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靑春), 수필가 민태원 선생은 그의 작품 <청춘 예찬>을 통해 말한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라고, 청춘의 피는 끓고, 그 피는 거선의 기관과 같은 힘을 가지고, 인류는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역사를 꾸려왔다고. 

하지만, 막상 그 청춘이란 이름이 붙여진 세대들이, 청춘이란 말을 만끽한 적이 있을까? 오히려, 그 뜨거운 피에 짖눌려 허덕이기 십상이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청춘이란 말은, 그 시절을 지나쳐 회고하는 자에게,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단어이기가 십상이다. 
그렇게, 이제는 청춘이라는 말을 회고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 더 어울릴, 흰 수염이 희끗희끗하게나는 나이의 윤상, 유희열, 이적이 <꽃보다 청춘>의 주인공이라고 했을 때, 고개가 갸웃해졌다. 그들이 흘러간 한때 '청춘의 상징'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마흔을 훌쩍 넘긴 그들이, 꽃보다 청춘이라고?

하지만 , 9부작을 마친 <꽃보다 청춘>을 보고 난 후, 이제는 기꺼이 그들에게 '청춘'이란 이름을 부여하고 싶다. 그들은, 여전히 청춘이다. 여전히 꿈을 꾸고, 젊어 꾸었던 꿈을 되찾고, 그리고 다시 꿈꾸기를 마다하지 않으니까. 
처음 마추픽추로 여행을 떠난다 할 때, 유희열은 말한다. 젊어 한 때, 자신의 꿈이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다 보는 것이었다고. 그리고 말을 잇는다. 그런 것이 자신의 꿈이었다는 것조차 잊고 살아왔었다고. 그리고, 김치찌개를 먹다 얼떨결에 끌려온 페루행을 통해, 자신이 그런 꿈을 꾸었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었다고. 
마추픽추를 꿈꾸었던 젊은 시절의 꿈을 상기한 것만이 아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이제는 자기 자신이 예전만 못하다는 걸 슬금슬금 실감하게 되면서, 자신감이 조금씩 떨어져 가던 시기, 오랜 벗들과 함께 힘들게 마친 여정을 뒤로 하고, 유희열은 이 경험을 지렛대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안개에 휩싸였던 마추픽추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자, 유희열은 눈물을 흘린다. 그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든 건, 바로 시간이었다. 처음 윤상과 이적을 만나던 그 시간으로부터, 이제는 음악보다는 중년의 가장인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더 익숙해진 지금까지의 시간이 안타까워 흘리는 눈물이었다. 하지만, 유희열의 눈물을, 그저 가는 시간이 아쉬운 회한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 시간이 아까웠다는 건, 곧 그 시간이 그만큼 소중했었다는 확인의 눈물이었다. 나이들어가는 자, 그 누구라도 가는 세월을 안타까워 하지만, 그 안타까움의 실체를 가늠하지 못하기가 십상인 반면, 마추픽추 정상에 오른, 유희열은, 자신이 벗들과 함께 살아왔던 그 시간의 소중함을 만끽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바로 그러기에, 여전히 유희열은 '청춘'이다. 그와 그의 벗들의 청춘은, '물방아같은 심장의 고동'이 느껴지는 그 청춘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삶의 긍정성을 믿고, 벗들과 다시 한번 살아보리라는 의지를 가진 한에서 다르지 않다. 술을 끊고, 이제는 약도 끊어보겠다 말하는 윤상의 다짐도 다르지 않다. 

그러고 보면, 100세 시대에, 딱 반에 못미치는 중년을 '청년'이라 규정한, 나영석 피디를 비롯한 제작진의 혜안은 거의 우리 시대의 새로운 '청춘'에 대한 정의이다. 

(사진; 데일리안)

할배들의 노년의 여행은 애틋했고, 누나들의 여행이 숨겨진 비경같았다면, 이번 <꽃보다 청춘>의 20년지기 친구들의 우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겨웠다. 스무 살 무렵 까마득한 선배와 후배로 연을 텄던 친구들은, 이제 이십 여년이 흘러, 스물 다섯 살 선배가 어려웠던 후배의 말 한 마디에 나스카를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타기를 마다하지 않는 관계로 역전되었다. 그때도 애같고, 지금도 여전히 애같다지만, 여행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도 든든했던 막내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90년대의 대명사였던 이들, 그리고 윤종신이 표현하듯, 여전히 우리 문화의 '섬'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그들은, <꽃보다 청춘>을 통해, 마치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보듯, 친근하게 다가왔다. '감성 변태'라던 유희열은, 그 어느 프로에서보다 진심어린 카리스마가 돋보였으며, 그의 학력과, 아름다운 노래를 넘어선, 이적의 넉넉함도 빛이 났다. 

