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매주 월, 화, 수 9시 50분에 방영되는 ebs 다큐 프라임은, 지난 주에 이어 월, 화요일까지, 5부작 <생과 사의 강, 브라마푸트라>를 방영하였다. 그리고 수요일 밤, 남은 한 회차의 <다큐 프라임> 시간에는, 2012년 9월 22일 방영하였던 <길위의 천사>를 재방영하였다. 재방영이란 말이 무색하게, <길위의 천사>는 돈에 쫓기어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삶의 의미와 직업적 소명 의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마련해 주는 수작이다.
길위의 천사라 불리는 '창린 창'의 직업은 우편배달부이다.
편지를 전해주는 우편배달부가 왜 '천사'가 되었을까? 그를 천사로 만든 건, 바로 그가 우편배달일을 하러 다니는 곳이 묘족 마을이기 때문이다.
묘족은 중국 남부 귀주, 호남, 운남, 광서, 해남 등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소수 민족으로, 그 중에서도 묘령산맥과 무릉 산맥 등 산간 지방에 주로 깃들어 사는 사람들이다. 여자들이 검은 바탕에 화려한 수가 놓인 옷을 입고, 금빛 장식이 화려한 관과 같은 모자를 쓰는 이들은 중화주의 속에서도 고유의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묘족 우편 배달부 창린 창에게로 가면 이런 묘족의 삶의 조건은 곧 고난의 상징이 된다. 그를 천사로 만들 수 밖에 없는 산간 벽지의 묘족 마을, 그곳에 우편 배달 일을 하기 위해서는 꼬박 나흘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그저 나흘이 아니다. 노새나 나귀도 갈 수 없는 99고개라 불리는, 풀이 무성해지는 한 여름에는 제초를 해주지 않으면 길조차 사라져버리는 꼬부랑 길을 60여킬로가 넘는 우편 물을 지고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 거리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짐꾼들이 지는 두툼한 장대가 휘어질 정도로 우편 배달 가방을 양쪽으로 매달고 창린 창은 길을 떠난다. 그가 우편 배달일을 하게 되는 바람에 홀로 농사를 짓게 된 아내는 가파른 고개를 넘다 굴러 멍투성이가 되거나, 심지어 앞니를 잃는 우편 배달일을 만류했다. 하지만, 미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소식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길을 떠나는 남편을 보고, 그저 이제는 건강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하며 기다리게 되었다.
서둘러 우편 배달일을 하기 위해 창린 창은 차려 준 아침도 마다하고 길을 서두른다. 23개의 마을을 돌기 위해서 사흘 밤은 묘족 마을의 어느 집에서 신세를 져야 한다. 손주의 대학 입학 합격 소식도, 반대로 손주만 남기고 돈을 벌러 떠난 아들의 소식도, 세간의 소식을 전해주는 신문도, 의료진료소의 귀한 약품도 창린 창의 발걸음이 아니고서는 묘족 마을에 닿을 길이 없다. 그저 소식을 전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묭멘 어족 몽어파 먀오어 군'의 독자 언어를 가진 묘족이지만 그것을 표기할 문자를 가지지 못한 묘족은 한자를 빌어 자신의 말을 표기해 왔다. 그러기에, 편지를 가져다 주어도 읽지 못하는 문맹인들이 많아, 창린 창의 임무는, 그것을 읽어주는 것까지이기도 하다. 편지가 전해준 기쁜 소식의 기쁨도, 슬픈 소식의 아픔도 제일 먼저 나누어 주는 것도 창린의 몫이다. 어디 그뿐인가. 친구가 없는 산골 마을 꼬마의 친구 역할까지. 창린의 임무는 끝이 없다.
그까이꺼 우편배달부가 직업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창린의 나이의 또 다른 남자들은, 돈을 벌기위해 자식마저 늙은 부모에게 맡기고 도회로 떠난다. 하지만 도회로 떠난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파괴된 가정과, 3년이 되도록 보지 못한 자식의 얼굴이다. 자본주의의 공습은 산골짜기 묘족의 마을도 피해가지 않아, 묘족 마을의 젊은이들은 자꾸 문명으로 향한다. 그런 와중에, 창린은 미련하리만치, 자신 한 몸 대신, 묘족 마을의 소식 알리미를 택한다. 고개에서 굴러 아픈 몸으로 장대에 달린 60여 킬로의 무게를 버티는 것은, 낯선 마을, 바닥에 깔린 모포 한 장의 잠자리로 버티는 며칠의 떠돌이 생활을, 밥벌이의 고단함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대신, 다큐는 그에게 '길위의 천사'라는 제목을 붙여주고, 다큐를 보다보면, 진짜 그가 천사의 현신인 듯 느껴진다.
물론 묘족 마을의 창린 창 만이 아니다. 99고개를 넘어 나흘을 집 밖으로 떠돌지는 않지만, 우리 나라에도 여전히 시골 마을 노인분들의 말벗을 마다하지 않는, 거센 풍랑을 헤치며 외딴 섬에 소식을 전하는 우편 배달부들이 계신다. 그런 분들이 자신의 직업을 완수하는 과정은, <길 위의 천사>에서 다큐가 지켜보듯이, 단 몇 푼의 돈으로 가늠할 수 없는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자본주의의 흔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는 있지만, 우편 배달부가 행여 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할까봐, 동네 주민들이 나와, 그가 오는 길에 앞서 풀을 베고, 소식을 전해줘서 고맙다며, 손주 대학 합격 잔치의 상석으로 기꺼이 인도하고, 그를 칭송하는 노래를 불러주는 묘족들의 일상은, 이기적 잣대와, 계산 속에 소통마저 상실해가는 현대인들에겐, 경험해 보지 못한 노스탤지어의 감상을 자아낸다.
여전히 느리게 돌아가는 구비구비 99 고개 저 너머의 묘족 마을, 그 마을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바깥 세상의 소식을 가장 빠른 발걸음으로, 가장 느리게 전달하는 창린 창의 모습은, '천사'라는 말로도 설명할 길 없는 인간적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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