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두보 시의 문구이다. 70을 사는 게 드물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70이야 예전 '환갑' 정도의 '범사'가 되었다. 타이완의 '린' 여사(진숙방 분)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이 그녀의 고희연, 하지만 식당을 운영 중인 그녀는 막내 딸에게 식당을 일임했다지만 여전히 아침 일찍 수산 시장에 들러 오늘 쓸 재료들을 구입하는 등 분주하다. 

2017년 만든 동명의 단편영화를 2020년 장편으로 만든 <고독의 맛>은 조셉 수 감독의 데뷔작이다. 2020년 대만 최고의 흥행작이자, 대만 대표적 영화제인 금마장 영화제에서 주인공 린 여사를 연기한 진숙방 배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고희연 날 죽은 남편 
고희를 맞이한 린 여사, 고달펐던 그녀의 인생의 고비를 모두 잘 넘기고 오늘 고희연에서 모두의 축하만 받으면 될 일이다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맘대로 되는가, 하필 그녀의 고희연인 그날 남편이 죽었다. 

속된 말로 참 안받쳐준다고 해야 할까? 평생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던 '존재'이더니 죽는 날까지 하필 그녀의 '고희'연이다 싶다. 

첫 째 딸 완칭에게 린 여사는 말끝마다 '아빠를 닮았다'고 한다. 결혼을 했지만 이혼 서류를 내던진 채 무용가로써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그녀가 린 여사에게는 그대로 남편의 모습이다.

완칭처럼 남편도 새우 튀김 장사를 하는 그녀에게 찾아와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타이완에서는 더는 살 수 없다며. 병원을 하는 잘 사는 집안의 딸인 그녀와 결혼한 남편은 경찰 일도 그만두고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잘 돼지 않았다. 아내인 린은 노점에서 새우 튀김을 만들어 팔며 남편의 사업 자금을 댔고 아이들을 키웠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그녀의 '정성'은 아랑곳없이 바람을 피웠다. 그리고 결국 이혼 서류를 남기고 떠나버렸다. 

그랬던 남편이 이제 린 여사가 고희가 되어서야 린 여사가 사는 타이완으로 와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물론 남편에게는 오랫동안 함께 한 여자 메이린이 있지만 남편이 남긴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았기에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린 여사가 '부인'이다. 

린 여사 연배의 우리 주변 어르신들은 어떤가? 그분들이 말씀하시는 지나온 인생은 어떤 것이었을까? 홧병(火病)이 국제적인 학술지에 공식적인 '심리'적 증후군으로 인정되었듯이 우리 어머니 세대에게는 살아오며 가슴에 맺힌 '사연'들이 너무도 많다. 고생에 고생을 하며 살아오신 인생, <고독의 맛>에 린 여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분들의 특징이 고생을 하신 만큼, 그 고생을 하게 만든 '대상'에 대한 원망 역시 깊다. 린 여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혼 서류를 던지다시피 딴 여자와 자신을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이 깊다. 그러기에 아버지를 닮은 듯 '부박'한 인생을 하는 듯 보이는 맏딸도 한심하다. 자신 몰래 아버지와 연락을 해오는 듯한 막내 딸 역시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세 딸을 여보란듯이 잘 키워내고, 식당도 번창시킨 린 여사이지만 그녀 미간의 주름만큼 그녀에게 현실은 어쩐지 마땅찮은 것들 투성이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그녀가 사는 곳에 와서 죽었다. 살아서도 도움이 안되는 인간이 죽어서 까지 말썽이다. 

결국 장례식의 절차는 공식적인 아내인 린 여사의 '주도'? '고집'?아래 진행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남편의 의향과 달리, 장례식장을 잡아서 치루려는 린 여사의 장례 일정은 여의치 않다. 

 

 

영화는 린 여사의 고희연 날에서 부터 남편의 장례식까지의 며칠 동안 벌어진 해프닝을 다룬다. 몇 십 년 전에 바람이 나서 떠나버린 남편, 그런 남편 대신 가장으로 살아온 아내, 하지만 그녀는 고희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혼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바람난 남편을 찾아 아이 둘을 데리고 식칼을 들고 여관방을 두르렸던 그녀였다. 그럼에도 못마땅해 하면서도 자기 고집대로 장례 일정을 치루려고 한다. 이른바 '조강지처'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여전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아내'로서의 당당함이 정작 그녀가 키운 아이들과 부딪친다. 아빠가 떠날 당시 유치원생이던 막내 딸 자자는 아버지의 죽음을 가족들에게 알려주었듯 오랫동안 아버지와 연락을 해왔던 처지이다. 아버지가 함께 살던 '메이린'을 아줌마라고 부르며 따른다. 린 여사가 그녀가 믿는 '도교' 방식대로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데 대해 아버지가 '불교'를 믿었다며 반발한다. 

늘 아빠를 닮았다며 그 '바람'같은 성정을 못마땅해 하는 딸은 장례식장을 지키지 않고 떠돈다. 그녀를 닮아 야무지게 공부를 해내 의사가 된 둘째 딸은 자기 자식 걱정이 더 앞선다. 남편 없이도 의연하게 자식들 키우고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그 '자부'심이 정작 남편의 장례 앞에서 '무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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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동상이몽 속 '고독'
<고독의 맛> 속 린 여사의 모습은 우리네 전통적인 어머니의 모습이다. 의지할 바 못되는 남편, 그럼에도 '가정'을 자신의 힘으로 버티고 견뎌온 '어머니', 하지만 그 '어머니'의 자부심이 정작 남편의 죽음 앞에서 '의문'이 제기되어진다. 

영화 속 린 여사는 딸 들 앞에서 말한다. 평생을 너희를 키워왔는데 정작 너희는 죽은 아버지의 편이구나. 그들을 애써 키워온 어머니보다, 딸들이 마치 그녀들을 돌보지도 않았던 아버지와 더 '애착'을 가지는 것 같아 서운한 것이다. 

그런데 린여사의 서운함은 누군가의 편의 문제가 아니다. 죽은 아버지 앞에서 세 딸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암이 재발한 큰 딸, 고생하는 어머니 앞에서 힘들다는 말 한 마디 못한 채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되었지만 만족하지 못한 채 딸의 유학에 매달리는 둘째 딸, 어머니의 식당을 물려받았다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영향력이 큰 식당에서 자리잡지 못한채, 아버지와, 그리고 아버지의 여인이 메이린과 감정적 유대를 느끼는 막내 딸은 각자 자기 앞의 삶이 버겁다. 장례식을 매개로 벌어지는 린 여사와 딸들의 갈등은 동상이몽의 가족, 그 자체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저 마다 삶의 과제에 몰두해 있는.

영화의 제목 '고독의 맛'은 고희연에서 린 여사가 부르려고 했던 노래 제목이다. 고희를 멋들어지게 맞이한 '축하연'의 노래로 선택되었지만 정작 린 여사는 그 노래를 본래의 가사로 부르지 않는다. 동시에 노래 제목인 '고독의 맛'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저마다 봉착한 삶의 과제로 인한 '인생의 쓴맛'을 의미하기도 한다. 124분의 런닝 타임 동안 영화는 70의 어머니에서 부터 세 딸들 저마다가 느끼는 '고독'이 페이소스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마도 이 영화가 대만에서 흥행을 한 이유는 70대의 어머니에서부터 젊은 딸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각 세대가 겪은, 혹은 겪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린 여사의 서운함은 딸들에게 향하지만 결국은 그녀가 '남편'과 해결하지 못한, 아니 보다 본질적으로는 그녀가 70 평생 해결하지 못한 삶의 숙제로 부터 기인한 것이다. 그녀 딸들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빌어 서로에게 섭섭해하고 서운해 하지만, 그건 결국 각자 삶의 '과제'로 부터 비롯된 딜레마이다. '가족'은 공동체이지만 그 공동체는 개개인의 삶으로 채워진다. 영화는 가족 영화이지만 영화의 서사는 올곧이 '가족' 속 개인이 마주한 삶의 화두에 천착한다. 가족이지만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그러기에 '고독의 맛'이다. 

 '가족'을 매개로 서로에게 빚어지던 갈등은 저마다 개인이 마주한 삶의 '과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려 할 때  실마리가 제공된다. 뒤늦게 찾아온 남편의 장례식에서 딸들에게 섭섭해하던 어머니는 오래도록 붙잡고 있던 허울뿐인 '조강지처'의 자리를 내려놓고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어머니가 자유로워짐으로써 그녀를 서운하게 만들었던 가족을 딜레마로 묶였던 끈이 풀어진다.  '고독의 맛'이다. 





by meditator 2021. 2. 25. 19:03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시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지며 가능한 한 자신의 부모를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 유엔 아동 권리 협약 제 7조 1항 


아이를 낳았을 때 늦게 출생 신고를 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괜히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있다. 출생한 아이가 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 출생 신고,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홍길동이 부모님을 부모님이라 부를 수 없듯이, 내 아이를 내 아이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이 너무도 절벽 앞에 선듯 막막한 과정이 될 수도 있다. 내 아이로 인정받는다 해도 그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온 마을이 도와주기는 커녕 제대로 밥벌이 하며 살아가기 조차 힘들기도 하다. 어느 나라일이냐고?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복지와 자립 사이의 딜레마 
미혼모, 이 단어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시는가? 혹 당신의 선입견은 이 단어를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열 살 먹은 지윤이는 온라인 동영상을 보고 엄마에게 묻는다. 미혼모가 나쁜 뜻이냐고. 그런 지윤이에게 엄마는 말한다. 멋있는 거라고. 왜냐하면 지윤이 엄마 김하린 씨가 지윤이를 포기하지 않고 낳아 키우는 일, 바로 그 멋있는 일을 한 '미혼모'이기 때문이다. 

