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드라마가 대중의 관심을 받을 때 주목받는 건 주로 주연배우들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잘 될 수록 이른바 '현장 분위기도 좋았다'라는 후일담이 전해지듯, 몇 달의 짧은 시간 동안 잠을 줄여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매진해 가는 '특공작전'처럼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서 '협업'의 시스템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기꺼이 주연배우들의 꽃받침이 되어 그들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에 매진하는 조연배우들이야말로 어쩌면 드라마의 진짜 실력자일 수도. 2018년 수많은 드라마들이 명멸하고, 그 속에서 스타들은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 스타들만큼 올 한 해 우리가 드라마를 만끽하도록 해준 이들이 있으니 바로 누군가의 엄마, 아내, 유모로 등장했던 '그녀들'이다. 

 

 

선과 악, 그 경계가 자유로운  - 김혜은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에서 주인공의 엄마 차매화로 출연중인 김혜은, 커다란 덩치의 아들을 둔 엄마답지 않게(?) '모델'같은 외모와 몸매의 '신세대 엄마'이다. 여주인공의 '이쁘다'는 말 한 마디에 냉랭했던 분위기가 무색하게 좋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던 이 차매화 엄마는 자신이 어쩌지못하는 아들 앞에서 '너같은 애를 누가 좋아하겠냐'며 이율배반적인 모성을 토해 놓는다. '허당'과 아들에게 다하지 못한 모정의 안타까움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모성, 다시 한번 김혜은이 빛난다. 

올 한 해 김혜은은 분주했다. <라디오 로맨스>로 부터 시작하여, <너도 인간이니?>, <미스터 선샤인>, <손 the guest>,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남자 친구>까지 '열일'중이다. 

그런 가운데 김혜은의 존재를 부각시킨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미스터 선샤인>과 <손 the guest>이다. <미스터 선샤인>에서 어린 유진의 부모님을 죽인 양반집 며느리였던 그녀는 이후 조선 최대 갑부의 안주인이자 김희성의 모친 강호선으로 등장한다. 유진의 엄마가 죽어가며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들이댔던 비녀의 흉터를 영원히 목에 간직한 호선은 그 흉터만큼 묵은 마음의 부채를 지닌다. 하지만 그 부채만큼 깊은 것이 아들 희성을 지키려는 엄마의 마음. 이 '부채감'과 '모성'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 하던 호선, 화려하게 차려입은 외양과 달리, 아들 앞에서는 혼비백산하는 마음 약한, 그리고 유진 앞에서 한없는 죄책감을 숨길 수 없는 이 복잡미묘한 캐릭터를 화려한 외모와 금방이라도 눈물이 맺힐 거 같은 큰 눈의 김혜은이 설득해 낸다. 

하지만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와 <미스터 선샤인>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모성의 딜레마를 설득해 내던 김혜은이 <손 the guest>로 오면 돌변한다. 등장부터 당연히 박일도의 제물이려니 했던 국회의원 박홍주, 이미 젊은 시절 가족 집안 재단 학교의 선생으로 학생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력'이 의심되는 그녀는 지역구 시민들 앞에서 한껏 자애로운 미소를 띤 것과 달리,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닥치는 터져나오는 분노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시청자들은 또 다른 '박일도'를 떠올리게 된다.

연민에 못이겨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던 엄마에서 핏발이 서린 눈빛으로 악에 치받혀 자신을 거스른 사람을 때려죽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악마의 핏줄까지 선과 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김혜은이란 배우는 각인되었다.  

 

 
모성의 여러 얼굴- 김선영
우리에게 김선영이란 배우가 '엄마'로 처음 등장한 건 아무래도 <응답하라 1988>의 선우 엄마일 터이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 뽀글머리 파마에 동네 대소사에 빠지지 않는 천상 아줌마이지만, 아빠없이 두 아이 선우와 진주를 키우는 가정사에, 택이 아버지와의 순애보까지 파노라마와도 같은 인생사의 그곳에 김선영 배우가 있었다. 

하지만 김선영 배우를 그저 '엄마' 역으로만 한정하는 건 아쉽다. 2016년작 <원티드>에서는 후드를 뒤집어 쓰고, 화장기 없는 얼굴의 프로파일러로 등장하는가 하면, 같은 해 <쇼핑왕 루이>에서는 부산 쌍도끼 출신의 집사로 냉철과 허당의 썸녀가 되기도 하였고, 2017년 <파수꾼>에서는 엄마 형사로서의 모성과 경찰로서의 사명감 앞에서 갈등하면서도 여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인 포지션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선영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 역시 '엄마'일 때이다. 하지만 '엄마'라고 다 같은 엄마가 아니다.  2017년작 <란제리 소녀 시대>에서는 <응답하라 1988>과 같은 80년대의 엄마였지만, 가부장적인 남편의 바람과 차별받는 아들과 딸, 그리고 메리야스 공장 식솔까지 품어내는 여장부이면서도 여자로서의 아픔을 삼켜내는 또 다른 80년대의 어머니 상을 재연해 냈다. 또한 <이번 생은 처음이라>나, <은주의 방>에서는 언뜻 보기엔 억척스런 엄마이지만  88만원 세대로서 꿈을 찾아 고민하는 딸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분한다.

그리고 이제 <땐뽀걸즈>에서는 투박한 작업복의 엄마로 돌아왔다.  조선소 용접공이었지만 정리 해고 당하고 남편 없이 두 딸을 키우는 가장으로 '하청 물량팀'으로 자신을 자른 회사에 가서 수모를 감수하며 일하는 엄마, 바람같은 딸을 지키는 그녀의 방식은 작업복처럼 투박하지만, 어떻게든 학교의, 가정의 품에서 지켜내려는 그녀의 시선은 딸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자신때문에 다시 한번 해고 위기에 몰린 동료들을 위해서는 무릎끓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의리'의 엄마, 이 거칠고 정깊은 엄마 김선영이 청춘 드라마의 중심을 잡으며 시청자의 마음에 연민어린 감동을 전한다. 

 

 

듬직한 어른- 이정은
연극과 영화에서 이미 중견이었던 이정은 배우가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각인된 첫 작품은 아마도 <오 나의 귀신님>일 것이다. '서빙고 보살'로 등장한 이정은은 생활형 점쟁이로 고객과의 만남이었던 선우의 엄마(신은경 분)와 코믹스런 캐미로 극의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예의 신기로 나봉선과 신순애의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하며 시선을 끌었다. 

그 이후 2015년  <송곳>에서 푸르미 마트 야채 청과 직원으로 주인공의 든든한 노조 동지 김정미였다가, <리멤버>에서 역시 주인공들이 만든 변두리 로펌의 듬직한 사무장이었으며, 2016년 <피리부는 사나이>에서는 남편을 잃고도 여전히 112종합 상황실을 지키는 여주인공의 든든한 조력자였다. <월계수 양복점>의 공방을 지키던 금촌댁이라고 달랐을까. <도둑놈 도둑님>의 쿵푸 달인이던 권정희도, <쌈, 마이웨이>의 설희 엄마 금복도, 모두 믿음직스런 이정은의 변신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든든했던 이정은의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어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엄마가 아닌, <미스터 선샤인>의 유모 함안댁을 통해서이다. 핏덩이로 '배달'된 애기씨, 그 애기씨 고애신을 품어 키운 엄마보다 더 엄마같은 유모 함안댁, 하지만 함안댁은 그저 유모가 아니었다. 의병을 하다 목숨을 잃은 부모님의 뒤를 따라 기꺼이 의병 활동에 헌신한 애기씨의 숨은 동지였고, 보호자였으며, 끝내 그녀를 지킨 '은인'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손 한번 못잡은 행랑아범과의 로맨스는 웃다가 설레이다 결국 울음을 터트리게 했다.

그 모든 '씬'이 설득되었던 건 이정은이라는 배우의 내공이었다. 그녀의 눈빛 하나로 송곳의 노조도, 의병의 신념도 설명시켜내고, 그녀의 어수룩한 표정 하나로 시청자를 해제시켰으며, 넉넉한 품새로 품어주는가 하면,  그녀가 입맛다셨던 짜장면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둔갑시켜버린 그 순간순간에 이정은이 있었다. 

 

 

미워도 밉지 않은 - 염혜란
미웠다. <도깨비>의 어떤 악역보다도 미움을 받았다. 동생이 남긴 유일한 딸, 하지만 이모인 지연숙에게는 그 조카가 그저 보험금으로 보인다. 남편보다도, 딸보다도 돈이 좋은 여자, 그래서 처절하게 몰락해가는 그 '이모'만큼 실감나게 우리 시대의 속물의 끝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 미움의 원횽은 끝내 이승에서 그 '벌'을 톡톡히 받으며 카타르시스의 산증인이 되었다. 그렇게 지연숙을 실감나게 밉게 그려내며 염혜란은 시청자 곁으로 훌쩍 다가왔다. 

하지만 염혜란이란 이름보다 먼저, 작품 속의 캐릭터로 우리는 그녀를 이미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016년 <디어 마이 프렌드>에서 결혼 생활 내내 골병이 들도록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정아 이모네 애증의 큰 딸로 마음을 후비며 등장했었다. <7일의 왕비>에서는 맛갈스런 사투리와 그 보다 더 맛갈스런 연기의 유모로 '신스틸러'임을 증명해 내고, <라이브>에서는 우리 옆집에 살 것 같은 '아들 바보' 엄마로 분한다. 그리고 한양이 만큼 잊을 수 없었던, 돈버느라 아들을 놓친 하지만 그래서 엄마 손으로 아들을 잡아 넣을 수 밖에 없어 가슴에 대못이 박힌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한양이 엄마로 우리는 다시 염혜란을 기억하게 된다. 

