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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tvn을 통해 또 한 편의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 <갑동이>가 첫 방영되었다. 드라마의 제목 갑동이는, 영국의 연쇄 살인범 '잭 더 리퍼'처럼 드라마 속 가상의 도시 일탄에서 부녀자 연쇄 살인을 저지른 후 사라진 범인을 지칭하는 상징적 이름이다.
제작발표회를 통해 조수원 감독은 <갑동이>가 영화<살인의 추억>과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드라마 주인공들의 면면을 보면, 흡사 <갑동이>는 영화 <살인의 추억>의 후일담과 같은 영화이다.
<갑동이>에서 형사 과장으로 등장하는 성동일이 분한 양천곤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로,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분했던 박두만을 연상케 하는 인물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헤드카피 '미치도록 잡고 싶다'처럼, 17년 전 그때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것을 공소 시효가 지난 지금에 와서라도 다시 해결하겠다는 집념을 보이는 인물이다.
영화 속 송강호의 박두만이 전형적인 소시민이자, 하지만 점점 연쇄 살인 사건에 빠져드는 형사로서의 면모가 부각되었다면, 성동일의 양철곤은 하무염의 아버지를 범인이라 단정짓고, 그와 그의 아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영화 속 박두만과, <갑동이>의 양철곤은 다른 듯하지만, 결국 80년대의 과학적 수사 방식 보다 주먹과 협박이 앞서는 주먹구구식 시대의 수사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박두만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혹은 양철곤이 자기만의 아집에 사로잡혀 동네의 만만한 바보를 범인으로 몰아가버렸다는 점에서, 결국 다르지 않은 그 시대의 우매한 사고 방식을 내재화한 인물들이다. 영화 속 박두만은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열패감에 사로잡혀 영화와 함께 사라졌지만, 마치 그가 17년이 지나 되살아 난 듯이, 양철곤이 되어 <갑동이>에서 과거의 범인을 다시 추적한다.
<갑동이>의 또 한 사람의 주인공 하무염은, 영화<살인의 추억>에서 천진난만했던 동네 바보의 아들이다. 결국 경찰들의 겁박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런 아버지에 대한 아픔과, 아버지를 그렇게 몰고 간 형사 양철곤에 대한 복수심으로, 스스로 형사가 되어 갑동이를 찾아나선 인물이다.
드라마 <갑동이>는 이렇게 쉽게 드라마를 보면서 영화 속 인물이 떠오르는 주인공들 외에, 과거 사건의 목격자이지만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속이며 정신과 의사로 살아가는 오마리아(김민정 분), 우리가 흔히 미드나, 추리 소설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연쇄 살인범을 흠모하며 범죄를 통해 그를 오마주하는 사이코패스 류태오(이준 분)도 등장한다.
영화 <살인의 추억>이 80년대라는 시대가 가진 폭력성과 우매함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그려나가는 데 치중했다면, 공소 시효가 지난 17년 전의 연쇄 살인 사건의 관련자들이 등장하는 <갑동이>는 여전히 그 사건으로 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상흔에 주목한다.
단 1회만으로, 형사로써 그 시절의 범인을 잡지 못했던 트라우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어 그것이 아집이 되어 그를 똘똘 감아버린 듯한 양철곤이나, 범인의 아들로써의 낙인에서 결코 헤어나올 수 없어 발버둥치는 하무염, 그리고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지만 누군가의 접촉만으로도 소스라치는 오마리아의 상흔들을 충분히 전달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적과, 이제 그 아들조차 의심스러운 또 한 사람의 가해자라는 극과 극의 존재들이, 새로이 발생하는 과거의 사건을 연상케 하는 사건을 통해, 조우하고 갈등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해원들을 풀어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미 다수의 장르 물을 선보였던, 그리고 공중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청률에 대해 자유로운 케이블이라는 이점을 안고 <갑동이>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다. 또한 이미 공중파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등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조수원 피디는 공중파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자유로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걸 풀어내는 듯 보였다. 거기에, 이미 <로얄 패밀리>를 통해 필력을 인정받은 권음미 작가 역시 1회 만에 <갑동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잘 드러내 보인다. 또한 늘 드라마를 통해서는 친근한 캐릭터로 다가왔던 성동일이 분한 양철곤은 그가 우리가 알고있던 그 배우가 맞나 싶게, 집요하면서도 냉정한 인물로 다가온다. 성동일 만이 아니다. 다. 늘 가벼운 캐릭터로 일관했던 윤상현의 변신도, 김민정의 미묘함도, 이준의 섬뜩함도, <갑동이>를 즐길 또 하나의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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