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한식 조리사자격증에 도전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한식 조리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한식을 배우기 시작한 지인이 가장 놀란 건, 뜻밖에도 우리 요리에 들어가는 엄청난 설탕의 양 때문이었다. 지인 와, '설탕이 없으면 요리가 안돼!' 설탕이라면 서양 요리 빵같은데나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우리 요리를 하는데 '설탕'이 안들어가는 곳이 없단다. 그런데 '설탕'하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누구겠는가, 그렇다. 바로 백선생, 백종원쉐프이다. 




설탕, 자신의 정체성을 떳떳이 주장하다.
얼마전 자신의 이름을 건 커피 전문점까지 런칭한 백종원씨를 쉐프라고 해야할 지, 요식업체 대표라고 해야할 지 애매모호하지만, 어쨋든 세간에는 요즘 이른바 '백종원 레시피'가 대유행이다. 백종원표 된장찌개에, 백종원표 만능 간장에, 그가 요리 프로그램에서 하는 레시피마다 화제가 되어 검색어를 오르내린다. 그리고 레시피만이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에서 그가 요리 과정에 즐겨쓰는 '설탕' 역시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그의 말대로, 요리가 맛이 없을 때, 때려 넣으면 웬만하면 '중화'시켜 맛이 없지 않도록 만드는 재료의 대명사로 '설탕'이 등장했다. 물론 한식 조리 자격증을 딴 지인의 말처럼, 그리고 '설탕'을 강조하는 시청자들에게 극구 강변하듯이 '설탕'은 그저 우리가 몰랐을 뿐이지 조리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분명 '설탕'은 조리 과정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지만, 설탕으로 상징되는 그  '단맛'은 하나의 트렌드를 반영한다. 
6월 25일 새롭게 시작한 <썰전>의 썰쩐에 출연한 최진기의 분석처럼, 소주에서도 '순하리'와 같은 달달한 소주가 등장하듯이 '단맛'이 이 시대의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상당히 격세지감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설탕'은 비만과, 인스턴트 음식의 대명사였었다. 그래서 '설탕'기를 뺀 다이어트 콜라가 유행했었고, 모든 요리에 설탕을 가급적 빼는 것이 레시피로 등장했고, '설탕'의 각종 대용품들이 등장했다. 설탕 대신 '매실액'을 쓰는 것이 건강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마치 다이어트 식단을 하던 사람들이 '요요 현상'을 겪으며 '정크 푸드'에 빠져드는 것처럼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 설탕을 마구 투여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세프 전성 시대의 '걸진' 음식들
이렇게 더 맛있는 음식을 탐닉하게 된 시대의 상징이 바로 세프들이다. 세프들이란 음식이 갖가지 식재료를 가공하여 요리로 만드는 전문적인 사람들을 말한다. 그리고 이들 세프들이  트렌드에 중심에 서면서, 보다 맛있는 요리들이 tv를 채운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대표적으로 세프들은 갖가지 재료들을 써서 출연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그들의 최선을 다한다. 굳이 대결 방식의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세간에 회자되는 백종원 레시피만을 보더라도, 기존에 사람들이 하던 요리 방식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제공하기 위한 비법이 강조된다. 그나마 소박했던 <삼시세끼> 조차도 '차줌마'가 등장하면서, 소박한 밥상 대신 자꾸 '요리'를 한다. 

6월 22일 방영된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면 샘킴은 써니를 위해 오겹살을 요리한다. 오겹살을 갖가지 양념을 발라 카라멜라이징 기법까지 써서 조리를 하고, 거기에 다시 달콤한 소스를 끼얹는다. 그런데, 여기서 오겹살, 그건 요리를 하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로 맛있는 재료이다. 하지만 세프들은 보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이미 맛을 보장한 재료들을 가지고 다시 요리를 만든다. 이런 식이다. <오늘 뭐 먹지>에서 성시경이 자조적으로 한 그릇에 3만원이라고 말하듯, 고기 반, 그것도 가장 좋은 부위의 고기 반, 국수 반의 베트남 쌀국수를 만드는 식이다. 

어디 재료뿐이랴, 흥건하게 사용되는 부재료는 설탕 만이 아니다. 버터 역시 지천이다. 버터를 쓸 때마다, '버터'가 들어가면 이미 게임 끝이라고 하듯이, 한때는 '콜레스테롤'의 대명사였던 버터가 한 주걱씩 요리에 들어간다. 버터만이 아니다. tv 속에서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요리들은, 이미 맛이 보장된 재료들에, 갖가지 양념들을 더하고, 기기묘묘한 조리 과정을 더해, 미각을 홀리는 완성품이 되어 등장한다. 며칠 간 화제가 되었던 백주부의 된장 찌개나, 만능 간장 역시, '고기'를 빼놓고서는 설명이 안된다. 

