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가을 개편은 공영방송으로서 지금까지 소홀했던 교양의 강화에 방점을 두었다. 하지만, 새로이 선보이는 '교양'은 지금까지 kbs가 추구해왔던 교양과는 질적 차별성을 둔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인문학적 지식의 성찬을 선보였던 <알쓸신잡>의 성황에 힘입어, kbs의 교양 역시 지금까지와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시청자와 만나고자 한다. 




교양과 예능의 콜라보 
그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대화의 희열>이다. 오랜만에 선보이는 한 사람의 게스트를 초대해 심도깊은 대화를 나누는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는 김숙이나 지코이지만, 이미 <알쓸신잡>에서 유연하게 각 분야 전문가의 인문학적 지식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데 일가견을 보인 유희열을 비롯하여, 강원국, 김중혁, 다니엘 린네만 이라는 차별화된 패널들로 인해, 타 예능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연예인들의 속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월요일에서부터 금요일 밤 11시 30분에 찾아오는 <오늘밤 김제동>은 푸근한 mc 김제동과 시사 이슈의 만남으로, 딱딱했던 뉴스를 알기쉽고 편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신선한 모색이다. 

이미 역사적 지식에 예능적 재미를 입힌 <역사저널 그날>과 함께 새로인 선보인 <대화의 희열>이나 <오늘밤 김제동>은 새로운 시대 kbs의 변화를 향한 모색의 첫 걸음이다. 이들 프로그램의 특징은 '예능인듯, 교양인듯'한 경계의 흐트러트림을 통해, '인문학적' 혹은 '시사적' 내용에 대한 대중적 접합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그런 노력의 일환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이 선을 보였다. 바로 스타 강사들을 kbs 스튜디오로 끌어들인 <쌤의 전쟁>이다. 추석 특집이라는 '한시성'을 띄고 찾아온 이 프로그램,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정규화 되기 위해서는 좀 더 고민해 볼 여지가 남는다. 

최진기, 설민석, 최태성 등 스타 강사들의 '에듀테이너'로서의 인기는 이제 새로울 것이 없는 사실이다. <쌤의 전쟁>은 이런 '에듀테이너'들의 활약에 힘입어 그것을 예능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모색에서 비롯된 프로그램이다. 강의 누적 조회수 1300만 뷰의 한국사 이보람 강사, 수능 예언자라는 별명의 화학 박상현 강사, 완판쌤 물리 배기범 강사, 말빨 사탐의 임정환 강사 등 '수능'계의 자타공인 스타 강사들을 예능의 '치트키'로 초대한다. 




어려운 과목, 하지만 흥미로웠던 내용 
1,2부로 꾸며진 방송은 '전쟁'이라는 제목에 걸맞에 각 분야의 강사들이 고등학생 관객과 이지혜, 문세윤, 오현민, 류수정, 나영 등의 연예인들을 상대로 하여 자신들의 분야를 하나의 주제로 20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강의 '배틀'하여 최고의 강사를 뽑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 테이프를 끊은 건 화학의 박상현 강사, 지구의 멸망이라는 거창한 화두를 꺼낸 강사는 그 '멸망'의 원인을 '녹'이라는 가장 친숙한 소재에서 끌어내어 화학적 개념인 '산화'와 '환원'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다음에 등장한 사회와 윤리의 임정환 강사는 땀에 마이크가 미끄러 떨어질 만큼 열강을 펼치며 존 롤즈의 정의론을 북유럽의 벌금 제도라는 가장 알기 쉬운 사례를 통해 열어간다. 

세 번째 이보람 강사는 오늘날의 돈으로 환산해서도 어마어마한 금액의 현상금, 그 주인공인 김구 선생으로 부터 시작하여, 간도 참변 이후 침체기에 빠진 독립 운동사에서 조국의 '희망'을 길어낸 이봉창, 윤봉길 열사의 의거를 명쾌하게 연결지어 낸다. 

마지막 물리의 배기범 강사는 그 어려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달과 지구의 '사랑'이라는 독특한 해석을 통해 설득해 내며 '신의 목소리'를 친숙하게 전달한다. 

한국사야 그렇다 치더라도 화학, 물리, 윤리라는 공부보다는 '포기'가 어울리는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전문적 내용들을 '스타'답게 강사들은 쉬운 예를 들어 관객들에게 '공부'의 욕구를 끌어올린다. 

하지만 강사들의 매끄러운 강의와 달리, 과연 그 강의를 전달하는 예능의 방식은 적절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강사들도 강의 도중 빈번하게 '수능' 기출 문제, 혹은 출제 예상 문제라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은 kbs 보다는 ebs에서 방영되는데 더 맞는 것이 아니었을까? 




스타 강사의 활용 방식에 대한 고민을 
차라리 프로그램에서 적극 활약한 문세윤이나 이지혜처럼 애초에 수능 강사들의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교양' 강의에 방점을 두는게 kbs의 예능으로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다. 그래서 막연하게 이미 검증받은 스타 강사들의 배틀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듣기에도 무람없는 강의의 배틀이란 점이라면 그들의 '전쟁'이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새로운 예능으로 공감을 얻지 않았을까란 점이다. 

분명 이 프로그램이 새삼스럽게 학생들을 상대로 스타 강사들의 강의를 홍보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추석 특집으로 기획되었다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을 텐데, 그렇다면 그 의도를 분명하게 살려, 일반인들도 알기 쉬운 '화학, 물리, 윤리'라던가, 알고보니 수능이나 볼 사람만 공부해야 하는 '화학, 물리, 윤리'가 알고보니 일반인들도 알만한, 혹은 알아두면 좋은 '교양'이란 접근이라면 좀 더 프로그램의 취지가 살지 않았을까란 아쉬움이 생긴다. 

이보람 선생의 100℃의 폭발을 향한 98℃, 99℃의 이봉창, 윤봉길 열사의 헌신에 대한 해석은 감동적이었다. 그건 수능이 아니더라도 일반인이더라도 새삼스럽지 않게 공감할 우리의 독립 운동사다. 마찬가지로 버스 정류장의 도착 정보 데이터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만나진 아이슌타인의 이론은 '물리'가 생각보다 우리 곁에 있음을 알 수 있게된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정의는 마이클 샌델의 ebs 강의 못지 않게 친숙했다.

이렇게 좋은 양질의 '인문학'을 그저 쌤의 전쟁이나 배틀이란 형식을 통해 나열하는 방식은 그래서 아쉽다.  차라리 학생은 물론 주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상대로한 '배틀'과 질의 응답시간이었다면 좀 더 프로그램이 원하는 예능적 재미도 살아나지 않았을까? 수능 수험생이라도 추석에 tv 봐도 된다는 식의 컨셉이나 홍보는 안이하거나 공감하기 힘들었다. 교양의 연성화도 좋지만, 그 방식과 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by meditator 2018. 9. 25. 03:43

'여성'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써내려가는 시대다. 지금까지의 역사와 사회가 관행적으로 그러려니했던 여성에 대한 태도, 사고, 관행들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반성이 이루어지며 새로운 전통과 가치관을 모색하는 시절이다. 하지만 이 '새' 시대는 녹록치 않다. 여성을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가에서 부터, 여성다움에 대한 정의조차 합의에 이르는 것이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은 공감에의 도출은 어쩌면 애써 무엇으로 규격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애써 규정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주목했으면 하는 세 여성의 캐릭터가 있다. 그들은 여성이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그려오던 '여성'의 캐릭터와는 차별된다. 하지만, 그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는 없다. 이렇게 '다른' 여성들을 통해 이 시대 여성들을 풍부하게 하는 것, 그것이 새로운 여성을 정의내리는 첫 걸음일 듯 싶다. 

 

 

그 어떤 순간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는다 - <보이스2> 강권주(이하나 분) 
어릴 적 사고로 눈을 다치면서 절대 청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 특기를 살려 112 신고 센터 요원이 되었다. 하지만 무진혁 형사 아내의 죽음, 그리고 이어진 아버지의 죽음 등 전화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는 죽음의 현장에 대한 경찰의 늑장 대처로 인해 자신의 직업적 한계를 느껴 미국 유학을 떠난다. 그로 부터 3년 후 강권주는 '소머즈'와 같은 청력에 기반하여 보이스 프로파일링 및 긴급 구조 전문가라는 독보적 분야의 전문가로 돌아와, 골든 타임팀을 꾸린다. 

시즌1에 이어, 시즌2에서도 골든 타임팀의 수장으로 등장한 강권주를 특징짓는 건 당연히 그녀의 남다른 청력이다. 하지만, 청력만으로 강권주를 예단해서는 아쉽다. 오히려, 청력을 기반으로 하여 '보이스 프로파일링' 전문가가 된 강권주는 112 응급 구조 센터라는 절체 절명의 응급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사건과 그 사건에 대처하는 골든 타임팀 및 출동 팀을 이끄는 '리더쉽'이 진짜 그녀의 강점이다.  그 누구보다 사건의 희생자에 대해 공감하고 마음 아파하지만, 그 '공감'의 감정을 절제된 이성으로 통제하며 상황을 통제해 들어간다. 즉, 그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통제력, 그에 기반한 기민하고 냉철한 지시와 대처, 그것이야말로  <보이스2> 골든 타임팀을 가능케 하는 핵심이다. 

그에 덧붙여 동료에 대한 편견없는 파트너십이 그녀의 리더십을 배가시킨다. 시즌 1에서 매일 밥 먹듯 야근을 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챙겨 오다 잔인하게 살해된 아내 때문에 폭주하다 폐인이 되다시피한 무진혁을 출동 팀장으로 이끈다. 시즌2에서도 마찬가지다. 동료 형사를 죽인 사이코패스라 낙인 찍힌 왕따 도강우 형사(이진욱 분)을 동료로 받아들인다. '미친 개'라던 무진혁, '또라이'라던 도강우를 자신의 파트너로 이끈 이유는 '동물적 감각'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해냈던 혹은 '알파고'라고 지칭되는 그들의 능력이다. 즉 그들에 대한 세간의 편견을 넘어 그들의 능력을 존중한다. 이런 사심없는 강권주의 리더십은  해커였던 팀원들을 규합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시즌2에서 골든타임팀을 경찰청 내부의 이간질과 불신으로 궤멸시키려 했던 방제수의 전략으로 도강우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되었던 강권주는, 그에 대한 자신의 불신이 불식되자 기꺼이 그에게 사과하며 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 강권주의 캐릭터는 새로운 여성상을 넘어 어쩌면 우리 시대 '리더십'의 새로운 전형으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세상을 주무르나 옹졸하지 않다. - <미스터 선샤인> 쿠도 히나, 아니 이양화 (김민정 분)
그녀는 이양화로 태어났다. 하지만 나라조차 팔아 일신의 영달을 구한 아비는 그녀를 일찌기 쿠도히나로 만들었고 그녀를 돈많은 일본인에게 팔았다.  그녀의 몸안에 새겨진 흉터와 같은 결혼 생활, 하지만 그녀는 그 '학대'를 기꺼이 갚고 글로리 빈관으로 여주인으로 돌아왔다. 

