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관? 보안관도 아니고, 익숙한 직명인데, 드라마의 제목이 되니 낯설다.  아마도 그건 그 직명이 늘  ㅇㅇㅇ 의원의 보좌관처럼 그 누군가의 종속 변수로 자리 매김되었던 존재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부분으로, 혹은 누군가의 그림자로 있는 듯 없는 듯 여겨졌던 '보좌관'이 수식어를 떼고 '주인공'이 되어 돌아왔다. 6월 14일부터 방영한 jtbc의 <보좌관> 10부작이다. 

 

 

<라이프 온 마스> 이대길 작가의 진검승부 
tvn의 <싸우자 귀신아>에 이어 원작 영드를 앞섰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는 ocn의 <라이프 온 마스>의 이대일 작가와 <추노> 로 사극 액션 드라마의 한 획을 긋고, <동네의 영웅>, <미스 함부라비> 등을 통해 신선한 소재의 사회비판적 시각을 가진 연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곽정환 피디의 만남,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보좌관>은 기대작이다. 거기에 모처럼 드라마로 돌아온 이정재가 야심만만한 보좌관 장태준으로 중심을 잡고, 김갑수, 김홍파, 정진영, 정웅인  등 다양한 색채의 조연진들이 포진되었다. 이 정도면 '금상첨화'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과연 번안극이었던 <라이프 온 마스>의 이대일 작가가 새로운 장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 보좌관을 중심으로 하여 풀어낸 '정치' 이야기를 제대로 써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우선됐다. 하지만 1회, 차기 총선 공천 유력주자로 물망에 오르는 유능한 보좌관 장태준을 통해 여당 대표 자리를 놓고 벌이는 두 의원 송희섭(김갑수 분)과 조갑영(김홍파 분)의 총성없는 전쟁을 엎치락 뒤치락 긴장감넘치게 풀어내며, 역시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는 정의를 증명해 낸다. 

 

 

보좌관이 된 장태준 
정치 지망생이었던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의 꿈은 집안을 기울게 만들었을 뿐이다. 짐만 될 뿐인 가족,  그저 믿을 거라곤 자신의 머리, 그래서 들어간 경찰대,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권력'과 '불의'에 장태준은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렇게 시작된 초선 의원 이성민(정진영 분)의 보좌관 생활, 그러나 정의로우나 욕심이 없는 무소속 초선 의원의 보좌관 처지는 높은 야심을 가진 장태준이 뛰어놀기엔 너무 좁은 어항이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다음 정착지는 대한당 4선 의원 송희섭, <보좌관> 1회는 그렇게 장태준이란 말을 타고 대표 자리를 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리는 송-장 파트너쉽의 묘수를 보여준다. 

하지만, 말이 파트너지, 얼굴 마담은 송희섭이지만, 그 뒤의 모든 일은 장태준의 것이다. 야당 대표 자리를 장태준으로 인해 송희섭에게 넘긴 조갑영은 국정감사를 통해 다시 한번 '공격'을 준비한다. 준비가 무색하게 파행된 국감 현장,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손에 넣으려면 불가능한 것을 해야' 한다는 장태준답게 기지로 송희섭을 파업 현장으로 밀어넣고, 그걸 빌리로 파행된 국감을 재개시킨다. 그렇게 다시 한번 유능한 보좌관 장태준의 면모를 증명하며 <보좌관>의 서막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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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드라마로서의 <보좌관>
무엇보다 <보좌관>의 매력은 드라마에서 그동안 늘 '조역'의 자리에 머물렀던 보좌관이란 직무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정치의 주역 국회의원, 국감의 현장 그 뒤편에서 국회의원 300명 그 뒤에 포진한 2700명 보좌관들의 일하는 모습을 조망하며 누가 움직이나, 누가 일을 하는가라는 '전문직으로서의 보좌관'의 모습을 드라마는 박진감넘치면서도 실감나게 그려내며 새로운 전문 분야를 설득해 낸다. 

또한 이런 전면에 내세운 보좌관이란 신선한 주역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흥미진진한 캐릭터들의 향연이 <보좌관>의 진짜 볼 거리이다. 몰락한 집안 자신의 머리 하나를 믿고 경찰대에 이어 보좌관이 된 장태준이란 입지전적 인물의 정의와 부도덕을 오가는 갈등은 그간 '선'이거나, '악'이거나 정형화된 캐릭터에 싫증난 드라마 팬들의 환호를 불러올 만 하다. 