그렇다면 여행 내내 '민폐'였던 윤상은 어땠을까? 아마도 윤상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이적과 유희열이 그만큼 빛났을까? 반문해 보아야 한다. 한때 하늘같던 선배였던 그가, 후배들과 함께 나이들어 가며, 나이를 들먹이는 '꼰대'가 되지 않고, 그들 앞에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할 줄 알고, 기꺼이 도움을 받을 줄 알고, 그들과의 여행을 통해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는 그 모습이, 사실은 <꽃보다 청춘>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의 윤상 또래의 남자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들여다 본다면, 여정 속의 윤상이 더 빛날 것이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저녁마도 술잔을 기울이고, 자신의 약함을 큰소리로 숨기는 우리 사회 중년의 익숙한 중년 남자들의 모습들 속에서, 윤상의 나약함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런 소탈한 형인 윤상이기에, 그는, 동생들과의 여행을 통해, 낼 모레 오십이 나이에도,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꽃보다 청춘>이 남긴 치유는, 리더 유희열이나, 능력있는 참모 이적이 아니라, 민폐였던 윤상을 통해 얻어진다. 삶에서 무기력했던 그가, 어렵게 동생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하고자 용기를 내고,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술을 끊고, 이제 술 대신 의존했던 약조차 끊으려는 용기를 내는 모습은, 자신의 나약함을 남자라는 이름으로 숨긴 채 고통받는 우리 사회 남자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시간이다. 아직은 '청춘'이니, 어렵더라도 다시 시작해 보자고, 윤상이 말은 건넨다. 

그렇게 어렵게 여행을 시작하여, 이제는 좋은 아빠로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윤상도, 함께 해왔던 시간이 아름다원 그 시간이 아쉬운 유희열도, 덤덤한 듯 하면서도 끝내 눈물을 숨길 수 없었던 마흔의 나이에 흰 수염이 나기 시작한 이적도, 여전히 그들이 다시 함께 살아갈 의지를 가진 한에서, '청춘'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꿀 청춘의 이상은, 사실 그리 거창하지 않다. 자신의 자리가 어디서든, 꿈꾸기를 마다하지 않는 자, 모두 청춘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은 그들을 보며, 가슴 뜨뜻한 용기를 얻는다면, 그 역시 '청춘'의 전염이다. 


by meditator 2014. 8. 30. 07:19

지난 주 마지막 다짜고짜 입은 옷 그대로 김치찌게를 먹다 비행기에 실려 페루에 떨어졌던 중년의 청춘 일행은, 하지만 제작진의 도발을 무난히 넘기며 페루에서 첫 날 밤을 보낸다. 하지만 그저 싸다는 이유만으로 구한 '다모토리'에 대해 유희열이나, 이적은 별 이의가 없거나, 만족인 반면, 예민한 큰 형 윤상은 화장실을 함께 쓰는 그곳에 하루 더 머무르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명한다. 그리고 그런 형을 배려하기 위해, 동생들은 화장실이 딸린 방을 구하기 위해, 이십 여분 거리에 있는 '날으는 개' 1호점과 2호점을 '똥개 훈련하듯' 오갈 수 밖에 없었고, 다행히 윤상이 원하던 방을 우여곡절 끝에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동생들의 마음 깊은 배려에 눈치없는 윤상은 자신을 위해 동생들이 발품을 판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먼 거리를 오가게 만들었던 그 사실에 퉁바리를 주고, 심지어, 지난 밤 잠자리 선택에 대해서까지 뼈있는 농담을 던진다. 당연히 나이든 형을 배려하려던 동생 이적은 울컥하고. 그런 <꽃보다 청춘>을 보고 난 여러 게시판은 윤상에 대한 온갖 험담이 쏟아졌고, 윤상은 본의 아니게(?) 며칠 동안 검색어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건 제작진의 계략(?)이었다. 
첫 회가 리더로서의 유희열, 유희견으로서의 유희열이라는 캐릭터와 그에 못지 않는 다재다능한 총무로서의 이적을 매력적으로 그려내기 위한 회차였다면, 그 다음 회차에서, 그들과 다른 윤상의 인간적인 매력을 그려내기 위한 일종의 '떡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역시나 언제나 그래왔듯이, 변함없이 그 떡밥을 덥석 물고, 일주일 동안, 멋진 리더 유희열을 칭송하고, 다정다감한 이적에 감타하며, 그에 못지않게, '찌질한' 큰 형 윤상을 물고 뜯었다. 최근 화제에 오르고 있는 <쇼미더 머니>를 비롯한 대다수의 케이블 방송들이 번번히 '악마의 편집'을 하는 것으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지난 한 주 동안, <꽃보다 청춘>에서 제작진의 입맛대로 '중년의 청춘 3인방을 재단하고, 잘근잘근 씹어대는 대중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 한번, 회심의 미소를 띤, '편집의 승자' 악마를 떠올 릴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8월 8일 방영된 <꽃보다 청춘>은 비록 유희열과 이적만큼 '유능'하지는 않지만, 인간적인 윤상을 그려내는데 몰두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시청자들조차 윤상을 보면, '밥은 먹고 다니니?'가 아니라, '똥은 제대로 눟고 다니니?'라는 질문이 떠오를 거 같은, 윤상의 배변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풀어진다. 

