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알라딘>은 어떤 것일까? 이제는 고인이 된 로빈 윌리암스가 더빙을 맡았던 지니가 원맨쇼를 벌였던  디즈니의 31번째 에니메이션 <알라딘>이 개봉된 해가 1992년, 그러니 이 시대의 젊은 세대에겐 에니메이션 속 수다쟁이 지니 조차도 생소할 터이다. 아마도 2019년에 <알라딘>을 본 많은 젊은이들은 윌 스미스의 '지니'의 떠들썩한 한 판 잔치로 <알라딘>을 기억할 것이다. 

이제는 노년이 되어가는 세대에게 <알라딘>은 이른바 '전집류'가 유행하던 시대, 아이들을 위한 전세계 명작 선집 50권 중 흥미진진했던 중앙 아시아의 전래 동화였다. 첫 날 밤을 보낸 신부들을 죽이는 왕과 결혼한 세헤라자드가 왕의 맘을 돌리기까지 천일동안 들려준 재미있는 이야기들 중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유럽에 소개한 앙투앙 갈랑이 번역한 번역본에는 들어있지만, 아라비아 원전에는 들어있지 않은 그러나 <천일야화>의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린 <알라딘>.

 

 

신데렐라가 된 소년 알라딘 
전래 동화 속 <알라딘>은 장난끼많은 가난한 소년, 어느날 자칭 삼촌이라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동굴 속에 램프를 가지러 가게 된다. 입구가 좁아서 '소년'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 하지만 기지 넘치는 소년 알라딘은 램프만 받고 자신을 동굴 속에 가두어 버리려는 '삼촌'의 명령을 어겨 그만 램프와 함께 다시 동굴 속에 가둬지게 되는데, 그때 우연한 '마찰'로 인해 '삼촌'이 준 반지 속 거인을 소환하여 빠져나오게 된다.

사실은 그 '삼촌'은 마법사였고, 그가 준 반지가 마법의 반지였던 것. 또한 집으로 돌아온 알라딘은 램프에서도 또 다른 마법의 거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부자가 되고 공주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물론 위기가 찾아온다. 변장을 하고 나타나 공주를 속여 램프를 빼앗은 마법사에게 램프는 물론 공주까지  빼앗기지만 '반지 거인'의 도움으로 다시 모든 것을 되찾아 행복하게 살아간다. 

이렇게 가난한 소년에게 찾아온 일확천금은 물론, 아리따운 공주에 미래의 술탄의 자리까지 얹어준 반지와 램프의 마법은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왔던 '신데렐라'이야기의 남자 버전과도 같다.  에니메이션으로 이를 재연한 디즈니는 가난하고 장난꾸러기였던 소년 알라딘을 거리의 고아 좀도둑으로 변신시키고 소년만이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을 '진흙 속에 묻힌 진주 같은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선택받은 자의 운명론'을 더한다.

하지만, 에니메이션으로 돌아온 <알라딘>의 신드롬에는 무엇보다 램프에서 나온 무시무시한 거인을 '지니'라는 애칭을 지닌 수다쟁이 '요정'으로 변화시킨 발상의 전환이 크다. 덩치는 '거인'이며 '푸른 색'이지만, 입만 열면 '모터'가 돌아가듯 쉴새없이 떠드는 친숙한 '요정'이라는 캐릭터는 개봉 당시 남녀노소 <알라딘>에 열광케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2019년에 어울리는 캐릭터들 
무엇보다 알라딘도, 정해진 결혼이 싫어 뛰쳐나온 자스민 공주도, 그리고 푸른 색의 요정 지니도, 천일야화 속 알라딘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주체성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살려냈다. 그저 램프 속 거인의 도움을 받아 부자가 되고 공주랑 결혼하게 되는 '남자 신데렐라' 알라딘은 부자 알라딘과 거리의 좀도둑 사이에서 고뇌하는 햄릿형 인간이 되었고, 결정적인 순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소원 대신 지니의 자유를 선택하는 주체적인 인간형으로 거듭났다. 정해진 결혼이 거부하고 알라딘을 선택한 자스민 공주는 물론이며, 지니조차도 그저 행운을 가져다 주는 요정을 넘어 '자유'를 갈망하는 캐릭터로 거듭났다. 

