년의 주기로 죽을 운명에 빠진 아들 필립과 의붓 딸 을순,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막기 위해 무당이었던 어머니가 24년전 을순의 운을 빌어 아들의 생명을 구했듯이, 이제 귀신이 되어 돌아와 위기의 순간마다 노랫소리로 홀린다. 그뿐이 아니다. 자신이 저지렀던 업보를 필립을 통해 갚아 을순을 구하고자 한다.  

필립의 연인으로 필립의 스토커였던 윤아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라연, 하지만 라연은 거울 속에 스며 침묵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돌아왔다. 드라마는 드러난 건 필립과 그의 공식 연인 윤아, 그리고 작가 을순의 삼각 관계이지만, 사실 저변에 흐르는 건 죽은 필립의 연인 귀신 라연과 을순의 삼각 관계다. 인간과 귀신이 얽힌 삼각 관계. 거기엔 8년의 세월을 넘어 이제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뜬 필립이 있다. 미움이었던 애증이었던 라연 대신 새로운 을순에세 마음이 향한 필립에 대한 사랑은 라연을 시간의 그늘에서 걸어나오게 한다. 

이렇게 '호러'를 표방한 세 드라마 <손 the guest>, < 오늘의 탐정>, <러블리 호러블리> 속 호러는 현실을 길어올린다. 귀신은 무섭지만, 드라마를 보다보면 귀신은 처연하고, 차라리 그들을 '귀신들리게'한, 혹은 '귀신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혹은 현실이 더 안쓰럽다. 그렇게 드라마 속 '귀신'은 삶으로 인해 죽음의 경계를 허문다. 삶은 그들의 먹이요, 놀이요, 미련이다.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 드라마는 모호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통해 뜻밖에도 삶을 경고한다. 



by meditator 2018. 9. 28. 15:36

'크리에이터'의 시대다.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공중파'를 보지 않는다. 아니, 젊은 세대라 한정 지을 것도 없다. 나이가 지긋한 세대조차 이젠 공중파, 케이블, 종편, 거기에 더해 유투브까지 각자가 선호하는 미디어 선택에 한계가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최근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건 유투브 등 에서 적극 활약하고 있는 크리에이터, 일인 창작자들이다. 패션, 요리, 뷰티, 시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들은 '아프리카 방송, 블로그, 유투브 등 기존의 방송과 다른 채널에서 '아마추어'로 시작하여 이제 '중소기업'에 맞먹을 만한 콘텐츠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기존 방송 프로그램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 대신 각자 자신의 입맛에 맞는, 그리고 필요한 콘텐츠들을 찾아 크리에이터들의 개인 채널을 찾아든다. 

 

 

당연히 이들 크리에이터들의 활약은 기존의 방송계에는 '위기'다. 또한 다른 면에서 기회이기도 하다. 일찌기 지난 2015년 mbc는 발빠르게 이 개인 채널 방송을 방송용 플래폼으로 변화시킨 <마이 리틀 텔레비젼>을 방영하여 이슈를 선점한 바 있다. 제한된 시간에 스튜디오 내 각각 다른 방에서 다양한 분야의 출연자들이 방송을 하며 동시에 시청자들과 소통하여, 그 결과물로 그 날의 승자를 선택하는 이 '이원 방송'의 형태는 선도적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생방송과 공중파 예능이라는 이원 방송의 한계,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콘텐츠의 개발에 정체로 인해 결국 프로그램은 조용히 사라졌다. 그 시도가 이제 sbs의 추석 특집 <가로채널>로 다시 찾아왔다. 