(사진; 뉴스 원)

그렇게 숙소를 잡는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드러나버린 세 사람, 다음 날이 돼도 여전히 그 어색함은 쉬이 풀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간의 간격을 조심하며, 그래서 더 서로가 조심스럽고 어색했던 하루가 지나고, 저녁 무렵 함께 간 식당에서 윤상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예민한 예술가이지만, 연예인으로서 살아내야 했던 시간이 힘들어서 잠이 오지 않아 입에 대기 시작한 술이, 이십 여년을 넘어, 자기 자신을 취하게 만들 즈음, 윤상은 술을 끊겠다는 어려운 결단을 한다. 그리고 술을  끊는 대신, 잠을 편하게 자기 위한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불행히도 그 약은 배변 활동 등에 무딘 감각이라는 부작용을 동반했다는 것이다. 그런 윤상의 사연에 유희열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맞장구를 치지만, 미처 그걸 몰랐던 이적은 당황한다. 그저, 예민하다고만, 불평 불만이 많다고만 생각했던 큰 형이 가지고 있는 불안함의 근원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결국 혼자 남은 시간 눈물을 보이고 만다. 그리고 윤상이 그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선뜻 이번 여행에 합류한 이유가, 바로 술을 끊고, 이제는 약물에 조차도 의존하지 않는 정상적인 삶을 구축해 보고자 했던 의지에서 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리고 아마 그런 윤상의 사연을 마주한 이적의 당황함은 지난 주 내내 윤상을 저리 밀쳐 버렸던 시청자들의 당황함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매번 누군가를 그저 보는 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하면서도,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만으로 그를 예단하고 평가했던 그 시간들에 많은 사람들은 이적처럼, 눈물은 아닐지라도 마음을 돌리며 미안해 했을까?

윤상에 대한 이해 넓히기는 계속 된다. 오랫동안 마음대로 되지 않는 창작 활동으로 인해, 의기소침했던 가장, 그래서 여행을 가도, 늘 아내가 세운 계획에 따라 가거나, 때로는 가족들을 여행 보낸 채 홀로 집안에 머무르기를 선택했던 아빠는, 처음 가본 페루의 사막과, 거기서 만끽했던 각종 익사이팅한 경험들을 즐기며, 가족을 떠올린다. '아이들과 함께 오면 좋겠다'며, '아이들 앞에 아버지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게 생겨 좋다'고 기뻐한다. 그리고, 늘 모든 것이 귀찮기만 했던 그래서 늘 무언가 하는 것을 우선은 '싫다'고 말하던 윤상은,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즐거울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단순한, 하지만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던 진리에 도달한다. 

제작진이 캐낸 것은 여행을 통해 드러난 윤상의 사연과 변화만이 아니다. 즐거운 고된 사막 여행을 마친 저녁 식사 시간, 말끝마다 오십이라며 씁쓸해 하던 윤상은 온데 간데 없다. 동생들이 자기 보다 한참 어리다며 옛날을 회고하던 선배 뮤지션은, 여전히 음악 이야기만 하면 눈을 빛낸다. 동생들도 미처 찾아보지 못한 각종 음악 관련 정보들을 줄줄이 읊어댄다. 그리하여, 시청자들도 이해하게 된다. 뮤지션인 동생들이, 나이 오십에, 함께 여행을 해도 당연히 세번 째라며 제껴두는 형이지만, 그런 형을 여전히 존경하는 이유를. 예민함과, 불면증과 맞바꾼 뮤지션으로서 윤상의 열정을. 그렇게, <꽃보다 청춘>은 또 한 사람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8월8일 방송분을 보면서, 걱정이 되었다. 저렇게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 윤상은 과연, 지난 한주간의 논란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제작진이 다음 주면, 당신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느긋하게 방송을 즐길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이 까발려지고, 그것이 누군가의 입을 통해 재단되는 것 자체가 견디기 힘들었을까?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각, 혹은 판단과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그려질 때,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아, 사실은 저랬구나 하면서, 자신의 오해를 거두어 들이고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되는가 하면, 이미 자신이 내린 판단을 돌이키기 싫어, 그래도 여전히 그래! 하면서, 그 사람을 '찌질'의 영역 속을 뻥 차버리거나, 과연, 8월 8일의 방송분을 본 시청자들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윤상에게나, 시청자들에게나, 롤러코스터 같은 방송, <꽃보다 청춘>1,2회였다. 웃자고 본, 예능의 그 롤러코스터가 상처나, 편견으로 남지 않길. 


