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의 미니 시리즈가 고전 중이다.
새로이 시작한 sbs의 수목 드라마<용팔이>는 첫 회 11.6%(닐슨 코리아 기준)로 너끈하게 동시간대 1위를 쟁취하였다. 하지만 <가면>의 종영 이후 새로이 펼쳐진 공중파 3사의 경합에서, <어셈블리>는 자체 최고 시청률 5.3%(닐슨 코리아 기준)를 기록하였지만 역시나 꼴찌의 자리는 면치 못했다.
그런가 하면 역시나 동시간대 1위였던 <상류 사회>가 종영된 이후 뒷심을 노리던 <너를 기억해> 역시 약속이라도 한 듯 5.3%(닐슨 코리아 기준)의 시청률 상승을 보였지만, 동시간대 꼴찌는 따논 당상이었다.
이런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의 꼴찌 릴레이를 두고, 혹자는 '고전'중이라는 타이틀을 내건다. 하지만, 그건 이 두 드라마를 폄하하는 평가일 뿐이다. 그리고 '시청률'이라는 편협한 프레임 속에 드라마를 집어넣고, 드라마의 입지를 좁혀가는 시선일 뿐이다. 오히려,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는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뻔한 막장급 재벌 드라마들 사이에서 '고군분투', 분전 중이라고 평가되어야 하는 수작들이다.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의 첫 번째 공통점; 재벌이 없다.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며 종영한 <가면>, <상류 사회>, 그리고 그 후속작인 <미세스 캅>, <용팔이>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재벌'스 월드이다. '재벌'에 의해 움직이며, 그들과 그들 주변 인물들의 이합집산과, 이전투구, 그리고 정의 실현이 세상을 채운다. 살면서 방송을 통해서가 아니면 만나지도 못하는 재벌들의 이야기, 최근 뉴스를 점하고 있는 롯데 그룹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혈육 간의 골육 상쟁이 시청률 상위의 드라마들을 접한다.
그리고 이런 재벌들의 이야기는 바이러스와도 같이 어마어마한 번식력을 자랑한다. 그 시작이 주말 드라마부터였던가, 아니면 아침 드라마부터 였던가, 시청률 주도층인 3.40대 중장년 주부들의 시선을 끌어 모을 상류 재벌 집안의 막장 스토리가 트렌드가 되기 시작하면서, 아침 드라마와, 주말 드라마을 잠식하더니, 이제 케이블과 종편의 다양한 프로그램의 공세와, 젊은 층의 외면으로 인해 낮아진 시청률로 고전하던 주중 미니 시리즈까지 잠식하고 말았다.
종영한 <상류 사회> 계급 간 로맨스를 통해 사랑의 의미와 오포 세대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권두언은 뒤집으면 재벌 자제와 '평민'들간의 사랑 싸움과 집안 갈등으로 채우겠다는 말이었다. 작가 최호철을 임성한의 뒤를 이을 막장계의 후계자로 만든 <가면> 역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커녕, 갖다 붙이면 이야이가 되고 마는 어이없는 재벌가의 막장 해프닝의 연속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설픈 신인들의 연기가 어땠건, 말도 되지 않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스토리가 어땠건, 재벌가의 막장 급 이전투구는 여전히 '욕을 하면서' 보건 말건 시청률 1위의 자리를 고수한다.
그런 '트렌디'한 '재벌'가란 소재가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에는 없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이들 두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가장 큰 장벽 중 하나일 지도 모른다. 대신 <어셈블리>는 해고당한 노동자들의 농성 장면이 화면을 채웠다. 혹자는 바로 이런 시작이 <어셈블리>의 접근성을 낮춘 요인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게다가 정의롭기만 해도 될똥망똥한 주인공은 형제같은 사람을 배신하고 여당 국회의원이 되더니, 공천을 받겠다고 삼천포로 빠져서 여당의 돌격대가 되어 설친다. 그런가 하면 <너를 기억해>는 익숙한 사이코패스가 등장하지만, 그는 재벌이 아니다. 정체를 모를 연쇄 살인범,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는 주인공, 그리고 범죄 심리학자와 법의관, 형사, 변호사, 이렇게 전문직들이 등장하여 각자 자신의 전문적 용어를 즐비하게 나열하며 '추리'를 해대는 이들 드라마는 '접근성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소에는 만날 일 조차 없는 그들의 집안 내 막장 스토리는 뉴스를 통해서야 아는 하지만, 언제나 드라마만 보면 옆집 사람처럼 익숙하게 집안 속내를 까발리는 '재벌'이 없는 드라마, 사람들이 기피하는 노조의 이야기와, 정치의 협잡과 더러운 이면을 낱낱이 까발리는 드라마,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고, 사건의 추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하나의 사건을 통해 또 다른 사건이 꼬리를 물고, 그것을 통해 조금씩 과거가 드러나는 드라마, 이것이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이다. 이렇게 익숙하지 않고 낯설고, 생소한 이들 두 드라마, 그렇다고 '고전'이라는 말로 밀어 제치기에는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의 가치는 소중하다.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는 분전 중
여권 실세인 여당 사무총장 백도현(장현성 분)의 히든 카드로 국회에 입성한 진상필(정재영 분), 하지만 그의 행보는 여느 '히어로'물의 주인공과는 다르다. 애초에 더 이상 몰릴 곳이 없는 노조 위원장으로 선택한 행보였지만, '노조'라는 위치와 달리, 그가 선택한 곳은 '노조'의 성향과는 반대편인 '여당'이었다. 어떻게 중간이 없이 모 아니면 도냐며 볼멘 소리를 하는 최인경(송윤아 분)의 말처럼, 여당에 들어온 진상필의 행보는 롤러코스터를 탄다. 여당 국회의원 신분임에도 정부 추경 예산을 추인할 수 없다고 큰 소리를 치는가 하면, 어느새 백도현의 개가 되어 반청파를 물어 뜯는데 앞장 선다. 그러다, 이제는 살생부 속 한 인물이 되어, 정치 생명의 위기를 맞는다.