염혜란이 늘 '우리 이웃'에만 머물렀던 건 아니다. <무법 변호사>에서는 온갖 귀금속을 주렁주렁 매달고 기성 시의 보이지 않는 손 차문숙의 오른 팔로 고군분투했고, <라이프>에서는 조승우가 분한 상국대학 병원 총괄 사장의 오랜 측근으로 '전문직' 혹은 '고위직'의 옷을 갈아 입으며 또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하지만 염혜란이 우리네 이웃의 그 누군가가 되어도 저 높은 지위의 그 누가 되어도 변함이 없는 건, 세상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 너무도 실감나는 그녀의 연기다. 
 

by meditator 2018. 12. 14. 04:55

공중파, 케이블, 종편, 심지어 웹드까지 범람하는 드라마 시장, '이런 드라마가 있었어? 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드라마들, 10%가 넘으면 대박,  애국가 시청률인 1%도 생소하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의 제작 편수는 늘어났지만 과연 그 양만큼 질을 담보해 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2018년, 그래도 이들 드라마가 있어 드라마 볼 맛이 났다는 몇몇 드라마들이 두드러진 활약을 선보였다. 

여전히 왕좌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선샤인>은 '명불허전'이었고, <또 오해영>의 박해영 작가에게 <나의 아저씨>는 '환골탈퇴'였으며, <안투라지> 서재원 작가의 <손 the guest>에 이르면 '개과천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제 아무리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지만 이들 드라마를 작가들의 이름만으로 설명하자니 어딘가 아쉽다. 그건 바로 올 한 해 '명품'이었던 이들 드라마들에서 작가만큼, 아니 때로는 작가보다 더욱 빛났던 피디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은숙 작가에게 날개를 달아준  이응복
일찌기 <파리의 연인(2004)>이래 김은숙 작가는 '로코'의 여왕이었다. 하지만, 그러던 그녀에게 찾아온 위기는 뜻밖에도 바로 지금의 동지 이응복 연출때문이었다. 2014년 동시간대 kbs2의 <비밀>에 김은숙 작가의 <상속자들>은 고전했고, 당연히 김은숙 작가의 한계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 한계는 2016년 '적과의 동침', 이응복과 김은숙의 만남으로 통해 극복되었다. 

아니 극복이 아니라 날개를 달았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무엇을 써도 '로코'였던 김은숙 작가의 작품은 서사성은 물론 서정적으로도 탁월하고 웅장한 스케일을 펼쳐내는데 거침이 없는 이응복 연출을 만나 시대성을 담은 문제작으로 거듭났다.  그리스의 풍광을 배경으로 낯선 땅 그곳에서 '조국'의 사명감을 안고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젊은 의사와 군인들의 이야기 <태양의 후예(2016)>에 과연 이응복의 터치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마찬가지다. 고려를 연상케 하는 과거와 동유럽의 이국적 정서, 그리고 현실과 도깨비의 세계를 오가는 시공초월 러브스토리였던 <도깨비(2017)> 역시 첫 회부터 비극적 정서를 한껏 뿜어내던 김신의 캐릭터 설정과 지은탁의 키다리 아저씨였던 두 남신의 미학적 장치가 아니었다면 과연 설득력을 지녔을까 싶다.

그리고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018년 김은숙 작가는 '사극'에 도전한다. 그것도 드라마계에서 승률이 언제나 불리했던 구한말 의병의 이야기를. 김은숙 작가의 이야기는 <토지>의 어느 장에선가 본 듯했고, 여전히 김작가만의 '로코'적 대사와 전형성을 그리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스토리와 관계의 행간을 이응복 연출의 비장하고도 장엄한 구한말 조선의 재연을 통해 메워냈고  시청자들은 거기에 다시 한번 감응했다. 이응복의 연출은 성당을 가득메운 구비구비 이야기가 담긴 예술적 벽화와 천장화처럼, 심지어 창문을 빼곡하게 채운 스테인드글라스의 조합까지 놓치지 않고 채색해가며 드라마를 완결시킨다. <태양의 후예>에서, <도깨비>, 그리고 이제 <미스터 선샤인>을 경과하며 어느덧 김은숙의 이응복이 아니라, 이응복의 김은숙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격조가 다른 드라마의 장을 펼쳐냈다. 이 압도적인 윈윈 조합이 과연 2019년에도 이어질 지 두 사람의 파트터쉽의 귀추가 주목된다.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선샤인>이 이응복 연출 스케일을 통해 여타 드라마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드라마로 거듭남으로 2018년 드라마계에서 독보적이었다면, <나의 아저씨>는 올 한 해 시청자들을 이른바 '힐링'이란 차원에서 압도했던 드라마이다. 

 

 

우리 시대의  '나저씨' 김원석
이미 <또 오해영>을 통해 '로코'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던 박해영 작가, 하지만 <나의 아저씨>는 이 작품이 <또 오해영> 작가 꺼야 라는 의문을 제기할 정도로 다른 색채의 작품이다. 회사 내 권력 싸움 와중에 건축 구조 기술사로서의 직업적 자부심이 무색하게 밀려나고 또 밀려날 처지의 아저씨 박동훈과 그의 회사 일개 비정규직 사원으로 인연을 맺게 된 밑바닥 청춘 이지안이 '회사'와 사회를 배경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는 <또 오해영>보다는 김원석 피디의 <미생>에 더 가닿는다. 

일찌기 <성균관 스캔들(2010)>로 조선시대 빛나는 청춘들의 성장담을 그렸던 김원석 피디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지만 2013년 그 청춘의 성장담을 '음악'을 매개로 하여 그리려 했던 <몬스타>을 경유한 후 '아프니까 청춘이다' 시대의 공감과 위로를 담았던 <미생>으로 그의 이름을 세상에 각인시켰다. 

<미생>에 열광했던 시청자들은 시즌2를 기대했지만, 김원석 피디는 다른 방식으로 시대에 응답했다. <싸인>의 김은희 작가와 손을 잡으며 과거과 현재의 인물이 무전기를 매개로 '시대를 관통하는 적폐'의 상징적 사건을 해결하는데 돌진함으로써 2016년 '적폐' 시대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그리고 이제 2018년 마치 <미생>2처럼, 세상사에 치인 사람들에게 기댈 '내력'이 되어준다. 김원석 피디는 민감하게 시대에 반응하되,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선함과 그를 향한 의지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 '긍정'의 미학을 일관되게 작품을 통해 그려내왔다. 그리고 그 '절정'이라 할만한 작품이 바로 <나의 아저씨>이다. <미생>에서 오상식과 장그래에게 열광했던 사람들은 2018년 박동훈과 이지안을 응원했다. 아니 열광하고 응원하도록 김원석 피디가 그려냈다. 

김규완, 김태희, 정윤정, 김은희, 그리고 박해영, 그간 김원석 피디와 함께 했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다. 이들 작가는 김원석 피디와 함께 새로운 차원으로 거듭났으며, 김원석 피디는 이들 작품을 통해 예의 김원석 표 휴머니즘, 따뜻하지만,  나약하지 않고, 흔들리되 꺽이지 않는, 그리고 언제나 세상사에 눈감지 않고, 늘 손을 잡고 함께 가는 이야기들을 끈질기게 펼쳐낸다. 과연 2019년 김원석이 그려낼 시대 정신은 어떤 것일지 벌써부터 궁금해 진다. 

 

 

엑소시즘까지, 장르의 개척자 김홍선 
<보이스1>을 연출했던 김홍선 피디가 한국적 엑소시즘 드라마를 만든다 했을 때 그 작가가 <안투라지>의 작가라는 발표에 다들 우려를 금치 못했다. 그만큼 미드 <안투라지>를 바다 건너 '탱자'로 만들어 버린 작가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하지만 그 우려는 <손 the guest>의 세계가 열리면서 '기우'가 되어버렸다. 

엑소시즘은 외국 영화로는 여러 시리즈로 호평을 받았지만 한국 드라마에서는 이질적인 장르이다. 하지만 김홍선 피디에게 '이질적'이란 수식어는 '도전'이란 말로 치환되는 듯하다. 일찌기 <도시 괴담2>를 시작으로 <야차>, <무사 백동수>, <조선 추리 활극 정약용>, <라이어 게임>, <피리부는 사나이>, <보이스>에서 이제 2018년 <손 the guest>까지 그의 작품은 곧 장르물의 개척지가 되었다. 게임이 드라마로 들어왔고, 니고시에이터, 보이스프로파일러 등 드라마에서 생소했던 직업들이 장르물의 주인공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이제 귀신들린 이에게서 악령을 내쫓는 구마 사제와 전통의 무당이 바다로 부터 온 박일도라는 바다로부터 온 '거악'을 없애기 위해 콜라보를 하기에 이른다. 

장르물의 개척자답게 늘 김홍선 피디의 작품에서는 '스토리'보다 '액션'이 앞서나가는 경향이 있어왔다. 장르의 설정은 그럴 듯하지만 막상 펼쳐놓으면 '액션'에 방점이 찍히며 서사는 저만치 밀려나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라이어 게임>, <보이스>를 경과하며 김홍선 피디의 작품 역시 서사의 미흡함을 채워나갔다. 물론 <손 the guest> 에서도 15회에서 '좀비'들의 뜬금없는 향연으로 시청자를 의아하게 했지만 마지막 회 처절한 최윤의 윤화평에 대한 혈투와도 같은 바닷속 구마 의식으로 절정의 대미를 장식해냈다. 

서사만이 아니다. 묻힐 뻔했던 서재원 작가의 장기를 살려낸 것부터 그간 차곡차곡 쌓아온 내공이 보색의 절묘한 배합으로 공포감을 극대화시켰던 조명, 전래의 꽹과리를 협연시키며 긴장감을 배가시켰던 음악과 음향까지, 어느 부분하다 비워진 틈없는 종합 예술로서 <손 the guest>를 완성했다.

