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의 pd는 우리 예능사의 산 증인과도 같은 인물이다.
1977년 mbc pd가 된 그는 mbc 예능의 대명사가 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산파가 되었고, 역시나 <남자 셋 여자 셋>으로 한국 시트콤의 전성기를 열었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공중파에서 그치지 않았다. 개국은 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던 tvn으로 건너가 <막돼먹은 영애씨>, <택시> 등 오늘날 젊은 층들이 선호하는 케이블 채널 tvn을 만들어 내는데 견인차가 되었다. 그렇게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길을 앞장서 가던 송창의 pd가 tvn을 벗어나 선택한 곳은 뜻밖에도 'tv조선'이었다. 늘 '신선하면서도 독창적인 포맷'을 통해 '혁신'의 대명사와도 같던 그의 행보로는 우리 사회 보수 중에서도 가장 치우쳐 있다 평가받고 있는 tv조선으로의 행보는 예상 외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파격적 행보의 첫 발 역시 역시나 파격이다. 3월 15일 tv조선과 tvn은 같은 시간대에 <위대한 이야기> 10부작을 동시에 방영하였다. 케이블과 종편의 콜라보레이션, 2030 세대가 주 타깃층인 tvn과 5060 세대가 주 시청층인 tv 조선의 만남, 이 '적과의 동침'과도 같은 실험은 방송계의 극단적 경향을 완화시킬 서막이 될 수 있을까?
30년의 경력을 가진 송창의 pd는 자신의 tv조선 행을 이제는 현업에서 한 발 비껴서있는 pd의 현업에 대한 '의지'로 표명한다. 채널 이미지보다는 오로지 다시 현업에서 뛸 수있다는 '이기적' 입장에서 선택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선택의 변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tv 조선 역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했기에 자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겠냐'면서 5060 세대에 치우친 tv 조선의 성격을 최소한 3040 세대까지는 폭을 넓힐 수 있는 방향에서 자신의 입지를 마련하고자 한다.
tvn과 tv조선의 콜라보레이션
그런 그의 파격적 행보에 따른 파격적 선택은, 그의 전 직장이었던, 그리고 젊은 층에게 가장 선호도가 높은 방송사였던 tvn과 가장 노회한 층의 선택을 받는 tv조선이 하나의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것이다. 바로 다큐 형식의 단막극 <위대한 이야기>이다.
<위대한 이야기>는 tv로 온 영화 <국제 시장>과도 같다. 누적 관객수 천사백만을 넘어선 <국제 시장>은 복고 정서를 담은 전형적인 어른 세대의 살아온 이야기이다. 하지만 누적 관객수 천사백만이 의미하듯, 그 복고 정서에 젊은 층마저 울고 웃으며 공감했었다. 그리고 아마도 송창의 pd가 주목한 지점은 바로 젊은 층과 나이든 세대가 함께 울고 웃으며 공감했던 그 시절의 '삶'인 듯, <위대한 이야기>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의 문화를 단막극의 형식으로 그려낸다.
첫 회의 포문을 연 것은 김시스터즈의 성공 스토리이다. 전쟁 후 미 팔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수많은 가수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김시스터즈였을까? 방송이 주목한 지점은 단지 전후 문화계을 형성한 인물만이 아니라,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지금 우리 문화계의 주요 흐름이 된 '한류'를 최초로 만든 입지전적 인물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저 '김시스터즈'라는 단일한 문화적 콘텐츠가 아니다. 그들의 어머니인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로써 우리 근대 음악사의 한 획을 그은 전설적 가수요, 김시스터즈의 성공에는 어머니 이난영의 선구적 혜안과 뒷받침이 있었다는 것을 <위대한 이야기>는 이야기의 주목적으로 삼는다.
마치 <국제 시장>의 덕수의 희생을 통해 그의 가족이 살아갈 수 있었듯이 <위대한 이야기>는 어머니 이난영의 적극적인 희생을 앞장 세운다. 전쟁 후 일곱 남매를 남기고 이난영의 남편은 월북 당하고 만다. 어쩔 수 없이 이난영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시 무대에 섰지만, 자신의 아이들은 물론, 오빠의 아이들까지 함께 먹여살려야 하는 형편은 빠듯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무대를 준비 하던 중 잠시 무대에 선 자신의 딸 애자, 숙자, 그리고 오빠 이봉룡의 딸 민자 등 세 명이 자신의 노래를 불러 관객들의 호응을 얻는 것을 보고, 그녀들을 가수로 키울 것을 결심한다.
<위대한 이야기>는 이난영을 어머니이자, 고모만이 아니라, 김시스터즈의 선생님, 매니저 역할을 한 인물로 그려내면서 최초의 프로듀서로 설명한다. 그녀의 남다른 혜안을 통해 김시스터즈는 그저 여느 미군 부대에서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라, 우리 악기 가야금, 장고에서 부터, 서양 악기 드럼, 섹서폰 등까지 연주하는 다재다능한 뮤지션으로 거듭남으로써, 60년전의 '한류'가 되었다.
