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이 걸려 도착한 영화가 있다. 지난 2014년 <레드 바이올린>의 프랑수와 지라르 감독이 더스틴 호프만, , 케시 베이츠, 데브라 윙거 등과 함께 만든 <보이 콰이어>가 뒤늦게 지난 5월 14일 개봉했다. 

 

 

아빠가 누군지도 모른 채 알콜 중독인 엄마와 살아가는 소년 스텟(개럿 웨어링 분), 그는 음악 시간에 뒷자리에서 엎드려 있다 자신을 지적하는 선생님에게 수업은 따분하며 선생님은 아이들을 때린다는 식으로 노래를 바꿔 부르며 반항을 하는 소년이다. 자신의 엄마에 대해 험담을 하는 친구에게 쓰레기를 뒤집어 씌우는 건 여사이다. 얼굴은 늘 우울한 불만투성이, 그의 발에 걸리는 돌은 걷어차여 저만치 날아간다. 

반항아 스텟, 보이콰이어의 문을 두드리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스텟은 술에 쩔어 정신을 못차리는 엄마를 돌본다. 목욕물을 받아주고 스프를 끓이고 먹던 술을 버린다. 그러나 그런 스텟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양육비를 부담하던 아버지는 혼외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육 시설로 스텟을 보낼 것을 청한다.

부모가 없이 홀로 남겨진 스텟의 처지는 흡사 넷플릭스 <인간 수업> 속 오지수의 조건과 같다. 하지만 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오지수와 달리, 스텟에게는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 아침에 보육원 행이 될 뻔한 스텟에게 스텟이 다니던 학교 교장 선생님인 미스 스틸(데보라 윙거 분)은 '편애'라는 힐난을 무릎쓰고 스텟을 감싼다.

스텟이 천부적인 목소리를 타고 났다며 학교에 국립 소년 합창단 보이 콰이어를 초빙하여 스텟에게 오디션 기회를 제공했던 미스 스틸,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 스텟에게 그의 아버지를 설득하여 보이콰이어  소속 단원들이 다니는 사립 학교에 보낼 기회를 열어준다.

 

 

하지만 입학 오디션에서 단장인 카르벨레 선생(더스틴 호프먼 분)은 스텟의 목소리에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감동하지만 그의 불손한 태도를 들어 입학을 반대한다. 우여곡절 끝에 입학은 했지만 이미 나이도 많고, 악보조차 볼 줄 모르며, 거기에 자신을 배척하는 학교 분위기에 이전 학교에서 하듯 불손한 태도로 일관하는 스텟은 학교 생활에 어우러져 들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스텟은 점차 보이콰이어 단원들의 노래를 들으며 자신도 그 일원이 되기를 갈망하는 마음이 커져만 간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의 목소리를 알아본 율리 선생은 기회를 주지만 목소리 말고는 음악적 기초가 없는 스텟은 늘 '맨 땅에 헤딩'하는 처지이다. 

카르벨레 선생님 스텟에게 손을 내미다
입학 때부터 스텟을 눈엣 가시처럼 여겼지만 일찌기 스텟의 재능을 알아본 카르벨레 선생님은 흡사 <위플래쉬>의 플랫쳐 선생처럼 스텟을 몰아부친다. 플랫쳐 선생처럼 위악적이지는 않지만, 그 누구보다 음악적 완벽함을 추구하는 카르벨레 선생님은 스텟이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일깨워내고 단련해 나갈 것을 엄중하게 요구한다. 동시에 지금까지 스텟이 살아왔던 '독불장군'식의 일탈적 태도를 지양하지 않고서는 무대에서 온전히 조명을 받으며 일사불란한 보이 콰이어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놀라운 속도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스텟은 합창단의 솔로를 맡을 정도로 성장하지만 그런 만큼 동료 단원들의 시기도 더해진다. 솔로 무대에서 악보가 사라지고, 또 다시 이미 세상에 없는 엄마가 그의 발목을 잡는다.

그 역시 스텟처럼 자신의 불뚝거리는 성정을 이기지 못해 기회를 잃었던 쓰라린 기억을 가진 카르벨레 선생님은 일탈적 행동을 한 스텟에게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며 기회와 책임의 의미를 일깨운다. 그런가 하면 그의 뒤에서는 기지를 발휘하여 학교를 쫓겨날 처지에 놓인 스텟의 방패막이가 되어준다. 또한 스텟으로 인해 자신의 가정 생활이 파괴될까 두려워 찾아온 아버지를 돌려세운다. 

 

 

카르벨레 선생님의 엄격하지만 따스한 지도로 스텟은 비로소 그간 자신을 얽어맸던 상실감을 떨치고 눈물어린 진심으로 학교에 남을 것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드디어 보이 소프라노로서 최고의 난이도이자, 최고의 영예가 되는 3옥타브 '레'의 경지를 펼쳐보일 '메시아'의 독주 파트 기회가 찾아온다. 국립 소년 합창단에게, 그리고 보이 소프라노로서 스텟에게 찾아온 다시 없을 기회, 스텟은 다른 합창단원들과 함께, 그리고 홀로 그곳에 모인 관중들의 감동어린 열렬한 박수 세례를 이끌어 낸다. 

<보이 콰이어>는 천부적인 목소리를 지닌 스텟이 미스 스틸, 카르벨레 선생님 등 그에게 따스한 손기를 내민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보이 콰이어의 아름다운 보이 소프라노로 빛을 발하는 '음악적 성취'만으로도 이미 음악적이면서도 교육적인 성과를 거둔다. 교실 책상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며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던 소년이 다수의 관중 앞에서 헨델의 메시아 최고 난이도 3 옥타브 레를 넘나들며 아름다운 목소리를 뿜어내는 장면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감동적이다. 

하지만 <보이 콰이어>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렇게 최고의 공연을 마친 스텟에게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스텟, 변성기가 온 것이다. 보이 소프라노로서의 생명이 끝난 스텟, 하지만 선생님들의 든든한 지원과 사랑으로 자신이 원하던 바를 성취한 스텟은 이제 더는 '일탈'하거나 주저 앉지 않는다. 소프라노 파트 대신 알토 파트가 되어 학교에 남을 수도 있지만, 스텟은 대신 자신에게 열린 '기회'를 선택한다. 그의 편이 되어주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스승들의 가르침 덕분에 스텟은 기꺼이 또 다른 인생의 길에 설 준비가 된 것이다. 무엇을 가르치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길을 열어 준 이야기, 그것이 음악 영화 그 이상 <보이 콰이어>의 가르침이다. 

by meditator 2020. 5. 21. 0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