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민, 이세영, 서하준, 이규형, 정려원, 현재 작품을 하고 있는 배우들이다. 박은빈, 서현진, 소지섭, 이종석은 얼마전 종영을 한 작품의 배우들이다. 이름만으로도 내로라하는 배우들, 이들 배우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맞다, 바로 그들이 작품 속 분한 캐릭터가 모두 '변호사'이다. 9월 23일부터 sbs를 통해 시작된 <천원짜리 변호사>는 2015년 sbs극본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동네 변호사 조들호>와의 표절 문제로 몇 년간 발목이 묶였던 작품이다. 그간의 고전이 무색하게 <천원짜리 변호사>는 전작 <오늘의 웹툰>의 1%대의 시청률이 무색하게 대번에 8%가 넘는 시청률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변호사들이 난무하는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가 인기를 끄는 건 이 작품을 이끄는 주인공이 '연기'와 '흥행'에 있어 입증된 배우인 남궁민인 점도 있지만, 1,2회에서 보여주듯이 단 돈 천원에 서민들의 아픔을 속시원하게 달래주는 서민형 변호사의 등장이라는 점이다.
서민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변호사라면 <법대로 사랑하라>의 김유리 역의 이세영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전직 검사인 김정호의 건물의 세입자인 김유리는 '로카페'를 열어 동네 주민들의 법률 상담과 해결을 자임하고 나선다.
<검사 내전>, <마녀의 법정> 등을 통해 법조인 캐릭터로 인기를 얻은 바 있는 정려원은 디즈니 플러스의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에서 성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노착희 변호사로 등장한다. 그녀의 상대역 역시 꼿히면 돌진하는 변호사 좌시백(이규형 분)이다. 일일드라마도 빠지지 않는다. mbc의 일일드라마 <비밀의 집>에서 주인공 우지환(서하준 분)은 어머니의 실종을 밝히기 위해 '흙수저 변호사'라는 자신의 직분을 십분 이용한다.
이처럼 최근 변호사가 주인공인 작품들은 그들이 변호사라는 직분을 이용하여 '홍길동'처럼 세상의 불의와 맞선다. 그를 위해서 <빅마우스>의 이창호(이종석 분)는 감옥도 마다하지 않는다. '법정은 수술실같다'는 모토 아래, 의사 출신 변호사가 된 한이한(소지섭 분)은 마치 양 날의 칼처럼 의학과 법을 양 손에 쥐고 휘둘러 '의학 카르텔'의 민낯을 벗겨낸다.
심지어 <닥터 로이어>가 방영될 당시, 동시간대 sbs에서도 변호사가 주인공인 <왜 오수재인가>가 방영되며 인기를 끌었다. 로펌 최고 변호사였던 오수재는 자신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에 맞서 그녀가 가진 '법'이라는 무기로 전지전능한 능력을 뽐낸다. 동시간대 드라마 모두가 변호사가 주인공인 시절, 이 정도면 변호사 '만능시대'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최근에 가장 화제가 된 변호사 드라마라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따라올 드라마가 없을 듯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 그녀가 가진 '한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 남다른 기억력을 살려 우영우는 서울대 로스쿨 수석 졸업을 했고, 한바다의 신참 변호사로 활약한다. 드라마는 변호사가 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허들을 낮춘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 뿐만 아니라, 동성애, 여성의 차별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사연을 그녀가 수임한 사건을 통해 세상에 전한다.
그에 앞서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송중기 분)라는 '특별한 캐릭터'로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려는 변호사 홍자영(전여빈 분)과 함께 법과 법의 경계를 넘어선 활약을 통해 인기를 끌었던 <빈센조>역시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의 범주에 들어간다.
검사도 많다 그런데 홍길동 같은 존재는 변호사만 있는 게 아니다. 군 제대 후 복귀작으로 돌아온 도경수가 택한 작품은 kbs2의 <진검승부>이다. 거기서 그는 '불량 검사'가 되어 부와 권력이 만든 성역, 그 안의 악의 무리들을 속시원하게 깨부순다고 한다. <진검 승부>가 방영되면 kbs2 드라마는 월화수목 모두 변호사이거나 검사이거나, '법'이라는 장르 드라마들로 채워진다.
검사는 또 있다. 2019년 <시크릿 부티크> 이후 역시나 오랜만에 복귀한 김선아는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에서 로펌 대표인 할아버지와 법과 대학 교수인 어머니의 계보를 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부장 검사가 되었다.
검사이거나,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들,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리다 적어도 한 곳에서는 변호사나 검사를 만나게 된다. 우스개 소리로 현실에서 거의 만날 일이 없는 변호사와 검사들이 드라마에서는 '판을 친다'.