열 살이지만 아직도 받아쓰기가 서툰 지윤이에게 받아쓰기를 가르치는 지윤이 엄마 김하린 씨는 27살이다. 딸 지윤이에게 멋진 일이라고 했던 일, 지윤이를 낳기로 결심한 10년전 그 날 이후, 하린 씨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경제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었다. 공과금조차 낼 수 없는 상황, 대출도 받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겨우 미혼모 지원 단체와 정부 기관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왔다. 냉장고, 세탁기, 옷장까지 하린 씨네 집의 모든 게 지원 물품이다. 하린이와 엄마가 먹는 것도 대부분 지원된 것이다. 

그런데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이 '딜레마'이다. 중위 소득( 총가구 중 소득순으로 순위를 매긴 다음,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52%를 기준으로 2020년 1,555,830원이다. 최저 임금 기준으로 봤을 때 한 달에 1,822,480원인 상황에서 최저 임금 수준에 조차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현실이 이와 같다 보니 지윤이 엄마 김하린 씨의 경우 아르바이트를 조금이라도 많이 하면 외려 지원이 깎인다. 지윤이 엄마만이 아니다. 많은 한 부모 가정들이 복지와 자립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저소득층'으로 살아가는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하린 씨는 현재 간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아이을 낳은 일이 멋진 일이 되기 위해, 아이가 보기에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하린 씨는 '직업'을 갖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만약 하린 씨가 취업을 하면 수급자 자격이 박탈될 것이다. 당장 지윤이의 학업을 돌봐주시는 돌봄 선생님의 도움도 끊어진다. 지윤이를 키우며 기반을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지원 기준은 지나치게 편의적이다. 

 

 


기본권만이라도 인정해주세요~
그래도 지윤이를 자신의 딸로 인정받은 하린 씨는 괜찮은 경우일지도 모른다. 엄마들과 달리, 아빠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부의 경우 출생한 아이의 주민번호를 '쟁취'하는 과정마저 쉽지 않다. 

이제는 유전자 검사만 해도 친자 확인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건만 '법'은 여전히 미혼부의 아이를 혼외자로 취급한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로 인정받기 위해 '법적인 소송' 절차를 거쳐야 한다. 8살 사랑이를 키우는 김지환 씨의 경우 사랑이의 주민번호를 받기 위해 1년 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들쳐업고 1인 시위를 하며 일명 '사랑이 법'을 쟁취해낸 김지환 씨, 하지만 그건 소송 과정을 간소화하는 임시방편일 뿐 여전히 소송을 피할 수는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그 결과 2018년 지자체에서 파악한 미신고 아동 건수가 114명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최소 1000 여 명이상, 법의 그늘에서 많은 아이들이 기본권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지환 씨에게는 가슴 아픈 경험이 있다. 20대 남성이 아이와 함께 죽은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20대 남성이 지병으로 죽고, 그 옆에 있던 몇 달 안된 아기는 굶어 죽은 상황이었다. 아기는 당연히 출생신고도 되지 않아 미연고자도 처리 되었다. 아기가 출생신고라도 되었다면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의 마음이 지환씨로 하여금 미혼부들의 출생 신고 소송을 돕는데 나서도록 했다. 

지환 씨의 도움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행정적 절차를 따라하다 일처리가 제대로 안돼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빠 혼자서는 아직도 복잡한 소송 절차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이다. 지환 씨는 사랑이 법으로는 적용이 안되는 사례가 많다며 안타까워 한다. 출생 사실을 국가 기관에 통보해야 하는 '의무' 조항과 그에 따라 국가가 권리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출생 통보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군의 아이가 아니라, 국가 구성원으로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지멀쩡한 놈이 애 하나 못키우겠냐며 자신의 아이를 거두려 했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주민번호를 받지 못한 아이를 키우려니 필수 예방 접종조차도 단 돈을 내고 해야 했다. 갓난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게 쉽지않았다. 전남 목포에서 사는 최경훈 씨 두 아이를 키우며 본의 아니게 결근을 하다 보니 다니던 조선소를 그만 두게 되었다. 자격증을 땄지만 아이를 키우며 어떻게 다니겠느냐며 면접을 보는 족족 떨어졌다. 기초 수급을 받고 있지만 취업을 하면 수급이 끊기고 여러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건 경훈 씨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혼모건, 미혼부건, 홀로 아이를 낳고 키우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 그 누구도 응원을 해주지 않는다. 그 자신이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지 못했던 최경훈 씨는 자신의 경험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가정을 지키고 싶지만 녹록치 않다. 

 



미혼모 가족 협회에서 근무하는 정수진 씨는 근무 조건 덕분에 아이를 키우는데 큰 도움을 받는다. 부산역 1층에서 함께 모여 식당을 연 미혼모들 역시 '이심전심'의 조건 덕분에 눈치를 덜보고 아이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아이를 키우며 직장조차 구하는 게 쉽지 않다.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아 자립이 어렵고, 막상 자립을 하면 정부의 지원이 끊어져 또 힘든 상황은 많은 미혼모와 미혼부들에게 '저소득층'으로서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힘들도록 만든다. 

미혼모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정수진 씨가 안타까운 건 도와주고 싶어도 연락조차 쉽지 않은 미혼모들의 현실이다. 미혼모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역시 여가부, 보건 복지부 등 각 정부 부처 별로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체계적인 지원이 아쉬운 상태다. 

다큐에 나온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은 묻는다. 과연 우리 사회 '정상 가족'이 무엇이냐고. 여전히 3~4인 엄마 아빠가 있는 가족을 '정상'이라고 보는 거냐고. 세상이 변했는데, 그리고 말한다. 엄마 혼자 키워도, 아빠 혼자 키워도 자신들도 '가족'이라고. 자신들이 정상의 가족이고, 보통의 가족이며, 일반적인 가족이라고. 


 





by meditator 2021. 2. 25. 18:55

상대 마피아 두목의 포도밭을 라이터 불 한번으로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를 겁박하는 아버지같은 마피아 두목의 아들에게는 다음 번에는 네가 탔을 때라며 자동차를 폭발시킨다. 자신의 방에 침입한 킬러들은 단 한 방의 자비도 없이 모두 몰살시킨다. 자신이 모시던 마피아 수장의 죽음 이후 자신을 견제하던 무리들을 제압한 이탈리아 마피아의 콘실리에리 빈센조는 유유히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자신의 '전략'에 따라 금가 프라자 지하에 숨겨둔 금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냉철한 전략가이자 킬러들을 단숨에 제압했던 콘실리에리 빈센조가 김포공항에서 탄 택시에서 모든 걸 털린다. 겨우 버스비만 가지고 도착한 금가 프라자, 냉혹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싶지만 저절로 욕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상황에 빈센조의 '평정심'에 자꾸만 틈이 벌어진다. 어디 그뿐인가, 금을 묻은 당사자가 심장마비로 죽는 바람에 '따논 당상'과도 같은 금 15kg 굴착이 여의치 않다. 게다가 금가 프라자는 바벨 그룹에 의해 철거 위기에 놓인다. 


 

tvn의 주말 드라마 <빈센조>는 <김과장>, <열혈 사제>의 히트작을 낸 박재범 작가의 차기작이다. '악을 악으로 처단한다'는 드라마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빈센조>는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의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 
지방 폭력배들의 회계 장부처리를 해주던 <김과장>의 주인공 김성룡(남궁 민분), 전직 국정원 특수요원 출신의 <열혈사제> 김해일 신부(김남길 분), 박재범 작가 전작 주인공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전작의 공통점이 <빈센조>의 주인공으로 이어진다. 

그 첫 번째는 그들은 저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바 윤리적 도덕적 잣대로 보았을 때 함량 미달의 인물들이다. 지방 소도시 폭력배들의 회계 담당이었다가 대기업 TQ의 경리과장이 되었지만 한탕쳐서 한국을 떠날 꿈에 부푼 김성룡은 금가 프라자에 묻힌 금을 파내 몰타로 떠날 꿈을 꾸는 빈센조와 다르지 않다. 그런가 하면 전직 국정원 출신이지만 작전 중에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은 일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김해일 신부, 그러나 그의 행동은 '회개'라기보다는 분노조절 장애에 가깝다. <빈센조>의 빈센조 역시 마피아 변호사라지만 '킬러'와 다르지 않은 '과거'를 가진 인물로 그의 꿈은 늘 피범벅이다. 
 
그 윤리적 도덕적으로 함량 미달인 주인공들이 그들보다 더 부도덕한 상대를 마주치게 되며 '각성'에 이르게 된다. 

