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이하 조장풍)>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경구가 있을까? 김이영 작가의 <해치>, <38사기동대>의 한정훈 작가의 <국민 여러분>이 이미 터를 잡고 있는 가운데 후발 주자로 첫 발을 내딛은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의 앞날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기에 첫 방 4.3% 동시간대 3위라는 결과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 것처럼 여겨졌다. 

 

 

더구나 영화 <신과 함께>,  ocn의 <손 the guest>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보였지만 단독 주연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건 처음이었던 김동욱,  거기에 tv 드라마에서는 생소한 '근로 감독관'이라는 직업과 환경이라는 소재, 2014년 mbc 극본 공모 당선작이었던 <앵그리맘>을 통해 신선한 이야기를 선보였지만 시청률의 혜택은 얻지 못했던 김반디 작가의 두번째 작품, 그리고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는 mbc 드라마의 상황 등이 겹쳐져 <특별 근로 감독관>에 대한 기대치는 높기보다는 우려가 앞선 상황이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하지만 그런 우려는 이미 첫 주를 지나 두번 째 주에 이르러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지난 5월 14일에는 자체 최고 시청률 8.75를 찍으며 첫 방의 두 배에 넘는 성과를 거두며 '창대한' 성공을 예고했다. 

그렇다면 이런 첫 방의 두 배에 넘는 성취의 이유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무엇보다 전직 유도선수, 한때 고등학교 선생님, 그러나 지금은 '복지부동'의 근로 감독관으로 애써 노력하고 있지만 예의 '정의로운 기질'을 숨기지 못해 '근로 감독관'이라는 직분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조진갑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시청자들에게 선사한 '적폐 청산'의 카타르시스가 크다. 그리고 이는 <조장풍>에 앞서 sbs의 첫 금토 드라마였던 <열혈 사제>의 신드롬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여전히 답답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막힌 속을 확 뚤어주었던 다혈질 사제 김해일과 조력자들의 화끈한 한 판 승을 이제 근로 감독관 조진갑과 그의 '갑벤져스 동지'들이 받아낸 것이다. 

 

 

두 드라마의 구도는 비슷하다. 정의로운 주인공 김해일과 조장풍, 그가 '독고다이'처럼 부조리한 사회에 홀로 독야청청 도전하며 드라마는 시작된다. 그리고 회를 거듭하며 <조장풍>의 엔딩에 나왔던 그림자들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며 조력자들이 늘어난다. 김해일의 곁에 구대영 형사가, 박경선 검사가, 외노자 쏭삭이 한 편이 되어가며 불가능해 보였던 구담구의 카르텔이 궤멸되어가듯 , 조장풍이 홀로 자신의 맷집으로 덤벼들었던 구원시의 상도 여객 임금 체불 문제로 부터 시작된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티에스 하청 문제', 그리고 거기서 명성 그룹 비리, 나아가 장래 대통령까지 넘보는 도지사 양인태(전국환 분)의 선강 그 실체를 밝히며 결국 '도지사 당선 무효'를 이끄는 쾌거를 이루어 낸다. 

각본, 연출, 연기의 삼 박자 
전작 <앵그리맘>에서 사회적 문제를 드라마적 장치로 설득해 내는데 장기를 보인 김반디 작가는 '소포모어 징크스'는 커녕 전작에 비해 업그레이드된 필력으로 돌아왔으며 때론 코믹한 만화처럼 때론 거친 액션 영화처럼 박원국 연출이 장르물의 강약을 절묘하게 살려냈다. 특히 실화라서 더 마음이 아팠던 단돈 3000원 때문에 해고된 버스 운전사의 부당 해고 사건에서 부터, 티에스 명성의 부당 하도급 계약, 명성 최서라와 그의 아들 티에스 사장의 온갖 불법과 탈법을 일삼던 갑질에,  '선강은 누구의 것입니까?'에서도 대번에 연상되듯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사건에 이르기까지 <조장풍>은 매 회 우리가 현실에서 목도했던 '실화'를 근로 감독관 조장풍이 마주한 현실의 '날실'로 촘촘하게 엮어놓고, 거기에 정의로운 조장풍과 그의 제자들, 동료들의 '선한 의지'로 그 '난관'을 집요하고 타파하여 결국은 통쾌한 승리에 이르는 과정을 매주 선사함으로써 답답한 세상의 카타르시스를 한껏 선사했다. 

이런 카타르시스의 정점에서 활약을 보인 건 무엇보다 배우들이었다. <신과 함께>, <손 the guest>를 통해 연기 잘하는 배우였지만 작품 운이 따라주지 못했던 김동욱에게 <조장풍>은 날개를 달아주었다. 몸무게를 불려 전직 유도선수로서의 무게감을 한껏 실어 일당 백의 근로 감독관 조장풍의 캐릭터를 살려낸 김동욱은 캐릭터의 외면만이 아니라, '민원인'들에게는 한없이 마음 여린 공무원이지만, 부조리한 세력들 앞에서는 눈 하나 끔쩍하지 않는 배포를 지닌 '정의의 히어로'로서의 면모를 한껏 살려내며 '원톱' 주인공으로서의 존재감을 뽐냈다. 

 

 

이런 김동욱과 함께, 중견 송옥숙 씨와 전국환 씨가 악의 축으로, 거기에 명불허전  <신의 퀴즈>의 류덕환과 오대환이 악의 수레바퀴를 이끄는 견인차로서 자기 몫을 톡톡히 해냈고, 거기에 티에스 사장 이상이, 갑을 기획 사장 김경남에 후배 근로 감독관 강서준, 갑을 기획 직원 유수빈, 김시은 등의 신선한 얼굴들이 물만난듯 뛰어놀았다. 

이렇듯 <조장풍>은 드라마의 시작에서 '부담'이 되었던 그 모든 것들을 '성공'의 요소로 이끌어 내며 새로운 소재와 이야기, 거기에 신선한 얼굴들의 열연, 맛깔나는 연출까지 삼 박자가 제대로 호흡을 맞추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이야기를 멋들어 지게 해냈다. 

by meditator 2019. 5. 29. 05:42

이제는 멸망하고 없는 행성 크립톤에서 아기가 지구로 보내졌다. 스몰빌에 도착한 외계인 아기는 마사와 조나단 부부의 품에서 클라크 켄트가 되어 성장한다. 성장하며 인간들과 다른 자신의 숨겨진 힘을 깨닫게 된 클라크는 지구의 '보이스카우스'가 되어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지구를 괴롭히는 악당을 잡은 건 물론, 지진, 폭풍, 비행기 사고 등 각종 재난 재해에서 인명을 구하는데 앞장서고, 심지어 나무 위에 올라간 고양이까지 구할 정도로 따스하고 성실한 히어로로 오랫동안 사랑받는다. 바로 슈퍼 히어로의 대명사 '슈퍼맨'의 이야기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외계에서 온 정의로운 슈퍼 히어로의 탄생이다. 인간형 에어리언이라면 이렇게 '인간 친화'적이며, 마땅히 '인간 세상'의 도덕을 스스로 내재화함은 물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슈퍼 히어로로서 자신을 보호해주고 키워준 지구에 '은혜'을 갚기 위해서라도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지구를 수호하는데 자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기대하는 바이다. 

 

 

외계인에 대한 편견 아닌 편견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게 한 끗 차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은 에어리언, 외계인들은 그동안 어떠했나, 1979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어리언>이래 <인디펜던스 데이>, <화성침공>, <우주전쟁>, 실체가 드러나지 않거나, 기괴하게 생긴 외계인들이 호시탐탐 지구를 노려왔던가 말이다. 우리 안의 '타자'에 대하 배타적인 상상력으로 품어낸 외계인 침공 영화는 손가락으로 꼽기가 힘들 정도다. 가장 최근으로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다른 외계에서 온 '타노스'는 손가락을 튕겨, 지구는 물론 우주 절반, 나아가 전체를 재조정하려 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모습을 한 외계인이 당연히 인간 친화적이며, 심지어 그의 슈퍼 히어로적인 힘이 '친인간적'이며 심지어 '초도덕(super-ethics)'일 것이라는 우리의 편견은 흡사 예수에 대한 문명적 시각의 변화와도 일맥 상통한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예수가 대륙을 가로질러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가자 가장 유러피안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되듯이, 그간 '인간의 모습', 그 중에서도 백인의 푸른 눈을 가진 에어리언에 대한 '호의적' 편견 아닌 편견에 대해 현상금 사냥꾼들이 히어로로 거듭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제작진이 이이를 제기한다. 

<슈퍼맨>의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찾아온 외계의 소년이 영웅이 된다'라는 전제를 뒤튼 <더 보이>, 시작은 역시나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찾아온 외계인의 아기이다. 그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들에게 '아기'를 달라며 소망했던 부부, 한밤중 그들 농장에 외계의 물체가 떨어지고 그곳에는 아기가 있었다. 당연히 '하늘'이 자신들에게 내려준 선물이라 생각한 부부는 여느 부모처럼 아이를 키웠다. 

하지만 12살의 생일을 맞이한, 이제 청소년기에 들어선 브랜든에게 뜻모를 환청이 시작되고 평범하고 똑똑한 소년이었던 브랜든(잭, A, 던)게 변화가 시작된다. 그저 아기였던 시절 여느 아기들은 몇 번이나 다쳤던 것과 달리 다치지도 베이지도 않고 '기특'하게 자랐던 브랜든은 그런 수준을 넘어 창문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건 물론, 잔디밭 깍는 기계를 저 멀리 던져버리고 그 돌아가는 칼같은 날을 대번에 구부려버리는, 말 그대로 포크도 씹어먹는 강철같은 소년이 되어간다. 심지어 눈에서 '레이저 광선'도 쏜다. 