2019년에 '실사화'된 <알라딘>은 원작 대신 이런 에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을 이어받는다. 고아로 태어나 거리의 좀도둑되었지만 자신보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이 훔친 것을 양보할 줄 아는 알라딘은 진정 진흙 속에 진주를 품은 사람처럼 가슴에 다른 삶에 대한 꿈을 품고 있었고, '페미니즘'의 시대에 걸맞게 쟈스민 공주는 정해진 결혼을 거부하는 건 물론, 여성으로서는 허락되지 않는 '술탄'의 계승을 갈망하는 '여성 리더'로서의 면모를 뽐낸다. 

원작에서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술탄이 되었던 알라딘의 이야기는 2019년에 오면 왜 공주는 술탄이 될 수 없느냐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라의 운명을 향해 싸우는 적극적 술탄 계승자로서의 쟈스민 공주의 이야기를 주된 스토리로 끌어온다. 물론 거기에 자신을 램프에서 꺼내준 '주인님'에게 친구라 부르며 '자유'를 갈망하는 건 물론, 주인님의 명령을 '임의적'으로 해석 적극적으로 돕고자 하는 융통성있는 지니의 캐릭터는 한결 업그레이드되었다. 즉 그저 '실사'로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에 따라 캐릭터들의 적극성과 자기 주체성을 한층 더 살려냈다. 

이렇게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원작에서 다시 에니메이션으로, 그리고 이제 실사 영화를 통해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알라딘>, 하지만 시대에 따른 이야기의 변화만이 아니라, 실사 이야기는 에니메이션과 다른 영화적 장치를 더했다. 바로 '발리우드' 스타일이다. 

 

 

발리우드 양념에 윌 스미스란 화룡점정 
'발리우드'란 봄베이와 헐리우드의 합성어, 흔히 인도 영화 산업 전반을 의미하는 단어지만, 마치 화려한 파티를 보듯 영화의 줄거리보다도 더 메인인 듯한 호화로운 춤과 노래로 가득찬 뮤지컬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인도 영화 스타일을 통칭한다. 중동의 전설적인 이야기 <천일야화>의 <알라딘>을 실사로 옮긴 디즈니는 '발리우드' 스타일을 도입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뮤지컬 콘서트를 보는 듯한 장면을 자주 연출한다. 

공식적인 첫 번째 소원으로 '왕자'가 되어 왕궁에 나타난 알라딘, 하지만 어설픈 에티튜드로 인해 공주의 눈 밖에 났지만, 다행히 그를 맘에 들어한 왕의 초대로 다시 한번 왕궁의 행사에서 공주와 해후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미적거리는 알라딘을 '친구' 지니의 마법으로 단번에 '춤꾼'으로 거듭나게 만들고, 공주의 독무에 이은, 공중제비까지 곁들인 알라딘의 '춤신' 공연은 떠들썩한 참석자들의 군무로 이어진다. 주인공의 독무에 이은, 커플 댄스, 그리고 출연자들의 집단 군무와 합창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퍼포먼스는 '발리우드'의 전형적인 구성 요소고, <알라딘>은 이를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영화적 재미를 더하며 '문화적'인 특색을 살리는 동시에 볼 재미를 배가시켜낸다. 

2019년의 시대적 흐름에 걸맞춘 서사, 거기에 '발리우드'적 연출, 그리고 이에 '화룡점정'이 된건 푸른 요정으로 돌아온 윌 스미스이다. 일찌기 로빈 윌리암스가 더빙했던 에니메이션의 스타 요정 지니를 잊을 만큼, 윌 스미스가 아니고서는 상상하기 힘든 춤과 노래, 랩, 개그, 그리고 감동까지 윌 스미스의 원맨 쇼가 상투적 고전 로맨스의 얼개를 가진 <알라딘>을 펄떡거리도록 만든다. 그렇게 '윌 스미스'라는 '신의 한수'로 디즈니는 '실사' 영화의 순조로운 그 이상의 성취를 거둔다. 거기에 이젠 '디즈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캐릭터들, 알라딘의 원숭이 아부와 날으는 양탄자의 콤비 플레이, 거기에 공주의 호랑이와 자파의 앵무새까지 이젠 오랜 내공으로 명불허전이 된 조연 캐릭터들이 두 주인공 못지않은 존재감을 뽐낸다. 