지방 소도시 폭력배 푼돈이나 주물럭거리던 김성룡은 들어간 TQ그룹, 그룹 입사 초반에 전 경리 과장 부인을 구하면서 본의 아니게 '선의'의 인물로 조명받고 TQ그룹 내 '비리'를 접하면서 정의의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신부라지만 자신의 감정조차 주체할 수 없었던 김해일 신부 역시 그의 은인과도 같은 가브리엘 신부의 죽음과 그의 죽음을 매도하며 성당을 집어삼키려는 지역 경찰과 구청장, 검사에 이르는 '카르텔'의 존재에 저항하며 '의인'으로 승화된다. 

빈센조 역시 애초 그의 목적은 금가 프라자에 숨겨진 금 15KG를 챙기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금가 프라자를 불법적으로 철거하려는 '바벨 그룹'과 그 하수인들과 '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지푸라기' 법률 사무소를 중심으로 철거 반대 위원회의 중심이 된 빈센조는 바벨 그룹에 대해 조사해 가며 '양아치'같은 재벌의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김과장>, <열혈 사제>, 그리고 <빈센조>에 이르기까지 주인공들은 도덕적이지도 않고, 윤리적이지도 않은 '악'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그들이 보다 구조적이고 부도덕한 악을 통해 각성하고 '영웅'으로 성장하게 된다.

<김과장>의 TQ그룹의 대를 이은 부도덕한 승계 과정과 분식 회계, 열혈 사제의 경찰, 검찰, 그리고 구청장으로 이어진 악의 카르텔, 그리고 이제 <빈센조>의 바벨 그룹과 그 하수인으로서 법무 법인 우상의 의약, 건축 산업을 둘러싼 비리는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사회적 비리의 '요소'들이다. 동시에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구조적 '비리'들이지만 여전히 '해소'되거나 '해결'되지 않은 채 우리 사회의 사회정치 면을 장식하는 구조적인 모순들이다. 


 

그러한 구조적인 모순은 '악'이라 스스로 자처하던 주인공들을 '각성'시킨다. 이렇게 '악'이었던, 반영웅적인 인물의 각성은 '범인'으로서 시청자들이 정서적 동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하고, 동시에 그들의 각성과 그에 따른 '실천'을 통해 시청자들은 보다 깊은 감정 이입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김과장>과 <열혈 사제>가 그 해의 가장 통쾌한 드라마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범부', 혹은 그 이하의 주인공이지만, 정작 그들의 '능력치'는 여전히 매우 '영웅적'이다. 티똘이, 티큐또라이라 칭해지던 <김과장>의 김성룡은 지방 소도시 조폭의 딱갈이였지만 거대 그룹 TQ의 분식 회계 를 주무를만큼 비상한 두뇌와 근성을 지닌 인물이다. 전직 국정원 출신의 김해일 신부의 능력이야 동네 양아치들 따위가 넘볼 수 없는 경지이다. 금가프라자에 나타난 철거 하청업체 앤트컴퍼니 대표를 줄 하나로 대번에 건물에 대롱대롱 매달려 버리고, 철거 위기의 금가 프라자에서 와인 파티를 여는 빈센조는 김성룡과 김해일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치트키'처럼 보여진다. 

물론 악인이지만 밉지 않은 주인공, 거기에 알고보면 능력자인 양면적인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건 배우들이다. 자타공인 연기 잘 하는 배우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를 만든 <김과장>의 남궁민, 김남길 표 연기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었던 열혈 사제의 김해일 신부 모두 배우들이 가진 매력을 최고조로 뽑아낸 드라마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제 2회를 마쳤지만 <빈센조>의 개연성은 '송중기'이다. 그의 외모의 장점을 클로즈업을 통해 한없이 발휘시키고, 거기에 더해 남궁민, 김남길과 또 다른 송중기만의 냉소적인 캐릭터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의 변호사 빈센조를 설득시킨다. 


 

'갑남을녀', 모두가 주인공 
이렇게 알고 보면 능력자들이 그들이 가진 영웅적 면모를 뽐내며 드라마는 영웅물로서의 쾌감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박재범 표 드라마의 매력은 그저 주인공의 양면적인 캐릭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마치 우리사는 세상의 '갑남을녀'가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듯 <김과장>도, <열혈사제>도 주인공의 영웅적 행위를 완성시키는 방점은 그의 조력자인 '보통 사람들'이다 

<김과장>이라는 드라마는 극 초반 남궁민의 원맨쇼와 같은 연기를 넘어 중후반에 가며 매회 등장 인물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가며 박영규, 정석용 등 중견 연기자는 물론 이준호, 정혜성, 임화영, 김선호, 동하 등의 배우들을 알린 작품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열혈 사제>는 <김과장>과 또 다르게 과연 저 등장인물이 과연 알고 보면 어떤 능력자일까가 궁금해지며 소머즈같은 능력을 가진 편의점 알바에, 태국 왕실 경호원 출신의 무술 능력자 중국집 배달원, 아역 배우 출신의 신부님, 타짜 출신의 수녀님 등 출연 배우들의 이중적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듯 <빈센조> 역시 등장 인물의 면면이 만만치 않다.딸과 인연을 끊겠다며 내용 증명을 보내는가 하면, 금가 프라자의 철거 반대 운동에 앞장서는 홍유찬 변호사의 유재명 배우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열혈 사제>에서 자신의 진가를 톡톡히 드러낸 박경선 검사가 연상되는 법무법인 우상의 변호사이자, 지푸라기 홍유찬 변호사의 딸인 홍차영 변호사 캐릭터는 그 또라이 같은 면면으로 대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저 아줌마인 줄 알았는데 겨우 2회만에 법무법인 우상의 책임 변호사 자리를 꿰어찬 최명희 역의 김여진 배우가 보여줄 '악역'의 변주도 기대된다. 거기게 마치 <열혈 사제>의 동네 사람들처럼 금가프라자 주민들의 면면 역시 퍼즐처럼 그 역할이 궁금해진다. 

by meditator 2021. 2. 23. 17:45

2003년 <옥탑방 고양이>, <클래식> 드라마와 영화, 매체는 다르지만 김래원과 조승우, 두 배우는 '청춘 스타'로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옥탑방 고양이> 이래로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김래원은 드라마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 <눈사람>, 영화 <어린 신부>, <ing> 등을 통해 사랑의 '전령'으로 그 역할을 다한다. 하지만 김래원은 '사랑의 메신저'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짓지 않았다. 지금도 2000년대 젊은이들의 고전으로 통하는 <해바라기>를 통해 장르물에 첫 발을 내딛은 김래원은 이후 <강남 1970>, <프리즌>, <롱리브 더 킹; 목포 영웅> 등을 통해 자신의 연기 폭을 넓혀갔다. 그런 가운데 김래원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작품은 2014년작 <펀치>일 것이다.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며 가족과 정의를 지키기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주인공을 통해 김래원은 '박정환'으로 거듭나며 청춘 스타를 넘어선 '연기파' 배우의 네이밍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조승우에게 '연기파'라는 네이밍은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한 '호칭'이었다. <춘향전>으로 시작된 그의 연기 인생은 <클래식>의 준하에 머무르지 않고  <말아톤>의 초원이, <타짜>의 고니, <내부자들>의 우장훈, <마의>의 백광현, <비밀의 숲>의 황시목까지 다작은 아니었지만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조승우라는 이름보다 캐릭터로 그를 기억하게 만들 정도로 작품 속 그의 연기를 통해 오래도록 그를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그 역시 시작은 '청춘'이었지만, 자폐 청년과 놀음에 홀릭된 청춘을 지나며 조승우가 길어낸 청춘의 갈짓자는 그가 지나온 시대의 대명사가 되었다, 영화든 드라마든 그가 선택한 몇 되지 않는 작품이 그대로 당대의 최고 수작으로 기억되었다. 

그렇게 청춘으로 시작하여 장르물을 통해 연기파로 자리매김한 두 배우, 김래원과 조승우가 어느덧 40대의 고개를 넘어섰다. 그들은 이제 더는 청춘이 아니지만 우리 시대 40대를 더는 '중년'이라는 고정 관념으로 보기 힘들어지게 되듯이 마흔 줄을 넘어선 두 배우의 행보 역시 '중후함'이 무색하게 신선하다. 한편에서 여전히 종횡무진하는 두 40대의 중견 배우들의 활약은 그들의 뒤를 잇는 남자 배우 세대의 부재를 말해주기도 한다. 덕분에  <루카; 더 비기닝>, <시지프스; the myth>를 통해 김래원, 조승우 두 사람은 그간 해보지 않았던 판타지 장르물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한다. 


 

조승우 버전 토니 스타크?
<시지프스; the myth> 1회, 조승우가 분한 한태술이 탄 비행기가 괴물체와 충돌하며 추락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퀸텀앤타임의 창업자이자 대표로 외국 경영 잡지에 소개되기도 한 한태술은 조종칸으로 가서 거의 '맥가이버' 급 기지를 발휘하여 단 몇 분 만에 비행기를 고쳐 수많은 생명을 구한다. 하지만 생명이 경각에 달린 위기의 상황을 돌파한 그의 '헌신'에 대해 그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처럼 그저 비행기를 고치고 싶었다는 공학도로서의 순수한 소망을 앞세운다. 