이처럼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변호사나 검사들은 한결같이 '정의'롭다. 한때는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의 노착희나, <빈센조>의 홍차영처럼 돈앞에 영혼을 팔던 변호사라 하더라도 운명적 사건을 겪으며 2014년 <개과천선>의 김석주(김명민 분)처럼 '개과천선'을 하여 정의의 사도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맞은 편에는 언제나 법과 결탁한 부의 '카르텔'이 있다. 그리고 그 카르텔은 애꿏은 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제국을 공고히 하려 한다. 이런 '제국', '카르텔'에 맞서 극중 주인공들은 홀홀단신, 혹은 그들 주변의 조력자들의 도움을 얻어 '조자룡의 칼'처럼 '법'을 휘둘러 이 거대한 제국을, 카르텔을 붕괴시킨다.
정의에 대한 갈증인가 안이함인가 이야기의 소재나 구성은 달라도 시작은 보잘 것 없어도 언제나 정의는 승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앞서 2014년의 <개과천선>이나, 2016년의 <동네 변호사 조들호> 때만 해도 가끔 화제를 끌던 '법조인'들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왜 이렇게 범람하게 되었을까? kbs2의 월화수목을 휩쓸고, mbc의 <닥터 로이어>를 <빅마우스>가 이어받듯이 시청자들은 매일 법조인들의 활약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열혈 검사 이준기의 거침없는 활약을 다룬 sbs 금토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바톤을 이어받은 건 <왜 오수재인가>의 변호사 오수재이다. 그런데 10%대의 높은 시청률로 박수를 받던 이들 드라마의 후속작으로 '직장인의 애환'을 그리겠다는 포부를 내보인 <오늘의 웹툰>은 안타깝게도 1%대의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리고 이제 다시 변호사 남궁민이 이끈 <천원짜리 변호사>는 첫 방부터 8% 고지를 넘는다. 이처럼 여전히 시청자들이 시청률로 호응하는 바 법조인 드라마는 끊임없이 만들어 지게 된다.
또한 '정의'에 대한 여전한 사회적 갈증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변호사이거나, 검사라 하더라도 기존의 '법' 카르텔로 부터 튕겨져 나온 인물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악의 속성을 잘 알면서 동시에 그들을 '정의롭게 무찌를 '법'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법정에 서서 그들을 통쾌하게 '단죄'하는 카타르시스는 여전히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이다.
하지만 이건 동시에 여전히 우리 사회가 정의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고, 또 다른 면에서는 '정의'를 구현해내는 '서사'에 있어 드라마 제작진들이 '안이'하다는 지점이기도 하다. 법정에서 호기롭게 상대 악을 응징하는 쾌감, 그건 현실에서 여전히 '환타지'의 영역이다. 즉 여전히 드라마가 말하고픈 '정의'는 담론을 넘어서는 구체성에 있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들은 서사를 통해 법적인 정의를 구현하려 애쓰지만, 그런 법조인 드라마들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우려가 되고 있는 '법 전횡 시대'에 대한 본의 아닌 조력자 역할을 하게 되는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지울 수 없다.
줄어들기는 커녕 나날이 그 도를 더해가고 있는 학교 폭력, 과연 그 '폭력'의 악순환을 멈출 수는 없을까?
학교 폭력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들어주기 힘든 부탁을 받은 학생이 미안하다고 거절한 이후, 그 학생은 비난을 받았고, 고립되었다. 그 누구도 그 학생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그런 '따돌림;은 폭력으로 이어진다. '너 미쳤냐?', '요즘 안 맞았지?', 하는 상시화된 폭력은 피해자를 지옥으로 몰아간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뻔뻔하게 말한다. '장난'이었어요 . 그리고 어른들은 말한다. '싸우면서 크는 거지',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장난'치는 친구 관계, 아이들은 다 그런 거라는 식으로 학교 폭력을 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장난'이 피해자를 피폐한 삶이나, 죽음으로 이끄는 결과를 낳는다.
ebs는 지난 8월 29일부터 3부에 걸쳐 <학교 폭력 공감프로젝트>를 통해 그 방향을 모색했다.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학교 일선 및 정부가 앞장 서서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한 각종 조치를 취했음에도 왜 효과가 없었는가라는 의문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프로젝트는 그 의문의 답을 당사자인 '학생'들로 부터 구하고자 한다. 초등학생을 비롯하여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그를 통해 학교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주범'을 '기소'하고자 한다. 선생님들이 '배심원'으로 자리하고, 그곳에 학생들이 기소한 '주범'들이 드러난다. 과연 우리 시대 학생들은 '학교 폭력의 주범'들이 누구라고 생각했을까?
'어른'을 기소합니다. '제설제 먹이고 폭행', '오물 뒤집어 씌우고 폭행', 학교 폭력과 관련된 언론의 보도 내용들이다. 학생들은 바로 이런 '언론'을 고소한다. 진정으로 학교 폭력에 대한 우려와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대신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인가에 초점을 맞춘 언론은 자신들이 바로 '학교 폭력'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말한다. 언론을 비롯하여 어른들이 만든 콘텐츠는 지루하거나, 폭력적이라고. 언론의 자극적 헤드라인은 피해자를 부각시키며 학교 폭력을 선정적으로 소비할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유투브를 비롯한 sns 역시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내용들을 관심을 끌기 위해 앞다투어 게시함으로써 학생들에게 폭력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언론이나, 유투브만이 아니다. 학생들은 입을 모아 교육 동영상의 유죄를 '기소'한다고 말한다. 어른들 입장에서 일방적인 폭력 예방 캠페인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눈 가리고 아웅'식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교육부의 캠페인이 '느린 예방 교육'이라 냉소한다.
