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진 젊은이들, 그러나 여전히 취업이 어려운 현실, 그에 반해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 기업들, 이 취업 시장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sbs스페셜이 나섰다. 6월 10일 방영한 <취준진담 역지사지 면접 프로젝트> 배우 조우진을 내세운 '노오력 인력 사무소'를 통해 지금까지 취업을 하기 위해 취업자가 기업의 담당자들과 면접을 보는 발상을 전환하여, 취업자들이 취업하고자 하는 기업을 '면접'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 시대 청년들의 '노오력'에 대해 살펴 '취업자' 중심의 구직을 시도해 본다. 




역지사지 면접 프로젝트 
이를 위해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대표 혹은 담당자들이 젊은이들에게 면접을 '당'하기 위해 나섰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저비용 항공사 티** 항공 경영본부 김형이 상무, 한방차 카페라는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전국에 100여 개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고 있고 최승윤 대표,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스타트업 회사 여기 **의 인사 총괄 맥스 이사. 이들은 각자 회사의 성과급을 직원들에게 나누어 준다던가, 월요일 오후 1시 출근에 주 4.5일 근무, 6시 정시 퇴근 독려 등 일하고 싶은 환경, 그리고 주 35시간 하루 세 끼 식사 제공에 각종 복지 정책을 자신감있게 내세우며 면접장에서 자리한다. 

하지만 이들은 당당하던 자신감은 취준생 면접관들과의 몇 마디 대화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이들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400여 개의 지원 서류를 작성해 본 김연재 , 취업을 위해 대학에 적을 둔지 8년차인 11학번 김은하, 장래를 위한 자신의 전공인 성악 외에 정치학을 복수 전공하는 김희원, 인턴 2번, 정규직 1년차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찾는 32살의 중고 신입 김필립, 각종 단기 알바를 섭렵하고 이제 계약직 만료를 앞둔 서자영, 그리고 취업 준비 2년차 자소서만 155개째 작성하고 있는 김희원이다. 

면접을 하는 위치이지만 이미 그 자리에 나설 기업에 대해 조사를 다 하고 나온 이들은 예리하게 각 기업의 문제점을 파고든다. 급성장하고 있는 자부심을 피력한 티** 항공의 상무는 회사 내 잦은 퇴직에 대해 '열정'이 부족한 게 아닌가라는 답을 했다가, 취준생들에게 '꼰대'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는가 하면 주 4.5일의 근무 환경에 대표 면담이라는 화려한 근무 조건을 내세운 최대표는 대표 면담이라는 게 대표만의 자의적 소통 방식이 아닌가 라는 반문에서 부터, 연봉 2000 만원이라는 낮은 급료가 혹시나 '열정 페이' 아닌가 라는 질문에 그만 말이 막히고 만다. '여기 **'역시 마찬가지다. '맥스'라는 생소한 외국 이름에서 부터, 1년 안에 획기적인 근무 환경 개선이라는 그의 장담은 취준생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다. 

무엇보다 취준생들과 기업 담당자들 사이에 가장 큰 '간극'을 보인 건 '야근'에 대한 문제이다. 회사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때로는 '야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기업 측의 생각에 취준생들은 그게 바로 '열정'을 거저 이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냐 맞선다. 그리고 잦은 이직을 그 증거로 내세우며, '열정' 대신 '페이'를 요구한다. 

1박 2일에 걸친 합숙과 술자리까지 거친 심층 면접, 취준생들의 평가처럼 기업 담당자들은 면접의 요소요소에서 여전히 젊은이들의 노오력에 대해 '안이하게' 바라봤으며, 그들의 '열정'에 무임승차하려는 가치관을 숨길 수 없었다. 또한 젊은이들이 구직 시장에서 자신을 내던지며 전투에 임하는 태도와 달리, 술자리에만 가도 긴장이 풀려 예의 '꼰대'다운 훈계를 내놓고 만다. 심지어 '노오력'에 대한 마지막 정의의 과정에서 기업 담당자들은 어설픈 비누 조각이나, gps 인증, 혹은 영화 속 설정을 통해 어설픈 이벤트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잡으려 해 실소를 자아내고 만다. 결국 1박 2일의 노오력 면접이 보여준 건 여전한 '꼰대'들의 '열정'에 대한 정당하지 않은 사고 방식과 이 시대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열정과 페이의 간극 
하지만, 정작 이 '역지사지'다큐가 보여준 건, 이 쉽게 잇닿을 수 없는 구직자와 구직 담장자의 사고 방식의 차이가 아니다. 1박2일의 합숙이 끝나고 최종 선택이 있던 순간, 가장 꼰대스러워 젊은 구직자들에게 지탄을 받던 티** 항공사가 성과급을 준다는 이유로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는 점이다. 하룻밤을 보내던 구직자들은 그들이 면접 과정에서 지적했던 이러저러한 사안과 달리, 결국 의견을 '돈'과 '비전'으로 모은다. 그러기에 3개의 직장 중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티** 항공사와 여기 **가 취준생들의 선택을 받는다. 거기에 반해 현실적으로 가장 직원 복지가 좋고, 대표의 노력과 열의가 돋보였던 카페 프랜차이즈 회사는 단 한 명의 선택도 받지 못하고 만다. 

결국 울음을 터트린 최대표, 그는 울며 말한다. 그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 이 현실이, 결국 자신과 함께 일하면서도 남들에게 자랑스레 자신의 직장에 대해 자부심을 내보일 수 없는 자기 회사 직원들의 현실이 아닐까 하는 회한의 눈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취준생'의 역지사지 면접으로 시작하여, 연봉 2000만원 밖에 줄 수 없는 중소기업의 비극사로 끝을 맺게 된 다큐. 

6명의 취준생들 중 그 자리에 나온 기업을 택한 3명은 '꼰대'라도 확실한 경제적 보장과 미래의 가능성이 있는 회사를 선택했다. 한 명은 노력가능해 보이는 미래에 투자했다. 반면 6명 중 2명은 여전히 그 어느 회사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야근 등에 대한 정당한 노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삶의 질을 보장하지 않으며, 수평적 인간 관계를 누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 였다. 8년이 넘는 구직 기간도 여전히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대한 로망을 접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런데 과연 저 자리에 나와 여전한 '꼰대'스런 사고 방식과 어설픈 노오력(?)을 보인 기업 담당자가 대기업에 속한 사람이라도 수평적 기업 문화와 삶의 질이 선택하지 않는 핑계가 될까? 애초에 청년들의 '노오력'과 열정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드러내기 위해서 였다면 역지사지 면접에 나서야 할 사람들은 대기업 담당자들이 아니었을까? 

구직자의 3%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대기업, 그에 비해 기업 문화를 변화시키며 노력해도 구직자가 원하는 페이를 줄 수 없는 반면, '열정'이 필요한 심지어 미래조차 불투명한 중소 기업, 이 딜레마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삶의 질과 안정을 추구하려는 구직자들의 구직 행렬과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서로 잇닿을 수 있는 길은 희박하지 않을까라는 '현실'을 다큐는 다시 한번 보여주고 만다. 
by meditator 2018. 6. 11. 16:32
2017년 개봉한 영화 <1987>을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갔다. 과연 이 영화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두고. 하지만 그 누가 주인공이라고 선뜻 결론내릴 수 없는 영화. 장준환 감독은 바로 그렇게 그 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게 아니라,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민주 시민 모두가 만들어 낸 6.10 항쟁의 역사를 영화 <1987>에 담아냈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단순 사고로 묻힐 뻔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진실을 세상으로 전한 '비둘기', 배우 유해진이 분한 한재동씨의 이야기 <1987, 그날의 비둘기>를 tbs가 6. 10 항쟁 31주년 기념으로 방영한다.

ⓒ tbs

기적과도 같았던 진실의 폭로, 이어진 6.10항쟁 
이 다큐는 지난 1월 14일로 박종철 고문 치사 31주기에 맞춰 <뉴스 타파>가 1월 19일 방영했던 프로그램이다. 지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1987>의 상영 덕분이었을까. 올 초 31주기 박종철 열사 31주기 추모식이 열린 모란공원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제야 조금씩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감회를 피력하는 박종철 열사의 형님, 그리고,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선 이부영 씨.

1987년 1월 14일 22살의 박종철 씨는 가파른 나선 계단으로 끌려 올라간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걸어서 되돌아 나올 수 없었다. 조사 과정에서 과도한 물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대학생, 우리를 분노하게 했던 그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단순 사고로 묻힐 뻔했던 사건. 그러나 당시 고문에 가담했던 경관 2명이 영등포 교도소에 수감되고, 감옥 안에서는 그들 외에 고문에 가담한 경관이 더 있었으며, 이 사건이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다는 사실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 동아일보 기자 이부영 씨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바깥 세상에 전하기로 결심한 이부영 씨는 그와 12,3년 동안 지기이자, 동지였던 교도관 한재동씨에게 볼펜과 종이를 청해 그 사실을 낱낱이 기록하고, 그에게 바깥 세상으로 전할 것을 부탁한다. '걸리면 우리도 죽을 수도 있다'는 비장한 각오로 전한 이 쪽지는 비둘기가 된 한재동 씨를 통해 세상에 '폭로'되었고. 전국은 들불처럼 번지는 시위로 화답했다. 이어진 독재 정권의 항복 선언과 직선제 개헌. 그 시절을 이부영 씨는 '그 진실이 밝혀지기 까지 많은 사람들이 시계 속 톱니 바퀴처럼 자신들의 역할을 해냈기에 가능했던', '신의 오묘한 손길'이 닿은 '기적같은 사건'이라 회고한다.

ⓒ tbs

민주 교도관 한재동이기에 가능했던 비둘기 
그리고 그 '기적'이 가능케 했던 비둘기 한재동 씨, 당시 젊은 교도관이었던 그도 30여년의 세월을 건너 칠순의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30년의 세월을 건너 그 시절의 일을 그에 대해 한재동씨는 '공권력이 사람을 죽인 있어서는 안되는 사건이라며,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그 누구라도 했을 일'이라며 '민주화에 보탬이 될 수 있어'외려 '행운'이었다 겸손하게 물러선다.