 

 

하지만 2018년에 빛을 발한 연출력에는 이들 세 사람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연출'의 역할이 눈에 띄는 한 해였다. <손 the guest>에 앞서 장르물의 화제가 되었던 <라이프 온 마스>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다수의 리메이크작들이 '바다 건너 탱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70년대로 타임슬립한 영국의 수사극이었던 <라이프 온 마스>를 당시의 맨체스터와 비슷한 1988년 인성시를 통해 재현해 냈다. 이것이 진짜 '응답하라 1988'이었다는 평가처럼, 당시 최고의 유행가였던 조용필의 미지와의 조우 등을 배경으로 여전히 법과 과학 수사보다, 주먹과 우격다짐과 편법이 득세하던 80년대 지방 도시의 공기를 실감나게 그려내며 외려 원작보다 더 원작의 주제 의식을 잘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박보검, 송혜교의 스타 캐스팅인 동시간대 tvn의 <남자 친구>를 무색케 하는 <황후의 품격>의 주동민 피디가 2018년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이미 주연배우의 하차라는 악수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해낸 <리턴>에서 인정받았던 '포르테시모(매우 세게)'한 주동민 피디의 연출력은 '막장의 대가'라는 김순옥 작가의 작품을 에니메니션 기법 등 화려한 변주를 통해 안정적으로 미니 시리즈로 안착시켜내며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들 외에도 예단하기엔 이르다 하겠지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돌아온 <비밀의 숲>의 안길호 피디, <스카이 캐슬>의 조현탁 피디 등도 2018년을 빛낸 장인의 대열에 이름을 올리는데 손색이 없지 않을까. 풍성했던 피디들의 연출력으로 인해 작품들이 더 돋보였던 한 해 과연 2019년에는 또 어떤 장인들이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줄까, 풍성한 수확으로 다음 해의 기대가 부풀어진다. 

by meditator 2018. 12. 12. 04:50

내가 힘들고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가장 위로가 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아 비슷한 처지나,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는게 솔직한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른바 '동병상련', 저러고도 사는데, 혹은 나와 비슷하다는 연민으로 뜻밖에도 내 삶을 버텨낼 에너지를 얻는다. 얍삽하다고? 아니 '사회적 존재'로 태어나고 살아온 '인간'이기에 불가피한 감정이라고 하는게 더 맞다.

늘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류적 존재인 우리들은 그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가 늘 나보다 잘 살고 있다면, 내 삶의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 터이니. 그러기에 '성장 시대'를 일궈낸 '부모' 세대는 이미 그들보다 더 잘살기 힘들다는 것이 전세계적으로 확증된 '자식'세대에게 어쩌면 '넘지 못할 산'과도 같은 부담일 뿐이다. '거산'에 막히고 전쟁과도 같은 현실속에서 버둥거리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 뜻밖에도 이들이 '공감'을 길어올린 건 '전쟁' 시대를 살아낸 '조부' 세대이다. 12월 9일 방영된 <빛나라! 할머니>는 그 '전후 세대'의 삶을 통해 자기 삶의 당위성을 길어올리고자 하는 이 시대 젊은 세대의 '역설적 존재론'이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할머니의 생애
이금순 씨는 올해 82세이시다. 열 여덟에 시집와서 다섯 자녀를 키우시고 또 그 자녀들의 손주까지 보신 일가의 할머니다. 인생의 여든 고개, 그녀가 맞이한 건 '알츠하이머', 모처럼 찾아온 손주에게 정수기에서 나오는 온수따위 믿을 수 없다며 가스렌지에 펄펄 물을 끓여 맛난 커피를 타주고 싶은데 정작 커피가 놓인 자리를 찾지 못하는 처지, 당연히 지나온 삶의 구비구비 쌓였던 사여들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그런 이금순씨가 말끝마다 신나게 부르는 노래의 한 구절,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아싸, 야로~!', 젊어 애청했다던 '여자의 일생'도 기억이 안난다는 할머니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이 구절의 사연이 궁금해 손자 김빛나라 씨가 할머니가 살아온 곳을 더듬는다.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여전히 젖이 부족해 자신의 가슴을 들이받던 아이들에게 보리죽조차 넉넉하게 먹이지 못했던 그 시절이 아픈 할머니, 군에서 제대한 할아버지와 함께 정미소를 운영했다면서도 자식들 배를 곯렸던 시절, 그래도 할머니는 찾아온 동네 사람들에게 저녁을 나눠먹이던 넉넉한 품을 지니신 분이셨다. 어디 젊은 시절 뿐일까. 여전히 자식들 가까이 사는 지금의 집보다, 이제는 살림살이 하나 없는 예전 집이 더 익숙한 그 동네, 동네 사람들을 보자 할머니의 안색이 빛난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내, '쨍하고 해뜰날', 해마다 봄이면 마을 회관 사람들이랑 다녔던 봄놀이에서 불렀다던 그 노래, 그 노래를 함께 부르며 할머니는 내년 봄의 봄놀이를 기약하신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의 삶을 따라가다 자신도 모르게 울컥한 손자, 서른 둘, 직장을 다니다 길을 잃어 그 길을 찾아 해외 배낭 여행을 다니던 손자, 여전히 길은 막연한데, 가난하고 고생스런 삶을 버텨오신 할머니를 보며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다짐해 본다. 

 

 

그저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던 할머니의 식혜
여기 할머니의 일생을 더듬어보는 또 다른 손자가 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점 개업을 준비하는 손자 정요한 씨, 그는 서점의 색다른 아이템으로 밥알이 탱탱하게 살아있는 할머니의 식혜를 떠올린다. 

그 식혜의 비법을 배우기 위해 들른 할머니의 집, 쌀을 불리고 찌고, 엿기름물을 만들고 밥통에 띄우기까지 '시간'의 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이걸 그 옛날에 밥통도 없이 쌀을 몇 말씩이나 하셨단다. 또 다른 할머니의 장기인 팥 양갱을 배우려는데 가마솥 불피우기부터 젬병이다. 할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나뭇가지를 잘 정렬하여 불을 피우고 팥을 끓이고 그걸 다시 몇 번에 걸쳐 거르고 한천과 함께 만들어 낸 양갱, 배우긴 배우는데 공이 이만저만 아니여서 요한씨는 연신 놀라는 중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자라면서 식혜를 먹고, 양갱을 먹을 때 그저 할머니가 심심풀이로 만드셨는 줄 알았는데 학교 다니는 고등학생 할아버지를 만나 시할아버지에, 세 분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층층시하 밥 먹을 새도 없이 살던 그 시절 고모님이 만드신 걸 보고 어깨너머로 만들어 내셨다는 열의는 학교 근처에 가보지도 않고 시집살이 틈틈이 한글을 익히신 향학열로 이어지셨다고. 

그 할머니의 열의와 열정 앞에 서른 셋의 나이에 새로운 길에 선 요한 씨는 새삼 고개가 조아려진다. 그리고 할머니처럼 견디며 버티고 그 속에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선택한 새 길에서도 어떤 희망이 있지 않을까 각오를 다져본다.

 

 

손때가 묻은 60권의 가계부
허나영 씨에게는 유명 스타와의 기념 사진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 홍보일을 하던 시절 정신없이 바빴지만 어느덧 그 속에서 자신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설치 미술'을 하고 있는 어엿한 작가, 그녀의 '미술적 재능'은 어디로 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 '예술적 DNA'는 뜻밖에도 할머니에게서 찾아진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 할머니는 고운 무늬가 있는 종이를 모았다가 봉투를 만들어 명절 때 손주들 '세뱃돈' 등을 넣어 주셨다. 지금 봐서도 예술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무니며 만듬새, 그 작품의 주인공은 이제 93이 되신 오영순 할머니시다. 

하지만 할머니의 진짜 작품은 이 봉투가 아니라, 할머니가 '가정'을 꾸리고 살아오신 세월과 맞먹는 60권의 가계부이다. 학교 선생님이셨으나 동료 선생님이셨던 남편과 가정을 꾸리시면서 가정주부로 살아오신 시절, 박봉의 선생님 월급으로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고심하며 살아온 그 시절이 고스란히 가계부에 담겨있다. 하지만, 그저 할머니가 사들인 물품 목록과 가격만이 아니다. 그 가계부의 비고난에 빽빽이 적어내려간 그 시절의 일기, 사건들, 그 속에 90평생을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겼다.  가난한 살림, 그 속에서도 세상사에 관심을 놓지 않으면서도 가족을 꾸려가느라 '곤란'했지만 애써 견디며 노력했던 할머니의 삶은 작가의 길에 들어선 손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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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를 조명하는 다큐들이 늘었다. <미운 우리 새끼>와 새로 시작한 <아모르 파티> 등 예능에서 새로이 조명되는 세대와 같은 연장선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얼마전 MBC 스페셜 <엄마와의 인터뷰>, <기막힌 내 인생 누가 알랑가?>와 이제 SBS스페셜 <빛나라! 우리 할머니>는 그저 그 세대에게 조명을 비추는 걸 넘어, 할머니, 어머니라는 가족 내 일원이 아닌 '한 사람', 그것도 어려운 시절을 살아낸 자기 극복의 표본으로 주목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주목'의 시선에는 바로 현재, 그들만큼 힘들다 느끼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있다. 그러기에 시작은 '할머니', '어머니' 세대이지만 그 다큐의 끝엔 여기가 있다. 전쟁통에, 가난한 시절을 그렇게 버텨낸 것이 '승리'라고 말하는 다큐는 결국, 그러니 우리도 버텨보자, 살아내 보자며 다독인다. '고생'의 연대이다. 

by meditator 2018. 12. 10. 16:18

ocn에서 처음으로 편성한 수목 밤 11시, 그 첫 테이프를 끊은 <손 theguest>는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했다'는 말을 증명했다. 1.575%(닐슨 코리아 전국 케이블 기준)로 시작했던 드라마, 하지만 드라마에 잠시 출연했던 배우의 sns에 궁금증의 댓글이 달리고, 이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드라마 중 악의 절대 세력을 상징했던 '박일도'의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고, 심지어 그 정체가 밝혀졌음에도 외려 드라마의 긴장감이 더해지며 끝까지 시청자들을 흡인시키며 주인공 세 사람 '김동욱, 김재욱, 정은채'에 대한 열화와 같은 지지와 함께 4.073%로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엑소시즘'을 내건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종영 전부터 예고가 되었던 같은 방송사의 주말 <프리스트>로 이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열기가 식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5회를 경과하고 있는 <프리스트> 기대와 달리 1,2%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같은 주제 드라마의 연속 방송이 주는 피로감?
아마도 편성을 하는 입장에서는 <손the guset>로 불붙은 '엑소시즘'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관심'은 이미 첫 회를 보는 과정에서 무너지기 시작해 버렸다. 

<손the guest>에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건 어느 한 요소때문만이 아니다. 연기, 연출, 심지어 조명에 이르기까지 '엑소시즘'의 분위기와 긴장감을 한껏 불러일으켜 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 드라마 장르에서 생소했던 '엑소시즘'이란 낯선 주제가 거부감없이 수용될 수 있었다. 반면 <프리스트>는 바로 그 대척점의 지점에서 드라마를 시작한다. 

