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일 방영된 11회 중반,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아직을 의식을 찾지 못한 채 병실에 누워있는 이차영 경호관을 그의 동료 한태경이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이런 장면에 회상씬 하나 등장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차영과 한태경이 함께 보냈던 지난 시간들, 혹시나 이 둘 사이에 동료 이상의 감정이 생겨났을 지도 모를 과거의 어떤 해프닝들이 한태경의 눈빛 저 너머로 흘러나오기 십상이다. 
하지만 <쓰리데이즈>는 단호하게 그런 장면을 배제한다. 오히려 이차영이 총을 맞은 그 순간, 정신을 잃어가는 그녀를 한태경이 부등켜 안았을 때 등장한 회상씬은 대통령 앞에서 자신의 실수로 대통령에게 가야하는 소중한 서류를 놓쳐서 그것을 찾기 위해 스스로 이중 스파이가 되어야 했던 이차영의 그 순간이 삽입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병실에서 정신이 돌아온 이차영은 말한다. 나는 나의 신념에 따라 나의 일을 한 것이니, 나에게 미안해 하지 말고, 너는 너의 길을 가라고. 그래서 더 애닮다. 한참 사랑도 하고, 젊음을 만끽해야 할 나이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저렇게 고군분투하는 것이. 

'쓰리데이즈' 박유천이 손현주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 SBS '쓰리데이즈' 방송화면 캡처


<쓰리데이즈>란 드라마는 보통 드라마와 다르게 없는 것이 많다. 
드라마가 시작된 지 10여 회가 지났는데, 주인공들은 밥 한끼 편하게 먹은 적이 없다. 한태경이 먹은 거라곤, 깡소주에, 겨우 달걀 하나? 그 흔하게 등장하는 멋진 남자 주인공들이 흔히 하는 샤워기 아래에서 고뇌하는 장면 따위도 없다. 며칠이 지났는데, 주인공들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 잠은 자는지 걱정이 될만큼. 심지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에서, 참모총장, 비서진까지 모두 싱글인 듯 싶다. 함봉수 경호실장은 경호관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일신의 안녕을 포기했고, 신규진 비서실장은 정권을 안녕하게 만들기 위해 워커홀릭이 되었다. 도무지,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서, 눈요기꺼리나, 여담으로 덧붙일 재미라곤 없다. 

대신 <쓰리데이즈>에는 다른 드라에는 없는 것이 있다. '신념!'
자기와 자기 가족을 죽인 원수에 대한 복수나, 입신양명에 대한 야망 대신, 그 이름도 이젠 생소한 '신념'이란 것이 묵직하게 자리잡는다. 

11회, 그토록 대통령의 반대편에 서서, 대통령을 무너뜨리려고 애쓰던 신규진 비서실장이 죽었다. 
이 정권이 대통령과 자신이 함께 어렵게 이룬 정권이라며 배신에 치를 떨며, 스스로 참모총장을 죽이고, 김도진에게 비밀문서를 갖다 바치던 그가, 결국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명예로인 죽음을 맞았다. 

처음 <쓰리데이즈>란 드라마를 소개할 때, 출연진들이 말했다. 이 드라마는 드라마 속 인물들이 각자의 신념에 따라 서로 이해가 갈리며 또 함께 하게 되는 드라마라고. 
그리고 그런 애초의 의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드라마 속 인물들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또 그렇게 죽어간다. 그래서 묘하게도, 신념을 지키며 죽어간 인물들은, 죽음을 통해 오히려 드라마 속에서 빛을 발하며 살아난다. 함봉수 실장이 그랬듯이, 신규진 비서실장도 그렇다. 

처음, 대통령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경호실장이던 함봉수가 대통령을 저격한 것도, 그가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어간 주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후 자신의 소신에 따라 암살범이 되었었다. 
신규진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까지 신규진을 설득하려고 했던 것이 허사가 아니듯, 그저 대통령이나 되고 싶었던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정말 좋은 정치를 하고 싶었던 신념에서 움직였던 인물이라는 것을 죽음으로 증명한다. 이동휘가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를 눈 꾹 감고 대통령이 되어 속죄하려 했듯이, 신규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조사했던 전국 각지에서 사라진 폭발물의 조사 자료가, 그의 죽음 이후, 대통령과 그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움직일 힘이 된다. 그가 죽어가면 남긴, 자신과 대통령은 다르다는 그 말의 의미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르게 명치를 울린다. 

쓰리데이즈
(사진; 텐아시아)

11회의 <쓰리데이즈>에 대해 드라마의 만듦새를 가지고 역시나 왈가왈부 할 수 있겠다. 하지만, 11회는, 그런 것들이 걸리적거리지 않을 만큼, 깊은 감동을 남긴다. 

특히나, 법과 수호를 지킨다던 대통령이, 이차영을 사지로 몰아넣는 무리수를 썼던 사실을 수긍하기 힘들었던 한태경이, 국무회의실에 홀로 앉아,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통령을 향해 이제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아마도 오래오래 회자될, 명장면이 될 것이다. 

뻔히 이차영이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무리수를 써가면서도, 다시 팔콘의 개가 되겠다는 속임수를 써가면서도 눈 앞에 닥친 위험을 피해보려 했던 대통령, 하지만, 결국은 홀로 국무회의실을 지켜야 하는, 그래서 그곳을 찾은 특검과 한태경에게 비로소 속내를 비추며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대통령. 그리고 그런 대통령에게 힘이 되어 주겠다는 단 두 사람 특검과 한태경. 그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깊은 곳의 그 어떤 것을 상기하게 만든다. 

그저 드라마로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먹고 사느라 잊었던,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신념'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만든다. 드라마는 그 어떤 잔재주도 부리지 않고,  1회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단어를 명징하게 드러내기 위해 묵묵히 달려온 것이다. 덕분에, 11회를 통해 드러난 이 주제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사랑도 하지 않은 주인공들의 고뇌에 어느덧 보는 시청자들조차  전염되었다. 잊고 살았던 그 단어가 다가온다. 


by meditator 2014. 4. 10. 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