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8월 18일 kbs2의 월화 드라마가 새로 시작되었다. <연애의 발견>
제목에서부터도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헤어진 연인과, 지금 한참 만난고 있는 연인 사이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을 빌어 샅샅이 검토해보는, 진짜 말 그대로 '연애'를 조사하고 발견하는 드라마이다. 덕분에, 이 드라마를 보는 누군가는, 연애를 '톺아보는' 이 드라마의 어느 지점에선가 무릎을 치게 된다. 맞아, 내 연애도 그랬어, 맞아, 저런 감정이었어! 라며, 그런데, 마치 납량 특집극에서 나온 귀신처럼 물어 보고 싶다. 정말, 저 연애가 니 연애처럼 보이니? 라고.
이 드라마에서 화근이 되는 핵심 인물은 한여름(정유미 분)이라는 여주인공이다. 현재 성형외과 의사인 남하진(성준 분)을 사귀고 있는 그녀는 남친이 선을 본다는 말을 듣고 다짜고짜 그 자리에 찾아갔다가, 오래 전 헤어진 전 남친 강태하(에릭 분)를 만나게 된다. 그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는 그녀,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전 남친은 그녀에게 미련이 남은 듯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다시 잘해 보면 안되겠냐고 말한다. 우연히 술을 마시고 전 남친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그녀, 이 피치못할 해프닝으로 지금 사귀고 있는 남친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고, 졸지에, 이중 생활을 하는 어장관리녀가 되어가는데........
한때 사귀었지만 이제는 보는 것도 싫다는 그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화'를 낸다. 반면, 그녀가 그토록 매달렸음에도 잔인하게 끊어버렸던 '그'는 사업적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그녀에게 다시 접근하고자 한다. 마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두 사람이 지내 온 연애의 역사는, 그 장마다, 서로가 사랑했지만, 얼마나 달랐는가, 그래서 서로가 교감하기보다, 사랑하기에 외로웠는가를, 그리고 지금도 상반된 태도를 보이지만, 그들의 연애가 진짜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그러니 당연히, 세상에 연애 한번 정도라도 해본 사람이면, 그들의 궁상스런 혹은, 달콤했던 연애사의 어느 지점에선가 자신의 연애를 비춰 볼 여지가 생긴다.
그런데, 착각하지 마시라. 돈이 없어 결혼하기 싫은 척 한다는 찌질한 여주인공이 나오는 이 평범한 연애담이 정말 내 얘기 같다고. 등록금 융자금 고지서가 메시지로 날라오고, 꼬박꼬박 방세를 받는 엄마의 독촉 메시지도 거기에 얹어지고, 친구와 함께 연 공방의 밀린 웰세가 독촉되어 마치 평범한 여느 사람같은 그녀는, 사실 친구와 함께, 카페 못지 않은 풍광을 가진 멋진 공방의 주인이다. 뿐만 아니라, 그 못지 않게 폼나는 이층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사는 싱글라이프를 즐긴다. 그녀가 만나는 사람은 또 어떻고? 그녀의 현재 애인은 우연히 소개팅 자리에서 만나 첫 만남에서 키스를 나눈 로맨틱한 남자라는 설정을 가진 성형외과의사이고, 5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전 애인, 하지만 '그 남자랑 헤어지고 나에게 올래?'하는 그 남자는 건설사 대표이다. 심지어 이 건설사 대표는 돈 문제로 고민(?)하는 그녀에게 자기 회사에서 건설 중인 건물의 와인바 인테리어를 맞기며 접근해 온다. 현실에서 한 사람도 만나기 힘들 것 같은 스펙의 남자가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나?