글로리 빈관, 하지만 그녀는 그저 호텔의 여주인이 아니다. 조선의 모던 보이, 모던 걸이 보이는 이 '개화'의 중심지에서 그녀는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들을 모은다. 그 정보는 그녀의 의사에 따라, 그리고 그녀가 일원인 고종의 휘하 비밀 조직의 명령에 따라 조정된다. 그 중심에 그녀가 있다. 

그저 돌아가는 세상의 조정자로 살던 그녀, 그런 그녀 앞에 미국인 유진이 나타났다. 아버지도, 남편도, 남자들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았던 그녀의 삶에 다른 감정의 결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 그런데 그런 그의 눈은 다른 여인 애신을 바라본다. 그만이 아니다. 동지인지, 정인인지 모르게 늘 그녀의 곁에 있던 동매조차도 애신 앞에서는 흐트러진다. 처음에 대갓댁 규수였던 애신이 가소로웠고, 고까웠고, 세상을 주무르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녀의 발을 걸어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쿠도 히나의 선택은 달랐다. 자신이 사랑하고픈 남자의 정인으로 등장한 여인에 대해 '질투' 대신, 기꺼이 그녀의 처지와 존재를 들여다 보아 준다. 연적에게만이 아니다. 사랑하고픈 남자에게도, 벗인지 연인인지 모르는 남자에게도 가장 앙칼진 칼을 들이대는 대신, 기꺼이 든든한 둔덕이 되어 애신도, 유진도, 동매도, 쿠도 히나의 그늘에서 세상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쿠도 히나가 된 이양화가 가장 멋졌던 장면은, 그의 아비 이완익의 죽음 앞에서다. 자신을 팔아넘겼지만, 그래도 아비의 죽음, 하지만 그 육친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기꺼이 그 아비로 인해 핏덩이 때 고아가 되버린 애신의 가엾은 셈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식이다. 가장 감정적인 듯한 포지션을 취하지만, 어쩌면 <미스터 션사인>에서 가장 품이 넓고, 공명정대하며, 정의로운 인물은 쿠도 히나가 되어버린 친일파 이완익의 딸 이양화다. 육친의 혈연 대신 이성의 조국을 택한 여인, 친어미의 소식을 속인 정문 대감에 대한 복수 대신 그를 대신해 고종의 호위로 대신한 여인, 드라마 속 모든 인물들의 가장 든든한 의지처, 그렇게 일본에게 팔려갔던 친일파의 딸은 외모보다 그 캐릭터가 멋진 말 그대로 여장부가 되었다. 스스로의 상징인 글로리 빈관이 일본군에게 농락당할 때 기꺼이 거길 폭파할 만큼. 

 

 

힘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러블리 호러블리> 오을순(송지효 분)
호러블 로코를 표방한 이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난 건 칼을 든 괴한을 만나게 되면서이다. 그런데 이 '위기의 상황' 드라마는 기존의 남녀 성역할을 전복시킨다. 당대 최고의 스타라는 자신의 처지가 드러날까 검은 비닐 봉지까지 뒤집어 쓴 남자 주인공은 각자 갈길을 가자며 읍소한다. 반면에 이미 칼을 들고 여성을 위협하던 괴한을 향해 '거기 서'라고 우렁차게 외치며 날아온  오을순은 여성을 구하고 자신이 칼 앞에 당당하게 다리를 날린다. 심지어 남자 주인공을 향해 찌르는 칼날을 손으로 막는다. 그렇게 드라마는 여주인공을 설명한다. 입봉도 못하고 되는 일이 없는 루저라지만 사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당당한 여성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유도를 해서 전국체전에서 금메달까지 땄지만, 그 시절 공원에서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남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가 결국 자신의 꿈이던 유도를 접었다. 하지만 좌절하는 대신 가난했던 자신에게 유일한 재미가 되주었던 글쓰기를 또 다른 희망으로 삼았다. 10살 무렵 대운 맞이 이후 엄마는 달아나고,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하고자 했던 유도는 다쳐서 못하게 되고, 이제 작가라는 꿈마저 요원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며칠을 안감은 머리, 눈 한쪽이 안보이게 가리고 다니지만 불의 앞에서는 거침없고,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며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칼을 맞고, 의자 다리에 갇힌 그를 구하러 뛰어가고, 죽을 위기에 놓인 남자 필립을 구하느라 고군분투하던 을순은 그가 어릴 적 아버지가 만들어 준 목걸이를 빌려준 아이임을 안다. 그리고 그 목걸이와 함께 자신의 운도 그가 가져갔음을 안다.  자신의 행운을 도둑질해 갔을 지도 모를 남자, 하지만 기꺼이 병상에서 의식을 찾지 못하는 그에게 자신의 목걸이, 혹은 행운을 돌려준다. 아니, 그녀의 손에 다시 전해진 목걸이를 바다 멀리 던져버린다. 운명 따위에 자신들의 행운을 맡기고 싶지 않겠다고 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이라 할 이쁜 여자 대신, <러블리 호러블리>의 오을순은 든든하고 믿음직해서 남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게 된 여자다. 물론 알고보니 입술도 이쁘고, 이마도 이쁘다는 로코의 정석을 외면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날아오는 야구공을 손으로 막아줄 만큼 그녀는 힘이 세다. 하지만 그저 힘이 셀 뿐만 아니라, 운명으로 인해, 상황으로 인해 쫄보가 되는 남자 주인공 앞에서, 내가 지켜줄게 하며 어설프게 남자연하는 남자 앞에서 '너님은 내가 지킬 거 같다'며 여유롭다. 백마 탄 왕자 대신, 기꺼이 그 백마를 자신이 잡아 타고 운명을 잡으러 갈 기세다.

자신의 운을 아들에게 건네준 키워준 엄마, 그런 운을 빼앗은 남자 필립에게 새삼스레 운명의 손익 계산서를 들이밀며 감정적 부채에 흔들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입봉작을 도둑질해 스타 작가가 된 옛 친구를 품을 만큼 당당하다.  감정의 동요로 인한 갈등 대신, 기꺼이 품고 사랑하기를 택하는 오을순 식의 사랑법이다. 

by meditator 2018. 9. 20. 17:32

마지막 회까지 결말을 알 수 없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마지막 회 마지막 씬까지 예측할 수 없었다. <보이스2>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최종회 마지막 순간까지 예측불가능했던 결말에 대해 시청률이 답했다.  4%대로 시작했던 드라마가 12회 7%를 넘으며(7.086% 닐슨 코리아 유료 채널 기준)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시청률만이 아니다. 시즌 2를 폭주하던 방제수(권율 분)는 결국 잡혔지만 폭발 사고로 인한 주인공 강권주(이하나 분) 센터장의 안위와, 여전히 모호한 도강우(이진욱 분) 팀장의 정체성은 의문의 인물들의 등장과 함께 외려 다음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주인공의 캐릭터 변주와 보다 강력한 절대 악의 등장으로 시리즈를 이어가는 이른바 '미드'식 전개의 성공적인 안착이다. 

 

 

모태구를 잊게 만들었던 두(?) 사이코패스 
댄디한 착장에 섹시하기까지 한 외모, 타인의 죽음 앞에서도 한없이 나른한 태도, 그런데 거침없이 휘두르는 쇠공, <보이스 1>의 모태구를 이 정도로 정의하면 될까? <보이스1>이 마무리될 때 과연 이 보다 더한 악인이 등장할까 싶었다. 그런데, <보이스2>가 시작되자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배안에서 가면을 쓴 악인은 하수인을 시켜 죽이는 것도 모자라 도강우의 동료 형사 신체 일부를 절단하여 곤충 채집처럼 수집한다. '고어(gore혈액 등으로 대표되는, 잔인성과 그에 따른 공포감 및 혐오감, 그리고 반사회성 등이 강조된 특정 계열의 속칭 및 총칭)'의 단계가 버전업되었다. 

거기에 더해 살인마는 스스로 새로운 악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곤충 동호회 '닥터 파브르'를 중심으로 자신과 같은 '사이코패스'들을 규합한다. 그래서 들키면 청산가리를 삼키고, 경찰에 자수했던 방제수의 도피를 위해 형사인 자신의 목숨조차 기꺼이 희생하는 하수인들을 규합한다. 심지어 알고보니 1회 부터 도강우 형사의 가장 최측근으로 활약했던 곽독기(안세하 분)마저 방제수의 오랜 친구였다는 식이다.  사이코패스가 지배하는 '언더 월드'의 구축이다. 

하지만 <보이스2>을 이끈 건 이 자신이 죽인 희생자의 신체를 별 모양 상자에 모아 수집하는 방제수나 그의 영도를 기꺼이 따르는 사이코패스 신도들만이 아니다. 정작 시즌2를 통해 시청자들을 가장 혼돈스럽게 한 건 과연 도강우 형사가 사이코패스인가라는 의혹어린 질문이다. 방제수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폭주할 수록, 그리고 그 폭주의 타깃이 '골든 타임팀'이 될수록 도강우에 대한 의혹도 커져갔다. 그리고 그 의혹에 맞추어 도강우의 모호한 질주도 궤적이 흔들렸다. 강권주가 듣는 그의 목소리는 진실되었지만, '블랙 아웃'되는 그의 기억, 그리고 폭력적인 그의 행동들은 그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게 만들었다. 

<보이스1>은 모태구라는 절대 악 사이코패스의 강렬한 존재와 그와 맞물리는 골든 타임팀의 실시간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갔다. 거기에 '소머즈 급'으로 듣는 능력이 극대화된 골든 타임팀과 팀장 강권주의 사연과 활약, 그들과 손을 맞춘 무진혁(장혁 분)의 사연과 거침없는 수사가 합을 맞췄다. 