by meditator 2019. 6. 3. 19:59

<아스달 연대기>가 시작되었다. <육룡이 나르샤>의 박상연, 김영현 극본, <나의 아저씨>, <미생>의 김원석 연출, 그리고 장동건, 송중기, 김옥빈, 김지원, 김의성, 박해준 출연 등, 이미 제작진과 출연진의 면면 만으로도 <아스달 연대기>는 제작 초기에서 부터 화제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소문난 잔치'의 첫 삽은 어땠을까? 

 

 

스텝을 갈아만든 <왕좌의 게임>의 복사판? 
<아스달 연대기>가 방영되기까지의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칸에서의 황금종려상이라는 쾌거와 함께 제작 현장에서의 스텝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표준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에 준수하여 촬영을 한 것으로 다시 한번 호평을 받은 <기생충>, 이 처럼 최근 들어 촬영 현장에서의 스텝들의 노동 조건에 대한 환경에 대한 의식이 높아져 가고 있는 즈음에, 안타깝게도 <아스달 연대기>는 지난 해 10월 부터 1일 25시간의 노동을 밀어 붙였고, 특히 브루나이 해외 촬영 기간에는 최장 7일간 131시간 30분 휴일도 없는 연속 근로를 강제한 것으로 방송 스태프 조합이 발표했다. 심지어 안전 상의 이유로 현지 코디네이터가 만류했음에도 야간에 강에서 카약을 타는 촬영을 강행하는 등 스텝들의 안전 조치도 미비한 상태였음이 밝혀져 '스텝들을 갈아서 만든 드라마'란 꼬리표가 방영도 하기 전에 따라붙었다. 

제작비 540억, 드라마 사상 상상을 초월하는 제작비로 제한한 기간 간에 제작을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벌어진 우리 드라마의 관행과도 같은 스텝 혹사, 하지만 <아스달 연대기>에 대한 잡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티저가 나오자마자 <왕좌의 게임>을 보았던 애청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왕좌의 게임> 포스터에서 부터,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 설정과 의상, 심지어 극중 '센터빌'이라는 지역적 배경마저도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허구의 국가인 웨스테로스 대륙의 7개의 국가와 하위 몇 개의 국가들로 구성된 연맹 국가의 통치권을 둘러싼 예측 불허의 싸움을 시즌별로 그려내고 있는 <왕좌의 게임>은 2011년 방영 이래 2019년 시즌 8에 이르기 까지 '신드롬'이라 불릴 만큰 전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덕후' 들을 양산한 미드이다. 그러기에 이 드라마와 관련된 내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애청자들에게 티저에서 부터 보여진 <아스달 연대기> 출연진들의 면면이 너무도 <왕좌의 게임>과 흡사하다는 불평이 터져나왔다. 

 

 

아스달 판타지의 낯선 세계관 
그렇다면 이런 잡음들과 우려들을 짊어진 <아스달 연대기>의 첫 회는 어땠을까? 시작은 '인간'과 '뇌안탈'의 협상으로 시작된다. <왕좌의 게임>에서 와일들링이 연상되는 '뇌안탈', 그들에게 인간족은 쑥과 마늘을 보여주며 함께 땅을 일구며 기름진 농경 사회를 만들어 가자 권유한다. 하지만, 쑥과 마늘을 먹지 않는다며 거부한 푸른 눈의 푸른 피를 가진 뇌안탈, 그들은 인간 보다 월등한 신체적 능력을 가졌지만 결국 '인간'의 지략으로 인해 그들이 살던 달의 평원을 빼앗기게 되고 살아남은 자는 처절한 '사냥'의 대상이 된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인간과 뇌안탈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두 아이, 그들은 각자 인간족의 타곤(장동건 분)과 아사혼(추자현 분)에게 구출되어진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꿈' 속의 저주를 피할 수 있는 이아르크로 도망치려했던 아사혼,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러 아들 은섬이 발견한 이아르크로 자신을 희생시키며 도착하지만 그런 '희생'의 과정이 결국 '아스의 신' 아라문이 자신을 이용한 것이라는 것을 절감한 채 숨을 거두고 만다. 그리고 남겨진 은섬(송중기 분)은 자라 인간족에게는 불가능한 '꿈'을 꿀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난다. 