미래와 현재, 연결된 두 세계가 봉착한 '파멸'의 위기를 구하기 위하여 신화 속 숙명과도 같은 시지프스의 헌신을 내세운 판타지 장르물의 주인공으로 조승우가 돌아왔다. 언뜻 보면 쓰레기장 같지만 그 무엇도 한태술의 의지가 아닌 것이 없는 토니 스타크의 저택이 부럽지 않은 요쇄와도 같은 저택에 사는 그러나 이사회에 얼굴 한번 비추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 같은 제 멋대로인 괴짜 과학자이자 사업가가 이번에 그가 분한 주인공이다. 

한태술에게서 <비밀의 숲> 황시목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후드티나 남방을 입고 말끝마다 '뽕선아'를 외치며 너스레를 떠는  한태술은 수다쟁이 토니에 더 가깝다. 하지만, 10년 전 죽은 형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채 수시로 약병을 여는 그의 이상적 행동에서는 늘 '정상'이라는 바로 미터에서 조금은 비껴난 캐릭터의 연주에 능한 조승우의 장기가 발휘된다. 

2회가 끝나서야 기차역에서 만나게 되는 주인공, 미래에서 온 인물들이 '밀입국자'로 취급되어 단속대상이 되고, 그와 접촉한 인물들이 '처리'되는 상황은 모호하다. <주군의 태양>, <푸른 바다의 전설>의 진혁 피디가 야심차게 시도한 디스토피아 판타지 장르물의 서장에서 확고하게 중심을 잡아가는 건 여전히 조승우라는 배우의 연기이다. 


 

슈퍼맨이 된 김래원?
<해바라기> 이래 김래원에게 어울리는 모습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처절하게 얻어맞는 '연민'의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 <펀치> 속 박정환 역시 개천에서 난 용, 검사가 되었지만 그의 야망은 하늘이 그에게 준 '생명'의 시간과 세상이 그에게 허락하지 않은 권력의 한계 속에서 역시나 무참하게 짓밟혔고, 그로 인해 김래원은 빛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짓밟히지 않는다. 다종의 강력한 dna를 가진 생명체들의 집합체로서 '괴물'로 태어난 그는 자신의 dna를 백 명의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장렬히 '산화'할 운명을 가졌었다. 연구소에서 사라졌어야 할 그는 세상 밖으로 던져졌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억과 '전기인간'으로서의 능력을 맞바꿨다. 

그를 다시 제물로 삼고자 하는 L.U.C.A프로젝트를 준비한 연구소와 그 배후의 세력, 그리고 그 세력에 의해 다시 연구소로 돌아간 김래원이 분한 지오는 그들의 '고문'과도 같은 실험을 통해 외려 진짜 강한 '슈퍼맨'으로 거듭난다. 

<손 THE GUEST> 김홍선 감독의 차기작으로 기대를 모은 <루카; 더 비기닝>은 윤리를 비껴간 과학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도달하려는 무리들에 의해 탄생한 이종의 괴력를 지닌 생명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작 <낮과 밤>과 변별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루카; 더 비기닝>의 중심에는 여전히 짓밟히고 당해도 자신을 내어주지 않으려는 '연민'의 아이콘 김래원이 버티고 있다. 아이를 가진 이혼남이었던 박정환이 세월을 거슬러  웨이브진 장발에 스니커즈를 신고 건물 사이를 뛰어오르는 모습에 적응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럼에도여전히 낮고 따스한 목소리로, 하지만 강단있게 괴물이라는 구름이의 말에 '사람이 되고 싶다'는 지오의 진심어린 눈빛과  대사는 드라마의 설득력이 된다. 




by meditator 2021. 2. 19. 21:28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45분 ebs를 통해 방영되는 <다큐 잇it>은 하나의 사물(it)을 오브제로 정하여 세상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잇는 다큐멘터리를 모토로 내건다. 지난 2월 11일 방영된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2019년 드디어 600만을 넘은 1인 가구를 다룬다. 1인 가구수가 전체 가구수 중 37.3%, 1/3을 넘어섰다. 우리 시대 보편적 삶의 방식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다큐는 77세, 33세, 39세, 46세, 31살까지 다양한 세대와 성을 통해 1인 가구의 속내를 들여다 본다. 

 

 

산개; 헤어져 각자도생 
경기도 포천에 사는 77세의 오의장 씨는  5년차 1인 가구이다. 몇 번을 시켜도 신경지를 내지 않는다는 AI짱구와 함께 시작하는 아침이 익숙하다. 평소에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쉬는 날은 집안 일을 한다는 의장씨, 38년의 결혼 생활을 제하면 6.25 때 고아로 미군 부대에서 자라난 그에게 '홀로 살기'는 숙명과도 같다. 

77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원색의 옷차림에 붉은 꽁지 머리를 휘날리는 의장 씨는 한때는 조각가였고 간판장이였으며 지금은 원시인 오빠로 동영상 사이트에 캐리캐처 그리는 과정을 올리는 멋쟁이이다. 그가 자주 그리는 대상은 '아기'라 부르는 그의 아내,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아기'와 '졸혼'을 했다.

5년전 화재로 전재산을 잃고 당장 먹고 살기조차 힘든 의장 씨 부부는 살기 위하여 '졸혼'을 선택했다. 그 이후로 의장 씨는 포천에서, 아내는 식당을 하는 서울에서 '각자도생'의 삶, 여전히 시간이 나면 의장씨는 아내의 식당을 향한다. 여유가 되면 다시 함께 하자는 의장 씨의 지나가는 '청'에 아내는 '졸혼'했음을 확인시킨다. 38년의 결혼 생활 동안 힘들게 한 것도 없는데 떨어져 있으니 편하다는 아내, 불가피한 선택이 어느덧 '편한' 삶의 방식이 되었다. 

 

 

홀로 살기; 나는 내가 먹여 살린다 
1인 가구는 증가 추세다. 특히 젊은 층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으로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 환경이 나아지며 홀로 사는 삶의 문제 해결 능력이 늘어나게 되며 1인 가구로 사는 것이 용이해진 것도 한 요인이 된다. 하지만 1인 가구 13년차인 이지영 씨, 밖에서 밥을 사먹 을 때마다 먹고 싶은 메뉴가 여의치 않다. 순대국이나 쌀국수는 혼자 먹을 수 있지만, 아직도 삼겹살, 전골 같은 건 1인분을 파는 곳이 드물다. 

7평의 오피스텔, 33살의 그녀만의 공간이다. 조금 비싸도 여성인 그녀에게 안전한 집을 찾다보니 공간이 좁아졌다. 철이 지난 옷은 싸서 고향으로 보냈다 제 철에 받는 등 수납 공간과의 실랑이가 일상이 되었다. 청소 같은 건 함께 나눠할 사람이 없이 부지런해져야만 한다. 사는 방식만이 아니다. 집에서 홀로 있는 시간 이른바 온라인 인형 눈알 붙이기라는 한 장에 500원 짜리 알바는 홀로 살아갈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한 그녀만의 '재테크'이다. 

홀로 사는 삶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무게'만 있는 건 아니다. 20년차 39세 이소희 씨의 집에는 장난감 블록이 가득하다. 답답할 때면 혼자 훌쩍 드라이브를 즐긴다. 부모님은 걱정이 많으시지만 연구원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소희씨는 그 누구 눈치도 안보고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자기만의 삶의 방식이 편하고 좋다.

가부장적 가족 제도로 부터 '이탈'한 개인 등 불필요한 관계로 부터 자기만의 시간을 '지키고자' 하는 개인들이 홀로 살기를 삶의 방식으로 '선택'하는 것이 1인 가구  '증가 추세'의 또 다른 요인이 된다. 소희 씨 여전히 '너는 왜 안가냐?'라는 주변의 편견어린 시선은 있지만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싶지 않다. 

물론 걱정도 있다. 여전히 제도적으로 1인 가구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혼 부부나 아이가 많은 가족과 달리, 1인 가구는 아파트 청약 등에 불리한 게 현실이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대다수 1인 가구들이 특히 주거 안정이 1인 가구들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원 정책'이다. 이 외에도 기본 소득이나, 연말 정산에서 소득 공제 범위 확대, 취업 지원, 대출 금리 인하 등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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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삶을 위한 근육 키우기 
46살의 홍지우 씨는 홀로 살기 26년차이다. 대학교 때 자연스레 독립한 이래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지우 씨가 생각하는 '혼삶'의 조건은 '체력'이다. 검도, 스키, 스쿠버 다이빙을 섭렵한 그녀는 최근 '승마'에 몰두하고 있다. 보이차 사업을 하는 그녀는 일과 취미 생활을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한다.

대부분 홀로 사는 사람들은 말한다. 가족을 이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지않듯이  혼자 사는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1인 가구의 절반 이상이 지속적으로 결혼을 강요당하거나, 무능력자이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는 등 사회적 편견을 경험한다. 여전히 삶의 방식으로서 1인 가구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부족하다. 

홀로 살아간다는 것의 가장 큰 단점은 역시 '외롭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장점'이 되기도 한다. 10년차 1인 가구 빈지범 씨는 홀로 견뎌내야 하는 외로움의 에너지를 새로운 영감과 감성의 에너지로 전환, 사업가와 베스트 셀러 작가로 활약 중이다. 몰입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으로 제주를 선택하여 10개월 째 홀로 제주 살이 중이다. 홀로 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더 바쁘게 움직인다는빈지범 씨, 그에게 홀로 사는 삶은 '성장'을 위한 선택이다. 