시즌2는 이런 시즌 1의 기조를 새롭게 변주된 사이코패스 방제수를 통해 고스란히 이어받으며 절대 악 사이코패스에 의한 시즌의 장악이라는 <보이스> 시리즈의 통일성을 만들어 갔다. 거기에 도강우라는 의문의 형사 캐릭터를 더해 '사이코패스'물의 변주를 더했다. 시즌 1이 '카피캣'이라는 범죄 유형을 등장시켜 에피소드의 풍부함을 살려냈다면, 시즌2는 알고보니 에피소드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그 사이트와 관련이 있다는 '닥터 파브르'라는 곤충 동호회를 빙자한 사이코패스 사이트를 등장시켜 에피소드를 견인한다. 

 

   

 

사이코패스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보이스 1> 모태구의 사례처럼 대부분 사이코패스를 악의 축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은 '날때부터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가진 아이가 그 성향을 조장하는 환경을 통해 사이코패스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보이스2>는 이런 관점에 조금은 다른 해석을 더한다. 

성폭행을 통해 태어난 아이 방제수, 원치 않는 아이에 대해 엄마는 학대와 사랑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그런 엄마의 애증은 고스란이 아이의 트라우마적 범죄로 이어진다. 아이, 방제수는 끓는 물로 학대를 당해 경찰에 구해져 보호 시설에 갔으면서도 훗날 외려 그 경찰에 대해  보복을 할 정도로 엄마에 대해 집착적 태도를 보인다. 심지어 죽은 엄마의 시체마저 보존할 정도로 그에게 엄마는 영원한 업이자, 절대적 사랑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학대받고 외면받던 방제수를 통해 사이코패스를 만든 건 성폭행 희생자를 경원시하고 터부시하는 사회라고 드라마는 결론짓는다. 

하지만 사회가 방제수를 사이코패스가 될 수 있도록 방조했다고 해서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어릴 적 아버지의 범죄를 목격하고 적극 도왔다는 혐의를 받았던, 거기에 더해 시시때때로 폭력적 성향으로 사이코패스라 간주된 도강우를 통해, '기질'이 범죄를 합리화시킬 수 없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폭력적 성향으로 끊임없이 분노하면서도 결국 방제수에게 총을 쏘는 대신 그에게 수갑을 채우는 도강우를 통해 드라마는 그간 사이코패스 드라마들이 내렸던 사회적 책임의 당위론에 '개인적 책임'의 무게를 더한다. 그저 다른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결국은 그 모든 것에 '선택'의 기회가 있음을 드라마는 밝힌다. 

 

   

 

이렇게 <보이스2>는 방제수와 도강우라는 두 사이코패스에 방점을 찍으며 <보이스1>과는 차별화된 하지만 여전히 '사이코패스 범죄물'이라는 통일성을 지닌 시리즈로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적 캐릭터의 변주에 화려함을 더한 대신, 애초에 '보이스'라는 제목에서처럼 초인적 듣는 능력에 기반한 골든 타임팀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무뎌졌다. 

시즌 1에서는 강권주 센터장이 어떻게 남들과 다른 듣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능력을 인정받고 골든 타임 팀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며 <보이스>라는 제목에 걸맞는 시리즈의 특성을 잘 드러냈다. 물론 <보이스1>에서도 모태구라는 악의 축에 의존하여 진행된 드라마는 '악행'의 변주에 색채를 더하며 회차를 거듭했지만, 신선한 캐릭터 강권주나, 폭주하는 무진혁의 파트너쉽은 그 무게 중심이 흔들려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 시즌2, 무진혁을 대신한 도강우마저 그 정체성에 의심을 더하며, 연달어 이어지는 방제수, 혹은 그가 관장하는 닥터 파브르와 관련된 일련의 범죄 과정에서 골든 타임팀의 활약은 어쩐지 뒷북이다 싶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늘 강권주 팀장은 활약보다는 사건에 대한 해석과 설명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도강우의 선배이자, 그를 사이코패스라 단정했던 나홍수 팀장(유승목 분)의 맹목적인 의심도 '고구마'라 칭해지는 이런 경찰 팀의 무기력에 힘을 보탠다. 심지어 '듣는 능력자'인 강권주 팀장은 폭탄의 타이머 소리는 물론, 녹음기 소리와 어린 아이의 목소리마저 구분하지 못한 채 절체 절명의 위기에 빠지며 시즌2를 마쳤다. 과연 강권주 팀장을 비롯한 골든 타임팀은 더욱 강력해지는 악의 축에 대항하여 시즌3를 통해 다시금 부활할 수 있을까? 이 또한 <보이스 3>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8. 9. 17. 15:07

<무사 백동수>, <라이어 게임>, <피리부는 사나이>, <보이스> , 김홍선 감독의 전작들이다. 흥행과 상관없이 그 장르적 특성이 강하며, 새로운 소재라는 점에서 언제나 독보적이었다. 그 김홍선 감독이 <보이스>의 속편 대신 들고 나온 작품은 뜻밖에도 '호러' <손 the guest>다. 이 또한 장르 드라마 영역에서는 새로운 한 발이다. 

 

 

엑소시즘, 그 익숙하지만 낯선
<손 the guest>는 '엑소시즘'(exorcist)에 대한 이야기이다. '손'으로 대변되는 절대 악령과 그 악령에 씌인 사람들을 사제 최윤(김재욱 분)의 '구마 의식'을 통해 그의 몸에 들린 귀신을 쫓아낸다.

이는 지난 2015년 개봉한 김윤석, 강동원 주연의 <검은 사제들>과 흡사하다. 영화 속 사제 김신부(김윤석 분)이 구마 의식을 진행하고, 그의 곁에서 부사제인 최부제(강동원 분)이 그를 돕는다. 영화에서는 인간의 몸에 들린 귀신을 제거하는 '구마' 의식을 바티칸이 비공식적이지만 전통적으로 수행해오던 의식으로 그려낸다. (실제 2014년 교황청은 비공식적으로 행해지던 장엄 구마 의식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드라마 역시 나이든 신부(남윤철 분)과 함께 부사제 최윤(김재욱 분)이 엑소시스트로 나선다. 2016년까지 연달아 제작되고 있는 장르물로서의 <엑소시스트>는 우리 관객에게도 익숙한 '엑소시즘'영화이지만, 2015년 개봉했던 <검은 사제들>은 우리 나라에서 드문 신선한 시도라는 찬사와 함께,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낯선 소재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손님, 그 이방인의 설화 
익숙하지만 어쩐지 우리에게는 낯선 '엑소시즘'이라는 소재에 다가가기 위해 드라마는 '손'이라는 전통의 개념을 들여온다. 그리고 그걸 설명하기 위해 1화에서 전통의 '손' 설화를 그려낸다.

바닷가 마을 세습무당의 집안에서 벌어진 제사, 물에 들어간 종진의 몸에 '손', '귀신'이 씌이고, 그 귀신은 아직 세습무를 받지 않은 어린 화평에게 드리운다. 화평으로 인해 죽어간 어머니와 할머니, 굿판 무당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화평을 죽이려 한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말리며 할아버지는 자신들의 힘으로 어쩌지 못한 '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구마 의식'을 하는 신부를 불러들인다. 

드라마는 귀신, 악령의 호러적 대상을  우리 고유의 '손'으로 치환한다. 드라마에서 막상 수행되는 건 엑소시즘이지만, 그 엑소시즘을 전통적인 설화를 통해 뒷받침해낸 것이다. 박일도라는 사람이 마을에 들어왔는데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사라지고, 박일도는 스스로 눈을 찔러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악령의 '캐릭터 메이킹'을 '설화적 형식'으로 전한다. 

이 '손'은 지난 2014년 개봉한 영화 <손님>에서 차용된 개념이다. 전통적 공동체에 들어온 이방인의 이름, '손,'the guest',. 손은 말이 좋아 손님이지, 전통적 공동체에서는 '타자'이다.  그 '배타적'인 전통적 관계의 정서를 영화는 독일의 우화 <피리부는 사나이>를 변용시켜 풀어내고자 했다. 그에 반해 드라마는 말 그대로 이 낯선 이방인을 그대로 '악령'이라는 장르적 존재로 전환시킨다. 

 

 

전통적 정서를 호러로 되살려 
이는 거슬러 천연두를 '손님'이라 부르던 전래의 '네이밍'으로 이어진다. 

옛날에는 부모가 셋이었다. 나를 낳아준 부모, 나를 점지해준 삼신제왕님, 손님네를 말한다. 
삼신할머니가 곱고 잘생기게 점지해주어도 손님네를 잘못 만나면 곰보나 언청이가 되거나 뱃사공의 일곱째 아들처럼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불쑥 나타나서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꽤나 무섭고 두려운 신 '손님네'
정성이 부족하면 앙화를 면하기 어렵고, 그들을 맞이하여 처신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살아있는 한국 신화, 신동흔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질병을 뜻하며, 그 속뜻은 고통을 안겨주고 집안을 망가뜨리는 불청객이란 말이다. 즉, 전통의 '손님'이란 친숙한 개념에서 '엑소시즘'을 길어오는 방식을 통해 낯선 장르의 친숙하게 하기를 취한다. 

이 방식은 같은 호러 장르를 내세운 kbs2의 <러블리 호러블리>에서도 등장한다. 드라마를 여는 건 '재수가 없다'거나 혹은 '운이 나쁘다'는 주인공들의 처지이다. 거기에 더해 눈이 하나 먼 할아버지 점쟁이가 등장하여 주인공의 도둑질한 사주를 들먹인다. 드라마 작가인 여자 주인공에게 들리는 환청, 의지와 상관없이 씌여지는 대본이라는 '초현실적 현상'을 '접신'의 경지로 설명하고, 두 주인공들의 얽혀드는 운명을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같은 운명의 사주로 설득한다. 거기에 더해 하나의 뿌리로 얽혀든 나무의 전설'까지 드라마는 현재의 초현실적 현상을 '인연' 혹은 '운명'이라는 가장 전통적이고 익숙한 도구를 통해 설명한다. 

이렇게 <러블리 호러블리>, <손 the guest> 는 초현실적 장르물인 '호러'라는 생소함을 가장 익숙한 전통의 정서, 개념, 설화를 통해 연다. 거기서 <손 the guest> 는 '박일도'라는 설화 속 인물로 부터 비롯된 악연으로 세 주인공 최윤, 윤화평, 그리고 강길영(정은채 분)의 비극적 악연을 길어낸다. 자신때문에 가족을 잃은 어린 영매, 박일도의 희생양이 된 형 때문에 가족을 잃은 화평, 그리고 형사라는 사명감 때문에 들린 화평의 집에서 엄마를 잃게 된 길영이 이제 택시 운전사, 구마 사제, 그리고 형사가 되어 박일도가 씌여진 또 다른 '손'을 맞닦뜨려 자신의 '업'을 풀어나가는 것이 <손 the guest> 의 관전 포인트이다. 








by meditator 2018. 9. 14. 14:45

불과 몇 십년전만 해도 손님이 오시면 설탕물을 타서 대접하기도 했을 만큼 설탕은 귀했다. 하얀 설탕이 오가는 명절 풍경도 낯설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이제 '설탕'이, 단 맛이  우리 몸에 좋지 않다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당뇨'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질병으로 등장하면서, 그와 더불어 '단맛', 혹은 그 단맛의 대명사인 '설탕'은 건강에 있어 '터부'적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겉치레일 뿐이다.

