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맨스란?

BROTHER와 ROMANCE가 합해진 말로, 작품에 등장한 남성들 사이의 애정 모드를 말한다. 그렇다고 이게 노골적인 동성애 코드냐 하면 그건 아니다, 마치 '안되요, 되요, 되요'라는 듯이, 겉으로는 절대 아니라고 하면서도, 미묘한 정서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것이, 요즘 자주 화면을 통해 조우하게 되는 브로맨스의 실체이다.

 

(사진; 뉴스 핌, <내 친구는 아직 살아있다> 중)

 

알고보니, 니가 진짜 사랑이야!

6월 19일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 2013 단막극 시리즈 <내 친구는 아직 살아있다>는 전형적인 브로맨스 스토리의 구조를 띤다. 불치병에 걸린 친구 경숙(이기광 분)이 등장하고,(여기서 경숙은 남자 고등학생이다) 그의 죽기 전 소원인 첫사랑을 구해주기 위한 친구 치현(이주승 분)의 고군분투가 중심 스토리이다.

치현은 경숙이 한눈에 반한 여고생 국화(전수진 분)에게 경숙을 대신해 사랑의 메신전 역할을 하는데, 문제는 여기서 메신저 역할을 자처하는 치현 역시 경숙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6개월 만에 죽을 거라던 친구가 죽지 않고, 그래서 함께 하던 또 다른 친구마저 손을 놓는 상황에서도 지고지순하게 경숙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던 치현이 국화라는 여자의 등장으로, 친구 경숙을 미워하고 외면하기에 이르는데....... 하지만, 자신의 마음조차 숨기고 죽을 지도 모를 친구의 첫사랑을 이어주고자 했지만, 그 보람도 없이 친구 경숙은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자신이 첫사랑과 함께 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은 다 너와 함께 했었다고, 니가 나의 첫사랑이라는 쪽팔리는 고백과 함께. 그리고 세월이 흘러, 경숙이 마련해 놓은 정장을 입고 첫 소개팅 자리에 나간 치현, 왜 여자 친구가 없냐는 질문에, 배시시 미소를 띠고 대답한다. '첫사랑을 아직 잊지 못해서요'라고.

 

애타게 첫사랑을 구했는데, 정작 알고보니 내 옆에서 한결같이 나를 지켜주던 네가 바로 나의 사랑이었다. 단지 그 네가, 남자였을뿐! 이것이 <내 친구는 아직 살아있다>의 요지인 것이다. 이걸 동성애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아직 이성과의 사랑이 성숙되지 않은 시점의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랄까.

사춘기 청소년들의 경우, 분명 2차 성징까지 분명하게 나타난 상황임에도, 정서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혹은 사회적으로 조성되지 않은 이성과의 관계로 인해, 동성에 대해 친숙한 감정 혹은 관계를 지니는 경우가 많다.

<학교 2013>에서 고남순(이종석)과 박흥수(김우빈)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드라마 내에서, 자신때무에 꿈을 접어버린 흥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고남순의 박흥수 해바라기는, 브로맨스의 또 다른 전형이다.

또 다른 유형도 있다. <몬스타>의 설찬(용준형 분)과 선우(강하늘 분)의 경우이다. 세이(하연수 분)가 애증이라 오해를 할 정도로 두 사람은 심하게 사사건건 대립한다. 성격도, 환경도, 지금의 위치도 다른 두 사람은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하염없이 세이를 기다리던 선우와 함께 했던, 그리고 나란히 피아노를 연주하던 친구 사이였다. 드라마는 세이에 대한 설찬의 마음을, 세이가 오해한 것으로 에피소드를 엮었지만, 분명, 설찬과 선우의 깊은 해원을 미묘한 감정으로 양념치듯 가져가려고 한 의도가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이렇게 성장물에서 이성간의 사랑과 함께 혹은 최근에 들어서는 그 보다도 훨씬 더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이 '브로맨스'이다.

