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시즌3를 끝으로 조용히 사라지고 만 <인간의 조건>의 후속으로 야심차게 등장한 건 '언니'들의 예능이다. 그 중에서도 그간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걸 크러쉬'한 것으로 한 몫을 했던 그녀들을 몽땅 모아놨다. 김숙, 라미란, 제시, 홍진경에 신선한 얼굴 민효린, 티파니가 합류했다. 


여전한 남성 중심 예능계에 야심찬 도전을 
'남자 예능이 주를 이뤘던 방송계 판도를 뒤집을 센 언니들이 왔다'는 <언니들의 슬램 덩크> 야심만만한 포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예능계의 대세는 남성 예능이다. 심지어 그간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한 자리가 주어졌던 여성 진행자들 조차 <해피 투게더>의 박미선, 김신영을 끝으로 자리를 감추었다. 이젠 더 이상 남성들이 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기껏해야 '인턴'이라며 여성 출연자들과 우스꽝스런 춤 대결을 벌이는 것이 최근까지 여성 연예인의 위상이었다.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와 <택시>를 진행하는 이영자가 독보적일 정도로. 

물론 여성 중심의 프로그램이 시도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인간의 조건>도 여성 특집이 호평을 받자, 남성 팀과 병행하여 프로그램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소재 고갈로 좌초되었고, <진짜 사나이>도 네 차례의 여군 특집을 진행했지만 회를 거듭할 수록 화제성면에서 하강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그렇게 남성 중심의 예능계에 최근 파열음을 일으키며 몇몇 여성 연예인이 등장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걸크러쉬'라는 말을 새삼 유행시킨 김숙이다. 윤정수와 함께 출연한 <님과 함께>에서 김숙은 '가모장'이라는 신선한 캐릭터로 올해 초 <무한도전> 예능 총회에서 유일한 여성 예능인으로 초대받을 만큼 화제가 되었다. 그녀에 이어 또 다른 '걸크러쉬'의 주인공은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거침없는 언변과 행동으로 화제가 되었던 제시이다. <진짜 사나이>에서 참 군인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응답하라 1988>에서 가장 멋진 엄마로 그 캐릭터를 승화시켰던 라미란 역시 이들에 못지 않은 '센 언니'이다. 숱한 남성들과 함께 <무한도전> 특집에 한 몫을 하는 홍진경 역시 걸출하다. 

이렇게 최근 예능을 통해 '센'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던 '언니'들을 여성 예능의 포부를 밝힌 <언니들의 슬램 덩크>는 모아놓았다. 그런데, 언니들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왜 하필 슬램 덩크? 그 이유는 1박2일 멤버들과 함께 한 장황한 한 명, 한 명의 소개 이후 뒤늦게 밝혀졌다. 왜 우리가 함께 하게 되었을까?를 되짚어 본 멤버들, 따지고 보니, 그 자리에 함께 한 여섯 명의 멤버들은 모두 한결같이 십대나 이십대 초의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각각 십여 년에서 이십 여년이 넘는 연예계 생활동안 한 길만 바라보고 달려 오느라 개인적인 '꿈'은 일찌감치 접어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화 '슬램 덩크'의 소년들이 농구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듯, <언니들의 슬램 덩크>를 통해 못다이루었던 혹은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한 도전을 해보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꿈의 도전으로 김숙의 관광버스 기사 도전이 시작된다.

걸크러쉬했던 그녀들은 어디에?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센 언니'들의 매력을 기대하며 첫 회였지만, <언니들의 슬램 덩크> 속 언니들은 다른 프로그램에서 매력이 넘치던 그 언니들이 아니었다. 김숙은 '가모장' 김숙과 <인간의 조건> 속 자상한 맏 언니 김숙의 경계선에서 왔다갔다 했다. 아직 리얼 예능이 낯선 라미란은 부끄럼이 많았고, <응답하라 1988>의 치타 여사처럼 당차보이진 않았다. 홍진경은 일관됐지만, 솔직히 그들의 그 캐릭터는 <무한도전>에 홍진경이 등장하면 멤버들이 고개를 돌리듯 보기도 전에 식상해 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제시는 매력적이지만 최근 그녀의 매력 역시 중첩되어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티파니와 민효린은 신선하다지만 sm과 jyp라는 기획사의 배경을 빼고 아직 그녀들에게 시선이 가진 않는다. 



프로그램은 '꿈'을 논하지만, 정작 장황한 인터뷰에 주저앉아 버린 프로그램은 그녀들의 꿈을 향한 여정에 개연성을 놓친다. 왜 지금 그 시간에 그녀들이 꿈을 향해 경주해야 하는가를 설득하는 대신 몇 마디의 말로 퉁쳐버린다.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가 아닐까 고민해야 하는 시기에, 이미 자신의 꿈을 이룬 것처럼 보인 그녀들이 새삼 지난 혹은 앞으로의 꿈에 대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의문이 생긴다. 입봉 피디의 야심작이라는데, <남자의 자격>이나, <인간의 조건>을 보는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3개월기간의 빠듯한 돈이며, 멤버들이 예능국장까지 나서서 일을 꾸려가는 방식이 새롭다는데 새롭지가 않다. 

이미 '가모장'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던 김숙을 필두로 역시나 예능에서 화제가 되었던 여성 개그우먼을 중심으로 '센 언니'들의 프로그램이 시도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jtbc의 <마녀를 부탁해>처럼 '센언니'라는 캐릭터를 밀어붙여 남성 연예인과의 집단 토크쇼를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프로그램에서 펄펄 날던 그 '센 언니'들의 화제성은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걸크러쉬'의 캐릭터들이, 주어진 상황 속에어 만들어진 캐릭터들이라는 점이다. <님과 함께>라는 프로그램의 '가모장'은 리얼 김숙이 아니라, <님과 함께> 속 윤정수의 파트너로서의 김숙이다. 마찬가지다. 라미란이 돋보였던 것은 <진짜 사나이> 속 상황극이나, <응답하라 1988>과 같은 드라마 속 캐릭터에서 인 것이다. <언 프리티 랩스타>의 제시 캐릭터 역시 큰 맥락에서 다르지 않다. '리얼 버라이어티'라지만 그녀들이 화제가 되었던 리얼 버라이어티는 철저하게 '각본화된 상황'을 전제로 했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들이 그 상황극을 벗어나 본연의 얼굴로 돌아온 <언니들의 슬램 덩크>는 그녀들 본연의 얼굴과, 대중들이 호감을 느낀 '센 언니' 캐릭터 속에서 아직 방황하는 듯 보인다. 아니 오히려 종종 등장하는 자막은 알고보니 '센 언니'가 아니라 '수줍은', '소녀 감성의,' 천상 여자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럴 수는 있지만, 과연 이 대중들이 소비하고픈 '센 언니'의 이면의 모습까지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것이 아마도 <언니들의 슬램 덩크>가 해나가야 할 숙제가 될 듯하다. 


by meditator 2016. 4. 9.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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