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의 속설에 '이름따라 간다'는 말이 있다. 

영화 <끝까지 간다>의 경우 <무덤까지 간다>라는 원제를 바꾼 후, 정말 오래도록 개봉관을 누리는 영광을 안았다. 그 정반대의 경우를 들자면, 아마도 최근에는 <투명인간>이 가장 어울리는 예가 될 듯하다. 와신상담 끝에 돌아온 강호동의 예능이란 말이 무색하게, 최저 1.6%의 시청률을 찍으며 <투명인간>은 정말 투명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투명인간>이 3월 11일, 봄을 맞아 심기일전 변화된 모습을 선보였다. 어라, 그런데, 이 기시감은 뭘까? 자꾸 <체험 삶의 현장>이 떠오른다. 그런대 어쩐다, <체험 삶의 현장>이 더 재미있었던 거 같으니!

가마솥 공장으로 간 <투명인간>
'직장인들을 위해 mc와 게스트들이 뭉쳐 한 직장을 찾아가 그들과 신나는 '투명인간. 놀이를 벌이는 프로그램'
이것이 <투명인간>이 내세운 프로그램의 취지다. 케이블의 <미생>이 신드롬급의 인기를 누리며 종영한 이후, 그 여세를 몰아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미생>을 방영한 tvn에서 연예인들의 직장 체험 예능인 <오늘부터 출근>을 방영하고 있는 상태에서, '직장인' 예능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직장인을 위한 '투명인간 놀이', 하지만 첫 회부터 <투명인간>은 딜레마에 빠진다. 휴가를 놓고 직장인들을 상대로 웃음 내기 등 각종 게임을 벌였지만, 어거지 웃기기가 난무하는 가운데, '위로'는 커녕 보는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공감가기 힘든 게임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mc나 게스트들 보다 차라리 직장인들이 더 웃기는 상황이 빈번하게 등장하면서, 그저 <미생>에 편승한 안이한 기획이 아니었는가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9회를 맞이한 <투명인간>은 대폭 프로그램의 성격을 바꿔, '직장체험 후 함께 회식하기'라는 새로운 미션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첫 회, mc진이 찾아간 곳은, 지금까지 <투명인간>이나, <오늘부터 출근>이 대상으로 했던 화이트 칼라들이 일하는 사무실이  아니라, 가마솥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프로그램의 성격이 바뀐지도 모르고 가마솥 공장에 들어서는 mc들, 사장님은 마치 지각하는 여느 직원처럼 다룬다. 영문도 모른 채 작업복과 헬맷, 그리고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가마솥을 만드는 공정에 투입된 이후에야 프로그램의 성격이 바뀌었음을 눈치 챈다. 말하자면 '깜짝쇼' 같은 것이다. 

이후 mc들은 거른 흙으로 솥 모양의 중자를 만들고, 그 중자 위에 거푸집을 씌우고, 쇳물을 부어 가마솥을 만드는 공정을 거쳐, 자신들의 손으로 가마솥을 완성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가마솥에 윤기나는 쌀밥을 지어 가마솥 공장 직원들과 함께 쌀밥 '회식'을 한다. 

그 과정에서 정태호와 김범수는 대여섯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흐트러지지 않는 모양의 중자 만들기에 성공하는 눈물겨운 성공담을 만들어 냈고, 강남은 함께 일하는 67세의 직원분에게 스카웃을 요청받을 정도로 센스있는 능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뜨겁고 눈이 부신, 그리고 종종 불꽃이 튀기도 하는 40kg상당의 쇳물을 직접 부어 가마솥을 만드는 어렵고도 위험한 공정에 참가하는 과감함도 보여주었다. 



<체험, 삶의 현장>인데, 그만큼도 재밌지 않은 딜레마
그런데, 이 과정은 이미 사라진 <체험, 삶의 현장>에서 이미 충분히 보여진 과정이었다. 웃겨보려 애쓰고, 쇳물과, 흙과 온갖 실랑이를 벌이는 등, 엎어치고 메쳐도 결국 <체험, 삶의 현장>의 손바닥 안이었다. 아니 오히려 보고 있노라면, 어설프게 저러지 말고, 까놓고 그 예전 <체험, 삶의 현장>에서 맛깔난 내레이션으로 현장의 맛과 재미를 더해준, 배한성씨를 불러오는 게 어떨까 싶게, <체험, 삶의 현장> 같기는 한데, 영 그 맛은 아닌 것이다. 

이도저도 아닌 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한 어설픈 웃기기 예능에서 탈피한 용기는 가상했다. 하지만, 그 탈피가 결국은 이미 그 컨셉을 울궈먹을 대로 울궈 먹어 사라져 버린 프로그램, <체험, 삶의 현장>을 벗어나지 못한 건, 결국, 직장인을 상대로 한 예능의 좁은 입지를 스스로 증명한 셈이 되버리고 만다. 

그리고 보다보면, 획기적인 변화까지는 좋은데, 문득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 프로그램 제목이 '투명인간>이지? 라고. 투명인간은 커녕, 가마솥 공장을 방문한, <투명인간> 팀은 그 예전 직장인들을 즐겁게 하겠다는 취지는 다 잊은 채, 그곳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밀어내고, 하루 종일 그 공장의 주인 노릇을 한다. 마치 선거 때 정치인들이 하루 와서 봉사하고서는 서민들의 삶을 다 안다고 자부하듯이 하루 만에 그 누구도 해내기 힘든 가마솥을 완성했다고 자부심에 넘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 예전 하듯이 '위로'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인지, 이제 직장인들을 '위로'하겠다는 취지는 벗어던지겠다는 것인지 문득 의문이 드는 것이다. 

아쉽게도 3월 11일 변화된 <투명인간>은 여전히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다른 방송국의 예능들마저도 5%를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심지어 종편보다도 못한 2.8%의 시청률을 보였다. 물론 변화의 첫 술에 배부를 수야 없겠지만, 모 아니면 도 식의 변화가, 과연 <투명인간>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면서 이 프로그램을, mc들의 소망처럼 몇 십년을 끌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당장 다음 개편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니.

애초의 의도가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변화를 시도한 <투명인간>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리저리 컨셉만 바꾸다 자멸하고만 강호동의 <달빛 프린스>가 떠오른다. <투명인간> 속 강호동은 그 예전 <달빛 프린스> 속 강호동처럼 무엇을 해도 강호동만의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가마솥 공장 사장님은 애써 강호동을 열심히 일한 직원 2위에 올렸지만, 3월 11일 방영분의 강호동은 강남이나, 정태호만큼도 현장에 어우러 들지 못한다. 그저 어디를 가나 강호동식이다. 심지어 김범수만큼도 웃기지 않는다.  아쉽게도, 허리에 파스를 도배을 하면서 애써 일하고,(물론 이 파스의 원인이 <투명인간>인지, <우리동네 예체능>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 높여 무언가를 말하지만 이제 무엇을 해도 진부해 보이니 안타깝다. 더구나, <체험, 삶의 현장>과 같은 컨셉을 가져간다면, 굳이 이 고정된 mc진이 필요한가 싶기도 한다. 차라리 신선한 인물들의 체험이 더 새로운 그림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은데, 차라리 복고풍으로 리턴즈 <체험, 삶의 현장>이 어떨까?

by meditator 2015. 3. 12. 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