by meditator 2014. 8. 9. 12:25

<응답하라 1997>이 방영되고, 세간에 화제를 몰고 온 것 중에 하나는, 사람들의 추억 속에 가라앉기 시작했던 90년대의 아름다운 음악들이 다시 부상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국 음악의 르네상스 90년대 음악을 대표하는 뮤지션들 중에, 유희열, 이적, 윤상이 한 자리를차지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이름은 90년대를 시작으로, 2014년 지금까지 예전의 그들의 이름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여전히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청춘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유희열, 윤상, 이적은 그렇게 그들의 이름을 기억시킨다. 그리고,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할배들과, 여배우들, 그리고 이서진, 이승기 두 짐꾼을 새롭게 각인했던 시리즈는 이번에도 예외없이, 중년들의 청춘의 대명사였던 유희열, 이적, 윤상을 새로운 의미로 불러내기 시작한다.

 

 

 

또 한번의 새로운 <꽃보다> 시리즈를 과연 어떻게 시작할까? 그것도 느닷없이, 마흔을 훌쩍 넘기다 못해 낼 모레 쉰을 바라보는, 이 중년의 남자들에게 과부하가 분몀한 '청춘'이란 명제를 들이대기 시작하는 것을 어떻게 감당할까 싶었는데, 그런 기우가 무색하게, '청춘'답게 <꽃보다 청춘>은 시작되었다.

 

 

청춘에 대한 여러 화려한 명제가 있겠지만, 그 중 청춘을 청춘답게 만드는 불가피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충동성'이 아닐까.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고, 세상의 체계 속에 맞물려 들어가며, 사람들은 젊은 시절 무작정 그들을 몰고갔던 그 '무대뽀'의 마인드로 부터 멀어져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노년의 할배들을 꽃보다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년에 불가능해보였던 '배낭 여행'을 시켰던 나영석 피디는, '청춘'이 물건너 간지 한참인, 한 때 청춘의 상징이었던 유희열, 이적, 윤상을 '청춘'으로 불러내기 위하여, 젊을 때만 가능한 '충동적' 여행을 가장 철두철미하게 준비하여 시작한다.

 

 

도대체 왜 유희열, 이적, 윤상을 불러놓고, '청춘'이란 이름의 여행을 시작했는가 라는 의문을 미처 던지기도 전에, 자유로의 한 음식점에 모인 이들은, 모인 그 모습 그대로 공항으로 떠나야만 했다. 나 영석 피디가 전해 준 여행 계획서를 미처 다 읽기도 전에 발견한 출발 시간을 보고 기함할 여유조차 없이. 그렇게, 여행짐따위는 쌀 시간은 당연히 없이, 입은 옷차림 그대로, 맨발에 슬리퍼차림으로, 기껏해야 들고 온 배낭 하나가 짐의 전부인, 그래서 공항 직원이 페루를 가는데 부칠 짐이 없냐고 몇 번이나 확인하게 만드는 행색으로, 겨우 아내가 퀵서비스로 보내준 공진단과 홍삼등만을 부랴부랴 챙긴 채 페루행 비행기에 몸을 실른다.