 

 

사이코패스 외계인 브랜든 
슈퍼맨이었으면 축복이자 행운이 되었을 이런 '수퍼 히어로'의 능력이 하지만, '인간의 도덕'을 내재화하지 못한 브랜든에게는, 아니 브랜든 주변 사람들과 브라이트번 마을에는 '재앙'이 된다. 

너가 어떻든 내 아기라 하며 키웠지만 인간의 아이가 될 수 없었던 외계인 브랜든, 이는 마치 뇌의 이상으로 도덕심이나 사회적 자각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처럼, 자신보다 한참 낮은 능력을 가진 부모와 주변 사람들, 동물들에 대해 감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일찌기 맹자께서 인간의 선의 발원을 우물가로 기어가는 아기를 차마 두고보지 못하는 '측은지심'에서 찾으신 그것처럼, 브랜든은 바로 그런 '선의'가 부재한 외계인이었다. 파란 눈의 흰 피부, 딴 짓을 해도 선생님 물음에는 꿀떡처럼 정답, 그 이상을 대답하는 똑똑한 소년이지만,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보기 위해 기르던 닭들을 무참히 죽이고, 끌리는 소녀에게 호감을 보이는 방식이란게 스토커와 다르지 않고, 그런 마음이 적의로 받아들여지자 잔인하게 소녀와 소녀의 어머니에게 보복을 가하는 '탈도덕'적인 행태를 보인다. 

이런 '비인간적 외계인 브랜든'이 드러나는 시기가 '청소년기'라는 점도 절묘하다. 이른바 우리나라에섣 '중2병'이라는 용어가 있듯이 브랜든의 '탈도덕적이며 비인간적인 행태'은 어른들이 보기에는 또래의 반항처럼 해석될 여지를 제공한다. 이제 '머리'가 좀 커서 어른들의 말씀에 수긍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더구나 '말썽'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하는 소년의 반항기는 외계 소년의 잔인한 능력과 결부되어 이모부를 잔인한 죽음에 이르게 하고, 뒤늦게 밝혀진 출생의 비밀에 대한 반항은 사이코패스가 되어버린 아들을 뒤늦게 책임지려한 인간 부몽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으로 마무리된다. 말이야 '거짓말'이었지만, 부모의 착한 거짓말과 거짓말을, 어른들의 우려섞인 걱정과 꾸중을 청소년기의 어른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와 혼돈하는 사춘기의 외계인의 아노미적 혼돈은 이제서야 체득된 그의 무한한 능력과 맞물리며 브랜든 주변은 물론 남부의 평화로운 마을 브라이트번을 재앙에 빠뜨린다. 

 

 

외계에서 온 파란 눈의 흰 얼굴을 한 아이가 우리가 생각했던 그 '착한 아이'가 아니라면? 이라는 질문으로 부터 시작된 영화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신이 전제한 명제에 맞춰 '공포'의 서사로 직진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아이', ' 내 사랑'이라던 부모의 아낌없는 사랑은 되돌릴길 없는 처참한 대가를 치루고야 만다. 그렇게 <더 보이>는 그간 우리가 의지해 왔던 '슈퍼맨'의 서사가 사실은 얼마나 안이한 '편견 아닌 편견'으로 부터 비롯되었든가를 묻는다. <더 보이>의 공포는 중2병 사이코패스 외계 소년이 벌이는 잔혹한 피의 살육도 살육이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의지해 왔던 사랑과 도덕의 선입관들을 한 점도 남기지 않도 도려내어 버리는 서사의 군더더기없음에서 비롯되는바가 더 클 것이다. 과연 이 '재앙'의 소년을 지구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 해결은 '속편'에 기대해 볼 수 밖에. 

by meditator 2019. 5. 27. 15:13

커피 시장 규모 11조원, 1년간 한 사람이 소비하는 평균 커피가 512잔, 대만의 72잔, 일본의 195잔을 훨씬 앞질렀다. 20대만 놓고 보면 571잔으로, 미국의 548잔보다 앞섰다. '커피 홀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현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커피에 빠져살까? 그 이유를 '자칭 타칭 커피 중독자' 피디가 발품을 팔아 그 원인을 찾아본다. 

 

 

생존의 각성제 
김포 공항 화물청사 트럭 운전사인 박지용씨는 밤샘 운전으로 화물을 나르는 '잠을 잊은 그대'이다. 그리고 '잠을 잊기 위'한 가장 필수템은 다름아닌 '커피'이다. 그의 트럭 한 켠 아이스박스 안에 집에서 타온 블랙 커피와 함께 캔 커피가 즐비히다. 주행중에 마땅히 차를 대고 살 곳이 마땅치 않아 언제나 '비상 식량'처럼 준비해 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비상 식량' 커피에 더해 휴게소에서 식사 후 달달한 믹스 커피는 결코 빠질 수 없는 옵션이다. 

그는 왜 그렇게 수시로 커피를 마실까? 밤을 세워 속도를 내서 고속도로를 달려 빠른 시간 안에 화물을 날라야 하는 그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건 바로 '졸음 운전'이다. 졸음이 오면 정신이 몽롱해 질 뿐만 아니라, 반응 속도가 느려 자칫 대형 사고의 위험을 낳는다는 건 굳이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다. 장거리 밤샘 운전이 곧 수입과도 연결되는 그의 직업적 특성이 '커피'로 이어진 시간을 만든다. 

 

 

트럭 운전사 박지용씨 만이 아니다. 야구 학원 강사를 하면서 학생들 차로 이동시키는 일도 맡아서 하는 김태완씨 역시 '커피에 중독된 남자'이다. 하루의 시작을 여는 커피, 그래야 비로소 몸과 마음이 깨어나는 거 같다는 김태완씨의 경우 하루 종일 커피를 달고 산다. 배우가 꿈이었지만 생활을 위해 시작했던 야구 강사, 어린 학생들을 차에 태워야 하는 상황, 거기에 계속된 훈련이 그에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고 이를 위해 그는 습관처럼 커피를 들이킨다. 제작진의 실험 요구에  커피를 끊어보니 마치 잠이 깨지 않은 듯 하루 종일 몸이 무겁고 나른한 상태임을 호소한다. 

커피를 왜 마시는가란 이유를 조사한 통계를 보면, 33%가 졸음을 쫓기 위해, 25%가 식후, 12%가 업무 집중을 위해 라는 결과에서도 나타나듯이 우리나라 사람들 상당수가 '각성제'로서 커피를 선택하고 있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커피, 커피의 전세계적 확산에는 바로 이 '각성제'로서의 역할이 컸다. 예멘을 통해 메카로 전파된 커피, 예배를 드릴 때 졸음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각광받으며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북군에 잠을 쫓기 위한 수단으로 커피가 대량 공급되었고, 소총의 밑동에 그라인더가 달려 졸리면 갈아서 먹는 '잠을 쫓는 특효약'이 되었다. 

특히 1946년 인스턴트 커피 등장 이후 1,2차 세계 대전에서 커피는 군 필수품이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시간 반복 노동에 있어 커피의 카페인은 잠을 깨는 '각성제'로서 전세계적인 대중적 음료가 되었다. 

일찌기 고종이 커피를 애용하였다 했지만 해방 후 미군을 통해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커피는 1960년대 '산업화'와 함께 수면 시간을 줄이고 노동에 집중하기 위한 '각성 효과'에 더한 에너지원으로서 산업 현장의 필수 품목이 되었다. 특히 '인스턴트 커피'의 등장은 전문가가 타주는 커피에서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커피로 '커피의 개별화, 대중화'를 선도하여, 커피 문화의 평등화를 이루었다. 

 

 

 

 


문화가 된 커피 
시작은 '각성제'였지만 어느덧 커피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문화'가 되고 있다. 믹스 3개, 거기에 설탕 두 스픈, 피디가 마셔보니 달아도 너무 단 커피, 하지만 충북 음성 맹동면 통통리 주민들에게 이건 고단한 농사일을 이겨내게 해주었던 '꿀맛'이었다. 심지어 처음 커피가 등장했을 때 그 쓴맛때문에 회충약 대신 먹기도 했다고. 그랬던 커피가 이젠 마을 사랑방의 없어서는 안될 단골 메뉴가 되었다. 

통통리 손현수 이장님,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이 된 농약사에 들러 커피 한 잔, 어디 본인 뿐인가, 들른 김에 동네 이 형님, 저 형님 불러서 그 분들 오실 때마다 같이 한 잔, 조합 들러서 한 잔, 노인정 들러서 한 잔, 농사일하다 새참으로 한 잔, 그렇게 하루 7~8잔의 커피를 그는 '정'이라 정의한다. 

전주 한옥 마을에 아직도 생존해 있는 1952년 개업한 '삼양 다방', 그곳은 '다방' 역사의 산증인이다. 쓴 커피를 아침에 마시면 속을 버릴까봐 계란 노른자가 함께 제공되던 '모닝 커피'의 시절, 다방은 문화의 공간이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연락처'가 되었고, 그곳에서 '선'도 보고, '사업'도 하던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인스턴트 커피'의 시절을 지나 '90년대 한미 FTA의 여파로 원두 수입이 증가하고 스타벅스 등이 등장하면서 '다방'은 이제 '까페'로 그 바톤을 터치했고, take out 열풍에, 조용한 도서관보다, 너무 편한 집보다도 까페에서 공부가 잘 된다는 '카공족'에, 도시인이 즐겨찾는 나들이 명소로 우리 시대 '까페'는 자리매김된다. 

