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다고~'

<굿닥터>를 보고 있노라면, 이적과 유재석이 함께 부른 '말하는 대로'라는 노래가 자꾸 떠오른다. 그리고 요즘 한참 유행하는 수많은 자기계발서의 문구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꿈을 가려자. 당신의 꿈을 향해 달려라.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실력을 키워라. 아니나 다를까, 3일자 방송 말림에 김도한 교수는 말한다. '네가 이 병원에 남고 싶으면, 나를 뛰어넘으라'고

2일 밤 방송된 <굿닥터>에서 수술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 성악 소년 규현(정윤석 분)의 이야기는 박시온의 진단 의학과 전출과 함께 맞물려 진행되었다. 
드라마는 그토록 노래를 잘 부르던 소년이 알고보니 소리가 싫어서 빈  MP3를 늘 귀에 꼽고 있었으며, 어린 시절 부터 늘 노래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외톨이였음을 밝힌다. 그런 그에게 엄마는 지금까지 해온 거을 생각해서라도 무리를 해서라도 독일 유학을 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런 난처한 처지의 소년에게 박시온은 다가간다. 그리고 늑대 소녀 은옥을 보여준다. 말도 못하지만, 규현의 노래를 듣고 행복해 하는. 그러면서 규현의 진짜 꿈이 독일로 가 합창단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규현은 진짜 웃기 위해 수술을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박시온 선생은 언제나 그렇듯, 수술 과정에서 기가 막힌 타이밍에서 규현의 목소리를 잃지 않게 할 방법을 알아내고, 그 방법으로 규현의 수술은 성공리에 끝난다. 
아름다운 감동 휴먼 스토리이다. 


김도한 교수는 혼자 길을 건너다 사고로 죽은 동생을 생각하며 박시온의 가능성을 접어버리고 박시온이 원하는 의사를 하면서 안정되게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진단 의학과'를 택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건 틀린 방법이라 말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고 말한다. 상식적 의학의 수준에서는 목소리를 잃을 게 뻔한 규현이가 박시온이라는 기적을 통해 목소리를 잃지 않듯, 자폐에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박시온이 자신의 꿈인 소아 외과 의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서번트 증후군은 자폐증 등의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 중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것으로 실제 지적 장애 환자 2000 명 중 1명에 나타날까 말까한 희귀 증상이다. 여기서 자폐증 등의 지적 장애는 '완치'가 되는 질환이 아니라, 훈련과 치료를 통해 그저 완화가 될 뿐인 뇌의 이상이다.

그렇다면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해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박시온의 꿈에는 문제가 없을까?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 박시온은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몹시도 '사회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병원 복도를 지나치다 울고 있는 임부에게 다가가듯, 주변의 모든 환자들을 마치 어린 시절 잃은 토끼처럼 여기며 다가가는 순수한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소아 외과 다른 의사들이 그를 접어주게 된 동기처럼, 뛰어난 능력으로 김도한 선생마저 뛰어넘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서번트 증후군의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그들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족한 사회성을 채워줄 사회의 배려와 보살핌이 필요한데, 드라마 속 박시온은, 그 스스로 그 역할 까지 해내는 수퍼맨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지극히 주관적인 자기 중심성이, 오히려 <굿닥터>에서는 모든 것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쓰이고 있다. 


박시온의 병적 징후가 순수함과 능력이 되면서, 그 반대 방향에 있는 김도한의 현실주의는 무기력해 진다. 
오히려 김도한 선생에 의한 박시온의 진단 의학과 전과를 아이의 꿈을 짓밟은 것으로 여기지 말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어땠을까? 애초에 불가능한 서번트 증후군의 의사니까, 그에게 휴먼 닥터로써의 날개를 달아 마음껏 날아보게 하지 말고, 정말 현실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를 진단 의학과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어땠을까.
그저 기적처럼 성악 소년에게 목소리를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설사 목소리를 잃어도 그 소년이 웃음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사실은 현실인 것처럼. 

물론 <굿닥터>의 매력은 박시온에게서 시작된다. 그의 순수함과 오로지 환자만을 생각하는 자기 중심성이, 그리고 천재와도 같은 서번트 증후군의 증상이 늘 기적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보다보면 눈물겨운 휴먼 드라마 사이로 슬그머니 다가오는 건, 판타지의 공허함이다. 지적장애라 하더라도 능력만 있으면, 연차랑 상관없이 펠로우의 편애(?)를 받고, 선배보다 앞서 수술실에 들어가는 또 다른 능력주의가 읽혀져 때론 씁쓸하기 까지 하다. 3차원 입체 영상으로 인간의 몸을 투시가 가능한, 교수인 김도한도 미처 생각해 내지 못한 방법을 떠얼리는 능력이 없는 박시온이라면 꿈은 언감생심일 것이다. 