재료만이 아니다. <한식 대첩>의 경우, 중요한 과정 중 하나가 각 지역의 요리 경연자들이 요리 재료를 들고 전쟁터에 무기를 들고 나오듯 등장하는 과정이다. 거기서 그들은 각자 자기 지역의 뽐낼 만한 재료들을 들고 나오는데, 종종 살아 움직이는 오리, 오골계, 퍼득이는 물고기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살아 펄덕이는 생명들을 보고, 생명의 외경심이나, '살생'의 아득함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저 그 생명들이 얼마나 맛있는 재료가 될 것인가에만 골몰한다. 

이렇게 이미 살아 펄덕이는 생명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요리 프로, 이미 맛이 보장된 식재료에 과한 양념을 더해 가는 과정에의 탐닉, 그리고 보다 더 맛있는 요리를 향한 레이스로 점철된 각종 요리 경연 프로그램들에, '고기 없는 월요일'이 상징하는 생명에의 외경, 지구를 나누어 쓰는 한 세대의 겸손함이란 찾을 수 없다. 심지어 한때 유행하던 '자연식'이나, 건강식 따위 조차 쉽게 발을 들이밀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런 tv 속 탐닉에의 극치가 현실의 역반응이라는 것이다. '썰쩐'의 최진기가 현실의 쓸쓸함을 잊기 위한 달콤함의 트렌드라 지적하듯, 현실 속 사람들은 한 끼의 밥조차 제대로 챙겨먹기 힘든 세상이다. 황교익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맛집을 찾아갈 형편이 안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tv 속 요리에 대리 만족을 하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아프리카 tv 먹방을 보며 편의점에서 한 끼는 때우던 그 시간의 연장으로 <마이 리틀 텔레비젼>의 백종원 레시피에 열광하고, 최현석, 샘 킴의 레스토랑은 비싸서 엄두를 내지도 못하지만, <냉장고를 부탁해> 속 그들의 경연을 평하며 그들의 요리를 맛본 듯 만족감을 느낀다. 삶의 강팍함과 tv 속 요리의 화려함은 역비례한다. 
by meditator 2015. 6. 26. 16:54

우리집에선 끼니 때가 되면 자연스레 리모컨을 찾는다. 리모컨이 반찬이나 밥이 아닐진대, 마치 그것이 없으면 밥을 먹을 수 없은 듯 온 식구가 수저를 들지 않고 리모컨을 찾을 때까지 기다린다. 리모컨을 찾아 tv를 켜면, 대부분 채널의 제 1순위는 올리브 채널이다. 그리곤, <오늘 뭐 먹지?>를 하는지 확인하고, 이 프로그램이 방영하고 있으면 그것을 반찬 삼아, 마치 성시경과, 신동엽과 함께 식사를 하는 듯 그들의 때로는 어설픈 요리와, 요리를 넘어서는 입담에, 그 밥에 그 나물인, 우리 밥상을 잊는다. 예전에는 밥상을 마주하고 tv를 켜면 당연히 채널은 그 날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로 고정되었었다.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그 뉴스를 보다보면 밥이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힘들던 그 언제인가부터, 우리 식구는, tv속 요리 프로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ebs의 <오늘의 요리>는 tv 속 요리 프로그램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요리가 문화로 대접받기 시작하고, 아프리카 tv 등에서 '먹방'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tv 속 요리 프로그램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우선은 mc와 게스트들이 이 집 저 집 맛집을 찾아 순례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매일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음식명은, 그날 각종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음식들이기 십상이다. 정준하는 여전히 예의 그 먹성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아, 함께 하는 여성 mc들을 갈아치우며 여러 식당들을 순회하고 있고, <테이스티 로드>의 여성 mc 교체를 둘러싸고, 프로그램의 열성팬들의 신랄한 설전이 게시판을 메우는 건, 여전히 이런 맛집 순회 프로그램들의 건재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엑소 떡볶이 vs 한 뚝볶이 하실래예. 냉장고를 부탁해에 인턴 셰프가 등장했다. 냉장고를 부탁해 이원일 인턴 셰프는 25일 방송에서 한 뚝볶이 하실래예를 만들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캡처t

the fact

 

맛집 순회 프로그램이 몇 개의 대표적 프로그램으로 정리되면서, <올리브 tv>에서는 프로그램의 특성을 살려, 전국 각지 요리의 진검 승부를 가린, <한식 대첩>과 요리 버라이어티 <올리브 쇼>가 시즌을 거듭하며 안착해 가도 있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의 요리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예능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한식 대첩>은 증명해 내었고, 셰프들이 그저 요리만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주인이 되어 끌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올리브 쇼>가 증명해 내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정재형, 성시경, 신동엽 까지 트렌디한 연예인들을 주방으로 끌어들여, <프랑스 가정식>, <오늘 뭐 먹지?> 등 각 인물의 특성에 맞는 요리의 예능화를 실현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요리 전문 채널로써 올리브 tv가 '먹방'의 인기에 힘입어 요리 전문 채널을 넘어, 예능 일반으로 안착하면서, 케이블과 종편에서도 앞다투어 새로운 요리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슬로우 라이프를 표방한 <삼시세끼>나, <꽃보다>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나 먹방이다. <삼시 세끼>의 경우, 아예 작정하고, 프로그램의 미션이 하루 세끼를 해먹는 것 단 하나이다. 정선편에서는 정선이란 시골 마을의 텃밭과 정선 장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어촌편은 만재도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아궁이에 불을 붙여 밥상을 마련하는 그 과정이, 온전히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꽃보다> 시리즈에서도 여행을 간 연예인들이 하는 건, 아름다운 풍경과, 그곳의 맛난 먹거리를 먹는 것이다.