여전히 학생들을 본드나 하고 삥이나 뜯는 구시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캠페인, 하지만 이제 학생들에게는 '사이버 폭력'이 새로운 '폭력'으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 그러기에 일방적으로 틀어주는 학교 폭력 동영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졸린 영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졸지 말라고 하기 이전에 '졸음이 오지 않는', 현실적인 대응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기소한다. 학생들에게 '입'으로 하는 말과는 다르게 막상 '상황'이 벌어지면 '책임'을 면하기 위해 '절차'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생님은 믿을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당연히 '학교'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늘 '안일'하게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한 것이 아이들 눈에 비친 '학교'의 모습이다. 당연히 그런 학교와 선생님들의 태도에 학생들은 무력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방관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선생님과 학교만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러기에 학생들은 '대한민국'을 기소한다. 자본주의, 외모 지상주의, 그리고 성취 중심의 경쟁 사회는 학생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그래서 서로를 무시하고, 왕따와 '은따'를 양산하고 학교 폭력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이,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개선되지 않는 한, 그저 일회적인 캠페인 식의 학교 폭력 예방만이 존재하는 한 학교 폭력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 입을 모아 말한다. 즉 학교 생활을 만들어 가는 총제적인 권력 구조, 그 시스템이 바로 지금 학교 폭력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기소'합니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 언론, 나아가 우리 사회만의 문제뿐일까? 학생들은 알고 있었다. 학교 폭력에서 결코 자신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한 여고 뮤지컬 동아리에서 '빈방 있어요'라는 게임을 한다. 술래가 된 한 사람이 둥글게 원으로 자신을 둘러싼 친구들에게 돌아가며 '빈방 있어요?;라고 물어본다. 둘러선 학생들의 역할은 '거절'하는 것이다. 그리고 술래가 뒤돌아서서 '빈방 있어요?;'라고 물어보는 동안, 뒤에 선 학생들은 마치 '방'을 바꾸듯 자리를 바꾼다.
처음에는 '게임'이니 자신있게 웃으며 '빈방 있어요?'하고 물어보던 술래, 하지만 친구들의 거절이 이어지자, 점차 목소리가 작아지고 떨리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고야 만다.
이 게임은 바로 이른바 '은따', 은근한 따돌림을 시뮬레이션 해본 것이다. 술래가 된 친구는 말한다. 게임이라고 했는데도 세상에서 동떨어진 듯 했다고, 그 무엇도 해도 안 될 것같은 막막함이 들었다고. 반면, 둘레에 서서 '거절'을 한 친구 역시 설사 게임이라 해도 그 '룰'을 벗어나면 되는데 그걸 따르는 자신에게 '죄책감'이 느껴졌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학생들은 마치 '러시안 룰렛'처럼 형성된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나서지 못하는 자신들의 '방관'을, 그리고 '나랑은 상관없어'라는 무관심을 '방관의 카르텔'이라며 '기소'한다고 말한다. 산격 중학교에서는 형사 재판의 형식으로 괴롭힘당하는 친구를 '방관'한 학생에 대한 모의 재판을 열었다. 과연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5 ; 4, 유죄와 무죄의 비율이다. 학생들은 비록 한 표 차이지만, '방관'이 유죄가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4표의 학생들은 말한다. 자기도 폭력을 당할 까봐 차마 나서는 게 쉽지 않다고. 그러기에 방관하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서는 것이 '대단한 용기'라고 배심원이었던 선생님들은 말한다. 그리고 그 '방관'의 카르텔에서 몸을 숨긴 학생들을 바꾸면 학교 폭력이 만연한 현실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이와 같은 학교 폭력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행복지수 2위, 경쟁없는 교육을 지향하는 덴마크에서도, 국가 학력 조사 최상위국인 핀란드에서도 학교 폭력의 관행은 피해갈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 학생들의 학교 폭력에 대한 고민을 공유한 이 나라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의견에 적극 공감을 표한다. 그리고 역시나 일회적인 캠페인 성 교육이 아니라 지속적인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연대감, 그리고 사회적 감정 교류의 능력을 고양 시켜야 학교 폭력의 악순환, 그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9월 15일 방영된 <한식 연대기> 3부는 한식을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들어간다. 개미투자자로 분한 주상욱과 그런 개미투자자를 이끄는 주식 크리에이터 슈카가 하나의 기업으로 '한식'을 투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식이다.