어디 그뿐인가, 오래 활동했음에도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던 배우 신민아에게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발탁한 조갑영에게 물 먹이는 일쯤이야 얼마든지 라는 대한당 비례 대표 초선 의원인 변호사 강선영는 아마도 두고두고 기억될 대표 캐릭터가 아닐까. 강선영만이 아니다. 전직 언론인 출신의 코피 쯤이야 다시 닦고 일하면 그뿐이라는 윤혜원(이엘리야 분)에서, 신참 인턴 강도경(김동준 분)에, 동료인지 적군인지, 아군인지 선을 오가는 오원식(정웅인 분), 고석만(임원희 분), 김형도 (이철민 분) 등의 보좌관 캐릭터에, 언제든 말을 갈아탈 준비가 되어 있는 송희섭과 조갑영 등 노회한 정치꾼들의 모습은 화룡점정이 되어 현실 정치의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미드처럼 10부작으로 종결되는 <보좌관>은 시즌제를 예고하고 있다.  1회, 4.375, 2회, 4.545 시청률 상승세는 물론, 시청자들의 호의적 반응으로 볼 때 시즌제를 선언한 드라마의 미래가 밝다. 현장의 정치를 현실에서 일하는 자들의 모습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보좌관>, 이 새로운 시도가 침체기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 드라마의 활력소가 되길 바래본다. 

by meditator 2019. 6. 16. 16:16

<평일 오후 3시의 연인>, <우리 가족 라멘샵>의 배우 사이토 타쿠미가 감독이 어 찾아왔다. 7월 4일 개봉 예정인 <13년의 공백>이다. 첫 작품이이라지만 이미 2017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대상, 20회 상하이 국제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3회 시드니 인디 영화제 최우수 각본상 등 우수 영화제에서 연출력과 감독성을 인정받았다.  출연진도 화려하다. 이 영화로  2017 블라디보스토크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마스타 코지를 비롯, 우리에겐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으로 알려진 <어느 가족>의 릴리 프랭키 등 최근 일본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청춘 스타와 연기파 배우의 '협연'과 배우로 출연한 사이토 타쿠미, 칸노 미스노, 마츠오카 마유 등의 연기도 관전 포인트이다. 

 

 

'그사람'이 되어버린 '아버지'
어쩌면 이야기의 시작은 우리가 어디선가 보거나 들었던 '그런'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마츠다 마사토 씨, 가끔은 아들과 캐치볼도 해주는 평범한 아버지인 듯하지만, 사실 무능력한 가장이다. 학교에서 상을 받은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도박장을 찾아야 하는, 하지만 그 '도박'으로 생긴 빚을 갚지 못해 집으로 조폭들이 찾아와 가족들이 맘 편하게 밥 한끼 먹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아버지이다. 

카레 냄새를 숨기지 못해 빚쟁이들의 조롱을 받던 어느 저녁, 담뱃값을 놔두고 아버지는 담배를 사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13년, 아버지가 있어도 가난했던 가정의 형편이야 말해 무엇하랴. 아버지 대신 가장의 짐을 떠안은 어머니는 밤낮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빈 자리는 남겨진 아이들의 몫이었다, 다친 어머니가 못한 일을 해야 했던 형제들, 책상 앞에만 매달리던 형의 눈빛은 한층 매서워졌고, 아버지가 있을 때도 물려받아 허름하고 어깨가 다 나올 정도였던 동생의 티셔츠는 여전히 더 낡은 채 더 마른 동생의 몸에 걸쳐져 있다. 

그렇게 코지와 요시유키 형제와 어머니는 13년의 세월을 견뎠다. 아버지는 '그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13년만에 찾아온 아버지, 아니 아버지의 소식, 13년이 무거웠던 세 모자는 그 누구도 '그 사람'을 찾고 싶지 않다. 
 

 

아버지가 싫습니다, 그런데
마츠다 가족의 비극사를 담담하게, 하지만 그래서 그 비극의 여운이 울렸던 1부, 하지만 영화는 오프닝을 열었던 마츠다의 장례식장 상황의 블랙 코미디를 통해 '반전'을 꾀한다. 똑같은 '마츠다' 씨의 장례식장이라지만 조문온 방문객이나 친지들의 구성만으로도 극과 극의 대비를 보여준 모습, 거기서 살아 생전이나 죽어서도 '초라하고 볼품없는' 그 사람 마츠다가 단적으로 보여진다. 

승려의 독경 등 장례식의 절차가 끝나고 통과 의례로 시작된 조문객들의 '조문사', 본의 아니게 몇 되지 않은 조문객으로 인해 요상한 면면의 조문객들이  '그사람'과 어떤 사연으로 엮이게 되었는가가 드러난다. 

'웃다 보니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블랙 코미디의 전형처럼 도박장의 동료, 직원, 경마 친구, 오갈데 없어 함께 살게된 동거인, 병실 이웃 등이 구구절절 때론 구차하고, 종종 어이없는, 심지어 막무가내인 에피소드들이 일본 영화 특유의 '코믹'한 해프닝으로 이어지며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두 아들 코지와 요시유키의 표정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집을 나간 아버지가 다르게 살지도 않았다.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서도 여전히 마작을 하고, 경마를 하며 살던대로 살던 아버지, 하지만 여전히 무능력하고 세상 쓸모없어 보이던 아버지가 그의 '친구'인지 모를 조문객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조금씩 달라진다. 결국 마지막 가족 대표로 답사를 하게 된 코지, '아버지가 너무나 싫습니다, 그런데 조금은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울먹이고 만다. 