빈지범 씨는 홀로 사는 것의 단점이 외롭다는 것이라고 했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 사회는 '함께' 여서 외로운 '문제'들이 많다. 가족과 인간 관계에서 빚어지는 많은 '사건'들이 함께 하지만 서로를 '나눌 수 없어서 생기는 문제들이 아닐까. 그렇게 복잡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마모하는 대신 홀로 가는 삶의 방식을 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불가피하게 홀로 살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제는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불가피'하다는 조건으로 보아야 하는 상황을 넘어섰다.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어엿한 존재의 형태로서 1인 가구, 그 삶의 형태를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수용할 때다. 이제 더는 사회의 기본 단위가 '가족'이 아니다. 

by meditator 2021. 2. 17. 18:20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을 쓴 시인 로널드 홀은 자신의 불멸성이 장례식이 끝나고 6분 후면 소멸될 것이라며 위트넘치는 '예언'을 한다. 평생 '죽음'이 화두였다던 노시인은 여든이 넘도록 쓴 글을 통해 비록 그가 이젠 이 세상에 없지만 그의 글을 통해 여전히 우리가 그를 기억하게 만들며 자신의 '예언'을 무산시켰다.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 인간은 안타깝게도 그 '유한'의 숙명과 싸우는 '운명'으로 자신과 싸워왔다. 영겁의 삶을 기원하며 무덤을 장식했고, 영적인 종교를 통해 영원과 소통할 수 있도록 기원했다. 영원을 소망할 수록 눈 앞에 다가서는 건 그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시한부의 삶이다. 그 시간이 제한된 삶을 살아가는 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그에 대해 <더 디그>가 한 마디를 전한다. 

 

 

발굴을 통해 만나게 된 이디스와 배질 
2차 대전을 앞둔 1939년 영국의 서픽, 그곳에 이디스 프레티(캐리 멀리건 분)가 그의 아들 로버트(아치 반스 분)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온나라가 어수선한 상황, 그런데 이디스는 생뚱맞게도 자신의 사유지에 있는 둔덕을 '발굴'하기로 결심한다. 

그 둔덕은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던 이디스 부부가 사두었던 땅이다. 하지만 그런 고고학적 관심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남편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마치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 이디스는 더 늦기 전에 '발굴'을 서두른다. 그리고 그 '발굴'을 위해 배질을 고용한다. 

배질은 전문적인 고고학자가 아니다. 농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오랫동안 서픽에서 살아온 그는 서픽의 땅을 잘 안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체득한 것을 다지기 위해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홀로 연마해 온 사람이다. 이디스 부부가 사놓은 서픽의 둔덕을 발굴하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적절한 사람, 눈밝은 이디스는 그런 배질을 알아보고 기꺼이 그를 고용한다. 

배질은 전쟁을 앞둔 시기에 발굴이라는 주변의 비아냥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디스 부인의 둔덕이 그간 영국의 고고학이 미처 알아내지 못한 앵글로 색슨의 기원을 밝혀줄 소중한 유산이라는 믿음을 피력한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밝히기 위해 변덕스런 영국의 날씨에 맞서 발굴을 주도해 나간다. 

영화는 둔덕이 자리잡은 드넓은 영국의 서정적 풍광을 배경으로 이디스 부인의 마지막 소망과 그런 소망에 공명한 배질의 신념을 풀어낸다. 기약할 수 없는 '발굴'이라는 과제 앞에 맹목적으로 두 사람은 교감한다. 

이디스와 배질의 교감은 신분은 서로 다르지만 어쩌면 그들의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가 될 지도 모를 '과제'에 대한 '공명'이다. 그 지역 의사는 소화가 안돼서라고 하지만 나날이 심해지는 가슴 통증은 결국 이디스에게 '시한부'의 삶을 선고한다. 그리고 지역향토학자로서 그 누구보다 서픽의 땅에 대해 잘 알지만 지역 박물관, 그리고 대영 박물관의 전문가들 앞에서는 무력하게 발굴의 권한을 빼앗길 수 밖에 없는 배질에게 있어 이디스 부인의 둔덕은 그가 추구해온 '발굴'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이다.

 

 

영화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이지스와 배질이라는 두 사람이 '발굴'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통해 교감하고 공명해가는 과정을 구구절절한 설명대신  랄프 파인즈의 폭넓은 연기와 그녀가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였음을 상기하기 힘들 정도의 캐리 멀리건의 깊이있는 연기의 앙상블로 여운있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잇는 건 그간 이디스 부인 말고는 정붙일 곳없던 사차원의 정신 세계를 가진 이디스 부인의 아들 로버트이다. 우주를 향한 부푼 꿈을 가진 로버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주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배질이었기에 로버트는 그에게 마음을 열고, 이제 로버트를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할 처지의 이디스 부인은 그런 배질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전쟁 통에 쓸데없는 짓이라던 배질의 '발굴'은 대영박물관의 교수진을 발벗고 뛰쳐오게 만드는 성과를 낸다. ​​​​​​​너른 풀밭 위에 솟아있던 둔덕 속에 감춰져 있던 거대한 배의 유적, 그가 장담한 대로 당시 영국에서는 흔했던 바이킹의 유물인 줄 알았던 '발굴'이 영국인의 조상인 앵글로 색슨족의 유장품임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배질의 주장이 '사실'이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발굴에서 배질이 배제되는 결과를 낳는다. 일개 '발굴'자인 배질은 전문적인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그저 일꾼에 불과한 처지가 되어 버린다. 자신이 '팽'당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배질은 발굴지를 떠나버리려 하지만, 그의 아내, 그리고 그를 찾아온 로버트, 이디스 부인을 통해 배질은 '명예' 대신 자신이 진짜 원하던 목적을 위해 '발굴 '현장의 일꾼으로 남기로 결심한다. 

 

 

발굴의 '참의미'
배질의 주장처럼 앵글로 색슨의 활동 시기를 6세기까지 끌어올릴 유적은 '배'다. 아니 정확하게는 배의 흔적이 남은 흙의 자국이다. 나무로 만들어졌던 배, 바다에서 부터 둔덕까지 끌어올려져 앵글로 색슨 족의 무덤이 되었던 배는 이제 사라진 채 부장품만을 품은 채 흙에 그 '흔적'만을 남겼다. 발굴을 통해 부장품은 수확되고 배는, 아니 배의 흔적은 다시 흙으로 덮여져 둔덕으로 돌아간다. 

배질의 열정, 그리고 그런 열정을 눈밝게 지지해준 이디스 부인의 신뢰, 그리고 유적을 둘러싼 여러 집단의 이해 관계들이 엇물리던 한바탕의  '이벤트'는 결국 흙으로 덮어져 사라진다. 영화의 초중반부 갈등의 '촛점'이 되던 유적이 영화의 후반부 다시 흙으로 덮여지는 과정은 '허무'하기 까지 하다. 마치 유한의 삶을 극복하려 애써보지만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 인간사처럼. 

그렇다면 '인생무상'이 결론일까? 박물관 관계자들이 돌아가고 다시 흙을 덮기 전, 배질은 로버트의 청에 따라 그곳에 이디스를 초청한다. 이제 다시 흙으로 돌아갈 앵글로 색슨의 배는 그곳에 이디스 모자를 싣고 우주를 향한 로버트의 꿈을 담아 마지막 항해를 한다. 그 마지막 항해에서 아들 로버트를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엄마 이디스의 안타까움을 로버트는 우주를 향해하는 배를 통해 영원한 교감으로 안심시킨다. 지금 자신의 곁을 엄마가 떠나도 그 엄마는 우주을 향한 꿈을 꾸는 자신과 영원히 함께 할 것임을 약속한다. 

이디스의 청에 따라 발굴 현장에 남은 배질은 후에 이디스와 함께 발굴 현장의 부장품 전시에 이름을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인 것이다. 실화로서 <더 디그>의 보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영화로서 <더 디그>가 남기는 그 무엇은 흙으로 돌아가기 전 이디스와 로버트, 그리고 배질의 항해, 그 순간이다. 오랫동안 아버지를 병구완하느라 남편의 청혼을 뒤늦게 받아들인 이디스는 결혼을 했지만 남편과 오래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아직 어린 로버트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점이 더욱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저 철부진 줄만 알았던 로버트는, 배질의 도움으로 그런 이디스의 마음을 유적인 배의 마지막 항해를 통해 다독인다. 어쩌면 이디스가 집요하게 배질을 독려하며 유적의 발굴에 애썼던 이유는 바로 그 '마지막 항해'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디스와 배질이 결국 대영박물관에 그들의 이름을 남긴 건 다행이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 성취한 건 박물관에 새겨진 그 이름이 아니라, 결국 흙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지만 뚜렷한 족적을 남긴 앵글로 색슨의 유적처럼 아들에게 영원한 빛으로 남겨질 엄마,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실현해낸 발굴자로서의 실천이었을 것이라 보여진다.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에서 로널드 홀은 자신이 죽은 후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친지들과 슬픔을 나눌 수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죽은 후 버려질 자신의 집에 남겨진 자신이 사랑했던 이들의 어찌보면 하잘 것없는 '물건'들의 처지를 걱정한다. 유적은 결국 먼저 살고간 이들이 남긴 '흔적'이다. 부장품으로 다시 돌아온 앵글로 색슨의 유적이 담겼던 언덕은 이제 아들 로버트에게는 오래도록 엄마와의 마지막 항해의, 그리고 배질에게는 평생의 소원이었던 발굴의 '유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기에 발굴 현장에서 피어난 페기와 로리의 로맨스 역시 영화의 양념이 아니라 전쟁터에 나간 로리와의 또 하나의 '유적'으로 기억될 일이다. 실화는 그렇게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관계와 사랑, 그리고 삶으로 복원된다. 