 

(사진; 미디어스, <학교 2013> 중)

 

<몬스타>에서 팬픽을 열심히 쓰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심은하(김민영 분)가 브로맨스의 존재 이유를 설파한다. 아이돌 팬픽에서 브로맨스 물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유는, '오빠'들이 다른 이성과 사귀는 것은 차마 용납할 수 없고, 하지만 뭔가 로맨스는 만들고 싶을 때, 그 대체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브로맨스'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채널권과, 시청률의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여성들을 위해 등장하는 브로맨스라는 결론이 무리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한때,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후회하지 않아>와 같은 게이 애정물에 여성들이 열렬하게 호응했던 반향으로 보건대 최근 빈번하게 등장하는 '브로맨스'의 설정의 노림수가 번지수가 아예 틀리지는 않은 듯하다.

조폭 영화 <신세계>의 관객 중 상당수가 여성이었고, 그 영화를 보고 나온 상당수가 폭력을 둘러싼 암투보다도, 정청(황정민 분)과 이자성(이정재 분)의 미묘한 관계를 더 많이 언급한다는 점이나, <신세계>의 텔레비젼 버전 <무정 도시>에서 역시나 박사 아들이라는 김현수(윤현민 분)과 정시현(정경호 분)의 미묘한 감정들이 남녀 주인공의 애정 관계 보다 더 회자가 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노골적 게이물은 아니지만, 사랑인 듯, 우정인 듯 미묘한 줄타기를 하는, 브로맨스 설정이 어느덧 중요한 흥행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노정하지 않은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브로맨스 물이란, 다른 한편에선 아직 감정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청소년기의 상태를 그대로 이어가는 미성숙한 청소년기를 이어가는 오늘날의 키덜트들의 감정의 반향일 수도 있고, 취업과 생존의 틈바구니에서 사랑 따윈 귀찮아 라고 하는 88만원 세대의 생존적 번거로움의 도피처일 지도 모르겠다. 주변 환경에 따라 암수가 구분되는 파충류들이 환경 오염으로 인해 수컷만이 잔뜩 생성된다는 오늘날의 변칙적 생태계처럼 말이다.

by meditator 2013. 6. 22. 09:44

<직장의 신>이 종영되었다.

마지막회는 소위 말하는 막판 반전없이 예상한대로 흘러갔다. 미스 김은 3개월의 시한이 끝나자 과감히 와이장을 떠나고, 떠나는 그녀를 모든 직원은 아쉬워하고, 물러터져서 사회 생활 어찌할까 싶은 무정한 대리는 주변 사람들을 품은 그 성격 덕에 승승장구 했다. 그리고 여전히 창고 관리직으로 남은 장규직에게 미스 김은 다시 돌아가는 걸로 여운을 남기는 것까지. 굳이 이변이라면 그렇게도 와이장의 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던 정주리가 스스로 재계약을 거부한 것? 하지만 그것조차도 너무도 간절했기에 오히려 떠나려는 복선이 아닐까 의심을 충분히 둘 수 있는 정도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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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신 종영 메시지)

 

반전도 없고, 장규직을 미스 김이 구하는 해프닝 외에는 딱히 극적인 결말도 없었음에도 <직장의 신> 마지막은 가슴을 물렁물렁하게 만든다. 장규직의 어머니가 미스 김이 그토록 못잊었던 계약직 선배였다는 설정은 지극히 도식적이었지만, 그 어머니를 불길 속에서 구해내지 못해, 그 어머니 혼자 놔두고 살아남아 오랜 시간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미스 김에게 고해 성사를 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번복할순 없지만, 얼마나마 갚았다는 마을을 들게 한 창고 화재씬은 어설펐지만 따스했다. 더구나, 장규직의 그 마지막 한마디, '당신 잘못이 아니야'는 뭉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온 '전구 운운'하는 정주리의 나레이션은 반갑기 까지 했다. 정주리는 말한다. 그저 '수많은 전구 중 하나에 불과하더라도 크리스마스 트리는 전구가 없으면 불을 밝히지 못한다'고. 그리고 미스 김은 정주리에게 말했다. 정규직이냐 계약직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너 자신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마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팀장이 된 무정한 대리는 예의 그 모습을 하나도 변화시키지 않은 채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로 사람들을 대한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우리 사회 내의 뿌리깊은 사회적 갑을 관계를 직접적으로 들고 나온 <직장의 신> 결말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체계가 달라졌다는 말은 없고, 그저 각자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빛나는 전구가 되도록 노력하고 산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그 어느 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그저 장규직의 희생으로 정주리의, 마케팅 지원부의, 무정한의 기획안의 성공을 거둔 것, 오래도록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미스 김이 장규직의 '너의 죄를 사하노라'와 같은 그 한 마디로 인해, 그의 사랑으로 인해 오랜 상처에서 한 걸음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 외에는 구조와 조직의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막막한 세상에도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상투적이지만 또 여전히 '사람만이 희망이다'란 끈을 붙잡고 다시 살게 만드는 용기를 북돋는 환타지랄까.