하지만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생이 고문으로 죽어나가던 시절, 그 소식을 몰래 전하는 것이 직업적 규정의 위반은 물론, 그 사실이 알려지면 전한 당사자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던 시절 용기를 낸다는 건 그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누구라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민주적 교도관'으로 투쟁해 왔던 그의 순탄치 않은 이력에서 비롯된다.

고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단체 관람'으로 <1987>을 봤다며 자랑스레 전하는 한재동 씨의 동료들, 이제는 다들 한재동 씨처럼 70줄의 노인이 되었지만 그들은 한때 뜻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다. 한재동씨가 바로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어 낸 비둘기였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30년 동안 함구했던 이들, 한재동 씨의 헌신은 그래서 뒤늦게서야 알려져 2007년에서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감사패를 받을 수 있었다.

왜 그들은 '함구'해야 했을까? 동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물론 한재동 씨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비둘기 역할을 한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어쩌면 그 보다 한재동 씨 일생의 큰 투쟁은 그가 교도관으로 정년 퇴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교도관으로 정년 퇴임을 할 때까지 버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그 '보통' 일이 아니었던 한재동 씨의 교도관 일이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지키는 일을 하는 교도관이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얼마전 인기 리에 방영된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 등장한 그런 인간적인 교도관? 실제 감옥을 다녀온 다수의 민주 인사들 중에는 교도관을 벗으로 삼은 이들이 있다. 감옥에 갇힌 이와, 그들을 지키는 이의 '우정'이라니. 바로 그곳에 민주 교도관 한재동 씨의 자리가 있다.

'비둘기'로서의 운명을 '하늘이 준 뜻이다', '이게 내 팔자자' 그리고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다'라고 받아들였던 한재동 씨의 선택은 그저 우연이 아니었다. 한재동 씨는 퇴직할 때까지 평생 교도관으로 살았지만 교도관으로서의 그의 여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교도소내 인권 개선에 앞장 서는 바람에 지방으로 전출되기도 했고, 시국 사범, 정치범, 양심수와 친근한 관계를 맺고 이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애쓰고, 나아가 교도관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 조합을 만드는데 앞장 서다 인사 조치를 당해 파면에 이은 구속까지 당한 '전력'이 '비둘기'의 숙명을 가능케 한 것이다.

적극적인 동료들의 도움으로 1979년 징계에 이은 파면 조치가 1981년 10월 대법원까지 가서야 취소되고 복직 후 첫 부임지였던 곳이 바로 당시 시국사범들이 많았던 영등포 교도소. 동료들은 한재동씨의 복직이 영등포 교도소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은 미제 사건이 되었을 지도 모르다며 그 '우연의 기적'을 회고한다. 하지만 그 '한재동 씨의 결단'을 교도관으로서의 직업적 소명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한재동 씨를 위해 동료들은 지난 30년 동안 함구했었다.

몰래 편지를 밖으로 나르는 일, 분명 공무원으로서의 신분에 어긋나는 행동, 그러나 동료들은 '더 고매한 이상이었던 민주화'를 위한 일이었다며, 한재동 씨와의 민주적 유대 의식을 피력한다. 한재동 씨 역시 독재 정권 시대의 '정부'가 아닌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을 위한 일이라는 신념에 따라 '양심과 소신'을 가지고 결정한 일이라며 직업적 딜레마에 대해 정의내린다.

영화 <1987> 속 한 씬의 인물에 불과한 한재동 씨, 그리고 그 영화에 등장했던 수많은 주인공 아닌 주인공들, 그들이 그 영화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1987년 6.10 항쟁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건, 민주화를 위해 애썼던 그들의 삶이 있기에 가능했다. 직선제 개헌, 미완의 혁명, 그 이후로도 이어진 전진과 후퇴의 여정, 그 가운데에서도 한재동 씨와 같은 포기하지 않는 '민주 시민'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by meditator 2018. 6. 9. 14:19

생화를 활용한 설치 디자인 전시회에 다녀왔다. 커튼까지 쳐진 전시관, 도대체 무슨 비밀이 숨겨 있길래? 하고 첫 발을 들여놓은 순간 흠씬 다가온 숲의 내음, 꽃의 향기. 마치 '그루누이'가 채집한 향기처럼 자연의 냄새를 채집하여 가둬 둔 그 전시회 공간에서 자연에서 '냄새'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달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의식하지 못하지만 '냄새'로 인해 희노애락을 겪는다. 미세 먼지로 가득한 도시가 뿜어내는 매캐한 냄새에 인상을 찡그리다가도 그 혼탁한 공기를 타고 오는 향긋한 커피 볶는 냄새에 어느새 마음이 풀리곤 한다. 허기진 배를 달래며 집에 들어섰을 때 반기는 푸근한 김치 찌개 냄새만큼 안온한 행복의 내음이 있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맛은 언제나 '향'과 함께 우리의 머릿 속에 기억된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 21세기의 문명이 만들어 내는 향과 맛에 기만당하고 있다면? 지난 5월 21, 22일 2회에 걸쳐 방영한 <ebs 다큐 프라임>은 바로 우리를 배신한 '문명의 맛과 향'에 대한 고발이다. 






음식도 중독이 된다. 
키만 190cm가 넘는 박영재씨는 아마도 개그맨 들 중 가장 덩치가 큰 사람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덩치만큼이나 '대식'인 그의 식성이다. 단번에 3개는 끓여야 직성이 풀리는 라면, 하지만 라면이 끝이 아니다. 라면 먹고 앉기가 무섭게 초코바 두 개를 먹어치우더니 그것만으로 부족했던지 초코 아이스크림 한 통을 퍼먹는다. 그가 하루 동안 먹는 칼로리는 대략 6000, 성인 한 사람이 하루 동안 먹을 양을 한 끼마다 먹고 있다. 


박씨만이 아니다. 보기에는 날씬한 민보라 씨는 끼니마다 햄버거로 때운다. 그런데 한 개가 아니다. 무려 서너 개씩. 그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들지 않아 콜라 등으로 허기를 달랜다. 늦은 밤 귀가한 윤현섭 씨는 피자를 시켜 우선 콜라 부터 한 잔 벌컥벌컥 마신다. 민씨나 윤씨의 경우 햄버거나 콜라를 끊어보려 했지만 식은 땀이 나거나 울렁증이 생기고 신경이 예민해지는 등 부작용을 겪는다. 햄버거를 먹고, 콜라를 마셔야 비로소 스트레스가 풀리는 상태, 중독이다. 



그런데 이들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다. 음식을 대했을 때 중독과 쾌락을 담당하는 뇌의 신경 중추의 혈류량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중독,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중독인 줄 인지하지 못하는 이 '음식 중독'에 전세계인의 19.9%이 걸려있다. 더 심각한 건, 예일대가 만든 음식 중독 문진표를 작성한 대학생 103명 중 무려 1/4에 해당하는 26명이 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현실이다. '아, 맛있어'하다, '다 먹어치워야 해'를 지나, '먹어야 스트레스가 풀려'를 넘어 폭식의 경지에 이르는 '음식 중독', 그런데 대부분 '음식 중독'을 일으키는 건 '가공 식품'들이다. 

영양 전문가 헐먼 박사는 이렇게 중독성이 강한 패스트 푸드가 담배나 약물과 다를 바 없다 경고한다. 식품의 영양소에 등급을 매긴 ANDI 지수 (Aggregate Nutrient Density Index) 그 중 칼로리 당 미량의 영양소인 '파이토 케미컬'의 분포가 늦은 콜라, 흰 빵 등은 '과식'을 부르고, 식욕을 통제하기 힘들도록 한다. 바로 오늘날 '음식 중독'의 주범이다. 



야생 자원학 전문가인 프래드 프로벤자 교수에 따르면 인간을 비롯한 동물을 먹이의 향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향을 찾아내, 자신이 먹을만한 것을 골라 먹는 능력을 발달시켜 온 '영양 지혜'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의 '과식'과 '비만'은 어떻게 된 일일까?

바로 '향의 기만'이다. 발달한 현대의 음식 산업은 향을 통해 음식을 택하는 인간의 기호를 속인다. 과일이 아닌데 과일 향이 나는 하지만 설탕물과 불과한 음료수들처럼 합성향들이 인간의 '영양 지혜'를 뭉개버린다. 가짜 향과 가짜 맛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가공 식품이 매료시키는 향들은 인간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버린다. 콜라, 아이스크림, 햄버거 등 '인공적으로 합성하거나, 도정 및 정제를 거친 곡류로 만들어진 설탕, 흰 밀가루, 백미 등의 '정제 탄수화물'과 영양없는 향을 결합 시켜 인간의 코와 입을 교란시킨다. 

맛과 향이 왜 중헌디? 
그렇다면 고유의 향은 어떤 것일까? 그것을 찾기 위해 다큐가 찾아간 곳은 '토종 씨앗'을 연구하는 사람들. 지난 10여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600여 종의 토종 씨앗을 모은 변현단 씨, 그가 키운 토종 씨앗으로 토종의 퇴비를 써서 키운 작물들은 비롯 모양이나 수확량은 작지만 맛은 비교 불가이다. 

토종과 다품종 개량종 그건  50% 오렌지 쥬스와도 같다. 오렌지 쥬스 원액에 물을 섞어 희석시킨 50% 쥬스. 우리는 이것도 오렌지 쥬스라 부른다. 하지만 오렌지 100%의 맛과 향에 비교할 것인가. 그렇듯 더 많이, 더 크게를 지향한 농업의 발전이 낳은 건, 맛과 향이 떨어진 '본연의 향미'를 잃은 음식들이다. 



그런데 맛과 향이 뭐길래? 플로리다 주립대학은 토마토 278종을 실험했다. 토마토에는 수 백가지의 맛과 향을 지닌 화학 물질이 있고. 그 중에서 향을 내는 건 30 여종의 화학 물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바로 이 '향'이 '필수 영양소'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즉, 암을 예방하고 식욕을 억제하며, 건강에 도움을 주는 생리 활성을 가지고 있는 식물성 화학 물질, 파이토 케미컬 성분이 '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즉, 향이 좋다는 건, '저는 당신 몸에 좋아요'라는 신호로, 많은 영양분을 품고 있는 건강한 열매라는 것을 연구 결과는 밝힌다. 