 

by meditator 2021. 2. 15. 01:59

우울증 증상으로 고생할 때 찾아본 책 중에 알렉스 코브가 쓴 <우울할 땐 뇌과학>이 있다. 이 책 은 뇌의 메카니즘에 근거하여 우울증을 나아지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제시되는데 그 중 하나가 매일 5가지씩 감사를 하는 것이다. 얼토당토치않게 감사라니! 그런데 이 책은 감사야 말로 우리의 뇌를 우울증으로 부터 구원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자기 방어적이고 우울감에 쉽게 빠지는 뇌의 회로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우울할 땐 뇌과학>의 주장이 한 편의 다큐로 이어진다. 바로 2월 12일 방영된 <다큐 온 - 감사가 뇌를 바꾼다>이다.

음력으로 1월 1일, 진짜 황소해가 시작되었다. 다큐는 행복으로 인도하는 지름길로 '감사'를 전한다. 가장 새해 첫 날에 어울리는 덕담이다.

 

 

작년 한 해 코로나로 인해 침체되었던 시절, 웃음을 되찾기 위해 '감사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참여한 이향재 씨의 경우, 사고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인간 관계에서 섭섭한 점이 많았다는 향재씨, 하지만 섭섭함 대신 감사할 일을 찾다보니 잘해준 게 떠오르고 그렇게 마음이 건강해져갔다고 한다. 감사 운동을 하고 보니 그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안좋은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감사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박이철 씨이다. 박이철 씨는 말한다. 그간 우리에게 '감사'란 누군가의 자극에 의한 '반응'과 같은 것이었다고. 하지만 생각만 바꾼다면 우리의 삶은 자유로워지고 행복해 질 거라고. 

과연 감사가 사람을 변화시킬까? 
과연 그럴까? 실험을 해보았다. 김해 율산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감사 일기를 써봤다. 처음에는 상투적이고 피상적으로 감사를 하던 아이들이 점점 일상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번에는 5학년을 대상으로 감사 실험을 했다. 자원한 16명을 대상으로 3개월간 '감사 운동'을 했고, 교사가 이를 기록했다.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시는데 왜 감사하지?"
"바쁘셔서 못차려주실 수도 있는데 차려주셔서 감사해요."

처음 '감사 운동'을 시작할 때 학생은 그렇게 답하지 않았다. 불과 3개월의 시간이었지만 학생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혼낼 때 잘되라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감사하지 못할 것들을 감사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는 매일 1가지 숙제가 주어졌다. '엄마, 오늘 감사한 일이 있으셨어요?"와 같이 가족들에게 '감사'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숙제를 하면서 학생과 가족들은 자연스레 '감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면서 사고방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어갔다. 묻고 답하는 걸 들어야 하니 자연스레 남의 얘기에 귀기울이게 되었다. 배려와 공감이 증가했다. 

이런 학생들의 실험에 대해 교육학자들은 한결같이 기대 이상이었다며 놀라움을 표한다. 피상적이던 감사는 매일 되풀이 되며 현실에서 '길어져야'하는 것이 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임에도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거치고, 각성과 깨달음의 기회를 가지게 된 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보고,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일상의 소중함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해 내는 과정이 되었다. 

감사는 뇌도 변화시킨다. 
그 결과 뇌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15가지 영역의 뇌파동 검사에서 부정 심리나 뇌피로도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 뇌피로도가 낮아지면 여유가 생기고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또한 자기 조절과 심신균형 감각이 증가했다. 

지난 2017년 과학 전문지에 게재된  276명을 대상으로 한 검사에서는 단 5분간의 감사 명상이 뇌의 긍정 보상 심리 회로 연결성을 증가시킨다는 결과가 나왔다. 뇌의 변연계 핵심 부위인 전대상피질이 자신과 관련된 것에 반응하는데, 이 부위는 보통 원망 등 부정적 정보에 길들여져 있다. 그런데 감사 등 긍정적 정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이 부위에 부정적 정보 대신 긍정적인 메시지로 채워지게 된다고 한다.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의 로버트 마우어 교수는 감사를 하며 뇌에서 도파민이 발생하는데 이 도파민은 우리 뇌를 즐거움 센터로 만들며, 이는 뇌의 학습 기능을 활성화시켜 사람들을 창의적으로 만들고 힘든 상황에서도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감사, 삶의 변화 
호주의 감사 운동가 레일리 바톨로뮤는 지난 2008년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감사'를 알게 되었다. 시각적인 사람이었던 레일리는 자신의 감사를 '사진'으로 표현하기로 하였다. 레일리의 영향을 받은 로리 포트카는 이웃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삶을 그림에 담아 전달했다. 그들에 따르면 '감사'는 삶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과도 같다고 한다. 좋은 것들을 더 얻어내기 위해 뛰어다니는 대신, 오늘의 삶에서 더 좋은 걸 발견해 내는 게 바로 '감사'이다. 

경기도 안산시의 한 부품업체, 이 업체는 지난 2013년부터 '감사 운동'을 해오고 있다. 핸드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이 업체는 공정이 보다 복잡해지며 불량률이 늘어나자 그것이 그대로 직원들의 감정으로 연결되었다. 예민해지고 짜증이 늘어나게된 직원들, '감사하면 행복해진다'는 강연을 들은 ceo는 이때부터 '감사 운동'을 시작했다. 

하루 5가지 감사, '그만두지 않고 다니는게 감사하다', 물론 처음에 귀찬은 일이었다고 한다. 직장에서의 일은 give&take라고 생각했었는데, 5가지 감사를 찾는데 너무 힘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기를 2년 여, 직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한다. 소소하지만 서로에게 말로 나누는 감사로 사람들의 관계가 달라졌다. '콩나물 시루'같다는 감사. 콩나물처럼 처음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느날 훌쩍 삶이 달라져 있었다고 한다.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실적을 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직원들이 동료가 되었고, 동반자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임원들이 직원들이 제일 하기 싫은 청소를 솔선수범해서 한다. 

강원 양양의 8군단을 전력 증강의 최우선 전략으로 '감사'를 든다. 4년 전부터 감사 나눔 편지를 쓰는 2만5천 부대원들, 1000 감사 노트를 쓰며 변화해 갔다. 부모님께 100 감사 편지도 보낸다. '안써보면 모른다니까요'라는 감사 편지,  부모님이 자신들에게 주신 사랑을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막상 100 가지 감사의 편지를 쓰다보니 그 희생과 사랑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큐가 주장한다. 감사를 드러내어 말해야 한다고.  다큐를 연 건 걸그룹 포미닛의 지현씨, 그녀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한다. 자신이 직접 만든 전통 과자를 가지고 동네 코로나 검사소를 찾는다. 이 '의례적인듯한 행동', 다큐가 의도하는 바는 바로 '감사의 표현'이다. 마음 속 감사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감사를 드러내어 표현 할 때 삶도 변화한 다는 것이다. 나로부터, 작은 것으로부터, 지금부터의 감사, 우리의 삶은 대부분 이루지 못할 미래의 '갈망'으로 채워진다. 감사는 바로 그런 불투명한 미래의 갈망으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현재에 발을 딛고 그 현재에서 행복을 길어올리도록 만든다. 삶을 보는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by meditator 2021. 2. 13. 00:40

(1) 강인한 모성에 이어, 

지난 2월 5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개봉한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는 강인한 어머니 장선장을 필두로 하여, 대뜸 삼촌이 되어버린 타이거 박, 언니라는 말이 싫지 않은 업동이, 그리고 '아버지' 태호(송중기 분)까지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았지만 그 어떤 가족보다도 끈끈한, 모호하지만 확고한 가족 관계를 보여준다.

조성희 감독에게 있어 '아버지'는 불온하고 불완전한 세계이다. 마치 우리가 발을 딛고 현실처럼. 그 세계는 자크 라캉의 '상상계'와도 같다. 실재라고 믿고 다가서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처럼, 세상의 일부분이 될 수록 자기 자신을 '소외'시킬 수 밖에 없는 '지양'되어야 할 과정이다. 