 

 

심지어 커피는 '사회 생활'의 도구가 된다. 인터넷 방송국을 친구들과 함께 운영하는 최승구씨, 다른 사람과 달리 커피를 많이 마시면 심장이 두근대고 잠을 이루지 못해 웬만하면 커피를 마시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마치 통통리 이장님이 동네 사람들 만날 때마다 커피 한 잔 하듯,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끼리 만나면 '아메리카노 한잔'이기에 '커피'를 굳이 마시지 않는 최승구 씨의 사회 생활은 매번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 직장인들의 30% 이상ㅇ 점심 식사 후 함께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일상인 세상에서 사업차  '억지로' 마시는 경우까지 생긴다고 한다. 

괜찮은 커피 전문점이 하나 생기면 몇 년 안에 반경 50m 안에 전문점이 60개로 늘어날 정도로 이미 소비량이 공급량을 초과한 현실, 최근 오픈한 '스페셔티 커피' 매장에 사람들이 하루 종일 장사진을 이루는 것처럼 커피는 이제 '놀이'가 되어간다. 2007년 3조원에서 10년만인 2017년 11.7조원으로 늘어난 시장, 사회적으로 다양한 문화 활동이 늘어났다고는 여전히 성인들 여가 활동의 72%가 tv 시청인 사회, 그러기에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서 '까페'는 우리 시대 중요한 문화의 사랑방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젊은이들의 경우 국산차의 가격이 내려가도 취향을 바꾸지 않겠다고 하듯'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홀릭'은 당분간 계속될 예정이다. 

by meditator 2019. 5. 24. 15:03

한때는 시청률 20%가 웃도는 kbs2의 효자 프로그램이었다. 아니 대한민국 코미디를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1000회 특집으로 시청률이 그 전회보다 많이 올랐다고, 그런데 그게 6%에서 8%인 처지의 '위기의 프로그램'이 되었다. 과연, 내년에도 우리가 개그 콘서트를 볼 수 있을까?

 

 

1999년 9월 4일 토요일 밤 8시 55분 1000 회를 맞이한 <개그 콘서트>,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당시만 해도 대학로에서 화제가 되었던 개그맨들의 공개 코미디,  말 그대로 개그 콘서트를 그대로 tv 무대에 올리는 방식이었다. 김미화, 백재현, 김영철, 심현섭, 김대희, 김준호 등이 외계인 같은 단체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 코너를 바꿔 등장하는 식의 풋풋한 아마츄어리즘이 그대로 살아있는 무대였다. 그리고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고, 세기가 바뀌어 1000회, 그 조촐했던 무대는 화려한 kbs 공개홀의 이동 무대가 되었고, 이제는 흰 머리가 된 이태선 밴드의 신나는 음악을 배경으로 이제는 역사가 된 다수의 개그맨들이 무대에 올랐다. 

추억 소환, 1000회 
예전에 개그 콘서트에서 그랬듯 시작은 김대희를 비롯한 개그맨들의 시원하고 화끈한 난타 공연으로 열었다. 한 팀이 아니라, 연배에 따라 선배들이, 후배들이, 그리고 선배와 후배들이 함께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노력이 한 눈에 느껴지는 오프닝 무대를 이어받은 건 '안돼!', '고뤠~' 등의 유행어로 화제가 되었던 김원효, 김준현, 송병철의 '비상 대책 위원회' 김원효, 김준현이 비오듯 땀을 흘리며 2011년 당시 화제가 되었던 유행어에 살신성인 '화사'코스튬, 그리고 깜짝 등장한 '수다맨' 강성범의 숨쉴틈없는 '지하철 노선도'까지 덧붙이여 '추억'을 소환한다. 

 

 

그렇게 1000 회를 맞이한 개그 콘서트는 윤형빈의 돌아온 왕비호에, 더 섬뜩해진 갸루상 박성호 등의 <봉숭아 학당>을 비롯하여, 안영미, 정경미, 강유미 등의<분장실의 강선생님>, 우리에게는 '안어벙'이란 말이 더 익숙한 안상태, 김진철의 <깜빡 홈쇼핑>, 자리를 비운 김준호 대신 김대희가 그 자리에 앉아서 더 씁쓸했던 김대희, 유상무, 이승윤 등의 <씁쓸한 인생>, 후배들이 애를 써봤지만 명불허전 박준형, 정종철, 오지헌의 <사랑의 가족>등  그동안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코너와 그 시절의 개그맨들을 소환했다. 

오랜만에 만난 안상태가 그 시절과 같은 대사를 읊는 김진철에게 '많이 늙었군요'라고 덧붙이듯 그 시절 무대를 펄펄 날던 개그맨들은 이젠 예전같지 않았다. 김준현의 군복은 정말 터질 것 같았고, 땀은 거의 폭포 수준이었다. 새로이 여의도에 뚫린 9호선이 그 시절엔 없었다며 애교스럽데 피해가는 강성범의 지하철 노선도가 흥겹기 보다는 '그의 심장'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이미자 씨의 동백 아가씨를 들으면 그 시절 그 노래를 즐겨 들었던 적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해지듯, 그 시절 내가 그 코너를 좋아했던지, 좋아하지 않았던지 상관없이 추억으로 소환된 옛 코너들은 그것만으로도 보는 사람들을 정겨운 웃음을 짓게 만든다. '개그 콘서트여, 영원하라'를 외치는 박준형의 눈에 반짝이는 물기를 보는 것만으로 먹먹해진다.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짐을 따라/ 그대 사랑하는 마음이 희미해진다면/ 여기 적힌 먹빛이 사라지는 날/ 나 그대를 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1000 회 개그 콘서트 특집을 보는데 워즈워드의 이 시가 떠올랐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이 시가 등장했던 청춘 영화 <초원의 빛>이 떠올랐다. 돌아올 수 없는 빛의 시간, 아마도 1000회 특집 <개그 콘서트>에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가 아닐까 싶다. 

 

 

희미해져가는 영광의 빛
안타깝게도 1000회 특집엔 현재가 너무도 희미했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개그 콘서트>의 코너 <그만했으면회>가 DJ DOC까지 등장시키며 안간힘을 썼지만, 도대체 DJ DOC말고 코너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주인공이 등장하고 연이어 벌어지는 상황이 주인공을 점점 더 난처하게 만드는 상황이 '개그 콘서트'의 대표적인 개그 코너의 한 표본이지만, 감옥에 갇힌 주인공도, 연달아 면회를 주선하는 교도관도, 면회오는 인물들도 이렇다하게 시선을 끄는 상황이 없다. 애초에 면회가 연이어서 할 수 없는 상황을 어거지로 이어붙여 해프닝을 만드는 이런 식의 코너, 거기에 출연자들의 연기나 애드립조차 뒷받침되지 못하는 이런 코너가 그나마 지금 방영되고 있는 <개그 콘서트>의 대표적 코너로 1000 회 특집에 한 자리를 차지 했다는 것만으로도 '위기'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최근 1000 회를 맞이하여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그 콘서트의 위기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이 제시됐었다. '못생긴 걸 못생겼다고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개콘 피디의 언급 이후로 외려 여론이 악화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KBS2 <6자 회담>에서도 장동민 등 역시 공개 코미디의 소재 제한 등을 언급했다. 

일찌기 마당 놀이 역시 '양반'과 '종교인'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것으로 '해학'의 소재를 만들었듯이, 세상에 젤 쉽게 사람들의 경계를 푸는 것 중에 하나가 '남의 흉'을 보는 것이다. 더구나 그 대상이 그 누구라도 공감할 '만만한 대상'이라면, 지난 시절 <개그 콘서트>의 호황과 지금의 한계에 대해 토로하는 지점은 그 바로 '쉽게 웃길 수 있었던 화양연화'와 같던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다. 시대가 바뀌고, 트렌드가 바뀌었다면 그 새로운 시대에 맞춰 변화할 수 없다면, 결국 '흐려지는 먹빛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순리이다. 

 

 

1000회 특집으로 등장했던 안영미, 강유미 등의 <분장실의 강선생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코너였다. '이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래도 '여자'인 개그맨들이 과감하게 자신의 얼굴과 온몸에 '페인팅'과 분장'을 하며 적극적으로 웃음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시대가 오기 전에 이미 '여성의 자기 주도적 개그'로서 한 획을 그은 코너였다. 그런가 하면, 못생겼는데 못생겼다고 말 할수 없다의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했던 <사랑의 가족>은, 못생겼다는 '사실'의 자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걸 넘은 당당함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았다. 돌아온 왕비호가 '축구도 난리다 세계 무대에서 어찌 그리 주눅들지 않고 잘하는 지 모르겠어', '박항서'라는 그 '촌철살인'이 과연 지금의 <개그 콘서트>에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아야 하는 시간이다. 결국 그간 <개그 콘서트>의 코너들이 사랑받았던 것은 '시대'의 트렌드를 읽고 그걸 한 발 앞서 발빠르게 '개그'로 승화시켰던 시대 해석의 결과물이었다.  <개그 콘서트>의 존립을 걱정하기에 앞서, 과연 그 '정신'을 살리고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이는 1000 회의 특집, 가장 많이 출연했던 김준호의 부재와 함께, 이제 1000 회 특집에서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개그맨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젊은 후배 개그 스타들의 부재도 뼈아프다. 짧은 출연이었지만 발군의 존재감을 떨친 <시청률의 제왕>의 조재윤과 전수경의 연기력은 타 개그맨들에게 고민해 볼 숙제를 남긴다. 1000 획 특집 그 무엇보다 선배와 후배, 과거와 현재가 함께 어우러져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할 시간, '과거'의 영광에 기댄 1000 회는 그래서 희미해져가는 영광의 빛을 보는 것처럼 안쓰럽다. 

by meditator 2019. 5. 20. 14:26

지난 2018년 10월 16일 보훈처의 국정 감사 자리, 더불어 민주당 고용진 의원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바 있는 독립 운동가 김태원에 대한 서훈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벽창 의용단을 조직하여 일경 4명을 사살하고 군자금 모집에 앞장섰던 독립 영웅 김태원 선생, 하지만 알고보니 김태원 선생은 동명이인이었다.