그런데 대량 생산을 위한 품종 개량은 바로 이 '파이토 케이컬'의 영양소를 지닌 향을 '희석'시킨다. 희석된 오렌지 쥬스처럼 부피는 늘고, 생산량은 증가하지만 파이토 케미컬과 미네랄이 부족해지고, 그 자리를 수분과 탄수화물이 채워 '영양'의 손실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다큐는 실험을 해본다. 똑같은 포항초, 하지만 농약을 쳐서 하우스에서 한 달 속성 재배를 한 것과 노지에서 겨울을 이겨낸 두 같은 종자의 포항초, 우리도 알다시피 겨울 바람을 이겨낸 포항초가 당도도 높고 향과 맛이 좋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파이토 케미컬 성분의 페놀리그난과 플라노보이드 성분에서 노지의 포항초가 압도적이다. 결국 햄버거와 콜라, 피자, 라면 등을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을 채울 수 없는 건 바로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의 부족 때문이다. 


내 몸이 진짜로 원하는 맛과 향이 바로 다이어트 
그렇게 본연의 향기와 맛은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영양소를 알리는 '신호등'과도 같다. 다큐는 1부 <건강을 부르는 향>에 이어, 2부 <중독을 부르는 향>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영양 지혜'를 다룬다. 우리는 굶주리지 않지만 영양소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다큐의 주장이다. 먹방을 넘어 대식 전성 시대에 대한 도전이다. 

제주시 한경면 조수 1리 9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20여 명이나 되는 장수 마을, 이곳의 노인들은 집 한 켠 우영밭(텃밭)에서 자라나는 채소와 감자, 고구마 등으로 밥상을 꾸린다. 쌀이 귀한 그 옛날부터 어르신들의 밥에는 보리 등의 잡곡과 검은 콩이 빠지지 않는다. 결국 자연에서 길러진 신선한 먹거리가 '인간의 건강'을 담보하는 것이다. 감은사 우관 스님은 '자연은 인간의 '공생' 파트너'라 정의한다. 사찰 마당에서 마구 자라나는 제철 풀, 그곳은 자연식 전문가인 스님의 보물 창고이다. 유명 셰프라고 다를까. 일식 요리사 유희영 셰프는 말한다. 좋은 재료에서 훌륭한 요리가 나온다고. 

텃밭을 만들고, 야생 풀이 자라는 자연으로 떠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중독'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서른 무렵 결혼 당시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이 커가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암울한 선고를 들었던 160KG의 안소니 마시엘로는 식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 50이 넘은 지금 아이들과 함께 농구 게임을 즐기는 삶을 누린다. 채식이냐, 대사 증후군에 당뇨, 고혈압 진단을 받은 개그맨 박영재씨는 한 달 정도 '재습관화'의 과정을 통해 음식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우선 샐러드 등으로 배를 채우고, 외식을 하더라도 콩비지 등 패스트푸드가 아닌, 가급적 맛이 진하지 않은 음식으로 끼니를 꾸려간다. 

한 달이 지난 후 박영재 씨는 놀랍게도 50대의 생체 나이를 본연의 서른 중반으로 돌려놓았다. 몸무게도 줄었고. 무엇보다 채소라면 질색하던 그가 '토마토'의 다양한 맛에 눈을 떴다. 2006년 <슈퍼 차지 미 SuperCharge Me>의 주인공인 제나 노우드는 자연 생식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채식이냐 육식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공 식품을 먹어 무뎌진 내 몸의 감각을 되살려, 온 몸의 세포에 영양이 퍼져나가는 그 느낌을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제나는 주장한다. '가짜'로는 만들 수 없는 느낌. 가짜 맛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 내 몸이 원하는 진짜 맛과 향을 찾아내는 '영양 지혜'의 회복. 그것이 진짜 '다이어트'의 비결이다. 

by meditator 2018. 6. 8. 00:40

구악의 상징이었던 전 대통령이 '헌법 재판소'라는 사법적 절차를 통해 '탄핵'이 결정되며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새로운 시대를 대변하는 '개헌'이 논의 되며, 사법 정의 실현이 '적폐 청산'의 시금석으로 여겨지는 세상, 그런 현실의 반영때문일까.  tvn의 <무법 변호사>, mbc의 <검법남녀>, jtbc의 <미스 함무라비>, kbs2의 <슈츠>, 그리고 얼마전 종영한 sbs의 <스위치-세상을 바꿔라(이하 스위치)> 등, 각 방송사, 각 요일대 별로 '법' 관련 드라마들이 포진되어 있다. 적어도 시청자들은 이들 드라마 중 한 드라마를 매일 만날 확률이 높다. 




범람하는 법 관련 드라마들
물론 '법'을 다룬다고 해서 천편일률적이지는 않다. tvn의 <무법 변호사>는 '법'으로 싸우는 변호사라 주인공인 봉상필(이준기 분)이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드라마를 견인하는 건, 그와 다수의 조폭들의 격투씬이요, 법정에서 정의를 실현하도록 하기 위한 '봉상필'의 '작전'들이다. '법'을 내세우지만, '무법'적 요소가 범람하는 아이러니한 '법' 드라마인 셈이다. 지난 5월 17일 종영한 <스위치>의 경우 '스위치'를 온오프하듯 자유롭게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사칭을 하는 사기꾼이 얼떨결에 검사가 되는 설정이라는 점에서 <무법 변호사>와 같은 변칙 플레이의 궤도에 놓여있다. 미드 원작으로 리메이크 된 kbs2의 <슈츠> 역시 대한민국 최고 로펌의 전설적인 변호사와 함께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진 '가짜'를 변호사로 등장시켜 '법정' 드라마를 변주시킨다. 

반면, 서울 동부지방 법원 부장 판사로 이미 동명의 저서를 펴낸바 있는 문유석 판사가 극본을 쓰고 있는 jtbc의 <미스 함무라비>는 앞서 두 드라마와는 정 반대로 '법원'을 무대로 '판사'들의 교과서와 같은 내용을 현장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mbc의 <검법 남녀>는 검사와, 법의관을 파트너쉽 관계로 묶어내고, 검시의 현장과, 그에 뒷받침되는 일선 법 현장을 '메르스 사태', '엄여인 사건' 등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현실감있게 풀어낸다. 

그러나 제 아무리 설정이 다르고, 전개가 다르다 해도 매일 매일 '법' 드라마가 방영되는 현실은 제 아무리 현실을 반영한다 해도 과하다. 그건 곧 그만큼 현재 우리 드라마 계가 '범람하는'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콘텐츠의 빈곤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제 아무리 사법적 정의가 중요하다 해도 대한민국 전체 직업군 중에서 '법' 관련 직업군이 차지하는 비율에 비해 드라마 속 전문직으로 등장하는 '법' 관련 직종은 과도하다. 시대적 흐름이라 해도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드라마계의 현실이다. 사기꾼이던지, 무법 액션가이던지, 혹은 정의로운 판사던지, 법의관이던지, 결국 그 무대는 '법정'이고, 그 '정의'의 실현은 '법'을 통해 판가름나는 이들 드라마는 '법'의 중요성을 '계몽'하는 효과가 극대화되는 반면,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피로도' 역시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제 아무리 이준기가 펄펄 날고, 정재영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메스를 휘두르고, 천재 박형식이 술술 법전을 읊어대도 시청자들의 눈에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보이는 '자충수'를 더는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의로운 여성 법관들
그런데, <슈츠>를 제외한 이들 법 관련 드라마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바로 여성 법조인들이다. 지난 1월 15일 사법 연수원 수료식, 수료한 연수생 171명 중 여성이 70명으로 40.9%를 차지한다. 지난 해에 비해 29.4%에 비해 그 증가폭이 현격하다. 그런 현실을 반영한 탓일까.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법복'을 입고 활보한다.

또한 이들 '법복'을 입은 여주인공들은 '정의'의 상징이다. 그들은 의로우며, 그 의로움을 실현하는 도구로서 '법'을 실현하고자 하는데 거침이 없다. 그들이 '자산가'의 자제(검법남녀 은솔 역의 정유미)이거나, 지역 유지 판사의 도움으로 변호사가 된 사진관 집 딸(무법 변호사 하재이 역의 서예지)이거나, 재래 시장통의 친근한 딸(미스 함무라비 박차오름 역의 고아라)이거나 상관없다. 그들은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법원을 꿈꾸며, 무한한 EQ를 작동하여 사건에 감정을 이입하며,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마다하지 않는 열혈 '법조인'들이다. 

'권위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않는 '깨시민'의 전형같은 이들은 그런 '정의감'으로 인해 사건의 중심에 거침없이 뛰어든다. 하지만, 그녀들의 무한 EQ와 아직 무르익지 않은 경험은 그들은 때로 그녀들을 직업적 혼돈에 빠뜨린다. 마음이 앞서는 <검법남녀>의 은솔 검사는 그로 인해 '메르스'로 추정되는 검시실에 갇히는가 하면, 사건 현장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미스 함무라비>의 박차오름은 시장통 사람들의 민원에 귀 기울이다 법원 앞 1인 시위하는 여성의 사건에서 공정성의 잣대를 놓치기도 한다. 어렵사리 공부해 겨우 변호사가 됐지만 법저에서 남편의 학대에 정당방위를 한 여성의 억울한 판결에 분노하여 주먹이 앞서는 바람에 '변호사' 자격에 위기를 겪기도 한다. 



그렇게 '그녀'들은 '법'의 정의로운 실현을 주제로 한 드라마에서 그 실현의 과정에서 고뇌하고 성장한다. 그러기에 때로는 그녀들이 벌인 일들이 그녀들을 민폐로 만들기도 하고, 감정적이며 저돌적인 캐릭터의 한계 속에 가두기도 한다. 분명 드라마 속에서 그녀들은 '법복'을 입은 전문적 직업인들이지만, 그녀들의 캐릭터가 빛나는 상황은 그녀들의 '감정'을 통해서인 경우가 아직은 빈번하다. 외려 법복을 입지 않았지만 <슈츠> 속 홍다함(채정안 분)과 김지나(고성희 분)가 전문성에서는 더 빛을 발한다. 

