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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회까지 방영된 <유나의 거리>에는 핏빛 복수와 혈투도, 재벌가의 음모와 파멸도 없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노라면 등골이 서늘해 진다. 그 누구도 쉽게 피해가거나, 벗어날 수 없는 삶의 질곡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5월 27일 방영된 <유나의 거리>에는 두 노인의 삶이 두드러지게 부각된다.
드라마가 시작되자마자, 이른바 '도끼'라고 불리는 왕년의 주먹 장노인(정종준 분)이 자신이 세들어 사는 한만복(이문식 분)의 콜라텍에서 영업세를 받아내려던 조폭 망치의 병실을 찾아 그를 위협하는 장면이 보여진다. 왕년의 주먹이지만, 이제는 이빨빠진 호랑이처럼 정부에서 주는 노인보조금을 받아 연명하며, 한때 자신의 똘마니였던 한만복에게도 뒷방 늙은이 대접을 받던 도끼는 망치를 무너뜨림으로써 모처럼 그의 위신을 찾는다. 다리마저 불편한 그에게 사람이 죽어나간 이층방을 강요하던 한만복은 그가 모처럼 밥값을 했다며 그를 데리고 가 틀니를 해주고, 도배를 해주는 등 대접을 해준다. 하지만 그뿐이다. 여전히 그는 자기 자식과 부인조차도 외면한, 한만복의 문간방에 집세도 내지 않고 의탁하는 처지일 뿐이다. 1회부터, 개밥의 도토리같은 그의 처지가 도드라지게 부각되었기에 3,4회의 그의 활약은 오히려 '봄날의 목련'처럼 삶의 페이소스를 더할 뿐이다.
또 한 사람의 노인이 있다. 4회를 이르도록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 채 결국 거기서 숨을 거두고 마는 유나의 아버지(임현식 분)이다. 딸과 함께 놀이 공원에 놀러가서, 사람들이 불꽃놀이에 눈을 빼앗긴 틈을 타서 지갑을 슬쩍하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불꽃놀이보다 더 감탄하며 첫 소매치기에 입문하게 된 딸, 그래서 아버지와 딸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감옥을 들락거리는 삶을 살게 되었다. 소매치기 아버지는 자신 때문에 소매치기가 된 딸에게 죽기 전의 마지막 유언으로 스스로 잘라낸 자신의 손을 보여준 채 세상을 떠난다.
(사진; tv데일리)
비록 4회밖에 되지 않았지만, <유나의 거리> 속 삶은 징하다.
그 흔하디 흔한 조폭들이 역시도 이 드라마에도 등장하지만, <유나의 거리> 속 조폭들은 삶으로의 조폭이다. '이화룡'을 형님으로 모셨던 도끼는, 큰형님으로 모셔지지만 말뿐, 그의 장황한 연설에 아랑곳않고 젊은 조폭들은 고기를 뜯는다. 그를 모셔갔던 한만복은 그를 주책이라며 힐난한다. 잠시 잠깐 망치를제압하며 큰 형님으로서 위용을 뽐내 보지만, 그뿐, 문간방 생활보호대상자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의 똘마니였던 한만복은 이제 조폭을 배경일뿐 침대 옆에 애지중지 모셔놓은 금고 속 통장이 그의 의지처이다. 이젠 동네 조폭들이 영업세를 뜯으러 와도, 자존심을 내세워봐도, 딱히 내세울 것 없는 그저 '왕년'의 조폭이다.
어디 조폭뿐인가. 대를 이어 소매치기를 하는 유나의 업계도 만만치 않다. 왕년의 소매치기였다가 경찰과 결혼한 박양순(오나라 분)은 자신들의 노래방에서 없어진 손님의 지갑으로 인해 오해를 받는 처지이다. 유나와 자리 다툼을 하는 동료 소매치기들은, 소매치기를 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고, 이젠 불경기라 밥 먹고 살기도 힘들다며 불평을 해댄다. 그리고 그런 삶의 미래는, 바로 4회 마지막, 기필코 감옥을 나갈거라는 다짐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치료한번 받지도 못한 채, 돈을 꾸어 감옥을 찾아온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 유나 아버지의 모습이다.
삶은 조폭이건, 소매치기이건 변함없이 흘러가고, 그 속에서 그들은 쉽게 놓여나질 못한다. 왕년의 멋진 형님은 이제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었고, 전설의 소매치기는 초라하게 감옥에서 눈을 감는다. 생활은 그들을 밀어 붙이고, 그들은 직업으로 깜냥도 되지 못한 그것으로 인해 삶에 치여버린 모습으로 남는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자식들은, 알면서도 배운 도둑질에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그 늪 속에 빠져들어간다. 다음 회의 예고에서도 보여지지만, 아버지가 손가락을 자르는 유지를 남겼지만, 여전히 유나는 '소매치기'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성실하고 착한 청년 창만(이희준 분)은 본의 아니게, 자꾸 그 세계로 한 발씩 들여놓게 된다. 삶의 골짜기는 깊다.
4회 감옥에서 나온 유나를 거둬 준 미선(서유정 분)은 그녀가 자신의 뒷배를 봐주는 사장과 저녁을 먹었다는 이유로 그녀의 머리채를 잡는다. 유나도 밀리지 않는다. 두 여자는 길거리에서 육박전을 벌인다. 겨우 창만의 저지로 떼어 놓여진 두 사람, 왜 싸웠냐는 이웃집 여자의 질문에, 미선은 대답한다. 그냥 누군가를 때리고 싶었다고. 자신의 삶에서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그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으로 풀어내 보려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얼굴의 상처와 관계의 후회만 남을 뿐. 당장 유나는 갈 곳도 없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위해 돈을 빌려야 하는 처지이다.
그렇다고, <유나의 거리>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삶의 비정함을 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도끼 큰 형님이 행차하실 때마다 깔리는 '대부'의 ost처럼, 드라마는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비극도, 운명도 그저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이라며 덤덤하게 드라마는 말한다. 그래서 더,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서늘해지고, 마음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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