한식이란? 왜 이런 식의 '접근'을 했을까? 들어가기에 앞서 <한식 연대기>는 서울대 문정훈 교수를 비롯한 다수의 전문가들에게 묻는다. '한식이란?' 그런데 각 분야에서 트렌드로서의 한식을 이끌어내고 해석해낸 전문가들이 쑥쓰럽게 머리를 긁적인다. 딱 맞춤한 답이 떠오르질 않아서이다. 일본식 간장으로 부터 시작된, 이른바 '왜간장'이라고 불리던 샘표 간장은 한식일까? 아니, 일본 라멘이 원조인 우리의 라면은? 예전 조상님들은 드시지 않았다는 튀긴 닭은 또 어떨까? 그렇다면 '집밥'이 한식일까? 집밥보다 '햇반'이 익숙한 세대는 '한식'을 안먹는 세대일까?
<3부 한식 주식회사> 바로 이렇게 이제는 '모호'해진 '한식'의 정의를 추적해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통 집밥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k푸드로 거듭난 '미래 성장 가치'가 좋은 우량주 '한식'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한식 주식회사'가 처음 시작된 때는 언제일까?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샘표 간장의 cm송을 자연스레 기억해낸 주상욱은 그 자신도 의아해한다. 그처럼 그와 비슷한, 혹은 그보다 나이가 많은 연배가 자연스레 기억해 낼 샘표 간장 cm송처럼, 샘표 간장은 오랜 기간 간장의 대명사였다. 그리고 <한식 연대기>는 이 샘표 간장을 한식 주식회사의 시발점으로 본다.
한식의 핵심 구성은 밥과 반찬으로, 반찬은 '간'이 되어있다 이 '간'의 베이스가 되는 간장, 그런데 오랜 시간, 아니 지금도 우리 민족은 '간장'을 담궈왔다. 그런데 그 간장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1년 여의 숙성 기간과 그에 걸맞는 공간이 필요했다. 해방 후 월남민들, 그리고 이어서 터진 6.25전쟁은 우리 전통의 간장을 담글 수 있는 '환경'을 앗아갔다. '불하'받은 일본 간장 공장에서 만들어진 간장, 아직 낯선 간장을 팔기 위해 주부 사원들이 집집마다 방문을 했다는데, 집집마다 다른 '장맛'이 '판매용 간장'의 일률적인 맛으로 변화되었고, 이 '간장'을 기반으로 한 달달한 불고기가 '꿀맛같은' 고기 요리로 자리잡았다. 2013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2320억 병의 양조간장이 팔렸다.
집밥, 그 패러다임의 변화 집밥 한 상이 '한식 주식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한식 연대기>는 그 변곡점을 '포장 기술의 혁신'에서 찾는다. 그리고 '음식'을 '포장'해서 파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끈 주역은 다름아닌 '두부'이다.
나이가 좀 있는 연배들은 기억할 것이다. 저녁 무렵 딸랑딸랑 울리던 두부 파는 아저씨의 종을, 그처럼 두부는 '판두부'로 거기서 한 모씩 떼어서 팔던 음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두부를 만드는 데 쓰이는 '간수'에 공업용 석회가 들어간다는 두부 파동을 거치며 시중 두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져 갔다. 또한 때는 바야흐로 1980년대 국민총소득 증가와 함께 먹거리에 대한 가치 기준이 높아져 가던 시기였다고 한다. 바로 이때, 깨끗한 물로 포장한 두부가 등장했다. 또한 이른바 '콜드체인 시스템'으로 콩나물과 두부가 냉장 유통으로 통해 대중의 '위생 욕구'에 호응했다. 이러한 냉장 유통을 통해 위생 관리 '콜드 체인 시스템'은 전문가들이 식품계의 반도체가 평가할 정도로 '한식'의 앞선 기술을 선도한다. 이제는 2021년 기준 하루 50만 모 5400억 규모의 시장이 되었다.ㅣ
반찬의 베이스가 되는 간장, 그리고 포장 기술의 혁신, 그렇다면 다음 '한식'의 변화를 이끌 주역은 무엇일까? 바로 '밥'이다. 1996년 방부제 없는 즉석밥 '햇반'이 등장했다. 햇반을 만든 CJ는 소비자들의 생활 패턴이 변화되고 있으며 특히나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는 삶의 변화에 주목, 즉석밥을 착안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여전히 밥은 밥솥에 해먹어야지 하던 시절, 밥은 모성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었다. 과감한 투자를 했지만 엄청난 손해가 따랐다고 한다. 하지만 시대는 급속하게 변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바빠졌다. 6880억 시장, 100배나 성장했다. 매년 40억 개의 햇반이 생산된다.
가정 간편식으로 '밥'이 나왔다면, 그 다음은? '국'이 그 뒤를 따른다. 물론 국은 즉석밥처럼 처음부터 맛있지는 않았다. 예전만 해도 국은 건조된 덩어리에 분말 엑기스를 넣어 끓여야 했다. 하지만 이제 간편식으로 사먹는 국은 집에서 끓인 음식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 진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탕'이 바로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고깃국', 그 중에서도 육개장이다. 육개장을 비롯하여 품목만 해도 38952개의 가정 간편식, 밥, 국, 찌개, 구이, 튀김, 전 등등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린 한식 상차림, 그걸 이제는 '가정 간편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엄청난 시장이다.