거기에 그녀들이 '성장'하기 위해 '남성'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맹목적인 정의감에 불타던 <무법 변호사>의 하재이는 봉상필(이준기 분)을 통해 어머니 죽음의 비밀을 알고 그녀가 그토록 존경하던 차문숙 판사, 그리고 그녀가 만든 괴물 기성을 향해 법의 칼날을 겨눌 것이다. <검법남녀>의 감정만 앞서던 은솔에게 때론 배신감을 안기기도 하지만, '법'의 길에서 '바로미터'가 되는건, 그 어느 경우에서도 '법'의 진실을 향해 비켜서지 않는 법의관 백범(정재영 분)이다. 의지과 감성이 앞서는 박차오름이 전문적인 판사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노회한 한세상(성동일 분)의 경험과 선배 임바른(김명수 분)의 배려가 전제된다. 
정의로운 여주인공을 내세웠음에도 여전히 '감성적'인 여성'과 '이성적'인 남성의 구도의 드라마들이 서로 다른 드라마인데도 마치 같은 드라마인양 남여 주인공의 성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되풀이 된다는 점이 아쉽다. 
by meditator 2018. 6. 5. 16:14

<미스트리스>는 2008년에서 2010년까지 영국 BBC One에서 방영된 드라마이다. 이걸 2013년 미국 ABC에서 시즌제 드라마로 리메이크, 현재 시즌4까지 방송 완료되었다. 그리고 2018년 OCN을 통해 한국판 <미스트리스>가 6월 3일까지 12부작으로 방영되었다. 현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다룬 '관능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한 이들 드라마는 ABC 드라마의 경우 '미국판 사랑과 전쟁'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몰이를 하였다. 그렇다면 12부작으로 완료된 한국판 <미스트리스>가 어땠을까?




미드와 그리 다르지 않은 설정의 한국판 
한국판 <미스트리스>의 각 캐릭터 상 설정은 흡사했다. 알리사 밀라노가 연기한 사바나 역, 잘 나가는 변호사이며 남편이 쉐프였던 이 캐릭터는 역시나 전문직 여성이었던 한정원(최희서 분)과 역시나 쉐프인 그녀의 남편 황동석(박병은 분)으로 등장한다. 또한 이들 부부는 미드 원작에서처럼 불임으로 고민 중이며 같은 학교 선생님과 한번의 정사로 아빠를 알 수 없는 아이를 가지게 된 것 역시 동일한 설정이다. 

우리나라 배우 김윤진이 연기했던 정신과 의사 카렌 킴 역할은 한국판 <미스트리스>에서도 역시나 같은 정신과 의사이며, 환자인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감정적 혼란을 느낀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결혼을 하지 않고 자유분방한 성관계를 즐기는 부동산 중개업자 조슬린(제이스 맥클리안 분) 캐릭터 역시 비슷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로펌 사무장 캐릭터 도화영(구재이 분)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가인이 분한 장세연은 남편이 죽은 이후 아이와 함께 열심히 살아가는 워킹맘 캐릭터이며, 그런 그녀의 앞에 남편의 여자가, 심지어 그의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다는 설정 역시 원작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비슷한 설정, 그리고 원작이 표방한 '관능'이라는 방점에 충실하기 위해 드라마의 초반 선정적인 베드씬을 나열하며 이 리메이크 작도 원작처럼 적나라한 성인들의 속살을 드러내는 이야기임을 가감없이 보여주려 했던 <미스트리스>, 하지만 12부작 한국판 <미스트리스>에서 미드의 흥미진진함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왜? 설정도 비슷하고, 서사도 그리 다르지 않았는데.



여성들의 이야기란? 
그건, '여성'들의 이야기를 표방했음에도, 그 '여성'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고려'가 부족했기 때문이라 보여진다. 우선 미드 원작에서 드라마의 중심적 스토리를 이끌고 가는 건 성공한 변호사였던 사바나 캐릭터였다. 이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뜻밖의 외도를 통해 가지게 된 아이, 하지만 그녀는 그 아이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반면, 같은 설정이지만 한국판 <미스트리스>는 어땠을까? 영화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가 무색하게, 드라마<미스트리스>에서 최희서가 분한 한정원은 '전문직' 여성이었지만 학교에서 그녀는 자신만만하지도 당당하지도 않은 채 늘 불안하고 일에 치이고, 학생들에 치이는 심지어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여성이었다. 

우리나라 배우 김윤진이 연기했던 카렌 킴 역의 정신과 의사는 한국판에서도 같은 직업이지만 드라마 내내 신현빈이 연기한 김은수는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에 당당한 여성이라기 보다는 불륜이었던 선생님과 그 아들 사이에서 불안에 떨며 직업정 정체성조차 모호한 캐릭터로 보여졌다.

이렇게 원작과 다르게 직업 여성의 주체적인 당당함 대신 그녀를 둘러싼 사건, 사고에 휩쓸려 어쩔줄 모르는 여성의 불안함과 불안정함이 증폭된 캐릭터들도 캐릭터들이지만, 무엇보다 한국판 <미스트리스>가 '여성'이라는 주체성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건, 미드에서 사바나와 카렌 킴이 주도해가는 서사와 달리, 오랜만의 복귀작이 된 한가인이 분한 장세연이 한국판 <미스트리스> 서사의 중심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죽은 후 아이와 함께 사는 장세연,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보모, 그런데 알고보니 남편의 여자, 죽은 줄알았던 남편의 생환, 그리고 그 주변을 배회하는 역시나 정체가 모호한 딸 아이 유치원의 학부모라는 한상훈(이희준 분). 장세연은 12부작 내내 그녀가 원치 않는 사건에 본의 아니게 얽히며 자신과 딸의 운명조차 파국의 상황까지 휩쓸려 가는 인물이다. 

수동적인 캐릭터 장세연이 극의 중심에 놓여지고, 정작 주체적인 한정원과 김은수가 주변 인물로 변형되며 <미스트리스> 전체가 원치 않는 사건에 휘말려 '독안에 든 쥐'가 되어버린 여성들의 양상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결국 절대 악 김영대(오정세 분)의 보험 사기극에 휘말린 여성들의 잔혹사로 귀결되었다.



미스트리스란 단어에는 이율배반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지배권을 가진 여자라는 뜻과 동시에 다른 여자의 남편과 불륜의 관계를 가진 여성이라는 양 극단의 의미이다. 미드 <미스트리스>는 이 이율배반적인 의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주인공들의 삶을 '관능'이라는 성적 코드를 얹어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반면, 한국으로 온 <미스트리스>는 '관능'이라는 코드를 성적 자유분방함이나 주체성이라는 측면보다는 시청자를 위한 눈요기거리로 보여주려 한다. 또한 불륜 등의 관계에서도 주체적인 삶의 방향을 위해 고민하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16부의 엔딩에 이르기까지는 안타깝게도 부각되지 않는다. 대학 동창생 4명의 굳건한 우정은 듬직했지만 함께 몰려다니던 그녀들은 사건의 주도적인 해결보다, 늘 또 다른 사건의 함정 속에 빠지기 십상이니 그녀들의 집단적 의지는 희석되어 버리곤 한다. 

그럼에도 빛나는 장면은 있다. 전 남친과의 잠시 모호한 관계에 빠졌던 도화영이, 그와 함께 산성을 오르다, 올라올 때는 너와 함께 였지만, 이제 내려갈 때는 각자 내려가자며 자기 삶의 주체성을 확인하는 장면이나, 누구의 아이인가 내내 혼돈에 빠져있던 한정원이 남편을 면회한 자리에서 아이의 유전자 검사지를 찢으며 아빠가 누구인가 상관없이 내 아이로 키우겠다는 장면은 내내 운명에 어찌할 줄 모르던 그녀들의 삶에서 반짝인다. 또한 한 남자의 두 아내였던 장세연과 박정심(이상희 분),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자각하고, 특히 박정심이 자신을 옭죄고 있던 김영대의 운명적 결박을 풀어내는 장면은 그럼에도 <미스트리스>의 결정적 장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 여성들의 '연대'와 '우정'은 그 표현이 단선적이었지만 <미스트리스>라는 훈훈한 장점이 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8. 6. 4. 15:21

<나의 아저씨> 마지막 회, 오랜만에 길거리에서 이지안과 박동훈이 마주친다. 두 사람은 밝게 웃으며 손을 마주 잡는다. 반갑게. 그리고 잘 지냈노라 서로의 안부를 전한다. 드라마를 함께 완주해왔던 시청자들은 안다. 저 마주 잡은 손이, 그리고 눈으로 묻는 안부가, 그리고 기꺼이 답하는 서로의 안위가 어떤 의미인지를. 이 험난한 세상에서 서로가 다리가 되어 이 자리에 '건재'할 수 있었던 그 '곡진'한 감정이 그 짧은 안부를 통해 전해지고, 두 사람은 다시 서로의 갈 길을 향한다. 후계동으로 한번 놀러오라는 당부를 더하고, 기꺼이 그 청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모처럼 만나 반가웠던 이지안과 박동훈처럼 <유희열의 스케치북> 400회가 6월 3일 찾아왔다. 400회라 하여 주말의 피로를 견디며 닥본사한 <유희열의 스케치북>, 여전히 후계동처럼 그곳에 있었다. 




400회의 여정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이문세 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에 뒤를 이어 2009년 4월 24일부터 방영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스케치북)>이 400회를 맞이했다. 햇수로만 9년차이다. 

100회를 맞이했던 <스케치북>은 떠들썩했다. 공중파 유일의 정통 음악 프로그램이란 자부심을 한껏 내보이는 4주간의 특집. 국내 정상의 프로듀서들을 한 자리에 모은 1탄 '더 프로듀서', 2탄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고수하는 뮤지션들의 '더 레이블', 그리고 드라마의 들러리에서 당당하게 음악으로 길어낸 ost의 3탄 '더 드라마', 그리고 기타리스트 함춘호, 베이시스트 신현권, 아코디언의 거장 심성락 씨와 함께 했던 '더 뮤지션' 등을 통해 '가수'를 통해 표현되던 음악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 무대를 빛냈고, 정통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자부가 빈 말이 아니었음을 한껏 드러냈다. 

