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에 시작하여 2014년 5월에 이르기까지 장장 120부의 대장정을 마쳤다. 지구에 나타난 의문의 행성 감자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감자별 2013 QR3>는 감자별이 파괴됨으로써 함께 마무리 되었다. 


<감자별 2013QR3>에서 사라진 것은 감자별만이 아니다. 감자별처럼 불현듯 나타난 의문의 청년 홍혜성, 피치못할 사정으로 노준혁이 되어 살아가던 그도 감자별처럼 사라졌다. 그 누구보다 노수동 일가의 아들같았던 그였지만 자신이 노수동(노주현 분) 일가의 친자가 아니라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노준혁이 자신이 노수동 집안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사라지자 노씨 일가는 그를 찾아나서야 한다면서, 친자가 아니라는 노준혁의 고백에 대한 진의를 밝히고자 다시 한번 DNA 검사를 의뢰한다. 그리고 결과는 그의 고백이 진실이었음을 알려주고, 노씨 일가는 준혁을 그리워는 하면서도 더는 그를 찾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피 하나 안섞였어도 함께 한 정을 생각해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기적 따위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 그리고 감자별도 사라진다. 지구의 파멸 따위도 없다. 그저 언제나 그렇듯이, 다들 일상을 이어간다. 저마다의 기억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김병욱 월드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번 시트콤에서는 또 누굴 죽일까 기대반 걱정반으로 <감자별 2013QR3>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그런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를 알았는지 다행히 급작스럽게 죽은 사람은 없었다. 

감자별 결말 종영
(사진; TV데일리)

하지만 죽지 않았을 뿐, 거침없이 시리즈의 강유미(박민영 분)나, 신세경(신세경 분)처럼, 노준혁으로 살아가던 홍혜성은 결국 일상에 안착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불현듯 일상을 깨고 들어와 파열음을 일으키고, 그 파열음이 일상의 또 다른 의미를 불러 일으키게 만들던 그들은, 결국 늘 시트콤의 결말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기적이 없는 우리들의 일상처럼. 외부인에 대해 결국은 배타적인 우리 사회처럼. 마지막회, 노준혁이 그들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가 그들의 삶에 그려놓은 궤적에도 불구하고 쉽게 그를 포기하고 마는 노씨 일가처럼. 우리들은 여전히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 낼 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김병욱 월드는 늘 냉정하게 결론짓곤 한다. 삶은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김병욱 월드의 공식은 지속된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 삶의 부조리와 모순에 천착했던 그의 세계는 <감자별 2013QR3> 내내 일관되게 발휘되어 왔다. 노송(이순재 분)을 비롯하여 노수동, 왕유정(금보라 분), 김선자(오영실 분)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현대 한국 사회 어른들의 모순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어른이지만 지극히 속물적이고, 부조리하며, 비논리적인 그래서 전혀 어른답지 않은, 하지만, 우리 곁에 살고 있는 그들이기에 미워할 수 없는 나이든 사람들의 그것을 김병욱 월드의 전작들의 그들처럼 답습하였다.

그렇다고 속물스런 어른들의 세계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삶에 한 발을 들여놓으려 애쓰는 젊은이들도 있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황정음이나, <짧은 다리의 역습>의 백진희처럼, <감자별 2013QR3>의 나진아는 자신들이 튕겨져 나왔던 그 사회 속으로 한 발 들여놓는데 성공한 듯 보인다. 

형제 사이에 한 여자를 둔 미묘한 삼각 관계도 여전했다. 실제 친형제가 아니었기에, 그래서 노준혁으로 살아가야 했던 홍혜성의 존재에 무력감을 제공한 나진아(하연수 분)를 사이에 둔 형제간의 애정 갈등도 여전했다. 단지 그것이 공중파와 케이블의 차이였는지, 이제는 너무 익숙한 김병욱 표 애정구도여서 였는지, 거침없이 시리즈처럼 시청자들의 편을 가른 갈등전을 불러 일으킬만큼 열렬한 호응은 덜했다. 

늘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다른 배우들과 다른 배경을 가지고 되풀이 하는데서 오는 지루함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어쩌면 이젠 그런 이야기조차 너무 뻔한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세상살이의 지루함 때문일까. 웃기고자 하는 시트콤임에도 늘 세상에 대한 날이 벼려져 있던 김병욱 월드는 <감자별 2013QR3>에서도 여전했지만, 어쩐지 그의 비평은 둔중하고 무뎌진 듯했다. 마치 첫 회 지구 종말을 예언하며 무시무시하게 등장했던 감자별이 허무하게 지구 방위대의 폭탄에 의해 파괴되어버리고 사라진 그 결말처럼 말이다. 이것이 김병욱 월드의 위기인지, 여전한 비판에도 무디어져 버린 우리 삶의 모순인지, 선뜻 그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렵다. 


by meditator 2014. 5. 1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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