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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에 방영된 <썰전>에서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졌다.
늘 어떤 화두가 등장할 때마다 무지막지한 자료를 들이대며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느라 열심이던 강용석이 kbs 파업이라는 주제에 대해 시쿤둥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보는 신문에서는 그걸 다루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말했다. 김구라가 무슨 신문을 보냐고 물어보니, 조선일보란다. 이철희 소장이 따끔하게 묻는다. 그럼 <썰전>이 방영되는 jtbc뉴스도 안보냐고, 그러자 강용석은 동업자 정신에 입각하여 시청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어떻게 kbs 파업을 이끌어 가는 노조 위원장이 직접 출연하기까지 했는데 모를 수가 있냐는 힐난에 강용석은 답을 피한다. 하지만 김구라와 이철희가 꺼내는 파업과 관련된 이야기마다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피력하는 걸로 봐서 강용석은 kbs 파업 사태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모르고 싶었을뿐. kbs가 파업을 하게 된 계기처럼, 세월호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를 사장이 나서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것을 지시한 것처럼, 강용석의 세계에서, 그런 민감한 사회적 이슈들은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거였다. 심지어, 그는 변호사의 법리적 근거를 들이대며, 길환영 사장의 보도권 개입을 적법한 처사였다며 우기면서 정부 측 입장을 대변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 강용석은 다른 때와 달리 김구라나 이철희 소장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한 채 시선을 돌린다.
<썰전>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들이 저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출연자 이철희 소장은 [한겨레 신문]에 개재한 자신의 칼럼에서, 임진왜란을 앞두고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황윤길과 김성일의 예를 든다. 실제 김성일은 그 자신이 일본에 갔을 때 일본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분명하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당시 집권당이었던 동인이었기에, 그 사실을 인정하면 전쟁을 준비하지 못한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 사실을 은폐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것은 비단 조선시대의 일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신의 정략적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을 개진하는 것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바로 그 사례를 29일의 <썰전>에서 강용석은 직접 증명하고 있다. 상대방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굳굳하게 kbs파업의 정당성을 폄하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치부하느라 애쓴다.
그래도 눈이라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면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할까. 드라마로 오면 그들은 보다 뻔뻔해 진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신문 지상을 통해 어디선가 접했던 경제계, 법조계 인물들의 잔향을 그대로 드리운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그들을 연기하는 극중 배우들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 논리는 바로 우리 사회 그들이 사는 세상의 논리이다.
(사진; osen)
자신의 딸 서이레(이시영 분)가 강도윤의 동생과 아버지를 죽이셨냐고 물었을 때, 서동하(정보석 분)는 눈빛 하나 바뀌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살아왔다고. 계속되는 추궁에, 기껏 서동하가 인정한 건, 강도윤의 동생을 사랑했었다는 사실만이다. 자신이 이런 일을 겪게 된 건, 마이클 장(엄기준 분)이 한민 은행을 집어 삼키려는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곤 마이클을 찾아가 당신이 한민 은행을 무리하게 집어 삼키려 해서 이런 사단이 난 거라며 추궁을 하며 내가 죽으면 당신도 함께 무너질 것이라고 협박을 한다. 딸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듯 고백도 해보고, 마이클을 협박도 해보고, 심지어 무릎을 끓고 강도윤에게 애걸복걸도 하지만 딱히 시원한 결론을 얻지 못했던 서동하는 마지막 카드로 장인을 찾아간다. 그리곤 서동하가 모아놓은 골든 크로스 멤버들 앞에서 한민 은행 매각은 그 어떤 법적 하자가 없었다며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고 당당하게 말한다.
강도윤에게 눈물까지 흘리며 애원하다 그가 돌아서 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냉정한 미소까지 지어보이는 경지에 이르른 서동하는 카멜레온보다 오히려 한 수 위인듯하다.
강도윤 앞에서까지 자신은 결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며 오히려 니 동생을 사랑했을 뿐이라며 읍소하는 서동하에게 강도윤은 사람이 아니라고, 사람이면 그럴 수 없단 말로 그를 정의내린다.
하지만, 서동하는 한 치의 후회도 없다. 반성은 커녕 감히 자신을 건드렸다고 호시탐탐 강도윤을 없앨 궁리만 한다. 오히려 그의 측근인 박희서(김규철 분)는 아버지를 기소하려는 서이레를 다그친다. 온실 속에서 자란 네가 아버지의 세상을 아냐고, 자식을 버린 어미가 자식이 싫어서였겠냐고, 자신이 데리고 있으면 굶어 죽일 거 같으니 눈물을 머금고 유기한 것이라며, 자신과 서동하의 행보를 대변한다. 사실을 밝혀서 무얼 할 거냐고, 무엇이 달라질 거냐고 당당하게 다그친다.
<골든 크로스>속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국가나, 그 속에 사는 개인들 따위는 아랑곳않고, 그들이 벌이는 온갖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행각들이 우리가 조우한 사회적 사건들의 데쟈뷰라서 더 섬뜩하다. 한민 은행이란 낯선 드라마 속 은행이 매각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경제 관료와 외국 기업의 앞잡이가 벌이는 행각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사건들을 복기하게 해준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악을 덮기 위해 다시 악을 되풀이하는 서동하와, 그것을 돕는 사람들의 모습들 속에서 우리가 소름끼치는 것은, 그들이 가진 사고방식들이다. 여전히 자신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저지르는 짓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 가장 합리적이며 유의미한 해결 방식이라고 논리적으로 무장한 그들의 생각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박변의 논리처럼, 자신들이 저지른 협잡이,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미가 자식을 살리기 위해 버렸다는 논리처럼, 그들만의 논리로 주변을 설득하려 드는 것이다. 눈빛 하나 바뀌지 않고 성심성의를 다해 진실처럼 되풀이하는 서동하의 입장을 듣노라면, 순진한 누군가는 그의 말에 감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마치 눈물만으로 악어를 오해하듯이 말이다. 지역과 시장을 돌며 친근한 미소를 띠며 노동에 휘어지고 갈라진 손을 덥석 잡아주는 정치인들에게 감동하는 순진한 서민들처럼 말이다. 요즘 드라마들의 악의 축은 종종 타인에게 공감을 느끼지 못하며 오로지 자신의 이기적 감정에만 충실한 '소시오패스'라는 사회 병리학적 증상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골든 크로스> 속 그들을 보면, 그건 개인의 심리학적 증상이 아니라, 이 사회의 집단적 정신적 증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집단적 소시오패스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사는 세상의 정신심리학적 진단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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