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4월 15일은 국회의원 총선거였다. 결과는 압도적인 여당의 승리, 외신들과 언론들은 '코로나 19'에 시의적절하게 대처한 정부의 성과라 입을 모은다. 아직도 전세계적가 이 바이러스로 인해 혼란에 빠져있는 상황, 그러나 우리는 이제 사회적 격리를 해제할 것인가를 고민할 만큼 위기의 파고에서 한 발 물러나있다. 여러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3차 대전에 맞먹는 위기 상황을 잘 대처해 낸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국가'의 존재를 실감시켜준 여당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4월 16일, mbc는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을 방영했다. 2020년 92회 아카데미상 수상식, <기생충>에 앞서 호명되었던 우리나라 작품이다. 29분의 영상,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작으로 선정된 <부재의 기억>, <기생충>과 마찬가지로 후보작이 된 5작품 중 유일한 외국 작품이었다,
지난 2009년 <달팽이의 별>로 서울 국제 청소년 영화제 SIYFF 관객상, 2011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승준 감독, 감독이 미국의 한 다큐 플랫폼 회사로 부터 촛불 집회와 관련된 다큐를 제안받으며 <부재의 시간>은 시작된다. 이에 어떻게 세월호가 촛불 집회까지 이어지는가를 설명하고, 4.16 세월호 참사 가족 협의회와 4.16 기록단과 함께 다큐를 제작한다.
고통이 남아있는 한 고통은 계속 얘기되어야 한다
다큐의 시작, 아직 수학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레이던 그 상황이 남겨진 가족들의 상황극으로 재연된다. 그저 '수학 여행'을 다녀오는 것일 뿐, 그것이 꿈에서도 다시 만나기 힘든 영원한 이별이 될 줄 몰랐던 아이들과 가족들은 여느 가족들처럼 그 시간을 맞이한다. 용돈이 주느냐 마느냐, 웬 용돈을 이렇게 많이 주느냐, 엄마보다 친구들이 그렇게 좋냐는 등 그 스스럼없는 대화들은 고스란히 남겨진 가족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멍에로 새겨진다. 아이들이 남긴 말을 읊던 가족들을 끝내 대사를 마치지 못한다.
그렇게 잘 다녀오겠다며 웃으며 떠난 아이들은 4월 16일 당일 배가 좌초되고 있다는 신고가 되고 배가 기울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밝게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며 상황을 낙관하고 있다. 이만큼 기울어 졌어요라며 아이들이 찍어 보인 세월호는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 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방송은 침착하게 대기하라 하고 아이들은 저렇게 가만히 있으라 할 때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고 농담처럼 서로 주고 받는다.
그렇게 배가 기우는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설마 해경이, 그리고 국가가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어른들이 자신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고 하면서도 지시에 따르던 아이들은 결국 해경과 정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배가 가라앉아 버리고 민간 잠수사들이 솔선수섬하여 아이들을 구하러 들어갔을 때 2인실에 7,8명이 모여, 작은 창에 머리를 끼워 넣으며 살려고 발버둥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다큐는 세월호가 좌초되었다는 신고가 접수된 그 순간부터의 당시 상황과 그 상황을 기억하는 부모, 생존자, 잠수부들의 증언을 오가며 당시의 상황을 담담하게 전한다. 하지만 담담하게 보여준 그 시간 속에 '국가'는 없었다.
그곳에 국가는 없었다.
배가 좌초된다는 신고는 이미 접수받았다는 무책임한 응대로 이어졌고, 해경은 온데간데 없었다.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제 때 상황실에 나타나고 제 때 해경이 현장에 출동하기만 했어도,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살렸으면 우리같은 사람들이 있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 ..... 제대로 구할 수만 있었으면' 하고 아쉬운 맘을 접지 못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관홍 잠수사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개 민간 잠수사조차 그 책임감과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에 국가는, 책임자들은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 다큐는 묻는다.
이에 해외 관객들도 일찌감치 공감, 2018년 뉴욕 다큐멘터리 영화제(DOC NYC)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아카데미 상의 후보로 예견되었다. 또한 미국 영화 협회 다큐멘터리상( AFIDocs) 단편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제 때 대처만 했다면 그 수많은 목숨들이 '바다'에 묻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다큐를 본 사람이라면 국적을 막론하고 그 누구라도 공감하고, 그래서 국가의 부재에 대해 분노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수장' 시키고서도 대통령 앞에서 보여지는 '그림'에 연연하는 관계자들, 국회에서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사람들, 왜 사람들이 그 추운 겨울 거리로 나서 촛불을 들었는지 다큐를 보면 인과 관계가 명백하게 설득된다. 드디어 2016년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아이들이 사라진 그곳에 없었던 국가는 그렇게 '심판'되었다.
그리고 2017년, 3년 만에 세월호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울부짖는 유가족들, 그곳에서 뒤늦게나마 배의 잔유물로 돌아온 가족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그날의 진실이 숙제처럼 남아있다.
<부재의 기억>이 아카데미 상에 노미네이트 된 사실에 대해 '단순한 영화 하나가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게 아니라, 전 세계 영화 관객들이 세월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봉준호 감독은 말한다.
20분을 더해 감독판으로 방영하게 된 이승준 감독은 시간적 제약으로 인한 아쉬움을 달랬다며,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없었던 그 당시'를 통해 시민들이 보호받는 안전한 사회, 시민들을 보호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논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감독의 말처럼, 이제 2020년에 본 <부재의 기억> 속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건 이제는 부재한 사람들을 통해, '부재한 국가'에 대한 상흔이다. 그러기에 세월호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다. 끊임없이 우리가 되새김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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