그래서 <굿닥터>의 박시온이 휴먼 닥터의 구름 속으로 붕붕 날아갈 수록, 자꾸 씁쓸함과 공허함이 커져간다. 그건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낳은 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용기 있는 청춘이 아니라, 오히려 그럴 수록 꿈조차 꿀 수 없는 열패감에 시달리는 청춘이요, 몇몇 저자들의 두둑한 호주머니인 것과 비슷하다. 


by meditator 2013. 9. 4. 10:32

kbs2의 <굿닥터>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예언자가 되어간다. 

월요일 방영 중반 차윤서(문채원 분) 선생이 모처럼 노는 날 어디에 가고 싶냐는 질문에 박시온(주원 분)은 동물원에 가고 싶다고 대답한다. 
당연히 차윤서와 박시온은 동물원에 놀러가고, 거기서 차윤서는 수의사가 되어도 좋은 만큼 동물의 마음을 읽는데도 탁월한 박시온의 능력을 알게 된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회분 방영 말기, 등장하는 환자가 개들 사이에서 방치되어 길러진 '늑대 소녀'였다. 물론 강력한 진정제 말고는 제압할 수 없는 그 늑대 소녀를 환자로 제대로 대우하는 것은 박시온 뿐이다. 



<굿닥터>를 보다보면 어떤 장면이 나오거나, 혹은 누군가 등장하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되겠구나 예측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드라마는 십중팔구 그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을 최고로 만들겠다는 약혼자 채경에게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좀 이해해 주면 안되겠냐고 말하던 김도한은 채경이 기다리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호, 혹시 차윤서를 불러내는 거 아냐? 하니 아니나 다를까 차윤서를 불러낸다. 그러고는 채경이 그토록 궁금해 하던 자신의 속 이야기, 자신의 정신지체3급 동생이 자기로 인해 죽게 되었다는 자신의 죄책감을 털어 놓는다. 박시온이 차윤서를 만날 때마다 딸국질을 해대는 것에 버금가는 노골적인 속내다. 
어디 그뿐인가, 박시온의 엄마가 등장하는가 싶더니, 역시나 병원 드라마답게 아파서 쓰러진다. 그것도 차윤서와 박시온 앞에서, 게다가, 엄연히 맡은 과가 정해져 있는 종합병원임에도 소아외과 차윤서가 차트를 들고 그녀를 담당한다. (바로 지난 주 다른 과 환자를 데려갔다고 멱살잡이를 하더니 말이다) 그리고 엄마의 사연을 가장 박시온을 안쓰럽게 여기는 차윤서가 알게 된다. 병원과 엄마의 전형적인 클리셰이다. 

<굿닥터>를 보고 있노라면 신선한 줄거리가 아니다. 어디서 한번쯤 보던 것이나, 혹은 '늑대 소녀'처럼 충격적이어 보여도. 그로 인해 박시온이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고, 또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다음 이야기가 예측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도, <굿닥터>는 재미있다. 그건 뻔한, 혹은 예측 가능한 이야기들이 <굿닥터>를 이루는 하나의 씨실이라면,  그 씨실을 얽어가며 그림을 만들어 내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주는 재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 캐릭터들이 어느새 공감을 얻어가며 '내'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굿닥터>에서, 말 그대로 좋은 의사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세 사람이다. 
대표적으로 드러난 것은 서번트 증후군으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 생활을 하기엔 많이 부족해 보이는 박시온이다. 그의 의사로써의 재직 자체가 병원 원장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만큼, 장애인의 경계에 서있는 박시온 선생은 말 그대로 화약고이다. 이 드라마의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그로 인해 생겨나고, 그로 인해 해결되는 말 그대로 좋은 의사의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분명 20일자 엔딩에서처럼 자신의 환자를 위해서라면 그 옆의 경호원을 밀치고 나자빠지게 할 만큼 맹목적이고 불온한 박시온이지만, 작가의 인터뷰에서 보여지듯이, 포레스트 검프처럼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그는 나타난 결과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매력을 내보이고 있다. 맹목적인 그의 행동들이 체계와 시스템에 억눌린 요즘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힐링'이요, 때로는 눈치없이 내뱉는 그의 말들이 속시원하기 까지 하다. 