 

 

현재 서훈을 받은 사람은 대전의 김태원, 그러나 자료를 조사해 보니 벽창 의용단의 김태원 선생은 평북 의주 출생으로 1926년에 사형을 당하셨던 것이다. 어떻게 돌아가신 분이 1963년에 서훈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이렇게 눈뜨고 코베이는 것 같은 일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서훈 과정에서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꾸준히 이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적폐'를 꾸준히 다루고 있는 ,다큐 시선>이 이번에는 거짓으로 서훈을 받고 독립운동가로 행세하는 건 물론, 비석까지 세워 진실을 호도하고 있는 이 땅의 '가짜 독립운동가'들을 찾았다. 

독립 운동가들께 수여되는 정부의 각종 훈장과 보상금들, 이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다. 하지만 그 '보답'이 왜곡되었다면? 

 

 
비석까지 번듯한 가짜들
고용진 의원이 제기한 가짜 김태원의 문제를 발견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보훈처이다. 매달 선정되는 이 달의 독립 운동가로 선정된 김태원 선생, 그런데 선생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던 중 보훈처는 선생의 기록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아들에게 소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들 측에서는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못했고, 결국 '서훈'이 취소되었다. 

그런데 이런 사례가 김태원 선생 한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임시 정부 경무 국장을 지내고 1919년 고종의 아들 의친왕 이강을 상해로 망명시키려 했던 대동단 사건의 주모자 중 한 분인 김용원 선생, 대전의 한 공원에 선생의 비석이 세워졌다 하여 찾아간 곳, 그런데 비석이 이상했다. 

분명 뒤에는 김용원 선생의 업적이 새겨져 있는데 , 정작 앞에는 이돈직이란 사람이 있는 것이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마치 이돈직의 비석이고, 뒤의 내용은 그 사람의 업적인가 하고 착각할 수 있는 상황, 더구나 김용원 선생의 업적 가운데 이돈직이 김용원 선생의 스승으로 독립 계몽 운동에 참여했다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 씌여있다. 심지어 의병 창의군이었다면 의병 독립운동가의 공적까지 슬쩍 옮겨 써놓았다.

이렇게 김용원 선생의 업적을 헷갈리게 써놓은 비석에 이어, 또 하나의 비석이 등장한다. 제목은 '기미 삼일 독립 기념비', 하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거의 역사적 근거가 없는 이돈직 개인의 치적비이다. 다큐 제작진이 문의하자 그때서야 당장 철거하겠다는 관할 구청.

 

 

가짜 독립운동가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현재 국가 보훈처가 추산하고 있는 가짜 독립 운동가는 39명,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장준하 선생의 아들 장호권 씨는 엉터리, 사이비 독립 운동가의 유래를 광복군에서 찾는다. 일본군에서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장준하 선생이 몸담았던 광복군 제 3지대는 실제 존재했던 부대, 하지만 일본군이었다가 해방 후 떠돌던 이들이 귀국하여 광복군입네 하며 '사이비' 노릇을 하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실제 약산 김원봉 수하의 광복군은 400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광복군으로 포상을 받은 사람은 700여 명에 이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해방 당시에 겨우 13,4 살이던 사람이 김구 선생 도장이 찍힌 종이를 들고 찾아와 김구 비서였다며 서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나이도 나이지만, 대놓고 김구 선생 도장을 들고 다닌다면 당장 잡혀 들어갔을 만큼 급박했던 일제 하,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서훈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들이다. 

앞서 이돈직이라는 가짜 독립 운동가의 아들은 내로라 하는 건설 업체 대표, 그리고 가짜 김태원의 아들 역시 전직 공직자였다. 60년대의 초보적이고 원시적인 행정 과정에서 브로커와 보훈처 직원의 커넥션 들이 빈번했고 그 과정에서 마치 돈으로 양반을 사서 행세를 하듯 그렇게 독립 유공자의 서훈을 돈으로 사는 일도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김태원의 경우 취소되기 전까지 보상금으로 받은 금액이 4억 5천만원, 그러나 이 돈은 환수되지 않았다. 국가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35조에 근거하여, 가짜가 밝혀진다 해도 취소와 보상금 반환 요구만 할 뿐 강력한 법적 조치가 없는 것도 이러한 '가짜'의 도발을 조장한다. 즉 설사 가짜로 밝혀져도 손해 볼 게 없다는 심리가 이런 풍조를 부추긴다. 

심지어 후손은 국가에서 서훈을 줘서 받은 건데 이제 와서 취소를 했다며 외려 보훈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물론 패소했다. 하지만 이에 불복 유족은 대법원까지 갔다. 최종 패소, 대전 공원에 세워진 비석 앞에는 철거 예정 안내문이 세워졌다. 하지만, 제작진이 찾아가보니 안내문은 사라지고 유족은 자신들이 찾아낸 자료라며 다시 한번 서훈 신청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2018년 국정 감사 과정에서 사이비 독립 운동가에 대한 질의를 받은 피우진 보훈처장은 '전수 조사'를 약속했다. 하지만, <다큐 시선> 제작진의 질문에 보훈처는 '조사할 계획'이며, '검증할 예정'이라는 모호한 답을 돌려주었다. 과연, 사이비 독립 운동가들은 밝혀질까? 

by meditator 2019. 5. 17. 15:04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란 스승의 노래가 무색해진 시대이다. '촌지'나, '선물'을 받으면 안된다고 스승의 날 아예 학교를 가지 않도록 하면서 부터였을까. 한편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직업인'으로 선생이란 직업이 '환영'받는 것과 달리, 초등학교에서조차 학생에 의한 선생님에 대한 폭언, 폭설, 심지어 성희롱 등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니 직업인으로서의 처우와 달리, 직업적 만족도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선생님이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되지 않는 시대, 그렇다면 이 시대 '선생님'의 자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마련된 ebs특집 다큐 <우리들의 선생님>은 '방황하는 교권'의 시대, 이 시대 스승의 자리를 생각해 본다. 

 

 
1. 괜찮아, 선생님이 있잖아
충남 천안시 동남구 동면, 주변에 보이는 거라곤 온통 논과 밭, 그곳에 전교생 60명의 대안학교 한마음 고등학교가 있다. 한 학급 20 명, 김재복 선생님의 역사 수업 시간, 선생님은 칠판 가득 필서를 하시며 열심히 설명하시는데 그 앞의 학생들 모습이 가관이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 열심히 핸드폰 삼매경에 빠진 학생, 제대로 수업을 듣는 학생이 없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누구에게도 야단을 치시지 않는다. 지적하지도 않는다. 한마음 고등학교의 흔한 수업 시간 풍경이다. 

한편 농업과 환경을 담당하시는 장정호 선생님의 오늘 수업은 도랑 정화 활동이다. 장화를 신고 도랑에서 쓰레기를 건져내는 선생님, 하지만 아이들은 태반이 구경할 뿐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낙관적이다. 지난 주에 2명이 선생님과 함께 했는데, 이번 주에는 무려 그 두 배인 4명이 참여했단다. 그리고  아마도 다음 주엔 더 많은 학생들이 함께 할 거라고.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장정호 선생님 전공은 국어, 하지만 이 학교로 온 후 선생님은 자청해서 당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그 어디든 달려가신다. 

그저 기다려주는 것만이 아니다. 학교에 안온 아이를 틈틈이 전화를 걸어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챙겨주고, 전 학교에서 왕따로 상처받았던 학생에게는 면박을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잘 잤니?,' '밥먹었니?' 하며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다가간다. 그래서일까, 마음을 닫았던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진다. 왕따로 상처받았던 아이가 말을 하고, 웃음을 짓기 시작하고 세상에 다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기존 정규 고등학교에서 적응을 못해서 온 학생들이 많은 한마음 고등학교, 두 선생님 김재복, 장정호 선생님이 온 이후로 아이들이 많이 달라져 간다. 자연 친화적 교육과 현장 교육을 중요시하는 학교의 모토에 따라 아이들은 스스로 농사도 짓고, 동물들을 키우기에 선생님들도 교산지 농분지 구분이 안되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상관이 없으시단다. 아이들이 딸기를 심고 싶다면, 달려가 모종을 사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선생님, 선생님은 말하신다. 이렇게 아이들과 약속을 지키는 그게 중요하다고. 덕분에 재 못생겼다며 친구들에게 구박받던 아이들은 농부의 꿈을 키우고, 눈밝은 식물과 가축들의 보호자가 되어가며,  부모의 이혼으로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던 아이가 이젠 자신보다 어려운 친구의 든든한 멘토로 거듭난다. 