이영애의 출연이라는 화제성에 힘입어 
여전히 '산소'같다는 이영애 씨의 출연에 대한 과도한 송그스러운 리액션과 '가로채널'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제스처를 둘러싼 강호동, 양세형의 대왕대비 마마 이영애의 '점지'를 바라는 식의 대결로 장황하게 시작한 프로그램의 취지는 이 세 출연자의 일인 채널 방송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어떤 프로그램이냐를 묻지도 않고 이영애의 출연에만 관심을 두었다는 것처럼, 방송 시작전 대부분의 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이영애의 예능 출연, 그리고 최근 유행하고 있는 육아 브이 로그를 통해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을 공개했다는 사생활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렇게 특별한 이영애라는 화제성을 업고 출연자들의 개인 방송을 연다.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하는 방송이 어색해서 물묻은 시소에도 냉큼 올라탄 강호동과 달리, 시청자들은 그가 내세운 '강호동의 하찮은 대결'이 어쩐지 너무 익숙하다. 승리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만난 거리의 사람들과의 해프닝은 이경규와 함께 한 끼를 찾아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는 <한끼 줍쇼>의 한 장면 같았고, 고심한 첫 출연자 승리와의 댄스 클럽 재연에서 부터 먹물 까지 동원한 하찮은 대결은 강호동의 또 다른 프로그램 <아는 형님>의 한 버전같았다. 프로그램은 가장 안정된 mc로서 강호동을 선택했고, 강호동은 그 기대에 부응하여 언제나 처럼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헌신적이었지만, 그게 신선하지는 않았다. 

강호동에 이어 바톤을 받은 건 양세형, 그는 스스로 인생의 90%라 할 수 있는 먹방에 도전한다. 맛집 장부, 맛집 도장깨기라 내세운 '맛장 채널'에서 양세형은 전문가 이용재와 신참자 제니와 함께 평양냉면의 다양한 맛에 도전한다. 

새 부대에 담겨진 새롭지 않은 술 
이제는 정말 흔하다 못해 지겨운 먹방 채널, 하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먹방의 채널을 운용한 양세형의 평양냉면 도장깨기는 새로울 것이 없는 콘텐츠이지만, 냉면에 대해 제법 깊이있는 식도락을 가진 양세형의 견문과 전문가와 신참자를 어우르는 진행 덕분에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근 어느 프로그램에서나 이미 한번씩은 다 다루었던 평양 냉면의 먹방은 새 프로그램의 첫 방송의 '신선함'이란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차라리 그를 화제의 중심으로 이끌었던 숏터뷰의 다른 버전이었다면 새로웠을까. 

 

 

두 기존의 예능 mc와 다르게 출연만으로도 화제성을 만든 이영애, 여전히 '산소같다'는 싱그러움과 신비로움을 가진 이 여배우는 그런 세간의 이미지와는 다른, 이제는 8살이 된 두 쌍둥이의 엄마로서 육아 브이 로그를 선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뿐이다. 도시의 다른 부모들과 달리, 양평의 마을에서 자라 '고향'을 가진 아이들과 다시 고향을 찾아 산책을 하고, 텃밭에서 자란 채소들을 수확하고, 함께 송편을 만든 시간은 '아, 이영애에게 저런 면이'라는 화제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미 연예인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가지고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장악한 현실에서 '이영애'라는 이름만으로 다음을 기약하기엔 '예능적 요소'가 아쉬움을 남긴다. 

 

 

무엇을 해도 너무도 익숙한 강호동, 왜 양세형이 굳이 먹방을, 그리고 엄마가 된 이영애라는 화두를 가지고 펼친 <가로 채널>, 과연 이 프로그램이 크리에이터가 된 이들의 일인 채널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의 흡인력을 가졌는가에 대해서는 유보적일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콘텐츠로 시작된 프로그램이라면, 새 부대에 어울릴 새 인물들의 조합이었다면 그 콘텐츠의 새로움을 담보해 내지 않았을까란 물음표를 더하며, 새 프로그램의 도전을 가장 안전하게 시작한 <가로 채널>의 다음이 그닥 궁금하지 않다는 게 안타깝게도 가장 큰 숙제로 남는다. 

by meditator 2018. 9. 26. 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