단맛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 당을 올리지 않는 단맛이라는 매혹적인 문구로 우리를 유혹했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 약, 각종 식재료, 심지어 담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 생활속으로 깊숙히 침투해 들어왔다. 아침으로 먹은 현미 시리얼에도, 케첩 바른 토스트에도, 피자와 함께 먹은 피클에도, 얼큰하게 넣어 끓인 고추장에도 '단 맛'은 빠지지 않는다. 단지 형태만 변했을 뿐, 심각한 건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이 '가공된 단맛'이 우리의 몸에 더욱 해롭다는 것이다. 


 




바로 <mbc스페셜- 당신, 독을 먹고 있나요?>는 끊을 수 없는 단맛의 역사와 오늘날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공된 단맛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단맛, 그 중독의 역사 
단맛, 그 시작은 기원전 8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평양 뉴기니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사탕수수, 기원전 350년전 인도로 건너가 비로소 '설탕'으로 탄생되었다. 베어낸 사탕수수를 착즙하여 불순물을 거르고 정제하여 만들어낸 천연 설탕 구르(gur)가 만들어 졌다. 여전히 설탕을 물에 타서 먹을 정도로 인도인에게 설탕은 삶의 일부이다. 설탕을 밀가루에 버무려 튀기고 그걸 다시 설탕물에 졸인 튀김 설탕 과자 잘레비(jalebi)를 비롯하여 다양한 섵탕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단과자(스위트)들이 만들어지면 인도인들의 삶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인도의 설탕은 바클라바(baklava), 로쿰(lokum)으로 대표되는 스위트의 천국 터키를 지나 유럽으로 갔다. 하지만 첨부터 '설탕'이 모두에게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유럽으로 간 설탕은 왕실과 귀족들에게 허용된 '귀한 식재료'였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싼 스위트인 '마카롱'의 경우, 명품으로 대접받는 프랑스의 피에르 메스메 중 주문 제작 상품은 약 7천 달러(778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지난 수천년간 인류에게 설탕은 고급 식재료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설탕은 익숙한 맛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몇 십 년전 설탕이 선물이 되었을까. 그러나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영화 <초콜릿>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단 맛'을 맛본 사람들은 이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산업의 발달은 '설탕'의 대량 생산을 가능케 했다. 2017년 기준 전세계 설탕 소비량은 1억 7천만 톤이다. 이는 1800년대에 비해 24배나 증가한 속도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단맛'으로 인한 각종 사회적 질병의 문제는 급격하게 증가한 설탕 소비에 1차적으로 기인한다. 


 




가공된 단맛, 액상 과당, 각종 대사 질환의 주범 
우리가 즐겨 먹는 아이스크림, 음료수 등의 단맛, 하지만 이건 '설탕'이 아니다. 1967년 일본에서 개발되어  1975년 미국에서 대중화된 '액상 과당'이 그 주인공이다. 액상 과당은 사탕수수에서 추출된 자연의 단 맛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단맛'이다. 포도당으로 이루어진 옥수수 전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과당을 첨가하여 만들어진 고과당 옥수수 시럽이다. 액상 과당은 설탕보다 물에 잘 녹아 가공하기가 쉬우며 저렴하여 '단맛'의 대량 소비에 가속화를 붙였다. 

우리가 먹는 설탕은 포도당으로 전환되어 간에서 분해되고 남은 건 온몸에 에너지로 씌인다. 반면에 과당은 간에 축적되는데, 이는 '과잉 축적'을 부른다. 이로 인해 지방간이 발생하며, 심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도가 높아지며 당뇨 발생률을 높인다. 

거대아로 태어난 존, 하지만 엄마는 따로 식이요법을 하는 대신 또래 아이들처럼 빵, 케잌, 음료수 등을 먹이며 키웠다. 그 결과 결국 2017년 소아 당뇨 판정을 받았다. 혼자 신발끈조차 묶기 힘들어진 상황, 치료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존은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그간 즐겨 먹었던 가공된 단맛을 가진 음식들 대신 하루 5종류 이상의 과일로 단맛을 대체했으며, 1시간 여의 운동을 하고, 군것질을 부른 , tv 시청을 하루 2시간 이하로 줄였다. 각종 음료수 대신 물을 자주 마셨다. 그것만으로도 존은 무려 18kg을 감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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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칼로리 음료, 노슈가 음료의 함정 
과당만이 문제일까? 실험실에서 탄생한 단 맛은 또 있다. 살이 찌지 않고 싶지만 단맛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탄생한 '노 슈가, 제로 칼로리 음료', 역시 단맛으로 인한 각종 질환의 주범이다. 

설탕과 제로 칼로리의 인공 감미료를 먹인 실험실 쥐, 놀랍게도 실험 결과 제로 칼로리 단맛을 복용한 쥐는 비만쥐가 되었다. 그 원인은 '홀몬'이다. 우리가 일반 설탕을 먹었을 때 우리 몸에서는 포만감과 함께 식욕 억제 홀몬인 GLPI가 배출된다. 하지만, 칼로리가 없는 인공 감미료의 경우 이 식욕 억제 홀몬이 나오지 않아, 계속 먹게 되는 것이다, 결국 '단맛'에 대한 과학의 잔꾀가 현대인의 각종 질환의 주범이 되었다. 편리함과 싼 가격, 쉽게 부패되지 않는 대량 생산된 인공적 단 맛이 우리의 건강을 급격하게 무너뜨리고 있는 중이다. 

중독된 단 맛의 대안은? 
미국 심장병 학회는 어린이의 경우 하루 당 허용량을 25g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각종 음식에 들어간 인공적인 단맛들로 인해 이 규정을 지키기는 어려워 졌다. 이에 '법'적인 해결을 미국의 버클리 주는 도모했다. 인공 감미료, 액상 과당등에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2015년부터 시행했다. 이런 법적 제재 조치만으로도 25% 정도의 감소 효과를 나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매일 매일 자신이 먹는 단 맛의 칼로리를 계산해보며 권장량과의 차이를 스스로 점검해 보는 방식을 권장한다. 

'고진 감래'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인류에게 있어 단맛은 '최고의 행복'을 상징하는 맛이다. 하지만 어느덧 그 '감미로운' 행복은 인류에게 독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당신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진짜 단 맛을 찾으라고. 다큐는 보리 싹으로 만들어진 엿기름을 발효시키고 오랜 시간 끓여 만든 천연 당의 갱엿을 그 예로 제시한다.  

새삼스럽지 않은 '단맛'의 경고, 다큐는 그 일률적인 단맛의 병폐를 액상 과당과 인공 감미료를 등장시켜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하고자 하였다. 물론 거기엔 전제되어야 할 것은 그럼에도 과잉 섭취된 단맛에의 중독이다. 

by meditator 2018. 9. 11. 16:14

조선시대는 '유교'라는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전사회적 체제가 된 사회였다. 모계적 전통이 남아있던 조선 초기만 해도 신사임당의 사례에서 보듯이 결혼을 하고 친정에 머물러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가풍이 가능했다. 하지만 유교적 질서를 전사회적으로 확산되어 가며 더불어 여성은 우리가 아는 '삼종지도', 어려서는 아비를, 결혼을 해서는 남편을, 그리고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가부장제에 일체화되어 간다. 우리가 이슬람의 여성들이 쓰는 '히잡'문화를 생소해 하지만 조선시대의 '쓰개치마'의 용도는  '히잡'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한 나라의 공주조차도 결혼을 하면 시댁의 문밖을 나서는 것이 쉽지 않았던, 그래서 '규방'이라는 곳이 여성들의 세계이자 '감옥'이 되었던 시대, 그 시대의 끝자락에 <미스터 선샤인>의 여주인공 애신(김태리 분)이 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하자마다 우리가 만난 건 남자의 복색을 하고 총을 든 여인이었다. 밤드리 지붕을 타고 총을 겨누다 만난 남녀 주인공, 그렇게 시청자는 구한말 최고의 명문가 규수인 애신의 파격적인 면모 시작한다. 

총을 든 규방 처자 
드라마는 그녀가 총을 드는 이유를 애신으로 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일찌기 '의병'이었던 아비와 어미, 하지만 그들은 그들만큼 일찌기 조국을 팔아넘기기로 작정한 일본의 앞잡이 이완익과 그에게 자신을 팔아넘긴 동지에 의해 타국 일본에서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동지와 애신을 구한 어미 덕에 애신은 무사히 고씨 가문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조국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부모님, 그리고 가산을 기꺼이 의병 자금으로 내놓으신 할아버님의 아래에서, 마치 유전적 소인처럼 애신은 풍전등화의 조국에서 총을 든다. 그녀에게 의병 활동은 '당위'였다. 

하지만 동시에 애신은 여전히 조선 최고 명문가의 아녀자다. 스물 아홉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지만 정혼자가 있고, 지엄한 명문가의 규율에 맞춰 외출시엔 가마를 타고, 하인을 대동하며, 쓰개치마를 뒤집어 쓰는 유교주의적 생활이 몸에 밴 여인이다. 혼인을 하지 않겠다,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그녀의 고백에 할아버지가 내린 엄명을 어기지 못하고 달려가다 대문 앞에서 멈추어버리는 여인, 여전히 그녀는 조선의 양반가 규수였다. 

양반가의 규수이자 의병의 일원으로 총을 든 여인, 이 아이러니한 조합, 하지만 그 조합은 '개인' 애신이 아니라, 유교주의 사회에, 의병의 가풍이라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선택이었다. 즉, 애신은 그 당시 조선의 여인으로서는 그 누구보다 파격적인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에 애신 '개인'은 없다. 마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든 논개와 다르지 않은 선택이다. 


 




사랑을 통한 인식의 확대 
그렇게 자신의 존재론적 고민을 일찌기 부모가 그랬듯이, 그리고 할아버지가 정해준 틀을 넘어서지 않으며 살아왔던 애신의 삶에 균열을 불러일으킨 건 '사랑'이었다. 가장 사적이고 감정적인 사건, 총을 겨눈 자리에서 만난 자기와 같은, 하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이, 유진 초이라는 이방인에 대한 불안함으로 시작된 만남은 호기심과 궁금함을 넘어, 어느덧 사랑으로 흘러간다. 