 

 

2. 슈퍼맨 아빠와 9남매 
강원도 고성군 흘리 분교, 우리나라 최초로 스키장이 만들어 졌던 마을, 하지만 그 첫 번 째 스키장은 폐장되고 66년된 흘리 분교도 전교생 4명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제 무려 전교생이 9명에 선생님만 세 분, 그 이유는  3년전 흘리 분교로 전근온 슈퍼맨 이기도 선생님때문이다. 

흘리의 아침, 복도가 왁자지껄하다. 교실 앞 복도에서 롤러브레이드를 타며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들 그렇게 한바탕 놀고 난 아이들은 각자 저 마다의 교실로 들어간다. 이기도 선생님의 3학년 교실, 단 두 명의 학생들, 하지만 이기도 선생님은 선생님만 세 분, 주무관이 없는 이 학교의 모든 일의 시작이자, 끝이다. 

9명의 학생만 있는 산골 학교, 그래서 아홉 명의 산골 학교에서만 가능할 수 있는 그런 학교를 만들기 위해 선생님의 낮과 밤은 뜨겁다. 전교생이 1인 1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기저기 '자전저 품'을 판 선생님, 덕분에 막내의 킥보드까지 아이들은 저마다의 '자가용'을 타고 마을 탐방을 달린다.  철에 맞춰 감자 등을 심고, 교무실에서 부화시킨 병아리들이 뛰어 놀 수 있는 사육장을 아이들과 만들며 한껏 자연 친화적인 수업은 당연하고, 표현력은 풍부하지만 아직 한국어가 어눌한 은지를 위해서는 방과 후 수업은 물론, 조부모님과 함께 사는 은지네 집 가정 방문까지 일반 학교에서는 언감생심의 혜택들이 넘쳐난다. 눈이 오면 눈이 와서, 꽃이 피면 꽃이 피는 자연이 그대로 수업의 미션이 되는 학교가 되도록 '번아웃'이 되도록 달리는 선생님. 덕분에 흘리 분교가 좋아서 찾아든 학생들 덕분에 아홉 명의 식구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신입생 소식이 들리지 않아 걱정스런 선생님은 9명의 학생들과 3명의 선생님들이 총출동한 '흘리 분교 뮤직 비디오'에 기대를 건다. 아이들이 직접 노래 가사를 바꾸고, 콘티로 작성한 자연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흘리로 오세요'라는 뮤직 비디오를 통해 폐교 걱정없는 흘리 분교의 건강한 내일에 선생님의 열정이 담긴다. 

 

 

3. 뜨겁게 , 따뜻하게 
아이들이 수포자와 과포자가 되는 건 언제 쯤일까? 아마도 대략 중학교 시기가 아닐까? 급격하게 어려워지기 시작하는 수학과 과학들, 하지만 인천 부원중학교 송미정 선생님(51)의 과학 수업 시간에서는 이 '관례'가 통하지 않는다. 암석에 대해 배우는 수업 시간, 아이들이 어려운 건 수업 내용이 아니라, 선생님이 암석을 게임을 풀어낸 게임 방법이다. 게임으로 풀어낸 암석, 덕분에 아이들은 '할리갈리'처럼 암석을 익혀간다. 

'열심히 하자'가 모토인 송미정 선생님, 아이들이 가르쳐주는 것을 따라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교사가 된 후 10년이 될 즈음부터 시작된 과학 교사 모임을 과로로 토해가면서도 빠지지않고 개근한다. 선생님의 재밌는 수업은 이렇게 오랜 연구와 토론을 통해, 그리고 선생님의 보물 창고라는 선생님이 만들어 낸 각종 수업 도구를 통해 만들어 졌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이라도 좀 더 재밌고, 신기하고 , 색다른 거를 위해 쉴틈이 없다신다. 

재밌는 수업을 위해 오늘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떳다 홍반장이 되는 송미정 선생님이 인천에 계시다면 당진에는 '엄마'같은 백운자 선생님이 계신다. 십 여년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아이들의 아침 독서 토론 수업, 이른 시간 아침을 먹고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은 매일 아침 아이들의 아침을 준비하신다. 오늘의 아침 메뉴는 선생님표 수제 샌드위치, 성장기의 아이들에게는 아침 식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선생님은 매일 아침 아이들의 아침 만들기를 기꺼이 자청하신다. 

어디 아침 뿐일까, 하루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은 가정 형편 때문에 학원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방과후 공부방도 책임지신다. 역시 거기에도 빠지지 않는 선생님표 저녁밥, 오늘의 메뉴는 카레, 그리고 밤 9시까지 홀로 공부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다 집이 먼 아이들을 차로 데려다 주시기 까지 하면 선생님의 하루 일과가 마무리된다. 

선생님이 천직이라 생각한 백운자 선생님, 이제는 선생님이 선생님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의 옛 제사 김경래 씨, 초임 교사 월급이 12만원이던 시절, 가정 형편 때문에 진로를 고민하던 경래씨에게 선생님은 월급의 반 정도가 되는 돈을 기꺼이 전해 주시며 일단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며 격려해주셨다며 덕분에 지금의 자기가 있을 수 있다 감사한다. 그러나 정년을 앞둔 선생님은 그렇게 제자들에게 해줄 사랑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 불러주는 제자들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백운자 선생님, 하루 종일 뛰고 또 뛰는 열정 파워 우먼 송미정 선생님, 그리고 슈퍼맨 이기도 선생님, 선생님인지 잡부인지, 농부인지, 사감인지, 아빠인지 그 무엇이래도, 우리 아이들이 어제 보다 조금 나은 오늘, 그리고 조금 더 자신을 찾아가는 내일이라면 상관없다는 김재복, 장정호 선생님, 이 선생님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조건을 달라도 그 조건에서 선생님이 먼저가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보다 재밌고, 보다 즐거운, 그리고 보다 자신의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 아니었을까. 세 편의 다큐에서 선생님들은 다 분주하셨다. 그리고 이미 나이든 어른들임에도 자신들의 입장보다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려고 하셨고, 작은 약속이라도 지키려 했다. 그리고 정해진 수업과 교과서를 넘어 살아있는 교육을 하기 위해 자신들을 던지셨다. 교권의 위기가 논해지는 2019년 세 편의 다큐는 어쩌면 교원의 자리는 생각보다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아닐까라고 반문하는 듯하다. 




by meditator 2019. 5. 16. 15:27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므로 산재를 인정합니다' 라는 산재 재심 위원회 위원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창규의 아내는 울음을 터트렸다. 지병이라는 이유로 기각되었던 산재가 드디어 인정된 것이다. 산재만이 아니다. 억울하게 병원에서 쫓겨나게 된 사연도 밝혀졌다. 그리고 그 시간 이창규를 그렇게 만들었던 장본인, 명성의 양태수는 마약 복용 혐의로 체포되고, 최서라는 갑질 혐의로 역시나 구속된다. 길고도 지독했던 명성과의 악연, 그 한 장이 조장풍의 통쾌한 승리로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인턴 이창규의 억울한 죽음 
명성 병원의 근로 감독을 속시원하게 해결했던 조진갑, 하지만 가만있을 명성이 아니었다. 그가 고등학교 선생이었던 시절 '폭력 교사'로 해고되었던 과거를 언론을 통해 흘리고, 그는 결국 근로 감독관에서 밀려나 산재 심사위원회로 보내졌다. 심지어 뇌출혈 환자에서 수면제를 처방하던 명성 병원의 의사 강민섭이 산재 위원으로 등장하여 사사건건 닥달하며 진갑의 혈압을 올린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곳에서 명성 병원 인턴이었던, 명성 병원 근로 감독 과정에서 결정적 제보를 해줬던 인턴이었던 이창규의 죽음을 알게 된다. 

명성 병원의 근로 감독 과정에서 결정적 제보를 했던 인턴 이창규, 그러나 그는 결국 명성 병원에서 쫓겨났고 가족에게도 숨긴 채 공사장 인부로 일하던 중 벽돌을 맞아 뇌에 부상을 입었으나 방치된 채 죽음을 맞이했다. 뒤늦게 남편이 공사장에서 일하다 죽었다는 것을 알게된 아내는 공사 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남편의 산재를 신청했지만 평소 지병이 있었다는 이유로 기각되고 만다.

자신을 도왔던 인턴이 명성 병원에서 쫓겨나 공사장을 전전하다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에 죄책감과 아픔을 느낀 조진갑은 진실을 알기 위해 나선다. 산재,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 당한 재해의 입증을 명성 건설은 유가족에게 떠넘긴다. 심지어 유품조차도 수습하지 못하게 하고, 진갑은 유품을 찾으러 명성 건설을 찾아가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감옥에서 나와 최서라의 하수인으로 복귀한 구대길에 의한 교통사고와, 뇌물 수수 조작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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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조진갑의 활약은 계속
그런 가운데 최서라는 전환 사채 조작을 통해 자신의 아들 양태수에게 회사를 불법 승계하려고 하고, 이를 위해 병실 내에 은밀하게 설치된 밀실에서 여러 주변 인물들에 대한 불법 도청 자료를 모은다. 그리고 이런 최서라의 비밀은 이창규의 핸드폰이 최서라에게 까지 흘러들어갔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은 조진갑과 천덕구(김경남 분)가 은밀하게 그곳을 조사하다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양태수가 들이닥쳤지만 마약 복용으로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 무사히 복사까지 마무리하게 된다. 