그런데 제 아무리 강남 한 복판에 가면 한 건물에 수두룩 성형외과라지만,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주인공 중 두 명이나 '성형외과' 의사인 건, 우연치고는 좀 노골적인 우연같지 않나? 아니, 성형외과 의사만이 아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연애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직업들을 통계 내어 보자면,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이건(장혁 분), <마이 시크릿 호텔>의 조성겸(남궁 민 분), <연애의 발견>의 강태하가 다 ceo들이다. 집안 사업을 물려 받았건, 능력으로 거머쥐었건 그들은 한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능력자들이며, 현재는 그 능력을 회사 사업보다는 '연애'에 집중하고 있다. 심지어 사업마저도 '연애'를 위해 활용하면서. ceo만 있는게 아니다. <연애의 발견>의 또 다른 남자 주인공도, <연애 말고 결혼>의 주인공도 하필이면 의사 중에 돈을 제일 잘 번다는, 성형외과 의사이다. 이분들 역시 드라마 상에서 본업보다, '연애'에 치중하고 계신다. 심지어 <연애 말고 결혼>의 공기태(연우진 분)는 연애를 하느라 자신의 본업인 성형외과도 날려먹을 판이다. 아니, 이들 못지 않게 멋들어져 보이는 직업 건축가도 있고(<마이 시크릿 호텔>의 구해영(진이한 분)), 디자이너도 있다(<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다니엘(최진혁 분)). 찌질한 남주인공이라면, <잉여공주>의 백수 이현명(온주완 분) 정도이다. 마치 훈남 남자 연예인을 총망라한 듯한 이 멋지 배우들이, 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 스펙 중 되기도 힘들고, 되기만 하면 돈을 마구 번다는, 직종들이다. 우연치고는 너무 노골적인 우연이 아닌가.
그리고, 법률 사무소 임시직이거나, 등록금 융자 빛에 시달리는 여주인공, 혹은 심지어 결혼 경력이 있는 여자들에게 목을 맨다. 그리고 그들과 당당하게 밀땅을 하며, 나의 사랑을 찾아가는게, 요즘 '범람하고 있는' 연애 드라마의 '주제'들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마치 드라마계는 상반기와 중반기가 같은 나라가 맞는가 싶게 달라도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중파에서는 <개과천선>의 조기 종영을 끝으로, 그리고 케이블에서는 <갑동이>의 종영과 함께, 그 어느 곳에서도 진지한 사회적 의식을 가진 드라마가 사라졌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동시에 입을 모아, 연애를 하자, 연애가 중요해, '로맨스가 필요해'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sbs의 월화 드라마 <유혹>, 수목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kbs2의 월화 드라마<연애의 발견>, mbc의 수목 드라마<운명처럼 널 사랑해>, 그리고 tvn의 <마이 시크릿 호텔>에, <연애 말고 결혼>, <잉여 공주>까지, 죽도록 연애만 한다. 솔직히 <야경꾼 일지>도 귀신잡는 척하면서 연애하는 드라마 아닌가.
<쓰리데이즈>가 가졌던 국가관에 대한 진지한 문제 의식이나, <빅맨>, <개과천선>, <골든 크로스>가 가졌던 날카로운 사회 해부와, 비판적 의식은, 마치 일장춘몽인양 드라마계에서 사라져 버렸다. 대신, 시시콜콜 연애사를 해부하며, 연애를 할 때라고, 너의 연애를 되돌아 보고, 드라마 속 연애를 검증하며, 남녀 관계에 집중하라고 설득한다. 세월호로 인해 방송이 정지된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어떻게 이렇게 흔적도 없이, 우리 사회를 진지하게 논하는 드라마들이 사라지고 없어진 건지, 어떻게 한결같이, '연애'가 지상 최대의 과제인 양 그럴 수 있을까?
그것도 사실은 현실에서는 길에서 조차 마주치기 힘들 것같은 상위 1%의 남자들이, 평범한 여자들에게 목을 매며, 너도, 나도 사랑한다고 달겨드는 그런 한결 같은 내용으로 말이다. 이 정도면, 평범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마취시키고자 하는 불순한 목적을 가진, '연애 드라마' 음모론이 나올 만도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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