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이란 단어가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일본의 '오타쿠'란 단어가 우리 나라로 오면서 등장한 '오덕후'는 이제 집안에 틀어박혀 자신의 취미 생활을 탐닉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란 협소한 의미에서 탈피,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전문가 이상으로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임하는 일군의 사람들을 뜻한다. 바로 그 '덕후'들이 열정적으로 임하는 일인 '덕질'은 최근 '트롯 열풍'에서도 드러나듯이 이젠 연령과 직업을 막론하고 전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바로 그런 '덕질'을 하는 사람들의 '로망'이라 하면 다름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과 함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바로 그 좋아하는 사람과 일을 하게 된 여성이 있다. 바로 <나의 첫 번 째 슈퍼스타>의 3년차 매니저 매기(타코타 존슨 분)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공연을 하고 돌아오는 그레이스(트레시 앨리스 로스 분)를 맞이하는 매니저 매기, 그녀가 먹고싶은 음식과 그녀가 원하는 옷을 그녀 자신보다도 더 잘 알아서 챙겨주는 이 막내 매니저의 꿈이 '매니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때는 기자로 그레이스를 인터뷰하기도 했던 지방 음악 방송 DJ인 아버지를 둔 매기, 이제는 세상을 떠났지만 어머니가 좋아하던 그레이스의 음악을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랐던 그녀의 꿈은 자신이 슈퍼스타 그레이스의 음악 프로듀서가 되는 것이다. 그레이스의 일거수일투족을 케어하고 돌아온 늦은 밤 그녀의 히트곡 'Bad girl'의 보다 나은 버전을 위해 한 음, 한 음 놓칠세라 다시 작업해 보며 시간을 보내는 매기, 하지만 다음 날 다시 그녀가 할 일은 그레이스의 음료수를 챙기는 것이다. 

하지만 매기의 소망 자체가 어쩌면 이미 때가 늦은 일일 수도 있다. 슈퍼 스타 그레이스, 하지만 그녀를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히트곡은 10년 전 발표된 것이다. 여전히 공연마다 성황을 이루고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에 몸을 흔들며 흥겨워하지만, 이제 그녀의 오랜 매니저는 그녀에게 이곳저곳 투어를 다니는 대신 노년의 가수들이 안정적으로 무대에 서는 라스베가스 공연을 추천한다. 한때는 오프라윈프리 쇼에 나가 자신의 팬들에게 늘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곡을 쓰지만, 그의 오랜 매니저도, 그녀와 함께 해온 음반사도 그녀에게 주문하는 건 새로운 도전이 아니라, 기존 곡의 리믹스 버전이라는 '안정적'인 기획 뿐이다. 

프로듀서가 되고 싶은 매기의 동상이몽 
매기와 그레이스의 동상이몽, 그 아슬아슬한 동행의 이면은 매기의 도발로 드러나게 된다. 최신 유행하는 힙합 버전으로 그레이스의 히트곡을 리믹스하겠다는 오랜 매니저의 기획에 매기는 정면으로 반기를 들며 그레이스의 음색을 한껏 살려낸 자신의 프로듀싱 버전을 선보인다. 하지만 돌아온 건 내 밥상에 숟가락 얻을 생각 말라는 오랜 매니저의 따끔한 경고, 그레이스 역시 매니저의 손을 들어준다.

덕업 일치에 실패했을 때 어떤 대안이 있을까? 매기가 선택한 건 이미 슈퍼스타가 된 그레이스 대신, 마켓 앞에서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던 '신인' 데이비드(켈빈 해리스 주니어 분)였다. 물건을 사는 매기에게 호의를 보이며 접근하던 데이비드, 처음엔 외면했지만 음악적으로 많은 것이 자연스레 통한 데이비드에게 호의가 느껴졌던 매기는 어수선한 마케의 광장에서도 호소력있게 다가오는 그의 음색에 끌려 그에게 다가선다. 

 

 

그런데 자신이 겨우 음료수나 나르는 매니저라고 하면 데이비드에게 프로듀서로서 '가오'가 떨어질 것을 우려했던 매기는 그녀가 생각하기에 약간의 '트릭'을 쓴다. 그리고 시작된 매기의 투잡 생활, 안그래도 24시간이 빠듯한 그레이스이 매니저 역할에, 짬짬이 데이비드의 프로듀서 일까지 하며 데이비드의 음악을 완성해 간다. 

위기와 기회는 동시에 다가온다. 흔히 음악 영화에서 벌어지는 '결정적 순간'이 매기에게 다가온 것이다. 그레이스의 새 리믹스 앨범 발표 파티, 오프닝을 열어줄 가수의 섭외가 쉽지 않던 차, 매기는 그 기회를 자신의 가수 데이비드에게 맡기고자 한다. 오프닝에 서겠다는 유명 가수를 설득하면서 까지 얻은 기회, 일반적인 영화의 클리셰에 따르면 데이비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매기에게 프로듀서로서의 '성공'을 안겨주겠지만 영화는 그 반대의 결과를 매기에게 안겨준다. 

자신의 가수도 잃고, 매니저로서의 직장도 잃은 채 아버지의 집에 칩거하는 매기, 그리고 그녀를 찾아온 그레이스와 데이비드, 그 뜻밖의 만남은 생각지도 않은 반전의 관계를 드러내며 영화는 매기가 프로듀서한 데이비드, 그리고 그레이스의 화려한 무대로 마무리된다. 비록 매기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해프닝같은 무모한 도전이 실패로 끝났지만 음료수와 의상을 들고 고군분투하던 3년간 매니저 생활이 보여준 성실성과, 모두가 '안정'을 요구했을 때도 가수로서의 그레이스에 대한 '덕후' 매기의 열정이 결국 그레이스와 데이비드를 설득해 낸 것이다. 

다코타 존슨의 아름다움이 영화 속 그녀가 분한 프로듀서로서의 열정을 쬐금 더 앞지른 영화, 그리고 좀 더 감동적인 음악적 성장 영화가 될 수 있음에도 어쩐히 한 스푼의 양념이 아쉬운 듯한 영화였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매기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신의 꿈을 놓지 않은 채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거기에 어수선한 마켓에서 울려퍼지던 데이비드의 소울 충만하던 목소리, 무대를 휘어잡는 그레이스의 음색은 보는 걸 넘어 듣는 만족을 충족시킨다. 또한 한 음, 한 음, 그리고 세션의 조화에 고민하는 매기를 통해 <비긴 어게인>에 이어 뮤지션의 음악을 완성시키는 '프로듀서'라는 직업의 매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by meditator 2020. 6. 14. 0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