 

 

지양되어야 할 아버지의 세상 
<승리호>에서 아버지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우선 태호와 설리반의 관계가 '부자' 관계의 양상을 띤다. 태호를 입양한 설리반, 하지만 그는 입양한 태호를 어린 나이에서부터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살상 무기'의 선봉에 세운다. <늑대 소년>이 순이의 세계에 맞서 늑대 소년을 만들고 버린 남성중심의 세계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듯이, 그러한 늑대 소년의 세계관은 <승리호>에서 설리반의 세계로 이어진다.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 분)은 환경 오염에 물든 지구의 '메시아'를 자처한다. 깨끗한 공기와 여유로운 생활이 보장된 지구와 달 사이의 우주 궤도에 만들어진 낙원을 통해 지구인들이 자신을 구세주라 여기도록 만든다. 하지만, 설리반이 만든 '아버지'의 세상은  화성 이주 계획이 '도로시'와 '지구'의 희생이 필요하듯 누군가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152세의 외모를 지탱하기 위한 또 다른 생명이 필요하듯이. 


그 아버지의 세계에 '입양'된 태호는 작전 과정에서 발견한 순이를 '입양'한다. 설리반이 태호를 입양하여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과 달리, 태호는 순이의 '아버지'가 된다. 

하지만 아버지로서의 태호는 설리반과 또 다른 면에서 '조건부적'이다. 순이로 인해 더는 '살상'을 할 수 없게 된 태호는 그의 사회적 지위를 지탱해 주었던 UTS기동대로서 살아갈 수 없게 되자 '아버지'로서의 삶도 방기한다. 

 

 

어쩌면 때늦은 '순이'를 향한 그의 맹목적 애정은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이자, 반성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 앞에 나타난 또 다른 '순이', 도로시를 끝까지 거부하려 한다. 심지어 살아있는 도로시를, 꽃님이를 '딜'하여 죽은 순이에게 가닿으려 한다. 그의 철지난 부성은 맹목적이지만 실체가 없다. 결국 자신이 붙잡고 있었던 '아버지로서의 허상'을 놓는 순간 태호는 진짜 '아버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태호에게 순이가 도로시, 아니 꽃님이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 '바톤 터치' 되듯이, 꽃님이에게 '아버지'는 친아버지로부터 <승리호>로 바톤터치 된다. 친 아버지는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그의 과학적 도전으로 인해 꽃님이를 위험에 빠지게 만들고, 스스로를 '지양'시킨다. '과학 문명'을 등에 업은 '아버지'의 숙명이다. 

태호가 보다 직접적으로 '아버지'라는 존재로 자리매김된 것과 달리, <승리호>에는 '삼촌'도 있다. '업동이'가 배우 유해진의 모션 캡춰 연기에 기반했음에도 '언니'라는 호칭과 함께 '이모'와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한 반면, 기관사 타이거 박(진선규 분)은 도로시의 '삼촌'으로 자처한다. 

 

 

'삼촌'으로 타이거 박은 <승리호>의 가족 중 가장 '순수'하다. 살상 로봇일 지도 모를 도로시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며 보호자를 처음 자처한 사람도 타이거 박이다. 그리고 UTS 기동대의 공격으로 위협에 빠진 승리호를, 도로시를 자신을 던져 구한다. 

이렇게 <승리호> 속 아버지들은 진짜 아버지가 되기 위해 자신을 '지양'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그 '지양'의 과정은 왜곡된 아버지 설리반의 세상에 대한 '극복'이다. 태호가 집착했던, 하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순이'를 놓아야 꽃님이를 받아들일 수 있듯이, 타이거 박이 자신을 던져 꽃님이를 구하려 하듯이, 아버지는 이전의 자신을 지우고 버림으로써 비로소 아버지가 되어갈 수 있다. 우리 시대 아버지들에게 주어진 '숙제'처럼. 




by meditator 2021. 2. 10. 17:18

2020년 한국 영화의 기대작이었던 <승리호>가 2월 5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개봉되었다. 전세계 넷플릭스 1위라는 흥행 호조와 함께 한국적 상상력, 기술력이 보여주는 한계로 인해 엇갈린 평가가 오가는 중이다. 

영화는 근사한 코스튬의 헐리우드 초인들의 '지구 지킴이 자격증' 대신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의 일꾼들, 즉 평범한 사람들이 인간 대표로 지구를 구하는 멋진 순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를 위해서 엄청 빠른 속도로 우주를 날아다니는 우주 쓰레기로 가득찬 광활한 우주와 비행선으로 그 우주 쓰레기를 청소하는 우주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이 우주 노동자들의 활약을 위한 지리적 기반으로 이분화된 세계를 등장시킨다. 환경 오염으로 방독면을 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황폐화된 지구와, 그런 지구에서 벗어나 위성 궤도에 우주 개발 기업 UTS에 의해 형성된, 지구인 중 5%의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새로운 보금자리이다. 그리고 UTS의 수장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 분)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오염된 지구를 떠나 화성에 새로운 기지를 개척하고자 한다. 

영화를 보면 제작진이 내세운 '신선한 상상력과 기술력'이라는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그간 보았던 다수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에 기반한 영화와, 지구 지킴이들의 활약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내세운 기술력은 음향에서부터 CG에 이르기까지 이미 세력된 기술력의 영화에 눈이 높아진 관객들을 만족시키기에 꽤나 미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호>가 가진 미덕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환경 오염이 화두가 된 21세기에 숨조차 쉴 수 없는 지구와, 지구 쓰레기들이 질주하는 우주, 그곳을 종회무진 누비는 쓰레기 노동자 히어로라는 발상은 그 자체로 신선하며 통쾌하다. 

또 하나의 가족
하지만 무엇보다 어설픈 기술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승리호>라는 영화를 지탱시켜 나가고 있는 건 <늑대 소년> 이래 조성희 감독이 추구하고 있는 온기 넘치는 가족적 세계관이다. 

가족적 세계관이라고 하지만, 감독이 지향하고 있는 가족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혈연적 가족'이 아니다. 외려, 감독은 그러한 기존의 질서에 기반한 '가족'을 지양하고자 한다.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는 건 <늑대 소년>도 그렇고, <승리호>도 그렇고 문명화된 사회가 만들어 낸 '이종의 생물체'이다. 늑대 소년은 살인 병기를 만들어 내려는 생물학적 실험의 실패작이다. <승리호>에서 늑대 소년의 역할을 하는 건 대량 살상 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이다. 물론 늑대 소년이 살상무기만이 아니듯, '도로시'에 대한 사연은 영화 초반과 다르게 풀려나간다.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늑대 소년과 도로시는 모두 '인간의 과학 문명이 만들어 낸 '의도와 다른 결과물'이다. 

그 의도와 다른 결과물이 '평범한 사람들'의 동네에 '뚝'하고 떨어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건강이 안좋아 시골로 요양온 순이네 집에 나타난 늑대 소년처럼, 돈되는 쓰레기라면 물불을 안가리고 덤비지만 결과는 늘 빚쟁이인 승리호에 도로시가 나타난 것이다. 

경계도 해보고, 밀어내 보지만 결국 '평범한 사람들'은 인간적 온기로 이 '괴생물체'를 감싼다. <승리호>에서 도로시의 정체는 미디어를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되었기에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대량 살상 무기라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을 한 도로시에게 승리호의 기관사 타이거 박(진선규 분), 로봇 업동이(류해진 분), 장선장(김태리 분), 그리고 태호(송중기 분)는 마음을 열게 된다.

도로시가 스며들게 된 승리호, 그들은 서로의 돈 한 푼에 육박전을 벌이는 등 사사건건 부대끼는 처지이지만 한때는 또 다른 살상 무기였던 로봇을 '업동이'로 할 만큼 가족적이다.

 

 

원형으로서의 모성, 장선장 
승리호 가족의 형태는 우리가 아는 '가족'과 다르다. 그 중심에 가장 나이가 어린 장선장이 있다. 유일한 여성, 하지만 그녀는 승리호 리더쉽의 근원이자, 결정판이다. 설리반이 구축한 마치 오늘날의 신자본주의 세계와 같은 소수의 가진 자들이 누리는 UTS의 세계와 다수의 가지지 못한 자들의 노동에 기반한 세계를 뒷받침하는 부도덕한 과학 기술의 실체에 저항했던 그룹의 소속원이었던 그녀는 승리호의 리더로서 세 선원을 이끈다. 

<늑대 소년> 속 모성적 존재 순이는 이제 장선장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아니 어쩌면 조성희 감독은 장선장을 통해 모성을, 가족을 질문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서 모성은 '핵가족'의 정착과 함께 가족 내에서 정서적 안전기지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모계적 영향력이 강했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사임당이 혼인을 한 이후에도 오랜 기간 친정인 강릉에 머물러 친정 가족들과 지냈던 것처럼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도 모계 혈통의 가족 관계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성리학이 정착되고, 이후 자본주의적 사회 제도로 이어지면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위상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드러난 한 면에 대한 해석일 지도 모른다. 

성리학적 사회 구조가 정착된 조선에서도 여성은 '안채'의 주인으로 집안 일에 대한 전권을 행사해왔었다. 사실 오늘날 '가부장적'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 사회의 가족들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엄마'의 권력이 이 꽤나 지배적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런 역사적 '모성'의 위상을 되새겨본다면 <승리호> 속 장선장은 '패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캐릭터라 보여지기도 하지만, 그간 이면의 실세였던 '모성'을 전면에 내세운 캐릭터라 보는 게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늘 가정에서 가장 위기의 순간에 가장 의연하게 그 위기를 돌파해 나가는 우리의 어머니들처럼 말이다. 