삶의 질과 함께 한 음식 문화 밥도 나오고, 탕도 나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소울 푸드'를 물어보면, 밥도 아니고, 탕도 아니고, '라면'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1961년 첫 등장한 한국인의 소울 푸드, 처음 사람들은 그 이름만 보고 옷감이라 착각하기도 했단다. 물론 개발을 한 건 '일본'이다. 하지만, 일본식 라멘을 우리의 국밥 문화에 맞게 변화시켜 나갔다. 특히 '소고기 국밥'을 좋아하는 우리 식문화에 착안한 1970년에 판매를 시작한 '소고기 라면'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여전히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일년에 70개에서 80 개 정도, 연간 생산량 39억 개의 라면으로 속도 풀고 마음도 푼다.
많이 먹는 걸로 치자면 '치킨을 빼놓아서는 섭섭하다. 체인점과 개인 업주를 합쳐 전 세계 맥도날드 점포를 앞선다는 우리나라의 치킨집, 그런데 '치킨이나 '라면'을 즐겨먹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제된 기름의 안정적인 공급이 이루어져야 하는 전제가 필요하다. 원래 '한식'에는 튀긴 음식이 없었다고 한다. 당연히 튀기는 기름을 위한 산업도 불모지였다. 하지만, 정치적 격변기를 겪고 자리잡은 정부는 국민들의 안정적인 식품 공급을 위해 콩기름 공장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에 힘입어 대형 식용유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콩 100톤으로 식용유를 만들면 생산량은 17톤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두박이라는 단백질 부산물이 나오고, 이는 돼지들의 단백질 사료로 쓰인다. 즉 식용유의 대량 생산은 뜻밖에도, 혹은 정책적으로 축산업의 부흥을 유도했고 '돼지 고기'의 대중화를 이끈다.
해방 후 양조 간장의 등장으로 부터 시작된 '한식 주식회사', <한식 연대기>는 우리 민족의 삶의 질과 음식이 궤적을 맞추어 발전해 온 과정을 조망한다. 70년대의 쌀부족이 제분 산업 발전을 낳았고, 80년대의 국가적 발전이 식품 산업의 생산을 선도했다. 90년대 나아진 삶의 질은 식품 산업의 고급화를 선도했고, 2000년대 이후 가족 형태의 변화는 간편식 시장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더는 집에서 곰국을 끓이지 않는 시대, 제품으로서의 한식의 발전이라는 기반 위에서 이른바 'K푸드'의 발전이 가능할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스위스, 이탈리아, 유럽을 다녀온 사람들은 빠짐없이 다녀온 국가이다. 물론, 해외라고는 제주도만 겨우 가본 기자에게는 언감생심이지만, 그래도 책이나, 다녀온 이들의 경험담, 영상 등을 통해 그곳이 마치 가본 듯 익숙한 지역이다. 그런데, 그 '익숙함'에 신선한 균열을 가져온 프로그램이 있다. 여행을 가고, 캠핑을 하고 뭐 또 새로울 게 있을까 하는 여행 예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유럽으로 캠핑을 가다니, 뭐가 새로울까 싶은데 보고 있노라면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 나도 그곳으로 떠나 스위스 산맥을 마주하고 라면을 끓여먹고 싶다. 한적한 이탈리아 마을을 달려보고 싶다.
넉넉한 리더쉽의 유해진이 이끌고 예능하는 유해진은 이제 새로울 게 없다. 일찌기 ,<1박2일 >로부터 시작해서 <삼시세끼 어촌편>, <스페인 하숙> 등 그의 예능 출연은 2012년부터 쭈욱 이어져 왔다. 영화 속 그의 캐릭터와는 또 다른 여유롭고 만능 캐릭터로서 그의 모습이 그를 예능의 단골 출연자로 만들어 왔다. 예능에서 익숙한 유해진, 그래서 다 안 것 같은 유해진, 그런데 <텐트 밖은 유럽>에서 유해진은 그렇게 시청자들이 익숙하게 소비해왔던 유해진과 또 다른 면의 유해진을 만나게 된다. 마치 벗겨도 새로운 면이 나오는 양파처럼 유해진은 또 새로운 인물로 시청자들을 새로운 공간 속 새로운 만남으로 이끈다.
애초에 <텐트 밖은 유럽>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평소 유해진이 즐겨찾는 유럽의 여행 루틴을 기반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자신이 가보니 좋았던 곳을 제작진에게 추천하고 그에 따라 유럽에서 캠핑을 한다는 '신박한' 발상의 프로그램이 등장한다. 즉 평소 촬영이 없을 때면 스위스를 찾아가 조깅을 하며 여유를 즐긴다는 유해진, 그러기에 <텐트 밖은 유럽>은 애써 만들어진 코스가 아니라 그가 즐겼던 여정을 따라 유연하게 흐른다. 시청자들은 여전히 프로그램 속에서도 아침이면 일어나 조깅을 하고, 그러다 더우면 강에 뛰어드는 유해진을 통해 '자유로움'을 공유하게 된다.