드라마는 '남부 카톨릭 병원'이 배경이 된다. 긴박한 응급실, 그곳에 여주인공 함은호(정유미 분)가 있다. 때로는 병원 시스템이 요구하는 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도 환자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정의감'이 앞서는 의사, 어린 꼬마 환자 우주, 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응급수술에 돌입하지만 안타깝게도 목숨을 살려내지 못한다. 하지만 고개를 조아린 채 환자의 가족 앞에 선 것도 잠시, 꼬마의 심전도 그래프가 다시 움직인다. 그리고 기적처럼 살아난 환자, 심지어 생명의 기로를 오가던 그 상처는 기적처럼 회복이 빠르다. 그리고 병원 장례식장에서 쓰레기를 주워먹는 등 '구마'된 상태로 돌아다니던 우주와 젊은 구마 사제 오수민(연우진 분)이 마주치게 되고, 오수민은 결국 꼬마의 몸에 들어간 악령을 구마하기 위해 소년을 납치하여 이제는 쓰지 않는 오래된 폐병원 건물로 가 구마 의식을 한다. 

 

 

이렇게 1회에서 '구마'에 이르기까지의 장황한 과정에서 드라마는 두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명하고자 한다. 양 손을 다 쓸 정도로 능력자이며 환자의 치료 과정에서는 융통성이 만랩이던 여주인공 함은호는 정작 이상 증세를 보이는 환자를 두고 '악령' 운운하는 사제 오수민과 필요 이상의 실랑이를 벌이며 사건의 진행을 막는다. 그런가 하면 아직 '구마'를 할 만큼 경험과 능력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오수민은 스승이자 또 다른 구마 사제인 문신부의 허락도 없이 대뜸 우주의 구마를 시도한다. 막는 의사와 열혈 젊은 사제의 실랑이 속에서 압도적으로 드러나는 소년 속의 악령의 존재, 하지만 그 '악령'을 만나기 까지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많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1회를 본 시청자들은 당연히 <프리스트(신부)>란 제목과 달리 이 드라마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즉,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의학 드라마'인가, 아니면 사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엑소시즘 드라마인가 이다. 물론 드라마는 이 둘을 합친 '메디컬 엑소시즘'이라 하지만 정작 본 시청자들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이제 5회에 이른 드라마는 계속 남부 카톨릭 병원을 배경으로 환자에 이어 전문의, 간호 조무사 등 이 병원과 관련된 사람들이 악령에 씌임으로써 배경 역할을 톡톡히 하지만, 이른바 드라마가 내걸고 있는 메디컬 엑소시즘이라는 콜라보 장르의 의미는 쉬이 다가오지 않는다. 

 

 

신부의 키스?
그렇게 '메디컬'도 '엑소시즘'도 어정쩡하게 시작된 드라마,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미 1회에서 부터 '구마' 의식에 걸림돌 역할을 하던 여주인공은 이후 조력자가 되었지만, 정작 엑소시즘의  과정에서 매번 중요한 계기가 됨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함은호는 착하고 헌신적이지만 그냥 그럴 뿐이다.

그런데 4회에서는 '최면 과정'에서 젊은 신부 오수민과 함은호의 '과거'와 관련된 사연이 복선으로 등장하며 '키쓰'까지 하며 외려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논란'은 '신부의 키스'가 아니라 결국 4회에 이르기까지 시청자들에게 조력자임에도 매력적인 캐릭터도 다가서지 못한 함은호나 오수민의 캐릭터에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심지어 이제 6회를 앞두고 그녀 주변에서 벌어지던 사건들이 그녀를 가르키고 있으면서 신부와의 키스 이상 '사연'이 등장할 예정이지만 그다지 구미를 당기지 못하는 게 <프리스트>의 안타까운 지점이다. 길영이 형이라고 까지 불리며 든든하게 드라마의 한 축이 되었던 <손the guest>의 강길영을 그리워한 이전 드라마의 호청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거기다 이제 5회차에 이른 드라마에서 어쩌면 가장 큰 의문은 정작 드라마에서 이렇다할 비중있는 활약을 하지 않음에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문기선(박용우 분)을 차치하고 왜 모든 '구마 의식'의 중심에 아직 이렇다할 경험이 부족해 보이는 오수민이 있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오수민은 비롯한 634레지아라고 하는 '구마' 레지스탕스를 만들고 그 대표인 듯한 문기선이지만, 늘 사건의 중심, 그리고 구마의 중심에는 어설퍼보이는, 그래서 최면 속에서 어머니의 환영에 고통받는 오수민을 내세워야 하는가 라는 '합리적 질문'에 드라마는 이렇다할 타당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즉, 선배 구마 사제의 갈등과 죽음을 목격하고, 그럼에도 자신의 형을 찾아서, 그리고 그 형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박일도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구마하려고 했던 <손theguest> 최윤(김재욱 분)에게 마음이 가닿았던 시청자들에게 오수민은 어설프고, 문기선은 무게만 잡는 그런 존재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엑소시즘 드라마에 관심을 가진 시청자들이 흥미을 가질 만한 구마 과정이나 의식에 대한 긴장감을 드라마가 제대로 유지해 가고 있는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희생자들을 전면에 내세워 박일도의 정체를 따라가던 <손the guest>처럼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악령과의 '악연'을 가진 이들이 '레지스탕스'처럼 조직을 만들어 구마 의식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프리스트>는 동일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윤화평과 최윤, 강길영이 가졌던 처연하고도 비극적인 악령과의 악연은 <프리스트>에서 어쩐지 실감나지 않는다.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 얕으니 그들의 비극적 사연조차 그저 한 에피소드처럼 스쳐지나가 버린다. 

물론 섣부르게 예단 할 것은 아니다. 아동 학대의 희생양이었던 우주, 그에 이어 번아웃 증세를 보이던 견습의, 그리고 이제 직업적으로 소외된 간호 조무사의 악령들림을 통해 병원이란 배경 속 캐릭터들을 활용해 나가고 있다. 또한, 최면과 폴터가이스트 현상 등 다양한 악령과 구마 의식의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거기에 구마 레지스탕스의 사연과 활약도 기대해 볼 만하다. 안타깝게도 초반에 시선을 잡지 못하고 캐릭터의 어설픔으로 인해 관심을 놓쳤지만 오수민과 함은호, 그리고 문기선 등의 관계에서  매회 풀어놓는 사연의 곡진함은 유장하다. 부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풀어내 '창대'한 결말에 이를 수 있도록 <프리스트>의 건투를 빈다. 

by meditator 2018. 12. 9. 17:34

'해와 하늘 빛이 서러워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 하나 먹고/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라는 천상병 시인의 문둥이란 시로 시작되었다. 아니, 그 시의 한 구절, '애기 하나 먹고'처럼 드라마는 '아이'의 희생에 대한 사건을 '시'로 수식하여 시작되었다. 

 

 

죽음과 시, 그리고 아이
시작은 아이의 죽음이다. 남편과 아이, 그리고 이제 곧 세상으로 올 둘째 아이를 가진 세상 부러울 것 없었던 아동 상담사 차우경, 그렇게 햇살같았던 그녀의 일상은 우연히 그녀 앞에 뛰어든 어린 소년으로 인해 어둠이 깔린다. 그렇게 우경에게 벌어진 우발적 사고와 함께 시작된 강력반에 배당된 의문의 사고들, 아동학대 치사 공범이 차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되고, 그 범인은 스스로 '자해'하여 자신의 목숨을 끊고, 아내와 딸을 학대하던 남자는 차에서 역시 스스로 연탄불을 펴서 자살을 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방기된 채 상담센터에서 아이를 기르던 젊은 엄마 역시 '썩어서 허물어진 살 그 죄에 무게'라는 붉은 페인트 낙서에 둘러싸여 미이라가 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미이라가 된 젊은 엄마를 발견한 계기로, 거기에 알고보니 강력반 형사 강지헌(이이경 분)의 전연인이 차우경 남편의 내연녀였던 인연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두 사람의 행보는 겹쳐진다. 그저 의아심만으로 사건에 접근해 들어가던 지헌에게 우경은 젊은 엄마 시체의 발견에서 부터, 개장수인 그 전 남편의 집 수색, 보육원에 버려진 아이의 발견 등등 적극적인 활약을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개별적인 사건들 사이에 '아이', 그것도 친부모로부터 방기되고 학대당한 아이가 있음을 밝혀낸다. 

 

 

개장수로부터 학대당하던 떠돌이 소녀 출신의 엄마는 상담 센터에 숨어 아이를 키우지만 거의 방기하다시피한다. 그리고 아이의 눈 앞에서 그 '누군가'에 의해 천식 호흡기를 빼앗긴 채 죽어 '죄의 무게'의 대가를 치룬다. 아내를 때려 탄 보험금으로 노름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딸 아이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던 아빠에게는 아내가 사간 연탄불이 배달되었다. '자살'이나 '의문사'로 처리될 죽음의 속에 숨겨졌던 '붉은 울음'이 강지헌의 추궁으로 드러나며, '학대된 아이'가 매개된 사건에게 '배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천식 기침에 숨이 넘어가던 엄마의 호흡기를 치운 사람도 붉은 울음일까? 과연 붉은 울음은 누구일까? 

미친 여자 차우경, 그녀는 누구일까? 
드라마의 시작은 '아이'에게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차우경이었다. 자신의 차로 뛰어든 소년으로 인해 일상이 무너질 정도로 고통받던 그녀, 남편이 떠나갔을 때 결국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아이를 죽인 죄의 대가라 감내하려 했던 우경, 아이를 구하기 위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으스스한 낡은 창고도, 위험해 보이던 개장수의 집도 마다하지 않던 우경, 그녀의 '정의'에 시청자는 함께 시선을 맞추어 <붉은 달 푸른 해>의 서사를 따라갔다. 

 

 

그런데, 동시에 그런 우경으로 인해 혼돈스럽다. 그녀의 차에 뛰어든 건 초록원피스를 입은 대여섯살 정도의 여자 아이일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보다 훌쩍 더 큰 남자아이였던 그 순간부터, 시시때때로 그녀의 눈앞에 등장하는 그 '초록옷의 여자 아이'는 우경만큼 시청자들을 혼돈으로 빠뜨렸다. 하지만 그 '혼돈' 속에서 우경은 그 '아이'가 이끄는 대로 사건의 현장에 뛰어들어 두 아이를 구했다. 미이라가 됐던 젊은 엄마의 딸과, 그녀의 차에 치어죽어간 소년의 동생, 모두 초록옷 소녀를 찾아 헤맸던 행로의 끝에서 만난 학대받고 방기된 아이들이다. 

