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각 지자체에서 문화적 사업에 지원을 하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와 함께 각 지역마다 지자체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다양한 공연이 일년 내내 펼쳐지고 있다.

성남 지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 중에서도 성남 아트 센터의 대표적 브랜드가 된 건 바로 이제는 영화도 한 편 보기 힘든 '만원' 한 장으로 연극을 관람할 수 있는 '시리즈-연극 만원'이다. 일찌기 이재명 전 시장 시절 '만원의 행복'으로 시작된 이 연극 시리즈는 지난 9년간 단 한 번의 '인상'도 없이, 은수미 시장 취임 이후에도 '시리즈-만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만원'이라고 해서 얕잡아 볼 게 아니다. 이미 '무조건 예매'해야 하는, 조금만 늦으면 좌석을 'get'하기 힘든 공연으로 이미 입소문이 자자한 터 대학로에서 이미 화제작으로 검증받았던 작품, 스테디 셀러로 오랫동안 회자되었던 작품들, 박근형, 임영웅, 서재형, 이해제 등 유명 연출가의 작품 등 '만원'으로 가치 매길 수 없는 좋은 작품들이 '지자체'의 지원에 힘입어 시민과 만난다. 

지난 6월 14일부터 16일까지 성남 시민과 만난 공연은 <우리 노래방 가서 .... 얘기 좀 할까>이다. 2008년 초연 이후 공연 배달 서비스 <간다>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공연되었던 이 공연은 최근 <극한직업>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진선규, 김민재 등의 출연작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우리 노래방 가서....얘기 좀 할까?(이하 우리 노래방 가서)> 공연의 개막은 따로 경계가 없다. 마치 '경계 없음'이 이 연극의 특징이라도 되는 양, 놀이터, 그 앞에 노래방으로 연상되는 무대 장치에 걸터 앉아있는 청년 한 명이 슬그머니 객석 쪽으로 내려와 청소를 시작한다. 관객들에게 '발 좀 들어 보세요'라며 천연덕스럽게 말을 붙이며 청소를 시작하던 그는 다짜고짜, 자기 자신도 어색한 이런 컨셉이 바로 '연출'의 의도임을 대놓고 폭로하며 공연을 연다. 

이어진 그의 폭로, 노래방이라는데 뒤쪽에 놀이터가 들어앉아있다는 것이다. 정말 가운데 노래방으로 연상되는 공간이 있고 그 뒤에 시소, 구름다리, 그네가 나란히 놓여 있다. 연출 왈, 사람들이 꼭 노래방 와서 노래만 하란 법이 어디있냐고, 그러면서 놀이터를 들여놨다는 것이다. 바로 이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조합, '노래방'과 '놀이터'의 조합, 바로 이런 무대 장치가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통한다. 

 

 

노래방에선 무엇을 할까? 
그런 어울리지 않는 장치의 '아이러니'는 등장한 첫 손님으로 이어진다. 띵똥 벨 소리와 함께 등장한 중년의 남자는 다짜고짜 노래방 직원에게 '밥'을 시킨다. 노래방인데 노래가 아니라 밥을 시키는 손님에 어이없어 하는 직원의 의사를 무시하고 천연덕스럽게 밥을 시킨 중년 남성은 노래를 하기는 커녕, 밥을 먹으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리고 등장한 아들, 

예상되듯 중년의 아버지와 대학생 아들의 불통, 연신 시간이 없다는 아들과 싫다는 아들에게 억지로 자신이 먹던 밥까지 권하며 어떻게든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보려는 아버지, 하지만 아들은 왜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노래방으로 불렀나며 타박을 할뿐 아버지와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연신 불안한 듯 들여다 보는 핸드폰, 

그 전 날 아들의 자취방까지 찾아갔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불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나마 조용히 편하게 아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노래방'을 고른 것이다. 그리고 이건 앞서 노래방 안에 들어찬 놀이터와 같은 이치이다. 노래방이라고 꼭 노래만 하란 법 어디 있나? 밥도 먹을 수도 있고, 대화도 나눌 수도 있고.

대화가 필요해
그런데 그 '대화'라는 게 과연 서로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대화가 될까? '노래방'에 단 둘,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은 연신 말을 뱉어 내놓지만 그 말들은 그 좁은 노래방이란 공간 속에서 튕겨질 뿐 좀처럼 상대방에게 닿지 못한다. 

하나의 노래방, 그곳에 들린 서로 다른 커플들,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여자 친구, 그리고 아버지와 연인, 연인이던 중년의 여성과 그 친구들, 그리고 딸까지 모두들 '노래방'에 와서 '노래' 보다 '대화'를 하고자 애쓴다.

 

 

그렇게 노래방이 소통하지 못한 커플들의 '대화'의 장으로 배치된 것처럼, 배경인 듯 보이던 놀이터는 소통하지 못한 개인들의 답답함을 풀어내는 '해우소'같은 공간이 된다. '노래방'에서 '소통'의 답답함을 느낀 '커플'에서 튕겨져 나온 개인들은 '화장실'을 핑계로 놀이터에서 '번민'한다. 

오래도록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다가 이제야 연인을 만나 새 출발을 해보려는 아버지,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속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방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는 아버지가 창피하기만 한 아들, 그러나 정작 그 아들 역시 노래방에 여자 친구를 끌고오다시피 하여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이별'을 당하고야 말고, 그토록 아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연인에게 아버지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사실 연극 속 에피소드들은 일상적인 우리 사회 관계들의 단면들이다. 소통 부재인 부자지간, 일방적인 연인 관계, 새출발이라기엔 과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중년의 연인들, 이들 평범한 이야기들이 놀이터가 배경인 노래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소통의 부재', 혹은 '소통의 어려움'을 드라마틱하게 드러낸다. 

물론 연극은 '소통의 부재'를 매개로 '해피엔딩'을 향해 방향을 튼다.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는 세상 더할 나위없는 순애보의 주인공이 되고, 과거의 그림자에서 여전히 짖눌려있던 중년 여성은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딸을 보며 새 출발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전반부에서 '소통의 부재'를 전면에 내세웠던 연극은 그 '부재'를 노래방에서 울려퍼지는 '마이웨이',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등을 통해 중년의 해피엔딩으로 급선회한다. 덕분에, 아들의 집착적인 소통의 부재는 생뚱맞은 에피소드로 끼워진 모양새가 되어 버린다. 

최근 각 지역 문화 공간에 올려진 연극의 주고객은 상당수가 중년의 관객들이다. 그에 따라 대학로에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들 역시 이들 연령 고객층을 배려하게 된다. 거기에 중년의 정서를 울려줄 추억과 그 시절 노래들이 빠질 수 없다. 덕분에 '소통의 부재'를 주제 의식으로 삼았던 <우리 노래방 가서>는 결국 뒤늦은 중년 커플의 사랑의 결실로 흐뭇하게 마무리되기 위해 모처럼 노래방에서 해후한 중년 여성들이 자신들이 대학을 다니던 당시 인기가 있었던 걸그룹의 노래를 부르는 '맘마미아 버전' 동창회를 거쳐 노래방 직원의 열창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며 해피엔딩으로 도약한다.

시끌벅적하게 웃고 즐기다 나와서 생각해 보면 재미는 있었는데 과연 이 연극이 중년 커플의 러브 스토리를 말하고자 하는 건지, 닿을 수 없는 소통의 부재를 말하고자 하는 건지 헷갈리는 건 타겟층에 맞도록 기획된 연극들의 딜레마이다. 

by meditator 2019. 6. 21.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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