이건 어촌이나 스페인 하숙처럼 제작진의 주문한 공간과는 또 다른 여행의 맛이다. 유럽으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어딘가를 '본다'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여행 프로그램의 주된 목적이었다. <텐트 밖은 유럽>은 지금까지 여행 예능과는 다른 여행을 한다. 14일 방영된 이탈리아 여행에서 이탈리아 하면 빼놓지 않고 다니는 피렌체에서 '티본 스테이크'를 맛본 일행은 피렌체을 '관광'하는 대신, 차창 밖으로 유명한 피렌체의 다리를 지나치는 것으로 대신하고, 토스카나로 떠난다.
멈춤, 그리고 쉼 유명한 도시의 유적 대신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즐비한 길을 달리고, 잠시 내려 그 자연의 풍광을 만끽하는 식이다. 토스카나 한갓진 곳의 캠핑장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진선규가 '평생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말이 온전히 실감나는 이유이다. 공작새가 기웃거리는 그 낯선 이방의 공간, 그 찰라의 시간은 그의 말 그대로 평생 다시 만나기 힘든 여행의 순간이다.
다시는 못올 인생의 순간, 그 말을 공감케 만드는 건 익숙한 유럽의 여행자 유해진과 함께 한 다른 출연진들의 몫이다. 캠핑도 처음이고 유럽도 공연말고는 처음인 진선규, 캠핑 마니아이지만 산넘고 물건너 이 프로그램이 아니고서는 다신 못올 거 가다는 박지환, 그리고 붙임성 좋은 막내 윤균상의 조합이 절묘하다. 더구나 최근 <공조 2>를 통해 돌아온 유해진과 진선규의 선후배 조합에, <우리들의 블루스>, <범죄도시2>를 통해 대중적 호감도가 급상승한 박지환의 등장은 그 자체로 신선하고 흥미롭다.
영화 속 캐릭터와는 다르게 뭘 해도 어린 아이처럼 천진하게 반응하는 진선규와 , 캠핑 매니아답게 등장하는 순간부터 주먹구구식 캠핑초보들을 이끄는 박지환의 능숙함과 배려심, 그리고 아직도 예능이라는 프로그램에 어딘가 쑥쓰러운 모습에 한참 어리지만 내공 만랩인 선배들 사이에서 무던하게 어우러지는 윤균상의 넉넉함이 <텐트 밖은 유럽>의 팀웍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그 팀웍의 중심에 넉넉한 리더쉽을 지닌 유해진이 있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 젊은 세대들이 나이든 세대들을 거부하는 상징인 '라떼는 말이야', 그런데 <텐트 밖은 유럽>은 유해진의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된다. 자신이 다녔던 스위스의 인터라켄 정상으로 일행을 이끌고, 강물에 기꺼이 몸을 담을 것을 권해보는 식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고 하지만, 그의 방식은 여느 어른들의 '라떼는 말이야'랑 좀 다른 뉘앙스로 다가온다.
14일 방영된 토스카나 캠핑 장에서의 '수구' 경기에서처럼 그는 일행보다 한 발 앞서 같이 즐기면 좋을 것들을 챙긴다. 먼저 가서 수영장도 보고, 깊이도 측정해 보고, 같이 수구할 수 있는 공을 대신할 빈 페트병도 챙기는 식이다. 자신이 가봐서 좋았던 인터라켄의 등정도, 유럽의 더운 날씨에 함께 옥빛 호수에 몸을 던져 보는 것도 평생에 잊지 못할 순간을 후배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그는 솔선수범한다.
그의 자유로운, 하지만 용의주도한 리더쉽 덕분에 후배들은 스위스 빙하수에 몸을 던지는 일탈을 만끽할 수 있다. 어디 함께 한 후배들뿐인가. 첨벙하고 그들이 물에 몸을 던지는 순간. 시청자들도 일상의 균열을 가져오는 여행의 온전한 감성을 함께 만끽하게 된다. 또한 끊임없이 던지는 그의 ' 썰렁한 아재 위트'는 70년생 그와 한참 터울이 진 후배들 사이의 균열을 메우며 '짬밥'으로 따지면 수직 서열인 이 '무리'의 긴장감을 잊게 만든다.
취리히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8박 9일의 여정은 아직 진행중이다. 흔히 우리에게 여행은 많은 것을 보는 것, 더구나 먼 유럽으로의 여행은 빠듯한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눈에 담는 것이라는 강박을 가지도록 만든다. 하지만 <텐트 밖은 유럽>은 그런 여행의 방점을 달리하도록 만든다. '불멍'이라는 말이 유행하듯이, 최근들어 여행은 어디를 가는 것보다, 일상을 탈출한 시간과 공간을 통해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속 명대사 ' Dolce far niente (돌체 파 니엔테), 달콤한 게으름'이라는 말처럼. 그런 면에서 <텐트 밖은 유럽>은 그런 새로운 트렌드의 확장판이다.