그는 '배신자' 소리를 들어가며 국회의원이 되고자 했던 그 초심, 그리고 그를 '믿노라'며 죽어가던 배달수(손병호 분)의 유언처럼 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는 국회의원이 되보고자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장벽이다. 정치 초년병인 그는 노회한 정치 고단자들에게 이용해 먹히기 십상이고, 그의 선의는 언제나 짓밟히곤 한다. '무관심'을 넘어. '혐오' 수준에 이른 정치에 대한 '희망'을 길어 올리기엔 아직 한참 '역부족'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셈블리>는 가치있다. 쉽게 환타지처럼 정의로운 히어로를 내세워 쉽게 희망을 들먹이지 않고, 오히려 철저히 현실에 천착하여, 갖은 우회로를 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치'를 놓아서는 안되는 목적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다. 사람들이 쉽게 평가하고, 시청률을 내세워 험담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에 흔들리지 않는다.
<너를 기억해> 역시 쉽지 않다. 아버지를 사이코패스에게 잃고 동생마저 잃은 한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된 드라마는, 한 회, 한 회 하나의 사건들을 통해, 그와 그 주변의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풀어 나간다. 한 회의 이야기는, 하나의 퍼즐을 푸는 동시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그저 범인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그 이면의 진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차분하게 천착해 나간다. 이 놈이 나쁜 놈 하고 다같이 몰려가 두드려 패는 식의 사건 해결이라는 것은 없다. 통쾌한 한 방도 없다, 장군 하면 멍군이요, 멍군인가 하면, 또 다른 패가 등장한다. 하지만, 대신, 그 느리고, 퍼즐로 가득한 이야기들을 풀어가면, 고정 관념을 넘어선 사람과 사람의 관계, 선과 악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보게 된다. 역시나 그저 시청률이나, 범인 잡기로만 설명할 길이 없는 드라마이다.
하지만 시청률 지상주의 드라마 시장에서, <어셈블리>나 <너를 기억해>는 그저 꼴찌일 뿐이다. 그나마 콘텐츠 영역 면에서 면피를 한다. 더구나 한 회만으로 그 흐름을 따라잡기 힘드니, 리모콘 돌리다 재밌어 자리 틀고 앉게 되는 '중간 유입'도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다세대의 다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중파 드라마로는 젬병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런 냉혹한 시청률 기중에 따른 평가는 처음으로 드라마판에 들어선 영화배우 정재영의 마지막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일까, <너를 기억해> 후속 작품은 가장 대중적 기호에 맞춘 '고부 갈등'을 내세운 <별난 며느리>를 택했다. <복면 검사>에서 <어셈블리>로 이어진 '사회 비판적'인 계보를 잇던 수목 미니 시리즈 역시 대하 드라마 <장사의 신-객주 2015>를 선택하였다.
만약에 드라마에서 '재벌'을 등장하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통과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우리 드라마계는 '개점 휴업'을 해야 할 형편에 빠질 것이다. 그만큼 현재 특히나 공중파 드라마들은 '재벌 중심의 막장 스토리'에 현격하게 편중되어 있다. <상류 사회>, <가면>의 후속작인 <용팔이>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자 하지만, 신선하지 않다. 역시나 재벌가의 이전투구가 빠지지 않는다. 제 아무리 시청률 1위를 수성하고 있다지만, 결국은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느낌이다. 시청률 지상주의를 내세우면 결국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뻔해진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익숙하지 않지만, 뻔하지 않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이어가는 <너를 기억해>와 <어셈블리>의 가치는 소중하다. 그저 몇 %의 시청률로 설명할 수 없는, 귀 기울여 들어볼만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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