동시에 그 이방인에 대한 관심은 동시에, 지금까지 견고하게 지켜왔던 애신이 쌓았던 의병이자, 규방 처자로서의 옹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미스터 선샤인>이 흥미로운 건, 등장 인물 개개인이 모두가 각자 격동하는 구한말의 조선에서 각자 자신의 사회적 존재론에 근거하여 어떤 입장을 선택하지만, 가장 개인적인 감정 '사랑'을 통해 그 자신이 했던 선택에 질문을 던지며 사회적 갈등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돌이켜보면 왜 애신이 유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느 틈에 유진이 애신과 함께 하기 위해 기꺼이 그 길을 향해 가게 되었는지, 2018년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뜬금없기도 하다. 생각 외로 <미스터 선샤인>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친절'하지 않다. 아마도 그건 김은숙 표 드라마에서는 사랑이 당위라는 전제 위에서 쌓여진 서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사랑'이 사회적 자각의 확산을 위한 작위론적 설정에 근거해서 이기도 하다. 이제 종반을 향해 달려가는 이 드라마에서 여전히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두 주인공의 사랑, 그 개연성에 대한 의문은 바로 이런 설정으로 부터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그녀가 했던 옳은 선택이었던 의병 활동, 하지만 그 선택이 얼마나 '의지론'적이었을 뿐, 현실적인 고민이 부족했었는가를, 애신은 유진(이병헌 분)을, 구동매(유연석 분)를, 쿠도 히나 (김민정 분)과 만나며 깨닫게 된다. 

그저 나라를 구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일, 하지만 과연 자신이 구하려는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가,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라는 질문을 노비였던, 백정이었던 이를 통해, 양반댁 규방 처자 우물안 개구리였던 자신의 인식의 한계를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선택한 전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전제에 대한 의문은 그녀의 선택이 가졌던 안이함을 단련한다. 그래서 유진에 대한 마음으로 그녀는 거뜬히 그녀를 가뒀던 고씨 가문의 담을 넘는다. 이때 그녀가 넘는 담은, 총을 들고 넘었던 담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극복'이다. 여전히 고씨 가문의 손녀였던 그녀는 당시 양반가 여성으로서의 치욕이 될 수도 있는 정혼을 파하고 유진과의 길 위에 서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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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잃은 그녀, 대신 담이 되어주려 할 그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로맨틱한 결정은 그녀의 울타기 되어주었던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 그녀를 원래의 궤도로 돌려놓는다. 이제 그녀에게는 큰 마음을 먹어야 넘을 수 있던 담 자체가 없어졌다. 대신 그녀가 든 총은 더욱 그녀와 일체화되었다. 할아버지가 죽으라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던 사랑은 이제 그저 지난 꿈이 되었다. 이제 납치당한 이정문을 구하는 임무를 위해 사랑하는 이를 기꺼이 이용하려 들 만큼. 

드라마는 고씨 가문이라는 담을 잃은 애신의 고뇌는 생략한다. 단호하지만 대신 가문을 잃은 처자의 존재론적 고민은 물을 가치조차 없다 여긴다. 그 부모들이 죽음으로 대신했듯 애신 역시 그러할 뿐이다. 총을 든채 나타난 의병의 일원으로 그 모든 걸 설명하고자 한다. 아마도 <미스터 선샤인>이 가진 행간은 이 '선택'의 고민이 가진 말줄임표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그 말줄임표를 강제하는 건 풍전등화의 시대다.

대신, 그런 그녀를 두고, 고뇌의 칼날은 남성 캐릭터들에게 향한다. 6개월 동안 연락도 없는 애신에 유진은 애가 타고, 나라의 위기에 애신이 죽을까, 쿠도 히나가 죽을까 동매는 불안하다. 김희성(변요한 분)이라 다를까. 그래서 남은 회차, 이미 선택이 끝난 그녀를 향해 그들이 달려갈 것이다. 여태까지 그들을 보호했던 '담'을 버리고, 이제 '담'조차 없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총을 든 규방 처자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결국 존재론적 선택을 향해 달려갈 그들을 위한 가장 매력적인 배경이 된다.  결국 애신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타인으로 조선에 온 세 남자에게 닥친 조국의 운명, 그 상징이다. 



by meditator 2018. 9. 10. 15:49

한동안 허영만의 <식객>이 붐이었다. <식객>의 묘미는 뭐였을까? 그 만화를 읽은 독자들 나름의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사라져가는 우리의 맛'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여기 우리의 맛에는 '내가 아는'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의 맛도 있지만, 미처 몰랐던 '맛보고 싶은' 맛도 있다. 어린 시절, 혹은 지나온 시절에 맛보았던 그 맛들이 만화를 통해 재현되며 묻어 두었던 추억의 감성을 되살려내는가 하면, 함께 살아왔던 우리네 삶이건만 미처 알지 못했던 전국 방방곡곡의 사연어린 맛들이 독자들의 발길을 전국으로 흩뿌려놓았다. 그리고 그건 바로 올곧이 리네 삶이 지나간 흔적에의 공유이자 공감이었다. 바로 그 '식객'의 묘미가 예능으로 재현되려고 한다. sbs에서 7일 첫 선을 보인 <폼나게 먹자>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상징인 김상중이 예능을? 그 김상중이 하려는 예능이라면 뭐가 다를까? 라는 흥미를 부추긴다. 아니나 다를까? 예의 <그것이 알고싶다>의 '그런데 말입니다'로 프로그램의  서막을 연다. 매년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식재료의 수가 27000 개. 이런 진지한 김상중의 나레이션에 8년만에 tv로 돌아온 채림이 의문을 제기한다. 갈수록 갖가지 해외의 신기한 과일이나 식재료가 수입되며 우리의 식탁은 풍성해져만 가는데 사라진다니 라고 말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해외 농축수산물, 하지만 그런 가운데 토종 식물의 멸종이 우리 농업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 과연 우리의 토종을 살리기 위해 어떤 방법이 모색되어야 할까? 그 하나의 길로서 예능 <폼나게 먹자>가 제시된다.  <폼나게 먹자>는 먹방의 홍수 속에 사라져 가는 우리의 맛을 찾아가는 업그레이드 된 ' tv식객'의 포부를 연다. 

김치라고 다 같은 김치가 아니다. 
7일의 메인 먹거리를 찾아나서기 앞서 에피타이저로 네 사람의 출연자 이경규, 김상중, 채림, 로꼬는 유현수 셰프의 레스토랑에서 장장 30일간 숙성한 한우를 시식한다. 소고기를 30일이나 삭히다니. 하지만, 오늘날처럼 '냉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염장이나, 훈증과 함께 '삭히는'건 주요한 요리 방식 중 하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불고기'도, '회'도 사실은 삭힌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활어회'를 즐기는 이제 생소한 예외가 된 세상이다. 

삭힌 소고기, 당연히 삭혔기에 일반의 소고기와는 다른 향취를 내는 이 고기를 유현수 셰프는 삭힌 고기만이 가능한 어만두로 출연자의 미각을 돕는다. 일반 고기는 질겨져서 가능하지 않은 다져서 만두피로 만들어 찐 요리, 그 '어만두'는 상상 그 이상의 부드러움으로 '삭힌' 식재료의 예외적 세계를 연다. 


 




그렇게 '소고기'가 아니라, '삭힘'에 방점을 찍은 에피타이저로 연 프로그램은 김상중의 폭염 속 오토바이 질주와 함께 한 국도의 여정을 따라 충남 예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조우한 첫 회의 식재료. 

그 식재료와 첫 만남을 가진 이경규는 '쓰레기'가 아니냐고 대뜸 던진다. 허옇게 핀 곰팡이, 쓰레기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여진 식재료의 모습은 우리가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만날 만한 시레기국 찌꺼기와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걸 본 채림은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다'고 장담한다. 

이 서로 다른 반응을 이끌어 낸 주인공은 바로 '삭힌 김치'이다. 아니 <폼나게 먹자>며 사라져가는 식재료를 운운했던 프로그램의 첫 주인공이 겨우 삭힌 김치? 하지만 김치라고 다 같은 김치가 아니다. 만화 <식객>의 실질적 주인공에 다름아니라 저자 허영만이 소개한 식재료 전문가 김재료, 아니, 김진영씨가 나선다. 

옛 것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가 '배추'가 알고 있는 개량 배추가 아닌 토종 배추, 제주도 대정읍에서 고집스레 지켜낸 토종 배추 구억배추로, 임진왜란 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담궈 먹던 방식으로 고춧가루를 치지 않은 채 새우젓에 파, 마늘, 생강 등의 양념만을 넣어 담궈, 조상들의 방식대로 깨진 장독에 대나무를 깔고 그 위에 김치를 넣어 물기를 쫙 빼며 곰팡이가 필 때까지 삭혀지고, 또 삭혀진 김치. 
예산 고을에서도 겨우 10명이 지켜왔던 이 김치의 방식, 하지만 그 분들마저도 연로하셔서 이젠 겨우 2집만이 담그는 그 김치가 바로 첫 회의 주인공이다. 

우리의 대표적인 음식 김치, 하지만 김치라고 다 같은 김치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토종 씨앗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지역의 특색을 살려 우리가 알지만, 우리에겐 생소한 맛으로 지켜져온 전통의 맛, 그것이야말로 <폼나게 먹자>가 어떤 지향성을 가진 프로그램이란 것을 제대로 보여준 가장 걸맞는 첫 회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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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늦가을 배추 수확 후 담궈져 찌는 듯한 여름까지 그 수 개월 자연의 공기를 고스란히 품어내며 삭아들어간 김치의 맛은 어땠을까? 식재료 전문가 김진영씨의 소개에 따르면 대부분의 토종 배추들이 그러하듯 우리가 맛보는 일반 배추처럼 부드럽지 않다. 마치 봄동처럼 질기고 쌉싸름한 첫 맛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따스한 봄의 전령사 봄동처럼, 토종 배추 역시 씹으면 씹을 수록 단 맛이 나며 맛본 이의 기억에 진한 흔적을 남긴다. 