200회, 정통 블루스&컨트리의 김태춘, 진보 하드록의 로맨틱 펀치, 실험적이고도 독창적인 이이언, 블루스계의 싸이 김대중, 작곡자이자 재지한 뮤지션 선우 정아까지, 당대 최고의, 혹은 인기 뮤지션으로 대접받는 '이효리, 윤도현, 장기하, 박정현, 유희열'이 자리를 바꿔 누군가의 '팬'이 되어 무대를 함께 하며, 실력파 뮤지션을 세상에 재조명했다. 



300회, <불후의 명곡>과 <나는 가수다> 등 각종 편곡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는 가운데, <스케치북>은 이런 유행의 트렌드를 역발상으로 활용하여 본연의 정통 프로그램으로서의 자리를 드러낸다. '선택 2015 발라드 대통령' 특집, 대통령 선거의 모양새를 내며, 유희열이 공을 뽑아 출연자를 정하는 방식을 택하지만, 결국은 남들 노래의 재편집이 아닌, 윤종신, 박정현, 거미, 김범수, 백지영, 자이언티까지 '발라드' 계의 내노라하는 가수들의 본연의 매력을 한껏 조명하는 자리를 통해 '음악'의 자리를 묻는다. 

'후계동'같던 400회, 음악의 '아버씨'가 된 유희열
그리고 400회, 이렇게 떠들썩했던 지난 특집에 비하면 400회 <스케치북>은 어쩌면 상대적으로 조촐해보일 지도 모른다. 한 방청객의 말처럼 뒤늦어 버린 인생처럼 너무 늦게 시작하는 <스케치북>을 졸린 눈을 비비며 굳이 지켜낼 성의 대신, 손쉬운 '편집 영상'들이 '닥본사'를 대체한다. 스케치북하면 떠오르던 대명사였던 유희열을 사람들은 이제 <알쓸신잡>이나, <슈가맨>의 mc로 떠올려진다. <스케치북>이 아니라면 볼 수 없었던 기획이나 뮤지션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프로그램마저 떠들썩한 아이돌 그룹의 무대가 선점하면서 굳이 그 늦은 시간을 기다릴 이유를 잃었다. 

400회는 그렇게 '희석화'되어가는 <스케치북>의 의미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윤종신, 이적, 아이유, 다이나믹 듀오, 오혁, 십cm, 멜로망스, 오연준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혹은 여전히 풍미하고 있는, 그리고 이제 막 풍미하는 뮤지션들의 색다른 조합이야말로 9년 여정의 <스케치북>이 되었다. 

'땡스 투 뮤직'이라는 부제로 시작된 조촐한 무대, 뮤지션 혼자, 혹은 콜라보로 엮어지는 무대, 그리고 언제나처럼 유희열의 썰렁한 농담과도 같은 '역주행 좋니 좋아 상', '내가 니 애비다' 등의 기발한 하지만 적확했던  '땡스 투' 시상을 관통하는 건 이들 뮤지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데 일조했던 <스케치북>의 '자화자찬'이다. 2017년을 울려 퍼졌던 '좋니'를 다시 불렀던 무대, 멜로랑스라는, 십cm, 오혁, 심지어 아이유라는 신인을 자신있게 소개했던 프로그램, 그리고 여전히 '링거'를 맞은 '다이나믹 듀오'를 '노예'로 부릴 수 있는 존재감이다. 

즉, <스케치북>은 토요일 밤 자정을 넘겨 '쭈그러져'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이 프로그램이 길어올렸고, 길어올린 음악들이 이 세상 속에 화려하게 회자되고 있다는 소박하지만 당당한 '자부심'이다. 아버지같은 아저씨 유희열이 있기에 가능한. 



그래서 400회를 맞이한 <스케치북>은 마치 아저씨 세대와 젊은 세대와 정희네에서 한데 어울려 술 한 잔 하며 흔쾌히 '인생'을 나눌 수 있는 후계동과도 같았다. 그곳엔 '아버씨' 유희열이 있었고, 여전히 윤종신과 이적이 있지만, 오혁과 멜로망스, 십cm를 세상으로 인도할 여유가 있고, 이제 오연준이라는 '신인'이 그가 팬이라던 아이유와 함께 평생 잊지 못할 첫 무대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추억'이 생성 중이다. 우리가 세상사에 지쳤을 때 찾아가고픈 후계동처럼, 그래서 <스케치북>도 오래오래 그곳에서 '음악'의 후계동으로, 아저씨가 되어 버텨 줄 것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8. 6. 3. 21:08

인도 영화하면 불현듯 화려한 음악이 흐르고 영화 속 인물들이 뛰쳐나와 어울려 군무를 추며 노래를 부르는 '발리우드'가 떠오르기 십상이다. 하지만 영화 <바라나시>를 보면 그런 인도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한 나라의 문화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인가를 깨닫게 된다. '발리우드'와 <바라나시>라는 영화를 품은 인도는 마치 한 쪽에서 그 물을 떠마시고, 목욕을 하며, 다른 쪽에서 그 물에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갠지스 강'과도 같다. <바라나시>를 통해 그 갠지스 강처럼 유장한 인도 문화의 한 지류를 맛본다. 하지만 그 '누런' 흙탕물의 맛을 통해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건 '인간 보편 존재와 관계'에 대한 물음이다.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 
유대교와 기독교 심지어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일생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할 성지로 '예루살렘'을 든다. 밤 하늘에 붉게 수놓는 십자가만큼 기독교 문화가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 그러기에 성지 예루살렘은 익숙한 곳이다. 하지만, 인도와 힌두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바라나시'는 생소한 지명이다. 갠지스 강이라면 그래도 사회나 지리를 통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하지만. 우타르프라데시, 비하르, 서뱅골에 걸쳐있는 갠지스 평원을 가로질러 남동쪽으로 2,510km를 흐르는 갠지스 강은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에게는 성스러운 숭배의 대상이다. 그 중에서도 비슈바나타, 산카트모차나 사원 등이 있는 이 2010 km의 강 줄기 가운데에서도 인도인들은 굳이 바라나시를 '예루살렘'처럼 평생에 한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로망'한다. 매년 100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여전히 이곳을 방문한다. 

힌두교를 믿지 않은 일반인들이 보기엔 그저 누런 흙탕물의 냄새나는 강일 뿐이지만, 인도인들은 그 강으로 '순례'를 떠나 그곳에 몸을 담고, 그 물을 떠마시며, 꽃불인 '디아'를 띄워 소원을 빌고, 화장을 하고 그를 띠워 보낸다. 결국은 하나로 흐르는 강물에 어우러지는 삶과 죽음, 이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혼돈', 그러나 인도인의 종교적 소망의 집결체가 바로 '바라나시'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인도에서도 이 '종교적 로망'이 예전같지 않다. 영화 <바라나시>에서 아들 라지브(아딜 후세인 분)가 일하는 직장의 사장은 아버지의 순례 길에 동반하려는 라지브가 못마땅하다. 2510km 그 갠지스가 그 갠지스일 텐데 굳이 바라나시일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고, 그 질문에 아들 라지브는 대답을 찾지 못한다. 그저 '아버지'가 가시니 어쩔 수 없다할 뿐. 그런 아들이기에 라지브가 바라보는 바라니시의 갠지스 강은 이방인의 눈에 비친 냄새나는 모순 덩어리와 그리 다르지 않다. 

그리고 바로 여전히 바라나시를 종교적 성지로 바라보는 세대와 그걸 받아들이기 힘든 세대 간의 간극, 그곳에 영화 <바라나시>가 자리잡는다. 영화 속 70대의 아버지 다야(랄리트 벨 분), 그의 아들이자 딸의 아버지인 끼인 세대의 52세 가장 라지브, 그리고 그의 딸 25살의 수니타(팔로미 고시 분), 이 세 세대의 갈등과 화해가 바라나시라는 공간을 통해 흘러간다. 



아버지의 죽음맞이를 따라온 아들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가장 라지브, 그런데 건강이 좋지 않은 그의 70대 아버지가 바라나시로 순례 여행을 떠나시겠단다. 아니 아버지의 표현대로라면 그곳으로 죽으러 가시겠단다. 힌두교도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번은 가보고 싶은 그곳에 대한 로망을 말릴 수는 없지만, 그곳에 건강도 안좋은 아버지가 죽으러 가겠다니, 입장이 난처한 아들 말려보지만 아버지는 완강하다. 결국 혼자라도 길을 떠나겠다는 아버지로 인해 아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죽음에의 순례 여행에 동행자가 된다. 

15일을 예정하고 떠난 바라나시 행, 하지만 택시를 타고 다시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바라나시의 골목을 인력거를 타고 내리며 도착한 호텔 샐베이션(영화의 원제), 그곳에는 라지브의 아버지처럼 죽음을 맞이하러 위해 온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동생에게 눈물의 이별까지 하고 온 죽음에의 여행이지만, 막상 호텔 샐베이션에서 맞이한 건 삶의 과정이다. 집안 일이라고는 해보지도 않은 아들이 만든 식사를 못먹겠다는 아버지, 혼자서 떠나오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손 하나 까닥않고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아버지는 말 그대로 휴가온 여행자이다. 덕분에 아버지는 잠시 건강 상의 위기를 넘기고 오랫동안 그곳에서 죽음을 기다린 할머니를 비롯한 주변 투숙객들이랑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반면 사장의 눈치를 받으며 아버지를 모시고 울며 겨자먹기로 떠나온 아들의 일상은 하루하루가 '고생길'이다. 아버지 음식 봉양에서부터, 낯선 호텔과 바라나시의 생활을 책임지는 한편, 끊임없이 울리는 핸드폰을 통해 이어지는 직장 일은 그를 매순간 '시험'에 들게 만들어 아버지와의 이별을 슬퍼하면서도, 본의 아니게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리는 딜레마에 빠지도록 만든다.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딸, 그 인연의 '묵티(mukti 구원)'
하지만 그런 일상의 번거로운 잡음을 타고 드러나는 건,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쉬이 풀어내지 못하는 부자의 애증이다. 작가이자 선생님으로 존경받아왔던 아버지는 이제서야 '문재'가 있었던 아들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치지만, 그런 아버지에게 아들은 어릴 적부터 유독 자신에게만 엄격했던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이다. 그러기에 아들은 뒤늦은 아버지의 칭찬에 부아를 낸다. 