시작은 <왕좌의 게임>이 연상되건 어떻건 웅장했다. 540억이란 제작비가 손색이 없을 정도의 규모와 태고의 땅 '아스'와 각 인물들의 배경이 되는 cg는 공을 들인 티가 역력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규모와 cg로만 이루어 지지 않는 법, 피도 눈물도 없이 부하들을 베고 인간족과 뇌안탈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전리품으로 품에 안은 타곤의 젊은 날을 비롯하여 배우들 자신도 '상고 시대 아스' 속에 자신이 아직은 낯선지 어설퍼 보였고 , 뇌안탈과 이족들의 낯선 언어는 쉽사리 '태고의 전설'에 익숙해기 힘들게 했다. 

이아르크로 온 인간과 뇌안탈의 혼혈 은섬, 그리고 아들이지만 아버지에 의해 전장터로만 떠밀려난 타곤 등을 중심으로 '아스'의 전설이 써내려져 갈 것이다. 함께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자는 아스 산웅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채 부족의 절멸을 맞이한 뇌안탈, 그들의 앞에서 산웅은 '국가'를 논한다. 함께 하지 못하면 결국은 짧은 전투와 길고 긴 학살의 사냥이 이어지는 대결의 세계, 일찌기 <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이래 시대의 담론과 '국가'와 통치에 대해 예리한 질문을 던져왔던 박상연, 김영현 작가가 그들의 세계관을 '역사'라는 한정적 틀을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상고 시대'라는 공간 속에서 펼쳐내고자 하는 포부를 펼친다. 

하지만 그 '포부'의 세계관은 낯설다. <왕좌의 게임>은 물론, <어벤져스> 시리즈 중 <토르> 시리즈, 그에 앞서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등이 서양의 옛 신화와 전설에 기대어 자신들의 '판타지'를 펼쳐나갔던 바, 전설과 설화의 세계를 차용하는 건 이제 판타지의 세계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들이 서구인들의 정서적 기반에 바탕이 되는 전설과 설화를 차용한 것과 달리, <아스달 연대기>속 '판타지적 설정'은 이미 <태왕사신기> 등을 경험했지만 그보다도 더 생경하게 다가온다. 갓을 쓰고 돈키호테의 갑옷을 입은 등장인물을 보는 느낌이랄까. 등장 인물의 한국어가 신선하게 다가올 정도니.

 

   

 

물론 우리는 쑥과 마늘의 곰 토템 신화보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판타지'에서 문화적 국적을 논하는 거 자체가 난센스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결국 <아스달 연대기>의 관건은 이런 낯선 세계에 대해 제작진이 어느 정도 시청자들을 설득해 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낯섬을 '신선한 이야기'로 설득할 수 있는가, 여전히 <늑대 소년>처럼 고운 송중기와 30대라 해도 믿을만한 장동건의 근육질만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나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가능성은 열려있다. 장황한 입문서와도 같았던 1회에서도 푸른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뇌안탈 라가즈의 죽음이 안타까웠고, 무슨 내용인지도 이해가 잘 안갔지만 자신이 이용당했다며 죽어가는 아사혼의 눈물어린 죽음이 슬펐다. 분절음과도 같은 이야기 속에서 출생의 비밀은 궁금했고, 비극적 죽음은 마음을 울렸다. 과연 이런 아직은 '난해한 전설'을 넘어 <왕좌의 게임>만큼 치열한 국가론이 펼쳐지길. 540억이란 스텝들을 갈아넣은 드라마의 성취는 그저 한 드라마의 성패가 아니라 우리 드라마 시장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 성패로 이어질 테니 부디 새로운 장르의 시대를 열 수 있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9. 6. 2. 02:21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그 '탄핵'의 봇물을 터트린 주인공, 바로 , k 스포츠 체육 재단의 전 부장 노승일이 있다. 국정 농단 청문회에서 노승일 씨는 최순실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폭로하여 '국정 농단'의 전말을 밝히는데 앞장선 '공익 제보자'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우리 사회 '갑질'의 대명사가 된 '땅콩 회항', 그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낸 대한항공 사무장 박창진이 있다. 2014년 12월 많은 승객을 실은 대한항공 086편이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vip였던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지시로 이륙 도중 회항 박창진 사무장을 내리게 하였다. 기내 마카다미아 서비스 메뉴얼에 대한 조현아 전 부사장의 오해와 이에 대한 박창진 사무장의 설명에 대한 분노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사건 초기 사측의 압박과 회유로 거짓 진술을 강요 받았으나 박창진 사무장이 방송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폭로,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든 '땅콩 갑질 사건'의 분수령이 되었다. 