 꽃보다 청춘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 시리즈 이후,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 <꽃보다> 시리즈를 벤치 마킹한 많은 프로그램들은, 나영석 피디가 한 것처럼, 생각보다 예능을 통해 때가 덜 묻은 배우들 등에게 배낭 하나 달랑 메게 만들고 전세계 각지로 할배처럼, 누나들처럼 떠나게 만들었다. 늘 빠듯한 일정에, 예측하지 못한 여행지의 상황, 거기에 느닷없이 주어지는 미션까지, <꽃보다> 시리즈의 복사판들이었다. 그렇게 <꽃보다 > 시리즈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범람하고 있는 가운데, 하지만, 나영석 피디는 다시 한번 <꽃보다> 시리즈가 그들과 다른 차원의 프로그램이란 걸, <꽃보다 청춘> 첫 회를 통해 증명해 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런 나영석 피디의 증명을 위해, 중년의 이적, 유희열, 윤상은 '청춘'답게 충동적인 여행에 자신들을 맡긴다.

 

 

나영석 피디의 <꽃보다> 시리즈는 여행 프로그램이지만, 여행 프로그램이 아니다. 어디를 어떻게 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래서, <꽃보다> 시리즈를 벤치 마킹한 다수의 프로그램들이 모두 어디를 떠나기에 급급하지만, 사실은, '꽃보다 **'이란 프로그램 제목이 대놓고 말해주고 있듯이, 바로 **의 재발견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꽃보다 할배>들을 통해, 정말 꽃같은 할배들이 재발견되었고, 누나들이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었다. 그리고 이제, 중년의 유희열, 이적, 윤상이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프로그램을 준비한 자리에서 누구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서로의 이름을 빠짐없이 호명한 세 사람은 다시 불려온 자유로의 음식점에서 설마 이 사람은 아니겠지 하는 기대도 무색하게 함께 합류하게 된다. 이적의 말 처럼, 참신함이라고는 1%도 없는, 유희열이 진행하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특집 행사마다 불려지는, 최다 출연이라는 당연한 친분을 과시하는 유희열, 이적, 윤상은 그렇게 오래된 지기로, 이전의 꽃보다 시리즈에서 화제가 되었던 캐스팅의신선함을 차치하고 함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역시나였다. 90년대 이후 늘 때로는 그들의 음악으로, 라디오의 진행하는 사람으로, 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심지어 케이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찌질한 주인공에서, 야한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 진행자까지 종횡무진 활약상을 보이는 이들 세 사람이 <꽃보다 청춘>을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감성 변태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수식어가 된 유희열은 여전히 그만의 매의 눈을 숨기지 않고, 7000원짜리 여러 여행객이 함께 머물러 하는 여행지에서도 여성만 발견하면 행복해지는 '변태'로서의 감성을 이어가지만, <꽃보다 청춘>에서 만난 유희열은 우리가 알던 유희열이 아니다. <꽃보다 할배>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여행을 끌어가던 직진 순재가 있듯이, <꽃보다 청춘>에는 유희열이 있었다. 다짜고짜 가져갈 물건에 공진단과 홍삼부터 챙기는 그래서 하루라도 버틸까 싶은, 선병질의 외모를 가진 유희열은 반전의 리더로 거듭난다. 오랜 친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13시간의 비행 시간 동안 열 시간의 수다 후에 잠이 든 친구들 옆에서 꼼꼼히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공부를 한 그는, 뚝딱 가장 싼 하룻밤의 숙식처를 찾아내고, 단 한 마디의 외국어로 재래 시장을 발견한다. 가장 예민할 거 같은 외모와 달리, 어디서자 잘 자고, 잘 먹는 가장 털털한 모습을 통해, 우리가 알던 유희열이 아닌 상남자 유희열로 재 탄생되어, <꽃보다 청춘> 첫 회의 백미를 장식한다.

 

유희열만이 아니다. 유창한 영어로 어디서나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는 막내에, 꼼꼼한 회계까지, 그리고 때로는 사려깊은 배려가 상처가 될 정도로 마음이 깊은 친구까지, 유희열 못지 않은 인간다운 냄새을 뿜어내는 이적 역시 우리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다. 그런 유희열과 이적의 배려 아래, 맏형이지만 애초에 여행을 가기도 전에, 찡찡이라 찍힌 윤상의 예민함,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매력은 아마도 <꽃보다 청춘>이 숨겨놓은 비장의 무기일 것이다.

 

친구를 진짜 알고 싶으면 함께 여행을 떠나라고 했다. 때로는 그 여행을 통해, 친구의 몰랐던 모습으로 인해 오래된 친구가 더 가까워지기도 하고, 머쓱해 지기도 한다. 과연 <꽃보다 청춘>은 어떤 쪽일까? 우리들의 오래된 스타였던 유희열, 윤상, 이적은, 그렇게 우리가 몰랐던 유희열, 윤상, 이적이 되어, 우리 곁에 다시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 친구들과의 여행이 궁금해 진다



by meditator 2014. 8. 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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