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10회,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무진으로 떠난 김수현(이보영 분)과 기동찬(조승우 분)은 딸 샛별이 스네이크의 테오(노민우 분)의 집에서 찾은 사진 속 인물들에 대해 추적을 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수정을 죽인 범인이 기동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그 사진 속 누군가가 수정을 죽였으며, 그 사실을 덮기 위해 지금의 사건을 벌이고 있다는 사건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야 드디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가 싶었던 드라마는 10회 말 수현의 집에 뜬금없이 등장한 주민아(김진희 분)의 샛별이 가해 및 자해 소동으로 궤도를 이탈한다. 졸지에 주민아의 상해범으로 경찰에 잡힐 뻔한 수현은 딸 샛별을 데리고 친정 어머니가 있는 강릉까지 가게 된 것이다. 미리 친정 어머니를 매수(?)한 남편으로 인해 졸지에 수현은 정신병원 행이 되어버렸고, 갑자기 등장한 검은 무리 사내들을 피해 샛별과 외할머니는 하고많은 차 중에서 냉동 탑차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간 타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등장해 왔던 냉동탑차의 클리셰는 아니나 다를까 외할머니를 사경에 헤매게 만들었고, 어린 소녀 샛별이를 맥가이버로 탄생시켰다. 제 아무리 외할머니가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 주었다 한들, 외할머니가 장시간 냉동탑차에 갇힌 덕분에 정신을 잃는 상태가 되었는데도, 어린 샛별이는 기력이 쇠진하기는 커녕 기동찬과 게임을 하며, 그의 지시에 따라 해물 중 문어를 골라, 가지고 있는 라이터를 이용해 냉동 탑차 문을 여는 신기를 선보인다. 물론, 탑차 구멍에 문어 먹물을 넣고, 그것이 어는 것을 이용해 탑차 문을 여는 방식은 신기했다. 하지만, 단 한 순간에 먹물이 얼어버릴 정도의 상황에 여전히 쌩쌩한 샛별이의 상황은 조소를 금치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회에 범인들의 윤곽을 거의 잡아가는 듯한 드라마에서 뜬금없이 이런 장면을 넣은 이유을 알 수 없게 만든 회차였다.
그리고 12회, 마치 지난 회에 한 바퀴 에돌았던 이야기를 보상이라도 하는 듯 단 한 회만에 <신의 선물-14일>은 일사천리로 많은 사건들을 해결했다. 그간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엄마라는 시청자들의 추궁을 보상하기라도 하는 듯, 샛별이가 납치 된 이후 엄마 수현은 그 어느 때보다 기동성있게, 그리고 기민하게 사건의 실체에 다가간다. 대통령을 만나 사진을 쥐언 준것이 그저, 딸을 잃고 정신나간 엄마의 해프닝이 아니라, 설사 그 사건을 공표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에게 쥐어준 이상 사건을 조사할 수 밖에 없을 거라는 포석을 깔 정도의 '셜록 홈즈' 저리 가라는 수준의 두뇌 플레이를 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전 샛별이가 죽음에 이르른 과거와 달리, 수현과, 그녀의 조력자 기동찬은 샛별이가 생방송을 하던 그 시간에 납치가 된 것이 아니며, 우여곡절 끝에 집에 까지 갔다가 다시 집을 나섰다가 사라졌다는 사실까지 알아내게 되었다. 또한 샛별이가 발견한 사진 속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미쳤으며, 사진 속 인물 외에, 반지를 낀 의문이 인물이 또 한 사람 존재한다는 것을 일사천리로 알아내게 되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라 라고 하는 듯 한 회만에 많은 실마리를 풀어내고, 또 그것에 걸맞는 반지남의 등장이라는 깜짝쇼까지, 장르 드라마로서 풍성한 한 회를 12회 동안 보여주었다. 덕분에, 그간 기동찬 네 집에 들락날락거리던 추병우(신구 분) 회장의 비밀도 드러났고, 대통령의 미묘한 포지션도 밝혀 내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김수현이라는 캐릭터의 맹목적인 성격처럼 드라마는 늘 한쪽 궤도로만 직진한다. <신의 선물-14일>을 보면 가장 묘한 것이, 수현과 그녀의 남편 한지훈(김태우 분)이 샛별을 잃어버리기 까지 가장 사이가 좋아보이는 부부였음에도 드라마 상에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그 이유는, 수현이 자신이 과거로 부터 돌아왔다는 고백을 한지훈이 믿어주지 않아서, 그리고 이어서 밝혀진 한지훈의 불륜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치 드라마는 12회에 몰아치기 위해, 11회에 장구한 궤도를 돌아오듯, 마지막 깜짝 반전쇼를 준비하기 위해 히든 카드로 한지훈을 매번 아낀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샛별이가 사라진 순간에도, 자기 핸드폰에 숨겨진 번호와 통화를 시도하며, 모든 사건의 해결 현장에서 멀어진다. 정작 수현도 샛별이가 공개 수배 시간에 납치 되지 않은 걸 알아내고, 그 시간에 그런 녹음 방송을 내보낼 이유가 있었음에 의문을 가졌으면서도, 더 이상 사고를 진척시키지 않는다. 그녀와 기동찬은 가장 열심히 사건을 해결하려 분주하지만 언제나 그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곳은 가장 허수인 듯한 지점이다. 12회가 모처럼 재미있었던 것은 그렇게 허수를 제거하던 그 두 사람이 모처럼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신의 선물-14일>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해결될 수 있는 사건을, 가장 멀리, 에돌아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마치 가족 간의 단절과 불신이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라도 되는 듯, 가장 가까운 사람의 신호와 말에 무지하다. 대신 아내는 아내대로 사건의 흔적을 쫓아 뛰어다니느라 바쁘고, 남편은 남편 대로 자신이 가진 사건의 실마리에 매달린다. 그래서 수현이 뛰어다니며 모든 허수를 제거하고, 마침내 사건의 실체에 얽어매어진 남편을 발견할 때까지, 시청자들은 두 손 놓고 기다려야 한다. 마치 한 송이 국화 꽃을 만나기 위해 봄부터 우는 소쩍새의 소리를 듣듯, 다음 주, 그리고 또 다음 주, 수현의 발로 뛰어다니며 해결해 가는 사건의 실체를 기다리기 위해, 눈 꾹 감고 남편 한지훈을 꿀떡 넘겨야 하는 것이다.
<신의 선물-14일>을 보면, 역시나 긴 호흡을 가진 장르 드라마의 딜레마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체적인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매회 긴박감 넘치게 장르물을 이끌어 가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가 여실히 보여진다. 장르물에서 매회 깜짝쇼를 기대하는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마도 11회의 '문어의 난'과 같은 무리수가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얼토당토 않은 11회를 인내하니, 또 속시원한 12회가 떠억하고 등장하니, 이런 것이 또한 한국형 장르물의 매력이라고 해야 하나? 명품이라기 보다는 실험작에 가까운 <신의 선물-14일>이지만 부디 마지막까지 좌초하지 않고 순항하여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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