하지만, 박시온은 아직 절름발이다. 그만으로는 좋은 의사와 의학 드라마는 완성되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그를 성장시켜 줄 '멘토'이다. 
처음에 최우석 원장(천호진 분)이 그를 데려왔을 때, 그가 박시온의 멘토일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 외로 회를 거듭하면서, 박시온의 뒷치다꺼리를 하고 있는 것은 정작, 그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김도한 선생(주상욱 분)이다. 
차윤서에게 고백한 것처럼, 자신의 섣부른 욕심으로 인해 동생을 홀로 거리로 내몰아 교통사고로 죽게 만든 김도한 선생은 박시온에게 섣부른 기회를 주는 것보다, 그를 제 자리로 돌려 놓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다. 동생 때문에 훌륭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적자인 소아외과에 남아있는 김도한은 박시온을 볼 때마다 동생이 떠올라 힘들어 한다. 
그럼에도 무능력한 과장 아래 김도한은 소아외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위치이고, 본의 아니게, 박시온의 일들을 수습하게 되고, 묘하게도 박시온에게 기회를 주기도 하고, 봉쇄하게도 되는 긴장감있는 '멘토'의 위치에 놓인다. 
<굿닥터>라는 드라마가 기존의 드라마와 다른 매력을 가지게 된 것은, 서번트 주인공인 박시온이 주인공인 것도 있지만, 거기에 덧붙여, 주인공인 박시온에 적대적이면서, 그에 대해 애증을 지니는, 그리고 위치상 멘토가 될 수 밖에 없는 애증의 인물 김도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도한은 김도한 자체로 늘 병원을 집어 삼키려는, 혹은 의료 행위를 입신 양명의 수단으로만 삼는 세력들에게 비타협적이다 못해 적대적이면서, 자신의 직업의 이유를 자부심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념이 뚜렷한 정의로운 존재이자, 그 자신의 사연때문에, 입장 때문에 박시온과 대립하는 양면성을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시청자들은 어느새 사건만 생기면 그의 눈빛과 안색을 살피게 되어 버렸다. 
<굿닥터>는 말 그대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성장담을 다루는 이야기이고, 거기에서 외면적으로 드러난 성장담이 박시온이 의사가 될 수 있는가 여부이지만, 사실 드라마 속에서 많은 것들을 해결하며 고뇌하는 실질적 견인차 역할은 김도한에게 맡겨져 있다. 그의 선택, 그의 의지에 따라, 박시온을 비롯한 드라마 전체가 요동친다. 

김도한이 궁극의 해결책을 쥐고 있는 결정적 멘토라면, 차윤서는 그 자신이 때로는 김도한의 표현처럼 박시온처럼 의지만이 앞서는 맹목적이고 불완전한 펠로우 2년차이면서, 또한 어린 아이 같은 박시온을 곁에서 보살피고 도와줄 수 있는 실질적인 멘토이다. 박시온이 하는 모든 일에 끼어서 때로는 그를 꾸짖고, 때로는 그를 편들며서, 그리고 그런 박시온을 보면서 의사로서의 자신을 투영하고 반성하며 커나가는 중간적인 존재이다. 

<굿닥터>는 박시온이라는 어찌보면 그저 선명한 하나의 빛깔 밖에 없는 캐릭터를 그보다 조금 성숙하지만 아직은 여전히 박시온같은 차윤서와, 보기엔 냉철한 이성밖에 없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배려하고 그로 인해 고뇌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김도한이란 캐릭터로 두텁게 덧칠해 간다. 그리고 이 세 사람 모두가,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응원하고 싶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굿닥터>가 예측 가능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골든 타인>을 제외한 많은 드라마들이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에 발목을 잡혔던 전례를 <굿닥터>가 극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미 차윤서만 보면 딸국질을 하는 박시온에, 약혼자 대신 차윤서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김도한을 보면 그런 바램은 불가능할 듯 하지만, 사랑 이야기에 발목잡히지 않는 좋은 의사들의 성장담을 보고 싶다.  


by meditator 2013. 8. 21. 10:18


정상 이하의 지능을 가졌거나 감정 폭이 극히 제한적인 사람이 특정 분야에서 경이적인 지적 재능을 보이는 희귀한 증상

 kbs2의 월화 드라마 <굿닥터>의 남자 주인공, 성원 대학 병원의 레지던트로 1년간 임시 고용된 박시온(주원 분)은 서번트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임상 병동 순시 과정에서 김도한 교수의 지시 사항을 고스란히 머리에 입력할 정도로 복사기와 같은 기억력을 가진 천재이지만,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 힘들어 하는 사회성 발달에 있어 자폐적 장애를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환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드라마 <굿닥터>는 그런 비정상적인 주인공 박시온을 내세워, '좋은 의사'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KBS월화드라마 굿닥터 - 소아외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노력과 사랑. 다시 시작되는 KBS 휴먼 메디컬 드라마!


역설적이다. 

