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이 있은 후 뉴스와 다큐를 제외한 모든 방송 프로그램들이 정지되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러, 다시 방송을 시작할 수 밖에 없을 때, 일각에서는, 과연, 세월호와 같은 사건을 겪은 우리 사회에 '방송'은 어떤 모색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등장하기 했었다. 하지만, '논의'는 논의일뿐, '고민'은 고민일뿐, 다시 방송은 시작되었고, 예전처럼 흘러가 버렸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 수록, 이제 사람들은 '세월호'가 지겹다고 하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tvn에서 작은 모임을 다룬 방송이 살짝 스쳐갔었다. '세속에 찌든 현대인들의 속내를 살피고 행복의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는 토크쇼'라는 취지를 내세우고, 목사님, 스님, 신부님, 이른바 3님들이 모여 3번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었던 <종교인들의 세상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5월 29일부터, 6월 12일까지, 비록 3부작이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 방송이, 나아가야 할 바를 나름 모색해 보았던 좋은 방송이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여름 특집으로 <종교인들의 세상 이야기>가 여전히 털털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왔다.
<종교인들의 세상 이야기>의 3님들은, 갈릴리 교회 목사이자 한나라당 윤리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인명진 목사, 광명 교구 주임신부이자, 수원교구 사회 복음화 국장인 홍창진 신부, 마음 치유 협회 이사이자, 동국대학교 정각원 교법사인 마가스님이다. 주님도 좋지만, 주(酒)님도 마다하지 않는다며 신부님이 맞어 싶을 정도로 '내 안에 개있다'는 파격적인 언급을 마다하지 않는 신부님에, 40년 종교 생활에 반무당이 다되었다며 노회함을 마다치 않는 인명진 목사, 신(神)이 필요하다 하자, 대뜸 신고 있는 신을 높이 쳐드는 마가 스님의 파격까지, 그 어떤 엔터테이너 못지 않은 입담과, 입담을 넘어선 촌철살인, 그리고 전혀 다른 종교인과 한 자리에 앉아있음에도, 그 어떤 말의 끄트머리에도 서로 얼굴을 붉힐 일 없이 호탕하게 웃어제칠 수 있는 아량까지 장착한 세분 '님'들의 토크쇼는, 그분들 못지 않은 솔직함의 고성국씨와, 케이블 mc로 첫 선을 보인 서현진 아나운서의 진솔함이 어우러져, 충만한 재미를 낳는다.
지난 번 세번의 시리즈가 기본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을 시작으로, 행복과 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었다면, 여름방학 특집으로 다시 돌아온 <종교인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는 '인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라는 질문이 세 분의 종교인들에게 던져진다. 이에 대해, 홍창진 신부님은 '내 안에 개 있다'는 놀라운 고백을 통해, 인간에게는 동물성도, 신성도 함께 드리워져 있다고 말한다. 또한, 마가 스님도 성악설도, 성선설도 아니라, 빌 공자 (空)를 써서 성공설이라며, 비어있는 안을 어떻게 채우는가에 따라 인간은 나뻐질 수도, 좋아질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거기서 이야기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종교를 업으로 하는 세 분 모두, 그들이 따르는 예수와 부처 모두가, 인간적 고뇌에 시달렸던 분임을 입을 모아 이야기 하고, 인간다움은, 원래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고뇌'와, '결단'의 과정임을 결론내린다. 지금도 세계의 어느 하늘 아래에서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학살'이 자행되는 이 순간에, 한 테이블에 모여앉아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다름에 대해 넉넉하게 용인하고, 그 다름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결국 인간으로서 자기 반성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삶의 과정임을 이해하는 그 시간으로서, <종교인들의 세상 이야기>는 의미가 있다.
물론 그런 파격적인 소통과, 공감을 넘어, 결국 좋은 인성을 키우기 위한 '속수유책'이 좋은 교육, 자기 반성, 자기 결단이라는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결론으로 귀결된 것은, 아쉽다면 아쉬운 결말이다. 하지만, 다시 되돌아 보면, 세분 님들의 말씀처럼, 어쩌면, 각자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죽음의 속도로 경쟁을 불사하는 세상에 대한 '속수무책'을 접고, '나부터' 달라지자는 '선언'은 지극히 평범하고 뻔하지만, 결국 불가피한 결론이기도 하다.
하지만 <종교인들의 세상 이야기>가 정작 좋은 점은,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결국은 자기 결단이 필요한 '나부터'의 결론도 결론이지만,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계층, 종교, 성별, 연령에 따른 '차이'의 골이 깊어져가는 시점에, 다시 한번, 전혀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이, '이해'와 '공감'의 시간을 마련했다는 그 자체에 있다. 다른 것도, 다시 한번 살펴보면, 공통점과, 이해할 지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숭앙하는 예수와, 부처의 삶에 다름아니니까.
그리고 획기적인 소통에서 시작하여, 뻔한 듯한 결론이더라도, 저녁 프로그램의 일부를, 시청률이 잘 나오는 '막장' 드라마나, 맛집 탐방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에 할애해준, tvn의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세월호 이후, 고민의 결과와 성취라 평가되어져야 할 것이다. 말 그대로 방송이 할 수 있는 '속수유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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