미군 부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김시터즈의 유명세는 미국까지 건너갔고, 그녀들의 소문을 들은 미국의 유명한 프로듀서는 그들을 미국으로 초빙했다. 라스베이거스로 건너가 그곳에서 공연을 하며 자신들의 진가를 유감없이 선보였던 김시스터즈는 그 여세를 몰아 당시 인기 프로그랢이던 '에드 설리번 쇼' 무대에 여러 차례 출연하기도 하며 당시의 한류를 만들어 갔다.
<위대한 이야기>의 다양한 노림수
tvn과 tv조선을 통해 방영된 만큼 <위대한 이야기>는 세대를 아우르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젊은 층에게는 이름 조차 생소한, 김시스터즈를 '한류'라는 현재 사회의 익숙한 코드를 통해 접근한다. 사실 나이든 세대에게도 그렇다. 김시스터즈는 '김치 깍두기'라는 노래는 있지만 당대 유명했던 다른 가수들에 비하면 그리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김시스터즈를 '목포의 눈물'이라는 나이든 세대라면 그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이난영의 딸들'로 설명해 낸다.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김시스터즈의 성공담이지만, 그들의 특별한 성공을 거두어 내면 그 시절을 살아온 갑남을녀의 평범한 성공 스토리와 다르지 않다. 때로는 버거워하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남다른 희생에 힘입어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에 앞장 섰던 그 시절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어머니 이난영의 존재를 부각함으로써, 드라마는 은연 중에 오늘날의 '한류'라는 것도 기실 따지고 보면, 어머니 이난영처럼, 오늘날의 세대들이 편하게 먹고 살며 그들의 끼를 펼칠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며 이 나라를 일궈 온 앞선 세대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김시스터즈이지만 진짜 주인공은 이난영이다. 어머니 이난영 역을 우리에게 익숙한 소유진이, 김시스터즈를 아역 탈렌트 들과 함께 최배영, 정다은, 허은정 등 신인들이 맡은 것처럼 배우의 비중만 봐도 알 수 있다.
또한 특별한 스타가 아니라, 서민들의 대명사로 그들을 자리매김하기 위해 애쓴다. 목포에서 공연할 당시 미군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하여, '양공주'라 그들을 매도하던 이들이, 막상 그들이 서울로 진출할 때는 서로 앞다투어 먹을 것을 쥐어주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그들을 개인에서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기에 애쓴다. 음료수를 건네 주던 동네 오빠에서 그들이 공연하는 클럽의 매니저로 또 다른 성공담을 써가는 '키다리 아저씨'같은 존재의 이야기 역시 양념 구실을 한다. 또한 그 시절을 모르는 그 누가 봐도 흥미를 느낄 수 있듯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목포의 눈물'을 비롯한 '김치 깍두기' 및 각종 팝송 퍼레이드는 <위대한 이야기> 시리즈로 시선을 끌어모으는데 손색이 없다.
이런 송창의 pd의 신선한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위대한 이야기>는 일단 tvn과 tv 조선의 합작품이라는 이유에서만으로도 화제를 일으키는데는 성공했다. 또한 합작이 아니더라도, tv조선의 개혁은 tv조선만이 아니라, tv조선의 극단성을 제고해야 시점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한때 종편이 개국하고, 허지웅 등이 그곳에 출연했을 때 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비난했었다. 그리고 외면하고 제쳐주면 저절로 종편이 고살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정부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거기에 '조선' '동아'라는 전통적 영향력을 덧칠하여,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보에 취약한 중장년 세대들의 눈과 귀를 홀리며 어느 틈에 종편은 우리 문화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중장년 층이 자주 드나드는 식당에서 tv 조선을 만나는 것은 더 이상 생소한 일이 아니다. 의식있다 하는 중장년 층이 어느 틈에 하루 종일 뉴스 분석을 해대는 종편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도 예삿일이 되었다. 송창의 pd가 그 예전 tvn을 젊고 감각있는 케이블로 거듭나게 했듯이, 수구 꼴통 이미지의 tv 조선이 '몰상식'의 이미지라도 벗어나기를 바란다.
송창의 pd는 공중파를 한때는 잘 나갔지만 '몰락하는 가문'으로 표현한다. <뽀뽀뽀>에서부터 가요무대>까지 전세대를 아울러야 하는 공중파는 케이블 종편이 등장하면서 자유 시장 체제로 바뀐 방송 환경에서, 타깃 시청층을 중심으로 한 케이블과 종편의 프로그램들이 양산되는 체제에서 고사되어 가는 공룡과도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가 첫 선택으로 선보인 <위대한 이야기>는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를 아우르고자 한 것이다. 과연, 이 불가능해 보이는 선택의 결과는 어떨지? 첫 술에 익숙한 듯 색달랐지만, 아직 배가 부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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