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아치아라의 비밀> 4회 시청률이 5.2%(닐슨 코리아 기준)가 나왔다. 야구 중계 관계로 mbc의 <그녀는 예뻤다>가 결방한 가운데 3회가 7.1%나왔던 거에 비하면 폭락에 가까운 수치다. 하지만, 역시나 <그녀는 예뻤다>의 결방으로 12%까지 치솟았던 <객주-장사의 신> 역시 10%대로 내려 앉은 거나, 그 이전 1,2회 시청률이 5~6%였던 거로 보면, 그저 조금 낮아지거나, 그 수준을 유지한 것이라 평가하는 것이 맞겠다. 5~6%의 시청률, 그 결과만을 놓고 보면,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에서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야 하는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의 낮은 시청률이 왜 당연한 것이냐고? 그것은 굳이 <마을>을 걸고 넘어질 것이 아니라, <마을>과 유사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시청률을 살펴보면 알 수 있겠다.
8월 11일 종영한 kbs2의 <너를 기억해>는 최고 시청률이 5.3%였다. 콘텐츠 지수면에서 양호한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방영 내내 이 드라마는 4~5%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좀 나은 편은 2014년 4월 종영한 <신의 선물>이다. 역시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였던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이 10.6%를 기록했다. 하지만 역시나 대부분의 회차는 8~9% 정도 수준이었다.
<마을>을 비롯한 <너를 기억해>, <신의 선물>과 같은 장르의 특징은 미스터리 스릴러로, 그저 틀어놓고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인 드라마가 아니라, 잠시 잠깐 한 눈을 팔면 중요한 힌트를 놓칠 수도 있는, 사건의 추이를 주의깊게 주목하고 그 이면의 것들을 추리해야 하는 생각하는 드라마들이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유괴 사건으로, 연쇄 살인으로 시작된다 한들, 결국 드라마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하며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마을>은 무섭다. 심지어 방영하는 시간 혼자 보기 힘들 정도로. 그런데 <마을>dl 무서운 이유는 그저 간간히 나타나는 죽었다던 김혜진쌤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드는 의심, 그리고 그 의심을 뒷받침하는 시청자의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이 드라마를 무섭게 만든다. 실제 드라마 속 설정들은 그리 잔인하지 않다. 무섭지도 않다. 기껏해야 해골 쫌 나오고, 귀신인 듯한 여자가 창문에 매달리고 만다. 하지만 그보다는 비밀을 숨긴 사람들의 묘한 시선, 속을 알수 없는 사람들이 횡행하는 마을이 무섭다. 그들의 숨겨진 사연이 가진 폭발력이 두려운 것이다.
바로 그런 '생각하는 드라마' 라는 것이 현재 공중파 드라마에서는 '이질적'인 장르가 되었다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낮은 시청률의 한 원인이 된다. 즉, 스스로 '바보 상자'란 그 이름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공중파 드라마들은 시청률이란 이름으로 대중들이 가장 손쉽게 소비할 수 있는 장르에 몰입해오다 보니, 결국 이제 이렇게 생각을 하며 따라가야 하는 드라마는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편성에 따른 '광고'를 무시할 수 없고, 그래서 리모컨을 수호하는 중장년층의 구미에 맞는, 그들이 쉽게 '소비'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드는데 천착하다 보니 점점 더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을 한다는 것이 낯선 일이 되어가는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sbs의 월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는 묵직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드라마를 시작했지만, 역시나 시청률이라는, 그래서 대중들을 손쉽게 유혹할 수 있는 이야기꺼리를 위해, 미성년자 강간 장면을 여과없이 내보내고, 마치 무협 게임의 설정과, 일본 사무라이 검법을 우리의 검법인 양 잔뜩 버무려 무술의 내공으로 시청자를 현혹한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 이 높은 시청률의 전제가 되는, 리모컨을 쥐고 있는 중장년츠의 기호라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 드라마, 자극적인 내용의 드라마'를 선호하는, 그들은, 결국 우리나라의 '생각하지 않는 중장년층'으로 귀결된다. '생각없는 세대'를 위한, '생각하지 않는 드라마', 그 속에서 새로운 시도는 점점 고갈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생각없는 세대를 위한 생각없는 드라마는 역으로 이렇게 생각없는 사회를 조장하는 중이다.
생각하는 드라마, 그렇다면 무엇을 생각할까?