그 구억 배추로 지난 가을 담궈진 예산 삭힌 김치를 맛본 네 명의 mc가 보인 공통적인 반응은 생각 외로 아삭거린다는 것이다. 보기엔 흐드러져 물러터질 것같은데, 아삭한 식감이 출연자들을 놀래키고, 쌀뜨물만 넣어 자작하게 쪄내어 들기름 한 방울 더한 그 별 거 아닌 삭힌 김치찜이 먹고 나도 삼삼하게 떠오르는 '밥도둑'이라는 사실 또한 이구동성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폼나게 먹자>는 그렇게 '과거'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 예전 <국민교육 헌장>의 문장처럼 옛 것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한식의 명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원일 셰프에게 삭힌 김치를 들고 찾아간다. 옛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 옛것이 여전히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젊은 감각'을 더하여, 그저 들기름을 넣어 조려졌던 삭힌 김치는 데친 얼갈이 배추를 더해 삭힌 맛을 중화시키고, 된장을 풀어 그 풍미를 더하고, 두부를 얹어 모두의 찬탄을 불러오는 대중적인 한 끼의 음식으로 재탄생된다. 

삭힌 한우로 시작된 프롤로그, 그리고 이어진 충남 예산의 삭힌 김치의 본 레시피, 거기에 더해진 오늘에 되살려진 이원일 셰프의 된장 삭힌 김치 두부 조림을 통해, <폼나게 먹자>는 프로그램이 의도한 바를 깔끔하고 흥미롭게 살려냈다. 부디 오래오래 잊혀져 가는 우리의 맛을 소개해 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8. 9. 8. 14:22

낮에는 아직 볕이 따갑다지만 아침저녁 쓸쓸하다 못해 쌀쌀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계절, 그 더웠던 여름이 다 지나가는 이 계절에 뒤늦게 '서늘함'을 무기로 장착한 두 편의 드라마가 등장했다. 그것도 같은 방송사 kbs2의 월화 드라마 <러블리 호러블리>와 수목 드라마 <오늘의 탐정>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흐르지도 않는 땀을 얼어붙게 하면 어떠랴, 신선한 소재, 새로운 캐릭터들의 향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뻔하지 않음'으로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열렬한 지지자들을 양산할 태세다. 하지만, '호러'라고 해서 두 드라마를 뭉뚱그려 묶으면 아쉽다. '호러'라 해도 두 드라마가 보여주는 '호러'의 경지는 전혀 다른 색채를 가지고 시청자의 일주일을 떨게 만들테니까. 


 




정말 '호러블'한 건 '사람'이야 - <러블리 호러블리> 
드라마는 한 날 한 시에 태어나 운명적으로 엮인 두 남녀 유필립(유을축 박시후 분), 오을순(송지효 분)에게 벌어지는  '미스테리하고 호러블한 사건'들로 시작된다.  마치 세상의 모든 행운을 다 가진 듯했던 '우주대스타' 유필립은  1회부터 칼에 맞을 뻔하지 않나, 산사태에 생매장을 당할 뻔하지 않나, 심지어 8년전 연인이 귀신으로 나타나는 등 운명의 판도가 '불운'을 향한다. 그런데 그런 필립의 불운이 드라마을 쓰는 을순에게 '영적'으로 계시되어 대본으로 씌여지게 됨은 물론, 필립이 위기에 빠지는 순간마다 을순이 필립을 구해주며 두 사람은 엮이게 된다. 

스타 유필립의 과거와 현재가 얽혀진 이러저러한 사건, '귀신의 사랑'이란 대본을 둘러싼 미스테리한 사건들로 복잡해 보이는 드라마,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건, 뜻밖에도 인간의 욕망이다. 


 




애초에 죽을 운명이었던 아들, 그 연약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무당이었던 어머니는 을순의 행운을 '도둑질'했다. 거기서부터 어긋난 두 주인공의 운명, 그 어긋난 운명은 현재 또 다른 이들의 '욕망'으로 인해 '사건'으로 분출된다. 그 다른 이는 바로 필립과 함께 아이돌 그룹을 했던 동철과 기은영 작가이다. 자신에게 온 기회를 필립에게 빼앗겼다. 그래서 필립으로 인해 자신이 불행해 졌다 생각한 동철은 필립을 없애는 것으로 자신에게 온 불행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필립의 왜곡된 운명론을 을순에 대해 '샬리에르 증후군'을 가진 기은영 작가가 부채질하고. 그 두 사람의 욕망은 결국 보조 작가 살해와 필립 저격이라는 범죄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사건을 벌인 두 사람만이 아니다.  을순의 목걸이인 줄 알면서도 행운을 빼앗기기 싫어 그 사실을 숨긴 필립이나, 8년전 필립의 전 애인이 죽어간 화제 현장 사건에서 공모의 혐의가 있는 필립 소속사 사장이나, 필립의 현재 여자 친구인 신윤아 등이 움직이는 동인이 모두가 각자의 욕망과 이기심이다. 즉, 주어진 운명이라는 씨줄도 있겠지만 그 운명을 직조해가는 건 결국 '인간의 욕망'이라는 날실이라고 드라마는 얽히고 설킨 사건을 통해 강변한다. 즉, 이 드라마에서 진짜 호러블한 건 미스테리한 현상이 아니라, 거기에 영합하고 이용하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다. 

미스테리하고 호러블한 사건들로 얽히고 설킨 <러블리 호러블리>에서 '러블리'한 지점은 신선하고 매력적인 두 주인공의 캐릭터이다. 이마의 상처 때문에 얼굴의 반을 가리고 다닐 만큼 우중충해보이는 여주인공 오을순은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캔디나, 하니보다 한 수 위인 캐릭터이다. 을축이 아니 필립이에게 목걸이를 넘겨준 이후로 되는 일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칼을 든 강도 앞에서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배포를 가졌으며, 위기에 빠진 남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삽질은 물론, 엎어치기 메치기도 거침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빛나던 순간은 바로 16회 엔딩, '운명 따위'하면서 자신들을 얽어맸던 목걸이를 바다로 던져버리는 진취적인 적극성이다. 

백마탄 왕자님처럼 남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여주인공, 그렇다면 남자 주인공은 '신데렐라'일까? '백설공주'일까? 뜻밖에도 쫄보에 겁쟁이다. 자신의 신상이 밝혀질까봐 검은 비닐 봉지를 뒤집어 쓸 정도로 비겁하고 쫄보인 유필립,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그 '진정성'이 그로 하여금 을순을, 드라마에 대한 을순의 열정을 돌아보게 하고, 나아가 자신의 행운까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개연성있는 성장의 서사를 써내려가게 한다.  결국 '호러블'한 욕망, 그리고 주어진 운명의 굴레에 맞서는 건, 두 주인공의 '역동적인고 적극적인 러브'이다.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 중 가장 맞춤 캐릭으로 돌아온 송지효, 그리고 황금빛의 여운을 지워버리는 발군의  박시후 표 코믹과 진지를 오가는 연기가 어수선한 호러블한 사건 속에서 두 주인공의 러블리한 사건에 몰입하도록 한다. 


 




죽어도 주인공이야 - <오늘의 탐정> 
<러블리 호러블리>와 <오늘의 탐정>, 이 두 드라마가 '호러'라는 장르 외에 공통점을 들자며, 드라마가 시작하자마다 다짜고짜 남자 주인공을 땅에다 묻어 버린다는 것이다. <러블리 호러블리>가 자칭 헐리우드 스케일로 산사태를 일으키며 주인공이 타고가던 차채 땅에 묻어버렸다면, <오늘의 탐정>은 한 술 더 떠서 남자 주인공을 망치로 쳐 죽여 무연고 사망자로 만들어 버린다. 

시니컬한 하지만 차를 타고 들어오는 의뢰인의 면면만 봐도 그가 지나가는 사람인지, 사건을 의뢰하러 오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가 어떤 인물인지 맞추는 경지로 봐서는 거의 셜록 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주인공 이다일(최다니엘 분)과 그의 조수, 아니 그를 일찌기 알아보고 그와 함께 '어퓨굿맨'을 차린 한상섭(김원해 분)가 드라마를 열 때만 해도 남자 버전의 <추리의 여왕>인가 했다. 

그런데 사건만 해결하면 당장 쫓겨나게 생긴 사무실 임대료를 평생 받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뛰어든 유치원 아이들 실종 사건, 그 사건의 해결을 위해 뛰어든 이다일이 현장에 만난 건 뜻밖에도 범인과 사건 그 뒤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채 서있는 빨간 원피스, 그리고 그 빨간 원피스의 사주를 받은 범인은 이다일의 목숨조차 앗아가 버린다. 남자 주인공이 1회만에 죽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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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시작되자마자 비오는 풀숲 진흙탕에서 솟아오른 손 하나, 그는 그렇게 돌아왔다. 단지, 살아있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살아있지 않은 그를 여느 때처럼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 이다일처럼, 자신의 여동생을 빨간 원피스의 사주로 잃은 정여울(박은빈 분)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빨간 원피스를 본 것처럼, 다을을 알아봤다. 그리고 동생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서는 다일이 필요하다. 

<오늘의 탐정>은 <셜록>처럼 사건 해결에 능력이 있는 이다일을 앞세운 범죄 수사물이다. 그런데, 그 범죄가 격이 다르다. 드러난 사건은 유치원 아이들 실종 사건, 레스토랑 직원 자살 사건이지만, 그 사건들 뒤에는 빨간 원피스라는 미스터리한 존재가 있다. 그리고 이제 그 미스터리한 존재에 맞설만한 또 다른 미스터리한 존재, 즉 죽어서 살아온 남자 주인공 이다일로 사건의 격을 맞췄다. 이렇게 미스터리와 범죄의 조합으로, <김과정>의 이재훈 피디와 <원티드>의 한지완 작가가 합을 이뤘다. 거기에 셜록보다 더 셜록같은 최다니엘 표 이다일과 <청춘시대>의 송지원못지 않게 똘망한 박은빈 표 정여울의 조합은 절묘하다. 





by meditator 2018. 9. 7. 17:28

현대가에 의한, 현대가의, 현대가를 위한 현대 축구 협회, 지난 26년간 축구 협회의 '견제받지 않은 권력'인 '현대'가의 연이은 협회장 연임에 대해 축구에 조금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다.  그 새로울 것도 없는,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은 권력에 <추적 60분>이 칼날을 겨눴다. 