그의 임용 자체가, 그가 역에서 응급 상황 하에서 아이를 살린 해프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듯이, 환자와의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의사라는 직업에, 그것이 불가능한 서번트 증후군 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자체가 도발적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미 2회 만에, 죽은 형과 토끼가 어른이 되게 해주고 싶었다는 레지던트라는 전문 직업임에도 여전히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지닌 박시온을 통해 과연 의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최고의 능력을 자랑하는 김도한(주상욱 분) 교수이지만, 그보다 직급이 높은 과장 고충만(조희봉 분)의 환자가 위급한 상황에 빠졌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병원의 시스템, 집도의의 말 한 마디에 수술실 밖으로 내팽개쳐지거나, 말 한 마디 못하고 주먹을 맞아야 하는 상명하복의 군대식 서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김도한에게 맞은 박시온을 토닥이며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너의 행동이 어쩌면 더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고 달래주는 차윤서(문채원 분)의 영혼없는 설득(드라마 속 윤서는 또 하나의 박시온처럼 행동한다)처럼, 이른바 보다 편의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시스템이, 그 운용 여부에 따라 굳어져 버린 관료 체계화 될 수도 있다는, 그리고 이미 그렇게 되고 있지 않냐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분명, 위태로운  환자의 상태 하나만을 보고, 담당의나, 수술방 예약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다짜고짜 환자를 밀고 들어가는 행위는 혀를 차게 만들 정도로 대책이 없다. 하지만 그의 극단적인 행동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일말의 공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한 두달은 여사로 기다리게 만드는 현재의 대학 병원의 대기 순번 체제에, 겨우 기다리다 의사라고 만나면, 환자와 눈을 마주치기는 커녕, 앞에 있는 차트나 모니터만 들여다 보다, 또 몇 가지의 검사나 하라고 하는 비인격적인 처우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의료 체계가 가지는 비인간적인 합리성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들이, 말도 안되는 서번트 증후군의 의사의 돌발적인 행위에 공감하게 만드는 전제가 되는 것이다. 


 포토 보기


최근 의학 드라마에서 병원내의 비인간적인 관료적 의료 체계는 이미 '클리셰((문학·예술 평범한 수법)'처럼 등장하고 있다. 2012년의 화제작이었던 <골든 타임>에서 헌신적인 의사 최인혁을 가로막은 것도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병원의 냉혹한 시스템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브레인>의  의사 이강훈은 그 자신이 그 체계의 수호자에서 희생자로, 그리고 다시 저항자로 거듭나는 히어로로 그려졌었다. 이제, <굿닥터>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어쩌면 김도한 교수의 정의가 가장 냉철하게 정확한, 오로지 인간을 살리겠다는 순수 의지만 가진 서번트 증후군의 박시온을 통해, 지금의 의료 체계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문제 제기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충격적 요법을 통한 문제제기 방식은, 2013년에 들어서 화제작으로 관심을 끈 작품들의 공통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직장 내 갑을 관계를 사회적 문제로 까지 환기시킨 <직장의 신>의 주인공 미스 김은 그 어떤 정규직도 넘보기 힘든 많은 자격증과 자격증을 뛰어넘는 능력을 지녔음에도, 3개월 임시직을 고수한다. 그럼으로써, 이 사회에 뿌리박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갑을 관계를 조롱하고 비판한다. 

최근 종영한 <여왕의 교실>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선생님이, 가장 포악한 독재자가 되어 아이들을 조련한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아이들로 하여금 똘똘 뭉쳐 선생님에게 대적하는 힘을 가지려고 하는 자생력을 키우게 만드는 것이다. 남들을 밟고 혹은 남들은 쳐다보지도 않는 이기적인 인간형을 양산하는 경쟁 제일 주의의 신자유주의 교육 체계를 비판하기 위해, 가장 선생님답지 않은 선생님을 등장시킨 것이다. 

직장, 학교에 이어, 이번엔 병원이다. 

당신을 담당하는 의사가 서번트 증후군이라면 어떨까요? 라고 질문을 던지면 아마도 백이면 백 다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누구나 의사로서는 무리라고 생각하는 환자를 내세워 의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포토 보기


직장, 학교, 병원,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그리고 이젠 가장 시스템화되어 기계처럼 잘 돌아가고 있는 제도들이다. 하지만 가장 원활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합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체계 속에서 '사람'의 존재가 무시되어져 가는 제도들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지금의 우리 사회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존재들이며, 가까이하기엔 너무 거대한 존재들이다.

거기에 드라마들이 질문을 던진다. 마치 골리앗에게 자그마한 바윗돌을 던지며 덤비는 다윗처럼, 

거인을 만나러 가는 다윗을 보고 아마도 동네 사람들은 다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그렇듯이 우리가 당연하다고 변할 수 없다고, 한 개인이 어찌 해보기엔 무력하다고 느끼는 존재들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선, <여왕의 교실>의 마여진 선생이나, <직장의 신>의 미스김, 그리고 <굿닥터>의 박시온처럼 역설적 인간형이 필요한 것이다.

by meditator 2013. 8. 7. 10:00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