과연 초록옷 소녀는 누구일까? 여전히 초록옷 소녀가 보이냐는 지헌의 질문에 우경은 이제 더 이상 그 아이로 인해 혼란스럽지 않다 한다. 그 아이로 인해 다른 아이들을 구할 수 있던 우경, 하지만 그뿐일까? 남편의 외도로 인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부엌에서 칼을 들고 뛰쳐갈뻔 했을 때도, 그리고 이제 자신이 치어 죽인 아이를 '돈'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채 외면하는 엄마를 차로 밀어버릴 뻔한 순간에서도 우경을 저지하고 위로한 이는 '초록옷 소녀'였다. 

그리고 12회 마지막 초록옷 소녀의 몽타주를 작성하던 우경에게 떠오르는 과거의 한 장면, 그 속에서 누군가에게 떠밀려 쓰러지던 그 '초록옷 소녀'. 그리고 그 순간 경찰서의 강지헌에게 떠오른 가장 유력한 사건의 배후, 붉은 울음, 그리고 차우경이다. 즉 1회에서 부터 12회까지 헌신적으로 사건을 이끌어 오던 우경은 동시에 늘 사건의 현장, 혹은 사건의 연결고리가 되어 등장했던 것이다. 심지어, 미이라가 된 젊은 엄마를 발견하기까지. 과연 우경은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그건 마치 우경이 치어 죽였지만, 그 소년에 애닮아하며 그 동생을 구한 그 정황과도 유사하다. 그 사건은 우경에 대한 또 다른 상징일까?

 

 

거기에 더해진 의미심장한 관계, 바로 우경과 우경의 새엄마(나영희 분), 그리고 뜻모를 미소를 지은 듯한 여동생(오혜원 분)이다. 우경의 자매를 살갑게 보살펴 주는 듯하지만 한 순간 얼음장처럼 돌변하는 새엄마, 그 앞에서 죄지은 아이처럼 쩔쩔매는 우경, 과연 이 세 모녀의 과거에는 어떤 사건이 있을까가 우경의 존재에 대한 키가 된다. 

그리고 그 키에 대한 힌트는 뜻밖에도 우경이 자신의 아이에게 읽어주는 동화에서 등장한다. 다섯 살 딸에게 밤마다 읽어주는 동화, 첫 날 읽어주던 동화는 아기 돼지 삼형제, 다음 날 읽어주던 건 <붉은 달 푸른 해>라는 제목의 '해와달'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경의 구연을 통해, 해석을 통해 풀이된 이야기의 공통점은 바로 '형제'와 '오누이'가 있고, 그들에게 '선한 부모'인 척 다가가는 '늑대'와 '호랑이'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 상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우경의 기억 속에 등장한 초록옷 소녀는 학대당한 우경인가, 아니면 우경이 알고보니 가해자인가. 아니면 그저 우경이 쫓고있는 아동 학대 사건들의 상징인가. 드라마는 맞춰지지 않은 퍼즐 조각들을 뿌려대며 시청자들을 유인한다. 

학대당한 아이의 사건들로 풀어가던 <붉은 달 푸른 해>는 이제 12화를 기점으로 초록옷 아이의 망상에 시달리던 주인공 우경에게로 다가선다. 그녀의 말처럼 '선의에 의한 악행'일까? 아니면 어릴 적 사고로 인한 이중 인격의 발현일까? 아니면 그저 어떤 사건으로 인한 피해 의식이 이제 그녀를 아동 학대의 지킴이로 만들었을 뿐일까? 아동 학대 사건의 씨실 사이로 구비구비 엮어진 차우경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니 사실 차우경만이 아니다. 그녀를 비롯한 등장 인물 모두가 다 의문스러운 <붉은 달 푸른 해>는 시청률은 꼴찌지만 보고 뜯고 추리하는 재미는 '대박'이다. 

by meditator 2018. 12. 7. 15:08

'드라마 왕국의 부활'을 내세웠던 mbc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포진한 마지막 작품은 바로 수목 미니시리즈 <나쁜 형사>이다. 2016년 <피리부는 사나이> 이후 2년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신하균을 주인공 나쁜 형사인 우태석 역으로 내세운 이 드라마는 영드 매니아들 사이에서 이미 입소문이 자자했던 <루터>의 '리메이크' 작이다. 

 

 

또 한 편의 영드 리메이크가 왔다.
올 한 해 그간 우리나라에서 스테디 셀러가 되다시피 했던 '일드(일본 드라마-)'나 미드(미국 드라마)의 리메이크 작들이 <하늘에서 내린 일억개의 별>이나 <미스트리스>의 경우에서 보여지듯 부진했다. 그런 <라이프 온 마스(2018.6~8)>가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에서 성공하며 범람하는 제작 편수와 상대적으로 고질적 콘텐츠 고갈에 시달리는 드라마 시장에 '영드'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셜록> 신드롬에서 보여지듯이 이미 우리에게 '영국 드라마'는 낯선 것이 아니다. 거기에 이미 다수의 영드들이 미드로 '번안'되고 있듯이, 그 작품성과 대중성의 면에서 '영드'는 이미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2018을 마무리하는 mbc 수목 드라마로 영드 <루터>가 등장했다. <셜록>, <라이프 온 마스> 등을 통해서 보여지듯이 '영국 추리, 혹은 수사 드라마'는 독특한 설정과 서사 구성으로 이미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제 시즌 4를 마친 <루터>역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터>를? 아니나 다를까, 공중파 10시에 하는 미니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루터>의 리메이크 작 <나쁜 형사>는 19금의 딱지를 달고 방영을 시작했다. 15세가 보기에는 잔인해서? 아니 그건 태생적으로 19금의 캐릭터를 품은 한국으로 온 루터, 우태석 형사 때문이다. 

 마블의 '토르' 시리즈에서 아스가르드의 문지기인 해임달 역할로 우리에게 얼굴을 알린 이드리아스 엘바가 분한 루터는 영국의 강력범죄 수사관이다. 범죄자 심리 파악에 능하고 거기에 뛰어난 관찰력으로 사건 해결 능력이 뛰어난 수사관이지만, 형식과 절차를 무시하고 때로는 '정의'의 이름으로 나쁜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고 범죄자들을 응징하는 바람에 늘 감사의 대상이 되는 골치덩어리이다. 

바로 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의 구현'을 하는 이 캐릭터가 그간 늘 '법'의 테두리 내에서 '악', 심지어 권력의 비호를 받는 '거악' 앞에서 자괴감을 느끼며 무릎을 끓어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했던 우리 수사드라마 풍토에 신선한 인물 우태석으로 돌아왔다. 

 

 

신하균 맞춤의 우태석 표 나쁜 정의
우태석, 전국 강력 범죄 검거율 1위, 넥타이까지 갖춰 맨 딱 떨어지는 슈트에 멋들어지는 중년의 형사지만, '죄지은 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죄값을 치르게 한다'는 그의 신조로 인해 늘 그의 수사 방식은 윗선을 좌불안석에 떨게 만들며 '감사'와 '감봉'의 처지에 그를 놓이게 만들고, 그런 그가 불안하다며 아내는 '이혼' 서류를 내민 형편이다. 

'잘 할게, 처갓댁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할게'라는 그의 읍소에 아내는 반문한다. '과연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걸 놔두고 달려올 수 있겠는가'라고, 그리고 이혼하기 싫으면 '형사'를 그만두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아내의 요구에 응하는 대신, 어린 아이를 놔둔 채 사라진 젊은 엄마의 실종 사건을 쫓는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초보 순경 시절 그를 좌절케 만들었던 검사 장형민(김건우 분)과 조우한다. 

그가 잡은 아이 납치범을 강압 수사라며 구속 영장을 발부해 주지 않은 검사, 하지만 단지 그 사건 이상 우태석을 오늘의 '걸어다니는 시한 폭탄'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장검사다. 

실종된 여고생을 찾아 풀숲을 수색하던 그날, 밤 늦은 시각 그곳을 배회하던 또 다른 여고생에게서 그는 사건의 단서를 발견한다. 자신에게도 너같은 동생이 있으니 보호해주겠다며 약속을 했던 그, 하지만 그런 그날의 약속은 처참한 사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제 우태석은 그날의 사건 현장의 목격자와 같은 어린 아이를 아무 것도 모른다며 보호하는 대신, 장형민에게 '미끼'를 던진다. 

피해자의 치아를 날로 뽑아대며 쾌감을 느끼며, 그 고문 현장의 증거를 깔끔히 인멸하는 그의 용의주도한 범죄 방식을 역으로 이용하여 사건 현장을 조작하는 듯한 인상을 줘 장형민을 사건 현장으로 불러들인 우태석, 그리고 대부분의 사건 수사 드라마가 그러하듯 음산하고 위험한 공장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던 두 사람은 앞서 장형민이 구속 영장을 발부해 주지 않은 그 사건에서 처럼 난간을 사이에 대치하게 된다. 

난간에 매달린 장형민, 그런데 우태석은 앞서 사건보다 한 술 더 뜬다. 양 손으로 매달린 장형민의 손을 구두로 짓밟고 결국 그는 높은 난간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아마도 장형민의 손을 잡아 '법의 심판대로 갔다면 검사였던 그의 신분으로 '법망'을 유유히 피해갈 수도 있을 지도 모를 상황, 우태석은 그런 번거로운 절차 대신 이미 10년전에 죽었어야 했다며, 그랬다면 아이 엄마도 죽지 않았을거라며 스스로 '심판자'가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장면이 이 드라마가 19금인 이유가 된다. 

