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코로나 19로 우리 영화의 신작 개봉이 주춤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대만과 일본의 작은 영화들이 오래된 고전 영화들의 리메이크작들 가운데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거의 매주 새로운 신작으로 찾아오는 일본 영화들은 스릴러, 로맨틱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져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난 3월 개봉한 <모리의 정원>에 이어, 4월 9일 개봉한 <선생님과 길고양이>, 그리고 23일 개봉할 <고양이와 할아버지>는 모두 '노년의 삶'에 촛점을 맞춘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의 현실을 반영한 장르일 터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라기엔 우리 역시 급격하게 고령화되어가는 현실에서 외면할 수만은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 중에서 <선생님과 길고양이>는 과연 어떤 노년의 삶을 그려내고 있을까.
독고다이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은 오늘도 바쁘시다. 소일 삼아 모여 게이트볼을 하는 동네 노인들이 함께 하자 불러도 교장 선생님은 바쁜 일이 있어서라며 가던 걸음을 서두른다. 사실 이젠 교장 선생님도 아니다. 정년 퇴직을 하셨다. 다니는 직장도 없는데 뭐 그리 바쁜 일이 있을까.
서둘러 교장 선생님이 들른 곳은 다름 아닌 동네 빵집이다. 어제 사간 빵맛이 예전과 다르다고 한 입 베어물은 빵을 들고 오셨다. 그 말을 들은 빵집 주인은 좌절한다. 빵이 잘 팔리지 않아 버터를 조금 더 싼 것으로 바꾸었는데 매일 빵을 사가는 단골이 알아차렸으니 말이다. 결국 더는 빵집을 계속할 수 없겠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그런 빵집 주인의 '안타까운 상황'에도 교장 선생님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그런 식이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물론 같은 마을에 사는 그 누구에게도 교장 선생님은 '소통'하지 않는다. 집으로 찾아와 교장 선생님이 찍은 '마을의 역사'가 될만한 사진을 정리하는 젊은이와의 대화에서도 교장 선생님은 동문서답, 젊은이 말처럼 '마이 페이스'일 뿐이다.
마을 사람들 상당수가 교장 선생님의 제자여서 반가이 인사를 하고, 교장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추억하고, 적어준 문구를 상기하지만 무반응으로 일관한다. '소통'하지 못하는, 아니 '소통'이라는 걸 아는가 싶은 교장 선생님의 모습은 어쩐지 익숙하다. 영화 후반 나오는 교장 선생님의 고백처럼 한때는 애도 많이 써봤지만 교장 선생님이 된 후 그 직책에 갇혀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았던 그 습성이 이제 그 누구와도 접점을 찾기 힘든 사람으로 만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만난 상당수의 어르신들의 또 다른 모습과도 같다.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 속에 갇힌 채 현실과 마주하지 않는 모습이 말이다.
그러면 교장 선생님의 일상은 무엇으로 바쁠까. 빵을 바꿔온 선생님은 아내의 영전에 빵을 놓는다. 그리고 빵 한 조각과 함께 한 식사 후 교장 선생님은 독서 삼매경에 빠져든다. 노년의 일상을 '헌신'한 러시아 작품의 번역, 그런데 알고보면 '꼭' 해야 할 것이 아니라 교장 선생님이 무료할까봐 출판사에서 심심풀이삼아 해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 일을 위해 분주하게 돌아와 문을 닫아걸고 하루를 보낸다.
그런 교장 선생님의 정적을 깨뜨리는 방해꾼이 있다. 다름 아닌 고양이다. 그것도 길고양이.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내는 길고양이를 집고양이처럼 아꼈다. 그래서 늘 같은 시간이면 고양이는 찾아와 아내에게 밥을 얻어먹고 자기 집처럼 쉬다 갔다. 이제는 아내는 없지만 고양이는 언제나 같은 시간에 찾아온다. 고양이를 위해 만들어 놓은 문을 통해 아내의 영전 앞에 앉아있는 길고양이.
그런 고양이를 볼 때마다 교장 선생님은 자꾸만 아내와 함께 하던 시절이 떠올라 못견뎌 한다. 홀로 러시아 문학과 씨름하며 보내는 일상에서 길고양이는 유일한 방해꾼이자, 참견꾼이고, 그 마저도 교장 선생님은 거부한다. '추억'마저 고통이라 여기며. 몰두하지만 딱히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시간, 스스로 고립된 시간은 교장 선생님으로 하여금 자꾸 '과거'에 매몰되도록 만든다. 결국 견디다 못한 교장 선생님은 그 추억을 유일하게 길어오는 고양이를 내쫓는다.
솔라, 치히로 혹은 미의 실종 사건
솔라, 치히로, 혹은 미, 이건 고양이의 이름이다. 길고양이로 이 집 저 집, 혹은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붙여준 이름, 붙임성 좋은 고양이는 사람들이 자신을 무어라 부르건 상관없이 반경 500미터의 자기 영역을 날마다 '순시'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영역 동물'인 고양이를 그 한 영역에서 교장 선생님이 쫓아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 댁에서 쫓겨난 고양이가 마을 전체에서 그만 사라졌다.