 




지난 2017년 카타르 전에 패한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됐다. 그리고 곧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이었던 신태용 감독이 선임됐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석연치않은 사건이 터졌다. 2002년 월드컵의 주역이었던 히딩크 감독이 은퇴를 앞두고 무보수라도 한국의 대표팀을 맡아 자신의 감독 생활에 유종의 미를 남기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지난10월 국정감사 자리에 나온 축구 협회 노재호 사무국장은 러시아에서 이 소식을 전해듣고 황급히 sns를 통해 김호곤 기술위원장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고 증언했다. 히딩크 전감독과 김호곤 기술위원장, 그리고 축구 협회 사이의 진실 게임을 둘러싼 잡음들. 결국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사퇴했지만, 결국 대표팀 감독은 히딩크가 아닌 신태용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선수 선발과 '트릭 발언'(포지션에 맞지 않은 선수 선발과 관련된 신태용 감독의 전술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신태용감독은 트릭이었다고 답했다) 대변되는 전술 부재 논란. 


 




감독들의 무덤이 된 대표팀 
하지만 축구 협회에서 감독 경질과 새 감독 선임의 논란은 새로운 사건도 아니다. 히딩크 감독 이후 10명의 감독이 대표팀을 거쳐갔다. 평균 1년 6개월 정도만 감독직을 맡은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히딩크만큼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감독을 자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의 입장은 다르다. 협회가 자신들의 책임을 덮고, 가리기 위해 감독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책임만이 아니다. 1994년 당시 미국 월드컵을 이끌었던 김호 감독은 선수 선발과 기용에 있어서 김독의 자율성이 침해되었으며 이에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건 '경질'이라며 협회의 감독 권한 침범을 증언한다. 
또한 2011년 레바논 전에 패한 후 조광래 감독은 하루 아침에 감독 직을 잃었다. 당시의 정황은 조광래 감독의 경질이 경기의 패배보다는 당시 협회장 선거를 둘러싼 파벌에서 조광래 감독이 협회 내 야권에 해당하는 인사와 가깝다는 이유였음을 보여준다.
히딩크 감독을 제치고 대표팀 감독이 된 신태용 감독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월드컵 기간 내내 논란이 되었던 선수 기용, 전술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그 자리에 중국 리그에서 아시아권 선수들에 대한 이해 부족, 부진 등의 이유로 경질된 벤투 감독이 선임됐다. 이번에도 그 과정에 대해 협회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덧 대한민국 대표팀은 '감독들의 무덤'이라 칭해진다고 다큐는 말한다. 

'우리의 축구 수준이 여기까지라고 저는 판단내려지고요. 
우리가 더 잘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에게 능력을 키우라고 얘기할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한국 축구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 보이는 것만 바꿔서 내보낼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어두운 것을 털어내고
벽을 깨고 앞으로 나가기를 원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
                                              박지성



파벌을 둘러싼 감독 선임과 경질, 이른바 모 대학 동문 중심의 선수 기용 등에 대해서는 이미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일반인들 조차 기정 사실로 치부하고 있는 사실들이다.  오죽하면 지난 월드컵 경기를 관전한 각 방송사의 지난 2002 월드컵에 참여했던 선수 출신의 해설가(박지성, 안정환, 이영표 등)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축협의 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후배들의 엄정한 요구에 대해 축구협회 이사가 된 홍명보 전 감독은 '경기를 얕게 해석'했으며, 후배들이 선수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없다'고 폄하하며 축협에 대한 비판을 일축했다. 


 





왜 현대는 축협을 놓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고질병이 된 축협의 문제 그 실마리를 다큐는 2013년 정몽준 회장에 이어 대한 축구 협회장이 된 현대 산업 개발 회장으로 부터 풀어가고자 한다. 
다큐는 질문한다. 도대체 왜 현대가는 26년 동안 축협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일까?

한 해 천억원의 예산을 가진 축구 협회, 지난 2013년  축구 협회장 선거 과정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억원의 돈이 오간다는 소문 끝에 정몽규 회장이 당선되었다. 당선된 정몽규 회장의 첫 사업은 시급한 사안이 아니라는 반대를 불식하고 '축협 회관 리모델링'이었다. 

당연히 협회 사람들은 새로이 당선된 현대 산업 계발 회장의 선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급작스런 이사 등 번거로운 리모델링 과정을 거치고 돌아온 후 알게된 사실은 십 몇 억이 든 리모델링 사업이 올곧이 협회 예산이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심각한 건 이 과정에 현대 산업 개발 계열사가 참여했으며 특히 동생 정유경 씨의 실질적 송유주로 짐작되는 업체가 인테리어를 맡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업체는 <추적 60분>이 추적해 들어가자 홈피의 사진을 지우는 등 황급하게 소규모 행사를 했을 뿐이라 발뺌을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년도에 비해 26배나 많은 54억의 현금 수익을 챙기는 '특혜성 공사'를 한 것으로 다큐는 짚는다.

이뿐이 아니다.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시기에 만들어진 B스포츠 마케팅 업체는 현대 산하 금강 기획 출신들이 주축으로 만들어진 마케팅 업체로 협회의 마케팅 업무를 독점해왔다.  
다큐 제작진의 질문에 경쟁 입찰에 따른 공정한 참여였다고 답했지만, 이 업체보다 서너배나 돈을 많이 쓴 타 업체조차 입찰 과정에서 튕겨져 나가는, '협회에 대해 잘 아는'이라는 모호한 선정 방식에 대해 전문가는 전형적인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라 단정한다. 하지만, 이른바 오랫동안 현대, 현대 산하 기업에 몸을 담아온  '현대맨'에의한 회사는 이른바 친인척 등 특수 관계인이 아니기에 '법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절묘한  수법이기에 '법적 처벌'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역대 축구 협회 임원에 대해 전수 조사를 한 다큐 제작진, 191명의 역대 협회 임원 중 현대에서 일한 사람은 53명에 달했다. 더구나 2017년 조중연 전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단란주점, 안마시술소 등에서 법인 카드를 쓴 공금 유용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등 임원들의 도덕적 해이는 극에 달한 상태다. 심지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비리 임직원 중 6명이 여전히 축구 협회 임원등으로 재직하는 등 '협회 카르텔'은 공고했다. 현대 맨들이 장악되었다는 조직과, 그 조직에 의한 현대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다큐는 협회에 투자한 현대의 돈보다, 협회로 인해 얻은 현대가의 이익이 훨씬 크지 않겠는가 라고 반문한다. 

1000억원의 규모를 3000억원의 규모로 확장시키겠다는 슬로건으로 전폭적 지지를 얻어 당선한 정몽규 회장, 하지만 대표팀을 제외한 한국 축구의 현실은 초라하다, 대표팀의 베이스가 되어야 할 유소년 축구, 하지만 지원은 커녕, 고교 축구 연맹전은 학부모들의 품앗이로 진행된다. 지원이 부족한 프로 축구는 수익성이 나날이 떨어지며 고전 중이다. 국민들의 염원을 담아 우리의 축구 행정을 잘 하기 위해 만들어진 축구 협회는 국민들의 것일까? 아니면 현대의 또 다른 계열사 중 한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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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축구협회여야 할까? 
물론 축구 협회는 사단법인이다. 재벌이라는 금권에 기반한 스폰서의 경제적 지원에 의한 단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렇게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공개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큐는 이의를 제기한다. 축구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없다면, 국가대표 팀의 경기라도 있을라치면 거리를 붉게 물들이는 국민적 호응이 없다면 축구 협회의 존립이 가능하겠는가라고. 

재벌 기업의 사재를 털었다지만, 공적 기금이 들어갔음은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각종 시설 등을 사용하고 있는 축구 협회는 '공공재'로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또한 지난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이끈 덕에 국민적 호응을 얻어 대선 후보까지 나섰던 정몽준 후보의 사례에서도 보여지듯이 그저 재벌 회장과 달리, 축협 회장이라는 '왕관'의 무게로 인해 얻는 이익은 경제적 수치 그 이상이라 다큐는 단언한다. 

이미 준정부적인 조직으로 거대화된 축구 협회, 그럼에도 여전히 '현대'라는 개별 기업에 의해 장악된 조직, 국민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공적 역할에 걸맞은 책임과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다큐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조직이 스스로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법적 개입조차 필요하다 덧붙인다.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우리 축구인들이 힘을 합쳐서 
희생을 감내하고서라도 뭔가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4년마다  매번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지성










9월 5일 <추적 60분>에서 현대에 의한 축구 협회에 대한 비판적인 방송이 방영되자, 6일 협회는 반박문을 발표했다. 그 반박문은 다음과 같다. 

<추적60분> 방송에 대한 대한축구협회 반박문

 
1. 대한축구협회가 희생양을 위해 대표팀 감독 경질만 되풀이한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릅니다. 최근 몇년전부터 대한축구협회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철저히 신뢰하고 최대한 임기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감독 선임 기구도 새로 정비하고 선임 절차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으며, 최상의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2. 축구회관 인테리어 공사를 현대산업개발 관련 회사가 시행했다는 주장에 대해
 
2013년 시행한 축구회관 인테리어 공사는 입찰을 통해 정상적으로 시공사를 선정했으며, 현대산업개발 관련 회사가 아닙니다. 정몽규 회장의 여동생이 지분을 가진 모 회사는 이 시공사에 납품을 한 여러 회사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3. 대한축구협회가 ‘현대가’의 특정 마케팅 대행사와 유착했다는 주장에 대해
 
2015년까지 대한축구협회 마케팅 대행사는 독점이 아니라 여러 회사가 자유롭게 참여할수 있었습니다. 방송에서 의혹이 제기된 모 회사는 오랜 경험과 실적으로 협회와의 거래가 상대적으로 많았을 뿐이며, 현대와 직접적인 관계도 없습니다.  2015년말 실시한 통합 마케팅 대행사 선정 역시 공정한 절차에 따라 능력과 실적을 겸비한 회사를 선정한 것이므로 유착이라 할 수 없습니다. 
 
4. ‘현대가’가 막대한 이익을 위해 대한축구협회를 장기집권한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릅니다. 막대한 이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현대 관련 기업에서 운영하는 프로, 성인팀만 4개(울산현대, 전북현대, 부산아이파크, 인천현대제철)이며, 초등부터 대학까지 합치면 총 18개의 남녀 축구팀이 있습니다. 최근 5년간 18개팀의 운영비로 투입된 금액만 총 3,900억원입니다. 현대 관련 기업이 지난 2010년부터 7년동안 K리그의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낸 후원금이 200억이 넘습니다. 또한 현대자동차가 FIFA, 현대중공업이 AFC의 후원사로 참여해 한국 축구의 국제적 위상도 높인바 있습니다.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시 정몽규 회장이 당선을 위해 금품을 제공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최근 선거에는 100명 이상의 선거인단이 참여하기 때문에 압력을 넣거나 불법 로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대한축구협회장의 임기를 3회로 제한한 것은 FIFA나 AFC의 방식을 참고한 것입니다. 국내 다른 종목 단체의 회장은 기본으로 2회를 연임할 수 있고, 대한체육회 승인을 받으면 추가로 얼마든지 연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한축구협회가 정한 3회 임기 제한이 오히려 회장의 임기를 제한한 것입니다.
 