 

 

'법'의 절차 대신, 스스로 '심판자'가 된 우태석, 그런데 놀랍게도 이 '나쁜 형사'에 시청자는 동시간대 1위, 7.1, 8.3%의 시청률로 답했다. 물론 거기엔 영드 <루터>의 이드리아스 엘바 저리가라 할 모처럼 돌아온 '나쁜 정의'의 캐릭터에 안성맞춤인 돌아온 '하균신'의 존재감이 크다. 그리고 드라마 왕국 부활의 기치를 내걸을 만한  그동안 어디 있었어?라고 할만한 연출과 극본, 음향, 조명 등의 절묘한 조합이 거들고 있다. <라이프 온 마스>에서 이미 판가름났듯 제 아무리 명작도 '탱자'가 될 수 있는 '리메이크' 시장에서 <나쁜 형사>가 된 <루터>는 손색이 없었다. 19금이란 한계가 무색하게 첫 회에 19금의 정당성을 선포한 스피디한 수사와 캐릭터 소개는 색다른 수사 드라마를 기대한 시청자의 시선을 잡았다. 그리고 거기엔 무엇보다 그간 '법'의 테두리 내에서 고전했던 수사 드라마에 갑갑함을 느끼던 시청자의 니즈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이다. 

첫 술은 배불렀다. <셜록>이 소시오패스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정신적 편력에 기반한 사건 수사를 배치해 나가듯,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루터>는 스스로 '나쁜 정의'를 자처하며 사이코패스와 공조수사를 펼치는 형사의 정신적 방황과 고뇌가 심도깊게 펼쳐지는 사색적인 작품이다. 과연 이런 무게감있는 작품을 <나쁜 형사>가 우리 현실에 맞게 연출자의 말처럼 한국판 '다크 히어로'로 승화시켜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8. 12. 4. 15:11

스페인의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이곳에 유진우(현빈 분)가 온 이유는 '관광'이 아니다. 간밤에 온 한 통의 전화, AR, augmented reality,  즉 증강 현실 게임의 개발자라는 사람의 전화 한 통에 그는 '밤드리' 이곳 그라나다로 날라왔다. 그리고 그 AR 게임의 유입 도구가 된 '렌즈'와 '인이어'를 끼자, 관광지 그라나다가 달라진다. 

 

 

광장에 우뚝 서있던 검을 든 무사의 동상이 뛰어내린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진우를 향해 달려든다. 무방비의 상태에서 진우는 당연히 일격을 당하고. 다음 순간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는 문구와 함께 레벨 1의 첫 번째 게임에서 그는 로그아웃당하고 만다. 그렇게 시작된 게임, 그라나다의 한 광장을 배경으로, 거리의 맥주집 화장실에서 찾은 녹슨 철검으로 진우의 되풀이되는 도전이 지속된다. 매번 '로그인'을 할때마다 진우의 전투 능력은 일취월장하지만 역시 버겁다. 거리의 동이 틀 무렵에야 겨우 무사에게 치명적 상처를 입혀 분수대에 나자빠뜨린 진우. 드디어 레벨 1의 단계를 도약한 그는 환호작약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거리 까페 시민들에게 그는 그저 혼자 미쳐 날뛰는 제 정신이 아닌 듯한 모습. 이게 바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1회의 내용이다. 

 

   

 

송재정 작가의 거침없는 도전 
드라마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 일까? 이 '화두'는 곧 작가 송재정의 화두인 듯하다. MADE BY 송재정의 드라마들은 곧 우리나라 드라마의 개척지가 되어왔다. 2006년에서 2007년까지 지금까지 가장 많이 회자되는 '순재'네 집의 아웅다웅 기록기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그 이름을 알린 송재정 작가는 2008년 알만한 사람들만 아는 문제작 <크크섬의 비밀>로 돌아왔다. 세상에 서해안 낙도에 떨어진 직장인 10명의 무인도 표류기라니. 미드 <로스트>에서 볼 수 있는 설정이 코믹 시트콤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렇게 '독보적 영역'으로 하지만 대중적 호응을 얻는데는 실패했던 송재정 작가는 역시나 알만한 사람들은 '힐링'작이라 손꼽는 표민수 피디와의 <커피 하우스>를 경과하여, <인현왕후의 남자>를 통해 우리가 몸담고 있는 3차원의 세계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조선 숙종 때의 선비 김붕도는 장희빈에 밀려 폐위된 인현왕후의 복위에 힘쓰던 중 뜻밖에 '타임슬립'을 하며 2012년의 드라마 <신장희빈>에서 인현왕후 역을 맡은 최희진(유인나 분)와 조우하게 되며 운명적인 사건과 사랑에 휩쓸리게 된다. 

이처럼, 송재정의 드라마에서 남자는 휩쓸린다. 그가 머물던 세상에서 어떤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서 뜻하지 않은 '신비로운' 비과학적 동인에 따라 자신이 머물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결국 '표절'로 귀결된 <나인>에서 신비의 향 9개를 얻어 20년전의 과거로 돌아간 박선우(이진욱 분)이 그러했고, 2016년 서울이라는 같은 공간인 듯 하지만 사실은 웹툰은 배경으로 한 실재와 가상 세계를 오가던 강철(이종석 분)이 그러하다(W 공간 이동의 시작은 웹툰 매니아였던  여주인공 오연주(한효주 분)이지만)그리고 이제 그라나다라는 실제적 공감을 배경으로 증강현실 게임 속으로 뛰어든 유진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송재정 작가는 과거와 현재, 웹툰을 배경으로 한 가상 세계와 현실, 그리고 이제 현실과 증강 현실로 드라마의 소재적 영역에 도전해왔다. 그러기에 현빈이 분한 유진우가 그라나다의 길거리에서 거리의 동상을 상대로 칼싸움을 하는 황당한 설정은 낯설지만, 송재정의 세계를 함께 해왔던 시청자들에게는 그리 새로울 것도 낯설것도 없는 것이며 그저 송 작가의 또 다른 도전이 반가울 뿐이다. 

하지만 송재정 작가의 도전이 그저 뜬금없는 것만은 아니다. 2012년 <인현왕후의 남자>가 방영될 당시 공중파인 SBS에서 같은 타임 슬립 소재의 <옥탑방 왕세자>가 방영되었듯 당시 '타임 슬립'은 드라마적으로 가장 '트렌디'한 소재였고, 안타까운 결론을 맺었지만 <나인>은 그 '타임 슬립물'에 있어서 최고봉으로 인정받았었다. 

또한 '웹툰'을 배경으로 한 서울의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W> 역시 콘텐츠로서 '웹툰'의 활황에 힘입어 평소 드라마를 보지 않던 젊은 층조차 기꺼이 '닥본사'의 대열에 합류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내노라하는 배우들, 심지어 외국 유명 배우들까지 RPG 게임의 모델로 하는 광고라 TV 광고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임 전국 시대'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보는 이의 '이물감'을 쉬이 잦아들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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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과 로코의 양수겸장 
거기에 더해 송재정 작가의 작품은 '소재'는 파격적이지만, 그 '파격'을 풀어가는 서사의 구비구비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양식을 담아낸다. 조선에서 온 선비지만 2012년 서울에서 '킹카'를 넘어 키다리 아저씨같던 <인현왕후의 남자>가 그러했고, 죽음의 앞에서 아버지와 형,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끊임없이 향을 피우던 <나인>이 그러했다. JN글로벌 공동 대표에 방송국 W를 소유한 사격 국가 대표 출신의 웹툰 속 젊은 재벌 강철이라고 다를까. 만화 속 여주인공이 되어버린 사랑하는 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던진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다르지 않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유진우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그 유진우로 등장한 현빈에게서 우리는 2010년 방영된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의 기시감이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여주인공 정희주(박신혜 분)가 운영하는 보니끄 호스텔의 낡고 미비한 서비스에 울화통이 터진 유진우가 정희주를 향해 분노를 폭발할 때 예의 김주원이 '타임슬립'을 한듯 하다. 그렇게 현빈이 가장 잘 해내는 싸가지 재벌의 캐릭터로, 그러나 정희주의 동생이 게임 개발자인 것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180도 돌변하여 그녀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려는 설정은 익숙한 '로코'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거기에 게임 속 캐릭터로 등장한 정희주의 변모는 당연히 증강 현실처럼 시청자들을 드라마 속으로 흡인시킨다. 

물론 그 '익숙한 로코'의 여정은 증강현실 게임 속을 헤매이는 듯한 1년 뒤 유진우의 설정과 함께 '고난'의 여정이 될 것임을 예측시킨다. 거기에 그의 오랜 친우였다 이제는 전처의 남편이 되어 거침없이 그를 향해 칼을 뽑는 또 다른 유저이자, 경쟁자인 차형석(박훈 분)의 존재는 '갈등'의 계기로서 흥미진진하다. 

이제 2회를 마무리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과연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증강 현실 게임을 제대로 구현해 냈는가 여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하지만 현빈, 박신혜라는 스타 캐스팅을 차치하고서라도 '증강 현실 게임'이라는 낯선 소재에도 불구하고 동시간대 1위(닐슨 코리아 케이블 기준)라는 성과는 그간 우리 시청자들이 얼마나 신선하고 새로운 소재에 대한 갈증이 깊었는가를 보여주는 한 반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송재정 작가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답해주고 있다. 

by meditator 2018. 12. 3. 14:26

저출산이 전 국가적 화두가 되고 있다. 하지만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젓는다. 심지어 나라를 위해 총을 들고 싸울지언정 나를 위해 아이를 낳는 건 '언어도단'이라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맞는 말이다. 한참 아이를 낳기에 좋을 건강한 시절엔 진학이다, 취업이다 하느라 아이 낳을 엄두를 못내는 세대, 그리고 막상 아이를 낳으려니 임신이 쉽지 않은 시대, 이 아이러니한 세태에 대해 <다큐 시선-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가 분석한다. 

왜 비혼주의일까?
33세 한종택씨는 안정된 직장과 함께 집을 옮겼다. 새 침대도 놓고, 전등도 새로 사고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기에 한창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집은 오로지 그만을 위한 공간이다. 이른바 '비혼주의', 그게 결혼에 대한 그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36.3%, 여성의 22.4%만이 결혼해야 한다고 한다. 즉, 결혼 적령기 남성과 여성의 2/3가 결혼은 선택의 문제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곧 '어른'이 된다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남성에게 어른이 된다는 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의식을 '내면화'한 젊은이들에게 그럴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결혼은 '부담'일 뿐이다. 