 

그 중에서 최근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이다.

게스트의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로 옮겨와,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로, 게스트가 손쉽게 할 수 있는 요리를, 세프 군단이 대결을 통해 만들어 낸다.

이 프로그램이 여타 요리 프로그램과 차별이 되는 것은, 대표적으로 만화가 김풍과, 전문 셰프샘 킴의 대결에서 보여지듯이, 그간 요리 프로그램의 정석을 살짝 비껴간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분명, 전문 셰프인 샘 킴과 김 풍은 요리의 내공으로는 비교가 될 상대가 아니고, 김풍은 오랜 자취 생활의 내공으로 이른바 '야메 요리'를 추구하는 요리계의 아웃사이더인데, 이  두 사람이, 게스트의 냉장고의 재료로, 게스트의 입맛에 간택을 받는데 있어서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격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이미 올리브 tv를 통해 정형화되지 않은 요리의 영역이 조금씩 등장하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 <냉장고를 부탁해>가 되는 것이다.

<삼시 세끼>에서 차승원이 조미료가 없으면 요리를 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볶은 햄에,

할라피뇨, 계란 후라이를 얹은 칼로리 폭발의 요리가 '맛있다'는 평가를 받는 '현실적 요리'가 멋들어진 요리 문화 속에 자신의 지분을 얻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몸에 좋은 요리만 찾다가, 라면을 먹고 속시원하게 트림을 하듯, 현실태로서의 요리의 세계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나선다. 거기에, 고명을 얹는 건, 셰프와 아마츄어의 대결을 흥미진진한 게임의 영역으로 승화시키는, 김성주와, 정형돈의 만담에 가까운 진행이다. 각자 자신만의 입맛이 두드러진 mc진이 객관적 위치를 넘어, 사심에 가까운 진행을 통해, 먹고싶은 프로그램의 실감을 살려낸다.

 

이렇게 굽고 지지고 볶고 tv화면 속 '그림의 떡'임에도 보는 이의 식욕을 한껏 부양하는 각종 요리 프로그램들이 앞 다투어 방영되고 있는 가운데, tvn의 <수요 미식회>는 새로운 모험을 시도한다. 비록 자료 영상으로 각종 맛집의 풍성한 음식들이 보여지기는 하지만, 스튜디오에 앉은 mc와 패널들은 오로지 그들의 세치 혈로만 그날의 음식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로지 그들이 맛본 음식에 대한 현란한 소개만으로도, 스튜디오에서 지지고 볶는 요리만큼이나, 아니, 때로는 그 이상 '먹방'의 갈증을 불러 일으킨다. 오히려 패널들이 먹지 않고, 말로써 먹는 그 과정이 먹방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맛집을 언젠가는 가보리라는 다짐을 끝내 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시아 투데이

 

다종다양한 요리 프로그램들의 양산은 결국, 누가 더 맛있게 먹고, 누가 더 잘 요리하며, 어디가 더 맛있게 하는가를 서로 경주한다. 몸에 더 좋은 것을 견주더니, 이젠, 몸에 좋은 것도 좋지만, 결국은 내 입에 맞는 게 최고라며 인스턴트와, 조미료를 양지로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수요 미식회>에서 황교익 요리 평론가의 '언제부터 마블링이 고기맛을 좌우하게 되었나?'라던가, '칼국수를 굳이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촌철살인이, 새삼, 더 맛있는 것에 탐닉하던 잠시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즈음에 진짜 되돌아 보아야 하는 것은, '먹방'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그 시점이다. 홀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먹방'의 인기도 급상승했다. 당장 우리집만 해도, 밥상머리에 앉아도 대화 한 마디 하기 힘들어 서먹한 관계를 메우기 위해 허겁지겁 '먹방'을 찾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흥건한 재료와, 배가 터지도록 되풀이 되는 맛집 순례의 저편에서, 하루 3000원 짜리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라면을 얼마나 먹었는지 세기 힘들 정도로 하루를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망각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삶의 고단함과, 고달픔과 반비례하는 먹방, 그 흐드러진 잔치가 끝나고 나도, 어쩐지 마음의 허기는 여간해서 가시지 않는다.

by meditator 2015. 1. 2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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