그러나 산재 입증의 길은 멀었다. 병원 측은 이창규의 인턴 해고가 졸피뎀을 빼돌려 투약했다고 했고, 이에 우도하는 이창규 아내에게 돈을 주며 회유하고자 한다. 한편 공사 현장 근로 감독까지 나가서 어렵게 구한 cctv 자료 영상조차 진갑을 우려한 아버지로 인해 잃고 만다. 결국 빈 손으로 재심 위원회에 나서게 된 진갑과 이창규 가족, 그들 앞에 이창규가 자신 대신에 약물 혐의를 받고 해고되었다는 사실에 뒤늦게 맘을 돌린 명성 병원 이과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바로 그 이창규가 빼돌렸다는 졸피뎀을 사용한 사람이 다름아닌 양태수라는 것을 진술하고, 그 진술에 증거가 될 영상을 조진갑이 제출하고, 드디어 '업무상 산재'가 입증된다. 

양태수가 한 마약을 빼돌렸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병원에서 쫓겨났던 이창규, 명성 건설에서 공사장 인부로 일하다 벽돌을 맞고 위급 상황에 빠졌던 그는 무재해라는 '허명'의 작업장을 지키기 위한 공사장 작업 반장의 방치로 '골든 타임'을 놓친 채 죽어갔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채 가족들의 통한이 될 뻔한 걸 산재 위원회에 간 조진갑과 이번에도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흔들림없이 조진갑의 동지가 된 '갑을 어벤져스'의 활약으로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성 건설의 무재해를 지키고자 이창규에게 다시 한번 억울한 누명을 씌우려던 명성은 고스란히 '부메랑'을 돌려받는다. 공화 장애를 핑계로 감옥에서 나온 양태수를 비롯하여 갖은 이유로 병원 신세를 지며 병실에서 호화로운 식사를 하던 회장님들에게 뿌려진 물벼락을 시작으로 전환 사채를 이용하여 아들의 불법 승계를 하려던 최서라의 계획은 '말숙'을 볼모로 폭력을 가했던 최서라에게 '이에는 이'의 작전으로 응수한 천덕구의 '인터넷 봉쇄'로, 조진갑을 뇌물 수수로 엮으려던 구대길의 작전은 자신의 남편과 아이를 지키려는 주미란(박세영 분)의 역공으로 인한 양태수의 구속으로 최서라는 불법 승계는 커녕 스스로 '갑질'로 인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감옥으로 끌려가는 처지가 되고 만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아들을 함부로 대한다며 조진갑을 손봐주겠다고는 결국 그를 '폭력 선생'으로 몰아 해고시켰던 조진갑과 최서라의 악연은 이제 근로 감독관, 그리고 산재 위원으로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공무원이 된 조진갑과 각종 갑질은 물론, 불법을 넘나들며 특권을 행사하던 재벌 회장 최서라의 대결이 되었고, 결국 포기하지 않는 조진갑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간호사들의 걸그룹 춤 연습, 재벌 자제의 마약, 재벌가 사모님의 갑질,  전환 사채를 이용한 불법 승계 등 최근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각종 현실의 사건 사고가 조진갑의 엄정한 공무 집행 과정에서 재벌들의 거악의 시리즈로 절묘하게 엮어나왔던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 , 그러기에 어떤 드라마보다 현실감은 더해지고 , 그 현실로부터 길어진 공무원 조진갑의 화끈한 활약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특별하다. 

by meditator 2019. 5. 15. 06:45

마진원 작가의 <보이스3>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장르물이 시즌을 이어가는 경우가 특별한 건 아니지만, 한 작가가 일관성있게 시즌을 집필하는 경우는, 특히 3번 째 시즌까지 함께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보이스3>는 마진원 작가의 <보이스3>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렇게 마진원 작가와 함께, 이제는 시청자들에게는 <손 the guest>의 연출로 익숙한 김홍선 감독에 이어, <특수사건 전담반 ten 2>의 이승영 피디의 시즌 2, 그리고 이제 <뷰티인사이드>, <터널>의 남기훈 피디가 그 바톤을 이어받았다.

 

 

보다 '고어'하게 
그렇다면 시즌3의 <보이스>는 어땠을까? 
화가의 작업장인 듯 여기 저기 그림들과 작업 도구들이 있는 창고, 그 끝에 한 여성이 매달려 있다. 공중에 말 그대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건 낚시줄? 혹은 얇은 철사와 같은 줄들이다. 그녀의 마디마디를 지탱하고 있는 그 줄은 동시에 그녀의 그 마디마디를 조여가며 끊어내고 있는 중, 바닥은 그녀의 피로 흥건하다. 그리고 살려만 달라고 절규하는 그녀의 앞에서 그 죽음을 한껏 즐기고 있는  검은 망토에 하얀 마스크를 쓴 빌런,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은퇴하겠다는 여 화가의 작업장을 보러 온 부동산 업자와 손님, 그들은 질척이는 작업장을 둘러보던 중 이상한 설치 작품, 여성의 얼굴과 절단된 사지로 구성된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저앉아 버린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 흥건했던 것들이 바로 '피'였음을. 112를 찾으며 혼비백산하는 그들, 그렇게 '하드고어(고어(gore)는 '피, 핏덩이, 엉긴 피, 응혈'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징그럽고 유혈이 낭자한 장면이 심하게 들어간 잔인한 작품)'하게 <보이스3>가 시작된다. 

<보이스 1>에서 이 드라마가 다른 장르 드라마와 달리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건, 사고로 인해 남다른 청각를 가지게 된 강권주 팀장(이하나 분)을 중심으로 한 범죄 현장의 골든 타임을 사수하는 112 신고 센터 팀과, 그 맞은 편에 쇠망치로 사람을 내리쳐서 잔혹하게 살해하는 모태구(김재욱 분)로 대변되는 '고어'한 범죄들이었다.

그리고 시즌 2에서는 강권주 팀장의 골든 타임 팀이 무진혁(장혁 분)에 이어 새로운 팀장 도강우(이진욱 분)을 맞이하여 체계를 갖추어 가며, 모태구의 철퇴로 내리치던  '고어'한 범죄는 방제수(권율 분)의 시신 부분 훼손 및 절단과 이의 유통인 '닥터 파르브'라는 다크 웹 사이트의 조직적 범죄로 범죄의 각을 넓혔다. 

시즌3의 <보이스>는 이런 시즌 1과 시즌2의 특징을 강화시킨다. 1회 초반 보여준 빌런의 '하드 고어'한 범죄에 이어, 일본 료칸을 배경으로 한 일본 여행을 온 한국인 여성 두 명을 납치 감금하고, 마치 컴퓨터의 리셋 버튼처럼 존재하지도 않는 자신의 가족을 끊임없는 납치를 통해 '리셋'하려하고 이에 반항할 때 거침없이 망치를 휘두르는 '고어'한 설정의 에피소드로 시즌의 특성을 강조한다. 

거기에, 시즌 2의  사고 현장에서 사라졌던 도강우 팀장이 8개월만에 일본에 밀항을 감행하면서 까지 추적하는 시즌2의 빌런 방제수의 배후, 시즌 2에서 방제수가 거느렸던 '닥터 파브르'는 그 일부에 불과했던 절단된 시신들을 거래하는 '블랙 마켓 시크릿넷'이라는 거악이 시즌3의 과제로 제시된다. 료칸의 납치범 스즈키(정기섭 분)도 피해자들을 강간하며 죽이는 과정을 담은 '스너프' 필림을 올렸던 것으로 도강우의 추적이 실제 사건으로 드러나며, 과연 극 초반 등장했던 '하드 고어'한 범죄를 저질렀던 최종 빌런과 이 '시크릿 넷'의 관계는 무엇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보다 처절하게
시즌3가 시작될 때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건 바로 강권주의 생사였다. 방제수가 덫으로 놓은 폭탄이 설치된 지하로 들어갔던 강권주, 이후에 발생한 폭발, 과연 그 상황에서 강권주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시즌 3는 그 폭파의 현장에서 8개월을 건너뛰어 골든 타임 팀장으로 다시 복귀한 강권주로 시작한다. 폭파 현장에서 온 몸에 심한 상처를 입었지만, 그 현장에서 사라진 도강우 팀장을 찾기 위해 초인적인 힘으로 재활을 겪어낸 그녀는 다시 의연한 골든 타임 팀의 팀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그녀는 사고로 인해 치명적인 '이명'의 후유증을 앓게 된다. 뜻하지 않는 순간에 그녀를 엄습하는 강렬한 기계음과 같은 이명은 남들과 다른 청각으로 사건을 인도하는 골든 타임 팀장으로 강권주에게는 그 무엇보다 안타까운 핸디캡이다. 

시즌 2의 다른 제목이 필요하다면 '도강우 형사의 복권'이라고 해도 무람없을 만큼, 3년전 자신의 눈 앞에서 파트너였던 나형준 형사 살해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던 도강우,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살인 사건을 눈 앞에서 목격한 이유로 '동조자' 혹은 아버지와 같은 사이코패스라 의심을 받는 그는, 더구나 종종 정신을 잃는 '블랙 아웃 증세'에, 극한의 상황에서 통제력을 잃으며 폭주하는 성향으로 인해 나형준 형사의 형인 나홍수 계장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고 '형사'직에도 위기를 맞고 있는 형편이었다. 시즌 2는 바로 이런 도강우가 방제수의 음모로 인해 나형준 살해 사건의 범인이 아니며, 진짜 범인을 밝히고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아버지의 범죄와 그로 인한 온 가족의 불행 이후 속죄하듯 경찰이 되고, 거기에 더해 자신의 과거와 병력으로 인해 덮어씌워진 혐의를 스스로 입증하기 위해 발버둥쳤던 도강우 형사, 그러나 그는 그런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사라져 버린다. 그의 '실종' 사건을 수사하던 전담반조차 그의 과거로 인해 폐지되던 무렵, 일본으로 밀항하는 그가 골든 타임 수사망에 잡히고, 그렇게 밀항자로써 강권주와 다시 만나지만 도강우는 예의 안하무인 폭력적 성향을 드러내며 팀원들을 멀리한다. 