 

 

이 '부담'을 현실화시켜주는 통계가 있다.  이 통계에 따르면 고소득의 과반수 이상이, 심지어 10분위의 경우 82.5%가 결혼을 하는 반명, 1분위의 경우엔 겨우 6.9%만이 결혼을 했다. 즉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곧 '소득'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통계는 증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공교육만으로 아이를 교육시킬 수 있다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비용은 줄어든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교육은 온전히 사교육에 의존한다. 또한 직업이나 주거 역시 결혼의 주된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과연 이런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결혼'을 감행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젊은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앞서 한종택씨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기 까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미뤄두었단다. 이제 비로소 자신다운 삶을 즐길 수 있는 상황, 그래서 그가 택한 방식이 '비혼주의',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존중해 주길 바란다. 

무자식 상팔자?
그런가 하면 함께 살아도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도 모색된다. 공덕동에 사는 31살의 홍혜은 씨에게는 세 명의 동거인이 있다. 애인과 두 명의 동생, 하지만 이른바 '공덕동 하우스'라는 계간지까지 내는 이 공동체는 '비혼 생활'을 지향한다. 

 

 

자유롭고, 자기 계발을 위한 '비혼'만이 아니라, 더 긴밀하고 건강한 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비혼'을 주창하는 이들, 우리 사회 많은 가족들의 민낯이 그러하듯 누나 동생 사이라도 서먹서먹했던 혜은과 막내 동생은 이 공동체 속에서 서로 말을 트며 누나와 동생의 권위를 넘어서는데 몇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제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이 사회에서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를 잘 꾸려 나가며 그 속에서 서로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함께 고심 중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아이가 없다고 해서, 아이를 당장 낳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를 외면하는 것일까?  어린 시절 산아 제한의 시절 5남매인 덕에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이들이, 9명으로 확대된 온, 오프라인 공덕동 하우스 일원의 아이에게는 조건없는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막상 공동체의 일원으로 아이를 기르는 문제에 있어서는 비용과 시간의 문제를 들어 난감함을 표명한다. '아이'는 좋아도, 아이를 키우기엔 쉽지 않은 사회다. 
이런 젊은 세대의 생각을 반영하듯 결혼해야 한다가 48.1%인 반면, 결혼하지 않아도 같이 살 수 있다는 비율이 56.6%로 결혼해야 한다를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이 비혼 가정의 자녀를 기꺼이 사회의 일원으로 보호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가 미비한 우리 사회에서 비혼 가족의 출산율은 저조하다. 사회는 '아이'를 원하지만, 정작 결혼한 정상 가족의 아이만을 원하는 아이러니가 바로 우리 사회 낮은 출산율의 또 다른 이면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쉽지 않은 결혼 
그렇다면 그 소위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결혼한 정상 가족의 아이'는 어떨까? 
34살의 강종희씨는 오늘도 종종 걸음이다. 동네에서 늦게까지 아이를 맡아주는 어린이집을 겨우 찾았지만 그마저도 늦지 않게 가기 위해서 늘 조바심에 동동거린다. 

엄마를 만난 기쁨도 잠시 이미 해는 져서 어둑어둑한 놀이터에서 아이는 1분만 더를 조른다. 겨우 달래서 들어온 저녁 삼교대 근무를 하느라 부재중인 남편을 대신하여 아이랑 놀아주고 씻겨주고, 다시 내일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그리고 다시 새벽부터 이어지는 하루. 하지만 주변에서 은근히 부담을 주는 둘째는 언감생심이다. 엄마의 출근 시간에 쫓겨 못자고, 먹을 것도 빨리 먹어야 하고, 놀이터에서 실컷 놀지도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아이에게 못할 짓이다 싶다. 아이를 낳으면 시댁에 맡기라는 시부모님의 말씀이 반갑기 보다, 조부모님 품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자기가 무슨 엄마 자격이 있을까 싶다. 또한 직장에서는 아이 생각, 집에서는 직장 일 생각을 하며 늘 머릿속이 복잡한 자신의 생활이 답답하다. 

그래도 낳아서 지지고 볶으면 다행일 수도 있다. 29살 김수연 씨는 오늘도 매 끼니 고가의 영양제를 한 움큼 씩 삼킨다. 아이를 갖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도한 두 번의 시술, 그러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몇 번의 기회, 나날이 그녀는 위축되어간다. 국가에서 비용을 보조해준다고 하지만 빛좋은 개살구, 비용조차 만만치 않다.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만 정작 아이는 그녀에게 쉽게 오지 않는다. 

이건 비단 김수연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 병원 간호사였던 그녀 불규칙한 수면과 식사, 그리고 과로는 그녀의 직장 생활을 정의하는 단어들이었다. 그리고 김수연씨와 같은 조건, 혹은 비슷한 조건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난임'의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임신을 할 수 있는 나이에는 결혼도 안되고 임신은 더더욱 안된다는 사회적 압력을 받으며 우리 사회 출산은 자꾸만 늦어진다. 더구나 난소 기능 검사(AMH)와 같은 조기에 치료가 중요한 난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미처 갖춰져 있지 않다. 결국 정작 아이를 가지고 싶어할 때 아이를 가지지 못하거나 힘든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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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라는 정책의 역사,
70년대 우리 정부에서는 정부 주도의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거지꼴을 못면한다'가 정부의 주요 시책이었다.  '가족 계획 어머니회'를 내세운 임신 중절을 위한 차가 마을에 까지 가서 낙태를 주도했다.  1980년대 출산율이 2.1%였다면 모집단을 통해 집계된 낙태율이 2.1%였다. 즉 국가가 앞장서서 낙태를 조장했다. 이런 정책은 80년대에도 지속되었다. 한 자녀에게는 의료 보험 혜택과 새마을 유아원 무료 교육과 육아 보조비, 산모 요양비가 주어졌으며 다산 가족에게는 셋째부터 주민세등의 불이익이 주어졌다. 

'산아'에 대한 국가적인 개입의 역사였다. 이 과정에서 모성은 도구화되었고, 여성은 객체화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고 다를까? 아이를 낳으면 이러저러한 이익을 보장한다는 각 지자체의 홍보성 정책은 과거 정책의 반사판 판박이이다. 여전히 사회와 국가는 여성에게, 엄마에게 매달린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의 출산과 건강, 교육 그 대부분은 여성에게 책임이 전가되어 있다. 경쟁의 한국 사회에서 그 경쟁에서 승리하는 아이를 만들어 내는 건 여전히 '엄마'다. 그런데 그런 엄마의 역할을 충족시킨 자식은 1%도 못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바로 '엄마 스트레스'로 가임기의 세대에게 온전히 압박감으로 가중된다는 것이 전문가의 해석이다. 그래서 그걸 미리 거부하면 '비혼'이요, 결혼해서 거부하면 '무자녀'이며, 한번쯤 시도해 봤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바로 '한 자녀'라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줄어든 아이들은 바로 '둘째'이다. 

결국 여전히 19세기와 20세기의 프레임 속에 갇힌 한국 사회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패러다임이 21세기의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미루게 만든다고 다큐는 결론내린다.  아이를 낳으면 뭘 해주겠다 하기 전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인식의 변화와 조건을 만드는 거 이게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by meditator 2018. 11. 30. 18:04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가장 쉽고 위험한 방법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하는 것이다. 
가장 쉽지만, 이것은 사실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않는 것보다 위험하다. 
                                       -이승우, <모르는 사람들> 중


'가짜 뉴스'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다. 왜 '가짜 뉴스'가 만들어 지는 것일까? 그것을 맹목적으로 '소비'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이들의 '불순한 음모'에 대한 의심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무엇때문에 '가짜'가 만들어지는가? 그에 대한 생각을 <안개속 소녀>를 통해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소녀가 사라졌다.
알프스 산맥에 둘러싸인 외딴 마을, 크리스마스를 앞둔 며칠 전 소녀 애나 루가 사라졌다. 흔한 10대들의 가출? 하지만 부모들은 '순종적이며 성실했던' 딸이 그럴 리가 없단다. 결국 돌아오지 않는 소녀, 마을 경찰들은 수사를 시작하는데 이곳에 형사 보겔(토니 세르빌로 분)과 젊은 형사가 합류한다. 

이른바 '큰' 사건에 대한 감이 남다른 보겔은 이 외딴 마을의 사건에서 '전국민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 냄새를 맡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자신을 이런 외딴 마을의 사건이나 맡도록 만들었던 기차역 폭파 사건의 오욕을 만회하기 위해 소녀 실종 사건의 '사이즈'를 키우려 '언론'을 부추긴다. 

찾아오는 관광객이 없이 조만간 문을 닫을 거라는 식당 주인에게 했던 보겔의 장담대로, 아니 그가 언론과 세상에 던져주는 '편집'된 사건에 맞춰 외딴 마을은 북적인다. 어머니의 슬픔은 전국민의 슬픔이 되어 애나의 집 앞에는 애나의 귀환을 비는 촛불들이 줄을 서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관심에 부응할 만한 또 다른 먹잇감, '용의자'가 필요하다 생각했던 보겔은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소년의 카메라에서 자신이 원하는 '인물'을 특정해내 은밀한 척 언론에 흘리고, 어느새 그의 집 창문 밖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폭죽처럼 터진다. 그리고 언론은 우리 언론이 '가쉽'을 다는 예의 방식으로 용의자의 신변을 낱낱이 까발린다. 

 

 

무엇이 중한디? 사라진 소녀보다 각 자들의 욕망이 
안개에 뒤덮힌 마을, 그 스산한 배경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미스터리'했던 영화는 하지만 보겔의 등장과 함께 '미스터리'보다 더 '미스터리'한 욕망의 용광로로 변화된다. 

노회하면서도 예리한 형사 보겔, 그가 사건을 진두지휘하면서 소녀의 실종 사건은 전혀 다른 각도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사건의 진실이 궁금한 관객와 마치 실랑이를 벌이듯, 그는 과연 '수사'를 하는 것인지, 이 오지로 밀려난 자신의 한풀이를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결정을 내린다. 