매일 새로운 캠핑장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게으름'과는 멀다. 날마다 텐트를 펴고 접고, 박지환이 들고온 '한식 가방'들을 박지환보다 더 반기듯 매일의 끼니를 마련하는 수고로움들, 그리고 거친 비바람과 대번에 빨래도 말려버리는 유럽의 변덕스러운 날씨들, 하지만 그런 고달픈 여정 속에서도 출연진들은 자신들 앞에 펼쳐진 유럽의 자연을 놓치지 않고 호흡한다. 그들의 애써 찾은 '여유'덕분에 고풍스러운 건물과 유적들 사이에 숨쉬는 유럽의 풍광들이 시청자를 찾아온다. 길게 늘어선 사이프러스 나무 저편에 펼쳐진 밀밭들을 거니는 잠시의 시간, 그저 스위스 산맥을, 옥빛의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순간, 그 '멈춤'의 순간이 온전한 '쉼'의 여유를 준다.
1927년 경성방송국으로 시작해서 1947년 국영 서울 방송국으로 출범한 kbs의 아카이빙(특정 기간 동안 필요한 기록을 파일로 저장 매체에 보관해 두는 일.)은 그 자체로 우리 현대사의 기록이다. 추석을 맞이하여 kbs는 이 아카이빙을 기반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이룩한 눈부신 한강의 기적, 88올림픽의 성공, IMF 위기 극복 등 KBS의 풍부한 아카이브를 발판으로 격동의 근현대 120년 역사 안에서 한식이 정치, 경제, 사회와 어떤 상관관계로 변화 발전하는지 밀도 있게 짚'어보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4부작 <한식 연대기>이다.
그 중 9월 10일 방영된 1부는 '정치의 맛'이다. 올 5월 종영된 <태종 이방원>에서 이방원으로 분했던 주상욱 배우가 프리젠터로 등장한 1부에는 한국한 중앙연구원의 주영하 교수의 설명에 기대어 우리 현대 정치사와 '한식'과의 관계를 살펴본다. 또한 정치와 한식의 실례를 증명하기 위해 홍준표, 박지원, 심상정 세 사람의 정치인이 각각 자신이 즐기는 '한식'을 통해 정치 속 한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치가 만든 한식 정치와 한식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1890년 조선 시대의 밥상 위에는 이른바 '고봉밥'이 올려있다. 고봉 가득 흰 쌀밥에 고깃국을 푸짐한 한 끼 식사의 표본으로 삼았던 조상들답게 사진 속 남자는 왜소하지만 그가 먹을 밥상의 밥은 무려 640g, '거인'의 밥그릇처럼 엄청나다.
그렇게 '밥'을 즐기던 우리 조상들, 그런데 이 '고봉밥'을 사라지게 만든 것이 바로 '정치'이다. 1973년의 표준 식단제는 지금 우리가 식당에서 만나는 고봉밥의 1/3 정도 밖에 안되는 공기밥을 표준으로 정했다. 심지어 돌솥밥도 안됐다. 이제는 우리 삶에 너무도 당연하게 스며든 '한식'의 요소요소들에 얼마나 많은 정치가 영향력을 끼쳤는지, <한식 연대기 - 1부 정치의 맛>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군사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에 오른 박정희 대통령, 그는 취임 선서에서 '국민을 굶기지 않고 정부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던 시대는 홍준표 시장조차 '가난ㄴ이 참 고통스러웠다'라고 회고할 정도로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1963년 우리 국민 소득이 100달러, 가난하고 굶주리던 시대였다.
박정희 정부는 1956년부터 우리나라에 공급된 미 잉여 농산물 원조, 원조받은 밀가루가 있으니 쌀을 적게 먹는다면 항시적인 쌀부족에서 탈출할 수 있겠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6,70년대의 혼분식 장려운동이다. 지금 우리가 즐겨먹는 설렁탕에 든 '국수', 그게 바로 '혼분식'의 결과물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먹었다던 오래된 곰탕집은 혼분식 시대의 물결을 넘어서고자 '만두'를 빚어 팔았고, 하루 몇 천개 씩 만두를 만들던 기억 때문에 84세의 주인 김희영 씨는 이제는 만두를 먹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짜장면도 올랐어', 우리는 물가가 오르면 그 기준을 짜장면에서 찾는다. 짜장면이 그 기준이 된 것도 바로 '혼분식 장려 운동'때이다. 70년대 60원쯤 하던 짜장면, 하지만 전국 각 짜장면 가게마다 정해진 값은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서민 식단'의 지표로 짜장면 가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짜장면을 비롯하여, 서민들이 즐겨먹는 짬뽕, 탕수육 등 가격을 정부가 정했다. 값싼 짜장면 가격 통제로 인해 전국에 짜장면 가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현재 전국에 2300여 점포, 하루 600만 그릇을 먹는 여전히 우리 국민이 사랑하는 '서민 식단'의 대표 주자로 여전히 짜장면은 자리매김한다. 어디 짜장면 뿐일까, 칼국수, 수제비, 그리고 떡볶이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에 우리가 즐겨먹는 '밀가루 음식'들이 '서민 음식'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게 바로 이 시시절이다.