반면 아들에게 그리 엄격했던 아버지는 정작 그 아들의 딸인 손녀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회를 놓치지 말도록 격려한다. 여전히 딸을 위해서라며 대학을 마치자 마자 좋은 남자와 결혼하기를 강제하는 그 아버지의 아들과 달리. 나의 자식이기에 나의 아버지이기에 접어지지 않는 마음들. 이렇게 영화는 죽음의 순례 장소에서 드러나는 세대간의 해묵은, 혹은 현재 진행형의 갈등과 애증을 드러낸다. 

'캥거루'가 되어 주머니에 안경도, 책도 뭐든지 넣고 싶다던 아버지, 이제는 삶이 거추장스러워 죽음의 여정에 올랐지만, 오래전 아들의 재능을 뒤늦게 안타까워하는 아버지가 홀로 죽음을 찾아가는 '코끼리'가 되기까지는 예정된 15일을 훨씬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건 아들도 마찬가지다. 책임감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왔던 아들은 바라나시라는 본의 아닌 유배의 장소에서 가장과 아들의 존재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갈등한다. 그리고 유보된, 아닌 기약할 수 없는 아버지의 죽음이, 이런 이들 각자의 '화두'를 풀어낼 시간이 된다.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을 따라 바라나시의 죽음도 흘러가는 걸 보며, 아버지는 비로소 캥거루였던 자신의 존재를 놓는다. 그리고 비로소 '아버지'와 '아들', 그 본연의 관계로 아들을 품는다. 아버지로서의 욕심을 놓고 아들을 아들로서 받아들인 아버지는 그래서 자신의 자식이지만 누군가의 아버지인 아들을 풀어준다. 그리고 아들도 애증으로만 바라보았던 아버지와의 인연에서 풀려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돌아설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아들 역시 이제는 세속의 틀에서 한결 자유로워져 스쿠터를 타는 딸의 시동을 대신 걸어줄 여유를 찾는다. 

어쩌면 영화는 어느 사회에서나 벌어지는 세대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에서 순례의 길을 떠나온 사람들이 몸을 적시고, 다른 곳에서 그 물을 성수라 떠마시며, 그리고 그 물에 죽은 자들이 길을 떠나는 이 기묘한 '성지'의 공간은 '인연'의 번거러움을 덜어내고, 삶과 인연, 그리고 죽음에 대해 돌아볼 여유를 준다. 가족이기에 놓아버릴 수 없었떤 갈등과 애증은 바라나시라는 '죽음'이 전제된 특별한 공간을 통해 '묵티(구원)'에 이른다. 그리고 <바라나시>를 통해 관객들도 그 '인연의 묵티'라는 화두를 짊어지고 돌아온다.  
by meditator 2018. 6. 1. 17:26

얼마전 결혼기념일을 지냈다. 어느덧 내가 싱글로 살아온 시간보다 누군가와 '부부'로 살아낸 시간이 길어졌다. 생각해 보면 '경이로운(?)' 일이다.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과 '동거'하며 함께 삶을 누려간다는 것이. 그런데 문제는(?) 수명이 길어진 시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 또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얹혀진다. 그래서 1990년대 등장하기 시작한 게 황혼 이혼이다. 자녀가 성장한 이후 부부가 각자의 삶을 찾기 위한 '이혼', 하지만 몇 십년 지속해온 결혼이라는 관계의 형태를 '파괴'하는 이 결정에는 많은 부담이 따랐다. 더구나, '가족'이라는 제도가 사회의 근간이 되어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래서 등장한 것이 '졸혼'. 2004년 일본의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의 책 <졸혼을 권함>에서 등장한 이 단어는 유행처럼 번져 2016,7년에는 한국 사회의 '트렌드'가 되었다. 


그 '트렌드'에 따라 여러 다큐가 '졸혼'에 대해 다뤘고, 연예인 등 유명인사가 당당하게 자신의 졸업을 고백하고, 예능으로 도입되어 '별거나 별거냐(2017)'등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제 2018년 5월 27일 <sbs스페셜>에서 다시 '졸혼'을 다룬다. 바로 <행복한 부부 생활을 위한 졸혼 연습>이다. 유행처럼 휩쓸고간 2017년이 지나서 뒷북일까? 하지만, <sbs스페셜>이 다루고 있는 '졸혼'은 작년 붐처럼 유행했던 '졸혼'과는 또 다른 변화가 감지된다. 



차광수 강수미 부부의 졸혼 연습 
<sbs스페셜>은 OECD 이혼율 1위의 현실을 수용하여 준비없이 맞이하는 '이혼' 현실에 대해 <이혼 연습- 이혼을 꿈꾸는 당신에게>를 통해 '가상 이혼 프로젝트'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배우 이재은 부부 등은 다큐에서 마련한 방식으로 이혼 생활을 미리 접해보고 서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2018년에 찾아온 <졸혼 연습>은 바로 이 <이혼 연습>의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다. 하지만 위자료, 재산 분할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묵직해졌던 <이혼 연습>과 달리, 결혼이라는 제도의 외피를 완전히 벗어던지지 않은 '졸혼'답게, 결혼의 종료 연습은 한 편의 달콤쌉싸르한 로멘틱 코미디와도 같다. 

여기 남들에겐 한 쌍의 원앙으로 대접받는 부부가 있다. 바로 연기자 차광수 씨 부부다. 결혼 생활 23년차, 남편에게 10첩 반상을 차려 대접하는 아내, 1년에 한번씩 해외 여행을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는 남편, 이들은 남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젊은 시절 잘 나가던 거문고 연주자의 꿈도 접고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스스로 90점 짜리 아내라 평가해오던 강수미씨는 자신의 삶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이제서라도 자신을 찾고 싶은 강수미 씨 남편에게 당당하게 '졸혼'을 청한다. 

자기의 삶을 되찾고 싶다는 확고부동한 의지를 가진 배우자의 졸혼 요구에 배신감과 허탈함에 빠진 것도 잠시, '자유'라는 또 다른 카드가 차광수씨에게 손을 내민다. 결국 차광수 씨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각자의 삶은 인정하는 '졸혼' 계약서를 쓰고 '가출'한다.

다큐는 각자 홀로 살아보는 '졸혼' 연습의 혼란스러움과 시행 착오와 함께, 실제 '졸혼'의 커플을 등장시켜 시청자들에게 '졸혼'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힌다. 자신의 삶을 모색하던 아내가 찾은 사람은 임지수씨.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그녀는 하던 사업을 정리한 후, 평범한 아내의 삶 대신 산속으로 들어가 홀로 황무지를 아름다운 정원으로 일구어 냈다. 하지만 자유로운 그녀의 삶을 부러워하는 강수미씨에게 임지수 씨는 여전히 고운 외모와 달리, 노동으로 거칠어진 손을 보여준다. '졸혼'이라던가, '자신의 삶에 대한 로망'은 그렇게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천착과 책임이 뒤따른다는 증거이다. 임지수 씨의 손을 본 강수미 씨의 생각도 복잡해 진다. 막연히 남편의 시중을 들지 않아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졸혼', 그러나 생각보다 무료하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없는 삶, 거기엔 홀로 살아갈 삶에 대한 책임이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졸혼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휴혼은 어떨까?
남편 역시 마찬가지다. 아내의 청소와 빨래에 대해 잔소리로 일관했던 남편, 그러나 막상 집을 나와 살아보니 그 별 거 아니라던 일상의 삶이 버겁다. 그 역시 '졸혼' 선배를 찾아나선다. 파주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 중인 이안수 씨, 그의 아내는 그와 떨어져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자전거 여행에 이어 필리핀 어학 연수 중이란다. 평범한 직장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던 이안수 씨가 먼저 훌쩍 떠나면서 시작된 부부의 이별, 서로 각자의 삶을 인정하며 존중해 주는 삶은 더더욱 부부간의 정과 사랑을 돈독하게 해주었다고 자부한다. 

'졸혼'의 선배를 찾아본 차광수-강수미 부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하던 강수미 씨는 평소 좋아하던 베이킹을 시도해 본다. 막상 만들어 본 첫 번째 작품, 그 빵을 먹으며 강수미 씨가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은 남편이다. 결국 부부는 '졸혼'대신 잠시의 휴혼을 마치고 다기 한 집에 살기로 한다. 따로 또 같이 삶은 새로운 문화적 충격이었지만, 아내 없는 일상을 차광수 씨는 상상할 수 없었다 토로한다. 하지만 잠시 떨어져 살았던 시간은 부부를 변화시킨다. 손도 까딱않던 남편은 이제 아내를 위해 차를 준비하고, 떨어진 시간 동안 소중한 서로의 존재가 일상의 시간마저 변화시킨다. 이에 부부는 준비되지 않은 졸혼 대신 부부가 서로를 마주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휴혼을 제안한다. 



다큐가 보여준 건, '졸혼' 조차도 사실상 여의치 않은 우리 사회 부부의 또 다른 대안이다. 이혼이 '위자료', '재산 분할'이라는 경제적 부담과 가정의 파탄이라는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면, 졸혼 역시 차광수 씨 부부에게서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독립적 생활에 대한 쉽지 않은 여건의 함정이 따른다. 차광수 씨나, 예능 <별거가 별거냐>에서 여유롭게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집을 나섰지만, 과연 배우자에게 여유롭게 어렵게 마련한 집을 양보할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또한 너무 오래 살아서 번거롭고 지겹지만 막상 결혼을 '졸업'할 용기 역시 쉽지 않다. 그러기에 2018년 <SBS스페셜>은 졸혼에서 다시 한 발 물러서 '휴혼'을 제의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정'을 벗어던지는 건 쉽지 않다. 


by meditator 2018. 5. 28. 15:00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와 관련된 논란은 2008년 식용 GMO(콩, 옥수수)의 본격 수입이 시작된 이래 그 역사가 길며 쉬이 종결되지 않고 있다. 식량난으로부터 인류의 구원자라는 의견과 결국 인간과 자연 모두를 멸종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밥상이라는 양 자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해 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2017년 기준 연간 228만 2천톤, 그 중 옥수수 123만 9천 톤, 대두 104만 3천 톤, 어느덧 우리는 세계 1위의 식용 GMO 수입국이 되었다. 