 

 

강권주의 폭발 현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검은 색 자동차로 인해 방제수의 배후를 직감한 그는 지난 8개월간 은밀하게 '블랙 웹'의 존재를 추적해 오던 중, 그 실마리를 찾아 일본까지 오게 된 것이다. 안하무인이었지만, 당장 피해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고, 거기에 그 가해자가 자신이 찾는 블랙 웹과 연관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도강우는 '료칸 납치 사건'에 뛰어들어 예의 '팀장'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마지막 범인 스즈키의 검거 과정에서 절제되지 않는 폭력적인 성향이 튀어나오고, 강권주와 대화하던 중 뛰쳐들어가 안정제 주사를 맞고 나와야 할 만큼 병이 악화된 상황, 더구나 감옥의 방제수는 도강우의 복귀를 듣고 그의 어릴 적 이름 '고우스케, 돌아왔구나'라고 하면서 시즌 2 내내 시청자들을 의혹에 빠뜨리게 했던 도강우의 정체에 대해 다시 한번 의심의 불을 지핀다. 거기에, 시즌 2의 나형수 계장에 이어, 이제 다시 그가 살인마의 아들이라며 그의 뒤를 쫓는 일본 형사 료지(박동하 분)가 등장하여 도강우의 정체에 대한 혼돈을 부추긴다. 그렇게 도강우는 심해지는 병과 싸우며 다시 한번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핸디캡을 가지게 된 강권주, 심해지는 병으로 인해 시간이 여의치 않은 도강우 이들은 첫 번째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그 누구보다도 서로 호흡이 잘 맞는 팀이라는 걸 확인한다. 하지만 시간이 없는 도강우는 단 두 달로 그들의 파트너 쉽을 한정시키고, 이제 함께 '하드 고어'한 거악의 범죄 단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나선다. 보다 처절한 조건에서, 보다 극악한 범죄자, 혹은 범죄 단체를 단죄하기 위해 나선 <보이스 3>, 이 흥미진진한 서막에 시청자들은 2회만에 5%를 넘보는 관심으로 호응했다. (2회 4.979% 닐슨 코리아 케이블 기준)



by meditator 2019. 5. 13. 14:45

히가시노 게이고는 오사카 부립대학교 전기 공학과를 나왔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로 만들어진 <용의자 X의 헌신> 속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가 일찌기 <탐정 갈릴레오>에서 부터 그의 전문적인 과학 지식을 활용하여 사건을 풀어가는 시에피소드가 종종 등장해 왔다. 그 중에서도 <라플라스의 마녀>는 작가 자신이 30주년 기념작이라 한 만큼,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기인 '과학'과 '스릴러'의 절묘한 결합으로 찬사를 받는 작품이었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라이프니츠의 이 한 마디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것은 수학적으로 진행된다. 만약 누군가가 사물들의 내부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닌다면 그리고 더욱이 모든 상황을 생각하고 고려할 수 있는 충분한 기억력과 지식을 가진다면 그는 예언가가 되고 거울에서처럼 현재에서 미래를 볼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30년의 역작 <라플라스의 마녀> 
프랑스의 철학자 시몽 라플라스는 이런 라이프니츠의 결정론을 확장한다.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 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현재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미래를 유추할 수 있는 존재'로서 '라플라스의 악마'가 등장한다. 

늘 과학자들은 갈망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세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진다면, 조금 더 정확한 수치로 계산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정확한 공식을 얻는다면, 궁극에는 이 세계에 대한 '진리의 값'을 얻을 수 있다고. 그런 과학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명적 진보를 추동했고, 그 과정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환타지적 소망'이 '라플라스의 악마'로 나타난다. '악마'라지만, 이는 우리가 그간 sf를 통해 접했던 '시간 여행'이나, '평행우주론'의 또 다른 버전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공대 출신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30주년 역작으로 바로 그런 과학적 모티브를 끌어와 자신만의 새로운 과학적 스릴러를 탄생시키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소설들을 산산조각내니 만들어 졌다는 작품', 그게 <라플라스의 마녀>이다. 

그렇다면 영화 <라플라스의 마녀>는 이런 작가의 30주년 역작으로서의 성과가 잘 드러났는가 여부를 놓고 살펴봐야 할 듯하다. 아니, 그런데 사실은 이게 애초에 어쩌면 불가능한 평가일 수도 있겠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어 리메이크된 <용의자 x의 헌신>을 봐도 그렇지만, 애초에 몇 백 페이지의 구구절절 장대한 원작을 두 시간 여의 영화로 콤팩트하게 만든다는게 쉽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물리적 법칙에 통달하여 뉴턴의 운동 법칙을 꿰뚫어 과거를 알고 그로 미루어 미래를 꿰뚫는 존재'만큼 영화적 상상력을 한껏 드러낼 수 있는 영역이 있을까? 

 

 

영화로 온 히가시노 게이고 
영화의 시작은 유명 온천 휴양지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다. 영화 제작자가 죽은 채로 발견되고 그 사인은 황화수소 중독. 과학자로서 이 사건에 참고인이 된 과학 교수 아오에 슈스케(사쿠라이 쇼 분)는 온천지 주변의 지형으로 미루어 보건대 '살인'이 성립되지 않으므로 단순 사고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온천 지대에서 '황화 수소 중독' 사고가 발생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온천 지역의 존폐가 달린 심각한 문제가 된다. 거기에  나카오카 형사(타마키 히로시 분)는 죽은 사람 앞으로 들어놓은 보험금을 수상하게 여겨 죽은 제작자의 아내를 의심한다. 

그런데 발생한 또 하나의 온천 지역에서 벌어진 황화 수소 중독 사건, 이번에도 지형상으로 보면 사고사일 수 밖에 없지만, 같은 독극물에 의해 온천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거기에 나카오카 형사의 조사에 따르면 오래 전 아마카스 사이세이 감독(토요카와 에츠시 분)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사건은 점점 더 단순 사고사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영화는 의문의 살인 사건에서, 8년 전 벌어진 아마카스 사이세이 일가족에게 벌어진 황화수소 중독 사건으로 시점이 옮겨진다. 그리고 그 사건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아마카스 감독의 아들 아마카스 겐토(후쿠시 소타 분)가 등장하고, 점점 더 사건의 늪에 빠져들어가는 아오에 교수 주변에 의문의 소녀? 여성?이 얼쩡거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등장한 '라플라스의 악마'가 아닌, '마녀' 우하라 마도카(히로세 슈즈 분), 영화는 의문의 사고사에서 시작된 스릴러에서 이제 '라플라스의 마녀'의 등장과 함께 대두된 '아마카스 사이세이 감독의 일가족 몰살 사건'을 감독의 블로그를 배경으로 '설명'해 나가고, 거기에 다시 스스로 마녀가 된 '우하라'의 사연까지 얹는다. 

즉, 시작은 의문의 두 사건이지만, 그 사건에서 부터 과거로 들어가 거기서 아마카스 감독의 일가족 독극물 중독사, 혹은 미수 사건이 드러나고, 그로부터 비롯된 두 명의 '라플라스의 악마'와 '마녀'의 등장으로, 황화수소 중독으로 시작된 사건은 '라플라스의 정의'에 근거한 과학 환타지로서의 영역으로 확장되어간다. 

불가능한 독극물에 의한 살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드는 '라플라스 과학 결정론', 그리고 그 '결정론'의 집합체가 되어버린 '실험실의 모르모트'같은 두 사람, 그 둘 사이의 미묘한 관계. 8년을 견디며 복수를 향해 달려온 청년과, 함께 하다 보니 어느덧 그 청년을 사랑하게 되어 그의 복수, 아니, 복수를 빙자한 자멸을 막기 위해 자신을 던진 소녀의 순애보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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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여의 런닝 타임으로 품어낼 수 없는 500여 페이지의 인간사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오랫동안 스테디 셀러로서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사회적 스릴러, 과학적 스릴러, 때로는 킬링 타임용 탐정물에, 학원물, 연애물, 휴먼 스토리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작품을 양산해 내는 작가의 성실하고도 꾸준한 작품 성과가 제 일의 원인이겠지만, 그런 작품들을 씨실로 하여 그 속에서 드러난 '다양한 인간 군상'의 고뇌와 욕망 들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보는 이로 하여금 '만화경'처럼 인간사에 대한 천착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 <라플라스의 마녀>는 영화라는 장르가 가질 수 있는 특수 효과의 특성을 살려 이른바 히가시노 게이고가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는 '라플라스 이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득을 하고 있다. 물론 이 조차도 대뜸 냇물 사이에 아오에 교수를 몰아넣고 드라이 아이스로 감금하고, 이건 몰랐지 식인 면도 있지만, 클라이막스에서 아마카스 감독의 낡은 세트를 배경으로 한 '다운 버스트' 상황과 그 속에서의 우하라의 순애보적 기지는 영화가 아니고서는 그려낼 수 없는 영역이긴 하다. 