 

   

 


5월 31일 <거리의 만찬>에서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희미해져 가는 그 사건의 주인공들, 당시 공익 제보를 했던 두 주인공 노승일 씨와 박창진씨를 초대했다. 과연 왜 그들은 공익 제보자가 되었으며, 그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본인들이 아니고서는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해주기 위해서이다.

2001년 줄리아 로버츠에게 골든 글로브 여우 주연상을 안겨준 <에린 브로코비치 (2000)>는 중금속을 배출하는 대기업을 상대로 한 한 여성이 끈질긴 소송 끝에 승리를 쟁취하는 내용을 담았다. 영화 속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던 여성은 결국 지역 사람들을 지지를 얻어내 대기업을 굴복시켰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에린 브로코비치' 공익 제보자들의 현실은 어떨까? 그 주인공인 노승일 씨와 박창진 씨는 지금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들은 왜 '공익 제보자'가 되었나?
배드민턴 선수 특기자로 대학에 간 노승일 씨는 이후 증권맨으로 1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최순실 씨를 만나 함께 일을 했지만 첫 번째 해고를 당하고, 다시 최순실의 부름을 받아 독일로 가 삼성과 최순실의 딸 정유라 사이의 커넥션의 목격자가 된 그는 '승마 공주 사건'이 벌어지자  다시 또 일방적인 해고를 당하는 처지를 겪었다.

그가 일방적 해고에 부응하지 않자 모든 지원을 끊고 곰팡이 핀 마늘쫑에 간장에 소면을 말아 먹으며 독일 밭에 남겨진 감자를 주워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던 시절을 견디며 그는 자신이 목격했던 자료를 메모리카드에 넣어 신발 밑창에 넣어 귀국했다. 매일 밤 말 관리사가 없는 시간을 틈타 자료를 스캔하고 스캔한 자료를 태우는 과정에서 불길로 인해 주민의 신고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전혀 신변의 보장이 되지 않는 환경을 견디느라 늘 주변에 칼을 두고서야 잠을 청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자료를 모으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국정 농단 청문회에서 그가 지켜보고 목격했던 모든 것을 그 자료와 함께 만천하에 '폭로'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공익 제보'가 '복수'가 아니라 못박는다. 비록 일방적인 해고를 두 번이나 당했지만 '신의'를 강조했던 최순실 개인에게는 미안하다는 노승일, '사람'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이 가장 무섭다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 '공익'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에 박창진 사무장은 자신의 공익 제보는 '생존'의 문제였다고 말한다. 2005년 입사 3년차에 사무장으로 급속 승진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2010년 팀장이 되어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vip들을 모시고 운항을 했으며, 그 중에서도 kip, 즉 대한항공의  vip들을 지속적으로 모셔왔던 장본인이었다.  심지어 안주인 이명희씨 꽃놀이를 위한 비행까지 동승했던 경험자로, 그런 vip들의 탑승이 예정될 시 한달 전 부터 마치 연기자들이 연기 연습을 하듯 메뉴얼을 습득해왔다는 박창진 사무장, 당연히 그날의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제공한 건 '알레르기' 환자에 대응한 새로운 메뉴얼에 따른 정당한 응대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조현아 전 부사장은 '야, 이새끼가 어따대고 말대꾸야, 당장 비행기 세워'라는 강압적 지시를 내린 후 그를 홀로 겨울의 미국 공항에 내려두고 떠났다. 그리고 잇따른 질책과 회유, 언론은 집요하게 취재를 했지만 상황의 전개는 진실과는 다르게 전개되어 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참고인 진술로 검찰에 출두했지만 심지어 조사실 안에 대한항공 관계자가 있는 상태에서 마치 자신이 가해자인듯 사건을 왜곡시키는 방향으로 조사가 진행되어 가는 상황에서 동앗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가 인권 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 마저도 '민간 업체가 관여할 수 없다'라는 회신을 받고 '열 수 있는 문이 없어' '나는 죽을 수 밖에 없구나'라는 상황에서 tv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라 토로한다. 