 

(학교 2013 마지막 촬영 현장)

 

그런데 <직장의 신>만이 아니었다. 2012년 12월부터 방영된 <학교 2013>의 주제 역시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회 돌아오지 않는 학생을 기다리는 끝나지 않는 종례의 여운은 내내 <학교 2013>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걸 말하는 방식 역시 가장 현실에 가까운 여전히 입시 전쟁 속에서 질식해 가는 아이들, 그리고 그 전쟁에서 튕겨져 나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부대끼기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으려 노력했었다.

<직장의 신>의 현실성이 희화화되어 통쾌함을 주었던 것과 달리, 너무도 그 아픔이 현실적으로 다가와 보기가 저어된다 할 정도로 '모사'에 다가갔던 학교의 모습은 또 학교 시리즈의 답습이냐던 힐문을 닫게 만들었었다.

비록 <직장의 신>이나 <학교 2013>에 비하면 불발탄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3년 2월부터 방영된 <광고 천재 이태백>이 지향하는 '착한 드라마' 역시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게 아니었다.

지방대 출신으로 세계 광고계에서 인정을 받고, 센세이셔널한 공익 광고로 주목을 받은 이제석이란 실존 인물을 밑그림으로 하고 진행된 드라마가 지향한 것도 우리 사회 루저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하는 건강한 문제의식이었다. 단지, 두 드라마와 달리 <광고 천재 이태백>이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 지점, 문제의식은 건강하되, <직장의 신>과 <학교 2013>이 정확히 천착했던 우리 사회 현실에 제대로 가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광고 천재 이태백 마지막 촬영 현장)

 

혹자는 이제 텔레비젼은 디지털 시대의 아나로그처럼 다면화되고 쌍방향이 되어가는 문화 시대에 과거의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중장년층이 쥐고 있는 리모컨의 향배에 좌우되는 시청률에 목매는 공중파의 프로그램들은, 장옥적이 악녀 본색을 드러내자 올라가는 시청률처럼, 시청률 상승을 위한 막장식의 스토리를 쏟아내며 시선끌기에만 몰두하다보니, 건강한 시청층의 이탈을 막을 도리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경향 속에서, <학교 2013>에서 <직장의 신>의 계보로 이어지는 월화 드라마의 건강한 현실주의는 신선하다. 더구나, 젊은 층 사이의 회자되는 이들 드라마의 이슈성은 시청률로만 다할 수 없는 방송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막장식 궁중비사나, 환타지가 아닌, 텔레비젼을 보고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드라마의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권의 전통이 내내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막장이나 뻔한 러브 스토리가 아닌 개인적 자족이든 환타지든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를 나누는 드라마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흘러간 매체가 아닌 동시대를 숨쉬며 살아가는 살아있는 매체로 텔레비젼이 생명 연장을 누릴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하다.

후속작으로 5년간 절치부심의 칼을 갈았다는 김지우, 박찬홍의 <상어>가 시작된다. 과연 이 드라마도 짧은 시기나마 이어져온 kbs월화 드라마의 전통을 이어갈까 기대가 된다.

 

by meditator 2013. 5. 2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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