반면, 500여 페이지가 넘는 책의 행간을 채웠던 복합적인 사건, 그 사건의 결 속에서 각자의 욕망과 고뇌를 가지고 살아 숨쉬던 인간들과 그 관계의 미묘함에 대해 영화는 결국 시간의 제약이었던지, 연출의 불균형이었던지, 단편적이거나, 혹은 설명적으로 그려낼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아니 어쩌면 군더더기의 인간 군상에 대한 묘사와 설명을 접어두고 보면 영화가 그려내는 단편적인 설정이나 교훈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소설 책을 단 몇 줄의 결론을 알기 위해서 읽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결국 영화는 자신의 가족들마저도 완벽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아마카스 감독의 자기 위선과 완벽주의에 맞선,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기꺼이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내놓을 만큼, 순수한 마음을 가징 우하라의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귀결되어진다. 물론 이 조차도 이 영화가 소설의 궤도를 따라 사건을 설명해가던 아오에 교수의 시점에서 이런 모든 것들이 ''지켜보게' 됨으로써 아, 이 영화가 '사랑'을 말하고 싶은 거구나, 혹은 과학적 진리를 통해 알 수도 있게된 미래라는 게 꼭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건 아니구나 라고 이성적으로 이해해 줘야 하고 교훈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사건과 인물의 극적인 효과가 반감되는 점은 안타깝다. 

영화 <라플라스의 마녀>는 그 서사의 과학적 설정은 가장 영화적이었지만, 그 서사의 행간을 채운 서사는 영화로 감당하기엔 너무 복합적이고 복잡한 것이 아니었나란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결국, 각 인물들의 면면을 좀 더 알기 위해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들어야 하는. 언제나 책을 뛰어넘는 영화가 나오기는 힘들다. 하지만, 책을 다시 꺼내들지 않도록 만드는 영화들은 있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by meditator 2019. 5. 11. 17:47

개혁 군주 영조의 새로운 면모를 그렸던 <해치>는 비록 7%대의 시청률이지만 월화 드라마 1위의 자리를 수성한 채 마무리를 했다. 그 바톤을 이어받은 건 모처럼 개화한 mbc의 월화 드라마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이다. 물만난 듯한 김동욱의 호연과 <열혈 사제>를 잇는 화끈한 '사이다' 서사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뚫어주며 7%의 벽을 뚫었다. 그렇게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이 순풍에 돛단듯이 순항하는 가운데, 그 아성에 도전하는 후발 드라마 두 편이 있다. 바로 '장르'가 박보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tvn의 <어비스>와 <해치>의 후속 드라마 <초면에 사랑합니다>이다.

'장르'가 박보영이라지만 <어비스>가 '로코'인 듯 하지만 '빌런'으로서 이성재의 존재감에서 드러나듯이 '스릴러'의 요소가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 반면, <초면에 사랑합니다>의 경우 드라마 초반 남자 주인공 도민익(김영광 분)이 피습을 당하는 '사건'으로 시작되며 미스터리하게 열었지만 막상 드라마의 내용은 도민익과 그의 비서 정갈희(진기주 분)의 아웅다웅하는 '관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로코인 듯 스릴러, 스릴러인 듯 로코인 복합 장르로서 두 드라마는 비슷한 듯 다르게 심지어 시청률조차 고만고만하게 (어비스 3.858, 초면에 사랑합니다 3.6, 닐슨 코리아 5.6 기준) 후발주자로서 고전하고 있다. 

 

 

영혼으로 소생한 현대판 미녀와 야수, <어비스>
20년지기 친구인 두 남녀가 있다. 한 명은 절세 미녀에 재원으로 잘 나가는 검사가 된 고세연과 또 한 명은 반대로 길 가다가도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 덜 생긴 차민, 일편단심 고세연만 바라보던 차민에게 뜻밖에도 운명의 여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결혼을 약속까지 했는데 그녀가 사라졌다. 그로 인해 비관하여 자살을 시도하던 차민은 외계인의 운전 실수로 말미암아 사망, 20년지기 절친 고세연 역시 자신의 집에 찾아온 연쇄 살인마로 인해 사망, 그렇게 두 절친은 세상을 떴고, 차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외계인이 준 생명 소생 구슬 '어비스'로 다행히 환생했다. 단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영혼의 모습인 둘의 모습이 생전과 딴 판으로 평범녀와 누가 봐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잘생남으로 바뀌었다는 것. 

그렇게 김사랑과 안세하로 시작했던 드라마는 삶과 죽음의 기로를 넘기며 박보영과 안호섭이 바톤을 이어받았고, 그때부터 우리가 아는 예의 '박보영 표' 드라마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는 <어비스>의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아직은 드라마를 이끌어 가기에는 너무 풋풋한 안호섭이 이끌었던 초반을 지나 박보영이 등장하는 순간 드라마가 급 활기를 띠는 것처럼, 박보영은 그 또록또록한 발성과 똘망똘망한 연기로 대번에 드라마를 휘어잡는다.

하지만, 조금전까지만 해도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장례 치른다고 엉엉 울던 고세연이, 장면이 바뀌자 허겁지겁 해장국을 먹고,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차민의 물건들을 팔아 편의점 순례를 하고, 날짜 지난 상품으로 편의점 알바생을 눙치고, 즐펀하게 편의점 앞에서 쏘맥을 말아 수다를 떠는 지점에 이르면 이 드라마가 <오나의 귀신님>인지, <힘쎈 여자 도봉순>인지 기시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뜻밖에도 <어비스>가 드라마로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이성재'의 본격적인 등장에서 부터이다. 동료 검사도, 피해자의 아버지도 모두가 모호하고 의심스러웠던 등장이었지만, 서하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오성철의 존재가, 그의 환생이 분명해 지면서 부터 드라마는 '스릴러'로서 장르의 묘미를 살려가기 시작한다. 또한 그런 면에서 박보영의 전작 <오 나의 귀신님>과 <힘쎈 여자 도봉순> 역시 복합 장르 드라마였다는 것이 환기되며, 전작들에서처럼 박보영의 익숙한 연기를 새로운 '장르'의 서사가 융합하여 신선하게 다가올 가능성을 연다.

즉, 박보영은 그 박보영이지만, 박보영이 녹아든 이야기의 다름이 시청자들을 설득시키느냐가 <어비스>의 관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오 나의 귀신님>, <힘쎈 여자 도봉순>에 이어 이런 박보영의 전략이 또 다시 먹힐지는. 더구나 안효섭은 박보영이 함께 했던 그 어떤 남주보다도 '신인', 이성재의 압도적인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박보영의 어깨가 무겁다. 

 

 

새로운 듯 익숙한 안면인식 장애 남자의 좌충우돌 해프닝, <초면에 사랑합니다> 
T&T 모바일 미디어 1본부장 도민익은 남 보기엔 완벽하고, 그래서 완벽한 만큼 까칠한 상사이다. 덕분에 의욕만 앞섰던 비서 정갈희(진기주 분)는 결국 상사의 싸가지 없는 해고 통지를 받게 되고 만다. 하지만, 그 날 회사에서 정갈희가 짤린 날, 정작 도민익은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다. 겨우 목숨은 구하지만 어릴 적 그가 받았던 뇌수술 과정에 삽입했던 클립이 측두엽에 무리를 줘 안면인식 장애를 일으키고 만다.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하는 증상이 이토록 흔한 증후군이었던가. MBN<마성의 기쁨>에서 공마성(최진혁 분)은 자고 일어나면 지난 날의 기억이 사라져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장애를 보였고, JTBC<뷰티 인사이드>의 서도재는 사고로 안면인식 장애를 안게 되었다. 잘 생기고 허우대 멀쩡하고, 심지어 직업도 다들 '장'이다. 뇌신경 센터 센터장, 항공 본부장에, 이제 모바일 미디어 본부장까지. 이 완벽한 조건에 완벽한 '티'가 되는 그들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증후군에 완벽한 조력자가 있으니, 그녀들이다. 

이 '익숙한' 설정을 <초면에 사랑합니다>는 T&T 모바일의 후계 구도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머니와 삼촌 간의 복잡한 집안 관계, 그리고 뜻하지 않은 피습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그 현장에 있었던, 그리고 점점 더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도민익이 유일하게 알아보는 단 한 사람 정갈희를 등장시켜, 갑과 을이 사랑하는 사이로의 전복되는 과정을, 알아보지 못하는 해프닝을 통해 도민익의 오랜 절친 기대주(구자성 분)와 베로니카 박(김재경 분)과의 사각 관계로 풀어갈 예정이다. 피습 사건으로 심각하게 시작했던 드라마는 정갈희를 찾아와 상사 면접을 진심으로 받는 도민익으로 풀어내며 '로코'로서의 특색을 강화해 간다. 

<너의 결혼식>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영광과 박보영, <퐁당퐁당 러브>에서 함께 했던 진기주와 안효섭이 이제 파트너를 바꿔 경쟁자로 만났다. 발군의 박보영, 한층 무르익은 김영광이 이끌고, 신인 진기주와 안효섭이 따르는 이 두 드라마,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의 유제원 피디가 과연 박보영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지, <이혼변호사는 연애중>의 김아정 작가와 함께 입봉한 이광영 피디가 드라마에서 계속 부진했던 김영광에게 고진감래의 기쁨을 안길지, 하지만 이미 <특별 근로 감독관 조장풍>이 상승세를 펴고 있는 월화 드라마에서 이들 후발 주자들의 입지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by meditator 2019. 5. 8.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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