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엔 거의 스물에 가까운 노견이 한 마리가 계신다. 스물이라는 개로써는 어마어마한 나이로 인해, 이 개는 이제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우리집을 찾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구동성으로 그런 개를 안타까워한다. 불쌍해서 어쩌냐는 것이다. 하지만, 늘 개와 함께 생활해오는 우리 가족에게, 그런 개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은, 그저 자연스러운 노년의 일상이다. 개 자신도 그저 예전보다 조금 더 돌아다니는게 불편하지만 그것을 크게 개의치않아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가족은 우리들도, 특별히 불쌍해 하기 보다, 조금 더 배려해야 할 점이 많아져가는 것 뿐이다. 노견의 현재를 안쓰러워 하는 대신,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그 날을 미리 두려워하기 보다, 그저 그때까지 충분하지 않더라도 함께 사랑하며 살자는 것이 우리 가족의 생각이다. <괜찮아 사랑이야>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나이들어 가며 달라진 개와, 그런 개를 바라보는 우리 가족의 관계가 겹쳐진다. 개와 사람의 관계? 아니,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조금 다른 모습, 그거 말이다.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한 집에 살게된, 네 명의 룸메이트들은 모두 저마다의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알고보니, 굴러온 돌이 아니라 집주인이었던 장재열(조인성 분)은 스스로 자신이 강박 장애라는 것을 인정한다. 도어락이 달린 욕실, 색깔별로 가지런히 정리된 수건, 자신의 수건을 내주기 위해 몇 번의 주저함이 필요한 시간, 자신의 오피스텔과 전혀 다른 공간임에도 흡사한 인테리어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벌써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정작 문제가 되는 건, 그의 드러난 강박 장애가 아니라, 교도소를 나오자마자 들이닥쳐 그를 찔렀던 그의 형의 억울함이요, 시도때도 없이 그의 앞에 나타나는 한강우(디오 분)라는 소년이라는 것을.
어디 불편한 건 장재열 뿐이랴. 그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지해수(공효진 분)도 만만치 않다. 정신과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애인과 3년이 되어가도록, 아니 어쩌면 30년이 된다해도 잠자리를 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병을 앓는 그녀와 달리, 함께 사는 박수광(이광수 분)은 숨길 수 없는 툴렛 증후군의 환자이다. 긴장이 극한에 이르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말과,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해,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전처와의 이혼 과정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전력이 있는 조동민(성동일 분) 역시 매사 그리 멀쩡해 보이지는 않는다.
(사진; 텐아시아)
이 어색하다 못해 언밸런스한 네 사람의 조합, 그리고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상 범위를 벗어난 상태를 작가 노희경은 그저 덤덤하게 그려낸다. '강박 장애야' 라고 장재열은 무심하게 말하며, 지해수의 심각한 성적 혐오를 감기 증상처럼 측근들은 회자한다. 박수광의 투렛 증후군은 그저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증상일 뿐이다. 네 사람의 등장인물뿐이 아니다. 지해수가 정신과 의사로서 만나게 되는 환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극단의 모습들을 보여도, 그것도 그저 '감기'같은 것들일 뿐이다. 우리가 감기가 걸리듯이, 그렇게 정신과를 찾은, 혹은 찾지 않고 저마다 겪고 있는 증상들이 '장애'나, '낙인'이 아니라, 그저 정신의 '감기'같은 것들이라고 작가는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말하고자 한다. 성기를 그리는 소년의 문제로 고심하던 지해수가, 장재열의' 뭐 어때서? 그것도 그림인데' 라는 말을 통해 환자와의 소통의 통로를 마련하고, 강박 장애 환자와의 상담 과정에서 자신을 되돌이켜 보듯이, 가장 극단적인 증상과, 일상의 불편함같은 각자의 증상들이 겹쳐지고, 그것들이 이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니라, '감기'처럼 찾아온 불편한 증상일 뿐이라는 것을 작가는 강변한다.
그런데 이제 4회를 지나고 있는 <괜찮아 사랑이야>는 이 감기같은 증상들의 원인이 드러나고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아기를 애지중지 안고 있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그런 엄마의 증상을 살펴보기 위해, 지해수는 그녀의 남편의 병력을 조사해 보라고 시킨다. 그녀를 정신적 충격으로 몰아넣은 원인은 바로 그녀의 가족인 남편이다. 성기를 자세히 그리는 증상을 가진 소년의 원인은 어린 시절 그가 자는 줄 알고 옆방에서 남자와 성행위를 나누었던 엄마에게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소년의 상처는, 역시나 어린 시절 엄마의 외도를 목격했던, 그래서 누군가와 나누는 사랑의 행위가 부정의 행위로 각인된 지해수의 상처로 이어진다. 자신의 동생이 의붓 아버지를 죽였음에도, 정작 그 혐의를 받고 법정에 선 형인 자신을 위해 그 사실을 토로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꿈을 밤마다 꾼다는 장재범(양익준 분), 아버지에게 맞는 엄마를 두고 도망치지 못해 함께 맞다가, 결국은 어느 날 아버지를 쳐서, 아버지가 나가버려, 오히려 놀란 소년 한강우처럼, <괜찮아 사랑이야> 속 등장인물들의 상처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비롯되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개인의 가장 든든한 바람막이이자, 안전판이 되어야 할 가족이, 아니 개인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대상이 가족이기때문에,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그를 가장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괜찮아 사랑이야>가 노골적으로 지적해 내고 있지 않더라도, 이미 가족 지상주의의 많은 드라마들이 갈등의 주소재로 가족을 오래도록 울궈 먹어 왔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단지, 다른 드라마에서,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갈등의 동인이자, 흥밋거리이며, 동시에 구원의 대상이기도 했던 가족이, 이제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본격적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병리학적 원인으로 대두된 것이다. 우리가 그간 '괜찮아 가족이야'라며 덮어두었던 치부들이,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한 개인을 정신적 고통으로 몰아넣는 원인으로 정의내려진다.
그런 면에서 네 명의 등장인물이 홈메이트로 함께 살아가는 설정은 상징적이다. 네 명이 불가피하게 한 집에서 살게 된 설정은, 그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미드'의 쿨한 생활 방식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 인해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 전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상처를 회복할 계기를 가진다는 대안적 삶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애인과 헤어지는 순간 그녀의 격정적 토로를 가만히 숨죽여 들어주고,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강박을 참아가며 색깔별로 수건을 건네주고, 그녀의 아픔을 너스레를 떨며 걱정해주는 홈메이트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 부러워 지는 마음이 들고, 그들이 왁자지껄 벌이는 소동극에 얼굴 근육이 풀려가는 게, 이미 4회 만에 함께 하는 그들로 인해 마음의 위로를 받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의 제목 <괜찮아 사랑이야>에 대한 정의도 재고될 가능성이 높다. 조인성과 공효진의 로맨틱 멜로로서 괜찮아 사랑이야가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고독한 개인들에게 위로가 될, '괜찮아 사랑이야'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까. 어쩌면 가장 비현실적인 홈메이트들의 공동 생활과 그들 각자의 트라우마 치유를 통해, <괜찮아 사랑이야>는 고통받는 개인들을 치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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