 

 

제보 이후, 여전히 어깨에 얹혀진 내부 고발자의 무게 
그렇게 자신을 던져 공익을 제보했던 노승일과 박창진 사무장, 그 후 그들은 사회적으로 '보상'을 받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노승일 씨는 서울을 떠났다. 검찰 조사만 6개월 등 서초동, 강남에서 계속 이어진 조사, 조사, 그리고 '내부 고발자'였던 그,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또 그럴 것이라는 낙인이 서울에서 새로운 삶을 꿈 꿀 수 없도록 만들었다. 광주 지인에게 돈을 빌리고자 내려간 곳에서 만난 폐가, 있는 돈, 없는 돈에 대출까지 받아 새로이 건물을 지어 무엇이라도 해볼까 했는데 그만 불이 나고 말았다. 그의 어려운 상황이 전해지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후원을 해주셨지만 그 돈으로 자신의 집 대신 불이난 옆집 할머니 집을 세워드렸다는 그, 지금은 광주에서 자신이 그간 하던 일과 무관하게 삼겹살 집을 운영 중이다. 

박창진 사무장은 사무장 대신 지부장이란 직함을 얻었다. 하지만 사무장을 잃은 대가는 너무 혹독했다. 신상 털기부터 시작하여, 그를 향한 악의적인 가짜 뉴스와 루머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사람들은 가짜인 줄 알면서도 그게 대세가 되면 동조하는 세태, 사내 게시판은 역으로 그가 갑질을 했다부터 줄줄이 악성 댓글로 도배되기가 십상이란다.

아마도 <거리의 만찬> 출연 이후에도 그럴 거라고 자조적으로 웃는 박창진 사무장, 불면증에 시달리고 수차례의 휴가와 병가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복직 후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에 큰 양성 종양을 수술하게 되었고, 그 후유증으로 측만증 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 그보다 더 마음이 아픈 건 같이 일한 팀원들이 자신의 감시자로 돌변하여 등을 돌린 현실, 다행히 직원 연대 노동 조합이 결성되어 지부장으로 자신의 싸움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당연히 또 '공익 제보자'가 될 거라며, 대신 '코트'는 바꿔 입고 나가겠다며 넉살 좋은 웃음을 보이던 노승일 씨 하지만 자신의 고단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그의 눈엔 눈물이 고인다. 하지만 노승일 씨도, 박창진 씨도 언론 등에 인터뷰를 하면 혹시 또 다른 자신과 같은 '공익 제보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밝게 웃고 힘있게 이야기 하려 한다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인다. 


 

 
<거리의 만찬>은 이제는 가물가물해져 가는 사회적 사건의 두 공익 제보자를 초대해 그들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그 사건을 환기한다. 그리고 두 공익 제보자의 여전히 무거운 현실의 걸음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짚어본다. 

2015년 2월 12일 조현아는 항공 안전을 위반한 혐의로 1년 징역 형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항로 변경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집행 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법원 상고심 역시 같은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017년 '항로 변경죄'에 대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반면 박창진 사무장과 마카다미아를 제공했던 승무원은 미국 뉴욕 주 법원에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각하되었다.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우리 사회에 '갑질'에 대한 사회적 환기를 시켰던 계기가 되었던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그 '사회적 책무'의 대가를 여전히 무겁게 짊어지고 가고 있다. 

by meditator 2019. 6. 1. 06:16
|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