안그래도 고양이를 수장시킨 사건에, 길고양이 밥을 주지 말라는 벽보까지 붙여서 걱정스러워 고양이 목에 방울 목걸이까지 달아주었는데 그 고양이가 사라졌으니 고양이 밥을 챙기던 사람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걱정스러워하는 건 뜻밖에도 교장 선생님이다. 그저 자신은 아내가 떠올라 고양이를 내쫓았을 뿐인데 고양이가 사라지자 교장 선생님은 '야옹~'하며 고양이를 찾아 온동네를 헤맨다.
고양이가 들어올 까봐 작은 문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바르고 부엌 문마저 막아놓았던 교장 선생님은 자신 때문에 고양이가 사라지자 그 '바쁘던 일상'을 놓고 고양이 찾기에 나선다. 심지어 애지중지하던 영전의 아내 사진마저 고양이를 찾기 위한 '미끼'가 된다. 죽은 아내와 번역, 그렇게 교장 선생님의 일상을 채웠던 중요한 일들은 살아있는 고양이 앞에 하찮은 것이다. 영화는 반문한다. 나이듦의 시간을 채우는, '집착해마지 않는 나의 것'들이 정말 그토록 애지중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냐고.
교장 선생님만이 아니다. 작은 바닷가 어촌 마을, 저마다 고양이와 접점을 이루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고양이가 실종되자, 그 접점을 상실하며 뜻밖에도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학교를 중퇴하고 고양이 밥을 주던 세탁소 점원은 밥을 주던 그 시간이 쉴새없던 세탁소 일을 하던 자신에게 '휴식'과도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밤마다 벤치 아래 고양이를 반기던 소녀에게는 왕따로 괴로워 죽으려 하던 그 순간 자신의 발밑에서 울었던 고양이가 생명의 은인이다. 이렇게 그저 '길고양이'였지만, 그 '길고양이'는 저마다의 삶에 짖눌렸던 사람들에게 '쉼표'와도 같은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 고양이 부양 인구가 늘듯이, 그 작은 마을 사람들도 '사람' 대신 고양이에게 위로를 의탁하며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고양이를 안고 부비며 유일하게 생기를 띠던 그 순간처럼. 그래서 사람들은 고양이를 찾아나선다.
그렇다면 고양이를 다시 찾았을까? <선생님과 길고양이>는 관객들마저 매료시킬 귀여운 고양이가 등장하지만 정작 영화를 통해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고양이를 찾아나선 사람들은 고양이와의 접점을 사람과 사람의 접점으로 치환시킨다. 그 누구에게라도 고개를 뻣뻣하게 세웠던 교장 선생님은 고양이를 잘 돌보지 않았다는 호통에 고개를 조아린다. 생전 드나들지도 않았던 미용실을 찾고 평소같으면 어울리지 않을 사람들과 고양이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밤거리를 헤매고 구르며 고양이를 찾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고양이를 찾는 짧은 시간 동안 교장 선생님의 표정이 변한다. 와이셔츠는 흙투성이가 되고 다리는 절름거리지만 고루하기 짝이 없고 무표정이던 그 얼굴에 어쩐지 생기가 돈다.
알고보면 'I can do it'을 사자성어처럼 졸업하는 제자에게 남길 정도로 위트가 넘치던 교장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 일이 재미없었다지만 여전히 '선생님'으로서의 '촉'은 여전하신 분은, 고양이를 찾으며 그 문닫아 걸었던 자기 만의 공간에서 한 걸음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실종된 고양이를 매개로, 세탁소 점원과 미용실 주인 등 서로 다른 세대,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 새로운 접점을 가지게 된다. 교장 선생님이 어렵기만 하던 젊은 세탁소 점원이 교장 선생님과 빵을 나눠먹는 일은 여사처럼 이루어 지고 세대간 높았던 권위의 벽을 알고보면 별 게 아니다. 젊은 남녀는 쑥쓰럽게 인사를 하고, 주먹밥을 나눠먹고 다시 내일 만날 것을 기약한다. 매일 학교를 땡땡이 치던 어린 소년이 교장 선생님의 손에 온기를 남긴다.
나이듦의 시간은 숙제와도 같다. 그리고 그건 비단 나이듦을 짊어진 사람만의 숙제만은 아니다. 그 나이든 사람으로 채워진 사회, 그리고 그 나이든 사람을 부양해야 하는 젊은이들까지 불가피하게 모두의 숙제가 된다. <선생님과 길고양이>는 '해프닝'으로 부터 해법을 도모한다. 꼭 나이가 들어서만이 아니다. 서로가 자신의 고민 속에 빠져살며 저마다의 별에서 고뇌하던 '어린 왕자'와도 같던 사람들이 실종 사건을 계기로 서로 다른 별과 다리를 놓는다. 고양이가 귀여워 찾아들어 사람들의 관계와 나이듦의 과제를 새로이 받아들고 나오는 영화, <선생님과 길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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