높아지고 있는 GMO 경고의 목소리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유전자 조작 농산물과 관련된 경고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지난 해 서울 환경 영화제에서 제레미 세이퍼트 가족의 GMO 가족 여행기 <GMO OMG>가 상영된 바 있다. 인류가 유전자 조작을 시작한 지 어언 20년, 우리의 식탁에서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GMO, 그 실상을 알기 위해 제레미 세이퍼트 감독은 아이들과 함께 긴 여정에 올랐다. 마트에 들러 원료의 성분을 묻고, 쓰레기통을 뒤지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미국의 실생활에 GMO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가족은 찾아나선다. 



GMO와 관련하여 몬산토를 대표로 하는 다국적 기업이 주장하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세계적인 기아의 가장 유효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GMO 농산물의 생산성이 그렇게 좋을까? 놀랍게도 유기농 재배와 30 여년간 비교한 결과 그리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해충과 잡초에 강한 GMO 농작물이 해충과 잡초에 강한 내성을 키워 슈처 잡초가 등장했다. 결국 또 다른 농약을 살포해야만 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2007년 < KBS 환경 스페셜 위험한 연금술 유전자 조작 식품>을 통해서도 방영된 바 있다. 영화 속 가족이 발견한 쓰레기통 속 엄청난 음식들척럼 우리 사회 '기아 문제'는 절대적 식량의 부족이 아니라 생산되는 음식의 1/3이 버려지고 있는 불균등한 배분의 문제라고 반대론자들은 주장한다.

세계 3대 GMO콩 생산지인 아르헨티나 마을 차코에서는 그 재배 과정에서 대량 살포된 글리포세이트로 인해 주민들이 각종 암과 이상 질명에 시달렸고, 신생아의 30%가 기형아로 죽어갔다. 결국 WHO(세계 보건 기구)는 이를 2등A급 발암 물질로 지정했다. 이 글리포세이트는 GMO 다국적 기업인 몬산토사의 GMO 전용 농약 '라운드 업'의 주성분이다. 

하지만 농약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세계의 환경 단체들이 우려하는 건 바로 '유전자 조작' 그 자체이다. 일부에서 병해에 강한 농산물을 키워냈던 품종 개량에 비유하지만, 유전자 조작은 '냉해에 강한 딸기를 만들기 위해 심해에 살아 추위에 강한 넙치의 유전자를 이식하듯', 종의 경계를 넘어선 실험이며, 이 20여년의 역사 밖에 되지 않은 유전자 조작의 식품의 장기간의 섭취에 따른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연어의 경우 더 많은 알을 낳도록 하기 위해 성장 호르몬 분비를 제거하여 36배나 큰 슈퍼 연어를 탄생시켰지만, 이 슈퍼 연어는 기형어가 많이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들 연어를 물에 풀어놓았을 경우 불과 5세대 만에 일반 물고기의 수를 초월했다. 그러나 이들 슈퍼 연어는 성체가 될 때까지 살아남는 겨우가 적어, 40세대만에 멸종되고 만다. 그러기에 환경 운동가인 류외향씨는 '식량이 아니라 생물 무기'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GMO식품이 상업화된지 20년, 콩, 옥수수 등의 유전자 변형 농산물과 함유 식품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하여 환경과 건강, 식량 주권 및 무역 등 다방면에서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에, 지난 19일 세계 몬산토 시민 반대의 날에 한살림 등 시민 단체들은 'GMO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매년 5월 세째 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이 집회는 올해로 6번째를 맞이한 세계 시민들의 뜻을 모은 행동이다. 또한 지난 3월 12일 한국 YWCA, 경실련 소비자 정의 센터 등 57개 소비자, 농민, 학부모 단체들은 청와대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GMO 완전 표시제 국민 청원'을 시작했다. 불과 한달 사이 21만명의 사람들이 청원에 참여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뉴스 타파 목격자들>이 'GMO를 먹지 않을 권리'로 담아내고 있다. 

왜 GMO를 표시해야 하나? 
왜 GMO 표시에 학부모와 소비자 단체들은 나섰을까? 그 시작을 다큐는 NON GMO 급식을 하는 학교에서 찾는다. 경기 광명의 광명 북고등학교. 이 학교는 학교 급식에서 GMO 음식을 퇴출 시켰다. 우리밀 튀김 가루, NON GMO 기름인 유채유를 쓰고 있다.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학부모들, 급식이 제일 맛있다는 학생들, 하지만 그렇다고 이 NON GMO 급식이 완전하지 않다. 왜냐하면 가공 식품에서의 GMO를 완벽하제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묵들의 제품이 만들어 지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GMO 농산물로 만들어 지는 기름에 대해 학교 급식은 무방비하다. 왜냐하면 이들 식품이 원재료의 GMO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표에서 보여지듯이 수입된 GMO 콩과 옥수수는 각기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의 형태로 분해되어 간장, 식용유, 전분 등의 원료로 씌여진다. 그리고 이런 재료들은 우리가 무심코 먹고 있는 각종 식품들, 심지어 아이들이 즐겨먹는 과자나, 믹스 커피 등에까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7뇬 식품 의약품 안전처는 '고도의 정제 과정 등으로 유전자 변형 DNA 또는 유전자 변형 단백질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검사 불능인 당류, 유지류 등은 유전자 변형 식품임을 표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고시하고 있다. .

이에 학부모, 농민을 비롯한 소비자 단체들은 이에 '내가 먹은 식품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즉 알권리와 먹을 권리로서 'GMO 완전 표시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불과 한 달 만에 청와대 청원에서 21만 명의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보여지듯이 대중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이에 국회의원 윤소하, 김현권 의원은 ' 유전자 변형 식품 표시 대상을 '제조 가공 후에 유전자 변형 DNA, 또는 유전자 변형 단백질이 남아있는 유전자 변형 식품 등에 한정한다는 조항을 삭제하고, 유전자 변형 물질을 원재료로 사용했을 경우에는 예외없이 식품에 이를 표시하도록 할 것'에 대한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법안은 2016년 이래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정부의 방패막이 역할 GMO 협의체 
이런 학부모, 농민, 소비자들의 주장에 대해 정부, 그 중에서도 식품 의약품 안전처는 GMO 표시 제도 검토 협의회를 전문가 4명, 소비자 단체 8명, 식품 산업계 8명으로 구성하여 논의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협의과정의 내용의 비공개 등 운영 과정의 문제는 물론, 소비자를 대표해야 할 소비자 단체 대표의 대표성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CJ, 대상 등 식품 산업계 전원 반대와 소비자 대표 3인 마저 반대한 이 협의체의 결론은 안타깝게도 GMO 정책과 관련된 정부에 대한 비판의 방패막이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식품 산업 협회는 GMO 성분 표시와 관련하여 과학적인 검증 방법이 없다거나, 시스템이 갖춰 지지 않았다는 식으로 발뺌을 하고 있지만, 정작 이와 관련한 홍보 영상까지 만들어 배포하는 등 앞뒤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 미국을 제외한 유럽의 경우는 GMO 완전 표시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가까운 대만의 경우 GMO 완전 표시제는 물론, 학교 급식에서 GMO를 완전 퇴출 시켰다고 GMO 반대 행동은 밝히고 있다. 



GMO 완전 표시와 관련하여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 중 가장 큰 불안감은 바로 '가격'의 문제다. 과연 GMO 관련 수입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얼마나 가격이 오르게 될까. NON GMO 원료를 사용할 경우, 식품 산업 비용은 1.28~2.35%의 인상 분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월 식품비 지출 50만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월 8250원에서 18000원 추가로 지출하게 되는 것이다. 식용유 1,8리터를 기준으로 했을 때 4000원의 가격이 5000원으로 인상될 것이다. 학교 급식의 경우 한 끼 3000으로 놓고, 끼니 당 111월 한 달 2220원의 비용이 더 들어간다. 이상의 사례로 미루어 봤을 때 GMO 완전 표시제 이후 시장에서 GMO 원재료가 퇴출된다 해도 '가격'의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뉴스 타파>는 내놓고 있다. 

청와대는 국민 청원에 대해 GMO 표시 제도 검토 협의체 재구성을 할 것과 제도 개선 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다큐는 덧붙인다. '새로 구성할 위원들의 선정 방법과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고. 

그럼에도 여전히 GMO 전면 배제와 관련한 서민의 가격 부담은 피할 수 없는 문제로 남는다. 또한 '선택'의 문제가 되었을 때 빚어지는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도 피할 수 없다. 이와 더불어 황교익, 김봉구 씨등은 '신토불이'의 위험론을 제기하며 소비자의 알권리는 맞지만, 그 인식이 너무 이분화되어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단백질이 녹는 고온을 이용한 가공 식품에 사용되는 GMO 원료의 유해성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또한 무엇보다 푸드 패디즘(FOOD FADDISM; 먹거리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 하는 것)의 과열을 우려하며, 당장이 아니라 GMO에 대한 인식의 제고와 '유전자 가위 기술'(기존 GMO 방식을 개선한 나쁜 유전자를 빼내는 기술) 등의 과학 발전의 긍정성은 GMO로 인한 악영향을 충분히 제고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도 한편에서는 여전하다. 그럼에도 '소비자의 알 권리, 내가 먹고자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의 문제는 '삶의 질'과 관련하여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가 될 수 밖에 없다. 



by meditator 2018. 5. 27. 01:39

지난 2017년 6월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기후 협약에서 탈퇴를 해버렸다. 영화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교황과 당시 미 대통령이었던 오바마를 만나, 지구 온난화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정치적 실천'을 도모했지만, 미국인들은 대통령으로 트럼프를 선택했고,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보란듯이 '지구 온난화' 문제를 묵살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정의로운 실천'을 요구했던 이 영화는 휴지통으로 들어가야 하나? 아니 그러기에 외려 이 영화의 가치는,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절실해 진다. 우리가 어느 '화창한 날에 맞이할 대홍수'가 여전히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의 대중성과 영향력에 기대어 
영화의 시작은 미국의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다.(이하 레오)  영화는 일개 배우인 레오가 환경운동의 전문가라는 걸 비웃는 한 tv 영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비아냥에 대해 비록 레오가 학자들만큼 많이 알지는 못하고, 정치인들처럼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스무 살 때 고어 대통령을 만나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래 꾸준히 이 문제에 대해 천착해 왔음을 보여준다. 아니 역설적으로 우리에게도 가장 친숙한 배우 레오이기에, 전문가가 아닌 한 개인이 가진 지국 온난화에 대한 여정이기에 <비포 더 플러드>는 더 설득력을 지닌다. 

