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방송이 되겠어?'
이 대사는 첫 방송을 앞둔 <이적쇼>를 두고 이적이 <방송의 적> 도중에 한 말이다. 주변의 친구들이 너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사람이 단독으로 토크쇼를 하면 누가 보겠냐는 조언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말에 앞서 가장 먼저 회의을 표명한 사람은 이적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비슷한 대사를 이적은 <힐링 캠프>에서 또 읊조린다. 왜 힐링 캠프가 자신에게 출연 요청을 했을까? 혹시 누가 펑크를 냈나? 과연 이게 방송이 될까? 이제 곧 한혜진이 영국으로 가는데 지금 방송이 안되면 자신의 방송분은 영원히 묻히는데?
하지만 이게 방송이 되냐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세상 듣도보도 못한 희한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방송의 적>과 그 안의 코너 <이적쇼>는 순항중이고(물론 때로는 존박쇼가 되기도 하지만), 시청률이 낮건 어떻건 힐링 캠프 이적 출연분은 방영이 되었다.
(사진; 스포츠 월드)
<힐링 캠프>의 도입부 게스트 소개에서, mc들은 이적을 소개하기에 앞서 '국민 가수'라는 호칭을 들먹인다. 하지만 '국민가수'에 걸맞는 사람으로 mc 자신들도 '조용필' 정도는 되야 하지 않겠냐며 자평을 한다. 이승철은 끼워넣어 주고, 부활은 이경규가 친분으로 어거지로 갖다 붙이고. 그러더니 뜬금없이 이적 소개로 넘어간다. 나오는 이적 자신도, 자신 정도의 게스트로 방송이 될까를 걱정하며 소심하게 처신을 하고.
<sbs 스페셜-대한민국 가수, 조용필> 편을 보면, 국민 가수란, 그저 팬이 많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필과 동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기쁠 때, 외로울 때, 그리고 사랑을 할 때 조용필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왔던 것처럼, 그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했던 노래를 불렀던 가수를 말하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거위의 꿈'을 비롯해, '달팽이', '왼손잡이', '하늘을 달리다', '다행이다' 등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낸 이적이야 말로, 차세대 국민 가수감이라 해도 크게 무리가 없지 않을까.
그런데, 조용필이나, 이승철과 달리, 이적에게 '국민 가수'라는 타이틀은 어쩐지 버거워 보인다. 그가 그렇게 수많은 노래들을 통해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도 어쩐지 그는 그의 세대인 유희열이나, 김동률, 심지어 윤종신보다도 이른바 포스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걸고 하는 <방송의 적>이란 프로그램을 보면, 포스는 커녕, 한참 아래 후배 존박과 존재감을 놓고 아등바등거리는 그가 만만해 보이기 까지 한다.
그건 <힐링 캠프>에서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그만한 '엄친아'가 어디 있겠는가. 형제들과 함께 서울대를 나오고, 어머님은 1세대 여성학자에, 때로는 안쓰는 근육을 쓰는 느낌으로 원서를 읽으며, 13만부가 팔린 베스트 셀러 작가이기도 한 그다.
그런데, 서울대를 나온 수재는 학창시절 여학생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처음 작곡을 한 소년의 이미지에, 학자인 어머님의 존재는, 이분들이 나를 지켜주지 않겠구나란 세속적 깨달음으로, 책을 많이 읽는 지식인은 음담패설을 즐기며, '낯선 여자'를 좋아하는 속물의 풍모에 밀려버린다. 심지어, <나는 가수다>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은 노래가 불려진 아티스트가, 방송 분량을 걱정하며, <다행이다>를 이경구의 심장 수술 버전으로 바로 바꾸어 불러주고, 낯선 여자를 주제로 한 즉흥곡을 만드는데 거침이 없다.
김동률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거위의 꿈' 가사를 단숨에 써버렸다는 걸 보면, 말만 하면 말하는대로 툭툭 만들어 내는 걸 보면, 천재는 천재인 거 같은데, 그 예전 살리에르가 보고 분노했던 천박한 천재 모짜르트를 보는 것처럼, 어쩐지 천재로 인정하기엔 너무 범상하다. '아우라' 따위는 개나 줘라는 식이다.
유재석이 가수의 본업에 충실하라 조언을 할 정도로 개가수가 되어가는 이적의 장점은 아마도 그 평범함이 빗어내는 친근감일 것이다.
<방송의 적>에서 이적은 늘 자신을 한껏 드러내고, 부풀려 보이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언제나 신인 가수 존박에게조차 밀릴 정도로 보잘 것 없다. 한껏 허세를 부려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보잘 것없고, 하지만 이적은 그 보잘 것 없는 것조차도 결코 마다치 않는다. <힐링 캠프>에서 방송이 될까를 걱정하는 이적의 캐릭터와 겹쳐지는 부분이다. 이경규가 늘 누군가에게 묻혀간다는 지적에, 그렇게라도 살아남는게 어디냐는 담백한 토로가 어울리는 지점이기도 하고.
그런데 리얼리티 쇼에서의 어설픈 허세어린 모습이, 그리고 토크쇼에서의 전전긍긍하는 소심한 모습이, 그의 동년배들, 그리고 이제 서른 중반을 넘긴 그보다 어린 세대들에게는 공감대를 자아낸다.
그 세대가 그렇다. 자식 하나나 둘 낳는 시절에, 누구나 다 나름 '엄친아'였고, 한 가닥씩 하면 사회에서 자리잡아 가려고 하는데, 영 포스가 안 나는 세대인 것이다. 그 앞전의 세대는 민주화다 뭐다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경제 발전기의 떡고물로 그런대로 잘 먹고, 잘 나갔는데, 이제 이적으로 대변되는 세대는, 나름 배울만큼 배우고, 이룰만큼 이루었는데, 영 때깔이 안나는 것이다. 경제는 불황이라 하니 내일을 알 수 없고, 자신이 이룬 것들은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것이다. 반면, 별로 내세울 게 없으니 어깨에 힘 좀 넣으려 해도 넣어지지 않는, 그래서 눈 앞의 조그만 행복, 조그만 욕망에 솔직한 그 세대의 전형적 캐릭터로써의 이적을 친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캐릭터가 발견되기 시작한 곳은 일찌기 캐릭터 발견의 귀재였던 <라디오 스타>였다. 그것을 증폭시킨 것은 <무한도전>이었고, 이제 그는 <방송의 적>을 통해 게스트가 아닌 호스트가 되어, 이적이란 세속적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소비시키는 중이다. 이 황당무개하고 어의없는 리얼리티 쇼에서, 얍삽하려 노력하지만 늘 별로 건지는 것 없는 '이적'을 연기하는 이적이 그럴 듯해 보이는 건, 방송의 적 이적과 실제의 이적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소탈하고 소박한 유형의 '이적'을 동시대의 표상으로 예능은 적극적으로 사용하려 하고 있다.
아마도 이담에, 이적이 '국민 가수'가 된다면, 그때의 국민 가수는 조용필이나, 이승철의 아우라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국민 가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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