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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처 상 후보에 오르고, 137주 연속 전미 베스트셀러에 빛나는 바바라 킹솔버의 [포이즌우드바이블]은 콩고로 전도를 떠난 네이선 목사 가족의 이야기이다. 콩고 오지로 부임해 간 미국 남부의 침례교 목사 네이선은 작은 양이 허락된 짐 속에, 그가 즐겨 키우던 식물들의 종자를 포함시킨다. 하지만, 이방의 콩고의 토양에서, 미국의 종자들은 무기력하다. 겨우 심어놓았는가 싶으면 우기의 비 한 번에 쓸려내려가고, 원주민의 충고에 따라, 무덤만큼 높은 둔덕을 쌓아, 겨우 싹을 틔우고, 아프리카 정글만큼 무성하게 키웠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건 [포이즌 우드 바이블]의 씨앗들만이 아니다.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는 기후로 우리나라의 씨앗들도 어떤 해는 가물어, 또 어떤 해는 폭우에 그 씨앗의 성취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디 그뿐인가, [포이즌 우드 바이블]에서 미국의 목사는 그의 오만함이 끝내 가족의 희생과, 선교의 실패로 끝을 맺지만, 지금 전세계에서 활약하는 농산물 다국적 회사들은 나날이 그 사세를 확장하는 중이다. 우리의 농부들은, 다국적 품종 회사에서 씨앗을 사고, 그 씨앗에만 듣는 비료를 사서 농사를 지어야만 한다. 한 해 농사 이후에, 다시 씨앗을 받아 다음 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제초제 등의 공급이 끊길 수도 있으니까. 해마다 땅은 수없이 퍼부어지는 각종 성장을 촉진하는 보조제로, 특정 성분이 과잉되어 산성화되어 가고, 농부들은 그 비용에 등골이 휜다. 농업뿐인가. 풀대신 좋은 고기를 만드는 여물을 수입해 먹여야 하는 축산 농가 역시 적자를 면할 길이 없다.
바로 이런 우리 농업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접근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바로 tvn의 <농부가 사라졌다>가 그것이다. 국제 시장의 변동으로, 각종 씨앗과 농약, 사료의 가격이 폭등하자,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며 농부들이 사라져 간다. 가장 현실이면서도, 가장 안이하게 생각한, 우리 먹거리의 현 상황을 기반으로 한, '버츄얼 다큐' <농부가 사라졌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이 비감한 상황을 <농부가 사라졌다>는 한편의 블랙코미디처럼 접근한다. 식량문제 전문가이자, 농촌 경제 연구가로 2014년 캐나다 올해의 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프로듀서 마이클을 등장하여, 사라진 농부들을 찾는 미스터리 스타일로 우리 식량 현실을 짚어간다.
9월 18일 방영된 1회에서는, 농부가 사라진 후, 과일과 채소 공급이 끊인 현실을 조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비밀리에 거래되는 야채들을 쫓아 사라진 농부들을 추적한다. 치솟는 수입 종자와 사료 값으로 대다수의 농민이 농업과 축산업을 작파한 가운데 에서도 여전히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생산하는 비밀을 파헤치는 식이다.
강원도 산골의 여성 농부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통해, 마이클이 찾아낸 것은, 바로, 거센 다국적 기업의 공세에도 굳굳하게 살아남은 우리 토종 종자의 건재함이다. 그리고, 비료와 영양제 등으로 힘을 잃은 대다수의 농토와 달리, 고되지만, 제초체 등을 사용하지 않고, 본연의 땅힘을 바탕으로 버틴 토종 농법은, 농부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신선한 먹거리를 생산한다.
9월18일 방송이, 품종의 식민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에서 존폐 기로에 놓인 농업 현실과, 그 대안으로서 토종 씨앗을 통한, '식량 주권' 문제를 제기했다면, 25일에 방영된 <농부가 사라졌다>는 그 주제를 이어가며, 분야를 다양하게 접근한다.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은 소비자를 스스로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전설의 농학자(?) 아이작 뉴튼의 '만농인력의 법칙'이 등장하고, 비밀 결사 집단인 인터러뱅과, 우리나라 버전 인터나방을 통해 그 역사와 근원을 바탕으로, 농부가 사라진 가운데에서도 농업을 면면히 이어가는 비밀 결사 조직의 유래를 찾아낸다.
콩고의 농부들처럼 고추를 심은 고랑을 두둑하게 하여, 뿌리를 든든히 내리게 함으로써 병충해와 폭우를 피해가는 자생력을 키운 '뿌리 농부'와, 풀어놓은 채 각종 약재며 좋은 풀을 먹여 한 알에 800원자리 달걀을 생산해 내는 농부 등이 마이클이 찾아낸 인터래뱅의 실체이다.
2회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마이클이 찾아간 소 농장에서 찾아진다. 육질을 좋게 하기 위해 거세하지도 않고, 그래서 사사건건 싸움박질을 하는 소들을 키우는 이 농장의 고기들은 2,3 등급이거나, 심지어 등급이 없다. 마블링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이 농장의 고기들과, 이른바 1등급 플러스, 플러스의 고기들을 함께 비교 시식했을 때, 맛의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오히려 2,3 등급이거나, 등급을 받지 못한 농장의 고기가 약간 앞서는 것으로 나온다. 우리의 미각을 현혹하는 '마블링' 혹은 등급제의 허실이 낱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맛의 문제 만이 아니다. 실제 대다수 농촌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드러나듯이, 전체적으로 농업이 사양산업이 되면서 농업 종사 인구가 절대적으로 줄고, 고령화 되는 상황에 대한 대안도 등장한다. 제주도에서 약초를 키우는 농장, 이 농장의 일꾼은 제주도 흑돼지이다. 주인이 풀어 놓기가 무섭게, 흑돼지들은 농장 곳곳을 누비며 잡초를 먹어치운다. 친환경 농사의 최대의 주적이랄 수 있는 잡초 제거가, 단숨에 해결된다. 돼지의 동료들도 있다. 세계 각지의 유기농 농장을 돌아다니며 일도 하고, 여행도 즐기는 우퍼 역시, 바쁜 일손을 거둔다.
<농부가 사라졌다>가 근저에 깐 주제 의식은 심각하다 못해 절박하다. 하지만, 다큐는, 그 심각함을 비장한 목소리 대신,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농부들이 사라진다면? 이란 물음을 가지고 재밌게 접근한다. 주제 의식은 강고하지만, 미스터리식 접근 과정은 흥미롭고 신선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토종 씨앗에서 부터, 뿌리 농사, 축산 등급제, 농촌의 일손 부족 현상등, 섬세하게 놓치지 않고 짚고 간다. 오히려, 그래서 다국적 기업에 종속된 농축산 현실이 실감나게 다가오고, 마이클이 찾아 낸 하나하나의 실마리들이 더 머리에, 눈에, 귀에 쏙쏙 들어온다. 다큐가 보여 줄 수 있는 새로운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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