영화는 그에게 아카데미 상 남우 주연상을 선사했던 영화<레버넌트>로 부터 시작된다. 혹한의 날씨에 야생을 견디며 삶을 일구어 나가는 인물을 그려내는 이 영화의 배경은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이다. 그에 걸맞는 영화 배경을 찾아 캐나다로 간 촬영진은 영화에 걸맞지 않게 눈이 다 녹아버린 상황에 고심한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2014년 유엔 환경대사가 된 레오, 그는 이후 2년 여의 여정으로 지구 온난화의 현장을 직접 찾아든다. 

지구 온난화라는 용어가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라 생각할 만큼 무지했던 젊은 레오, 지구의 에어컨인 북극, 하지만 급속도로 녹아가는 그곳에서 2040년만 되도 항해가 가능할 지도 모르는 증언들과 마주하며 소박했던 그의 생각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0년 지구의 날을 기점으로 지구 온난화를 알리는데 앞장서기 시작한다. 

타락한 행성, 수익의 유혹 
그런 그와 함께 찾아본 지구 온난화의 현장, 그 첫 지역은 그가 사는 미국의 플로지다 지역이다. '화창한 날의 홍수', 그 이상한 단어의 조합이 현실이 되고 있는 곳, 상승된 해수면은 플로지다의 취약 지역를 상시적으로 '홍수'로 몰아넣는다. 이를 위해 플로리다 시는 도로를 들어 올리고, 물을 빼는 전기 펌프를 작동시키는 중이라는데, 하지만 2011년 공화당의 주지사는 취임 이후 이 다급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기후 변화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한다. '로비'와 '산업'이 얽혀있는 지구 온난화의 현실, 97%의 과학자가 지구 온난화에 동의해도, 지구는 오히려 냉각되고 있다는 등, 전례없는 온난화는 거짓이라는 등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는 현실, 과학 논쟁이 아니라 화석 연료 사업자와 기업체의 스폰을 받는 언론의 이간질에 대중이 '미혹'되는 현실은 결국 '지구 온난화'가 '환경'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는 걸 레오는, 다큐는 분명하게 짚는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문제 의식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1958년 미국의 한 tv 과학 프로그램은 이미 당시에 과학계가 기후 변화를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큐는 묻는다. 그 당시에 그런 지구에 닥친 문제점을 인지하고 실천을 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라고. 하지만 현실은 단기적인 화석 연료 수익의 유혹이 세상을 장악한다. 과학자들의 과학적 인식 대신 사회적 신용도가 높은 몇몇 유명 인사들이 스폰을 받고 방송을 통해 인간이 기후를 바꿀 수 없다는 등의 말을 흘린다. 의회도 장악되었다. 기후 온난화에 대한 법안은 번번히 저지된다. 이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중국은 다를까? 지금까지는 미국이 세계 제 1의 오염국가였다. 하지만 이제 그 지위를 중국이 이어받았다. 중국에서 대기 오염은 가장 첨예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시민들을 대거 거리의 시위로 불러들이는 건 바로 '대기'의 문제이다. 학자들은 전국 오염도를 데이터 베이스화 했고, 이런 '정보'는 곧 '시민'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덕분에 정부의 녹색 성장 정책으로 추동했고,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풍력, 태양력 발전을 시도하고 있다.

다른 국가들은 어떨까? 세계 제 3위의 탄소 배출 국가 인도의 문제는 복잡하다. 하지만 인도인 중 7억 명이 전기와 불빛 없이 생활을 하고 있다. 단 30%의 가정만이 전기를 사용하고, 상당수의 국민들이 여전히 소똥 케이크를 활용하여 요리를 하고 있다. 인도의 국가적 과제는 개발과 빈민 구제이다. 온국민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목표요, 감당할 수 있는 전기 요금때문이라도 석탄 사용은 불가피하다. 

이런 인도의 에너지 담당 장관에서 레오는 태양 에너지를 권유한다. 장관은 반문한다. 그런 미국이 태양 에너지를 쓰지 그러냐고. 미국의 에너지 소비는 중국의 10배, 인도의 3.5배이다. 문제는 미국인의 생활 스타일이 전세계 국민의 로망이라는 것이다. 즉 세계인의 롤모델이 되어버린 미국이 달라지지 않고서는, 즉 미국식 생활 방식과 소비 습관이 달라지지 않고서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논의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고통받는 지구의 약한 고리들
하지만 이렇게 미국 등의 부유한 나라가 펑펑 써댄 화석 에너지로 인해 정작 고통을 받는 건 세계의 약한 고리인 약소국들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계절에 안맞는 폭우가 내려 갓 농사를 지은 농작물들이 썩어들어간다. 1년의 작황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태평양의 낙원 키리바시에서는 홍수로 사람들이 쓰는 식수로 쓰는 연못에 바닷물이 유입되고 있다. 조만간 팔라우 섬은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해안의 생태계도 위협받고 있다. 세계 인구 중 10억 명의 사람들이 산호초 어장에서 먹고 살고 있다. 하지만 바닷물 내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산호초는 점점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미래의 바다는 어쩌면 지금의 바다가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산호초의 파괴는 그곳에 깃들여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굶주림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열대 우림도 마찬가지다. 이산화탄소의 저장 창고인 열대 우림, 하지만 값싼 팜유의 생산을 위해 고의적으로 불을 놓아 열대 우림은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는 중이다. 팜유 산업의 팽창은 열대 우림의 80%를 파괴했고, 코뿔소, 코끼리, 오랑우탄 등의 동물은 '난민'이 되었다. 아니 이들 동물은 불로 죽어간 다수의 동물에 비하면 '운좋은 생존자'이다. <레버런트>의 눈쌓은 풍경을 위해 영하 제작진은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 아르헨티나까지 5000km의 여정을 달렸다. 눈을 본다는 게 기이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12억년동안 지구는 안정적이었다. 지구인은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지구 온난화로 약 4도 정도의 상승이 예상되는 미래의 지구는 우리가 살아본 적이 없는 지구이다. 언론에서는 외려 지구가 냉각되어가고 있다고 떠들지만, 지구 온난화가 당장 폭염을 가져오는 건 아니다. 외려 일시적으로 유럽의 경우처럼 '한파'를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지구의 온도가 2도만 올라가도 산호초는 절멸될 것이다. 기후 변화의 티핑 포인트이다. 파리 기후 협약은 그래서 지구 온도 변화를 2도, 1.5도 내로 제한하기 노력할 것을 협상했다. 지구 밖에서 본 지구의 대기는 양파 껍질처럼 얇아 보인다고 한다. 이 얄팍한 껍질, 그만큼 취약하다는 의미이다. 



늦었다지만 아직은 포기할 수 없는 노력들 
이 양파껍질처럼 얄팍한 대기의 지구, 그 지구를 위협하고 있는 온난화에 대한 대비는 이미 늦은 걸까? 전기차로 이름을 날린 일론 머스크는 '기가 팩토리'를 통해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서 '배터리'는 개도국의 발전소를 대신할 수 있는 용량의 전기를 내장한 어마어마한 환경 발명품이다. 즉, 우리가 유선 전화에서 무선 전화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듯, 기가 팩토리의 배터리가 상용화되면 더 이상 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석탄을 태울 필요가 없게 된다. 현대 과학의 발전이 새로운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 낸 것이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는 자기 개인의 노력으로 전세계에 기가 팩토리를 세울 수는 없다고 하소연한다. 결국 각국의, 세계 정치권의 자구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탄소세'의 도임이다. 대기 중 배출되는 탄소, 즉 그 탄소를 배출하는 모든 행위와 사업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경제적 방식'이 요구된다. 이산화탄소에 세금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면, 불과 몇 십년전 '담배에 세금을?'하며 고개를 갸웃대던 상황을 연상해 보면 된다. 

계몽적 방식의 사회적 책임감 호소보다. '탄소세'와 같은 직접적인 경제적 방식이 급격해지는 위기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고 다큐는 주장한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가 정부나, 정치권의 몫만은 아니다. 하다못해 우리가 소고기 대신 닭고기를 먹는 식사 습관만 바꿔도 온난화의 가속화를 막을 수 있다. 지구 상 생산되는 곡물의 70%가 소의 먹이이다. 또한 소가 배출하는 메탄은 강력한 온실 가스의 주범이다. 반면 닭은 그런 소가 지구 온난화에 끼치는 악영향에 1/10 정도의 영향력을 끼칠 뿐이다. 그래서일까 레오는 채식주의를 선언했다. 이는 결국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리의 실천은 우리의 생활 방식으로 이어짐을 뜻한다. 탄소세와 같은 세금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탄소에 대한 세금은 세금의 증가가 아니라, 지구 온난화로 인한 다른 피해를 줄여 '세금의 이동으로 홍보되어야 한다. 눈 앞의 이익이 아니라, 취향이 아니라, 거시적 차원의 변화가 우리의 알수 없는 미래로 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대통령도 정치권도 대중의 생각이, 삶이 변화하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의견을 바꿀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적 계몽의 설득력있고 유효한 수단으로 <비포 더 플러드>의 의의는 크다. 



by meditator 2018. 5. 22. 02:36