5. 대한축구협회는 유소년 지원에 관심없고 대표팀 성적에만 치중한다는 주장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에서 나오는 주장입니다. 학원 축구 리그제 정착, 동호인 축구 디비전 제도 도입, 골든 에이지 훈련, 8 대 8 도입 등 유소년과 아마추어 축구 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8년 한해 유소년 축구에 투입되는 비용만 144억원입니다. 열악한 환경의 유소년 축구 사정은 잘 알고 있으나,  특정 팀과 지도자, 선수 개인을 위해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6.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임직원의 징계를 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6~7년전에 발생한 사건으로 협회 징계위원회에 상정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검찰 수사 발표가 안되고 있어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수사 결과가 나오는대로 필요한 조치를 즉각적으로 시행할 예정입니다. 2013년부터 클린카드 실명제 등 회계 시스템을 도입해 사적인 용도로 사용할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습니다.




by meditator 2018. 9. 6. 16:09

결핵은 결핵균(미코 박테리움)에 의해 감염되는 질환이다. 기원전 7천년 경 석기 시대 화석에서 발견됐을 정도로 인류와 함께 해온 질병이며 가장 많이 인류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이기도 하다. 결핵 환자에게서 나온 미세한 침방울 혹은 비말핵(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면 결핵균이 들어있는 입자가 공기 중으로 나와 수분이 적어지면서 날아다니기 쉬운 형태로 된 것)에 의해 감염된다. 하지만 감염된다고 해서 모두 결핵에 걸리는 건 아니다. 대개 접촉자의 30%가 감염이 되며, 그 중 10%가 결핵 환자가 되며 나머지 90%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발병하는 사람들의 경우 감염 내 1~2년내 발병하고, 나머지는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저하되는 때에 발병하게 된다. 그러기에 결핵의 발병에는 면역력이 약화되는 조건, 즉 영양의 부족 등의 상황이 주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북한의 경우, 생활고로 인해 영양 상태의 부족으로 인해 결핵 감염율이 높다. 인구 10만명 당 결핵 환자가 550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통계 조차도 정확하지 않다. 심각한 건 기존의 결핵 약에 내성이 생겨 치료가 어려운 슈퍼 결핵, 다제내성 결핵 (Multi Drug Resistant Tuberculosis, MDR-TB)환자가 6000 여명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9월 3일 방송의 날 특집으로 방영된 mbc스페셜은 이 '다제내성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6개월에 한번씩 북한을 방문하는 유진벨 재단의 여정을 그린다. 




주적 미국과 남한, 그리고 북한이 함께 하는 
이 여정을 함께 한 사람들은 각별하다. 우선 이 다큐는 북한 출신의 외조부모를 둔 석해인 감독의 <out of breath>의 한국어 판이다. 봉사단과 함께 2년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여 완성된 다큐는 이미 일본에서도 방영되었고, 조만간 영국에서도 방영될 예정이다. 오로지 외조부모들이 북한 출신이라지만 북한을 떠난 이후로 단 한번도 다시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했던 분들의, 그래서 북한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던 '이방인' 석감독의 눈으로 본 북한, 그리고 봉사의 여정은 그래서 담담하고 객관적이다. 

그녀의 눈에 비친 북한은 그녀가 보았던 1950년대 남한의 풍경과도 같다. 민둥산 비포장 도로, 그곳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함경도 시골 마을, 그곳에 북한의 결핵 요양원이 있다. 하지만 말이 요양원이지. 수용 시설에 가까웠다. 겨우 일반 결핵 환자들을 위한 약이 있을 뿐 다제내성 환자들에 대한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다. 그나마 약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마치 경제 금수 조치를 당한 쿠바에 1960년대 클래식 카가 활보하듯, 말이 뢴트겐이지, 작동되는 자체가 기적이라 할 폴란드에서 1950년대 제작된 기계가 환자들의 x선 촬영을 담당하고 있다. 

그곳에서 북한 사람들이 주적이라 여기는 미국인이 유창하게 북한 사람들에게 '동무'라며 자신들의 방문에 대해 소개를 한다. 스티브 린튼 박사, 한국에 왔던 선교사의 자손, 그는 성경을 손에 들고 온 할아버지처럼, 성경 대신 결핵 약을 바리바리 싣고 북한 함경도 골짜기를 찾았다. 세계 보건 기구(WHO) 에서 다제내성 결핵 치료 지침서를 작성한 전문가이자 세계적인 결핵 전문의 한국계 미국인 승권준 박사도 함께 한다. 말이 결핵 약이지, 봉사단의 북한 행을 일행은 '외계와의 조우'에 빗댄다. '아무 것도 없다'란 전제 하에 그곳에서 봉사를 펼칠 '모든 것'을 준비해 가야 하는 여정. 그곳엔 숨쉬기 조차 힘들어 하면서도 기꺼이 쉽지 않은 치료에 합류하고자 하는 환자들이 있다. 




봉사단이 아니면 불가능한 치료, 그러나 쉽지 않은 
키 169 센티, 하지만 몸무게는 46kg에 불과한 김태성 씨, 그는 묻는 말에 대답하기조차 숨차한다. 휠체어에 실려온 젊은 청년은 잠시 몸무게를 재기 위해 홀로 서는 것조차 쉽지 않다. 먼길을 아내가 끄는 리어카에 실려온 중년의 환자도 있다. 그들은 모두 '포기된' 사람들이었다. 심각한 건 환자를 건사하다 주변의 가족들이 감염되어 아빠와 어린 딸, 엄마와 어린 아들이 함께 찾아오는 사례이다. 마치 권정생의 동화 <몽실언니>에서 어머니 북촌 댁의 폐결핵을 전쟁 통에 끼니조차 챙기기 힘들던 몽실 언니의 동생 난남이가 이어받듯이 말이다. 그래서 승권준 박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옮기는 결핵이 가장 치료하기 힘들고 어려운 질병이라 정의한다. 그렇게 갖가지 증상과 상태로 모인 기존의 결핵 약으로는 치료가 더 이상 불가능한 다제내성 결핵 환자들. 그들에겐  진단을 위한 객담 조사조차 버겁다. 

봉사단은 그들과 함께 한 북한의 결핵 전문가, 그리고 현지의 의료진과 함께 환자들의 실태와 상태 조사에서부터 시작한다. 전기조차 여의치 않은 요양원의 처지로 인해 발전기까지 구비해야 하는 진료 과정, 그 과정과정은 늘 예기치 않은 변수와의 실랑이이다. 하지만, 그 변수들을 극복해 내며 봉사단이 애를 쓰는 건 바로, 북한 내에서는 약조차 구할 수 없는 다제내성 환자들에 대한 치료와 교육이다. 

봉사단이 약을 가져가지만, 약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기존의 결핵 약으로 치료가 되지 않는 다제내성 결핵을 치료하기 위한 약은 '치료'만큼 '독성'도 강하다. 우울증이 생기기도 하고, 청력을 잃을 수도 있고, 신부전의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약 자체를 먹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환자들이 그 어려운 투약 과정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드는 '정신 무장'도 방문단의 주요한 일정이다. 하지만, 6개월에 한번씩이라는 짧은, 그리고 가끔씩의 여정은 '6개월 후에 만나요'라는 기약할 수 없는 인사를 남겨야 하는 안타까운 여정이다. 




6개월, 하지만 기약할 수 없는 
이 봉사단의 여정이 기약할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 중 전제가 되는 건, 바로 언제나 요동치는 한반도의 정세이다. 그저 북한의 치료받지 못한 결핵 환자들을 돕고자 하는 이 인도주의적인 여정은 언제나 남북한의 정치 정세게 가장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무슨 충돌이 있더라도 환자는 같이 살리자.' 그래서  '성숙된 인도주의 정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스티브 박사는 강변한다. 

그리고 그 다음은 6개월에 한번이라는 이 상시적이지않은 인도주의적 봉사가 북한의 환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보살핌을 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6개월 후에 꼭 봤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곳을 떠나는 봉사단을 그 말이 얼마나 기약할 수 없는 단어인 줄 안다. 분명 차도가 있고 열의가 있던 환자였지만, 봉사단이 6개월 후에 그곳을 찾았을 때 그 환자가 유명을 달리하거나, 더는 양의 효험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요양원을 떠나는 사람들은 두 부류이다. 더는 이곳에서 조차 치료의 기대를 할 수 없어, 혹은 스스로 치료를 포기하여 떠나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떠나는가 하면, 어려운 치료 과정을 거뜬히 이겨내고 건강인으로 다시 사회에 복귀하는 경우이다. 그들은 모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라는 종이학 목걸이를 걸고 그곳을 떠난다. 몇 번의 방문에서 정이 든 봉사단은 완치가 못되어 떠나는 이들에겐 포기하지 말라는 간곡한 인사와, 건강해서 떠나는 이들에겐 앞날의 행복을 기원하며 그간의 정을 다한다. 

다시 돌아온 남한, 봉사단을 다시 분주하게 자신들의 인도주의적 봉사를 위한 도움을 요청하고,  북한의 환자들을 위한 약과 의료 기기를 준비하고 그들의 방문에 맞춰 서둘러 보내고자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료기기조차 '방북'이 쉽지 않은 상황, 인도주의적 봉사의 여정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현재 북한의 결핵은 해마다 4,5천명 규모로 발생하는 상황, 공식적으로 집계된 환자 수는 11만 명 하지만, 이 공식 집계는 비공식적 집계의 10%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해마다 2백만 명 가량이 결핵으로 사망하고, 그 중 상당수가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어린 시절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면 크리스마스 씰이라는 기념 우표를 샀던 기억이 있다. 그 크리스마시 씰을 처음 발행한 사람은 1928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결핵 요양소를 세운 캐나다의 선교사 셔우드 홀이다. 그렇게 남한의 결핵 퇴치에 앞장섰던 선교사들처럼, 그들의 후예들은 여전히 북한의 결핵 퇴치와 치료에 힘쓰고 있다. 유진 벨 재단의 스티븐 역시 그런 사람이고, 그의 활동은 그의 선인들의 활동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우리나라에 와서 결핵 퇴치에 앞장섰던 선교사들에 대한 감사함을 가지듯, 이제 북한 결핵 봉사에 대해서도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너그러운 아량과 베품을 나눌 때가 아닐까. 

by meditator 2018. 9. 4. 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