문제는 보겔만이 아니다. 그의 '초빙'으로 달려온 베테랑 여기자를 비롯한 언론들도, 그런 보겔을 물먹였다는 변호사도 저마다의 '이해 관계'가 먼저이다. 심지어 영화 후반부에 결정적인 단서를 들고 나타난 나이든 여기자의 진심조차 의심스럽다. 그녀가 원하는 건 진실일까? 역시나 보겔과 같은 명예 회복일까? 그런 상황에서 외려 '용의자'로 특정된 가난한 가장의 처지가 안타까울 지경이고, 이 마을에서 오랫동안 정신과 상담을 해온 플로레스(장 르노 분)가 '객관적'이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증오'가 중심이었던 과거의 사건가 달리, 오늘날의 사건들이 '돈, 욕망'이라는 마티니 교수(아레시오 보니 분)의 강의는 '역설적'으로 이 영화의 주제에 가장 가닿는다. 

결국 '사건의 수사', '소녀의 실종'보다 저마다의 이해 관계로 널뛰던 인물들의 욕망은 그것으로 인해 주인공들을 함정으로 밀어넣고, 사건의 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아니 그들의 욕망은 정확하게 또 다른 욕망의 낚시밥이 된다. '소녀'의 가방은 돌아왔지만, 결국 소녀는 딸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과연, 그녀를, 아니 그녀의 시신조차 돌아오지 못하게 만든 건 영리한 범인때문이었을까? 저마다의 욕망에 춤추던 한 편의 쇼와도 같았던 수사때문이었을까? 

 

   

 


<안개속 소녀>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범죄심리학자 도나코 카리시의 베스트 셀러 <속삭이는 자>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출간 즉시 이탈리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600만부가 팔린 이 작품으로 헤밍웨이, 움베르토 에코, 존 그리샴 등이 수상한 프레미오 반카렐라 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학상을 휩쓸었고, 그 여세를 몰아 이 작품의 감독으로 데뷔했다. 

덕분에 영화는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을 읽어내려가는 듯 128분의 런닝 타임 동안 줄곧 모호한 안개속에서 그 보다 더 의뭉스러운 인간의 심리를 드러내기 위해 고심한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스토리로 치자면 <너를 기억해>와 비교되며, 뜻밖의 반전은 거의 <유주얼 서스펙트>급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너를 기억해>나 <유주얼 서스펙트>와 달리 이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가 아닌 '이탈리아' 영화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 뜻밖의 아이러니한 결말에 이르기 까지 한 편의 소설을 읽어내려가는 끈기를 가지고 진득하게 128분에 집중해야 '노력'이 필요하단 의미이다. 애초에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처럼 썼다는 도나코 카리시 과연 그가 '베스트 셀러' 작가에 이어, 스타 감독이 될 수 있을까? '이탈리아 미스터리'에 대한 우리 관객의 선택이 궁금하다. 

by meditator 2018. 11. 26. 16:44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 서정주, 문둥이 


<붉은 달 푸른 해>라, 이 역설적 제목을 가진 mbc 수목 드라마는, 그 역설적인 제목보다 더 미스터리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운동장, 달리기가 시작되고 아이는 전력질주를 한다. 1등으로 골인, 하지만 소란스러움도 잠시, 자신의 아이를 얼싸안고 돌아서는 학부모들 사이 아이는 홀로 서있다. 그런 것도 잠시, 어느덧 아이는 계단 위에 서 있고, 그곳에서 자신의 몸을 날린다. 

 

 

보호받지 못한 아이
결국 아이는 상담 센터에서 우경(김선아 분)를 만난다. 햇살이란 태명의, 어린 딸이 기다리는 남동생을 가진 만삭의 우경은 자상한 IT업체 대표 남편에 부러울 것이 없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상담하러 온 아이 시완이 말한다. '좋은 게 아닌데, 죽었으니까'. 교통사고로 죽은 자신의 동생을 일러 하는 그 말이 '씨'가 되었을까? 그로부터 11월 22일 2회의 엔딩까지 우경은 아이도 잃고, 남편도 잃고, 무엇보다 자신을 잃었다. 

아이를 학대해 죽이고 그 시체를 불에 태웠다는 패륜 잔혹 범죄, '아이'를 상담하는, 아니 그 이전에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랐던 우경은 주변의 아는 엄마들과 함께 분노하며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1인 시위까지 나섰었다. 그랬던 그녀가 자동차 전용 도로로 뛰어든 아이를 그만 보지 못한 채 치어 죽이고 만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눈에 보인 아이는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대여섯 살 또래의 여자 아이였는데, 막상 사고를 당해 죽은 아이는 남자 아이라니! 그 일로 인해 같은 또래인 자신의 딸과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사고'의 진실, 아이의 정체에 집착하는 우경.

그런 가운데 우경이 1인 시위에 나섰던 그 사건의 엄마가 자동차에 탄 채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얼마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것, 출소 당일 교도소 앞을 메웠던 그녀를 지탄하는 시위대 행렬, 하지만 그렇다고 누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까? 그렇게 드라마는 '의문의 죽음, 그것도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의 그물을 펼친다.

 

 

 



그리고 그 그 그물에, 서정주의 시 한 자락을 걸친다. 우경의 차에 죽은 소년의 운동화 깔창 아래서, 그리고 아들을 죽였다던 여자의 가족 사진 뒤에서 발견된 문구, 바로 서정주의 시 <문둥이>의 한 구절, '보리밭에 달 뜨면'이다. 그 시구의 뒤에 이어진 말은 '애기 하나 먹고', '미스터리한 아이의 죽음'은 '서정주의 시구, '아이 하나 먹고'로 이어지고, 드라마의 <붉은 달 푸른 해>의 역설적 어구는 첫 연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와 맥락이 닿는다. 그렇게 드라마의 사건은 시를 통해 상징되고, 다시 시는 의문의 사건에 '해석'의 결을 댄다. 

이렇게 시를 통해 '상징'의 나래를 편 드라마는 3,4화에 이르러 그 시적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결국 자신이 차로 친 소년에 대한 집착, 결국 해프닝이 된 딸의 실종은 우경에게 뱃속의 아이를 빼앗아 간다. 그리고 늘 든든한 보호자인 듯했던 남편도. 그렇게 우경의 가정이 부숴지는 동안, 드라마에는 또 하나의 가족이 등장한다. 고가 다리 아래 방치된 차안에서 발견된 '자살'로 추정되는 가장의 시체, 그런데 그 주은 남편에 대한 아내 동숙(김여진 분)의 태도가 수상하다. 남편의 시체를 확인하는 것보다 지금 직장의 일자리에 연연하던 아내는 죽은 남편이 남긴 돈다발에 눈이 희번덕해진다. 그리고 돌아와 온집안을 뒤집어 찾아낸 건 보험 증서, 그 증서를 들고 아내 동숙은 웃음을 토해낸다. 그런 동숙의 웃음 위로 교차되는 칼을 들고 남편을 향해 달려가다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우경. 그리고 서정주의 시 <입맞춤>, '짐승스런 웃음은 달더라, 달더라, 울음같이 달더라'.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작구 달아나고
울타리는 마구 자빠트려 놓고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

사랑의 사랑의 석류꽃 낭기 낭기
하누바람이랑 별이 모다 웃습네요.
풋풋한 산노루 떼 언덕마다 한 마리씩
개구리는 개구리와 머구리는 머구리와

구비 강물은 서천으로 흘러 나려……

땅에 긴 긴 입맞춤은 오오 몸소리친
쑥나물 지근지근 이빨이 허허옇게
짐승스런 웃음은 달더라 달더라 울음같이 달더라.


 

 

서정주의 시를 얹어 더욱 모호해진 도현정의 미스터리 스릴러 
<붉은 달 푸른 해>의 도현정 작가, 전작이 바로 sbs의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을 안다면 <붉은 달 푸른 해>가 뿜어내는 상징의 향연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 속에 숨겨진 가족의 비밀을 찾아 그 이름부터 묘한 아치아라 마을도 들어온 한소윤(문근영 분), 그곳에서 그녀는 마을의 권력자로 행세하는 서창권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감지한다. 하지만  그녀가 찾던 언니는 정작 '백골'로 돌아오고, 그 '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 사건은 결국 마을이 덮고 있던 부도덕한 음모의 폭로로 이어진다. <붉은 달 푸른 해>의 서정주 시처럼, 안개에 뒤덥힌 마을과 비밀을 품은 사람들이 그 자체가 '미스터리'의 퍼즐 조각이 되어 지방 토호의 권력으로 짖뭉개진 그리고 그 속에서 춤추는 인간의 욕망을 차근차근 실밥을 풀듯 풀어나갔던 도현정 작가의 내공은 이제 조승우가 출연했던 <조감도>의 최정규 피디와 <남극의 눈물>의 송인혁 촬영 감독을 만나 다시 한번 날개를 편다. 

드라마는 한 아이의 알 수 없는 자해로 부터 시작되어, 보호받지 못한 아이의 죽음으로, 그리고 그 죽음으로 부터 파생된 환영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히스테릭한 파멸에, 뜻밖에 등장한 가장의 죽음에 환호작약하는 아내로 받아치며 <붉은 달 푸른 해>가 내비치고 있는  붉지 못한 해와 푸르지 못한 달, 보호자가 되지 못하는 부모와 거기서 보호받지 못한 아이라거나, 혹은 우리 고전 설화의 호랑이에 쫓겨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비극적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  '아이러니한 관계와 존재의 문제'를 제기한다. 거기에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고 죽인 부모의 사건, 거기에 그 어머니를 다시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거둔 아버지의 사건과 그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들이 엇물리며 드라마의 박진감을 더한다. 

 

 

또한 일찌기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삼순 이래 2017년 <품위있는 그녀>의 박복자, 2018년 <키스 먼저 할까요>의 안순진까지, 이제 김선아라는 배우 자체가 '장르'가 되어가는, 히스테릭하게 집착하는 모성성을 가진 우경이 되어버린 김선아의 열연 그 자체만으로도 <붉은 달 푸른 해>는 보는 재미의 충분 조건이 된다. 그에 더해 마지막 엔딩 미친듯한 웃음의 한 장면만으로도 시청자들을 꽉 잡아버린 동숙 역의 김여진 등 발군의 호흡이 더해지며 2018년을 마무리할 '명작'의 탄생을 알린다. 특히나  ocn의 <손 THE GUEST>의 종영이 아쉬웠던 장르 드라마 팬들에게는 '반색'할 소식이다. 







by meditator 2018. 11. 23. 1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