생각없는 세대를 위한, 생각하지 않는 드라마, 이 정언은 궤변과도 같다. 그저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말 드라마, 혹은 아침 드라마, 그리고 이제는 그런 드라마를 흉내내는 주중 미니 시리즈에 등장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적을 죽음으로 몰아넣거나, 자신과 똑같이 의식 불명 상태의 환자로 만들어 버리는 설정. '복수'라는 미명아래 자신의 자식마저 외면하고, 혹은 자신의 자식을 이용하여 누군가를 위해하는 설정들은, 오히려 웬만한 미스터리 스릴러의 내용들을 능가한다. 설정의 호불호, 혹은 자극성을 가지고 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는, 대부분 미스터리 스릴러물이 추구하는 주제 의식이 대중들의 입맛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너를 기억해>도, <신의 선물>도, 그리고 이제 <마을>도 모두, 결국 그 끝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욕망에의 반추, 반성, 그리고 징벌이다. 여타 드라마들이, 욕망에 대한 징벌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그 왜곡된 욕망을 또 다른 욕망으로 상쇄하는 반면, 대부분의 미스터리 스릴러들은, 인간의 욕망이 저질러 놓은 범죄로 시작하여, 그 헛된 욕망의 헛헛한, 혹은 무자비한 결말로 시청자를 이끈다. '성공'과 '밝은 미래'와 '화목'을 이야기하는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꺼림찍한 것이 시청자들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이제 4회에 이른 <마을>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수상하다. 이제 4회에 불과하지만, 등장인물들은 주연이고, 조연이고 할 것없이 저마다, 자신의 욕망으로 인한 숨기고 싶은 과거를 가진 인물들인 듯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마을을 관광 특구로 만들기 위해 살인 사건마저 덮으려는 도의원 서창권(정성모 분), 하지만 그가 살인 사건을 덮으려는 데는, 의문의 실종자 김혜진이란 인물과의 석연찮은 인연때문이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다. 가영이란 여고생이 자신의 어머니와 서창권의 사진에 집착하듯, 혹은 서창권의 아내 윤지숙의 '서창권의 여자 관계때문이라면 마을 모든 여자들을 적으로 돌려야 한다는' 말처럼 과연 이 마을에는 서창권의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의 삿된 욕망은 마을의 실종 사건의 배경으로 검게 피어오른다. 하지만 권력을 지닌 서창권만이 아니다. 그에게 전화 한 통화로 미술 선생을 정직원으로 만들 수 있는 그의 처제처럼,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저마다의 욕망으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김혜진 실종 사건에 직간접적 관련자들인 듯 보인다. 심지어 파출소 한경사(김민재 분)마저 예외가 아니다.
사망으로 처리된 자신의 과거를 찾아 마을로 찾아온 한소윤(문근영 분), 그녀가 찾아낸 죽지 않았다던 언니 한소정, 하지만 죽지 않았다던 언니는 자신의 친언니가 아니었고, 입양된 언니는 사고 후 살아남았지만, 소윤의 외할머니의 외면으로 보육원에 버림받은 신세가 되었다. 심지어 어렵사리 찾아낸 고모로부터, 아버지조차 친아버지가 아니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렇게, 회를 거듭하며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는 사건들은 어른들의 부도덕함이다. 그리고 그런 어른들의 부도덕함으로 덮인 마을의 비밀에 유나, 가영 등 철모르는 아이들이 덤벼든다. 문근영이 분한 한소정 역시, 여전히 앳된 그녀의 모습처럼, 여섯 살의 나이에 사고를 당한 그 시점에 머물러 있는 어른 아이이다. 즉, 부도덕의 세계에 세례를 받지 않은 그래서, 면죄부를 가진 아이들이, 부도덕한 어른들의 세계에 메스를 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을은 단막극 <늪>으로 몬테카를로 tv 페스티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던 도현정 작가의 작품이다. 남편의 불륜을 궁극으로 자신의 처절한 죽음을 통해 복수를 가했던 처연한 <늪>의 주제 의식은, 일반적인 드라마의 '복수'화법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복수'도 하고, 나는 나대로 승승장구 해야 하는 요즘 시절, 과연 <마을>속 욕망의 노예가 되어 과거를 덮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결말을 이끌런지, 부디 시청률이 낮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지 말고 자신의 몸을 던져 남편을 징죄하던 <늪>처럼 오래도록 기억되는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 어차피 욕망을 반성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에 내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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