 

 

장례식은 그 자체로 영화의 좋은 소재다. '장례식' 자체가 영화가 된 영화로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1996), 그리고 같은 해 임권택 감독의 1996년작 <축제> 등이 있다.  일본 영화의 고전으로 치는 아타미 주조 감독의 <장례식(1984)>도 빼놓을 수 없다. 장례식은 말 그대로 죽은 사람를 보내는 의식이다. 그리고 그 의식은 각 나라와 지역의 풍습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보여진다.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제 '이승'과 이별을 하는 통과 의례지만, 동시에 그것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별'의 과정이다. 

임권택 감독은 <축제>를 통해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를 통해 가족간에 얽혀진 악연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같은 가족이라지만 처지가 달랐던 삼촌과 조카가, 할머니의 장례라는 공간을 통해 해후하고, 장례 과정의 해프닝을 통해 저 밑에 숨겨두었던 앙금들이 드러나며 한 판 굿처럼 풀어지며 결국 엔딩의 사진 한 장처럼 웃으며 '화해'하는 '해피엔딩',

죽은 자가 펼쳐놓은 마당에 산 자가 자신의 묵은 해원의 굿풀이라는 점에서 <축제>의 그것과 <13년의 공백>은 비슷하지만, 같은 '화장'이라지만, 다른 장례 풍습처럼 그 '해원'의 뉘앙스가 다르다. 

자신들을 버리고 간 아버지, 그 아버지에게 자식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자신의 아이를 유괴해 죽인 범인을 어렵사리 용서하고 찾아간 신애(전도연 분)는 그만 그 범인이 이미 신께 귀의하여 용서를 받았다는 말에 그간 견뎌왔던 분노를 폭발하고 만다. '신'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해원, 그걸 용서할 수 있는 건 역시나 '사람의 몫'이고, 그럴 수 있는 건 결국 '용서받을 자'에 달려있다. 

자신들을, 어머니를 그토록 고생시킨 아버지, '그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아버지',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그 시절의 아버지가 필요했던 아들들, 그들이 13년만에 만난 아버지를 '수용'할 수 있게 만든 건, 그럼에도 '아버지'였던 아버지의 삶이다. 죽은 뒤에서야, 13년이 흘러서야 알게된. 그들이 필요로 할 때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버렸지만 버리지 않았던 '아버지'로 인해 코지와 요시유키는 자신들의 미움이 사실은 그리움이었음을 13년만에야 '시인'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뒤늦게 아내에게 도착한 통지서 한 장은 그녀를 고통 속에 밀어넣었던 13년을 '용서'하는 계기가 된다. 

 

 

근현대사의 가족사가, 혹은 개인사를 뒤틀어진 많은 문제들은 아픔의 왜곡으로 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아픔을 바로 볼 수 없도록 만드는 고통의 시간, 그 '트라우마'는 어느새 왜곡되어 '어깃장'을 넘어, 또 다른 '질곡'의 시작이 된다. 아버지가 싫어 돈을 벌기 위해 대기업에 들어간 아들, 아버지가 집을 떠나, 아니 사실은 아버지가 있어도 야구 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 싶지만 야구 선수는 커녕 자기 몸에 맞는 티셔츠도 입고 자라지 못한 아들, 그들은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아버지의 상실'에 상처받은 아이의 그 상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 우스꽝스러운 장례식을 통해 비로소 그들은 '아버지'를 마주하고, 미움으로만 독해했던 그리움을 시인하고, 아버지를 상실했던 유년의 정체로 부터 자유로워진다. 장례식에 차마 가지 못한 아내 역시 비로소 미움에 봉인해둔 남편을 바라볼 여유를 가진다. 

아버지로 인해 그들을 속박했던 '카르마'로 부터 놓여나는 시간이 된 장례식. 아버지가 부재했던 13년의 시간, 그 시간은 '아버지'의 상실이지만, 동시에 코지와 요시유키가 잃었던 시간이다. 실제 있었던 사연을 1부와 2부로 나뉘어 전혀 다른 극적 구성으로 '실화'의 메시지를 자신만의 색채로 표현해낸 사이토 타쿠미 감독에게 첫 작품으로 '연출'상이 수여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 특히 2부, 한 편의 블랙 코미디와도 같았던 장례식을 통해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을 변주하여 가족의 해원을 여운있게 풀어낸다. 

by meditator 2019. 6. 16.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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