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걷다 문득 눈에 들어 온 시뻘건 테두리의 현수막, 거기엔 '김일성 주체 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새누리당의 국정 교과서 선전 문구가 쓰여져 있다. 저 '얼토당토치 않은' 문구가 고즈넉한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 걸려 있다니! 도대체 왜? 저 당이 바보 같아서? 한심해서? 아니, 냉정하게 보자면 그게 먹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그것을 읽은 이 아파트 단지 주민 중 상당수의 사람들은 현재의 국사 교과서가 어떤가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기도 전에, 새누리 당이 제시한 '좌경 프레임' 속에서 덜컥 가슴이 우선 내려앉을 수도 있을 터이니. 이런 식이다. 여당은 동네 곳곳의 식당에서 하루 종일 틀어져 있는 종편을 통해 그들이 제시한 '색깔론 프레임'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사람들을 그 프레임에 걸려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넘어진다. 야당이라고 그리 신통치 못하다. 


이런 말도 되지 않은 프레임 정치가 통하는 것은 바로 사람들의 선입견, 고정 관념이다. 6.25라는 민족적 트라우마를 넘지 못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저 시뻘건 테두리의 색깔 선동은 여전히 일정 부분 유효하다. 사람들은 스스로 진실을 알아가는 대신에 미디어와 세상에 떠도는 소문에 의존하여 자신들의 신념을 추수한다. 그게 중뿔나지 않게 세상에 얹혀가는 대한민국의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이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소용되었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 안에 버젓이 김일성 주체 사상 운운하는 현수막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손바닥 뒤집는 듯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 
도대체 드라마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에 대한 리뷰을 쓰겠다고 해놓고 웬 생뚱맞은 새누리당 현수막이니 프레임이니 하는 엉뚱한 소리만 하냐고? 바로 그 세상에 속편하게 얹혀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가 sbs의 수목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마을에 들어온 외지인 김혜진의 실종 사건, 그에 이어 등장한 백골 사체에 대한 수사 사건, 그리고 거기에 얽힌 한소윤, 소정 자매의 사연을 풀어가고 있는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그런데 이 드라마의 제목은 김혜진 실종 사건도 아니라, 아치아라라는 생경한 지명을 내세운 마을이다. 왜 마을이었을까? 그 의문을 8회에 이른 드라마는 조금씩 풀어내고 있는 중이다. 

비오는 저녁 음산한 기운을 드리우며 한소정을 맞이했던 아치아라, 하지만 마을이라는 '촌스런' 지명과는 어울리지 않게 아치아라는 관광 특구 지정을 눈 앞에 둔 제법 큰 소도시이다. 오히려 그 발전된 모습과 달리, 이곳이 여전히 마을인 이유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그 속내를 뻔히 아는 토착적 문화와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을의 분위기는 역으로 마을 사람이 아닌 외지인에 대한 '배타적' 감정으로 드러난다. 즉 우리가 아닌 사람들에 대한 외면과 배척이다. 

김혜진(장희진 분)은 드물에 아치아라에 등장한 외지인이다. 마을의 미술 학원 쌤으로 일을 하던 그녀는 마을의 중심 인물인 서창권(정성모 분)과 불륜을 일으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사라졌지만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사라진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로부터 이년 여의 시간이 흐르고 이제 다시 또 한 사람의 외지인이 마을에 등장한다. 마을의 고등학교에 영어 교사로 온 한소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묘하게 김혜진이 쓰던 공간을 물려받은 그녀는 김혜진의 유골을 발견하는 등 가는 곳곳마다 사라진 김혜진의 흔적과 조우한다. 그리고 이제 8회에 이르러 드디어 김혜진이란 이름의 그녀가 사실은 한소윤의 의붓 언니였던 한소정임이 드러난다. 

한소정은 아이들의 선생님이란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고, 심지어 서창원의 아내 윤지숙은 이상한 자신의 아이 유나(안서현 분)의 문제로 의지하기 까지 했었다. 하지만 한소정이 김혜진으로 살았던 한소윤의 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순간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돌변한다. 따랐던 아이들은 한소정에게 '환향녀'라며 한소정과 동급으로 취급하며 대놓고 조롱을 하고 무시하고, 친절하던 마을 사람들은 물까지 뒤집어 씌우며 악다구니를 퍼붓는다. 김혜진의 장례식에 까지 왔던 그 사람들이. 

분명 서창권과 함께 불륜을 저질렀음에도(?), 오로지 김혜진에게만 돌팔매를 던진 사람들, 그래서 그 김혜진이 사라져도 그 누구하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김혜진의 엄마연 하는 사람이 뒤늦은 장례식을 하겠다고 하자, 그 장례식에 나타나 아낌없는 동정을 표명하는 사람들, 그러나 아이들의 선생님인 한소윤이, 그 김혜진의 동생이라고 하자, 불쾌감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심지어 아이들의 선생님으로서 자질을 운운하기까지 하는 사람들, 바로 이 비논리적인 도덕적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아치아라의 사람들이고, 드라마는 이들에 주목한다. 



공모자 마을 사람들
부도덕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이 우리 안의 사람이라면, 심지어 그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남자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눈 한번 찔금 감는 반면에, 그 상대인 여성, 외지인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모욕과 배척을 가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사회적 정치적 삶을 박탈 당한 채 생물학적 삶만을 가진 존재, 박탈당한 삶, 배제된 존재)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 대한 이해 관계가 없는 하지만 자신의 인간적 모습을 표명할 수 있는 장례식 같은 곳에선 거침없이 '인도적' 행위를 보인다. 그러나, 그 과거화된 사건이 다시 현재로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거침없이 '폭력적'으로 변화된다. 그 진실이 자신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님에도, 마치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부도덕한 사태에 대한 동참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치 상처입은 까마귀를 그 동료들이 달려들어 부리로 짖이기듯, 그 피해자와 그와 연관된 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던짐으로써 마을의 위장된 평화를 지키고자 한다. 

8회를 경과하며 드러나는 마을 사람들의 이런 표리부동한 폭력적 감정에서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하루 아침에 태도가 돌변하여 선생님에게 '환향녀'라 손가락질을 하는 아이들, 김혜진에 대한 진실을 알려고 하는 대신에, 마을에 덧씌워진 불륜의 프레임에 가장 앞장선다. 진실 대신에 어른들이 가르쳐 준 왜곡된 도덕 교육(?)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참교육'을 해야 하는 필요성은 새로온 선생님에게 거침없이 수모를 안기며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들에게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값싼 동점심에는 후하다가도, 그것이 묵은 해원을 긁어 올리며는 거침없이 불쾌감을 넘어 폭력적 태도마저 드러내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서는 '세월호 사태' 등에 대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태도가 고대로 복습된다.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에서는 아직도 사건도, 범인도 윤곽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회를 거듭할 수록, '심정적 공모자'인 마을 사람들의 표리부동은 도를 더한다. 사건이 불법 입양이든 불륜이든 상관없이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가능케 한 공모자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0. 30. 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