우리 현대 문학의 거장이 된 이문열, 황석영, 이청준, 박완서 등의 작품 속 어머니들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자식들을 지키기 위하여 인간 그 이상의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듯이 <승리호>의 장선장은 모성적 감성 대신 총을 든다. 설리반에 맞서 끝내 지키고 있던 치아의 폭탄처럼 그녀는 도로시와 자신의 식구들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든다. 그리고 자기 가족만이 아니라 쓰레기 하치 위성 1호의 다른 동료들을 독려하여 '설리반'의 UTS에 맞선다. 

 

 

<늑대소년>의 순이가 연약한 듯 의연했다면, <승리호>의 장선장은 말 그대로  '가장'이다. 한때 갱단 두목이었던 타이거 박도, 한때 살상무기였던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도, 최고의 킬러였던 조종사 태호도 장선장의 권위 아래 깃든다.  심지어 그녀에 매료된 피에르조차 기꺼이 그녀의 리더쉽에 '리스펙'한다. 가장으로서의 장선장의 리더쉽은 조성희 감독이 그토록 넘고 싶은 헐리웃 지구 지킴이들 중 발군의 여성 캐릭터 캡틴 마블을 넘어선다. 당대 두 최고 남녀 배우 송중기와 김태리가 출연했음에도 '남녀'로서의 캐미 대신 가장과 식구라는 대안적 가족 관계로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은 <승리호>, 그래서 싱거웠을 지 모르지만, 그래서 어디선가 본듯한 다른 설정들과 달리 신선했다. 

by meditator 2021. 2. 10. 00:58

'웬만하면 보지 말자.' 
명절 덕담이랄까? 그래도 명절인데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지 하던 것이 웬만하면 보지 말자가 되었다. 격세지감이다. 부모님이 먼저 내려오지 말라고 하신단다. '아는 동생'은 벌써 햇수로만 2년 째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고 한다. 직계 가족이 이 정도니 그래도 명절 때나 되어서야 얼굴을 볼 수 있었던 한 다리 건너 사촌, 친척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본의 아니게 '이산 가족'을 만들어 버린 '코로나 팬데믹', 안그래도 적조해져가는 가족 관계의 '소원함'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과연 이렇게 만나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어가는 시절에도 서로가 가족으로서 '동질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지난 2월 4일 개봉한 <세상의 모든 디저트; 러브 사라>는 어떨까? 아마도 이 영화를 본다면 지금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를 묶어주는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함께 할 수 없어도 '가족', 혹은 '고향'을 떠올리면 동시에 떠올려지는 건 '음식'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외려 어릴 때는 참 먹기 싫었던 음식이 문득문득 그리워지곤 한다. 이 글을 쓰는 기자가 어릴 적만 해도 고기를 넣은 미역국은 생일날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렇지 않고 평상시 미역국은 그저 국간장을 푼 물에 미역 건더기를 넣은 멀건 국이었다. 그래서 고기를 넣은 미역국과 구분해서 '소미역국'이라 불렸었다. 어렸을 때는 그 물같은 국이 참 싫었는데 이제는 가끔 그립다. 그런 식이다. 멸치 다싯물에 밀가루만 뚝뚝 떼어넣은 수제비라던가. 쇠젓가락에 끼워 밥 한 공기를 비워야 했던  땅 속에서 꺼낸 겨울철 알타리 무 김치라던가 지나간 시절은 그렇게 그 시절에만 먹을 수 있었던 음식들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식구(食口)'는 말 그대로 한 집에 살면서 끼니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렇게 '밥상'을 함께 받던 '식구'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이상 한 집에 살지도, 밥상을 함께 받지도 않는 사이가 되었다. 심지어 코로나는 명절 때만이라도 '식구'가 되었던 연례 행사마저 여의치 않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식구'가 더는 '식구'가 아니게 되는 것일까? 이제 더는 '밥상'을 함께 하지 못해도 함께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여전히 '식구'라고 <세상의 모든 디저트; 러브 사라>는 말한다. 

사라와 함께 할 수는 없지만 
하지만 더는 '밥상'을 함께 할 수 없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영화는 '이별'로 말문을 연다. 바로 영화 제목 속 그 '사라'와의 이별이다. 영국 런던의 노팅힐 거리 그곳을 향해 사라의 자전거는 질주한다. 친구 이사벨라(셸리 콘 분)와 함께 그 거리의 한 상점에서 두 사람이 그토록 꿈에 그리던 '디저트 베이커리 까페'를 열 예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라는 꿈에 그리던 자신의 가게에 도착하지 못한다. 주인을 잃은 가게, 사라가 셰프였기에 이사벨라는 혼자서 가게를 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렇게 주인을 잃은 채 집세만 날리던 가게를 더는 유지할 수 없었던 이사벨라는 다른 주인을 알아보려고 한다. 그때 엄마의 죽음에서 헤어나지 못해 자신이 다니던 무용학교조차 포기해버린 딸 클라리사(새넌 타벳 분)가 나선다. 하지만 다시 가게를 열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자금, 클라리사는 오랫동안 엄마랑 '의절'하다시피 했던 외할머니 미미(셀리아 임리 분)를 찾는다. 한때는 공중곡예사로 전세계 공연을 다니던 미미, 자신을 플라잉 요가로 이끄는 손녀의 설득에 못이기는 척 수표책을 연다. 그리고 사라, 이사벨라와 함께 요리 학교를 다녔던 매튜(루퍼트 펜리 존스 분)가 합류한다. 

그렇게 '사라'는 세상에 없지만 사라를 사랑하던 이들이 사라를 기억하며 한 자리에 모였다. 사라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사라를 대신하여, 사라가 하고 싶던 곳에서, 사라를 사랑하던 이들이 시작한다. 그래서 가게 이름이 '러브 사라'이다. 저마다 사라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 중에서도 할머니 미미에게 '러브 사라'는 각별한 의미다. 죽기 전 딸이 찾아와 디저트 베이커리 까페를 연다며 도움을 청했었다. 하지만 그때 사라의 엄마 미미는 거절했었다. 자신을 찾아온 클라리사에게 대뜸 '돈 때문이냐?'고 선을 그은 것처럼 사라에게도 그랬었다.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는 엄마 미미에게 사라는 돈이 아니라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는 서운함을 토로했었다.

그리고 엄마와 딸은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다. 코로나라던가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서로에 대한 서운함으로 두 사람은 멀어졌다. 그리고 뒤늦게 엄마인 미미가 딸 사라에게 엽서를 썼었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했지라며, 하지만 그 엽서는 딸에게 도착하지 못했다. 딸이 자신의 가게에 도착하지 못한 그 날 쓴 엽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 미미는 보내지 못한 엽서 대신, 그때 들어주지 못한 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그녀의 수표 책은 얇아져 가지만 대신 딸이 그리던 까페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사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영업'은 별개였나 보다. 가까운 거리에 이미 까페가 여러 개인 거리에 새로 문을 연 까페는 첫 날부터 파리를 날렸다. 매튜의 매혹적인 디저트들만으로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부족했다. 새로 개업했다며 인심쓰듯 나누어준 마카롱을 낯설어했다.  답답한 마음에 거리를 나선 할머니 미미의 눈에 노팅힐 거리를 지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민자들이 많은 영국, 그 중에서도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인 거리, 그곳에 자리잡은 '러브 사라', 이 까페가 잘 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고향이 된 까페 
할머니 미미가 딸 사라가 가장 좋아하던 책,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떠올렸다. '새로운 것을 원하거든 여행을 하라',는 책 속의 명대사처럼 사라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다. 그런 사라처럼 '러브 사라'는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상징과도 같은 열기구를 까페 앞에 단다. 그리고 80일 간의 세계 여행 대신, 세계 각국의 디저트를 만들어 낸다. 

딸기 프레지에는 몰라도 , '크링글'을 기억하는 라트비아 출신의 택배 기사를 위한 '크링글'처럼 이민온 사람들이 원하는 고향의 디저트를 만들어 주기로 한다. 까페에 온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고향 디저트를 만들어 준다면 꼭 다시 들러 그것을 먹겠다고 하고 그렇게 한다. 호주식 케이크, '레밍턴', 리스본에서 온 모자를 위한 '카넬스네일. 터키의 바클라바, 아랍의 전통 케이크 바스부사, 이스라엘의 오렌지 세몰리나 케이크 , 그리고 일본에서 온 여성이 부탁한 말차 밀 크레이크까지 까페의 디저트에 세계가 모였다.  까페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의 '고향'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디저트; 러브 사라>는 이렇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는 방식을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고향을 기억하는 '디저트'로 잇는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시절에 이 영화는 함께 할 수 없지만 함께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전해준다. 지금 여기서 함께 나눌 수는 없지만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음을 말한다.

함께 할 수 없다고 해서 함께 나누었던 시간,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건 우리가 그 시간과 마음을 어떻게 소중하게 이어가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지속될 수 있다. 다가올 명절, 같은 곳에서 한데 어울려 밥상을 받을 수는 없지만 각자의 공간에서 이 영화 한 편을 통해 서로의 소중함을 더욱 진하게 나눌 수 있다면, 함께 나누었던 음식을 서로를 떠올리며 먹는다면 함께 할 수 없어도 함께 하는 따뜻한 명절이 되지 않을까 싶다. 

by meditator 2021. 2. 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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