이제는 사라진 '통일벼', 병충해에 강하고 생산량이 일반벼보다 2배 반이나 높은 통일벼가 1972년 보급되기 시작하며 1976년 드디어 쌀 자급화에 성공하게 되며 '한식의 역사의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박정희의 시대는 또 다른 군부 쿠데타로 막을 내렸다.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유혈진압하며 들어선 전두환 정권, 이른바 3S(sex, sports, screen) 정책을 통해 국민들의 울분을 달래려 했다. 또한 1980년 컬러 방송의 시작으로 '시각적 자극'을 주는 '요리'가 tv프로그램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1981년 여의도 에서 '국풍 81'이란 이름의 대규모 문화 예술 축제를 개최하여 시선을 돌리고자 했다. 100만 명이 다녀간 이 축제를 통해 지역 음식이던 전주 비빔밥을 비롯하여 충무 김밥, 춘천 막국수, 순창 고추장 등이 전국적인 '메뉴'로 거듭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경제 호황을 발판으로 한 금기된 욕망이 마음껏 분출되는 한편에서 언론 자유는 탄압되었고 노동 운동은 암흑기를 거치고 있었다. 1964년 국가 산업 단지로 등장한 구로 공단에서는 70년대 후반 이미 11만영의 노동자들이 '때우기' 식의 짜디짠 간의 '짠밥'을 먹으며 우리 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이들과 학생운동의 성장은 결국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이끌었다. 더는 먹고 살고 보자의 슬로건만으로는 국민들을 '탄압'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다. '성장'과 함께 '분배'가 새로운 시대적 담론으로 등장했다.
또한 1988년의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경제적 안정은 밥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1985년 향토 음식이던 수원 왕갈비가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다. 왕갈비를 비롯하여, 삼겹살, 돼지 갈비, LA 갈비 등 밥상의 육식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1970년 불과 5kg이던 연간 육식 소비량은 2000년 30kg을 넘어 이제 52kg으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고기'를 즐기게 되는 식습관의 변화를 선도하는 ** 가든들이 등장했다. 삭막한 아파트들이 즐비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식당에서나마 여유를 즐기며 고기를 뜯고 싶어했다. 고기를 자르는 '가위'가 흉측하다던 외국인들, 하지만 이제 세계 어디를 가도 한식 요리의 '가위'는 자연스러워질 정도로 우리 한식의 위상은 국가적, 문화적 위상과 함께 올라갔다.
정치인, 정치인의 음식들 다큐는 이렇게 정치와 함께 변화를 겪은 '한식'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정치인들의 '음식'을 살핀다. 정치철만 되면 표를 얻고 싶은 정치인들은 시장으로 달려간다. 민심의 바로미터가 시장이기에 서민 음식을 잘 먹는 모습으로 자신들의 얼마나 서민을 위하는 정치를 잘 할 것인가를 증명한다. 이른바 '서민 코스프레', '정치국밥'이란 용어가 등장할 정도다. 그런가 하면 그들의 '음식'을 통해 그들의 정치를 살펴볼만한 정치인들도 있다. 그 대표적 인물이 YS 김영상 대통령과 DJ 김대중 대통령이다.
1993년 문민정부를 이끈 김영삼 대통령은 이른바 서민 음식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칼국수'를 즐겨 먹는다. 소탈한 한끼 식사의 상징 칼국수는 YS가 이끌고자 한 개혁 정치의 코드로 등장한다. 또한 우리밀 살리기 운동의 시절 대통령이 '솔선수범' 우리밀 칼국수를 먹음으로써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이념을 표상화'시켜냈다.
그런가 하면 극심한 지역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이 된 DJ는 홍어를 즐겨 먹으며 호남의 맛을 세상에 알렸다. 김대중 대통령 덕에 인기를 얻은 홍어는 전라도 만으로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남미, 칠레, 아르헨티나 홍어를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1993년 우르과이 라운드를 기점으로 한 쌀 시장 개방에서 부터 시작된 다양한 식자재 시장의 개방이 있다.
정치인이 즐겨먹는 음식만이 아니다. 국빈 만찬 등 국가적인 '한식'의 밥상은 '독도 새우'라던가, '미국산 소고기' 등에서 보여지듯이 다양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통로가 된다. 서로 다른 정치적 색을 가진 정치인들을 모아놓고 먹는 '비빔밥'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즐겨먹게 된 '갈비'류, 식당에서 만나는 '스테인레스 밥그릇', 그리고 무심코선택한 짜장면을 비롯한 칼국수, 수제비 등의 밀가루 음식들, <한식 연대기- 1부 정치의 맛>은 그런 익숙한 한식들이 외람되게도 우리 현대사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백성은 먹을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그러기에 위정자는 백성의 음식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사기'의 구절을 내세운 아카이빙 다큐, 과연 우리가 지나온 현대사는 저 사기의 문구를 '실현'한 시절이었을까? '아카이빙'에 대한 회고와 감상을 넘어, 우리 현대사에 대한 다양한 소회를 불러일으키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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